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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강의, 요한복음(4월강의)를 녹취한 소감] 2006-07-11묻고답하기요한복음

[안산강의, 요한복음(4월강의)를 녹취한 소감] 2006-07-11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안산강의, 요한복음(4월강의)를 녹취한 소감
오용익 2006-07-11 10:29:15, 조회 : 86, 추천 : 0

이번 강의는 요한복음 17장 21-23에 나오는 “하나됨”이 주제입니다.

1부는 인간이 나름대로 주체성을 동원해서 만들어낸 가짜교회의 신앙에서 나온 하나됨이 어떤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가짜교회란 “내가 믿어서 구원받고 복받겠다”는 이기성의 발로에 불과해서, 어떤모양, 어떤형태의 하나됨의 시도조차 그 실상이란 하나됨을 가장한 자기생존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등장하는 교회의 하나됨이 왜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수고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인지? 그렇다고 해서 “혼자 조용히 예수 믿고 조용히 천국가겠다”는 사고방식조차 왜 예수님의 하나됨에 의해서 고발당할수 밖에 없는지....

2부는 예수님의 기도응답의 내용으로서 “하나됨”이 어떤 식으로 참 교회를 생산해 내며, 계속해서 그 “하나됨”을 이루어내는지에 대해서 밝혀 내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교회를 가지고 새로운 피조물, 새것이 되었다고 할때의 상태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지, 고린도전서 2장에서 십자가만이 왜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고 했는지, 로마서 3장에서 율법외의 한 의라는 것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의 관계속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기도와 그 응답으로서의 “하나되게 하심” 곧 교회의 생산이 왜 꼭 십자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을 성령의 역사로만 이 지상에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통해서 하나됨의 근본취지를 증거합니다.

소감)

1. 교회있음의 근거와 이유, 더 나아가 교회가 무엇을 전해야 하며 무엇 때문에 모이기에 힘써야 하는지를 잘 배울수 있었다. 교회의 비판거리들은 금새 보여서 욕하기는 쉬운데 막상 너의 진리가 무엇이냐고 할때는 멈칫거리고 분명하게 꺼내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락한 교회 욕해준다고 해서 올바른 교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외의 한 의”의 공로를 영원토록 적용시켜 주시는 성령의 전도로만 교회되는 이 고마운 현실. 전도든 선교든 이것만이 내용물이 되어야 함을. 이것외의 모든 것을 다 죄로 고발하면서. 그래야 아들의 나라(천국)답단다.

“아들만 칭찬받고 다른 사람은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세계 아닙니까? 천국이란 나는 부인하고 면류관 까지도 반납하는 그 세계가 천국이잖아요(계 4:10). 그런 상태되기를 학수고대하면서 ‘나는 언제쯤 주님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만 높일까’하고 바라보면서 주님과 연결되는 그것을 소망이라고 합니다”(강의중에서)

2. 새롭게 다가온것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아닙니까? 이것이 그대로 적용되려면 반드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합니까? 내뜻이 있어야 됩니다. 이게. 어떤 사람은 이것을 흉내낸다고 자기뜻도 없앤다고 하는데 자기뜻을 없애면 안돼요. 자기가 알아서 없애면 뭐하려고 기도합니까? 자기가 알아서 다 없앴는데. 이해 하시겠습니까? 내뜻이 있어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와 대비시키지 아니하면 어떤 인간도 거기에 자기 정당성이 약간은 남아 있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 들이대면 어떤 인간도 죄인중의 괴수예요. 어떤 인간도 잘났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강의 내용중에서)

예수님께서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라고 기도했다면, 우리가 기도할때도 반드시 예수님의 기도가 그대로 실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속에 “내뜻” - 아버지의 뜻에 의해서 꺽이워야 할 의미로서의 “내뜻”, 즉 나의 모든 욕망들이 몽땅 들어가줘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렇지 않고 본인이 알아서 자기뜻을 꺽고, 본인이 알아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식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이미 기만이 된다는 것이다. 참된 기도(헌금이 되었든, 다른 무엇이라고 해도)가 성령의 역사로만 되고 은사로만 된다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뜻을 꺽기는 커녕 자기뜻이 무엇인지조차 모른채, 다만 자기좋아라고 마구 뱉어내고 다시 회수하는 지경에 놓여 있기에. 그만큼 내뜻(인간의 뜻)이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반발하고 대적하고 있다는 것.

이점을 가지고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 어느 구절을 읽어도 내뜻이 들어가서 읽게 될것이 아닌가? 그렇게 하지 말자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런 내뜻(인간의 모든 욕망과 그 욕망들을 이루려는 지혜들)을 모두 끌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기도에 내용으로(아버지의 뜻)고발당하는 식으로 성경해석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에 따르면 바른 성경해석이란 십자가외에 다른 어떤 인간행함에 대한 긍정도 있을수 없다는 원칙이 서게 된다.

3. 가장 감동있게 다가온 내용

1)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까”
2) “나는 이러나 저러나 예수님을 등쳐먹고 예수님을 이용하고 내 개인사정 어려울때는 안찾아오고 주님을 멀리하고 성경도 안보고 기도도 제대로 안하고 그렇지만 제가 믿는 것은 주님께서 반드시 이 말씀대로 주님께서 저에게 파도처럼 덮치도록 할것입니다”
3) “성령께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들이대는 이유가 뭡니까? 네가 잘났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겠나”

4. 질문) 강의중에 “포섭”이라는 단어를 한번 쓰셨는데 대충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는데 정확히 어떤의미로 쓰는 내용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기도많이 한 것을 칭찬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왜. 그래야 자기 포섭이 되니까. 자기 부하 직원이 될 수가 있고, 자기 교인들이 될 수 있고, 그래야 목회가 성공할수 있습니다. 자기 기도에 능력이 있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왜. 이런 사람은 자기 교회의 집사 혹은 장로가 될 가능성이 많아요. 그 사람을 붙들고 개척교회를 시작해도 되는 겁니다”(강의 내용중에서).

5. 직접 들으면 제일 좋고 아니면 녹취된 글로라도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강의녹취란에 올려 놓았습니다.
아주 좋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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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동네에서 명백한 것이란?
이근호 2006-07-11 18:01:46, 조회 : 127, 추천 : 1

불신의 동네에서 명백한 것이란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내 몸뚱아리만이 최종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

둘째는,

교회란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신의 존재와 정의로움에 호소하면서 운영이 되는 곳이라는 사실

만약에 여기에 십자가 복음과 다가서면 어떻게 될까?

첫 째

인간이란 전혀 안 중요하다는 사실(직업이 목사든, 의사든 상관없이) - 당장 죽어도 별 볼일 없다는 사실

둘 째

신의 존재와 정의를 말하는 그 신이 악마가 조직된 신이라는 사실

즉

신으 존재와 정의로부터는 암만해도 복음인 십자가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

이로서

불신의 세계는 계속 명백한 것만 수용하는 세계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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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에서 십자가 복음이 나오는 방식
이근호 2006-07-11 22:33:03, 조회 : 150, 추천 : 2

성경에서 십자가 복음을 나타내는 방법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 하면서 결국 십자가 복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보편적이 신 관념에 해당되는 신의 존재나 섭리나 정의로움이나 자비가 나온다면
기존의 종교들하고 다를 것이 뭐가 있는가?

복음을 전해야 될 성도가 복음이 아닌 인간의 종교 심리를 부추겨 주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해 놓는다면 이것은 유신론 철학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십자가 복음이 나올 수 있는가?

1. 성경의 모든 본문에는 그 배경에 십자가 복음이 담겨 있음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으며 신약의 사도들이 십자가 복음을 거쳐서 구약 전체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 복음이 아닌 것을 최종 결론으로 나오면 성경 해석을 잘못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2. 예수님은 자신이 성취할 새 언약을 위하여 달려오셨기에 구약이나 신약도 모두 새언약에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새 언약은 예수님의 죽으심이다.

4. 예수님 죽으심 안에는 인간의 죽음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5. 따라서 모든 성경 말씀이 십자가 새언약 완성으로 지향한다면 모든 성경 말씀은 기어이 인간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6.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인으로 몰아서 죽이시는 것도 다 근거가 있다. 그 근거는 바로 온전히 말씀을 수행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1)

7. 예수님께서 실천하신 성경 말씀 달성의 결과와 인간이 실천하고자 하는 성경 말씀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교인들 앞에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8. 예수님이 완성하신 것은 십자가이다.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그 분이 부활의 첫열매로 간주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이 문제가 되어 온전히 하나님 말씀을 예수님처럼 지켜낼 수가 없는가?
9. 그 어떤 성경 말씀이든 그 성경 말씀을 보고, 대하는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기본적인 태도가 있다. 아담의 죄성에서 나온 태도이다. 그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지키는 식이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 외쳤던 바, “율법의 의로 나는 흠이 없는 자로다”(빌 3:6)라고 고백을 그 어떤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다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은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에서 갖게 되는 마음이다.

10. 따라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면, 성경 말씀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는 오직 날마다 죽어야 되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이 살 때만 나는 신앙인이다”라는 의식이 든다.

11. 이런 마음가짐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모든 인간들이 펼쳐놓은 성경 본문을 대할 때 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기어이 지켜낸 ‘나’라는 존재로 등장하고 싶어 하는 심보로 성경을 풀이한다는 것이다.

12. 이 ‘자기 의(義)’ 챙기기에 동원되는 원리가 철학과 정치와 윤리와 도덕과 사회학과 자연과학과 문학과 예술과 스포츠와 종교와 신학을 통해서 숨어있지 못하고 튀어나오게 된다.
즉 신은 존재하고 정의롭고 자비롭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기에 거기에 맞추어 최선을 다하여 살아간다는 주의(主義)다. 바로 설교자 본문에 근거해야 이 사실을 그대로 폭로해야 한다,

13. 그런데 설교자가 인간들의 보편적인 ‘자기 의’ 산출 과정과 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신이 십자가 원수로 행동하게 되고 설교하게 된다.

“여러분 이렇게 하시면 여러분들은 이 성경 말씀을 지킨 것이 됩니다”라는 식으로 설교를 끝맺게 된다.

14. 십자가 복음을 사랑하는 교인들이 거의 없지만 행여 한 명이라도 그 교회 내에 있다면 이와 같은 설교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뭔가, 뭔가 비복음적인 것 같다”라고 실망한다면 그것은 곧 그 성도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실망시키는 설교가 된다.

15. 목회자가 왜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가?
인간은 무슨 행동을 하든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자기 의(義)를 늘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제발 귀한 설교 시간만큼은 십자가 복음만이 나오기를!

즉 “여러분 우리는 지금 당장 죽어도 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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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님이 좋은가 .. 이근호 목사님 말씀이 좋은가..
이미아 2006-07-14 23:08:22, 조회 : 238, 추천 : 4

예수님이 좋아요.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1:1)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2)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의존교회 사경회 갈라디아서 강해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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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 목사님이 좋은가 .. 이근호 목사님 말씀이 좋은가..
김영완 2006-07-18 03:34:04, 조회 : 162, 추천 : 1

제 생각에는 글 제목과 내용이 좀 다른것 같다는 생각이 듬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정작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건지 좀 헷갈림니다.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하셔서 그런지 글 제목과 내용 그리고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으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알고싶은 마음도 그렇게 없습니다. 저 또한 여러 질문들과 설교등을 통해 십자가마을 목사님들과 성도님들께 좋은 것만 얻고 있는 마음이 우선 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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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크로스빌리지 여름 수련회의 중점 내용
이근호 2006-07-16 08:08:43, 조회 : 136, 추천 : 0

1. ‘끝’을 의도적으로 유발시키는 선지자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 요나, 에스겔, 다니엘 및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드러난 여호와의 무서운 전쟁과 끝날

2. 땅을 근거로 ‘끝’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대안들

‘끝’에 대항하고 인류의 역사를 쉼이 없는 진보와 발전으로 보고 끝을 지워버려 없애버리는 서구 사회의 정치적(철학), 종교적(신학과 교리) 대안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3. ‘끝’을 발생시켜 나가는 성령님

단지 “끝났다” 함을 알려주기 위해 성령님께서 성도를 어떤 식으로 다루는가를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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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의도(혹은 전략)
곽진계 2006-07-24 21:26:33, 조회 : 108, 추천 : 2

최근에 ‘십자가마을’에 올라오는 논쟁적인 글들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패턴은, 일단 십자가마을의 글(대부분이 이근호 목사님의 글들)에는 공감을 표시합니다. 공감하는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강조하고, 오직 ‘은혜’를 강조하며, 인간의 ‘전적 무능’을 강조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보기에’ 좋다(사실 보기에 좋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후에 하신 말씀이지요.)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그러나’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꼭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것으로 다냐? 십자가 다음에는 뭐가 없느냐?”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표현을 하였지만 글들의 여백 안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경에도 분명히 ‘십자가’ 다음에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이 있고, 교회가 있으며, 비록 죄악적이긴 하지만 기독교회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가 ‘다’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속사’신학을 이야기하고, ‘개혁’신학을 이야기하며, ‘성화론’을 이야기합니다.

논쟁적인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원할까요? 이 목사가 성경대로 가르치느냐? 아니면 구속사신학이나 개혁신학에 맞지 않는 내용을 가르치느냐? 정말 자신이 ‘십자가’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면 ‘십자가’ 앞에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보면, 십자가(4절에 강력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 강력은 전후 문맥으로 보면 십자가, 복음을 의미할 것입니다)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십자가, 이것이 진정한 십자가의 ‘파워’일 것입니다. ‘율법폐기론’이 문제가 됩니까? ‘율법폐기론’이라는 개념이 성경에 있는 개념일까요? 율법폐기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십자가의 은혜에 굴복할 것입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지 않나요? 제 말은 율법폐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혁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하고, 십자가의 ‘은혜와 심판성’ 앞에 우리가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의 질문(십자가가 다냐?)에 대한 대답은 제가 보기에 “‘다’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를 강조하는데 의문을 제기할까요? ‘사람들의 할 일’이 없어져서 그런 것일까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직도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요? 아직도 그 행복을 몰라서 그럴까요? 그래서, ‘나는 일하고 싶다’는 것일까요?

모든 글쓰기에는 의도가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명백합니다. 사실 성경의 글들도 의도를 가지고 씌여진 것입니다. “모든 신학은 기독론이다”라고 어느 신학자가 이야기하였듯이 성경의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 그리스도의 핵심은 ‘십자가’사건이구요. 이근호 목사님의 글쓰기 의도도 명백합니다. ‘십자가’를 드러내겠다는 것입니다. 덤으로 현실교회의 죄악상도 ‘십자가’에 고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두 가지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이고, 한 가지는 인간의 신랄한 죄악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에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랄한 죄악에서 넘어집니다. 견디지를 못하고 돌을 들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처럼 우리도 돌을 들게 만드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일 것입니다.

저에겐 율법폐기론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근호 목사님이 강조를 하던 안하던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핵심은 따로 있고, 우리들은 이 더 중요한 핵심도 제대로 모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폐기론에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악에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와 ‘보배로운 십자가’가 보일 것입니다.

제가 논리를 너무 단순화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조금만 정직해지면 우리들의 의도는 명백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저나 다른 분들도 ‘복음의 은폐성’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이근호 목사님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있구나!”라고.(혹 이 표현이 이 목사님께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십시오. 내가 너무 소심한가?))

그러면, 제 글쓰기의 의도(‘글쓰기의 전략’이라는 책제목도 있던데..)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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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글쓰기의 의도(혹은 전략)
이근호 2006-07-25 07:39:35, 조회 : 98, 추천 : 4

우리 몸에서

'십자가'라는 못을 도로 뽑을 것이냐(악마의 짓)

아니면

'십자가'라는 못을 더 깊이 박을 것이냐(성령의 일)의

차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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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모임 때 나눈 말씀입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박윤진 2006-07-25 15:57:44, 조회 : 136, 추천 : 5

율법은 참형상의 그림자일 뿐
참형상 그 자체는 아닙니다.(히 10:1)

죄인은 율법을 통하여
자신이 생존할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주장하고 싶어합니다.

죄인이 율법을 보면서 하는 가장 큰 착각은,
자기 자신이 이미 죄인으로 태어난 것을 망각하고
자신이 악을 행하면 악인이 되고,
자신이 선을 행하면 의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나무에서 무화과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죄인인 인간에게 선한행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이라면 이미 모두 죄인이다라는 것을 고발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죄의 소산임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이 담고 있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십계명과 같은 행위규범적 내용이고
둘째는 이를 어겼을 때 발생한 죄의 처리 방법, 즉 제사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 중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 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주신 취지는
본래 하나님의 안식에는 인간의 노동이 침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일을 거룩히 하는데 필수요건이
바로 인간행위의 완벽한 배제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는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에게 살인이라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살인본성이
충만한 죄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에게 간음이라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정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금지된 것이라도
서슴없이 범하도록 되어 있는 죄인임을 깨달으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율법의 참 의미를 밝혀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면 벌써 살인죄를 범한 것이고
마음으로 여인을 품으면 벌써 간음죄를 범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 같던 율법이 사실상
인간 존재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인간 존재 자체의 금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인간을 비춰어 보면
인간은 그저 흙에 불과하다는,
즉 인간은 이미 죽어 있는 존재라는 현실 감각을 일깨우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참형상이라고 합니다.

율법안에는 제사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사법에서 중요한 것은
제사법을 절차적으로 인간이 잘 행하면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용서해 주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법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냉혹한 현실은 다음의 세가지 입니다.

첫째, 우리가 어떻게 처리할 수 없는 죄가 계속 반복된다.
둘째, 이러한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용서 뿐이다.
세째, 하나님은 죄의 용서에 있어 누군가의 피를 요구하신다.

요컨대, 제사법은 죄인인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죄를 계속 반복하면서
누군가의 희생의 피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용서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참담한 처지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를 통하여서 거룩하게 된다는 발상은 죄인의 생각일 뿐,
율법에는 이런 사상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통하여 우리는
죽음의 목 조름만을 느낄 뿐입니다.

이러한 죄의 곤고한 환경에서
모든 죄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해 주신
참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 분의 제사가 바로 영원한 제사입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 같은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를 따라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주일에 예배 드리는 때,
찬양대 연습을 할 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주방에서 봉사를 할 때,
십일조를 드릴 때

그 순간마다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사실은
나는 참 예배를 드릴 수 없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으며
아이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칠 수도 없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도 없고
참 십일조도 드릴 수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모든 죄를 속속히 아시는 예수께서
아무 변명도 주저함도 없이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또 감격하여
감사하며 또 감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교회 참석해서 주일성수해야지 각오할 때 마다,
십일조해서 하늘 복을 받기를 바랄 때 마다,
예수 이름으로 내 부귀영화를 꿈꾸며 금식하고 철야기도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의 원수됨이 더욱 확실히 발각되고 있음을 알고
그런 나까지도 용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가 바로
성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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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번 주 모임 때 나눈 말씀입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이근호 2006-07-25 20:18:52, 조회 : 148, 추천 : 3

주님의 사랑이 어떤 완성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지가 빠져 있는듯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반복적으로 외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의 나타남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감사의 근거가 늘 증거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희생적인 봉사입니다.

이 희생적인 봉사의 모습은

본인이 죄인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아예 시도조차 안하려고 모든 게으름과 나태함과 안일함을 극도의 이기주의 얼굴인 것으로 드러내게 합니다.

헌금하는 가운데서 헌금 행위가 죄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그것을 감사함으로 헌신하도록 자신을 부인하는 절차임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소유 안 함'이 소유의 반대말이 아니라 사랑이 소유의 반대입니다.

즉 '나는 자기 의를 소유하지 않겠다'가 주님의 뜻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소유의 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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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말씀감사합니다. 그런데...
박윤진 2006-07-26 09:26:00, 조회 : 130, 추천 : 3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인이 '나는 자기 의를 소유하지 않겠다'라고 고백토록 하실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까지

완성적으로 활동하신다는 말씀이신지요?

희생적인 봉사의 모습이 인간의 행동으로 드러날 지언정

그 공로를 죄인 자신에게 돌리지 않게 된다는 상태

즉, 사도바울의 고백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와 같은 모습을

말씀하십니까?

이장우 선생님께서 최근 올려주신 성령론 강의 1.(어린이 대상으로 이근호 목사님께서 강의하신)
에 나타난

주님의 사건에의 참여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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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말씀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근호 2006-07-26 11:23:44, 조회 : 143, 추천 : 3

맞습니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으신

부활하신 주님께서 참으로 열심으로 일하십니다.

그리고 탄식하시면서 일하십니다.

그 어떤 인간도 주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을 평생 잊고살아도

무덤마저 주님의 심판을 가릴 수 없습니다.

현실을 보면서

자신의 긍정적인 면이나 자신의 부정적인 면만 찾을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주님의 은총이 이 현실 세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십자가 은총에서 발현된 사건들입니다.
(비록 인간들은 현실 속에서는 자신이 인식하는 사건만 '사건'이라고 일방적이고 개별적으로 규정짓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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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 동감입니다. 감사드립니다.(내용없음)
박윤진 2006-07-26 12:43:35, 조회 : 56, 추천 : 4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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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봉 목사님의 책이 나왔답니다.
이근호 2006-07-31 20:29:29, 조회 : 141, 추천 : 0

새부산교회 사이트에 나와 있는 소개문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지난 7월 3일에 새부산교회 이상봉 형제가 쓴 강해집 한권이 발간되었습니다. 제목은 '영문밖으로 나아가자' 이고 출판사는 도서출판 대장간입니다.
이 책은 히브리서를 강해한 강해집인데 주로 그리스도의 뛰어나심과 새언약 및 교회의 영광에 대해 설명해 놓은 책입니다.
시중 서점에 나와 있으니 필요한 분들은 사서 보셔도 되고 구하기 어려운 분들은 저희 교회(홈페이지)로 연락주시면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특히 구약적이고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교회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우리의 삶을 불교나 회교처럼 하나의 종교 생활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서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정상적인 길과 자리가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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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관한 문제?
오부국 (Homepage) 2006-08-01 11:03:05, 조회 : 197, 추천 : 1

안녕하세요. 목사님~ 복음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살아오던 우리 조상의 구원문제에 대한 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질문드립니다.

구원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은혜이며 오직 예수외에는 다른 구원의 이름이 없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분명 이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옛 조상은 모두 구원에 이르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성경 어딘가에 보면 '율법없이 망한 자는 율법없이 망한다' 라 말하듯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다 해도 망할수도, 망하지 않을수도(구원?받을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해석됩니다.
(질문) 과연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것인가요? 구약시대의 선민으로 택함받았던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모두(2000년전 인류역사의 거의 모든 인간들)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는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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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구원에 관한 문제?
이근호 2006-08-01 11:42:59, 조회 : 190, 추천 : 1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신을 향하여 구원을 요청할 권리가 없음을 뜻합니다.

동시에

인간이 비록 신(神)을 찾고 (고대 우리 종족들의 제천의식처럼)

나름대로 신과 유대관계를 형성했다할지라도

그 신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아버지의 뜻에 의해

예수님의 재량으로만 가능할 뿐입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님의 의논에 의해서만 구원이 결정지어져 버립니다.

따라서

인간 자체는 구원에서 원초적으로 배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사에 나오는 조상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인간들이 구원을 선택해서 구원받는 입장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의 나타남에 의해서 구원이 제공되는 것이 참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따라서

온 천지가 교회로 가득차 있고

학교마다 성경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할지라도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귀하의 질문은 마치

오늘날이 과거 조선시대보다

구원에 유리할 것으로 의식을 품고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혹시 가져셨다면 수정되어야 될 생각입니다.

예수님에 관해 아는 것이 많다고해서 구원에 가까이 접근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구원은 사회적, 역사적 분위기와 상관없이

항상 기적일 뿐입니다.

일방적인 주님의 영의 내방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비기독교적이었던 우리 민족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전부

처음부터 지옥이었습니다.

메시야를 항시 죽일 만반의 마음가짐이 갖추어진 그런 유아들을 오늘도 산부인과에서 쏟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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