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강-악과,징벌의,관계(왕하15장23-31)-2ki010218
23. 악과 징벌의 관계 (왕하 15:23-31)
23 유다 왕 아사랴 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치리하며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25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26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27 유다 왕 아사랴 오십 이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년을 치리하며2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30 웃시야의 아들 요담 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31 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질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 앞에 내어놓으면서 빈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대합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의 죄를 가져 가셨는지 말씀을 통해서 똑똑하게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경은 처음부터 사람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계신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발걸음도 세시고 머리카락도 세십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목숨과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깨끗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 때를 따라 비를 내리셔서 만물을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햇볕과 공기와 비와 모든 생명의 은혜 보자기 속에서 우리는 놓여 있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이 되어서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영광 돌리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그 내부에 악마적인 속성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없다는 것, 그 자체 만해도 하나님께 사람 취급받기가 곤란한 사람입니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지금 누구에의 도움과 은혜로 살아가는가를 우리는 매일 같이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잊어버리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것 얻고자 이것 얻고자 설치지 마시고 차분하게 마음을 다시 한번 정돈해서 나는 누구의 도움으로 사는가를 날마다 생각하며 일생을 보내야 합니다. 내가 감사를 해야 하는데 누구에게 감사를 해야되는가? 이처럼 감사의 대상이 누군가를 늘 파악하고 그 분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이는 교회 안 나오는데 내가 왜 괜히 여기와 있지? 바보같이 말이야' 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남들 안 온다고 해서 같이 지옥 가렵니까? 남들 인간같이 안 산다고 인간이 안 되렵니까? 남들 다 하나님을 배반한다고 같이 하나님께 대항하렵니까? 정작 우리 자신들이 사람답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는 이 시대에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 없이 못살 것처럼 삽니다. 그러나 이점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 없이도 못살지만 동시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나의 원수가 집안 식구다'고 했습니다. 가까운 집안 식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방해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게 은혜를 입히시고 늘 부여하시는 분에게 고맙다고 하는데 가까운 식구들이 훼방놓을 수 있는 거예요. 그 때마다 우리는 정상적인 사람은 항상 무엇으로 사는가를 확고히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북쪽 이스라엘나라에게 자꾸 징계를 하고 벌을 내리면서도 또한 사랑을 해주십니다. 우리는 왜 북쪽 나라에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시는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진위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누군 지를 잘 몰라서 제대로 감사를 못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아, 이러니까 더욱 감사를 해야 되겠구나 하는 쪽으로 생활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내용이 역시 상당히 복잡한데 그 복잡한 가운데서도 반복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인간이.. 이런 나쁜 짓을 했다는데 있습니다. 즉 이 나쁜 짓은 옛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한 일을 반복하는데서 나온 죄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달리 말하자면, 여로보암의 죄가 기준이 되어서 여로보암처럼 살아가는 자는 내가 결코 선한 자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전제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 경우를 여기서 나열해 보면, 왕하 15:28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또 왕하 15:24 말씀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왕하 15:18에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로보암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우리가 알아야 되겠지요. 열왕기상 14장8절에 보면 여로보암이 지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이 조치를 취했는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찢어서 주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금 이번 설교의 흐름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서 감사한 대상을 찾고 있는데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싫어버린 바 되어 갖다 버리는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찢어버리는 종류의 사람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는 그 일당의 무리이다 이 말입니다. 따라서 나중에라도 이 여로보암의 죄와 같은 질의 죄를 지으면 우리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 인간을 찢어버려 한쪽으로 치워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자는 구출하고 어떤 자는 제외시키는지 우리가 먼저 알아봅시다. 출애굽기14:26-28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신기한 일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씀은 홍해바다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재빨리 홍해바다를 통과했습니다. 통과하니까 이 히브리인들을 뒤쫓던 애굽 군사들도 재빨리 따라 들어가지요. 그 때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은 무사히 모두 통과시키고 나머지 애굽 인들은 물 속으로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그 많은 군사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말입니다. 다 물 속으로 들어가 죽었지요. 자...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천국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천국에 못 갈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하나님은 온 힘을 다해서 결코 넣어주지 않는 쪽으로 일하십니다.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외시키고 탈락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열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오지 못할 자들이 천국에 얼씬거리는 것을 철저히 배격합니다. 천국 갈자와 못 갈 자를 잘라내는 일에 한시도 방심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이 점에 있어 완벽하십니다. 빈틈 없이 일하십니다. 바로 이런 분에게 우리가 감사해야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천국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유혹입니다. 죽어서 다들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마음이고 천국에 들어갈 자와 안 들어갈 자를 구분하는 일을 지금도 하나님께서 실시하고 있는 거예요. 천국을 원한다고 다 가는 것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를 하나님께서 골라내는 작업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정신이 팔려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단 한 명이라도 천국에 못 갈자가 들어가는 경우를 놓치지 않기에 신경 쓰고 계십니다. 홍해바다를 건너갈 때 애굽사람들은 곧 이스라엘 사람들을 곧 덮칠 것같이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히브리인들이 지나 갈 때 그 멀쩡했던 바다의 양 벽이 무너질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바다를 무너지게 한 시점은 모든 애굽 군사들의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다 물에 수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 달았을 때 일입니다. 곧 천국과 약속의 땅은 그 어떤 애굽사람도 허락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식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 철칙 하에 지금도 하나님은 이 우주를 운영하시고 역사 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들어 온 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또 있겠습니까.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있지요, 여러분 천국은 아무나 가는 줄 압니까? 천국 가는 백성의 뒤를 쫓는 지옥 백성의 무리를 늘 잘라버리는 일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천국가지도 못하는 자들이 천국 가겠다고 나설 때 그들을 자르면서 천국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햇볕주시고 공기주시고 비를 주시니까 그것밖에 못하시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천국 갈자와 못 갈 자를 예리하게 잘라내는 일도 하나님께서 잘 하십니다. 출애굽 사건 때 홍해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갈라지느냐, 어떤 원칙에 따라 구분되느냐를 보여줍니다. 이런 의도를 가지시고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홍해 바다 쪽으로 탈출을 감행케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의 영원히 헤어짐을 홍해 바다 속에서 드러내실 까요? 그것은 구원이란 사람들이 자기 재주 부리기와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얼마든지 천국 갈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아예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다같이 죽음의 홍해바다 속으로 같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살고 죽고 하는 것은 홍해 바다에 들어가 있는 본인들의 능력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이미 다같이 죽어있는 존재로 간주될 뿐입니다. 애굽사람이나 이스라엘 민족이나 다같이 밥 먹고 배설하고 공부할 것은 공부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자질 차이가 구원의 차이가 아닌 것입니다. 홍해 바다의 갈라짐은, 구원되지 말아야 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배려를 나타내는 일입니다. 죄 지은 자가 거룩한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그 어느 누구나 바다를 헤치고 구원에 통과될 사람은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홍해바다의 설정 이유입니다. "천국은 내가 알아서 간다"의 구호는 소용없는 겁니다. 즉 천국의 절대적 요소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자력으로 가는 동네가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가고 싶어도 전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홍해 바다를 건너서 천국에 왔거든 네 자랑하지 마라는 것이 또한 홍해 바다가 가로놓여 있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 중에 기적이요 행운 중에 행운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사실을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하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도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별 반 다를 게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밤에 들어와서 자고 똑 같은 생활을 하지요. 교회에 나온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생활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생활 가운데서 한 사건, 한 사건을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파악하게끔 하는 영적 조치를 바라 볼 줄 안다는 것이 바로 얼마나 귀한 영적 축복입니까. 영적인 홍해 바다 한가운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늘 내 힘으로 살 거야 라고 이해하는 쪽과 하나님이 벌리시는 작업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되었음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관점입니까. 하나님의 기적은 나라고해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천국 갈 사람과 못 갈 사람의 구분은 누구에게든지 차별 두지 않고 적용하십니다. 들어갈 자만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철칙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쭉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은 인간들과 인간들 사이를 찢어버리십니다. 다윗의 집에서나 우리네들의 집에서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조치에 대해 삐치는 자들이 필히 등장됩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찢겨나간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복의 근원에서 다윗이 무슨 구원의 명분이 되는가 하며 토라지도록 조치를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지금 지퍼가 열리듯이 찢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단체에서도 참된 성도와 성도 아닌 사람이 찢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불신 친구와 언젠가는 헤어지게 하시고, 안 믿는 동창생들과 갈라서게 되어 있고 같은 교회 내에서도 복음에 관심 있는 자와 관심 없는 자가 갈라서게 하나님이 알아서 다 조치해 주십니다. 우리가 일부로 헤어지려고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 날 왜관에 '피정의 집'이라는 곳에 세미나 있어서 참석했습니다. 피정이란 세상의 모든 물욕과 정을 피한다는 뜻입니다. 한국 카톨릭 철학회에서 주최한 철학 심포지엄이었습니다. 하이데거와 마르셀의 관계를 주제로 삼아 우리나라에 유명한 카톨릭 철학자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카톨릭 신앙과 철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장소였습니다. 저가 꼭 참석하고 싶은 이유는 사람이 신을 믿는 다는 것이 구원받을 믿음이 아니거든요. 사람이 신을 믿는다는 그것이 곧 구원된다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 그런데 그 철학자들은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괴로우니까 신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신을 믿는 자는 구원받는 자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요청되는 신으로 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택한 사람을 찾아온 것이 아니고 자기가 살다보니 신의 도움 받아 보겠다고 여기고 신을 요청하면 신은 언제든지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그쪽 철학자들이 말하는 신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세미나를 하면서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어떤 분이 질문하기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격적인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인가 라고 했습니다. 그 질문을 대한 대구카톨릭 교수는 그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교수님은 대답을 회피해 버렸습니다. 왜 회피했을까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다 천국을 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찢어 버린다든지 홍해바다에서 천국 갈 사람과 가지 못할 사람들이 갈라진다는 것, 성경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잘 섬기자고 애쓴 자들입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은 그 유대인들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즉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은 가짜였다는 겁니다. 철학자들이 믿는 것은 바로 요청하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내 생활에 필요하지 싶어서 한번 믿어나 보자는 보험들 듯이 믿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죽고 난 뒤에는 천국에 꼭 가야지 하면서 믿는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요청하는 신입니다. 직접 찾아오신 신이 아니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던 신은 가짜였음을 다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하나님은 어떤 현상을 우리에게 나타냅니까?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분인데 웬 횡재냐 하는 감격이 유발되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축복이며 완전 횡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힘든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버리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어 볼까, 아이구 10년 믿어도 별거 없네 부처나 믿을까 이것도 별거 없네 다시 교회 나가 봐야지" 이런 식으로 교회 오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차버릴 사람입니다. 자기의 소원대로 안 되면 버리는 가짜 신입니다. 왜냐? 자기가 선택한 신이기에 자기 뜻대로 안되면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은, "너는 도저히 구원될 수 없는 인간인데 네가 당첨이 되었네. 너는 천국 백성이야"라고 찾아온 하나님입니다. 세상이 모두 멸망한다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에 구원의 은혜와 고마움은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람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 있어서의 내용은 사실에 있어 간단합니다. 23절을 보면 "브가히야라는 사람이 왕이 되어서 2년 동안 통치하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찢어진 나라의 행세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버림 받은 애굽 군대와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정치를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구데타를 일으켜 50명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었지요. 지상의 정치판은 힘의 정치판입니다. 이 세계 자체를 누가 쥐는가, 누가 권력을 가지느냐의 싸움입니다. 힘 싸움과 권력, 능력, 재력싸움에 서로 휘말리는 자체가 이것은 찢겨진 세계의 하나의 본질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걸 지금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부하가 왕을 살해하고 왕이 되었고 그 사람이 또 배반하여 죄를 지으니까 하나님께서 또 다른 악한 놈을 세워서 작살내게 하였고 이러한 나쁜 짓, 더 나쁜 짓, 아니 그 보다 더 나쁜 짓의 반복입니다. 나쁜 짓과 나쁜 짓의 만남을 통해서 권력을 쥐었다가 빼앗겼다가 하는 흐름, 변화의 조짐이 하나님께 찢겨 버림받은 세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태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아, 세상이 이렇게 흘려 가는구나 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우리는 그 세계에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저 흐름에서 승리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라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구원의 은총으로 인해 천국 가는 백성들로 따로 존재한다는데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29-30절을 한번 봅시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웃시야의 아들 요담 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기에 앗수르라는 무지막지한 그 당시 최고의 강국 이방나라가 하나님이 계신다는 이 북쪽의 찢겨진 나라에 들어와서 짓밟아 버리고 수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베가라는 사람은 또 부하 호세아에게 죽임을 당하고 왕의 자리를 빼앗기지요. 이처럼 베가라는 사람은 자기가 한 행동을 그대로 다시 돌려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사회에서 교육받고 것은 '하면 된다'입니다. 그러면 '하면 된다'가 다 무엇입니까? 뭘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힘이면 다입니까? 요사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본질은 복음입니다. 복음이 바로 전파되면 교회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교회가 유지가 되고 어떻게 하면 사람을 내 사람 만들까 그저 내 사람 만들기가 복음인양 교회 경영기법을 강단에서 선포하고 그걸 믿어야 구원받는 줄 알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 사람 만들기 ...그 사람 본질이 어느 세계를 지향하느냐. 어디를 향해 감사하느냐, 나는 어떤 세계에 속했느냐 여기에 대해서 확인하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힘 되는 사람들이 우리교회에 몇 명 있나를 가지고 힘 자랑하는 이것을 마치 교회 성공한 것처럼 이렇게 자부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든 세상이든 지금 찢겨진 나라로서 자기들끼리의 투쟁이며 싸움하는 겁니다. 감사하고 하나님이 이처럼 나를 사랑하셨구나 거기에 대한 감격과 희열과 고마움이 충만 되어야 할 교회가 그저 남의 교회 교인 못 뺏어 안달하는 세상의 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과연 우리들이 홍해바다에서 수장될 자들인지 아니면 건너온 사람인지 한번 확인 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물에서 건너왔다면 자기 뒤를 돌아보세요. 천국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잖아요. 바빠서 교회 못나오고, 돈 문제, 가족문제,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홍해바다에 빠져 죽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가뿐하게 홍해를 통과했잖아요. 이 기쁨과 고마움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어야 되겠지요. 무슨 불평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다시 세상 애굽으로 내려가 볼까요? 여러분들이 거기서 세상적인 힘으로 이길 필요가 있을까요? 거기는 힘이 없으면 못사는 세계인데요. 여기 본문 보세요. 깡패 세계이잖아요. 왕 되면 그 왕 노리고 다른 사람이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고 또 밑에 사람이 힘을 키워서 또 왕이 되고 .... 거기에다가 밖의 더 큰 깡패가 쳐들어와서 형님 잘못되었습니다 라고 빌고 , 자기는 약한 자를 눌리고..이런 애굽세계가 마음에 와 닿습니까? 그것이 좋은 거예요? 여러분 그 세계는 피곤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의 위치가 애굽인인가, 아니면 홍해를 건너온 넉넉한 사람인가를 스스로 한번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님을 왜 자꾸 잊어버리는지 하나님 정말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우리가 잘나서 훌륭해서 우리가 양심이 고와서 하나님을 요청했다면 그것은 가짜 하나님인줄 압니다. 그러나 죄인 된 자 원수 된 자 경건치 못한 자 죄인 중에 죄인 된 자를 하나님의 자신의 피로서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니 이 은혜를 평생가면서 더욱더 짙게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