이사야 26:8-10/의 배우기
의 배우기 2006년 12월 6일 본문 말씀: 이사야 26:8-10 (사 26:8)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사 26: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 26: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은 의를 어떤 식으로 알리고서 전달하느냐 하는 겁니다. 두 번째 생각할 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에게 은총을 받고 있더라도 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면 구원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의 경우를 검토해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타나실 때 비로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알게 될까요? 여기에 우선 두 가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있을까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사람들에게 신화적 영웅이 됩니다. 이 분은 얼마나 착한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선물을 나뉘어 주시는 분입니다. 원래 크리스마스 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의 뇌리에서 예수님 대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인상으로 중첩이 되면서 산타클로스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습니다. 싫어하지를 않습니다. 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바로 평소에 인간들이 구상한 하나님이나 메시야상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악마라고 여기는 모습으로 오신 분이 진짜 메시야이십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진짜 메시야라고 간주되는 자가 바로 양의 탈을 쓴 진짜 악마의 행색입니다. 예수님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앞장세우면서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라 ‘십자가’를 앞장세우면서 나타나십니다. 십자가란, 곧 우리가 죽어 마땅한 존재임을 고발하고 정죄하는 십자가입니다. 즉 현재 우리가 살아있다고 자부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실상은 죽은 자일 뿐입니다. 이러한 취지의 십자가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면, 우리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을 자격도 못되고 그냥 지금이라도 죽어 마땅한 죄인들일 뿐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자격자가 못됨을 알려주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십자가입니다. 거기서 피가 흘려내려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그냥 폼만 잡고 내려오는 십자가가 아니라 죽어서 시체가 되어야지만 내려올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죽은 자로 판명났습니다. 여호수아 11:20에 보면,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앞장세우시고 벌리시는 그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란, 인간의 행위로 결정짓는 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의도하신대로 사람들을 다루어 나가시는 겁니다. 즉 이방민족들로 하여금 마음을 일부러 강퍅케 하셔서 이스라엘에게 대들게 해서, 이스라엘에게 감히 대들었다는 그 행위를 빌미로 삼아 그들을 진멸해버리십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들은 저주받지 말아야 될 자들이기에 그 어떤 경우에도 구원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하나님의 의를 아는 자들은 이런 과정을 보고 무엇을 알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이런 원칙입니다. 지옥가야만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어이 지옥 쪽으로 가도록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듯이, 천국으로 와야 하는 자는 자들에게만 기어이 하나님께서 천국 쪽으로 끌어당기신다는 원칙을 압니다. 그래서 지옥 갈 자와 천국 갈 자는 점점 더 멀어지게 마련이고 언젠가는 헤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지옥 갈 자들은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못하고 어떻게하든지 자기에게 자기만의 의로움을 쌓아놓기 위해 애를 쓰게 됩니다. 자체적으로 의가 없다면 그들은 절망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의로운 행위와 연관짓습니다. 기독교가 이 나라에게 들어온지 참으로 오래되었지만 사람들마다 하나님에 의해 대해서 다다음과 같이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나는 죄가 많다. 이 죄를 가지고서는 천국에 못간다. 어떻게하면 돼지? 옳지. 십자가의 피를 믿자. 그렇다면 그 피로 인하여 씻음받으면 나는 죄가 없어지게 되고, 죄가 없어지면 그 자체로 깨끗한 의인이 되어서 이 의인인 채로 천국에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본인이 착하고 선해서 예수님의 피를 믿어주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진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는 이런게 아닙니다. 도리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행위, 그 자체가 의로움’입니다. 즉 ‘죄사함’을 통해서 우리가 의인되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죄사함 행위’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움입니다. 이 의로움 안에 놓여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를 ‘의롭다’고 해주시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골목에서 신나게 놀던 개구쟁이가 엄마에게 붙들려와서 큰 양동이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목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개구쟁이가 생각하기를, “엄마가 나에게 오른쪽 뺨을 씻어주었으니 오른쪽 뺨만큼은 깨끗하고, 아직 덜 씻은 왼쪽 뺨은 아직 더럽다”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죄씻음은 이런 원리가 아닙니다. 오른쪽이 되었든 왼쪽이 되었던 우리 육체에 아직 죄가 남아있던 상관없이, 예수님의 죄씻음이 작용하고 있다면 우리 성도는 그 예수님의 행위 안에서 의인이 되는 겁니다. 왜 그런고하니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실 때, 본인의 죄 때문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천국으로 끌고 갈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을 기어이 포기 못하시고 놓치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 백성과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십자가에게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기에 이 ‘다 이루심’에 합당하려면 그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도중에 잃어버린다든지, 탈락시키는 법이 없어야 하시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 백성이 원치 않더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의인되게 하시고야 마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의인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결코 한 번 십자가 피를 이용하고서는 그 이후에 죄인이 알아서 의인되는 과정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성령을 받지 못했기에 나온 사고방식인데 어떻게하든지, 자기 안에서 의를 끄집어내려는 자들이 하는 주장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의는 복종치 않고 힘써 자기 의를 쌓기를 원하는 불신자들입니다. 아무리 평소에 세상적인 은혜를 입고 살아도 이런 십자가의 의를 모르면 불신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달라짐보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떤 식으로 인도하느냐를 생각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