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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5강-제사장에,의한,혁명(왕하11장1-12)-2ki001217성경열왕기하

15강-제사장에,의한,혁명(왕하11장1-12)-2ki001217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4)

15. 제사장에 의한 혁명 (왕하 11:1-12)

1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2 요람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3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4 제 칠년에 여호야다가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를 보이고
5 명하여 가로되 너희의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입번한 너희 중 삼분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6 삼분 일은 수르문에 있고 삼분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
7 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8 너희는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무릇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찌니라
9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10 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11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고
12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 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비실 때 무슨 내용으로 비시는지 어떤 인간이 되라고 비시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의 기도의 담겨 있는 진실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인간으로 살면서 여러 가지 관심 있는 일을 많이 갖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두십니다. 자, 하나님과 성경이 관심 두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관심사는 하늘에서 누구를 내려보내는지 그 예수라는 분이 어떤 일을 하는지 여기에 주목하고 여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한 쪽에 집중에서 관심을 두면 그 순간 주변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가 무엇 때문에 오셨는가 그 분 때문에 내가 어떤 운명으로 달라지게 되었는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살면 다른 세상 문제는 큰 문제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이 정상입니다.
허나 우리는 너무나도 시시한 일에 신경을 쏟다보니까 하늘에서 누가 내려오시는지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어제도 결혼식이 있었습니다만 결혼식이 있으면 결혼식에 관심이 있고 장례식이 있으면 장례식에 정신을 쏟고 또 입학식이면 입학식에 졸업식이면 졸업식에 신경을 쓰게 되지요. 그렇게 마음이 빼앗기고 저렇게 마음이 빼앗기다 보면 정작 우리가 고마워 해야되고 감사해야 될 그 분을 우리는 놓쳐버리고 맙니다. 내 마음속에서 그 분을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가 있고 그 원리대로 시행하시는데 총력을 다 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놓치니까 좌충우돌하는 겁니다. 마음 정돈이 제대로 안되지요. 조그만 변화에도 좌절하고 주저앉게 되며 당황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늘 공포에 연속이 되며 고마움과 감사라는 것이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땅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살다보니까 세월이 가도 연말이 되고 또 세월이 가고 연말이 찾아와도 우리 자신이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정신을 예수님을 향하자는 겁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분이 얼마나 고마운가에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등 다양하게 만납니다. 그것에 신경을 어떻게 다 씁니까? 이런 일도 있으면 저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이 있으면 이런 일도 생기는 겁니다. 거기에 따라 다 신경을 쓰면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나중에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짐이 되어 버립니다. 마음 자체가 숱하게 찢어져서 찬바람이 술술 들어옵니다. 그 동안 마음 빼앗긴 것이 너무 많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소중한 분을 주셨지만 사실 걸레 같은 우리 인생 때문에 놓치면 안됩니다.
저는 인생을 보기를 '쓰레기 봉지' 라고 봅니다. 쓰레기 봉지에다 온갖 것을 다 집어넣지요. 거지들이 쓰레기 봉지에다가 길에서 주운 것을 다 집어넣고 다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다가다 얻은 것을 집어넣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은 강도와 같습니다. 길목에서 기다리다 어디 걸려드는 인간이 있으면 등쳐먹을 것을 노리는 강도 말입니다. 장사도 일종의 그런 짓 아닙니까? 그저 오늘도 많이만 걸려들어라 하고 내심 바라고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래서 필요하면 가지고 놀다가 필요 없으면 차버리는 그런 짓을 반복하면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나라는 쓰레기 봉지 안에 무엇이 담깁니까? 죽을 때 보면 흙이 소복이 담겨 있습니다. 내 몸의 위에 자손들이 취토하면서 삽으로 던져주는 흙이 구석구석 쌓입니다. 그러면 나는 뭡니까? 인생은 결국 주워 담는 쓰레기 봉지로 살다가 나중에 찢어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이야기입니까?
왜 하늘에서 어떤 분이 오셔야 합니까? 숱하게 많은 인생들과 사건들이 있지만 왜 특정한 분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이런 우리를 이 세상에서 건져 주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잘 되게 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원자에게 무심해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구원, 그 자체에 대해서 아예 관심조차 없습니다. 은연중에 구원 안 받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 구원될 필요성이 꼭 있느냐 하는 식입니다. 어렵고 고생해도 그저 이 세상 군상 속에 같이 뒤섞어 살고 싶어하지, 나만 따로 구원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세주 되시는 분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구원되어야겠다는 마음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 나 관심 없어요." 구원이라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정상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사람 사는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그런 정신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구세주에게 도움을 받고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고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은 하늘 사다리 같은 그분 주님밖에 없다는 데서 참된 행복감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 이 질곡의 세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험한 곳으로 오십니까? 너무나 감사합니다. 나는 뭐래도 당신을 붙듭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심성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 차야 합니다.
저는 어제 결혼식에 참여하면서 결혼이 과연 구원일까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혼하는 것이 과연 축복입니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결혼이 축복이라면 결혼이 구원이 되어야 할텐데 총각 때 홀로 욕심쟁이 이제 또 다른 처녀 욕심쟁이를 만나서 그 둘 욕심쟁이가 한 방에서 사는 것이 결혼입니다. 처음에는 안 해본 경험이라 모든 게 황홀하겠지만 황홀이란 단발성으로 끝나고 그 뒤편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를 밟고 살아야 될 시절이 남아 있게 됩니다. 짜릿함은 있겠습니다만 그 짜릿함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 짜릿함이 나중에 허무로 바뀌고 맙니다. 진정한 축복이라는 것은 결혼도 취직도 아니고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감사히 온 몸으로 받아드리는 것 날 건지려고 오셨구나하며 기뻐하며 그 분의 발목을 잡는 것 이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는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 싸움은 지저분한 피와 깨끗한 피 사이의 싸움입니다. 이 땅의 모든 피가 지저분한 피입니다. 그런데 깨끗한 피는 뭐냐? 하나님이 약속한 피는 깨끗한 피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거룩한 피가 무시당하고 되레 지저분한 피가 다스리고 통치하던 시대가 잠시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잠간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 뒤집어지고 거룩한 피에 의해서 구원받는가 그 과정을 설명한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지저분한 피의 대표자가 누군가요? 그것은 아달랴라는 여자입니다. 여장부이지요. 원래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는데 그 여자가 통치자가 된 것이죠.
왕하 11:1절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요람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유다 나라의 왕족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앉혀지는 자리이기에 끊어지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끊어지면 하나님의 언약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악마는 이 점을 노리고 아달랴라는 왕후를 통해서 이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지요. 메시야가 기어코 이 땅에 발을 딛지 못하도록 사단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만약 왕자가 전멸 당한다면 이는 다윗의 혈통이 끊어지는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메시야, 즉 구세주가 오질 못하는 겁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부터 대대로 피가 이어져서 구세주로서 태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구세주가 태어나면 이 때까지 세상을 지배해온 악마의 악한 영들은 끝 나 버리는 것입니다. 어린 양되시는 메시야가 그들을 노리고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쳐부수고 이 세상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뀌게 하시는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인간들은 거기에 대한 내막을 모르지요. 인간들은 밥이나 먹고 살면 된다고 하는 그런 자기 생존 문제에만 관심이 있지 메시야나 악마에 관심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는 그 순간에도 악마는 노리는 것이 있어요. 무엇을? 메시야가 오는 것을 어쨌든 막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야의 선을 틈만 나면 끊어버려야 된다고 여기지요. 지난주에 교회 전기선을 청년들이 바꾸었는데 전기선을 끊어 버렸다면 엠프나 전기 불이 오지 않겠지요. 모든 전기는 선과 선으로 연결입니다. 앞으로 과학의 발달로 선이 없어도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은요. 어쨌든 선을 끊어 버리는 것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듯이 하늘에서 땅을 구원하는 데 연결되는 그 구원의 선을 마귀나라에서 끊고자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관심도 없어요. 그저 자기 하는 일에나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그런 존재들이지요.
마태복음 8장에 보니 마귀 들린 자에게 예수님이 오니까 마귀 들린 자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당신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맞지요? 당신은 우리 마귀를 지옥에 넣으려고 왔겠는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왜 벌써 왔나요?"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귀야 너 청년에게서 나와 어디갈래?" 귀신들이 그 동리에 있는 돼지 때에게 들어가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이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돼지에게 들어간 마귀들이 모두 바다로 빠트려 몰살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모습이 사단이 들린 불신자의 말로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한 번 보세요. 이 마을 사람들은, 저 귀신 들렸던 청년이 어떻게 갑자기 말짱하게 되었으며 어째서 가만있는 돼지들이 자기 죽음의 장소로 자진해서 돌진하는지 관심을 두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과 귀신들인 청년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고 오로지 돼지에만 관심을 둡니다. 나라가 그렇게 했으면 재해 보상이나 받지요. 돼지 스스로 바다에 가서 빠져 죽는데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습니까? 아... 내가 키운 이 돼지가 돈이 얼마인데 세상에 이걸 하루에 다 날리게 되었는고 하며 그것만 안타까워합니다. 우리들도 그 현장에 있으면 돼지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겠습니까? 그런데 그 수많은 돼지를 누가 죽게 했나를 그들은 조사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여, 이 마을을 떠나주소서!" 이것이 인간들이 예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메시야가 오셨는데 영접할 생각은 안하고 예수 믿고 난 뒤에 이득을 계산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내가 교회에 다닌 후에 이익은 얼마며 손해는 얼마인가를 생각하지요.
아달랴 라는 여자가 왕자를 다 진멸하는 것은 자기 아들을 죽인 데에 대한 사적인 복수심에 충만해서 한 것입니다. 그 아들을 죽이면 메시야의 선이 끊어진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예 그런데는 관심조차 없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 밖에 모르는 너와 나 와 같은 지저분한 피를 가진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교회 온 자나 안 온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기대를 해야되고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희망을 품어야 되며 무엇에 대해서 우리의 운명을 걸어야되는 가를 모르는 체 그저 내 가진 것에 손실이 오면 가차없이 복수에 나서는 그런 더러운 성질만 남아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가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어느 정도로 죄인인 가를 몰라요. 단지 짐승처럼 사니까 계속 살아 남기만을 본능으로 발휘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에 여러 번 이야기 했듯이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사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는 의문이 들어오죠. 사람이 산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겁니다. 젊은 분들은 이 말을 이해 못합니다만 가끔 연세가 높으신 분은 이런 말씀을 하지요.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 내가 사니까 너희들에게 짊이 되지?" 내가 이렇게 존재한 다는 것이 남에게 귀찮게 하고 괴롭게 한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것 이 자체가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몰라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철칙은 "너는 죽어도 나는 살아야 돼" 바로 이거였잖아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내가 여기 있는데 왜 나에게 박수치지 않는 거야 왜 나에게 호응해 주지 않는 거야 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거야"하면서 억지를 부립니다. 무슨 더불어 사는 운동한다는 공동체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공동체가 안 되는 마당에 무슨 세명 네명 모르는 사람끼리 공동체가 됩니까? 내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내 욕심을 정당화하는 시위를 벌리는 것인데 나에게서 나간 욕심이 내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안줄 수가 있겠습니까? 형제간에 다 잘 살면 문제가 없겠지만 한 동생이 자식은 많고 찢어지게 못 산다면 다른 형제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형제 생각 안하고 아들을 꼭 보겠다고 자식을 많이 낳으면 다른 형제들이 심적으로 부담을 받게 됩니다. 그 조카들 대학 갈 때, 학비 없다면 형제간에 모른 척 할 수 있겠어요? 마땅히 나는 살아 남아야 그것이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아달랴라는 여자 그 개인적으로 봐서는 제 아들 죽어 낙이 없어진 마당에 성질이 나겠지요. 그러나 같이 성질을 부려서 복수를 하게되니까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흐르게 하고 이러면서 자기는 성공의 미소를 짓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절대화에서 나온 심성입니다. 이런 자기 절대화 때문에 왕자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지저분한 피.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혁명이 일어나지요. 혁명을 누가 일으키나 하면 11:9에 보니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옛날 이스라엘의 성전은 당번제로 정해서 레위인들이 근무합니다. 안식일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24무리로 나누어서 순서대로 당직 근무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지시에 따라 이번 안식일에는 아달랴를 죽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일종의 쿠데타이지요. 이것을 누가 주동을 하느냐하면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주동을 했습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입니까? 혁명하는 것, 칼을 쓰는 것이 제사장의 임무입니까? 아닙니다. 제사장은 거룩한 피를 받드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거룩한 피 깨끗한 피, 그리고 그 실체가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하고 깨끗한 피를 받들어 모심으로 그 피에 의해서 이 나라가 유지되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제공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출애굽기 12장 6-8절에 보면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라고 되어 있지요. 피로써 문과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를 때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지요. 이것을 유월절이라 합니다. 피 바르지 않은 다른 가정들은 지저분한 피이고 더러운 피이기 때문에 죽음의 사자가 심판을 감행하려 침범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된 지정된 피만이 깨끗한 피가 되어 더러운 피를 심판에서 면제케 해 줍니다. 그 깨끗한 피를 날마다 받들어 모시는 자가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피에 의해서 사랑과 축복과 용서와 구원을 받는 그러한 나라인 것입니다. 왜 피를 잡아야 됩니까? 기존의 피가 더럽기 때문에 깨끗한 피가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기존의 모든 피가 혈기와 욕심과 더럽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짐승을 잡을 때 짐승을 잡을 때나 무슨 피를 흘릴 때는 반드시 제단앞에 제물을 바치고 난 뒤에 고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11절에 보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되어있지요.
다시 말해서, 참 생명이 있는 피는 너희를 살리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진짜 영생의 피, 진짜 깨끗한 피는 지저분한 너의 피를 구원해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이고 유일한 약속입니다. 하늘에서 예수님이 왜 내려오셨습니까? 피를 흘려서 우리에게 제공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8-22절을 보면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방금 이 대목 하나님의 언약은 피 없이 된 것이 아니다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요. 자, 피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생명이고 영생이다라는 말을 제가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금 읽어드린 본문에 수많은 돼지가 날라 가 버린 그 데가볼리 주민들에게 했다해 생각해 봅시다. 그들에게 들려주기를 예수의 피가 언약의 피이고 구원하는 피라 할지라도 그들은 날라 가 버린 돼지가 더 중요하지 예수님의 피에게는 관심이 더 가겠습니까?
동방박사들은 메시야를 따라와서 몰약과 유황과 황금을 바쳤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악마를 쫓아 주어도 이들에게는 자기 돼지를 잃어버렸다고 예수님을 다른 곳에 가라고 말한 그 주민들이 과연 구원받겠습니까? 우리들은 지금 그들을 향하여 욕하고 싶지요. "그들이 인간이냐 죽은 돼지하고 똑같애"라고 욕하고 싶지요. 그런데 사실 그렇게 욕하고 싶어도 우리는 그들에게 차마 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요.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그 사람들이나 박사교회 앉은 우리들이나 노리는 바가 똑같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예수 믿고 난 뒤에 더 재산이 많아져야지 왜 적어지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가치가 전혀 없는 인간임을 아신다면 그들을 정죄 할 심정이겠지요.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돼지였기에 예수님보다 자기 곁에서 떠나주시기를 간청했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붙들려 하고 또는 예수님보고 떠나가 달라고 요구할 참입니까?
여러분 이처럼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나 위주이기에 필연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런 못된 우리를 살려주시는가? 그것은 "네 죄를 알라"고 살려 두시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체가 죄다라는 것을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그 죄인이 바로 내구나 예수님은 내 때문에 돌아가셨구나 나 같은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아직도 우리를 살려 두셨구나를 우리들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 왕하11장 16절에 보면 아달랴라는 여자가 죽어요. "이에 저의 길을 열어주매 저가 왕궁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이제부터는 제사장이 다시 통치하지요. 제사장이 어린 왕자 요아스를 왕으로 삼는데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 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라고 12절에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 왕을 삼을 때 왕에게 무엇을 줍니까? 율법 책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 말은 왕이라는 자리가 남 보기에 출세한 자리가 아니라 방금 제사장이 했던 일을 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피 없이는 못 삽니다. 우리는 희생의 은혜 때문에 삽니다. 라는 것을 증거하는 자리가 왕의 자리라고 율법 책을 준겁니다. 여러분들이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말로만 성경을 남기지 말고. 성경은 이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를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준 것이 성경책이다.. 연말에 지난 일년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예수님 앞에 세워놓고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돼지 잃었다고 예수님에게 나가라는 무리 속에 우리도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귀찮습니다. 교회도 귀찮습니다. 나는 편하기 위해 사는 놈이고 거침없이 사적인 복수에 나서는 아달랴처럼 사는 것이 편합니다"라는 식으로 우리 가족들에게 교회나 믿는 형제나 예수님에게나 괴로움을 주지 않았는지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돌아보시면 여러분 결론은 분명합니다. "아, 내가 서기 2000년 한해를 살면서 내 밖에 몰랐었구나. 나 밖에 모르는 나 때문에 그동안 주위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여 제가 악마 들린 인간입니다. '나'라는 악마를 추방해 주시고 이제는 그 빈 맘에 너를 구원하러 왔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바로 고마운 분으로서 내 영혼에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라고 생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나는 이것 저 것 없어도 나는 예수 있으면 살아 갈 수 있습니다"라는 내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이모저모로 생각을 해봐도 나 같은 나쁜 인간이 또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여 주옵소서. 착한 척하고 깨끗한 척하고 믿음 좋은 척했지만 그것이 결국 하나님께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것은 이 분이나 믿으라는 예수님만 우리 눈에 띕니다. 주님 없이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다급하게 느끼면서 주님이 있기에 이제는 희망이 생겼고 고마울 분이 생긴 것을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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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