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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치유생태마을'(가칭) 설립을 꿈꾸며] 2006-06-23묻고답하기-

이 분의 글을 누가 평해보세요 이근호 2006-06-23 11:01:22, 조회 : 177, 추천 : 0
'치유생태마을'(가칭) 설립을 꿈꾸며
춘천의 명물 소설가 이외수 씨를 주축으로 강원도 화천에 문학을 테마로 한 감성마을이 조성되고 있는 모습을 신문이나 TV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자세하게 알아보니 화천군은 2007년까지 총 2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촌장의 집 앞 쪽에 사랑방·마실방을 짓고 뒤편에는 연수관, 전시실, 야외무대 등을 만들어 감성마을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수 촌장은 ‘기인’ ‘괴짜’라는 별명답게 별난 감성마을 운영안을 구상 중이라고 합니다.
감성마을의 진입로는 조롱박 터널로 꾸밀 계획이고 진입로 옆은 꽃밭으로 만들어 감성마을 식구들에게 1평씩 분양하는데 1년간 밭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 분양자격 조건입니다. 마땅히 불성실한 식구는 퇴출이고요. 감성마을은 여름에는 문학캠프를 개최해 일반인들에 선을 보일 예정이라 합니다. 감성마을은 “전통예술, 대중예술 모든 예술을 문학으로 아우르는 공간으로 만들어 문학하는 선후배는 물론 가수, 국악인, 마임이스트, 마술사까지 모든 쟝르를 망라한 예술공간을 만들 작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료하는 '치유생태마을'을 꿈꾸며
그래서 저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평소 구상한 치유생태마을 설립을 구체화하여 제안하려고 합니다. 저는 평소 교회개혁에도 관심이 있지만 원래는 환경·생태 문제와 건강 문제가 저의 관심 분야였습니다. 저는 20여 년 동안 생태적 건강 문제를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질병의 메카니즘과 각종 대체의학(요법)을 연구하며 공부하여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유하는 데 기도하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한의학과 양의학의 기초적인 지식과 스포츠마사지, 발마사지, 경락마사지, 순리치유라는 손침, 부항, 사혈요법, 척추교정, 생활요가, 쑥뜸요법, 천연요법, 식이요법 기타 등등의 대체요법을 2000여 권의 의학서적을 통해서 배우고 연구했습니다. 이 모든 소프트웨어를 치유마을 설립에 적용되어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치유생태마을에서 하나님의 방법과 저비용의 방편으로 하나님의 창조환경에서 휴양과 치료를 한다면, 치유의 시너지 효과가 대단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져다준다면 저비용의 웰빙타운과 요양시설, 성경적 치유테마 마을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지금 이런 테마마을을 만들고 싶은 오랜 꿈을 더욱더 앞당겨야 하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저는 현대의학의 기본적인 치유 메카니즘과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다양한 대체요법으로 난비병과 불치병에서 회복하고 치유되는 치유마을 설립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학은 이런 질병을 치료하는데 너무도 고비용의 시스템입니다. 더군다나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어느 가정에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불치병이 걸렸을 경우에는 전 재산을 탕진하기 마련입니다. 요행이도 그 병이 고쳐진다면 다행이겠으나, 결과적으로 고치지 못한다면 전 가족이 가난의 보상만 받게되어 빈곤의 대물림 현상만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듯 불치병과 난치병은 신빈곤을 재생산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비용 내지는 저비용의 치유시스템으로 치유하는 공간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치유사역에 대한 관심도는 수도권 지역에 편중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치유사역이 활성화되어 있으나 대부분 영성을 매개한 내적치유와 편중된 대체요법으로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방에서는 다소 잠잠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치유공간은 대부분 도시에 소재하여 있고 건물 또한 콘크리트 건물과 화학적인 건축소재를 재료로 한 내장시설 속에서 치료하는 것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봅니다. 특히 환자나 노인들은 자연환경과 가까이해야 회복이 빠른데도 대부분 병실은 콘크리트 공간이고 먹는 음식도 가공식이 위주입니다. 따라서 회복하는 속도가 그만큼 느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사망선고를 내릴 경우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이 기도원으로 찾아가게 됩니다. 최후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바라는 건 당연하겠지요. 실제로 기도원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치유함을 받은 사례도 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더 악화된 경우도 있을 겁니다. 현재 한국교회나 사회에서 기도원을 바라볼 때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새로운 타입의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즉 기도원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기도원이라고 해서 방언하고 요란한 기도로 일관되는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성경과 일반도서와 기독교 도서를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고 자연식과 삼림욕·화기욕·황토찜질·생수욕과 각종대체요법을 접목하여 치유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부정적인 기도원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이 와서 쉬면서 묵상과 설교 준비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건강세미나도 할 수 있는 공간도 겸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회복만이 대안
우리의 병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벗어난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창조질서인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식물만 먹고 자연치유원리를 이용해 자연주거공간 속에서 기도와 묵상을 병행하여 질병을 치유하면 치유효과는 배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최근 도시생활의 밀폐공포증의 반응과 웰빙에 대한 비뚤어진 사치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를 탈출하는 욕구로 산으로 바다로 자연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수입된 웰빙 프로그램을 선호하고 각종 보양식과 몸에 좋다는 음식은 다 먹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유명 관광지는 물론 자연휴양림과 주변의 야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숲을 찾고 있습니다. 도시의 인공적인 콘크리트, 아스팔트 환경에서 벗어나 새들이 노래하고 풀꽃, 나무가 향기를 뿌리는 자연적인 환경을 찾아가 새로운 힘을 얻고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이렇게 하면 괜찮지만 그 속에서 도시생활을 연장하다가 돌아오는 것에 심각성이 있습니다. 밤이면 조용히 자연의 신비를 묵상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도시생활과 자신을 성찰하고 자야 하는데 밤이라도 사람들은 자지 않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하고 놀다가 지친 몸으로 도시로 되돌아오고는 합니다. 말하자면 잠깐 공간이동만 하였을 뿐,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는 껍데기 웰빙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작품인 숲은 산소를 만들어 우리가 숨을 쉬어 살게 하고 피톤치드라는 특유의 방향성향을 배출함으로써 우리 몸을 쾌적하게 하고 이산회탄소와 좋지 않은 냄새를 흡수·제거하고 유해한 세균을 살균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숲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력이 회복되고 건강이 좋아지거나 병이 빨리 낫는다는 것입니다숲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뇌 활동, 자율신경계, 스트레스 호르몬, 면역기능 등 생리반응의 효과가 있으며 안정적인 뇌의 활동과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진다고 합니다.
이렇듯 산속의 숲이나 바다나 강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자연치유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질병이란 4가지 부조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무질서하고 불균형한 상태의 신체적 반응입니다. 이러한 부조화의 회복이 치유의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전인적인 건강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의학을 넘어서는 진정한 치유, 자연치유
현재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치유는 특이한 무속적 신유, 영성 치유로 육신의 병 고침의 현상에 치중하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진정한 치유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공간속에서 피조물로 순응하면서 자연과 일체가 되어 하늘과 흙과 식물과 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창조질서에 감사하며 그분의 위대한 창조질서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몸의 병든 부분도 자연정화력 내지는 치유력으로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치유사역에 대한 관심들이 매우 높아져가고 있는데, 그와 반대로 기독교 목회에서의 치유의 영역과 목표, 그리고 치유의 방법에 있어서 안수나 안찰 또는 상담을 통한 치유 등에 있어서 한계와 규정들이 모호해져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당들이 사용하는 주술적인 방법과 심리적 최면적인 방법, 신비주의적 방법들이 교회 내외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위장을 하여 미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자연치유의 범위는 어떤 종류의 질병이냐인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현대질병의 범위는 광범위하지만 자연치유범위는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병원에서 치료 불가능한 병을 최후의 수단으로 하는 것과 평소 건강증진과 예방차원에서 적용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과·외과 등을 포함해서 정신과에 이르기까지 병명조차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신경성 000 질병과 에이즈나 암과 같은 불치병에 이르기까지도 하나님의 치유 은혜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의학적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 지혜로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음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현대의학의 우수성은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에서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대개가 인간들의 문명에서 발생한 재해사고사와 교통사고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를 치료하기 위한 의술입니다. 이런 인위적인 안전사고에서는 이러한 의술이 우수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순응하지 않고 발생하는 내분비이상과 순환장애, 대사장애 등의 질병에서는 현대의료는 임시방편으로 호전되거나 오히려 약물치료시에 다른 합병증과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고비용의 의료비를 지출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까지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간단하고 우수한 치료입니다. 더군다나 경제적비용은 무비용이거나 저비용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일반계시로 설계해놓은 자연치유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불신한 결과 현대의학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치유사역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무지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은 주로 그들이 받은 신학교육에 따라 사역을 행하기 마련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이루어지는 신학대학과정에서는 자연 속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질서속의 자연치유력을 발견하는 치유사역을 강조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부흥사들 가운데는 치유사역과 관련하여 영적인 오만, 또는 지나치게 방법론에 의존하는 것과 고비용의 헌금을 강요하는 등의 치유사역에 대한 부작용과 편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류문명은 창조 이후 범죄로 인한 질병으로 말미암아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고독 그리고 죽음의 위협과 아픔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현대 문명과 첨단과학으로 인해 생활은 여러모로 편리하게 되었고 물리적인 육체적 건강과 수명은 향상됐지만 정신적 혼란과 난치, 불치병의 질환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각종 안전사고와 사회무질서 증가와 함께 질병의 증가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급속한 경제발전과 공업화 과정으로 우리의 사회구조와 의식구조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우리는 미국사회 생활의 모방으로 도시인과 농촌사람 할 것 없이 전 국민이 난치병과 불치병이란 질병에 노출되어 환자들이 증가해 그에 따라 의료비용의 부담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런 불치병과 난치병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고비용의 현대의학에 맡겨 놓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료하는 마인드와 공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귀머거리와 눈 먼 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도 복음전도를 위하여 병든 자들을 고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치유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무시되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자연치유력의 일반계시의 은혜를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간과하거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조화·질서·통합·화해를 위해서
치유생태마을은 피조물인 자연을 생태적인 차원과 사람을 그 속에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하게하는 전체에 대한 생태적인 치유를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병든 인간이 사회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병든 사회가 인간을 병들게 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난치병과 불치병의 질병 중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무비용이나 저비용으로 고치는 방법은 없습니다. 각종제도와 건강보험이 이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한국교회는 자연치유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질병의 치유를 위한 적극적인 봉사와 섬김을 잘 감당하여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거저 주시는 성령의 은사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신약성서에 있어서 성령의 은사는 언제나 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결부되어 있고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치유는 성령의 여러 은사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병 고침의 예가 수없이 많이 나타나며 교회 역사를 통해서도 많이 있습니다. 치유는 구원의 실제적 체험이며 하나님나라와 메시야 임재의 감격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현대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과 난치병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고쳐야 합니다.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병원 신세만 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병원에서 치료받다 죽으면 가족들은 자기가 할 의무는 다했다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병원과 제약회사만 돈을 벌게 합니다. 이런 현대의학의 의료비용은 결국 국민의 의료비 부담으로 전가됩니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는 사명을 맡은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한 죄성을 가진 오만한 지혜와 첨단과학의 방법을 빌린 고비용의 치료보다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자연치유력을 사용하여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치유마을은 육체적 질병을 포함한 전인격적인 건강과 환경 전체에 대한 생태적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교회의 지상 과제는 땅 끝까지 선교로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있습니다. 현실은 인간들의 죄성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인간들의 타락으로 피조물이 탄식하고 있는 이때,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온전한 건강의 회복과 자연의 창조질서회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탐욕과, 물질 기계문명이 가져다주는 편리와 쾌락의 도구로 사용한 결과 질병치유와 환자수용에 바쁜 병원만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만연되어 있는 총체적 부조화를 치유하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로 개혁하기 위한 전방위적 치유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입니다.
이른바 전인치유사역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련의 활동은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허점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전인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생태적인 개념과 창조질서의 원리에 입각한 건강과 질병, 치유의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모두 전인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고 전인적 건강이란 하나님 창조 당시의 질서로 회복되어 인간의 모든 영역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서 자신과 이웃과 사회와 자연과 과의 관계가 생태적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조화·질서·통합·화해입니다. 질병은 그 반대 개념으로 인간의 죄성에 기초한 총체적 부조화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학은 하나님의 방법을 불신하고, 인간의 잘남을 뽐내는 오만한 치료법으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치료법입니다. 아무리 급한 응급환자라도 응급실에 입원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환자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치료법은 돈 없어도 고쳐지는 은혜의 치료법입니다. 이런 치유는 엔트로피가 높은 무질서하고 소외되고 타락된 비정상적인 죄악적 상태로부터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그 속에서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치유생태마을’(가칭) 설립을 구상하게 된 것입니다. 세부적인 대안은 다음 글에 올릴 예정입니다.
최종운 / 치유생태연구가
==========================================================================[re] 이 분의 글을 누가 평해보세요 김영완 2006-06-23 17:43:49, 조회 : 125, 추천 : 0
제가 생각해본 몇가지는...
-왜 2000권의 책을 읽었을까...? 잘모르겠습니다. 2000권의 책을 읽은 이후 말을 하는 사람이 순수한 그 사람일까 아니면 많은 분량의 책이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또 한국교회를 걱정하고 바꾸고 싶어하시는 마음이 상당히 있으시다는 사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에서 너무 전문적으로 해석되고 대안이 제시 되었는거 같습니다.
-답글의 의견중에도 있는 인간은 누구나 불치의 병에 들어 서서히 기력이 쇄하고 병에 들어 서서히 늙어가고 죽어간다는 사실. 병원에서 항생제로 또는 서양의학으로치료받는 것이나 환경이 좋은 곳에서 좋은 공기를 마셔가며 병의 진전을 늦추어 가는 것 또한 한꺼풀 숨긴 인간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병의 악화 보다더 느리게 혹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그 사람을 움직이시고 변화시키시는것 같습니다.
-글쓴이의 눈에는 자연이 그안에서 어떤 지금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수 있는 대안이 있을것 같다고 여기는것 같지만 자연 또한 병이 들었다고 봅니다.
-복음의 시각과 생각은 가지고 있으나 지금의 한국교회를 보면 도저히 바꾸어지는게 느려 보이니 자신이 관심있어하고 또 지식이 있는 분야로 해석을 해보니 그것안에서 조그만 희망을 가질수도 있을것 같았지만 치우침이 자신을 그쪽으로 계속 몰아가고 있으며 그런 해석의 결과로 인간을 복음을 기준으로 하던 안하던 간에 기능론적인 해석으로 치우쳤고 혹시나 그것을 즐기시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P.S 이분을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잠깐 해본적이 있습니다.
==========================================================================[re] 이 분의 글을 누가 평해보세요 정판옥 (Homepage) 2006-06-23 11:35:47, 조회 : 104, 추천 : 0
지난 5월30일에 있었던 울산 성시화 축제라는 행사에서 결의한 내용을 보면, 울산을 거룩한 도시로, 각계각층을 정직하고 거룩한 사회로, 거룩한 시민 문화를 만들고, 울산을 맑고 밝은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지상낙원을 만들겠다는 발상이지요. 지상 낙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여호와 증인들을 이단이라고 말하면서 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지요?
하나님의 뜻은 불바다를 만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시겠다고 섭리해 가시고 있는데, 그래서 성도라면 심판을 즐거워해야 마땅한데,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믿지 못하고, 그 뜻을 오히려 인간들이 노력을 해서 이 땅에 낙원을 건설하겠다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지요?
석가도, 공자도, 니체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들도, 교황도, 칼 막스도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아가는 미움도, 갈등도, 다툼도, 눈물도, 고통도, 질병도 없는 세상을 꿈꾸었지만, 세상은 더욱 더 악하고 타락의 길로 달려왔고, 앞으로도 계속 달려갈 것입니다. 하나님 홀로 계획하시고, 연출하시고, 감독하시는 종말을 향해서 말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그리스도가 다스리게 될 영원한 그 나라에서만이 가능할 뿐이라는 것을 약속하고 있고, 그 약속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그 날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어질 것입니다. 언젠가 구원받을 백성의 수가 다 차게 되는 그 날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고 있는 중입니다. 한 싹으로 상징되는 메시아(사11:1)께서는 너무나도 작고 미미해서 그의 시작은 아주 미약하였지만, 그러나 나중은 심히 창대해서 반드시 영원한 결실을 맺게 하실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이고, 구원의 날일 뿐입니다.
==========================================================================[re]다음과 같은 반박에 뭐라고 하실 것입니까? 이근호 2006-06-23 12:07:16, 조회 : 143, 추천 : 0
만약에 글의 저자께서 (최종운씨)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면 뭐라고 반박하실 겁니까?
"나도 정목사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재림해셔서 새 천지를 이룬다는 것은 굳게 믿고 여전히 믿고 한 순간의 의심한적 없이 오직 그 나라와 의만 사모하는 성도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도 여전히 주님의 창조 은혜가 활발하게 적용하게 있는 판국에 한국 교회 목사님들은 이 칭조 세계 안에 하나님께서 활용하라고 주시는 그 은혜를 깡그리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성도가 비실비실 허약하게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하나님이 성도에게 허락하신 지혜요 은혜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힌국 교회는 이런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을 다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대자연에 담긴 원리와 성경의 원리를 편파적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한데서 기인된 결과입니다. 저는 나름대로의 오랜 경험과 탐구를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더 깊은 뜻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단지 평신도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무시하십니까?
목사만 주의 종입니까? 일반 교인들이 연구하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과연 주님의 종으로서 하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까?
물론 목사님께서는 열심히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 매진하지요. 저는 그것을 훼방할 의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들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열심히 활용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관점도
모든 것을 혼자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목사님들의 아집이요 근성이요 타성이요 교만이요 위선일 수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그래서 망한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사를 아무리 목사님들이라고 독점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일반인들의 주장이나 의견도 진지하게 들어서 배울 것을 배우고 취할 것은 취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데 보탬이 되면 그것마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 의견은, 사람들이 장차 죽어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라도 인간들이 주님의 주신 은혜를 제대로 다 누리지도 못함에서 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 십년동안 그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주신 지혜를 세상에 나누어주어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피로 구원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다고해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육체를 세상적이고 세속화된 의학지식에 횡포에 유린당하다는 그저 방치 할 수 없다는 사명감에서 이런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것은 나누어주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반박하신다면 정목사님은 뭐라고 하실 겁니까?
==========================================================================[re]다음과 같은 반박에 뭐라고 하실 것입니까? 정판옥 (Homepage) 2006-06-23 16:37:39, 조회 : 122, 추천 : 0
길게 답변을 적다가 그만 컴퓨터가 다운이 되어서 이제는 결론만 하겠습니다. 다만 그분에게 이해를 구하면서요.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루시는 분이시기에, 그래서 언젠가 반드시 불러 가실 터인데,그 때에 병들어 있든지(사실 모두가 병자이지만) 건강하든지훌훌 털고 '아이, 좋아라! 왠 횡재일꼬!' 라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그분에게 깨닫게 하신 은혜를 나누고 싶으신 여건과 환경이 주어진 대로 나누시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그래서 그분의 의견에 동의가 되시는 분들은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이구요.
굳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료하는 '치유생태마을'을 꿈꾸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회복만이 대안,예수님께서 친히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귀머거리와 눈 먼 자를 치료하셨고, 사도들도 복음전도를 위하여 병든 자들을 고치는 사역을 했고, 치유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무시되어 오고 있고, 교회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자연치유력의 일반계시의 은혜를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간과하거나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합리화를 하실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이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그 어떤 환경과 형편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며, 하나님을 배워가는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원해야 겠지요. 복음 안에서는 질병도 건강도 주의 은혜이고, 반대로 복음 밖에서는 그 무엇이든지 저주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목사님께서 올리신 그분의 글에 담긴 내용은 비복음으로 동의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한 공격도 감수해야 겠지요.
그리고 신앙은 어차피 본인께서 믿어지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다만 먼저 복음을 깨달은 자는 정죄하는 자리는 우리의 권한 밖이기에,긍휼히 여기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시기를 소원하고,속히 복음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소원해야겠지요.없음에서 있음 같이, 있음에서 없음 같이!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에 복음의 깊이와 넓이를....
==========================================================================[re]저의 견해 이근호 2006-06-24 08:29:37, 조회 : 105, 추천 : 1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간주하기 일수입니다.
학생이 석차를 높이고 싶을 때, 공부를 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깁니다.
어떤 백수가 내심 자기만의 치킨 집을 갖고 싶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깁니다.
수영 선수가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것을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싶어합니다.
개척교회 하는 목사가 교인 수를 많이 모으고 싶을 때, 자신을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깁니다.
이와마찬가지로
병든 환자가 건강을 되찾고 싶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깁니다.
특히 모든 인간들이 소망하는 것, 즉 살고 싶어 질 때, 사람들은 자기가 더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삶이란 생명에 근거해서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근거해서 정립됩니다.
그것도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죄없으신 분의 죽음을 통해서 말입니다. .
하나님은 인간들은 어쩌구니 없는 이런 오해를 겨냥해서 참된 자기 아드님을 십자가 죽음의 길로 가게 하셨습니다.
즉
'내가 살고 싶다'가 결코 하나님의 뜻일 수가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해서 이 땅에서 함께 죽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자연 세계, 자연 세계 하지만
이 자연 세계는 항상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정당화시켜주는 변질된 의미로서 받아들이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참된 진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꼭꼭 숨어있습니다.
건강하게 더 살고자 하는 자는 결코 찾아낼래야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계십니다.
자신이 죽어 마땅함을 십자가 앞에서 비로서 알게 된 자가 아니면 하나님도, 세상도, 대자연의 원리도, 인간도, 자기 자신도 진정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뜻을 꺾으시면서 다가오십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인간들이 자신의 죽음과 아품과 고생함이 참으로 지극히 합당하고 당연한 하나님의 올바른 조치임이 온 우주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의료행위가 곧 죄의 영역에서 죄를 발산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의학을 극복하고자 하는 대체의학의 시도도 죄의 영역에서 발산되는 죄악의 행위의 일종입니다.
대체의학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서양철학사 2강 녹취 올리기 전에 손하진 2006-06-23 14:00:53, 조회 : 72, 추천 : 2
저희집이 넷의 사각지대인지라 접속이 필요할 때만 몸을 움직여 넷을 찾아옵니다. 그래서 좀 늦었습니다.아래 장병엽집사님께서 서양철학사 모임에 대해 문의하셨는데 장소는 경북대 기숙사 근처이고 다음 모임은 6월 29일(목) 오전 9시 30분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참석할 의향이 있으신 분들은 당일에 경북대 기숙사 쪽문근처에 오셔서오전 9시쯤 연락을 주시면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010-2224-0726 손하진)참고로 지금까지 10번의 강의가 진행되었고 11번째인 다음 시간에는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부분이 다뤄질 것 같습니다.참석하시기 전에 서양철학사(상) 에 토마스 아퀴나스 부분을 읽어놓으시면 더 좋겠구요.
자 그럼 이번엔 2강 녹취를 올려봅니다. 몇 강 더 녹취가 되어있지만 한꺼번에 올리는 것보다 순차적으로 시간간격을 두고 올리는 게 좋을 듯 싶어 그렇게 하겠습니다.이번 강의는 약 3시간 분량입니다.
짧게나마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0~25번>>>>> 철학사를 바라보는 두 개의 큰 틀인 <과학으로서의 철학사>와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중에서먼저 <과학으로서의 철학사>로 칸트를 예로 들어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25~47번>>>>> 그리고 나서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는 '전체', '실존', '정신의 자기반성'등으로 세분화해서 각각의 접근방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8~74번>>>>> 이제 <고대철학>의 문턱 들어서게 되는데 여기서는 고대철학 시기 구분을 하고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가운데 <철학과 신화>의 밀접한 관련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특히 '디오니소스적인 신화적 세계관'과 '오르페우스적인 신화적 세계관'이 후대에 어떤 철학적 흐름으로 나뉘어 흐르는지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습니다.
*75~113번>>>>> 여기서부터 고대철학자들의 '아르케- 근원, 원리'를 찾아떠나는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 피타고라스는 '수',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아르케'로 본다는 얘기와 더불어 그 근거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113~171번>>>>> 철학사에 있어서 두고 두고 고민거리가 된 '생성'과 '존재'의 문제를각각의 대표주자들인 헤라클레이토스와 엘레아학파(파르메니데스, 제논)의 대결구도를 통해서 풀어놓고 있습니다.헤라클레이토스(115~129번), 파르메니데스(129~167번) 제논(167~171)
잘 지내시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손하진 성도님의 수고 이근호 2006-06-24 10:59:51, 조회 : 112, 추천 : 1
철학사 한 시간 녹취하는데 20시간을 꼬박보냈답니다.
이렇게 힘들게 녹취하셨으니
제발 많은 분들이 좀 보셔서
복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의 틀 한계 속에 놓여 있는가를 아셔야 합니다.
동시에
복음(십자가) 안의 세계가 이 세계와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월드컵 패배와 분노 이근호 2006-06-24 12:46:43, 조회 : 170, 추천 : 3
자기네들이
공간 속에서
그물 망 설치해 놓고
그곳에서 공 차넣기 게임을 시도하고서는
오프사이드 오심이라고 분노하고
하늘이 '대-한 민국'이라는 함성을 무시했다고 분노한다.
그러다
졸도하고
객사하고
과연
이들이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라도 있는가?
악마의 제전
붉은 악마들의 잔치!
스스로 만든 오락에다
논개처럼 몸을 던지고서는
그들은
영광스러운 일을 했노라고 말해왔다.
이제 깨졌다. 그 영광이!
하지만
악마도 지속적으로 다른 영광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하여튼
십자가의 영광에 분노하는데는
종교인, 비종교인 가리지 않고 한마음이다.
지옥 경험,
이것이 인생이다.
##############################################################################################고린도전후서강의(광주성경공부모임)를 다 듣고 난 소감 오용익 2006-06-24 13:37:58, 조회 : 120, 추천 : 3
어떤 사람의 일기장1
나는 생판 기독교도 예수도 십자가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우연찮게 성경을 읽게 되었다. 이것도 사람들이 진리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이니 끝가지 읽어보기로 작심했다. 처음부터 펼치고 보니 창세기 1장에 천지창조에 관한 기록이 죽 나온다. 하나님이 세상도 나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희한하게 믿어진다. 2장을 보니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나온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것도 믿어진다. 3장에 보니까 마귀 때문에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찌 이런 일이. 다 믿어진다.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 어렵지만 모르는 이야기 빼놓고 알아듣는 이야기는 그런대로 다 믿어진다. 계속해서 읽다보니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다 읽기로 작심했으니 어려운 부분들은 다음에 읽기로 하고 건너뛰면서 읽어나갔다. 드디어 신약에 오니 예수님이 나온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너무나 믿어진다. 그 다음에 계속 읽다 보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살라고 하는 명령하는 말씀들이 줄줄이 나온다. 맨 끝에 가니 천국과 지옥이야기가 나오면서 무서운 심판이야기가 잘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로 나온다. 그래도 대충은 알 것 같다. 아침이 부옇게 밝아 온다. 읽은 것을 대충이라도 정리해보자.
1. 하나님이 천지와 사람을 창조했다. 2. 난데없이 찾아온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타락을 하게 된다. 3.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한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시작한다.4.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이 그 일에 실패하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를 직접 보내주셔서 세상구원을 이룬다. 십자가를 나 대신 지시고 그 공로로 성령을 주심으로 하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도 한다.5.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결론이 나온다. 구원은 나에게 너무나 확실하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다 이루었기에. 그러나 아직 남은 것이 있다. 이제는 내가 구원받은 자답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사명이 남아 있다. 그동안의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청산하고 이제부터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한다. 어찌 하나님이 구원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을까? 나같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죄악된 이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그리고 세상을 처음 에덴동산같이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비록 십자가 지는 고통일지라도 말이다. 예수님처럼!(*)
(반론)
고린도후서 5:16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 되어 있다.
사도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두가지 안목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육체대로 아는 것, 그리고 하나는 영(성령)으로 아는 것이다. 육체대로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내 육체의 지혜를 동원해서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알고 십자가도 알고 교회도 알고 영생도 알고 사명도 알고, 무엇이든 자기 육체의 것을 동원해서 내 앞의 대상을 파악한다. 성령이 와서 도와주었다고 본인이 우겨도 형편은 달라지지 않는다.
흡사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귀고 알아가는 것처럼. 그런데 이런 안목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도 예수도 십자가도 교회도 영생도 사명도 그 모든 신령한 것에 대해서 일체 접근조차 허용되어 있지 않아서 조금도 파악 할 수 없다는 것이 성령받고 나서의 사도바울의 안목이다(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육체대로는 전혀).
성경을 아무리 파헤치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알 수 없고(요한복음 2장의 니고데모와 사도바울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성경의 박사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에 깃들어 있는 창조의 질서를 아무리 헤집고 파헤쳐 봐도 모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베드로는 완벽하게 창조의 질서마저 초월하는 식으로 물위를 걸었지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더 나아가 “육체대로 아는” 하나님지식이, 예수님(영)이 가지고 계신 하나님지식과 서로 충돌해서 일어난 사건이 십자가 사건(고전 2:8)이기에, 도리어 십자가의 영이 오게 되면 인간의 육체에서 비롯된 모든 지혜 - 예수 믿어서 구원받고 싶은 마음, 성령받고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 하나님 뜻대로 살아서 신령하게 살아드리고 싶은 마음, 이 타락한 세상을 바로잡아서 좋은 세상 만들고 싶은 마음, 큰 욕심 안 부리고 소박하게 살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직장에 충실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 대자연의 이치인 창조의 질서를 잘 연구해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치유방법으로 건강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이니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될 터이고, 나는 평생 죄만 질 터인데 왜 설쳐댈 필요가 있으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난리칠 것이 아니고, 주님이 어떻게 일하시나 구경하면서, 주님 오실 때까지 그저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살자 - 는 모든 인간의 마음과 그 마음을 쏟아내는 육체 자체를 죄악된 육체로 규정당하고 고발당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안목(지혜)은 십자가에서만 나온다고 한다.
왜 그래야만 할까? 왜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지혜를 헛되게 만드는 것일까? 여기가 중요하다. 모든 육체를 죄악에 가두고, 거기서 끄집어내는 일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하나님의 지혜)로만 되어서 십자가지신 아들의 공로만 높여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란다.(갈 1:4-5)
십자가에서 영의 안목으로 성경을 보면 이렇게 보인다.
성경 순서상 1장의 창조가 먼저이고 그다음 인간의 타락,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손길, 이런 식으로 인간중심 구원중심으로 보면 창세기 3장 15절의 약속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장치가 되지만, 십자가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보면 창조와 마귀의 유혹과 인간의 범죄, 이 모든 인간의 역사와 그 역사를 자아내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이 점이 육체의 안목과 영의 안목의 갈림길이다.
유일하게 아들의 영광만을 높이기 위해서 천지와 인간과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으며(골로새서 1:16), 유일하게 아들의 영광만을 위해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살게 되었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생명나무로부터 차단되어 죄 아래 놓이게 되고, 아들의 영광을 위해서 창세기 3장 15절의 약속을 이 세상에 내려주시고,
아들의 영광을 위해서 이 지상의 모든 육체가 오직 약속의 능력 외에 어떤 인간의 지혜로도 구원되지 못하는 죄아래 있음과 오직 약속만으로 구원됨을 증거하시고(인간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완벽하게 배제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구약이다-이근호 저, 하나님의 선택 참고),
아들의 영광을 위해서 그 약속 그대로 이루실 아들이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그 약속대로 이루실 것과 아울러 모든 육체는 한사람도 자력으로 죄아래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말씀과, 표적으로 증거하시고, 그 약속대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약속을 다 이루시고,
그 약속(십자가의 피공로)으로 지옥과 천국을 만드시고, 그 약속(십자가의 피공로)대로 마귀와 함께 지옥 갈 자와 천국 갈 자를 다 확정하시고, 그 약속대로 택한 백성에게 성령주심으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약속 안에 있는 생명의 세계(십자가의 영원한 속죄가 계속 작용하는)로 옮겨놓으시고,
그렇게 십자가의 공로만으로 부르시는 내막,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사 영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에게 십자가만 자랑하고, 증거하는 일을 하게 하시고,
그 약속대로 불택자에게 성령 안주시고 마귀의 유혹에 그냥 넘어가게 하사 십자가 안에 담긴 내막을 모르도록, 그냥 육체의 안목으로 이생의 보람을 찾고, 신을 찾고, 하나님 찾고, 예수 찾고, 십자가 찾고 교회 찾아서, 자기 육체의 자랑으로 일생을 헤매면서도 그것을 신앙심인줄 착각하고 있다가 지옥가게 하심으로 이 세상을 종결짓는다는 것.
오직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이루신 약속(새언약)을 기준삼아서! 따라서 여기에 어떤 인간의 육체의 자랑이 조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일을 한다고 하는 자기에 대한, 그리스도께서 주신 안목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 안목으로 이런 담대한 주장을 한다.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1;8-10 ‘그러나 우리가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에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고 그의 담대한 선포는 육체의 안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약속(십자가의 피의 능력)에서 나온 것임이 그대로 그의 일생에 담겨져서 발산된다. 육체대로 알지 않고 영으로 예수를 알게 된 사도의 일생을 보면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기준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린도후서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성령으로 예수를 알고 나서 더 이상 자기 육체조차 육체대로 알지 않는 안목이 열렸다는 뜻이다. 더 이상 자기 육체에 하등의 기대도 걸 수 없으며, 또 기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기 육체에 개의치 않으며, 그 육체의 자랑을 일삼는 세상 돌아가는 꼴과, 교회 돌아가는 꼴조차 개의치 않으며 그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피의 공로가 완벽함을 증거하는 그 점이, 사도가 자기 일생으로 제시한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자로서의 기준이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 가보자.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의 이 탄식을 들어보자.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에서 버려진 예수님의 죽음을, 곧 나의 죽음 내 육체의 죽음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만이 생명이 된다는 이점도 파악 되지 않은 자이다. 예수님의 용서를 환영할라치면, 예수님의 피가 규정하는 대로 무조건 자기육체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떻게 십자가의 피를 자랑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는 육체의 안목으로 본 욕망의 화신을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고 사기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자는 아직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자가 아니겠는가.
벧후 3: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노라
자기 육체에서 품어져 나오는 욕망과 그 욕망을 부추기는 마귀의 유혹을 자기 힘으로 잠재울 자 누가 있겠는가? 성령 안에 있는 십자가의 능력은 오늘도 성도의 육체를 확실하게 죽이신다. 그것만이 십자가공로로 인한 완벽한 치유이다. 그래야 내 육체(죽음)로부터 자유하게, 사도처럼 담대하게 이 세상에서 조차 하늘나라에 계신 예수님만 바라보는 영의 사람으로(생명)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 아닌가?
고린도후서 13:8,9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정말 건강한자 누구인가? 이정도로 십자가의 피에(진리)에 매인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이런 안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십자가에서만 생산된다.
* 고린도전후서 강의를 다 듣고 소감
광주모임이 시작된 지 일년 반 남짓 되었다. 고린도전후서 강의를 다 들었다. 고린도후서 마지막 구절
고린도 후서 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의 무리와 함께 있을 찌어다” 까지.
하나님은 예수님 중심으로, 십자가 중심으로만 일하신다는 것이 사도가 본 영의 세계였다. 십자가를 증거하는 일에, 그렇게 아들을 높이는 일에는, 하나님이 성도를 팍팍 밀어준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이 되도록 우리를 죽이고 또 죽인다는 것도.
십자가에서 시작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로 종결되는 정갈함.그리고 육체의 뼈까지 발라내지는 후련함!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많이 만났다. 당연 불평도 많이 했고 원망도 많이 했다. 강의 마지막 주간에도 그깟 3000원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 그 삼천 원의 마음고생이 사도바울의 삼층천과 비교되면서 나는 또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나는 정말 목사하고 싶지 않다. 점점 더 이 일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간다. 왜 목사가 되었을까 후회도 많이 했다. 설교의 한계가 오면 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 누가 이런 소리를 했는지, 그런 소리 한 사람이 얄미울 때가 많았다(^^).
고린도 교회는 엉망이다. 그 엉망인 교회를 누군들 성한 교회로 만들고 싶지 않겠는가?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의 교회들도 다 엉망 같다. 누구인들 그런 교회를 성한 교회로 개혁하고 싶지 않겠는가? 목사라면 이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을 하나님의 일로 당연히 여기지 않겠는가? 누가 그 엉망진창 속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빈틈없이 일하시는 예수님을 보겠는가? 누가 그 엉망진창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보겠는가? 그러나 사도는 본다. 영의 안목으로. 십자가의 안목으로.
강사목사님은 초장부터 그런 싹을 자르고 들어갔다. 성경은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도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고, 다만 주님이 교회가운데서 살아 계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증거했다. 어떻게? 성령 안에서. 무슨 일로? 십자가의 복음만 증거하는 일로. 왜? 교회를 사람들이 보기에 번듯하게 세우는 그런 일을 안 하시고. 사람들을 교회로 좀 더 많이 모으는 그런 일을 안하시고. 창조질서를 잘 살펴서 사람들을 치유하는 그런 일을 안하시고. 사람들을 경건하게 훈련시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자 만드는 그런 일을 안하시고.
십자가만이 산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기준으로서의 약속이기에. 이 기준 외에 다른 기준은 있을 수 없기에. 십자가 안에 있는 교회라면 이 기준을 흐리게 하는 어떤 짓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사도의 진리사랑이었고 교회사랑이었다고.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십자가만 자랑하라고 부름받은 영이기에.육체가 발산하는 죽음이 품어내는 욕망의 모습들,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총조차 일체 개의치 않으면서. 왜? 너무나 넉넉해서. 십자가의 용서가!
강사목사님의 마지막 말
한국교회의 어떤 점에 대해서 고친다는 발상자체가 틀렸다. 이단으로 간주하고 시작하자는 것. 그래야 복음만의 능력으로, 이사야 54장 1절처럼, 갈라디아서 4장 28절처럼 약속에서만,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교회가 출산될 것이 아닌가! 라는 것. 그래야 예수님만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
이 근호 목사님이 수고하셨다. 다음 달부터는 요한일서를 공부하기로 했다. 끝이 없다. 은혜는.서 경수 목사님은 녹취하느라 계속 수고하신다. 끝이 없다. 은혜는.
목사된 것을 후회하는 것조차 능가하는 이 큰 은혜로, 목사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영으로 건강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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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4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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