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강-악한,세계의,모습(왕하15장13-22)-2ki010211
22. 악한 세계의 모습 (왕하 15:13-22)
13 유다 왕 웃시야 삼십 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 달을 치리하니라14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서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5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 모반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16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저희가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치고 그 가운데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17 유다 왕 아사랴 삼십 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십년을 치리하며1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저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20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돌이키고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21 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22 므나헴이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성경에 보면 사람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떠나버리면 더 이상 사람으로 간주 될 수 없다 그런 뜻이지요.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하나님이 제거된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하나님과 연관성도 없으면서 나 사람이다라고 하지 마세요. 자... 교회 나오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 건데 그 다음도 알아야 합니다. 뭐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어떤 인간상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이러이러해야 돼 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생각해 놓으신 이런 인간상과 지금 우리 자신의 현 인간상과 부합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일치시키고 대조해 볼 생각이 없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어떤 한 인물이 등장해서 온갖 나쁜 짓은 다하는데 하나님은 그 자를 나쁘다고 언급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덩달아 그 사람을 나쁘다고 할 것이요, 아마 나쁜 짓을 하는 그 사람은 나하고는 다를 거야, 이렇게 생각할 경향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하게 되지요. 어떤 사람이 나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왜 나쁜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래 생각하신 인간과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나쁩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오시다가 바깥에서 6일 동안 사시면서 하나님이 생각하는 인간이 이러한데 라는 생각은 안 들고 어떤 생각이 들 공산이 있는가 하면은 왠지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것에 정이 가고 그들의 행위에 충분히 합류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거죠.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나도 그런데 뭐..."라는 생각이 늘 떠오르게 됩니다. 자.... 제가 아까 말씀드렸지요.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인간성이 따로 있다. 우리 자신과 하나님이 생각해 놓으시는 그 인간상과 한번 일치시켜보고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 앉아 있을 때는 한번쯤 생각해 봅니다만 이상하게도 교회밖에 나가면 그럴 수 있다는 쪽으로 심경이 변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 사람이나 타인의 악함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왠지 그들의 입장을 편들고 싶어하는 내 자신의 심적 변화에 깜짝 놀라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성도라고 분류해 놓고서는 왜 이렇게 세상 사람과 동일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가를 심각하게 재고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육재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나쁘다고 했는데 우리 인간 쪽에서 볼 때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그 사람을 두둔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 생각과 우리들의 솔직한 느낌이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저희가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치고 그 가운데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라고 되어 있고 또 15:18에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므나헴이라는 자는 악한 행동을 한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고 해서 우리가 보기에도 치가 떨릴 정도로 악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분명 우리 심성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입장에서 보기에도 그 므나헴이라는 작자가 극도로 악한 자로 보이는지 점검 해 보세요. 우리 보기에도 그 사람이 진짜 악하게 보인다면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므나헴이 하는 행동을 놓고 "그럴 수 있지 그런데 하나님은 그만한 일을 가지고 왜 악하다고 했을까?" 하고 하나님에 대해 뭔가 못 마땅한 생각이 든다면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성경은 이런 문제에서 우리 자신의 내부를 해체하는데 아주 좋은 글이 된다는 말입니다. 정말 우리 자신이 말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 된 것을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이 생각하는 인간상을 향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기를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이 므나헴이 하는 행동을 우리 인간 쪽에서 이해하는 식으로 한번 접근을 해봅시다. 그럴 수 있지 않는가 라는 쪽으로 말입니다. 14절에 보면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기에 보면 다소 복잡하게 사람 이름이 거론되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이런 겁니다. 박정희씨. 전두환씨 노태우씨가 정권을 잡았더라 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국민투표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정권을 잡아야 우리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갈 수 있어 ...등 등 의 이야기가 이 본문이야기입니다. 자기가 보기에 어떤 등신 같은 사람이 왕으로 앉아있으니까 저런 자가 왕이니까 나라꼴이 안되잖아, 내가 비록 군인이지만 내가 정권을 잡아야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있어.. 하고 왕이 된지 불과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그 살룸이라는 자를 죽이고 구테타를 일으켜서 므나헴이 스스로 왕이 된 겁니다. 자... 여러분 이러한 행위도 충분히 정당화 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는 한국의 정치사에서 늘 보아왔던 풍경이잖아요. 이것이 무슨 악입니까? 어떤 인간이 왕이다, "그 자리 너만하나? 나도 한번 하자 야. 어라. 치니 힘도 없네. 나는 힘을 가졌다. 이 힘 가지고 내가 그 자리를 뺏어 얻었다. 자 이제부터 국민의 편에 서서 그들의 고민과 고통의 질곡에서 멋있게 해방시켜 행복과 풍요를 선사해 주리라! 사나이로 태어나서 한 번 이런 포부를 펼쳐보는 것도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자, 이 얼마나 익히 아는 스토리입니까 너무나도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이것이 무슨 흠이 될 일입니까? 이것이 왜 악이 되고 문제가 됩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성경을 보기 싫은 이유가 한가지 있는데 무엇인고 하면 하나님은 도대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줄 모른다는 거예요. 무조건 악이고 무조건 죄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성경을 펼치니 무조건 악이고 무조건 죄이니까 좋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성경과 담쌓는다. 나는 삐쳐서 성경을 안 볼 거야. 이런 반발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지요. 또 한번 봅시다. 16절에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저희가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치고 그 가운데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라고 합니다. 이것이 왜 나쁩니까? 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국민들이 느끼는 외세의 공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장해 주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려면 이웃 나라를 쳐 부셔 가지고 다시는 이 나라를 함부로 엿보지 못하도록 군사적 우위를 과시해야지요. 전쟁을 벌릴 때는 흔히 "'성채의 문을 열어라 이웃 동네 형님이 왔다. 항복을 하고 조공을 바쳐라"라는 식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생각하기에 아이 밴 부녀까지 죽이는 행위는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좀 잔인하다고 생각하겠지요. 칼로 싸우는 것은 옛날 시대의 식이라면 요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쟁 방식은 어떻습니까? 회사와 회사끼리의 전쟁, 좁게 말하면 옆 가게와 옆 가게끼리의 전쟁, 약국과 약국의 전쟁은 어떻습니까? 대충 봐주면서 합니까? 아닙니다. 막판에는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서 자기의 출혈도 서슴지 않지요. 상대가 철저하게 기를 못 펼 때까지 처절하게 짓밟아 주잖아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는 자기의 마음이 시원하지 않는 이 본성이나 부녀자의 배를 가르는 철저한 짓밟음이나 최고의 승리감을 얻고자하는 거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전쟁과 무엇이 다릅니까? 좀 잔인하잖아요 하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러나 신사적으로 한다고 해서 그 본성이 어디 갑니까? 군에서 제일 싫은 것은 때린 곳에 또 때린다는 겁니다. 졸병은 제일 괴롭지요. 잔인하게 짓밟음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두려움으로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게 만드는데서 오는 쾌감과 완전한 승리감, 강력한 영웅의식 이것이 누구에게나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잔인하다는 이유만 빼면 다른 것은 우리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요. 그리고 왕위를 뺐은 것도 다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인 것처럼 남의 나라를 철저히 유린하는 것도 다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의 일환입니다. 이것이 왜 나쁩니까? 나라를 칠 때에 왜 임신한 여인까지 죽이고 그 안에 있는 아기까지 끄집어내어 죽어야 하는가 하면은 그 아기가 자라서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나타나는 미래상입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좀 잔인하게 보이는 행위에 나서는 것입니다. 일종의 후손들을 위한 정당방위가 되겠지요. 자. 세 번째 경우를 봅시다. 18-19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저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왠지 나라가 제 궤도에 들어서 정상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 때에 이웃나라 즉 최고의 깡패나라, 이름은 앗수르인데 그 앗수르 나라의 통치자 불이라는 무서운 맹수같은 자가 와서 이스라엘을 칩니다. 누가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시지요. 이 성질이 더러운 므나헴을 치려고 말입니다. 므나헴 입장에서 보면 종전의 약한 민족을 칠 때에 입장이 거꾸로 된 겁니다. "이스라엘아 동생아, 형님이 왔다 성문을 열고 조공을 바칠래 아니면 부녀자과 모두들 죽을래?" 이렇게 오니까 원래 힘의 세계는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법이지요. 그럴 때 이스라엘은 어떻게 나옵니까? "형님 오셨습니까. 드려야지요." 대번 이렇게 나왔습니다. 이것이 나쁩니까? 강자 앞에서 살려고 하는데 나쁜 일입니까? 왕의 입장에서는 자기 백성을 어쨌든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 앞서게 마련인데 과연 이 생각이 비굴하다는 개인적인 성품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느냐 말입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이 허다합니다. 적절한 비굴은 생존하는 있어 필요한 대응책이 될 수 있습니다. 앗수르 왕은 은 일천 달란트를 요구합니다. 이렇게 나오니 나라에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자... 이제 네 번째의 잘못이 또 나옵니다. 여기서 잠시 지난 죄과를 다시 한번 반복을 하면, 첫 번째 자기가 왕의 자리가 아닌데 힘있다고 대대로 내려오는 혈통의 왕을 끊어버리고 왕이 된 일이요, 두 번째는 적들에게 일부러 전쟁을 일으켜서 그들을 기죽이기 위해 부녀자의 뱃속까지 가른 일, 세 번째로, 큰나라가 왔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비굴하게 조공을 바친 일, 이제 네 번째는 20절에 나옵니다.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돌이키고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이 본문에 보면, 왕이 돈 없으니까 물론 있어도 자기 돈을 안 내겠지요. 이스라엘 나라의 부자들에게 억지로 협박을 해서 돈을 거두어서 침략자에게 상납을 했다 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뭐가 나쁩니까? 성경은 절대로 우리의 본색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실체를 눈감고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의해서 악하다, 저주받을 자라고 대변되는 인물을 늘 우리 앞에 등장시켜 가지고 그 사람이나 너나 둘 다 이토록 흡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극렬하게 보여주자는 겁니다. 자, 여기서 우리 인간 입장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부자에게 돈을 거두어서 주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예를 들면, 교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목사가 와서 교인들에게 심적인 부담을 주니까 교인들 대다수가 목사님 나가 주세요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목사의 태도는 돌변합니다. 목사는 점차 자신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져서 교회 전체를 향해 대치상태에 들어갑니다. "전에는 곱게 그냥 나갈 마음도 있는데 막상 나가라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는 이왕 욕 얻어먹은 것 기분 나빠서라도 못 나가겠다" 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교회 장로님들이 모여서 의논을 해봅니다. 목사는 보나마나 손상된 자기 자존심을 돈으로 복수하기 위해 버티는 것이 뻔합니다. 그런 식이라고 교인들을 괴롭히고 나가야 목사의 마음이 다소나마 시원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감당하기 버거운 어려운 액수를 요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장로님들은 제직회를 열어서 돈 많은 집사들을 지목하여 목사를 내 보내기 위한 돈을 각출하게 됩니다. 자 이러한 관행이 뭐가 나쁩니까? 질 나쁜 자를 제거하기 위한 최선의 방도처럼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는 일일 수 있습니다. 지금 므나헴이라는 자가 이런 식으로 행정을 한 건데 우리가 마냥 그만이 나쁜 자라고 성토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라면 흔하게 만나는 이 모든 일들을 통해 므나헴은 나쁜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하나님의 인간상에 부합되지 않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통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우리 자신에 대한 평가를 수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 이러니 나쁘구나" 로 우리 자신들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적으로 므나헴이라는 자가 무엇이 나쁩니까? 그 사람은 한 마디로 말해서 힘에 의존한 일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관이 하나님이 내세우는 인간상과 전혀 상관없는 나쁜 것입니다. 그는 한평생 힘을 사용해서 살아가는 인생을 실험했던 것입니다. 인생 실험 말입니다. 제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지금도 이런 실험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중고등부 때에 교회에 잘 나오다가 세상에 나가면 교회에서 보던 것 보다 더 많은 지식과 신기한 세계를 만나지요. 의외로 내가 몰랐던 재미있는 신세계가 무수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자기의 꿈을 키우고 힘을 키웁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내가 어디까지 그것들을 차지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내가 높아 질 수 있으며, 내가 어디까지 위대해 질 수 있으며 내가 얼마나 멋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놓고 대 실험에 들어갑니다. 온갖 짓을 다해 보는데, 사업이나, 취직이나 같은 말입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서 자기가 가질 힘의 몫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내 지식은 내가 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석차가 올라가 있으며 힘의 차원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인물인가를 알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 자세를 가진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상과 부합되는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너는 죄인이니까 네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참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답이 성경에 단출하게 나와 있습니다. 네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으면 내 아들 예수가 죽었겠느냐? 그러니 예수님 앞에서 네가 죄인인 것을 알고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면 너는 성공한 인간이고 너는 최고의 인간이고 하나님의 인간상에 부합되는 진짜 용서를 아는 인간이고 그렇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네 힘으로 살려는 것은 하나님께 부적절한 하나님에 합당치 않는 인간이다. 이미 결론은 지어졌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이 정해놓은 인간상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인간은 그 사람이 무슨 실험해서 무슨 성과를 올렸던 상관없이 그 자는 나쁘고 악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36절 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여기에 나와 있군요. 아들 믿으면 영생이고 안 믿으면 저주다 이런 말씀이죠. 이것은 확정이 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상은 이렇게 확정되어 있잖아요. 이건 중고등부 아이들도 모두 압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 그 아이들이 자라나서는 이 하나님의 상이 싫다는 거예요. 왜 그러합니까? 예수의 인간상이 이미 결론지어져 있는 자체가 인간의 꿈을 짓밟는 것으로 들리기에 싫다는 거죠. 그러면 그들이 원하는 게 뭡니까? 그것은 내가 얼마나 출세할 수 있으며,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으며 얼마나 명예를 확보할 수 있느냐 에 내가 한번 도전해 보고 싶고 확보해 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보하면 나는 훌륭한 인간이고 그것을 확보하지 못하면 나는 자살하고 싶으며 실패한 인간이다고 간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인간이라는 얼마나 근원적으로 하나님과 원수지간입니까. 속속들이 썩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점을 놓치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이 하나님이 제시한 인간상과 틀리기에 그건 죄악이다고 치고 들어오더란 말입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장로님께서 욥기를 훌륭하게 강의를 하셨는데 욥기 1장에 보면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열 자식을 주고 동방에서 최고의 재벌로 만드셨다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일소에 그것들이 날라 가게 해버렸다는 있습니다. 즉 다 날라 가게 해놓고서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묻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떠한가, 네가 생각하는 축복관이 어떠한가, 네가 생각하는 재물관이 어떠한가. 네가 생각하는 인생관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신앙관은 어떤 것인가를 묻는 것이죠. 하나님 믿는 것이 축복이고 요한복음 3:36처럼 아들 믿으면 영생입니다. 라는 고백이 곧 축복이라는 말을 우리들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솔직하게 말입니다. 도리어 "하나님 나 죽을랍니다. 못 살겠습니다. 자식 죽고 재산 날라 가고 내가 무슨 낙으로 살아갑니까?"라는 투정이 먼저 나올 공산이 크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답하시죠. "그러니까 네가 인간상이 잘못되었으며 내가 평소에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고백한 것은 믿을 게 못돼!"라고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나름대로 한평생 걸쳐 인생 실험을 합니다. 그 실험이 언제쯤 멈출까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아요. 인간은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다보면 깡패에게 돈을 줄 수도 있고, 나쁜 놈이 정권을 잡을 때 내가 대신 정권잡고 싶고, 돈 가진 사람 돈 등쳐먹어도 당연하게 느껴 질 때가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일을 악으로 보지 안잖아요. 이 정도로 악 편에 기우려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나온 이상,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고백하신다면 다시 한번 자기의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근원적으로 뭐가 문제되는가 말입니다.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없으면 속에 있는 괴물이 가만히 나를 두지 않아요. 자꾸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고 갑니다. 천억을 가져도 일조를 가져도 불행해 집니다. 심지어 대우 그룹의 김우중 회장처럼 25조원을 가져도 불행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모든 원리는 욥에게 행하신 그 원리에 준해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을 주었다가 다시 가져가시면서 네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거냐고 우리에게 묻듯이 지금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 재산을 다 안 날리고 우리 자식 다 안 죽이더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라도 다시 한번 하나님 나는 욥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자세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여러분 불행해 집니다.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하면서 말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이런 미친 짓을 그만둡시다. 범사에 감사하고 욥 같은 경우에 그렇데 힘들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어려움을 주시지 않으시고 얼마나 감사한가 라는 마음 자세와 겸손한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최고의 성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부합되고 합당한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하나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악하다고 하시지만 이상하게 저희들이 느끼기에는 그냥 보통처럼 느껴져서 왠지 동정이 가고 동감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하나님이 악하다고 하셨을 때 무엇 때문에 악한지 그리고 그 악함이 나를 향하여 지적하는 악함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날로 커지고 늘어가는 남은 여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