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강-아름다운,소식(왕하7장1-9)-2ki001015
7. 아름다운 소식 (왕하 7:1-9)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 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왕하 7:19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왕하 7:1-9)
『주님이 지신 십자가 벗은 후 면류관을 쓰면서 그 때에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 하듯 보는 그때까지 이 지상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될 것인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훈계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하나님을 가지고(?)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우리가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란 것이 우리가 평소에 쉽게 생각하는 그 전능하심과는 다른 전능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 마귀가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예수여 저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보아라 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냐? 돌을 떡으로 만들면 사람들이 전능한 이가 여기 있구나 하며 너를 메시야로 영접할 테니까 저 돌들을 떡 되게 해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40일 금식 후 이어서 한창 배가 고플 때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준해서 궁극적으로 인간과 하나님을 관계로 엮어 보려고 한 것입니다. 마귀가요. 더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여 내가 배가 고픕니다. 떡을 주세요. 어? 돌이 떡 되네? 하나님은 떡 주시는 하나님이구나. 역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맞아. 전능하심을 이런 떡으로 연관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왜 쫓아가는 겁니까? 왜 믿는 겁니까? 떡을 얻기 위해 쫓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떡을 얻기 위해 믿는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가까이하는 그 예수님과 실제 존재하시는 예수님과 우리가 벽이 있어 건널 수 없는 골이 생긴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끼십니까?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 잡아서 떡을 얻으려고 했는데 예수님은 자꾸만 우리의 욕망과 욕심을 피해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붙들어서 재주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써먹으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자꾸 뿌리치면서 우리 곁을 도망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따라잡고 예수여 솜씨한번 보여주소서 능력한번 보여 주소서 그러면 내가 예수 잘 믿지 하며 예수를 붙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란 것이 다시 한번 곡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고 영생을 얻는 것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이고 우리가 천국 가는 것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결과라면 그 전능하심의 진짜 전능하심을 제대로 알려면 기껏 떡이나 얻고 돈이나 챙기는 이러한 인간성에서 우리가 탈피를 해야 합니다. 목사가 되어 가지고 교회 부흥이나 원하고 교회 성장이나 원하는 그러한 지저분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 가정의 영광과 자기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지저분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참된 전능하심이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떡이나 돈이나 달라고, 행복이나 추구하려고 들면 그것은 마귀의 심정으로 예수님께 접근하는 방식과 똑같은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러한 악마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는 이 갓바위 신앙입니다. 이 갓바위 신앙가지고 교회 나오는 이런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건지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무엇을 주느냐하면 고난을 주어 버립니다. 이 고난이란 것은 인간을 처음부터 원초적으로 새로 출발하게 만듭니다. 다 틀려버리며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가진 것도 아무 것도 없게 만들며 텅텅 비게 만들어 버립니다. 뭔가 출발할 건더기도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 그러한 빈 마음,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겠습니까? 심령을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며 아무 것도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난은 고통은 모든 가치를 새롭게 보도록, 그리고 진짜 가치 있는 것이 뭐냐를 새롭게 알도록 조치를 하시는 것입니다. 야. 진짜 가치 있는 것은 떡이 아니고 다른 것이 있구나 . 그러나 사람들마다 사는 형편이 모두 다르니까 우리는 남을 굉장히 부러워하면서 살잖아요. 부러워하면서 그 정도 수준에 올라가 보니 그 정도 수준에 또 부러운 것이 있는 것입니다. 야, 이 정도 하면 족한 줄 알았더니 여기에서 내려 다 보니 또 무엇이 있구나. 또 그걸 바라고 욕심을 내며 기도를 했는데 그걸 달성해 놓으면 또 욕심을 나지요. 그래서 자기는 고난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욕심이며 그 욕심이 어디까지 어어져 있을지 자기도 모릅니다. 그걸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다가옵니다. 너의 고난도 대단하고 저 사람의 고난도 대단하지만 인간들의 고난받았다 해보았자 그 인간들이 고난으로 자기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고난은 여기 있다는 말이죠. 예수님의 고난입니다. 십자가로 모든 것을 상실한, 십자가로서 죽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남으로써, 내가 가장 문제점은 내가 돈이 없어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문제점은 내가 남보다 못 배워서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내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는 이것이 문제구나. 내가 지옥 가는 이유가 내가 남보다 더 악한 놈이어서, 악이 받쳐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근본적으로 천당 갈 수 없는 존재였구나 라는 것을 십자가에서 깨닫게 하지요. 십자가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여! 아버지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말씀을 하셨거든요. 십자가란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너 자체를 통째로, 나의 인생 전부를 하나님 면전에 세웠을 때 그때 하나님이 주신 점수가 몇 점이냐 말이죠. 빵점입니다. 마이너스 말이에요. 빵점밖에 안 되는 인생을 내가 곱게 가꾸려고 이걸 크게 키워보려고 아둥바둥 애를 쓰면서 신이 어떠니 성령이 어떠니 예수가 어떠니 교회가 어떠니 논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군가도 모르면서 교회가 어떠니 다른 집사가 장로가 어떠니 저떠니 합니다. 내 자신은 누군 지를 모르면서.... 그래서 이 고난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십자가 앞에 설 때에 그 십자가에서 십자가자체에 나오는 능력으로 너희들을 천당 보내준다 이렇게 했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아, 십자가가 나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것도 되지만 그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근본적인 내 문제를 해결해 주셨구나.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인생으로 바뀌게 해 주셨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떡을 찾겠습니까? 돈을 찾겠습니까?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의미를 그제야 그들을 알겠지요. 이게 기독교이고 복음이며 신앙입니다. 비로소 안다 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엄청난 고난을 주었습니다. 그 고난은 무엇이냐 하면 지난 시간에 했습니다만 성이 포위되어 가지고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던지 아줌마들이 서로의 아이를 내놓고 서로 잡아먹는 지경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 왕이 되었든 왕은 하나님께 성이 나서 엘리사 선지자를 죽이려고 사람을 보내고 모두가 감각이 예민해 가지고 그저 떡.떡.떡 그저 빵.빵.빵 먹을 것과 경제적인 문제에 촉각을 세운 이때에 엘리사는 또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오늘 본문 7장 1절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지금까지 비둘기 똥 1리터에 은 다섯 세겔이었습니다. 세겔이란 것은 은 다섯 돈이거든요? 비둘기 똥 같은 쓰레기 같은 그런 것도 은 이 25돈이나 되는 고물가로 비싸게 팔리는 그때에 내일 이맘쯤 어쨌다고요? 그런데도 원 세상에, 엘리사는 밀을 이야기하고 보리를 이야기합니다. 고운 가루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밖에 안 한다고 합니다. 한 세겔은 은이 다섯 돈이니까 고운 밀가루 한 스아 스아란 7리터입니다. 7리터에 한 세겔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한다고 얘기합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헛것을 보았습니까? 아무리 선지자라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신하가 말하기를 너 약올릴래? 하늘에서 창을 낸들 어떻게 그 많은 물자를 공급하느냐고 불신했습니다. 2절에 나오지요.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면서 엘리사에게 대듭니다. 그러니까 이 장군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말씀을 못 믿은 겁니다. 그러니까 장군 하나님이 창을 내신들 그렇게 못된다고 말씀의 성취력을 네가 모독해 내일 눈으로 똑똑히 볼 것이다 하지만 너는 못 먹을 것이다. 이렇게 하고 드디어 그 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어야 그 다음날 아침이 되겠지요. 사마리아성 밖에 문둥이들이 있었습니다. 문둥이들은 저주받았다고 성에 못 들어갑니다. 성밖에 사는 문둥이들 ,성안에 있는 자들도 못 먹는 판에 성 밖에 있는 문둥이들까지 복지 정책이 돌아가겠습니까? 성안에 있는 자들도 굶어 죽을 지경인데 성밖의 문둥이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같은 처지 있는 문둥이 네 사람이 앉아서 우리 편 이스라엘 성안에도 먹을 것이 없고 밖에 나가면 아람군대가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있고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죽는 것은 당연한데 어차피 죽을 것, 우리 항복이나 하고 죽자 그래서 그 네 사람은 죽으려고 적진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면 적진에서 이 놈들 이제 항복하는구나 라고 할 줄 알았는데 세상에 누가 그것을 예상했겠습니까? 가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 도망했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도망갈 때 물건들을 챙겨서 가야할 텐데 군량미 그 많은 물자 그 많은 전리품들을 고스란히 두고서 도망가버린 것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문둥이 네 사람도 놀랬지요. 문둥이 한평생에 이런 일이...했겠지요. 아람 군대가 도망간 이유가 이러합니다. 이유가 뭐냐하면 하나님께서 수 십만 대군의 아람군대 각 사람마다 청각적인 혼란을 일으키는데 어떤 혼란이냐 하면 저 지평선에서 수많은 군대의 말발굽소리가, 함성소리, 환호소리가 하나님께서 유발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지요. 대군대가 곧 먼지를 내면서 밀려오는 듯한 그러한 환청을 모든 군대 아람인에게 다 집어 넣어버리고 넣은 것입니다. 다 집어넣으니까 '너 들었나? 나도 들었다. 장군님도 들었나요? 나도 들었다. 큰일났습니다. 그래 맞다. 이스라엘 왕이 최고의 강력한 고수의 나라 앗수르 군대와 저 애굽군대를 동원해서 우리를 치려고 오는 모양이다. 빨리 도망합시다'. 하고 도망하게 됩니다. 언제? 황혼 때에. 그 다음날이 되기 전에....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말씀을 무시하는 신앙 없는 장군은 '아무리 하늘에 창을 내고 갖다 부어도 성안의 인구수를 생각한다면 밀가루를 쏟아 부어도 일곱 되에 한 세겔 할 정도로 풍성하지 못한다'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자기를 죽이려고 온 적들이 고스란히 물자들을 보급 책으로 두고서 도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여기에 문둥이들은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신앙으로 사실은 신앙이 아니지요. 이판사판으로 적들에게 기름을 짊어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간 것입니다. 자..... 여러분 기름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문둥이들이 들어갔다는 의미는 무엇인고 하면 문둥이가 보는 눈이 세상을 위기적으로 보고 있는 제대로 된 눈이다라는 말입니다. 제가 언제가 주일날 이런 설교했지요. 여러분이 사람들을 만날 때 지옥의 불을 배경으로 화면으로 깔고 그 사람을 만나라 지옥 불에 그 사람이 들어갈 사람인가 안 들어갈 사람인가 보고 얘기하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에요. 김대중씨가 노벨 평화상을 탔는데 노벨 평화상까지만 보지 마시고 노벨상 타고 지옥 불까지 가는 모습까지 보시란 말입니다. 그것이 부러운가. 아니면 노벨 평화상 금메달이 부럽습니까? 아니면 생명나무와 생명의 면류관,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된 것이 부럽습니까? 안 부러운 것 같네요? 전혀요... 목사님 그때 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타더라도 노벨상 한번 타보고 죽을 랍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군요. 제가 보기에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안 굶고 있지요. 그러니 아직 우리는 문둥병자가 아니잖아요. 문둥병이 아니니까 배가 부른 것입니다. 애라 이판사판이니 교회에 뛰어들자 이런 심정은 아니라니까요. 그거야 때가 되면 가면 되지. 교회가 한두 군데가 다방도 많지만 교회도 많은데 이런 심리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런 심정이 우리는 아니잖아요. 지금 성경을 보려면 문둥이 심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 내 피부는 이러한가 왜 내 눈썹은 뽑아도 안 아플까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빨 뽑아도 안 아플까. 내 몸이 이상하구나 이렇게 되어있어야 합니다. 애라 이래 굶으나 저래 굶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판사판이다 라는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사소한 일로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습니다. 9절에 봅시다. 이제 그들은 실큰 먹었겠지요. 마음껏 먹은 후에 양심이 찔렸던 모양입니다. 9절에 보면,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 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아름다운 소식 이것이 복음이지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도 잘못되었다는 얘기지요. 만일 아침까지 기다리면 우리에게 벌을 내리리라. 여러분! 문둥이들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무얼 봤습니까? 이것을 쉽게 설명 드리기 위해서 누가복음 2장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은 2장에 보면 여러분도 크리스마스 때에 많이 들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양치는 목자가 천사를 만나는 그 대목입니다. 2장 8절을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밤중, 외로운 밤에 쓸쓸한 밤에 자기들끼리 오들오들 떨면서 양만 더불어 있는 조용한 밤에 갑자기 천군 천사가 보일 때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천사가 하는 말이 왈 이것은 기쁜 소식이다. 큰 기쁜 소식이다. 이것을 다윗 동네에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 인간들만이 득실거리는 이 자재부레한 더러운 세상 속에 깨끗한 하늘나라 영광이 들이닥칠 때 이게 기쁜 소식이 아니고 뭡니까? 이게 교회 다니는 재미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떡 얻는 재미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떡을 초월하고 돈을 초월하고 교회 성장부흥을 초월하고 내 가정에 행복과 출세욕를 초월할 줄 아는 내 속에서 배태하고 나오게 하는 내 아이디어의 기쁨이 아니라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하나님이 주신 것 그 무엇 그 무엇의 기쁨이 우리의 생명력이 되어야되고 우리인생을 사는 보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쁨의 고백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 모든 것을 얻었는데 내가 또 무엇을 바라리요. 오늘 본문에 돌아갑시다. 오늘 본문에 이 문둥이는 이 아름다운 소식이 있다고 아름다운 소식을 아름다운 소식의 특징은 공짜가 좋아 ~ 공짜가 좋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이 공짜가 '좋아'입니다. 내 노력으로 하면 공짜가 싫어지겠지요. 나만 일 했는데 이렇게 나오겠지요. 이러한 것과 상관없이 하늘에서 주니까 공짜가 좋은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주의 영광이 임하여 이것이 복음이다.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이 아기가 너희들을 죄 씻어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공짜입니까? 이것이 기쁜 소식이고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에 자기의 행위를 왜 집어넣습니까?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공짜의 원리가 예수님도 그대로 얘기 하시거든요? 그 한 예가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이 나오는데 그 포도원에 주인이 어디 놀고 있는 자가 없나 해서 보니까 과연 노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10시에 가서 너 우리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고 합니다. 돈은요? 만원 줄께. 그래서 그 놀던 자는 아침부터 일을 합니다. 12시쯤 되어서 또 노는 자를 같은 임금으로 일하게 하지요. 그런 식으로 오후 3시에도 일꾼을 데리고 오고, 오후 5시쯤 일 마치기 1시간 전까지 일꾼을 데리고 와서 같은 임금으로 일하게 합니다. 주인은 일 마친 후 재미있게 임금을 주게되지요. 나중 온 자부터 임금을 주는 것입니다. 나중 온 자에게 만원을 줍니다. 그때 앞에 온 자는 유심히 보겠지요. 나중 온 자가 만원을 받을 때에 자기는 저 사람 보다 내가 몇 배나 일을 더 했으니까하고 속으로 계산을 했겠지요. 혼자 자기의 노동의 대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 다음에 오후 3시에 온 자도 만원을 받습니다. 그때 처음 온 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요. 주인이 이상하다고 말입니다. 마지막에 제일 먼저 온 자도 만원을 받습니다. 나중에 온 자는 공짜가 좋아하면서 기쁘게 임금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처음에 온 자는 주인님 따집시다. 왜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포도원 주인이 하시는 말, '처음부터 너는 놀고 있었잖아' 라고 말입니다. 주께서는 하늘나라가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가 이와 같다고.... 같이 일을 해놓고 처음 온 자는 기쁨이 없습니다. 왜 기쁨이 없습니까? 천국을 몰라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면서 하늘나라 일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모르면서 교회 다닌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교회 다녔는데 왜 우리가정을 불행하게 하는가 라는 이런 식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여자로 태어났습니까? 그것도 축복입니다. 여러분 남자로 태어났습니까? 그것도 축복입니다. 내가 어느 가정에 태어났나 그것도 축복입니다. 여러분 어떤 동네에 태어났나? 그것도 축복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짜로 주심입니다. 내 인생 자체도 공짜인 것입니다. 공짜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예 '같음'이 아니라 진짜 공짜 인생입니다. 온몸을 주님께 다 바친들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왜?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같이 연약한 우리에게 공짜의 천국을 보여주고 목자에게 하늘나라의 영광이 나타난 것처럼 목자만이 가는 나라가 아니잖아요. 우리도 갈 수 있는 나라이잖아요. 그러면 그 나라에 갈 것만 생각지 말고 우리 마음가짐이 목자 같은 마음가짐으로 바꿔져야 합니다. 목자 같은 마음가짐으로 바뀌어 진 채 천국을 가야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못 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합니까? 문둥병 네 사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바꿔져야 합니다. 야, 하나님 대단하다. 그 문둥병 네 사람이 실큰 떡 먹고 금은을 많이 얻었다고 그 사람이 문둥병이 나았습니까? 치료받았습니까? 아니지요! 그러니까 문둥이들이 얼마나 마음이 낮았습니까. 에라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문둥병인데... 그런 마음가짐 , 겸비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들에게 주어지는 소식은 기쁜 소식으로 연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이 대목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전능하신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차원에서 말했던 그 엘리사의 말을 무시했던 그 신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 까요? 과연 그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 까요? 1)못난 인간이니까 그냥 넘어간다. 2) 왕에게 뺨맞고 꿀밤 두방 맞고 앞으로 조심해하는 훈시를 받았다 3) 죽었다. 몇 번입니까? 죽었습니다. 어디에 나오느냐 오늘 본문에 나오지요. 오늘 본문 19, 20절을 한번 봅시다.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그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었으되 곧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죽었더라 밟아 죽었더라" 문둥이는 살고 장군은 죽고, 이것이야말로 최후의 심판의 광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 혹시 이렇게 될까 겁납니다. 교회 다녀서 너는 돈을 얼마나 벌었나 이런 소리를 들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돈 때문에 다닙니까? 너 교회 다녀서 가정 얼마나 행복하나 나는 안 다녀도 행복하다고 불신자들이 나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 행복 때문에 교회 다니십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시되 마음을 낮추게 해서 공짜로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게 해서 공짜로 주십니다. 끝으로 신명기 8장을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8장 2절과 3절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정말 말씀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을 나는 것은 떡의 악령에서 떡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말씀이 그대로 작용해서 그래서 우리에게 때로는 떡도 들어오고 때로는 물도 들어오고 때로는 햇볕도 들어오고 때로는 사랑하는 아내고 자식도 들어오고 이 모든 것이 내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모두 다 공짜인 것입니다. 전부 다 공짜인 것입니다. 내 사는 것이 공짜인 것처럼 우리의 천국 가는 것도 흘리신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공짜로 가니까 이후부터는 자기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 자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참 악바리로 열심히 살려고 하고 그 악바리가 하늘까지 미쳐서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도전하며 원망하며 대들며 살아가는 철없는 저희들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다가 성문에서 밟혀죽고 남이 먹던 떡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신령한 떡도 먹지 못하는 그들처럼 되지 말게 하여주시고 아무도 모르고 놀리고 누구도 우리를 비웃더라도 주님 주신 이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주 앞에서 찬양할 수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