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내가 믿느냐, 성령이 믿게 하시느냐?자유게시판디모데후서

내가 믿느냐, 성령이 믿게 하시느냐?

이름 : 박윤진(IP:58.141.253.159)

내가 믿느냐, 성령이 믿게 하시느냐?

내가 살아있다는 전제하에 내가 믿고 있는 예수라면 그것은 내가 만든 심리적 예수우상에 불과하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의 행위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인간의 주관적 확신상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한 인격 전체의 해부상태이다. 그래서 말씀이 인간 속에서 하시는 역할은 좌우에 날 선 칼과 같다(히 4:12). 말씀의 칼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자의 혀를 친다. 기도하고 있다며 자랑하고 있는 손과 무릎을 벤다. 그렇게 믿음은 점령군으로 성도를 획득한다.

말씀이 성도를 완전히 해부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시려는 목적때문이다.(딤후 3:16-17)

위에서 언급한 히브리서의 말씀과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묶어보면 이렇다. 성도는 스스로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말씀은 칼처럼 성도를 해부한다. 마치 번제물처럼 해부당한 성도를 죄 없으신 참 대제사장(예수 그리스도)이 담당한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죽은 채 맡겨진 번제물로서의 성도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며, 그 하나님의 사람이 처한 영역은 어떤 인간의 행위도 무시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모두 선하고 모두 온전한 것으로 여기는 곳이다. 오직 언약의 피 때문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이 가득한 곳이다.

믿음의 실체인 신랑 되시는 예수는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과 같다.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때 지구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행성을 환영하던지 거부하던지 상관하지 않는다. 행성은 그냥 자유 낙하할 뿐이다. 행성과 충돌하여 만들어진 움푹 패인 웅덩이가 바로 신부된 성도이다. 성도는 행성을 향해 손을 흔들지 않았다. 행성을 기다리지 않았으며 행성의 모양을 예상하여 착륙지점을 준비하지 않았다. 물론 행성에게도 그런 것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신랑이신 행성이 그냥 덮쳤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신부가 태어나는 것이다. 내가 믿어서 행성과 충돌한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행성과 충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확실한 것이 있다. 내 전(全) 존재 위를 행성이 누르고 있다는 현실감이다. 그래서 살아보려고 바둥거릴수록 나를 누르고 있는 행성의 무게만을 실감할 뿐이다. 누가 누르고 있기 때문에 눌려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내가 눌려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누르고 계신 믿음의 실체가 없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마 7:23)

사도바울은 이러한 현실감을 예수의 흔적이라고 표현했다.(갈 6:17) 예수라는 행성과 충돌하여 생긴 이러한 흔적이 성도를 성도되게 한다. 예수 십자가의 흘린 피로써 구원받게 된 이단의 괴수의 마음 한 가운데 생겨난 흔적이 믿음이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는 내 안에 있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을 아무리 탐색해 봐도 믿음은 없다. 욕망만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딤후 3:15) 그 지혜가 바로 십자가이다(고전 1:23-24). 하나님의 모든 지혜는 예수가 지신 십자가에서만 나온다. 나를 위한 지혜가 아니라, 나를 공격하는 온전한 지혜 말이다. 소위 믿음 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실체가 어떻게 성도들을 공격했는가에 관한 기록이다. 흉내 낼 외모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누가 그렇게 살도록 했는가가 핵심이다.

다시 한 번 질문해보자.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아니면 도저히 예수 믿을 수 없는 당신을 성령이 믿게 하셨습니까?”

예수마을(IP:222.♡.153.199)

07-03-24 16:35

말씀은 찔러 쪼개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맞지만, 그 말씀이 약물을 주사하는 것처럼 믿음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회중의 반응은 '찔림'을 받았으나 오히려 돌무더기를 만듭니다. 또한 '네가지 마음밭의 비유(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임이 분명하지만 뿌리워진 씨가 다 뿌리를 내리거나 결실한 것은 아닙니다.

박윤진(IP:58.♡.253.159)

07-03-24 22:33

믿음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믿음이 죽은 시체를 다시 일으켜세워 머리가 그리스도이신 한 몸으로 삼아버립니다. 인간의 자발성이나 협조를 근거로 열매가 맺거나 맺지 않게 된다는 사고방식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고방식입니다. 은혜를 은혜가 아닌 삯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사고방식 말입니다. 스데반 집사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에 의해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에 편입된 것이 또렷이 조명받듯이, 옥토밭은 다른 밭들(길가, 자갈, 가시덤불)와 비교되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씨를 이 땅에 열매로 맺을 수 있는 분임을 또렷이 드러냅니다. 길가, 자갈밭, 가시덤블 아닌 인생이 어디 있나요?

예수마을(IP:222.♡.153.199)

07-03-26 09:21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논점이 묘하게 빗나가는군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되지만 그러나 그 믿음이 '들음'이라는 과정을 통과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들음'은 단순히 귀에 들리는 것을 말하지 않고 듣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의 반응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들은 귀로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기는 했지만 선물로 주신 믿음을 취하진 못햇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왜 믿음을 강제로 주입시키지 못했을까요? 왜 무리들을 '머리가 그리스도이신 한 몸으로 삼아'버리지 못했나요? 스데반이 전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서인가요?
또한 윤진님께서는 설명글 앞머리에 명제처럼 쓰신 글과는 전혀 다른 논리로 '네가지 마음밭'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는군요. '씨'는 '하나님의 말씀'임이 분명한데 그 말씀은 왜 죽은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눅 8:11~15절 까지 주님이 친히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다 설명드릴 것 없이 두 가지 경우만 보면, 길가에 뿌리운 것은 '말씀을 들은 자'입니다. 그러나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마귀가 마음에서 빼앗아 가버린 것이지요. 즉 듣기는 하나 믿음으로 화합지 못한 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즉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7:21)'를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박윤진(IP:210.♡.130.142)

07-03-26 11:32

예수마을님에게 다시 답변드립니다. 보다 정확한 답변을 위해 님의 코멘트를 나누어서 그 아래 답변을 다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지만...)

1. (예수마을님의 의견)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되지만 그러나 그 믿음이 '들음'이라는 과정을 통과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들음'은 단순히 귀에 들리는 것을 말하지 않고 듣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답변) 예수 십자가 사건으로 모든 인간은 죽은 자입니다.(고후 5:14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가 죽음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과 단절되었음, 그러니까 이미 죽어있음을 확실히 하는 차원의 사건임에도 동의하시지요? 동의하신다면, 위 로마서 말씀의 믿음과 들음이 인간 쪽의 ‘어떤 반응’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도 아시겠지요? ‘시체의 들음’과 님의 말씀대로 ‘시체의 받아들임’ 모두가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위의 로마서 말씀에서 믿음, 들음, 그리스도의 말씀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이라는 영역에서 성도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

-------------------------------

2. (예수마을님의 의견) 이것은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의 반응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들은 귀로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기는 했지만 선물로 주신 믿음을 취하진 못햇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왜 믿음을 강제로 주입시키지 못했을까요? 왜 무리들을 '머리가 그리스도이신 한 몸으로 삼아'버리지 못했나요? 스데반이 전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서인가요?

---> (답변) 스데반 성도의 설교가 참 설교인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에게만 들리는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참 설교인 십자가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을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양뿐입니다. 그래서 참 복음은 정확하게 두 부류로 인간을 나누게 됩니다. 복음은 영생을 얻기로 택함을 입은 모든 자는 믿어지도록 삼켜버리고, 그렇지 못한 모든 자들을 믿지 못하도록 내뱉어버립니다.(행 13:48, 행 28: 24 이하)
하나님말씀에 의해 버려지는 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은 자들이 원래 자신들의 모습이 죄인이며 지금 나를 덮고 계신 은혜를 은혜로 여기게 됩니다. 아니면, 은혜를 삯으로 여기게 되겠지요? 나는 진정으로 말씀을 받아드렸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습니다라는 사고방식은 선물을 자신의 노동(심리적)의 삯으로 여기는 태도 아닐까요?

------------------------

3. (예수마을님의 의견) 또한 윤진님께서는 설명글 앞머리에 명제처럼 쓰신 글과는 전혀 다른 논리로 '네가지 마음밭'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는군요. '씨'는 '하나님의 말씀'임이 분명한데 그 말씀은 왜 죽은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눅 8:11~15절 까지 주님이 친히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다 설명드릴 것 없이 두 가지 경우만 보면, 길가에 뿌리운 것은 '말씀을 들은 자'입니다. 그러나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마귀가 마음에서 빼앗아 가버린 것이지요. 즉 듣기는 하나 믿음으로 화합지 못한 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즉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7:21)'를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 (답변) ‘씨’는 ‘하나님 말씀’분명합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살릴 자(내 양)와 죽일 자(남의 양, 염소)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구별해 내십니다. 님의 주장대로 듣기는 하나 믿음으로 화합지 못하게 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마귀가 마음에서 씨를 가져가도록 허락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왜 누구는 님의 주장대로 들려주시기만 하고 마음에 받아들이지는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장난치시나요? 왜 태어나지도 않은 쌍둥이 중 누구는 사랑하시고 누구는 미워하시나요? 왜 구원받을 자가 태초라는 아무 행위도, 받아들임도, 들림도 없는 때에 예정되어야 하나요? 님의 주장대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가 누구란 말입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7:21)'가 과연 누구입니까? 하나님 말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 말씀을 받아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하는 곳이 바로 다 이루심이 선포된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in)’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은 이 세상 전체를 의미합니다. 길가, 자갈밭, 가시덤불 말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대표적인 죄의 권능들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예수 밖과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끌려 들어가는 예수 안을 비교하시면서 하나님의 씨가 언약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대조를 통하여 분명하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권범식(IP:61.♡.241.100)

07-03-30 17:53

아멘...박윤진 님의 정확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예수마을(IP:222.♡.153.199)

07-03-31 20:59

성실한 답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3장과 4장을 유의하여 읽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히 3:13절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14절에도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18절에는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자는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4:2절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6절은 뭐라고 기록되어 있나요?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라고 되어 있지요. 더군다나 7절에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에 쐐기를 박고 있잖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영접한 자 안에 보혜사로 오셔서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닌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공로인가요? 하나님의 은혜임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영접했다고 그것을 공로라고 생각할 성도가 누가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을 공로라고 여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강박증'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구원받을 자가 태초라는 아무 행위도, 받아들임도, 들림도 없는 때에 예정'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예정하심이 예지하시고 예정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하나님의 전지하심으로 미리 알고 정하셧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항상 예지가 먼저 나옵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예지)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예정)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예지)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예정)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런데 이것을 바꾸어 예정 다음에 예지를 말하면서 그 틀에 끼워 맞추려다 보니 많은 말씀이 왜곡되어지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절대주권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할 자를 예정하실 때에 그분의 '공의와 사랑'에 근거하여 '미리 아신 자들'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훼손되어집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더욱 빛납니다.
'튜울립'의 망령에서 벗어나시길 권면합니다.

박윤진(IP:58.♡.253.159)

07-04-01 00:31

제가 드리는 답변의 이해를 돕기 위해(사실 이것이 인간의 배려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김영신 님의 의견 중 예지와 예정에 관한 것부터 답변드립니다.

(김영신 님의 의견)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하나님의 전지하심으로 미리 알고 정하셧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항상 예지가 먼저 나옵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예지)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예정)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예지)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예정)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à(답변)

예수마을님의 예지라는 개념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하나님의 전지하심으로 미리 알고”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정하셨다”는 것이 예정이라고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실제 하나님의 예정이란 인간의 반응에 종속되어 있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1. 홍길동이란 사람이 믿지 않았다.
2. 그것을 하나님은 미리 아신다.
3. 그래서 홍길동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이기 때문입니다. 즉, 홍길동이라는 죄인의 의지에 따라 하나님의 예정함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계신 예지며 예정입니까? 어떻게든 구원받지 못하는 원인을 인간쪽에 두려고 하는 것은, 반대논리로 하면 구원받는 자의 원인 또한 인간 쪽에 두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뿐만 아니라 구원받지 못함도 인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로만 가능함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 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여호수아 11장 20절)
이스라엘에게 아무나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셔야만 합니다. 저주받은 자가 되게 하신 여호와의 은혜를 아시는지요?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장 15절)
게다가 저주받을 자들이 깨달아 돌이켜 구원받을 것을 두려워하시는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로마서 9장 18절)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 지는 미리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예정하셨다고요? 하고자 하시는 자를 그렇게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행동을 미리아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예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참 주권자라고 하시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옥만드신 분이 지옥갈 백성 만드는 것이 주권이지, 뭐가 무서워서 “네가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너는 지옥가야 한단다. 나의 사랑도 너같이 악한 놈은 구원할 수 없구나. 역부족이다. 미안하다…” 해야 하는 주권자가 맞는지요?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 11-12)
유혹의 영을 믿지 않는 자에게 보내시고 게다가 거짓 것을 믿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누구책임인가? 라는 질문은 피조물끼리 해야 할 질문이 아닙니다. 책임은 창조주, 그러니까 참 주체자요 참 자유자에게만 어울리는 말입니다. 물론 선악과를 따 먹은 죄인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사울을 괴롭혔던 악신이 여호와께 부리시는 것과 욥을 시험할 때 마귀가 하나님께 시험 수준까지 미리 보고하고 허락하신 것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사울과 욥이 어떻게 행동할 줄 아시고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이 님께서는 정말 납득되시는지요?
강박증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이런 경우가 강박증이 아닐까요? 예지와 예정이라는 주권 앞에서도 죄인의 책임여부를 말하고 싶은 욕망말입니다.

예수마을님께서 사용하신 예지와 예정은 죄인들이 “죄까지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 “죄를 짓는 것도 인간의 의지대로 할 수 없음”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자기체면술이며, 기존에 “선한 하나님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결코 우리를 죄 짓게 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하나님을 선하게 알고 있는 나 또한 그 분에게서 나왔으니, 선한 사람임에 틀림없다!”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결과물인 것이 자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예수마을님께서 사용하신 예지와 예정이 뜻이 밝혀졌으니 답글 앞에 적으셨던 말씀들의 본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영신 님의 의견)
히 3:13절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14절에도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à(답변)

참, 실명을 밝히셨으니 실명으로 답변하는 것이 옳겠군요. 김영신님께서는 위의 말씀대로 매일 피차 권면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계십니까? 본인의 의지대로 매일 피차 권면하시면서 끝까지 견고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계시냐 이 질문입니다. 혹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대답하지는 않으겠지요? 하나님 앞에서는 99점도 0점임을 알고 계신다면…. 최선이 아니라 완벽한 거룩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임을 알고 계신다면 그 앞에서 내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나는 매일 권면받아도 십자가를 잊고 살며 끝까지 견고히 십자가를 버리는 쪽으로 언행심사가 돌아가지 않던가요? 그렇지 않다면 김영신님은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했던 사도바울을 뛰어넘는 분이시며, 죄를 짓지 않았다고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 요한일서의 구절을 삭제하셔야 합니다.

결국 위의 말씀들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행해지는 실로 은혜의 말씀아닙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만드시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주권이 듬뿍 담긴…..

(김영신 님의 의견)
히브리서 3장18절에는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자는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4:2절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6절은 뭐라고 기록되어 있나요?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라고 되어 있지요. 더군다나 7절에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에 쐐기를 박고 있잖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à(답변)

위의 말씀을 김영신님의 주장, 그러니까 인간쪽에서 해야 만 하는 어떤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주신 대로 주님이 문을 두드리시기 때문에 문을 여는 것은 인간쪽의 몫이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셨으니, 위에서 말씀하고 계신 “순종”을 인간 쪽에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지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원수로써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순종할 수 없는 그런 저를 그렇게 하시고야 마신다의 근거로 김영신님께서 제시한 위의 히브리서 말씀들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김영신님의 의견)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영접한 자 안에 보혜사로 오셔서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닌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공로인가요?

---à (답변)

김영신님의 예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미리 그 사람이 승리할 것을 알고 계시는데…..이미 승리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승리하도록 또 도와야 하나요? 그러면 그것은 그 사람이 승리해서 승리한 것입니까, 아니면 승리하도록 도와주셨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까?

(김영신님의 의견)
하나님의 은혜임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영접했다고 그것을 공로라고 생각할 성도가 누가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을 공로라고 여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강박증'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à (답변)

김영신님의 예지 개념에 따르면 어떻게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싸워 이겼다는 정보를 하나님의 예지 레이더망에 보내준 그 인간의 공로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그것을 공로하고 여길 수 밖에 없다’고 한 것입니다. 강박증이란 말이 이쯤 되니 좋아졌습니다. 성령께서 주신다면 계속 이 강박증에 시달리고 싶습니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31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72 자유게시판 부흥을 갈망하며.. 시편 최고관리자 07-03-24
171 자유게시판 **[관계적이고 서술적인 구원론]**특급공개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7-03-23
170 자유게시판 우리는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원하는 자들이다 - 최고관리자 07-03-23
169 자유게시판 십자가의 능력 - 최고관리자 07-03-22
168 자유게시판 짧은 신앙의 글(구원에 이르는 힘) - 최고관리자 07-03-21
167 자유게시판 십자가마을.. - 최고관리자 07-03-19
166 자유게시판 **[도올의 언약사상에 쇄기를 박는다]**(최초공개) [신학] 최고관리자 07-03-19
165 자유게시판 녹취록은 이렇게 올려 주십시요 [신학] 최고관리자 07-03-18
164 자유게시판 단순함의 능력... - 최고관리자 07-03-18
163 자유게시판 에덴동산 중앙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07-03-18
162 자유게시판 20070306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나라의 윤리(2) 녹취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7-03-17
161 자유게시판 20070306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나라의 윤리(1) 녹취 데살로니가전서 최고관리자 07-03-17
열람 ➜ 자유게시판 내가 믿느냐, 성령이 믿게 하시느냐? 디모데후서 최고관리자 07-03-15
159 자유게시판 **[복음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신학] 최고관리자 07-03-14
158 자유게시판 예수님과 나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11
157 자유게시판 20070302b 울산강의-창세기 9~12장 녹취 창세기 최고관리자 07-03-10
156 자유게시판 20070302a 울산강의-창세기 9장 녹취 창세기 최고관리자 07-03-10
155 자유게시판 요한 계시록과 다니엘서에 대하여. . .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09
154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07. 2. 23) 세번째 시간 녹취록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7-03-08
153 자유게시판 영화평 [바벨] - 최고관리자 07-03-07
152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07. 2. 23) 두번째 시간 녹취록 레위기 최고관리자 07-03-07
151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07. 2. 23) 1번 녹취록 올립니다.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7-03-03
150 자유게시판 큰 사기 [신학] 최고관리자 07-03-02
149 자유게시판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최고관리자 07-03-01
148 자유게시판 20070202b 울산강의-창세기 6~9장 녹취 창세기 최고관리자 07-02-2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