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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30강-여호와와,연합(왕하18장1-8)-2ki010408강의열왕기하

30. 여호와와 연합 (왕하 18:1-8)
18:1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 가 왕이 되니18: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18: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18: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18: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18: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18:8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사람이 세상에서 구원받고자 해도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을 아는 분이 동행을 해 주셔야 됩니다. 동행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함께 한다고 즉 연합이라고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 구세주 되신 주님께서 함께 동행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천국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구원을 받고 싶은데 그 동행자를 잃어 버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같이 섭섭한 일이 없을 겁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해야 이 거친 세상에서,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이 빠져 나온 것처럼 우리를 빼내어 주시는데 그 동행해 주시는 주님을 도중에 놓쳐버렸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허탈할 것입니다. 나를 구원할 동행자를 잃어 버렸으니까 인생 헛살게 된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신앙인의 특징 중의 하나는 매일같이 주를 찾는다는데 있습니다. "주여! 어디 계시옵나이까. 나와 함께 계십니까?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엘리야 같은 경우에는 주님을 찾기 위해 호렙산까지 갔습니다. "주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을 놓치면 안 돼!"라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버스나 기차를 놓쳐도 안타까운데 나의 구세주를 인생 동행자로서 섬기다가 놓치니까 어쩔 줄 몰라서 안타까워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신앙인이 보여주는 신앙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늘 주님이 이 자리에 계신가. 가정에, 직장에서 나와 함께 계시는가? 그걸 늘 확인하는 식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주님이 내 곁에 있음에 나는 든든하고 주님이 없다고 생각이 될 때에는 사는 재미도 없고 밥맛도 없고 그렇다 말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인의 삶의 특징입니다. 저도 요즘 한 주간 동안 혼자 있을 시간이 많습니다. 혼자 있을 때 왠지 죽음이 생각이 나요. 혼자 사니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 나이 50에 혼자 있음의 고통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단 혼자가 되었을 때에 '정말 나는 혼자일까'를 심사숙고 할 수 있는 좋은 환경도 아울러 갖게 되었습니다. 한날은 어두운 사택에서 혼자 있을 때 성경을 보니 거기에 놀라운 구절이 있었어요. 전에도 이 구절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만.. 사도행전 18장 9절을 보면서 머리에 벽돌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걸 제가 지금 읽어드리겠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18:9-10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있으니 주님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주님께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해주더란 말입니다. "내가 옆에 있잖아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라고 말입니다. 또 다른 곳에 보면 밤에 나타나서 "바울아 여기에 있지 말고 너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돼. 내가 옆에 있으니 놀라지 말고. 전하기만 하면 돼"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고마움과 감사가 왜 넘쳤는가 하면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더란 이 말입니다.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예수님을 과거의 인물로 너무나도 쉽게 간주하잖아요. 과거 한 때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지나간 인물처럼 말입니다. 과거에 역사적인 인물, 예를 들면 궁예나 이순신이나 왕건이나 이 모든 이들은 벌써 사라진 인물이다 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엄연히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니 내 인생은 내가 홀로 책임져야 된다라는 것이 우리들의 사고방식인데 사도행전 18장 9절에 보니까 사도 바울에게 옆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분이 있더라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도 "일어나라 감옥에서 나오너라 내가 감옥 문을 열었다"라고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신앙인에 있어서는 주께서 늘 대화하고 다가오시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옆에 있다는 것을 늘 확인 해 주시면서 그 신앙인을 독촉해 주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대목을 보면서 "맞다 신앙인이라는 것은 이렇게 문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주님이 실제로 살아 있는 나와 동행하는 속에 사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신앙의 제일 중요한 알맹이구나"하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또 다른 곳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니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장소,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주님께서 오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나다나엘아 네가 무화과 나무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고 했습니다. 자.. 나다나엘이 얼마나 놀랬겠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혼자 기도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말입니다. 나다나엘이 분명 혼자서 중얼거리며 기도했는데 그 기도 장소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신앙인과 늘 동행하고 계시고 지금도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돈으로 자기를 무장하고 권력, 명예로 자기를 치장하면서 그 안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하려고 합니다. 이 얼마나 현실을 현실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동행하시는데 무슨 돈, 권력, 명예에 기대며 삽니까? 나다나엘이 혼자 기도했지만 그 현장에 예수님께서 있었던 것처럼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진수입니다. 신앙생활의 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에게 보여지고 들려지지는 않지만 나에 구세주가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이 재미가 바로 신앙인으로 사는 승리 생활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니 열 한 제자 중에 도마가 출타했을 때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을 때 도마가 하는 말이 예수님은 얼마 전에 이미 죽은 자이고 과거의 인물이며 그저 우리들의 기억 속에만 기억되고 있는 분이고 그 분의 시체는 무덤 속에 잠자고 있을 뿐이다 고 생각하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도마에게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주님이 현실로 나타나시면서 "도마야 나의 상처자국을 한번 만져보아라" 하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그 상처 자국을 만져보고 하는 말이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면서 "도마야 너는 보고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는 보지 않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지지도 않고서도 그 상처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찔렸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믿을 수 있을 때 그게 신앙입니다. 남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알아요. 동행하고 있다는 것이 늘 눈에 보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늘 이야기 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옆구리 치면서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라는 것이 체험 없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구세주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상상하고 싶어도 상상도 못할 현실이 바로 신앙 안에서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 현실 안으로 초대받은 겁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세상에 공부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있다는 것, 누군가 계시다는 현실성,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다는 현실성은 뺏어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양도할 수도 넘겨 줄 수도 상속 할 수도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신앙 자체가 선물이에요. 현실을 보되 달리 보는 현실감을 주신 거예요,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움직임이 있다는 것, 그것에 관해 눈이 열리고 영안이 열려야 영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이 감히 갉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도 무섭지 않는 그것이 신앙입니다. 바로 이 신앙 때문에 우리 선배 신앙인들은 세상 전체가 겁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조용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어떻습니까? IMF가 터졌네. 직장이 무너졌네 하면서 흔들흔들 거립니다. 어둠 속의 움직임은 보지 못하고 밝은 쪽에서 외쳐대는 사람의 큰 소리에만 신경 씁니다. 어둠 속의 속삭임을 듣지 못하고 대낮의 외치는 사람들의 잡소리만 크게 들리는 겁니다. 사실 그런 소리들은 우리의 가슴을 찢어 놓고 상처를 주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즉, 현실을 잘못보고 한마디씩 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제가 목사님들과 공부를 할 때에 "구약은 쉽습니다마는 신약은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처음 그 말을 듣는 분들은 이 말을 잘 이해를 못해요. "이상하다 신약이 더 쉽지, 어떻게 구약이 더 어려운가" 하지요. 그런데 성경공부를 해 나가면서 그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목사님, 구약처럼 오늘날도 우리 신자들을 하나님이 인도하면 좋겠습니다. 홍해도 갈라지고 지팡이로 물도 나게 하고 하늘에서 만나도 내리고 말입니다. 이러면 하나님 믿기가 얼마나 쉽겠습니까? 신약에 와서는 성령을 앞장세우지만 그 성령에 관한 것은 자기만 알지 남들은 모르니 참으로 남에게 설득하기도 힘들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 옛날 사건인 십자가의 믿으라고 강요하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구약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목사님 아직도 성경을 모르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바로 오늘 본문을 이야기 해줍니다. 자... 그 본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이제 같이 봅시다. 18:4에 보니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요.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는 것 좋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 다 박수 칠만합니다. 그러나 구약에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술 것을 부수는 것, 또한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구약에서 우상을 부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보니 놋뱀을 부순다고 했는데 이것은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아까 목사님처럼 부수는 것을 모르니 구약의 기적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진짜 기적은 내가 귀히 여기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선물이다 고 한 것도 부셔버리는 그런 자기 부정, 자기 부인 이것까지도 해 내는 경우가 생겨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가 참으로 힘들겠지요. 이 놋뱀 이야기가 어디에 나오는가 민수기 21장을 잠시 봅시다. 모세가 놋뱀을 만든 동기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를 돌아 다니니까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지루하니까 점점 불평분자들이 많아 졌습니다. 이처럼 원망하니까 하나님께서 무서운 불뱀을 보내셔서 그 끝의 말썽꾸러기들을 많이 죽이고 상하게 했습니다. 6-7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모세에게 뱀들을 떠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뱀은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이상스럽게 놋뱀을 모세보고 만들게 했습니다.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낫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좋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그 상황이 사라진다면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걸로 여기지만 하지만 그럴 경우는 우리의 마음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될 것입니다. 이 점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아무리 상황이 기적적으로 호전되어도 우리 마음이 안 바뀌면 또 예전의 나쁜 마음으로 되돌아 갈 것이 뻔한 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적은 상황 변화에 초점이 모아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마음을 갖느냐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 현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동행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 그들을 구원되게 하는데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용서하는 하나님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계속 깨닫게 하고 유지시켜 주는 것이 훨씬 좋은 기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떠나보내기 전에 놋뱀을 만들어 놓고 하시는 말씀이 쳐다보라는 겁니다.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도 다 낳는 다는 겁니다. 이런 요구에 대해서 현재 우리들의 생각은 아주 쉽습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고개만 들면 되는데 놋뱀을 쳐다보는 것 누가 못할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안 한다는 겁니다. 왜 놋뱀을 쳐다보지 않습니까? 놋뱀을 쳐다보는 그 순간 무엇을 인정하는 겁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죄를 지었습니다. 라는 것을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왔을 때 십자가를 바라보라 고 하면 안 바라봅니다. 왜 안 바라보는가 하면 십자가를 본다는 말은 이 어려운 현실조차 하나님의 귀한 은혜인 줄을 내 죄가 참으로 크고 심각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진정한 십자가 쳐다봄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이 손쉽게 그렇게 겸손해 질까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도리어 "이 어려운 현실을 준 것은 내 잘못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잘못인데 하나님은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잘못이 없고 잘못은 네게 있다고 추궁을 하니까 기분 나빠서 십자가를 안 본다!"라는 것이 우리들의 성깔입니다. 인간들이란 얼마나 고집이 얼마나 센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심지어 구세주 앞에서도 그런 옹고집으로 버팁니다. 어떤 나쁜 상황이 왔을 때 모든 것이 자기 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은 하나님 당신 잘못이기에 당신이 십자가를 백 개를 보여주어도 나는 안쳐다 본다라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러니 놋뱀을 쳐다본다는 것은 보통 회개가 아니며 보통 큰 기적이 아닙니다. 아예 자기 자신을 박살내며 뭉개버리는 행위입니다. 즉 "맞습니다. 불뱀에게 물려야 마땅합니다"라고 마음먹는 자만이 놋뱀을 쳐다보며 용서를 얻고 구원을 얻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한마디로 구원 못해서 구원 안 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고 있는 것을 밝혀내는 식으로 구원을 안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효과를 보지 않는데서 어떻게 자비를 적용하시겠습니까. 그런 인간은 상대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회개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자기 의를 주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같이 성도와 동행하시는데, 그냥 동행하시는 것이 아니고 매일 같이 "나에게 감사하라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정상이다. 용서의 길이고 자비의 길이고 영생의 길이고 구원의 길이니까 염려하지 말고 주만 찾으라" 이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따져 달려들기를 "왜 이리 나쁜 상황을 줍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란 말입니까? 나는 더 이상 신앙생활 못하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자꾸 자기 선행과 종교 열심을 기반으로 삼아서 구원도 받고 신앙 생활을 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구원은커녕 불뱀의 밥이 될 뿐입니다. 놋뱀을 쳐다보고 나았다는 그 사실로 인해 이 구리 놋뱀은 귀한 종교적 유산처럼 대우받았던 모양입니다. 마치 놋뱀에서 어떤 능력이 나오는 것처럼 놋뱀을 우상시 하게 됩니다. 신앙이란 지금 이 시간, 하나님 마음과 내 마음의 관계인데 말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의 관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어떤 물체에서 나를 구원하는 신기한 기적의 에너지가 놋뱀을 신성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한 기는 옥돌 장판에서나 나오지 놋뱀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부수는데 부수는 종류가 주상, 아스라상, 우상도 깨뜨리지만 그 우상의 항목가운데 무엇을 포함시키는가 하면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었던 놋뱀도 포함을 시켜버렸다는 겁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예배당도, 목사라는 직책도 부셔버리는 항목 속에 포함시킨다는 이 말입니다. 목사라는 직책이 축복의 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가슴에 단 십자가 목걸이를 부수는 것, 천주교의 마리아 상을 부수는 것과 같은 차원입니다. 놋뱀을 부수면서 뭐라고 이름을 짓는 가 하면 '느후스단' 즉 놋 조각이다고 부릅니다. 일개 물질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살아 계시고 곁에 계시고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동행하시고 계시는 주님을 믿어야지 눈에 보이는 놋뱀을 믿고 마음을 두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너를 구원하느냐는 것이지요. 간증 집회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간증집회라는 것은 과거의 은혜 받은 것,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 그것을 마치 훈장처럼 울겨 먹고 또 울겨 먹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은혜를 받은 기억을 간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 은혜가 지금의 나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는 그 때이고 지금은 동행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것을 계속 인정하고 반복하고 자랑하는 것은 도리어 부수어야만 될 추억거리에 불과합니다. 과거를 섬겨서는 아니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무엇을 섬깁니까? 물질입니까? 부셔버리세요. 만약 그것을 의지한다면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도 아시고 히스기야는 이미 알았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놋뱀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남들이 놋뱀과 동행하는 것을 왕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서 놋뱀을 부셔버린 것입니다. "백성들아!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해야지, 놋뱀은 아무 것도 아니야, 과거에는 그것이 능력을 발했지만 지금은 부셔져야 할 물건이야"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졌던 지팡이, 예수님이 가졌던 옷이나 그릇, 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사도 바울에게 함께 하셨던 그 주님이 우리의 동행자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관계를 유지해야 신앙의 진수입니다. 성경을 얼마나 보고 기도를 얼마나 오래하고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또한 그런 기능들을 주특기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물론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해야 됩니다. 모든 것을 해야 되지만 그것이 구원의 능력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신 주님이 성령으로 나에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든 생각을 추스르게 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분을 우리는 증거해야 됩니다. 바로 놋뱀을 부순다는 것은 진짜 신앙고백을 제대로 하고 있는 행동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 이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진짜 기적은 내가 보이지 않는 분을 지금도 구세주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다는 이 신앙이 여러분의 영원한 기적이 되시고 보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신앙이 무엇인지 남 흉내내다가 지옥 가는 어설픈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나의 주님이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고마워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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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