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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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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알게 된 것이 기적] 2006-10-31묻고답하기[신학]

[십자가를 알게 된 것이 기적] 2006-10-31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십자가를 알게 된 것이 기적
이근호 2006-10-31 09:10:30, 조회 : 95, 추천 : 2

사람은 살기 위해서 산다.

신학을 해도 이 지식이 나를 먹여 살린다는 희망을 주기에 하고,

목회를 해도 그것이 나를 먹여 살리는 수단이 되기에 한다.

목사 뿐만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교회 나오는 것이다. 사는데 더 유리하게 작용할까봐 교회에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을 한다든지, 목사가 되었다든지, 목회를 한다든지, 교회에 나오는 것을 두고 기적이라고 할 수 없다.

살고 싶은 사람은 그런 일을 마다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정작 기적을 받은 자는 엉뚱한 고백을 터뜨린다.

"주여,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눅 5:8)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온 말이다.

베드로는 고기 잡아 사는 사람이다. 고기가 없으면 자신은 죽는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자기와 자신의 가족은 산다.

밤새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그 날 따라 고기를 잡지 못했다. 그는 독이 올라있다. 본능이 발동한다.

"나에게 고기만 잘 낚게 해주면, 누구의 말이라도 순종하겠다"

자기 목숨에 대한 집착의 강도가 깊어져간다. "고기만, 어쨌든 고기만 많이...."

그런데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낯선 인물의 말을 따라서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졌다.

고기가 잡혔다 , 아니 너무 많이 잡혔다. 너무 잡아서 배가 갈아앉을 지경이다.

순간, 베드로는,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죽는 것이 무서워해야만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고기에 집착해야만 하는 자신이, 저 바닷가에 서 계시는 저 분 앞에서 죄인처럼 느꼈다.

즉 살려고 하는 것이 주님 앞에서 죄가 됨을 최초로 알게 된 것이다.

"주여, 저를 떠나소서. 주님께서 저에게 꼭 복을 줄 필요도 없고 구원해실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베드로는 고백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다.

기적이란, 마땅히 죽어야 될 자가 살려고 아둥바둥 애쓰는 그 자체가 죄임을 알게 된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죄인으로 죽지 못하겠노라고 설치면서, 부자연스럽게 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죄임을 아는 것이 기적이다.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

사는 이유를 알고 죽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자신이 죽어가는 이유도 모르면서 죽는 사람도 있다.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기적은, 우리가 날 때부터 살고자하는 죄인이라는 하나님이 우리를 저주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적이다.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처음부터 우리가 저주받아 죽어야 될 대상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런 자만이 용서해 주시는 피의 사랑이 계속 보여지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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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의 시대
이근호 2006-10-31 10:51:23, 조회 : 95, 추천 : 2

시장에서 교환가치 밖에 다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들은 은근히 교환가치를 대신해서 순수한 자신의 존재 가치가 따로 있는듯이 환영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 환영은 이 시장바닥에서 항상 모멸당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도대체 인간들이 눈이 멀었는지 안 알아주고 있는 것이다.

부화가 난다.

여기서 자포자기의 모양새가 슬슬 시작된다.

오락이나 문화 쪽으로 다가가서 스트레스를 푼다.

일상에서 발생된 좌절로 인해 상처받은 심정을 문화로 푸는 것이다.

그것은 금욕이 없어도 상관없는 세계이다. 유쾌한 체념의 자리다.

기계보다 더 기계적이기를 요구받는 세상에서

자진해서 도구가 되겠다는 자들만이 '기계 인격'으로 값이 매겨진다.

하지만 '자아의 봉기'는 꺽이지 않는다. 뻔한 거짓과 위선들로 압축된 연극을 감상하자니 속에서 부글부글거린다.

이것을 달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노이로제, 도박 중독현상, 심신쇠약, 폭식, 과도한 홈 쇼핑, 예술에 심취, 특히 종교 교리에 매달리기 같은 현상으로 일어난다.

그 속에서 '주체를 압도하는 흥분'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신비를 찾는다는것은 곧 정신분열 증세의 일종이다.

'나'의 가치를 세상이 안 알아준다는 것, 이것이 정신분열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치도 없는 세상에서 기어이 자기 가치를 인정받아 보겠다는 것이 씩씩거린다는 것 자체가 수상한 짓이 아니던가!

교회가 언제부턴가 자포자기하는 자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그리스도 몸'이 아니라 '피곤한 몸'들의 유기체적 모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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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일은?
이근호 2006-10-31 18:39:05, 조회 : 108, 추천 : 2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복음의 광채'가 그 사람 마음 속에서 비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고후 4:4)

광채란 눈부심이다. 너무 눈부셔서 딴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 '광채'라는 표현에 합당하다.

악마는 사람들이 이 광채에 접할까봐 두려워한다.

악마는 복음이 싫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이 싫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악마의 조종에 의해 복음의 광채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까?

자신을 광채나게 다듬는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을 꾸민다. 스스로 광채나게 하는 것이다.

복음의 눈부심이 아니라 '자아의 눈부심'을 추진하다.

계속 '자아의 눈부심'을 추진하다 보면,

계속 '복음이 싫어진다' 십자가가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고 이야기하기도 싫어진다.

그 대신, '자아의 눈부심'으로 만족하려 한다.

이것을 '절대자아'라고 표현한다.

악마는 아담에게나 하와에게나 오늘날 인간들에게나 다들 '절대자아'로 태어나게 했다.

'복음의 광채', 이것은 악마 품 속에서 뽑혀나온 자들만이 고백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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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 하차한 복음
이근호 2006-11-01 08:31:40, 조회 : 97, 추천 : 2

사람이 자의에 의해서 복음을 가졌으면 나중에 그 복음을 멀리 갖다 버리는 것도 가능할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복음에 의해서 부름을 받았으면, 자진해서 그 복음을 폐기처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옆길로 빠졌다는 말은, 처음부터 복음에 의해서 부름을 받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2:14에 보면,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너희는' 오직 '복음'에 의해서 부름을 받은 자를 말한다.

복음으로 부름을 받지 않는자는, 잠시 그 복음을 이용만 하려 한다.

따라서 일단 흡수된 듯 싶다가도 어느새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이런 일은 마치

길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생을 만나서 반가워하다가 며칠 지나면 기억조차 안되는 경우와 같다.

즉 복음이 늘 그 사람 속에 함께 있어 그 사람의 모든 지배하고 있는 '복음의 사람'으로 변모된 것이 아니라 복음과 무관한 처지에서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사도 바울의 말한 고백에 동참되지 못한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 1:5)

어떤 사람이, 뒤늦게 내어 놓을 복음이 없다는 말은 처음부터 복음으로 부름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속이려 한다.

"저는 복음으로만 값없이 구원됨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논리라면 복음의 능력이란 항상 소진될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단언되어야 한다.

과연 복음의 능력이 도중에 소진될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십자가 앞에서 '자기 부인'이 되다가 나중에는 '자기 부인'을 시키지도 못할 그런 무능한 것이 과연 십자가 능력인가?

십자가 능력이 초창기에만 반짝 효과보다가 조금만 지나면 폐기처분해도 괜찮는 것인가?

복음을 버린 목회자들이 왜 설교 시간에 십자가 복음을 말하기를 꺼려할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에, "교인 여러분,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만 이루어집니다"라고 무심코 이야기했다가는,

교인들이 분명히 다음과 같이 질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사님,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 믿으면 이 후로 아무 것도 안해도 구원이 확정된 것 맞지요?"

이 교인들의 질의에 그 목사는

"그렇습니다"라는 답변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돈을 교회에다 안 갖다바칠 공산이 크다고 본 것이다. 경험상 충분히 겪어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목사는 다음과 같이 대꾸할 수 밖에 없다.

"아니요!"라고.

그렇게 되니 교인들이 또 물을 수 밖에 없다.

" 그렇다면 아까 목사님이 말씀하신 '구원'이라는 개념이 품고 있는 뜻은 무슨 뜻이요? '덜된 구원?', '미진한 구원?' '그냥 진행해보는 구원?"

즉 교인들은 의아해 한다. 예수님의 그 고귀한 십자가의 피에 의해서 그저 주어지는 구원이라는 것이 고작 '덜된 구원'이나 '미진한 구원'이나 '그냥 추진해보는 구원'에 불과한다 말인가?

하지만 목사는 교인들의 그런 궁금증에는 아랑곳 없이 문제는 교회에 돈이 들어오느냐 마느냐에만 신경이 곤두 써가지고 있을 뿐이다.

"당신들이 무엇이 궁금하든지 간에 관심없고 나에게는 당신들로 인하여 내가 밥먹고 사는 일이 급선무요"

이게 오늘날 목사들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복음으로 부름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복음은 무슨 복음!

신학교 입학 할 때부터 신경은 딴데 가있다.

"이같은 자들은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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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지혜
박기삼 (Homepage) 2006-11-01 10:45:26, 조회 : 119, 추천 : 1

세상 사는 지혜

지금 이 세상에서는 허탈한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는가 하면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라면
어찌 허탈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은 의롭게 살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인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누구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아무리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도
사람으로서는 그 뜻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 뜻을 아는 지혜가 있다고
나팔을 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 역시 정말로 그 뜻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전도서 8장 14~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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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모르는 것'과 '자랑하며 증거해야 될 것'의 차이
이근호 2006-11-01 11:30:15, 조회 : 109, 추천 : 5

그렇다고 해서 성도가 되어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를 증거하며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성도가 일반인들처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이냐"하고 도를 점차 닦아 나가는 처지라면,

"그래, 어느 인간이 어찌 모든 것을 알겠어"라는 말로 나즉히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조용히 인생을 마감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렇게되면 사도 바울이나 스데반 집사처럼 그렇게 뭔가 안다고 설칠 하등의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전도서의 말씀은 신약의 복음으로서 해답을 받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전도서가 찾지 못한 지혜란, 아직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 인간 지혜의 한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도서는 자아를 출발점으로 삼을 때, 아무리 성경 말씀을 코 앞에 들이밀어도 자력으로 그 말씀 속에 숨어있는 지혜인 십자가 지혜를 뽑아낼 재간이 없음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전도서는 전도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새언약인 십자가를 통해서 그 의미가 뽑아져 나와야 합니다.

즉 전도서는, 인간이란 지혜의 개시점으로 삼을 수 없기에 그 인간들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아 죽어 마땅하다는 겁니다.

'너의 모름을 네가 알고 있으니 참 훌륭하구나' 가 아니라 '몰라? 모르면 지옥가야지'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즉히 자세 낮춘다고 훌륭한 자로 인정받아 그냥 하나님의 심판대 밑으로 통과할 수 있는 존재자가 아니라 그 무지로 인해 마땅히 저주받아야 될 죄인이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고대했듯이, 전도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 전도자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데, 그 자세란, 문자적 해석에 준해서 나즉하게 고요하게 사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외치다가 마땅히 주님 나라에 가야만 한다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개시된 피조물'이기에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다가(행 1:8) 주께로 되돌아야 될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모른다는 것'과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증거해야 될 것 사이에는 이렇듯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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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지혜
박기삼 (Homepage) 2006-11-01 10:45:26, 조회 : 120, 추천 : 1

[re] 세상 사는 지혜
김효은 2006-11-01 11:45:44, 조회 : 102, 추천 : 0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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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세상 사는 지혜
박기삼 (Homepage) 2006-11-01 13:53:32, 조회 : 101, 추천 : 0

이 세상을
정의의 차원에서 볼 때는
논리의 차원에서 볼 때는
참으로 황당한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억울한 일을 당해본 자의 답답한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한탄도 할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말이
전도서의 이 말이 아닐까 하여
그런 자들에게 주는 위로의 말로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예수사회에 올린 글을 이곳 게시판에 옮긴 것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성경구절을 모두 이와 같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누군가 이런 작업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 표본으로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
그러니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질문 자체는
저에게는 엉뚱한 질문같습니다.

그 답은 주님을 영접하는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자는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찾아오신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주님의 십자가는 한갓 우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찾아와서 그 사실을 안 자들은
이 세상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어찌되었든 말씀대로 이루실 주님의 왕되심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리라고 봅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기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한마디 하면
어떻게 하면 주님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은
제발 하지 말라 주세요?

글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산천을 구경하듯이 구경하는 마음으로 보고
산천을 감상하듯이
그냥 감상하면서 느낀 만큼 느끼면서
느낀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느낀 것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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