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궁극적인 것!] 2006-05-10
[십자가는 궁극적인 것!] 2006-05-10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십자가는 궁극적인 것!
이근호 2006-05-10 09:05:30, 조회 : 125, 추천 : 7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 영광된다고 받아준 적이 없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특히 아담도 궁극적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궁극적인 인물로 받아줌으로써
이는 곧 예수님의 행하심 외에서 그 어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거부하심을 분명히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전부를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고.
그렇다면 이러한 궁극성을 궁극성으로 증거하는 것이 주의 종의 할 일이다.
성경의 모든 밑바닥에서 "십자가만이 궁극적입니다"라고 고백이 나와야 마땅하다.
'하나남의 형상'도 아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아니다!
'삼위일체론'도 아니다!
'하나님 영광'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주장에는
인간이 개입되며, 그 인간에서 나온 나름대로의 추상적인 신(神)과 한 세트로 짝이 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자기를 하나님의 일에 집어넣기 위한 의미 찾기에 필요한 사건과 사건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건은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유발된 '십자가 사건' 뿐이며 그 십자가 사건은 그 어떤 인간도 배제되어 있다.(가롯 유다만 배제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단독 범행(?)이다.
결코 추상적인 신으로부터 출발할 사항이 아니다.
신을 버리고 십자가 사건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한다.
만약에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출발하지 아니하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철학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리새인과 사도개인을 못 따라가고,
결코 사도가 되기 전의 바울의 현학적인 지식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누가 감히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만들 수가 있는가!'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외쳤던 사람이고 거기에 맞추어 우주를 그려냈던 자들이다.
오늘날 이슬람교 사람들도 이에 못지 않다.
그들은 알라신을 지키기 위해
모든 일생을 건 자들이다.
그러나 정말 주님의 사도인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이거늘 누가 꾀더냐!"(갈 3;1)
따라서
심판권도 주님만이 독점해 있으며 구원권도 그 분만이 독점해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을 증거할 수 있는 성경해석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자기만의 궁극적인 것으로 따로 챙기고 있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은 훤히 알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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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광호 목사의 책 세권 - 제가 보기에는.......
정판옥 (Homepage) 2006-05-10 10:11:45, 조회 : 100, 추천 : 1
정준호님!
먼저 전제하기를 정준호님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접근함이 아님을 말씀드리면서,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정준호님께서는 이광호 목사님께서 주장하시는 아래의 글들을 가지고 앞뒤 문맥을 빼고서 그 부분만 지적을 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아래의 글들은 종교개혁 이후(물론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이만)
신학이 어두움 속으로 빠져 버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것이고,
그로 인하여 여러가지 신조들을 중심으로 하는 바른 교회 세우기로 나가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 안에서 펼쳐지는 이 세상 역사를
인간들이 빌어서 복받고, 바쳐서 복받고,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으려는
중세 로마교회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광호 목사님의 아래의 글들이 앞뒤 문맥을 설령 빼고 더하고 할지라도
주장하시는 바가 아닌 다른 내용을 이근호님께서 발췌를 해서 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비단 이광호 목사님의 글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또는 신학자들이 주장하시는 내용들이거든요.
정준호님께서 이근호님의 글을 받아 들이시는든지 그렇지 않든지
제가 어찌 할 수는 없는 문제이고,
그것 때문에 정준호님과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다만 제가 이렇게 답변을 드리는 것은
이근호님께서 없는 이야기 또는 앞뒤 문맥을 살펴보지 않고 하셨다거나
또는 그의 추종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추천을 해서
마치 이근호를 우상시 했다고 하셨기에
지적을 한 것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래의 글---
[구약 신학의 구속사적의 이해] p59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유기하신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유기한 자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되는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저자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하나님에게는 ‘의도적’으로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지옥을 보내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의도적일 수’는 없고 적극적 관여가 안된다는 것이다.
왜 이런 논리를 전개해느냐 하면 그 이유는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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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광호 목사의 책 세권 - 제가 보기에는.......
정준호 2006-05-10 16:24:18, 조회 : 100, 추천 : 1
정판옥 님, (그만 쓰려고 했는데 부득불 다시 글을 쓰게 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님께서 이광호 목사님께 아무런 사적 감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이근호 목사님께 사적인 감정이 없습니다.
저는 이광호 목사님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정판옥님은 이근호 목사님 말만 듣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에 정판옥님이나, 이근호 목사님의 서평에 (생각없이) 추천을 한 분들의 그런 반응을 지적하려고 했더랬습니다.
님이 아래 글에 인용한
// [구약 신학의 구속사적의 이해] p59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유기하신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유기한 자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되는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저자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하나님에게는 ‘의도적’으로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지옥을 보내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의도적일 수’는 없고 적극적 관여가 안된다는 것이다. 왜 이런 논리를 전개해느냐 하면 그 이유는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란다. //
님이 인용한 위의 내용에 대한 <짐작>은 전체적으로 이광호 목사님이 이야기하는 것과 완전히 틀립니다. 그 정도만 읽어봐도 이광호 목사님의 생각을 마치 훤히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은 주제넘는 태도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광호 목사님이 '유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은 이근호 목사님이나 정판옥님 짐작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즉 님이 나열한 중세 신학이 주장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이광호 목사님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선택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유기는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작품이라는 것 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려우니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님이 말한 아래의 글은 저자의 주장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지극히 위험한 주관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 사실 아래의 글들은 종교개혁 이후(물론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이만)
신학이 어두움 속으로 빠져 버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것이고,
그로 인하여 여러가지 신조들을 중심으로 하는 바른 교회 세우기로 나가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 안에서 펼쳐지는 이 세상 역사를
인간들이 빌어서 복받고, 바쳐서 복받고,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으려는
중세 로마교회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
이 말은 이광호 목사님의 생각을 이근호 목사님이나 정판옥님이 마치 훤히 다 알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또 제가 느끼기에는 이근호 목사님의 신학은 빛으로 인도하는 신학이고 이광호 목사님의 신학은 어둠 속으로 빠지게 하는 신학으로 말하는 처럼 들립니다. (만일 그런 의미라면 주관적일 뿐 아니라 오만한 생각이겠지요. 혹시 제가 님의 글 문맥을 잘못 이해했습니까?)
그러나 지금 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광호 목사님은 님의 짐작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일기로는 이광호 목사님 역시 십자가 마을의 주장 정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근호 목사님 쯤 되면 대충 봐도 이광호 목사님 정도는 충분히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되겠지요. (이근호 목사님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누구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위험한 생각이겠지요...)
만일 그렇게 되면 이광호 목사님 역시 이근호 목사님의 신학 정도야 훤히 꿰뚫고 보고 있어서 딱 보면 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좀 더 겸손해 지기를 바랍니다.
겸손과는 아예 거리가 먼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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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광호 목사의 책 세권 - 제가 보기에는.......
정판옥 (Homepage) 2006-05-10 17:49:33, 조회 : 96, 추천 : 0
정준호님!
'지금 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광호 목사님은 님의 짐작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일기로는 이광호 목사님 역시 십자가 마을의 주장 정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
정준호님! 그렇지 않아요.
// [구약 신학의 구속사적의 이해] p59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유기하신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유기한 자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되는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저자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하나님에게는 ‘의도적’으로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지옥을 보내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의도적일 수’는 없고 적극적 관여가 안된다는 것이다. 왜 이런 논리를 전개해느냐 하면 그 이유는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란다. //
정준호님께서 지적하신 이광호 목사님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선택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유기는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작품이라는 것 입니다.
위의 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내용이랍니다. 바로 님께서 말씀하신 그 문제를 지적한 것이예요.
저희 십자가 마을이나 이근호님의 주장은 이미 영원 전부터 택자와 불택자, 긍휼을 베풀자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자,
야곱과 에서, 토기장이에게 귀히 쓸 그릇과 천하게 쓰일 그릇, 이미 정해져 버렸다는 것이예요.
좀더 쉽게 이야기 해서 천국 갈자와 지옥 갈자가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이광호 목사님의 주장이나 또는 정준호님께서 지적하신 내용은
기존 대부분의 신학에서 동일하게 주장하는 바로서
저희들과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아예 출발 자체가 달라요.
그래서 이근호가 이단이고, 십자가 마을이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설령 같은 언약이라는 말을 쓰고, 같은 작정이라는 단어를 쓰고, 같은 십자가를 사용한다고 해도
저희들이 사용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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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판옥님.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고.....
정준호 2006-05-10 23:35:29, 조회 : 212, 추천 : 12
죄송한 말씀이긴 하지만 이제 보니 이근호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신을 따르는 아류를 만드는 것 이상 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이 목사님의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를 정제되지 않은 지나친 표현이란 일방적 언술은 사양합니다. 과격한 언어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이근호목사님의 단골메뉴라고 생각하고 저도 따라 사용해 본 것 뿐입니다.)
저는 사실 이근호 목사님의 글들을 간간히 읽으면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나를 닮지 마라. 나는 틀렸으니 성경을 다시 확인해라. 나는 더러운 욕망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혹 나보다 더 올바른 신학을 가진 이들이 있는지 주변을 잘 살펴봐라..."
이렇게 할 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심히 실망입니다. 앞으로도 제가 이근호 목사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쉬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목사님을 따르는 자들은 정말 우려가 됩니다. 그들중 다수는 이 목사님의 신학사상을 깨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목사님의 신학적 성향을 모방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이근호 목사님의 말이라면 그것이 곧 법이 되는 것은 아닐터인데...... '아니라, 아니라' '이근호 목사도 우리와 동일한 죄인이야' 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잖지 않습니까? 십자가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결국 이근호 목사님의 주장이 전부 옳다는 것 아닌가요? 이근호 목사님도 우리 시대에 그저 평범한 한 형제일 따름입니다.
이 목사님께서 말씀해 오고 있듯이 실제 이상으로 근거없이 무조건 이 목사님의 편을 드는 것은 기본적인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절대 다수는 그렇게 보입니다.
제가 이광호 목사님의 책을 앞에 펼쳐두고 다시금 확인하며 그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정판옥님은 최소한 그에 대한 진지한 확인을 한후에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도 없이 짐작으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자세가 아니지요.... 저는 솔직히 정판옥님이 마치 다아는 것 처럼 말하는 자세에 식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광호 목사님의 글을 접하지도 않고 저의 생각이나 이해를 한마디로 뭉개버리고 있는 것이니까요....
자기가 다른 사람이 주장을 한마디로 뭉개는 것은 십자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고, 남이 자기를 뭉개는 것은 악마가 하는 것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전형적으로 죄인의 더러운 욕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제가 한 주장이나 생각이 까뭉개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근거없는 <짐작>의 방망이로 사실을 당연시 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사실이 한심하다는 거지요..
만일 이근호 목사님에게 유고가 생기면 십자가 마을의 신학사상은 금새 지리멸렬해 져버릴까 정말 염려되됩니다. 주변의 인물들이 지금 처럼 그런 자세를 보인다면 말입니다. '이근호' 없이는 십자가의 의미를 올바르게 지탱할 수 없다는 논리는 지극히 유치한 생각 아닐까요?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며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것이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근호"도 "이광호'도 어느 누구고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다면 앞에서 말한 것 처럼 그것은 종교적 욕망에 의한 "인간우상화 작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수많은 장사치(목사)들이 보이는 또 다른 행태 이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좀 아픈 이야기를 남깁니다. 앞에서 정판옥님은 제가 지나친 표현을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야기는 이근호 목사님에게도 적용되야 합니다. 지나친 표현은 사실 이근호 목사님의 어법상 단골 메뉴라 보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님이 그런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저 같은 사람도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학시 위한 방법으로 그런 방법을 사용해도 문제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저는 이 목사님의 그런 어볍구사를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정판옥 님이 그것을 적용하려면 자기 주관에 따라 편파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근호 목사님과 저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만 합니다)
저는 이근호 목사님의 신학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그의 사상 중에는 다시 확인해야 할 내용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고 봅니다. 즉 그를 맹종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십자가 마을의 어느 누구도 그를 맹종한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맹종하는 아류들이 많이 있어보입니다. (이런 표현으로 인해 화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그렇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는 결코 탁월한 신앙적 영웅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이웃일 따름입니다.
이근호 목사님,
이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이 목사님을 맹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계시는지요? 제가 보기에는 이 목사님께서 한마디 하시면 아무도 이설을 말할 수 없는 분위기 말입니다. 그것은 결국 이 목사님께 인정받으려는 인간의 조잡한 심성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목사님께서 그 안에 계시면 보이지 않겠지만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그것이 들여다 보입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 목사님께서 이 주제에 대해 몇번의 글을 올리셨지만, 이광호 목사님의 신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저는, 만일 동일 주제에 대한 이광호 목사님과 이근호 목사님의 주장을 동일필체로 전환하여 익명으로 발표한다면 목사님의 추종자들은 상당부분 그것을 분별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이위에 쓰인 '이근호' 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따르는 정도라는 의미입니다. 이 목사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아직 멀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님의 폭넓은 지식과 광범위한 성경적 이해를 따라가기 힘든 미말의 사람이지만 사태를 분별할 힘은 어느정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교만한 말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목사님의 추종자들 처럼 잘못된 편견을 배경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저의 격한 표현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적으로 욕을 보이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대신 강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겠습니다. 이광호 목사님의 책들에 대한 이근호 목사님의 서평이 근거가 약할 뿐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생각을 저는 버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이근호 목사님이 역사상 성경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신학자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이 목사님,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퇴장합니다.)
* 이근호 목사님, 아래 최일규 라는 자 이 목사님이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사람이겠지요? 이런 수준의 사람이 목사님의 제자입니다. 이런 무례하고 기본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자기는 복음을 안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어줍잖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이 글을 쓰는 제가 나이가 얼마인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이근호 목사님이나 정판옥 님에게 힘이 되어 주려는 유치한 인간성만 보이고 있을 따름입니다. 십자가 마을에 이런 자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고언'으로 남기고 저는 아쉬운 마음으로 이곳을 탈퇴합니다. 삽자가를 안다고 하면서 실상은 불신자보다도 못한 이런 무례한 자가 더이상 없기를 바라지만 계속 생겨난다면 이 목사님의 복음전파 사역에 좋은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re] 정판옥님.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고.....
최일규 (Homepage) 2006-05-10 23:44:32, 조회 : 1, 추천 : 0
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고 있네.
누가 뭐라고 했나
정신 좀 차리거라.
인간이 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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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판옥님.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고.....
최일규 (Homepage) 2006-05-10 23:44:32, 조회 : 184, 추천 :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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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판옥님.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고.....
이근호 2006-05-11 07:49:06, 조회 : 181, 추천 : 8
귀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동일 주제에 대한 이광호 목사님과 이근호 목사님의 주장을 동일필체로 전환하여 익명으로 발표한다면 목사님의 추종자들은 상당부분 그것을 분별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이위에 쓰인 '이근호' 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따르는 정도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경 귀절 그대로 옮겨적어놓고 누가 섰느냐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받는다"라는 성경 귀절을 귀하가 사용하면 주의 말씀이 되고
조용기 씨가 쓰면 사용하면 듣는 사람이 지옥을 가게 되는 말씀이 됩니까?
귀하께서는
반박을 하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이광호 목사님의 성경을 보는 중심 안목은 이러이러한데 우리 이광호 목사님의 성경 해석은 바로 이러이러한 중심 안목에서 쏟아지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근호 당신은 마치 우리 이광호 목사님의 성경을 보는 중심 안목을 '거룩한 교회 되기' 혹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하기'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광호 목사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 오로지 이근호 당신과 같이 오직 십자가 중심입니다"라고 말이지요.
만일 저의 견해가 맞다면
귀하께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왜 동일하게 십자가를 중심으로 보는데도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성경 해석이 다른가?
즉 하나님은 '유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으시고, 그리고 여전히 십일조도 해야하고, 주일성수를 해야만 하는 식으로 성경 해석이 나오는지를 말입니다.
도대체 같이 십자가라고 하면서 왜 거기서 파생되는 논리가 어떻게 되었기에 서로 다른가를 저에게 질의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관심사가 이근호도 아니고 이광호도 추종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성경의 진리에만 있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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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 알바 중 삘 받아 생각나는대로...
신직수 2006-05-12 05:31:20, 조회 : 161, 추천 : 2
하나님은 십자가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영광인데, 그 실체는 예수님의 십자가에만 있다.
심판권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으며 십자가로 이미 끝낸 상태여서 인간들은 심판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거룩은 성화용이 아니라 증거용이다.
거룩은 사명이며 비전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로 죽이심을 누리면서 감사하는 것이다.
천국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인간들을 물귀신 작전으로 죽이시고 죽인 것들 중 함께 살리심으로 자기 것들을 챙기셨다.
십자가는 죽인 자들 중에서 불신자는 부활치 못함으로 성령을 훼방하는 처벌을 받았고
성도는 부활함으로 예수님을 끝내 찬성하는 상을 받게 되었다.
십자가의 죽이심은 모든 것을 끝장냈고 부활함의 살리심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
전도는 십자가에 가로막혔고 부활의 적용으로 오메가 되었다.
회개는 십자가로 제한되었고 부활의 능력으로 다 이루셨음을 안다.
말씀은 십자가가 제대로 선포하셨으며 부활하심으로 그 완벽함의 진수가 드러났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하심으로 그 의의 진수를 말씀하셨다.
교회는 십자가 속에 숨어있다가 부활의 몸에 비밀스럽게 다시 숨으셨다.
찬양은 십자가 예수님에게 하고 부활을 믿음으로 핵폭탄처럼 터진다.
기도는 십자가의 죽이심에 감사하고 부활의 명령에 복종되어 쉴새없이 감사한다.
자유는 십자가로 시작하여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그 맛의 진수를 알게 된다.
구원도 십자가와 그 부활하심의 능력에 있다.
성령님의 역사는 십자가와 부활의 지혜로 하신다.
십자가는 언약의 신실하심이며 부활은 언약의 증거이다.
설교는 십자가 안에서 해야하며 십자가 설교는 부활한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다.
죄는 시작하신 분 예수님이 십자가 피로 정리하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어두운 세상에 가둬놓으셨다.
율법 또한 십자가와 부활하심으로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은혜는 십자가 죽임 당함이며 부활로 은혜 위에 은혜 되었다.
은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라고 주신 것으로 주신 이유는 "니 꼬라지를 알라" 이다.
주 되신 예수님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기능이 완벽발휘되었고 부활의 능력으로 완벽정상화되었다.
인간들의 주일이 십자가로 퇴치되었다가 부활의 중심속으로 숨어 주 예수님 품속에만 존재한다.
인간들의 십일조와 헌금 또한 십자가로 폐지되었고 부활의 지혜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인간 전부의 행함은 십자가로 그 효과 없음을 분명히 하셨고 부활로 더 이상 의미없게 되었다.
기독교는 십자가 주로 말미암아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부흥은 십자가와 부활안에서 출발하여 진행되고 끝이 났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십자가와 부활로 얘기하셨다.
성화는 예수님이이 “없다.” 라고 하셨으며 예수님의 성화는 십자가와 부활의 확실한 내용을 살아가면서 확인되어지는 것이다.
신 구약의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하심의 적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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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예수님 - 알바 중 삘 받아 생각나는대로...
정판옥 (Homepage) 2006-05-12 06:16:05, 조회 : 136, 추천 : 0
아멘, 아멘....
겨우내
두더지처럼 숨어 있다가
갈바를 몰라
꾸벅꾸벅 졸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깨우시는군요?
내내 평안 하신지요?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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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예수님 - 알바 중 삘 받아 생각나는대로...
신직수 2006-05-12 13:46:15, 조회 : 123, 추천 : 0
글 쓸때나 토크할 때 다른 동넨 담대한데,
이 동넨 제 맘이 부담이 되요
다 어른들이고 존경되는 분들이라 그런지..~~;; 참..
두 번정도 제 92학번 동기 까페다 글 올린 적 있는데
이해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습니다.
거의 다 대학원졸인데 말입니다. ㅋ
공격하는 친구도 답글다는 친구도 없더라구요
정판옥 목사님, 저도 정말 뵙고 싶습니다.
대구 내려가 교제하며 일하며 스포츠하며 살고 싶은 맘이 하루에도
한 열번 이상 생각나는데,, 아직..이게..상황이 안되서요...ㅋ
수련회 때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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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 답을 찾아서
오용익 2006-05-22 11:00:47, 조회 : 177, 추천 : 1
아이들이 교회주변을 어지럽게 뛰어 놀다 그만 남의 밭에 심어 놓은 마늘대 여러개를 부러뜨린 일이 생겼다.
그일로 부아가 치민 밭주인이, 비어 있는 사택에 찾아왔다가 허탕을 치고는 분을 삭이지 못한채 한동네에 살고 있는 모 여집사에게 찾아가서 분풀이를 했는지 어쨌는지(그랬다고 하니까 그런줄 알았다)
그리고는 주일 예배 마치고 돌아가는 길, 그냥 돌아 갔으면 큰일날뻔 했다는 몸짓으로, 가다말고 홱 등을 돌린 여집사는 사모를 다짜고짜 부르더니 뭐라고 뭐라고 쏘아붙이듯이 마늘밭 이야기를 던지고는 달아나듯 가버렸단다. 불쾌하고 화난다는 몸짓이고 표현이다.
망가진 것을 변상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가서 살펴보니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닌듯 해서 마음이 많이 놓였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농작물을 자식처럼 여긴다. 한개든 두개든 자식처럼 공들여 키우는 것을 망쳐놨으니 당연 화가 날것이다. 자신이 공들여서 만들어 놓은것을 건드리면 화가 나고 적으로 간주되는 것은 이상할것이 없다.
그 밭주인이 내 자식의 다리를 꺽어 놓는다면 아마도 내가 가만있지 않을것 같다. 그 밭주인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어질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 밭주인의 심정이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밭주인은 그렇다 치고 그것을 전해들은 여집사님은 무엇이 그토록 화가 났을까? 같이 농사짓는 입장에서 자기일처럼 여겨져서? 목사나 사모 대신 욕을 먹어서? 목사나 교인의 자식이 교회 망신을 시켜서? 목사나 사모가 사택을 비워놓고 다른데 가서 살면서 출퇴근 하듯이 목회한대서?
내가 생각하는 답은 그냥 이렇게 ( )로 묶어 놓는다.
마침 “매월 넷째주 금요일”로 정해놓은 “광주의 성경공부 모임”이 있는 주간이다.
거기서 속시원히 답을 얻어 볼 참이다.
사람은 왜 분을 내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나도 참 화를 적지 않게 내면서 사는 편이다. 화내고 나면 기분 드-러워서 될 수 있으면 좋게 살고 싶은데 화나는 일이 꼭 생기고 화를 내게 되고 그런다. 나만 아니고 다들 화를 내면서 사는 것 같다.
거기 갈때도 화를 낼때가 많다. 길이 좀 막혀야지. 발걸음을 세시는 주님을 믿기에는 가는 길이 멀고 아득하게 느껴질때가 많았다. 강사목사님은 나보다 더 멀리서 오신다는 이 사실조차 약발이 떨어진지 오래고, 더 먼데서부터 이 모임에 참여 하는 몇몇 형제 자매들도 있다는 그 사실은 약발이 좀 오래 가려나?
나같이 화 잘내는 못난 인간, “그까이거” 하면서 기죽이기 위해서라도 먼데서 오는 분들 힘들어도 꼭 오시기를 바란다. 사명감을 가지고서 말이다.
“사명감 떨어지면 남는 것은 자기 죽을몸 챙기는 일 이거 하나 달랑 남는단다. 이것 처럼 비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지난 달의 공부중에 기억나는 말)
이번주 부터는 모임시간이 한시간 뒤로 연장되었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한다.
6시 30분까지 오시면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도 함께 할수 있다(내 아내는 지난달부터 이 사실에 좋아 죽는다)
이번에 가는 길은 화내지 않고 무사히 갈수 있을까? 한시간이라는 여유가 주어졌으니 그 시간만큼의 여유공간이 내 마음속에도 자리해서 내 분냄을 삭여줄수 있을지 어떨지.
그냥 하는 이야기다. 아무 상관도 없다.
화가 나더라도 갈거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갈 참이니까.
속시원히 답을 주는 현장은 말씀의 자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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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속시원한 답
이근호 2006-05-22 12:11:32, 조회 : 186, 추천 : 3
예상치도 못한 사태가 왜 내 허락없이 일어나는가?
내 허락도 없이!
하나님은 나에게 약간의 낌새로 주지도 않고 말이야.
내가 내 행함으로 대비하는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도 주지 않고 말이야.
하나님은 내 허락도 없이 내 인생에 관여하는가?
하나님은 내 허락도 없이 매일 내가 만들어나가는 나의 환상을 짓밟는가?
마치 마늘밭 뭉개듯이
어린아이들은 내 일을 망치는 천사다.
오목사님
저 같으면 그 어린 아이들에게 몽둥이들 들 것입니다.
"너희들은 천사인 줄 모르고 왜 남에게 피해주는 악마짓을 하느냐"고
이것은 그 철없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늘 매들 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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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속시원한 답
오용익 2006-05-22 14:57:07, 조회 : 221,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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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시원하다 못해 얼어 붙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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