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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한국 교회가 십자가 복음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2006-09-02묻고답하기사도행전

[한국 교회가 십자가 복음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2006-09-02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한국 교회가 십자가 복음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이근호 2006-09-02 16:16:50, 조회 : 158, 추천 : 4

한국교회가 십자가 복음을 거부하는 정작 이유는

교회론에 있다.

이들이 십자가를 운운하고 십자가 사상을 운운하면서

곧장 교회론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십자가 앞에서는 내세울 수 없는 '자기 의(義)'를

교회론을 통해서는 마음껏 내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 추구를 막지않고 은근 쓸쩍 장려하는 논리적 바탕을 교회론을 통해서 장만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 의로움'이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것을 사정없이 저지하고 제거하는 논리적 바탕을 교회론 안에는 설치해 놓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펼친다.

"나도 십자가 복음을 압니다. 그러나 교회론은 십자가로만 수립되지 않습니다. 다른 요소들을 집어넣어서 교회론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 다른 요소라는 것이 바로

더이상 '자기 의에 대한 부정논리'에 시달리지 않고 벗어날 만한 요소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전도하는 것, 구제하는 것, 봉사하는 것, 예배하는 것, 성경공부하는 것, 헌금하는 것, 치리하는 것, 교회 직분 세우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죄가 아닌 것이 되려면

그런 행위들을 통해서 절대로 '자기 의'가 나오지 않는 특별 행위가 될 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 구제하면서 절대로 '자기 의'가 도출되지 않을까?

찬양하면서 '자기 의'가 도출되지 않을까?

과연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자기 의'가 도출되지 않을 정도의 결심과 오기와 신념을 마음먹는대로 영글어낼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더 이상 '상한 심령'이 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자체로 순수하고 거룩하고 고생하고 경건한 순간이 과연 생겨날 수 있을까?

쉽게 말해서

주님의 영께서 성도를 '상한 심령'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거룩하고 경건한 순간을 계시하시는 경우가 있는가 말이다.

즉

"애야 너는 더이상 상한 심령이 될 필요가 없어. 자연스럽게 살아도 그것이 거룩한 경건된 모습이야"라고 인정해 주실 순간이 과연 성도에게 있는가 말이다.

만약에

그런 순간이 한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은 더이상 그 성도에게 십자가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을 우회해서 직접 그 인간을 완전케 하므로서

십자가 복음을 증거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증거하는 거룩한 인물로 계시하는 계시사건이 된다.

이것은

사도행전 1:8의 말씀, 즉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여 그 인간의 새로움됨을 증거하는 것'이 됨으로 성경 말씀과 완벽하게 배치되는 논리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자기 의'를 공격하는 장치가 가득 담겨 있지 않는 교회론은 이단들의 교회론이다.

(예배, 전도, 헌금, 찬양, 구제, 성경공부, 기도, 교회 직분 세우기, 치리하기, 노회 만들기 등등이 항상 인간의 자기 의를 배태하는 환경임을 말하지 않는 교회론이 이단적 교회론이다)

이 말은 곧

십자가 복음만을 내세우는 교회론이 아니면 사람들을 지옥으로 안내하는 교회론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

끝까지 인간들의 자기 의 내세움을 죄라고 폭로해내시는 능력으로만 일하시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십자가 앞에서 항상 '상한 심령'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한국 교회는 기어이

'자기 의'를 부정하지 않는 도리어 인간의 행함을 원껏 장려하는 교회론을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십자가을 운운하면서도

실상은

자신의 존재성에서부터 출발해서 교회론을 수립하기 때문이다.

즉

'나 여기 있음'- '나 예수 믿음'- 다른 사람도 예수 믿음'- 그 사람들과 내가 합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가 존재할 수 있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교회는 다 이단되고 무너져도

내가 세운 교회만큼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라는 점을 온 몸으로 , 느낌으로 믿고 있다.

이러다 보니

철저하게 자기 존재를 보호하는 본능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다.

즉

"십자가고 뭐고 간에 내 교회는 이단 아니라니까. 나는 십자가보다 내 교회가 더 중요해. 나는 이것으로 족해. 십자가 기쁨보다 이 기쁨으로 살아가! " 이것만 남는다.

달리 말해서

목사 입장 같으면

"십자가고 뭐고 간에 남들은 다 가짜 주의 종일지라도 나만은 참된 주의 종이라니까!"라는 사실만 실감나게 자기 존재를 휘감고 살아가고 있다.

(이 인간은 성령을 받지 못했기에, 성령님이 성도를 날마다 죽인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있다)

쉽게 말해서

남은 것은 악발리 뿐이요, 죽기아니면 살기 식의 오기 뿐이다.

이래놓고 대외용으로 하는 말은

"십지가 복음도 중요하지만 교회론도 중요하단 말이야!"라고 저항하고 있다.

자기 부인이 안되는 인간들이 이처럼 교회론 중심으로 교회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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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는 것
손무성 (Homepage) 2006-09-04 14:18:03, 조회 : 140, 추천 : 0

우리교회 홈에서 퍼온 질문 달변 입니다.

...........................
질문자 이름:이강진

골로새서2장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1) 여기서 행함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2)성도가 주 안에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답변 : 이근호목사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었을 때와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살아가는 것이

'주 안'에서 행하는 것, 곧 '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인인 사람은,

예수님의 공로(주님의 의로움)만을 내세우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의(義)'의 종으로 살아가는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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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박윤진 2006-09-05 11:27:36, 조회 : 152, 추천 : 1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야고보 사도가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은혜'는 무엇입니까?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은혜 안에 있는 자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주는
갈라디아서 2;20의 말씀은 믿음과 행함이 누구에게서 비롯되는 지 알려주는
결정적 단서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죽었네요....
내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시네요....
지금 우리가 육체를 입고 살고 있는 것도 이 믿음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네요.
나는 죽었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다는 믿음!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하는 말이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믿음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까?
그럴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서
십자가 은혜를 믿도록 하시고 그 믿은대로 행하고 계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 분께서 보내주신 성령은 바로 이것을 보증하고 계신 것입니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말씀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믿음과 행함을 모두 주관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을 모두 예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다면
과연 믿음과 행함을 따로따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믿음의 주체요 또한 행함의 주체이기 때문에
믿음과 행함에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생각될 뿐입니다.

이렇게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과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지

행위를 통해서 증명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행동을 보니 저 사람 구원받은 사람 맞네
하는 인간들의 평가가 탐스러운 것입니다.
이런저런 행동을 보니 저 사람 구원받지 못한 사람 맞네
하는 인간들의 평가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행함으로 구원을 증명하고픈
죄인의 본성이지요...

그러나!
믿음도 하나요 주도 하나입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행함의 열매 또한 하나입니다.
오직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요 행함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분의 사랑의 수혜자로서 살고 있을 뿐입니다.

(엡 4:4-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내 쪽에서 조작한 믿음과 행함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 앞에서
흔히 이렇게 변명합니다.

"주님, 제 마음 아시지요?"

주님께서 아십니다.

믿음없음을....

십자가 은혜로 만들어진 믿음없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바라볼 때
믿음과 행함을 분리해서 접근하려는 태도자체가
마귀적 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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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손무성 (Homepage) 2006-09-05 19:59:50, 조회 : 168, 추천 : 0

로마서의 믿음과 행함(율법의 행위)은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함이라는 것과 다른 차원이라는 것부터 먼저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행위라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말하지만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믿음이 있기에 행동으로 보여 주는 모습을 두고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할 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위, 기생라합이 사자(정탐꾼)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한 행위를 이야기 합니다.
이 때 이들이 한 행함를 두고 믿음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라면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믿음이 있기에 , 복음과 진리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마땅이 있어야하며(그리스도 안에서), 없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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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박윤진 2006/09/05 1 152

[re]십자가 안에 이미 들어온 사람의 특징
이근호 2006-09-06 08:29:02, 조회 : 223, 추천 : 2

참으로 바람직한 고백이라고 보여집니다.

(물론 한 순간을 그칠 공산도 큰 것이 인간이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누구나 귀하 같은 고백을 했으면 하고,

또 귀하가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런 고백만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사건이 주는 크고 넓은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피 흘린 사건은

평소에 인간들이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속성이 넘쳐남이 결국 메시야를 죽이게 되었다는 의미의 사건입니다.

실상은

구원될 자격도, 구원될 권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자신만은 당연히 신의 선택과 자비로 구원되어야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의 본성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다른 이는 아니라는 겁니다.

울법이란 단순히 인간의 죄를 들추어내어 자신의 행함을 방법으로 구원받을 길이 없게 해서 본인의 판단 하에 다른 길을 모색하게 유도해서 그 길목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배치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덥썩 코 앞에 있는 그 십자가의 피를 믿게 하도록 인간을 소나 양몰이 하듯 몰아놓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 아닙니다.

율법이란

모든 인간을 심판 아래 두게 하심입니다.

이로소 인간은 일체 구원될 처지에 없음을 확실히 해 두기 위함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긍휼 이외에는 그 어떤 출처를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내가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을 입을 자에게 긍휼을 입힌다"고 말입니다. (출 33:19)

즉 은혜나 긍휼을 유도할 만한 요소를 인간이 스스로 자기에게 발굴해 내어서는 아니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시도가 곧

여전히 자신이 구원받을 존재임을 강하게 입증하는 바가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안에 들어온 사람은 ,

여전히

자신이 마땅히 구원될 사람이기에 끊임없이 구원에 대한 집념을 발휘하는 그런 죄악이 여전히 자기 속에서 들끓고 있음을 파악하고

그런 자신의 죄 발산과는 상관없이 이사야 53장의 말씀처럼 예수님 스스로 아버지로부터 저주받았기에 예수님 덕분에 구원되었음을 양쪽다 파악하고 있는 자입니다.

주의해야 될 사항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을 자기 구원의 당위성으로 삼아 끊임없이 자기 구원에 매진하는 것은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오해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그런 성질은 교회 안 다니는 모든 인간들에게 다 잠재적으로 들어있고 당연히 성도에게는 날마다 쏫아나는 옛 성품입니다.

정리하면,

성도는 항상 자신이 당연히 구원되어야 될 자라는 의식를 버려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늘 그런 의식이 매일같이 수시로 일어나는데 그것들이 곧 죄악이라고 느껴지는 자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구원되었기에 나타난 대비적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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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프란시스 쉐퍼의 문제점
이준 2006-09-07 07:54:03, 조회 : 135, 추천 : 0

**출처 : 우리교회 질문답변 게시판.
**2002년에 제가 익명으로 드렸던 질문과 이근호 목사님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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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56
이름:질문드림
2002/12/2(월) 22:00 (MSIE5.5,Windows95) 210.223.187.193 800x600

프란시스 쉐퍼에 대해서

그의 책 세 권을 읽었는데요. 이성에서의 도피, 거기 계시는 하나님, 창세기의 시공간성...공부하는 차원에서 더 읽어 볼까 아님 말까 망설여 집니다. 제가 보기에 그 양반의 논리는 아무래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간판 내지는 양념인 것 같고...그의 논지의 초점이 현대 사상들을 정리하는 데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라서 그런 지는 모르겠습니다만...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상적 조류들을 자기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인간의 이성(인식 능력)으로 하나님 존재에 접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써나가고 있는 걸로 판단되는데...아무리 봐도 최종 권위를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삼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목사님의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No, 55
이름:이근호
2002/12/3(화) 06:16 (MSIE5.0,Windows98,DigExt) 211.228.215.16 1024x768

Re..프란시스 쉐퍼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프란시스 세이퍼 라는 사람은 복음 전달에는 관심이 없고,(또 복음이 무엇인자도 잘 모르는채) 이상적인 세상을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무신론의 세계를 향하여 유신론을 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내리시기를 유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갖추자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책도 읽고 이해해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흔히 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람의 성향과 동류인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경험을 하게 하고

둘째는 현대 사상의 병폐를 유신론적으로 어떻게 공박할 수 있는가를 앞서 지적해 주는 수고를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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