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강-신앙인의,삶(왕하10장1-11)-2ki001203강의열왕기하

13. 신앙인의 삶 (왕하 10:1-11)
1 아합의 아들 칠십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어 이스르엘 방백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2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병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3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4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5 궁내 대신과 부윤과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 아무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의 소견에 좋은대로 행하라 한지라6 예후가 다시 저희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인이 성중에서 그 교육하는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7 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칠십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8 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고하여 가로되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가로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 어귀에 두라 하고9 이튿날 아침에 저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10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11 예후가 무릇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도록 오늘도 말씀으로서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성경 말씀보면 7절에 '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칠십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이 되지 못하는 처참하고 잔인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성경내용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흐르며 양극 상태를 보입니다. 어떤 쪽에는 홍해가 갈라졌다며 믿으라고 하고 어떤 때는 예수님이 죽었는데 사흘만에 부활했다고 믿으라고 하는 반면에, 오늘 본문에 보면 70인을 몰수히 죽여 광주리에 담았는데 그것이 10절에,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라고 하고, 민수기 25장에는 하루에 이만 오천 명이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요즘 이 사회를 보세요. 이 사회가 이 만 오천 명이 죽고 홍해가 갈라진다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회일까요? 오늘날 사회의 중요한 내용은 경제를 어떻게 살리며 소득을 어떻게 높이느냐 농촌은 어떻게 살리느냐, 금융사고는 안 터지고 금리는 안정이 되고 은행에서 돈을 꿀 때 저리로 빌리고 저축하는 사람은 많은 이자를 받아 연금으로도 풍족하게 여생을 보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주된 관심사요 주된 내용이잖아요. 오늘 본문처럼 70인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고 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옛날에 그렇게 잔인한 사건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홍해가 갈라졌다해도 그것도 옛날 이야기고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되었다하면 그것도 2000년 전의 이야기고, 이래저래 우리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의 관심사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이지 옛날에 일어났던 일은 우리한테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문을 보고 방송은 보지만, 성경은 안 보잖아요. 너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나오니까 나중에 그 비현실성에 대해서 짜증마저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한테 뭘 어쩌란 말인가라는 반발심이 자꾸 생기잖아요.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는 사람 같으면, 오늘 본문에서 왕자 70인의 목이 칼로 인해 죽었어?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나타났어? 하나님께서 봐주지 않고 그렇게 쳤단 말이지? 아이쿠, 무서워라. 하나님,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됩니까? 이렇게 느낌이 와야될텐데 그런 느낌이 안 들고 뭐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 아니야. 지금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라는 생각이 언뜻 들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선입감 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뭐든지 인간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몰아가고 우리는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고, 내 몸을 가만히 두기를 바라지요. 간섭하기도 싫고 간섭받기도 싫다 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 자체가 오늘날 우리들 체질하고 안 맞으니 "성경아 안녕∼"해 버립니다. 사실 성경이 옛날 이야기로서만 적혀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덮어야 됩니다. 성경 아니더라도 교훈 얻을 데가 한 두 군데 아닙니다. 그리고 더 이상 교회도 나올 필요도 없습니다. 교양인으로 사는 데는 교회보다 대학이나 고등 교육 기관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인간들의 태만을 위로하고 아부해주기 위하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제가 믿기에는 교회란 하나님이 세워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울 때 벽돌을 세워주는 식이 아니라 천국 갈 백성을 하나님이 손수 건져내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주시고, 두 번째는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천국 갈 자를 택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제가 믿기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할 때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성경에 관심을 두는 식으로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다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운명이 담겨있으니까 자기의 장래가 결정되어 있으니까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관심사에서 제외시킬 수가 없겠지요. 이러한 저의 믿음을 여러분 믿든지 아니 믿는지 그것은 자유입니다만 성경 말씀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KBS나 MBC 방송보다 더 중요한 말씀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런 세 가지의 경우를 생각 해 볼 때 저는 어떤 때는 장난기 같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요. 뭐냐하면 갑자기 여기에 도로가 나서 우리 교회 한복판을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완전히 헐어버렸다. 헐고 새로 세우겠다는 앞장서서 나서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했을 때에 이 많은(?) 교인들은 어디에 가느냐? 제가 객관식으로 문제 낼게요. 1번, 교회에 안 다닌다. 2번, 멀리 있는 교회 찾아간다. 어느 쪽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교회 안 다닌 쪽이 더 많을 것입니다. 멀리 찾아가지도 않을 것 같아요. 왜? 우리는 박사교회에서 배우기를, 말씀이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교회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교회 아닌 것을 억지로 찾아가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런 장난 끼가 현실로 되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길이 중앙에 나서 보상금이 나와 서로 갈라먹기하고 서로 헤어져 버리는 식이 아닐까? 하지만 정말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이 택하신 교회요 성도라면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가를 듣고 싶어서라고 교회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 왔으면 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검토하고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왕자 70명이 죽었다면 이 사람들이 왜 한꺼번에 몰살당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안 죽였어요. '이러지 마세요' 하고 핑계 대고 이 본문 앞에서 몸을 피할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그 때 그 사람들을 죄 없이 죽였다는 것이 아니고 왜 하나님이 이들을 죽였나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왕자 70인을 죽였는데 왜 죽였냐하면 말씀이 말씀대로 성취시키기 위해서 죽인 거예요. 따라서 하나님이 70명을 죽인 것은 전체 말씀 차원에서 죽일만한 이유가 있어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인 그 전체 말씀 차원대로 한다면 마지막 심판대에서 우리도 동일하게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에 불이 떨어졌다는 말씀을 대할 때, 내가 불을 질렀어요 하고 내빼지 마시고 하나님이 불을 질렀는데 왜 불을 내셨는가 하는 점을 알기 위해 말씀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도 오늘날의 현실이 멸망 될 때의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죄악이 심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늘 예언을 통한 경고와 실시로서 반복이 됩니다. 10절에 보니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왕자 70명을 몰수해 죽였던 일이 오늘날에는 왜 안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진짜 여호와께 살아 계신다면 지금도 70명 죽고 10000명 죽고 하는 일이 일어나야 그것을 보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겁나서 신앙 생활 잘 할게 아닌가 말입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안 일어나니까 우리가 배불러서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예수님 오시고 난 뒤부터는 어떤 일에 더 깊이 집중하느냐 하면, 내막이 이렇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거든요.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은 나는 건강한 자를 구원하려 온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구원하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모두다 자기를 병든 자로 간주하기보다는 건강한 자라고 자처하면서 살고싶어 한다는 말입니다. 육신적으로 말고 정신적으로나 양심적으로 자기 자신은 대단히 건강하고 정상적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이 점차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나는 이 정도로 정상이다. 나는 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인격과 품성을 갖추고 있는 자다 라는 확신을 갖고 자신을 옹호하는 쪽으로 사고 방식으로 널리 널리 확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태가 이러니 그들에게 뭐가 필요치 않느냐 하면은 교회가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말씀이 필요 없고 성경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겠다는 거예요. 왜? 나는 모든 면에서 건강하기 때문이랍니다. 이 정도로 살아가는 가는 것도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일관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병든 자를 위하여 왔다고 말입니다. 영적으로 자신을 썩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냐? 나에게 나아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자기 자신을 향하여 절망을 느끼는 사람, 내가 이런 영혼으로도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내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식으로 살아서 과연 내가 천국 갈 수 있겠는가?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더러운 양심을 가지고도 내가 인간이라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못하겠다. 나는 정말 더럽고 더러운 썩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누구냐 라고 찾으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거예요. 다시 말씀드려서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절망을 느껴야됩니다. 이렇게 돈만 밝히고 짐승으로 사는 것인지 사람으로 사는 것인지 구분도 안 되는 나, 내가 이런 식으로 한 평생을 살아야만 옳은 가를 반문하면서 자신을 보고 실망을 느끼고 미움을 느끼는 자가 누구냐? 나 예수는 이런 자를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이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제가 참고로 제가 기도 문제를 하나 거론하겠습니다. 온 한국 교회가 기도, 기도에 치중하고 그것에 승부를 거는데 과연 성경에서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제가 성경 한군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잠언 30:7-9에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 여러분, 여기에서 기도 내용이 무엇입니까?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라고 되어 있지요. 자 보세요. 자기가 얼마나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자신이 익히 알기에 기도를 해도 말이지요. 기도 내용이 "주여, 저 제발 거짓말하지 않는 인간이 되게 해주옵소서"라는 기도 내용이 나오겠습니까? 얼마나 자기 심령에 대해서 절망적으로 안 좋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도라는 것이 기껏 자기가 벌리고 있는 사업이 확장되고 번창하고, 목사 같으면 자기를 벌리고 있는 교회이라 이름의 사업체가 번성되고 부흥되기를 기도하잖아요. 왜냐하면 일종의 자기가 벌리는 사업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 제대로 된 기도는 자기 내부 문제에 매달라고 거기에 철저하고 내가 아무리 목사이고 부흥회 다니고 훌륭한 목사라 할지라도 제 자신의 양심마저 속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제 자신의 양심 상태와 영혼 상태를 점검해 보면 이 존재는 사람인지 개인지 분간도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매일 남 속이고 위선자이고 남한테는 안 들키는데 주님한테는 다 들키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까 본 기도에 보니,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 마옵시며 필요한 양식으로만 내게 먹이옵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에 보면, '필요한 양식으로만 내게 먹이옵소서'라고 했습니다. TV에 어떤 가정이 소개되는데 구두쇠 중에 구두쇠라 그 사람이 하는 말이, "IMF 하고 나하고 상관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IMF 터지기 전에는 나는 반찬 두 가지 놓고 먹었고 IMF 터지기 후에도 나는 반찬 두 가지 놓고 먹었습니다. "도대체 IMF가 뭐이며 IMF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합니다. 필요한 양식만 주시면 저는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왜? 나같이 더럽고 심성, 나같이 더러운 영혼에게는 반찬 두 가지도 과분합니다 라는 이런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성경에서는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자기 내부에 대해서 중요성을 가지고 정리정돈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사회 풍조가 무엇입니까? 얼마나 자신의 잘난 것들을 꺼내놓고 선전을 멋들어지게 하느냐에 치중하잖아요. 자신의 그 속임수에 얼마나 많은 타인들이 걸러 들어와서 나에게 돈을 대줄 수 있느냐 여기에 정신이 팔려 있잖아요. 자신의 육체의 건강성과 정신의 건강성, 자신의 우수함, 뛰어남, 자신의 정상적임, 이런 것을 PR하고 이런 것을 단련하고, 이런 것을 훈련하는 것이 오늘날의 풍조이기 때문에 이들이 교회에 관심 두고 잘 나오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교회에는 자기보다 죄인이라고 규정하는데 그것 듣기 위해 왜 나오겠습니까? 자신이 정상적이라는 거예요. 남보다는 낫다는 거예요. 못나도 준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후가 왕자 70인을 칠 때에 그 왕자 70명이 우리들보다 못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예후라는 사람을 시켜서 그들의 목을 쳐버리잖아요. 그것도 한 광주리에 담는 수치스러운 죽음이게 하시잖아요. 그래놓고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다 이루어졌다. 이래도 너희들이 여호와 안 섬기고 도망칠래? 라고 하나님께서 따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에 나가보면 만나는 조직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계모임도 그러하고 동창회도 그러하고 일반 회사 조직도 그러하고 심지어 교회조차도 그러한데 모든 모임이 자신의 약점을 철저하고 커버하고 속이는 태도로 일관하는 가운데 유지가 됩니다. 그저 거짓 웃음을 남발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저는 대중가사를 살펴보면 그 중에 힌트를 얻을 만한 것들이 있어요. 김완선씨가 불렀던 노래 중에는, '피에로는 웃고 있지만'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광대는 웃는 분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대노름에 빠져 있습니다. 보다 훌륭한 광대, 보다 능숙한 광대, 남이 속아 넘어 갈 수 있는 광대의 세계에서 우리는 헤엄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솔직함을 들어내는 그런 인생은 싫다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익숙해졌어요. 그것이 체질화되었습니다. 어떤 모임에 가든, 계모임이 가든, 자기 애 자랑하고 자기 출세한 것 자랑하고, 자기 애 공부 잘하는 것 자랑하고, 우리는 늘 속으로 울고 또 울고 있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런 모임에 나가서는 한 번 남들 앞에 웃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거예요. 남한테 기가 안 죽으려고 자신만만한 것을 끄집어내고 있잖아요. 얼마나 이기주의적 성향입니까. 너무 심하지 않느냐라고 여길 사이도 없이 어느 새 체질화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들어가 보세요. 전부 자기 자랑하지요. 오늘 본문에 들어가면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왕자 70인을 죽였느냐? 그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다 라고 단순히 이것만 생각하시면 아니 됩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을 한 번 살펴보면, 예후라는 무지막지한 하나님의 사자가 있었는데 일말의 자비심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는 자가 그저 자신의 내부적인 성격 더하기 하나님 뜻 이렇게 결합되어서 일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즉 가진 권력가지고 마음대로 사람 죽이는 것이 신나고 재미나는 일이다 말입니다. 그래서 왕자 죽일 때는 우선 약을 살살 올립니다. 그래야 자기의 우월함에 한껏 도취될 수 있기 때문이요. "야 너희들 중에 왕자 70인이 있지. 그 중에 한 똑똑한 사람을 뽑아 놓아라. 그 왕자하고 나하고 일대 일로 붙자. 누가 센지 말이야"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왕자 70인을 보위하던 대감들이 그 말을 듣고 겁이 나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남쪽 왕 북쪽 왕 두 분의 왕도 우리 예후 장군님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우리들이 감히 뭔데 장군님에 대항하겠습니까 미천한 저들에게 그저 분부만 내리시지요"라고 저 자세로 아부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 소리를 들은 예후는 흐뭇한 포만감에 잠겨서 여유 있는 죽음의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가르치고 있는 왕자 70명의 목을 다 베어서 광주리에 담아 앞에 전시해 놔라. 내가 볼 수 있게 말이야"라고 힘주며 이야기합니다. 과연 그렇게 하니까 예후가 그 신하들에게 같이 칭찬을 합니다. 9-10절에 보면, "이튿날 아침에 저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얼른 보면, 예후라는 사람이 무척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참으로 조심해야 되는 신앙의 원리에 비추어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식에 의하면 이 세상을 권력으로 마음껏 발휘하는 사람이 승리자라는 인식을 하게 되지만 사실합니다. 읽지는 않겠지만 열왕기하 10:31을 잠시 봅시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상당히 예상외이지요. 우리가 보기에는 예후라는 사람은 철두철미하게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실행에 옮기는 믿음 좋은 신앙인이라고 간주하시겠지만 '전심'은 빠진 채 하나님이 뜻을 핑계로 자기를 즐기고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예후가 사명 감당하기 전에도 그러하고 사명 받은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자기 밑에 굴복시키고 남을 지배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거예요. 품성 자체가 더러운 품성입니다. 제가 군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은 이등병, 일병 같은 졸병들을 가지고 놀면서 장교들이 자기 진급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하더란 말입니다. 저는 2년 8개월 동안 철저하게 느낀 것입니다. 신성한 국방의 존엄성 같은 것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부하들을 사랑하는 것도 없고 장교들이나 하사관들이 그들을 등쳐먹기에 급급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러워서 말뚝 안 박았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나가보니, 사회도 똑같은 모습을 띠고 있더란 말입니다. 어떻게도 꼭 닮았는지. 아니 교회에 와도 교회도 똑 같더군요. 남을 지배하고 억누르려고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어떻게 그런 더러운 품성을 갖고 있습니까? 에릭 프롬이라는 학자는 이것을 가지고 '사다니즘' 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지배하면서 얻는 성적 쾌락이 온 사회의 성격으로 자리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변태이요. 남을 지배함으로서 남들보다 자기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음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은 일종의 정신이상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은 서로를 섬기고 도와주고 봉사하고 사랑하도록 되어 있지, 자기 즐거움을 위하여 남을 학대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이것은 정상적인 성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정상적인 아닌 인간들이 99.99%를 차지하니 이 사회 구석, 어느 자리에서도 참 약하고 없는 자가 이 땅에서 살기에 얼마나 힘들고 힘들겠습니까.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그 기차를 타면서 한 가지 위로되는 게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면 차창밖에 온갖 풍경이 지나갑니다. 초가집도 보이고 돼지간도 보이고 양옥집도 보이고. 별장도 보이고. 잘 사는 집, 못 사는 집 각종 각색의 집들과 풍경들이 다 보이지요. 그래서 혼자 공상을 해보는데 저런 못사는 집에 사는 사람은 저런 잘 사는 집에 사는 사람과 어떻게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까 라는 것을 탐구해 보고 나 자신도 그런 집에 살면 내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떠오릅니다. 어떤 때는 아찔하다고 느낀 면도 없잖아 있지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한 가지 다행스럽고 즐거운 일은, 내가 그런 아무리 깊은 공상 중에 있더라도 기차는 묵묵히 내 의사에 상관 두지 않고 대구에서 서울로 가더란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차를 따고 가듯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더러운 인간, 망나니 인간, 변태들, 온갖 추잡한 인간들 다 만나고, 보고, 경험하고 그들에게 시달리면서 살아가도 고마운 것은 어차피 우리네 기차는 묵묵히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까지 달려가고 있다는 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행복입니다. 그래서 군에 복무하는 사병들이 위로 삼아 하는 말이 있잖아요. 꼴아 박혀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겁니다. 제밖에 모르는 세상, 다 제 잘 낫다는 세상에서 하나 우리가 위로 삼는 것은, 10년 지나고, 30년 지나고, 50년 지나고, 100년 지나면 어차피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과 얼굴을 맞댄다는 이것 하나입니다. 세상은 머물 곳이 아니잖아요. 이 예후라는 사람을 미리 보여주기 위하여 열왕기하 8장에 보면 이방나라 왕하고 깡패 같은 신하 하나가 나오지요. 성경은 아주 오묘합니다. 병들고 노쇠한 왕은 벧하닷이요 신하 이름 하사엘입니다. 8:14에 보면 물에 적신 이불을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왕의 얼굴에 덮여 죽여버리지요. 오로지 자신의 출세욕 때문에 저질은 범죄인 동시에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분명 이 하사엘은 하늘의 뜻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받는 동시에 자기가 높아지고 자기가 지배자가 되고 영웅이 되고 최고가 되는 욕망의 희열과 결부가 되면서 자기의 죄성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당신을 죽이는 것 말이야. 하늘의 높은 뜻이란 말이야"라고 핑계대면서 말입니다. 바로 그게 악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지었다고 왕자 70명을 일시에 죽이는 그 예후의 사명 수행이 곧 예후의 내부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과 무관하다는 말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와서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느냐 하면, "하나님 제가 주의 뜻대로 오늘 교회에 나왔으니까 제발 저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나같이 믿음 좋은 놈, 좀 이 사회에서 뜨게 해주세요. 하나님 뭐하십니까. 나도 병신 안되게 해주세요"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왕자 70명을 죽이는 엄청난 사명을 감당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기 내부를 바라보는 자가 아니에요. "주여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 마옵시고 오직 일용할 양식으로만 먹이소서" 라는 이런 겸손한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사회에서 뜬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지 나사로와 십자가에 같이 달린 강도는 자신의 상한 심령을 상한 심령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그 안목을 가지고 사회에서 출세한 자들이나 영웅적인 종교 사업을 버린 자들이 아니에요. 주님께서 죄인을 찾으신다면 죄인 여기 있습니다하고 나설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흔히 범하고 쉽고 스스로 속기 쉬운 실수를 지적해 주십니다. 여러분 성공이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다. 목회 성공이 성도다운 목사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인간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남편 5명 갈아치우고 6번째 남자와 사귀고 있으면서도 결국 메시야 만나고 난 뒤에 구원받았잖아요. 그 여자가 그 사회에서 영웅입니까? 나중에 그 여자는 남편 10명까지 채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잘나고 건강하다는 자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이 험하고 험한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절 치료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저 치료되지 않습니다 라고 정말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노출시키면서 살아가는 그 사람이 바로 신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시 한번 이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나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함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죄인 찾을 때에, 죄인 여기 있다고 용감하게 나설 수 있는 저희들에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4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5,092 강의 23강-악과,징벌의,관계(왕하15장23-31)-2ki010218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91 성경 23강-악과,징벌의,관계(왕하15장23-31)-2ki010218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90 강의 22강-악한,세계의,모습(왕하15장13-22)-2ki010211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9 성경 22강-악한,세계의,모습(왕하15장13-22)-2ki010211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8 강의 21강-하나님의,치심(왕하15장1-7)-2ki010204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7 성경 21강-하나님의,치심(왕하15장1-7)-2ki010204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6 강의 20강-하나님의,인내(왕하14장23-27)-2ki010128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5 성경 20강-하나님의,인내(왕하14장23-27)-2ki010128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4 강의 19강-건방진,유다왕(왕하14장8-14)-2ki010121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3 성경 19강-건방진,유다왕(왕하14장8-14)-2ki010121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2 강의 18강-엘리사의,마지막,당부(왕하13장14-19)-2ki010114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1 성경 18강-엘리사의,마지막,당부(왕하13장14-19)-2ki010114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80 강의 17강-하나님의,도움(왕하13장1-9)-2ki010107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9 성경 17강-하나님의,도움(왕하13장1-9)-2ki010107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8 강의 16강-성전수리(왕하12장1-8)-2ki001231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7 성경 16강-성전수리(왕하12장1-8)-2ki001231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6 강의 15강-제사장에,의한,혁명(왕하11장1-12)-2ki001217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5 성경 15강-제사장에,의한,혁명(왕하11장1-12)-2ki001217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4 강의 14강-말씀의,복수(왕하10장15-24)-2ki001210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3 성경 14강-말씀의,복수(왕하10장15-24)-2ki001210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열람 ➜ 강의 13강-신앙인의,삶(왕하10장1-11)-2ki001203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1 성경 13강-신앙인의,삶(왕하10장1-11)-2ki001203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70 강의 12강-평안하뇨(왕하9장21-26)-2ki001126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69 성경 12강-평안하뇨(왕하9장21-26)-2ki001126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5,068 강의 11강-선택받은,자의,사명(왕하9장6-10)-2ki001112 열왕기하 최고관리자 07-03-1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