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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야기된 비복음적 행태] 2005-12-14묻고답하기-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야기된 비복음적 행태] 2005-12-14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야기된 비복음적 행태
이근호 2005-12-14 18:01:33, 조회 : 216, 추천 : 13

목사님, 오늘도 컴퓨터 이야기 좀 해 드릴께요.

컴퓨터는 지금은 사람의 말도 알아 들을 정도로 발전을 하고 있지만, 표현할 수 있는 숫자가 0하고 1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지 막지 하게 큰 숫자들을 다 계산하느냐고요? 그리고, 어떻게 거의 무한한 종류의 색깔을 표현하며,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색깔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냐구요? 어떻게 막 갈겨쓴 글자도 다 인식을 해 내느냐고요? 이것을 다 설명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안되지만, 간단한 것부터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교회의 기쁨과 충만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원래 반도체가 나오기 전에는 트랜지스터로, 그 전에는 진공관을 주욱 배열해서 컴퓨터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진공관을 보시면, '꺼진' 상태 (0) 와 '켜진' 상태 (1) 밖에는 무엇을 나타낼 (즉 표현 할) 방법이 없거든요. 그러니 사실 진공관 하나 가지고 컴퓨터를 만들면 0하고 1밖에 나타낼 수가 없어요. 이것을 전문용어로 2 state machine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진공관 두 개가 생기면, 00, 01, 10 (십진법으로 2), 11 (십진법으론 3) 이렇게 네 개의 숫자 혹은 상태 (state)가 표현 됩니다.

무지, 무지 원시적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진공관 세 계면 8가지, 네 개면, 16가지가 표현되거든요.

그래서 2진법으로 모든 것이 나가고 (표현되고), 진공관을 하나씩 더 붙이면서 표현되는 숫자의 크기와 상태들이 늘어납니다.

자, 보십시오.

2, 4, 8, 16. 32, 64, 128, 256 (8 bit 짜리, 진공관 8개, 아주 중요한 숫자), 512, 1024, 2048...... 이렇게 점점 커지지요. 그 다음엔 상상에 맡겨 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러합니다.
(목사님께서 교회가 점점 ‘배’가 되는 이야기를 쓰셨길래 요. 30, 60, 100 등으로.)

만약 진공관이 없어서, 켜진 것도 아니고 꺼진 것도 아닌 그런 것으로는 딱 한 가지 상태, 그냥 '있다' 밖에는 상태가 없다고 한다면, 그리고 1만 있다면 (즉 혼자만 있다면) 거기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갖다 놓아도 숫자는 늘어나지가 않습니다. 즉, 1을 무한히 곱해도 1입니다. (1x1x1x1x1x1=1이거든요. 그것을 전문용어로는 1 state machine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1 state로는 computer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을 필요로 하신 이유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 혼자 계시면 하늘 나라가 확장이 안될 것 같습니다. 교회도 그런 것 같군요. 나 혼자 있어서는 제대로 자라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요? (즉 1 state church가 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주님과 나, 목사님과 나, 목사님과 너, 나와 너, 형제와 형제, 형제와 자매, 그렇게 나가더니, 진공관 숫자가 늘어나듯이 형제, 자매, 형님, 동생, 아버님, 어머님, 목사님, 바울 목사님, 황 목사님... 이렇게 배열이 되면서 2진법으로 막 늘어나기 때문에 이제는 1024에서 2048로 넘어가는 시대이고, 조금 더 있으면 2048이 4096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 다음은 더 신나는 8192가 되겠지요. 신나는 상황이 오는 것이지요.

또 한가지. 진공관 2개가 있으면 네 가지 숫자가 표현되듯이, 제가 ‘웃음’ 그리고 ‘찬양’ 이란 두 개의 표현을 가지고 있고, 목사님도 웃음과 찬양이라는 두 개의 상태를 오늘 가지고 계시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렇습니다.

웃음:웃음, 웃음:찬양, 찬양:웃음, 그리고 찬양:찬양. 입니다. 대구교회 생활이 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하하)

표현하는 상태를 좀 바꾸어 보시지요. 사람의 감정과 상태는 너무나 다양하니까요. 거의 무한대로. 제는 그냥 웃음, 찬양이라는 두가지를 표현하고, 목사님은 충만과 평강을 나타내신다면,

웃음:충만, 웃음:평강, 찬양:충만, 찬양:평강 이 나타나니, 얼마나 더 좋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컴퓨터를 훨씬 더 넘어섭니다. 훨씬 더. 즉 사람은 거의 무한한 다른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쉽게 설명해서 제가 100가지의 종류 다른 '희락'을 나타내고, 목사님이 또 100가지의 종류가 다른 '충만'을 나타내신다면. 즉, 저는 희락0, 희락1, 희락2, 희락3... 로 나가고, 목사님은 충만0, 충만1, 충만2, 충만3로 그렇게 다르게 표현을 하신다면, 저와 목사님 둘 만 모여도, 100x100 = 10000, 만 가지의 색깔다른 '희락과 충만'을 막 연주해 낼 수 있고,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이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어둠이 들어오면, 만약 제가 ‘질투’와 ‘어두움’을 표현하고, 그리고 바울 목사님이 ‘정죄’와 ‘침울’을 표현하는 진공관들이라면, 이렇게 되겠지요.

질투:정죄, 질투:침울, 어두움:정죄, 어두움:침울. 이러면 교회는 끝장나는데, 대구교회 아닌 많은 교회가 두 사람만 모여도 이 상태로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화합하여 각 자 두가지 기쁨을 나타내면서 주님을 섬기면, ‘두 개’의 색깔 있는 기쁨이 아니라 ‘네 개’의 ‘개성’ 있는 기쁨이 나오는 것이고요. 교회 식구들 네 명이 모여 기쁨에 넘치는 각기 다른 색깔의 간증을 두 개씩만 하면, 우리는 모두 16개의 ‘색깔 있는’ 웃음과 환희를 느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그러므로 교회의 형제와 자매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또 각자가 여러가지 종류의 좋은 상태를 표현한다면, 우리는 정말 거의 무한한 종류의 즐거움과 희락과 평강과 웃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도 증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반대로 위에서 증명한 것처럼, 우리가 우울과, 부정과, 어두움과, 침울과, 정죄와 뭐 이런 것들을 한 사람이 두 가지씩만 표현해도 네 사람이 모이면 16가지의 ‘색깔이 정말 우중충한’ 암흑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지요.

이제 대구교회가 1000-1500의 형제, 자매가 똘똘 뭉쳐 무한히 재미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이유는 아주 자명한 것입니다. 조금도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것이 없으므로. 그리고 형제, 자매들이 각자 두 가지의 다른 기쁨을 표현해주기만, 하면, 우리는 위의 공식에 의거하여 거의 무한대의 ‘색깔 다른’ 기쁨을 나타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소리 나는 인생’으로, ‘웃을 수 있는 인생’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인생’으로 만드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각자 하나가 아니고, 같이 모이면, 정말 무한대의 다른 종류의 기쁨과 웃음을 막 끽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죠. 다만 우리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의 성분으로 조성되어서, 흙의 자리의 찬양을 매일, 매일, 각자의 독특한 색깔로 나타내는 곳에서 이런 ‘무한대’의 기쁨이 나온다고 증명이 됩니다.

목사님, 컴퓨터까지 동원해서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사랑방의 기쁨’, ‘교회의 충만’ 등을 수학적으로 생각을 해도 즐겁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너무나 아멘이 되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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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파동, 남의 일 아니다
최종운 2005-12-20 21:19:26, 조회 : 141, 추천 : 13

황우석 파동, 남의 일 아니다

최종운(pinganma) [조회수 : 72]

후기 자본주의, 전통적 산업사회, 첨단 전자 산업과 생명공학 산업이 혼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전문 직업에 따른 제각각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대학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각 분야의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인재를 교육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회가 점점 세분화되어지고 전문화됨에 따라 자기 영역만 알고 그외는 무관심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 이외는 상식적인 지식을 제외하고는 모르기 마련이다. 법률도 그렇고 의학도 그렇고, 이렇게 보면 붕어빵 굽는 것까지도 전문적인 분야에 속한다.

그러니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서는 사기를 당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게 되어 있다.하물며 변호사도 사기를 당한다고 하지 않는가?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서는 어느정도의 직업관, 윤리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만, 그 외에는 다소 무관심과 무신경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번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허위 논문 파동은 이런 나를 위주로 한 시스템 밖에는 무신경한 우리 사회의 구조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 우리나라의 기후는 혹한의 겨울이지만 뜨거운 열기로 전국을 달구고 있는 이슈가 다름 아닌 황우석 줄기세포 파동이다. 많은 주당들이 술을 먹을 때 안주거리로 삼고 있다. 단골 술 안주인 정치 이야기는 저멀리 팽개쳐버린 채 말이다. 이번 파동은 어느새 국민들 모두가 최첨단 생명공학의 상식을 업그레이드해놓는 교육장이 되기도 하였다. 왜 이런 희대의 최첨단 사기가 가능할까? 전문적 지식은 무식한 대중을 속일 수 있다는 걸로 판단되는 걸까? 그렇지가 않다. 애당초 수많은 세계의 생명공학 박사들을 사기치려고 한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인간성의 문제이다. 한 개인의 죄성이 가득찬 인간성이 이 세상를 평화와 재앙으로까지 몰고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어느 전문가라도 인간성이 바르지 않으면 그것은 개인에게는 불행이고 사회에서는 재앙이다. 비록 목사라도 교수라도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결과는 돈과 관련된 인간성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전문적인 지식이 얼마만큼 위험하고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몰고가는 사태로 갈 수 있다는 최첨단적 위험스럽고 불안전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생명공학의 전문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저 뉴스로만 접할 뿐이다. 이번 황우석 교수 허위 논문 파동을 보면서 그 사실과 허구를 가늠할 수 있는 일반적 상식은 가졌다고 본다. 이미 언론은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줄기세포가 없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났다.

15일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의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없다"는 폭로와 MBC PD수첩 후속부 특집 방송을 시청한 국민과 네티즌은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발표했던 연구 성과의 진실성에 대해 큰 혼란에 빠졌다. 이번의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의 언급이 실제 사실이라면 황우석 교수뿐 아니라 정부와 과학계 또한 국민들의 왜곡된 정서 등 모두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말 그대로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치닫으며 동시에 심리적으로 공황 상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있지도 않은 줄기세포로 세계적으로 사기를 치다니 참 암담하기만 하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를 옹호하던 그많은 사람들,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분들이 줄을 지었고 마치 목숨이라도 바칠 듯한 순교적 분위기가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가 지배하였다.

이렇듯 진실은 어떻게든 드러나게 마련이다. 단 그만한 진상 파악 노력을 하고 혹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드러나는 법이다. 문제는 부패와 비리가 고착화되고 시스템화된 우리 사회의 악의 구조 속에 숨어 있는 거짓이 순순히 밝혀질 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줄기세포 논문의 위력 은 맹목적 애국심으로 무장한 여론이 막강한 언론인 MBC를 궁지에 몰고 가고 PD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그 막강한 언론도 그럴진데 힘없는 개인은 찍소리도 못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놀랍게도 과거 안기부의 도청 사건과 정치적 의혹 사건들이 줄줄이 터져나와 밝혀지고 있는 투명한 사회로 전환되는 시점에 놓여 있다. 어느 대형 부정부패의 사건인들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번 허위 논문 사태는 내부 제보자와 언론의 힘이 컸다.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이 시점에 우리 한국교회 안의 실정을 살펴보자. 황우석 교수의 허위 논문은 내부 제보자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실험과 검증이 가능하기에 거짓임이 드러났지만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내부로 가 보자. 한국교회의 목사들을 양성하는 신학대학의 교수의 논문 가운데 이런 거짓 논문이 없다고 장담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문제가 지금 시점에서 왜 이런 의구심을 가질까? 그것은 "아! 이렇게도 사기를 치는구나" 하는 최첨단적 신종 수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머리 좋은 한 사람이 수많은 멍청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번 황우석 교수 파동으로 인해 느낄수 있었다. 황우석 교수가 불자라서 다행이지 그가 만약에 하나님 이름을 팔아 한 점의 부끄럼이 없다고 했을 때 한국교회의 반응은 어땠을까? 성명서를 낸다, 기도회를 한다, 촛불시위를 한다 등등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학교를 투명하자고 하는 사학법 개정에도 이렇게 야단을 하고 순교를 각오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학대학 교수, 대형교회 브랜드 목사, 부흥사, 간증 전문가들의 논문, 설교와 예화 간증의 검증 작업이 부족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가공하고 허구의 논문, 허구의 예화와 간증들이 진실된 것으로 전달되어질 때 순진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적인 진실로 받아들이는 오류가 무수히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부흥사와 간증 전문가들은 이번 황우석 교수와 같은 허위의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감히 누가 무슨 수로 검증 작업을 하겠는가? 같은 통속인데 누가 누구를 검증하자고 할 것인가? 병이 고쳐졌다, 암이 완치되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이렇게 기도하였더니 축복을 받았다, 십일조를 하였더니 사업이 번창하였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어 물을 넣었더니 가더라 등등 이런 류의 예화들을 미사여구의 수식어로 실제 상황처럼 연출, 각색하여 성도들을 속여왔고 성도들은 무조건 믿었다. 의심은 털끝만큼도 가지지 않았다. 그게 믿음인 것처럼 여겼다. 마치 이번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허위 논문 파동처럼 영웅으로 애국자로 난치병 치료의 구세주처럼 열광하였던 것처럼 주의 종들을 우상화하고 대접하고 열광하는 데 바빴다.

최첨단 생명공학의 분야에서도 이런 조작의 진실이 드러나고 각종 의혹들이 과거사 진상 규명 차원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한국교회 안의 신학과 목회에 있어서 수많은 의혹들도 이런 검증 작업과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000교회와 몇몇 대형교회가 이런 의혹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따라서 황우석 교수 파동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한국교회의 질적인 차원에서 반성과 개혁과 자정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황우석 교수 파동은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국제사회에서 최첨단으로 창피를 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엄청난 국익이 하루아침에 엄청난 손실로 곤두박질쳤다. 엄청난 국가 재정 지원, 후원회의 지원, 명예 등등의 인센티브의 유혹에 자기의 학문적 양심을 팔았다. 이는 앞서도 말했지만 개인의 도덕적인 양심과 죄성을 소유한 인간성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안에 잠재되고 있는 거짓과 의혹들이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으로 포장되고 있는데 그런 진실들이 언제까지 감추어진다고는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도 제2의 황우석 교수와 같은 신학대학 교수, 브랜드 목사, 전문 부흥사가 없을까? 그렇지가 않다. 분명히 숨어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보편적 은혜주의 포장에 가려진 정의와 개혁적인 기독 언론과 양심있는 내부 제보자가 없었기 때문에 은혜롭게 그런 비밀이 유지되어 왔을지도 모른다. 세계교회사 중에 유례없는 부흥과 성장이 오히려 세계교회에 유례없는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교훈을 이번에 우리는 느꼈다. 그렇다면 어찌 될 것인가? 양심선언이라도 해야 하는가? 아니면 관례상 은혜로?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는 게 미덕일까? 그것은 한국교회 양심 있는 교수와 목사들과 성도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기도히면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최종운 / 치유·생태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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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황우석 파동, 남의 일 아니다
이근호 2005-12-21 07:56:21, 조회 : 234, 추천 : 12

문제의 핵심은 딴 곳에 있습니다.
과연 과학 자체에 국민들이 관심이 있느냐 아니면 과학의 성과에 관심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어떤 수학자의 발표한 논문에는 관심이 없고 그 수학자의 허우대와 월 수입과 교수직이라는 명예가 구미에 당겨나 혼인을 결정하는 아가씨와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는 사물의 이치에 대해서 외롭고 쓸쓸하고 순교적 각오를 가지고 매달리는 것이 바람직한 과학자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과학자로 하여금 명예와 재물에 현혹되도록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는, 이번에는 역으로 그 과학자의 순수한 연구열의까지 매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끔 합니다.
과학적 성과란 수 천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얻어질 수 있는 사항입니다. 결코 부동산 투기하듯이 곧장 성과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외로운 발명가가 자기 집안의 모든 재산을 거들내면서도 마치 마약 중독처럼 매달려서 남들보기에 대수롭지 않고 돈도 안 되는 기발한 발명품 하나 개발되는 겁니다.
이것은 곧, 과학자나 발명가의 ‘자기 만족’의 대가입니다.
마치 예술가가 아무에게나 팔지 않고, 또한 팔릴 가능성도 없는 작품에 몇 년 채 매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황우석 박사의 영롱이(복제 소)나, 스누피(복제 개)나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출시는 일종의 그 분의 자기 예술혼이 담겨 있는 필생의 자기만의 작품입니다.
조각가가 하나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수 십차례 이미지를 바꾸고, 소설가가 하나의 작품을 위해서 수 십 차례 수정을 하게 되고, 작곡가가 하나의 작품을 위해 수십 차례 곡을 다시 쓰는 것은 MBC나 기타 언론의 외부 압력에 못 이겨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외부인들은 그 예술가의 작품을 낳게 된 노고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아니하면 되는 겁니다.
(고대에는 예술가와 과학을 같이 보았습니다. )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완벽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예술행위에 무슨 완벽이라는게 성립됩니까?
완벽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황 박사에게 국민들에게 무엇을 속였으며 국민들에게 황 박사에게 무엇으로 속임을 당했단 말입니까?
박지성 선수가 루니 선수처럼 많은 골을 못 놓고 겨우 이제 한 골 넣은 일이 국민들을 우롱하고 속인 행위입니까?
과학 자체가 시행착오를 거쳐서 위대한 성과가 나오기 마련이고, 그 시행착오 자체가 어떤 특별한 성과를 얻기 위한 필수 코스인데, 도대체 황 박사에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요?
논문에 하자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과학자들 자기 세계에 있어 게임의 률에 관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가정에서 식구들 끼리 식사하면서 “엄마 나 배불러 그만 먹을래”라고 아이가 이야기했다면, 보통 가정에서 그냥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그냥 통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과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가정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고 다음과 같은 리포터를 요구합니다.
“애야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랬잖아. 현재 나의 위가 얼마까지 수축할 수 있는지 수치를 이야기해야 하고, 앞으로 더 들어갈 수 있는 음식의 양과 그 다음 식사시간까지 사용가능한 유효 재고 에너지가 얼마쯤 여유 있으니까 더 이상 나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확실한 데이터를 아울러 제시하면서 자기 주장을 해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논문 조작이야”라고 말입니다.

과학자들이 일반 국민에게 특별한 성과를 발표할 때나, 과학적 인식 절차가 너무 난해하고 탄탄한 과학기초지식의 축적을 요구하는 일이기에 거두절미하고 이슈가 될만한 사항만을 소개하게 마련입니다. 나머지 사항은 과학계 내에서 철저하게 상호의견 교환이 있게 마련이고, 특히 새삼 지적되어야 될 것이나 보완될 것은 그 다음 논문에서 점차 보충되면서 과학 기술을 축적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조각가의 조각이 국민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실제로 국민들을 가장 속이는 자들은, 구약 이사야나 선지자들이 통렬하게 지적하는 것처럼 아무 노력도 없이 남의 노력을 이용해서 자기 잇속을 채우는 비희생적이고 비봉사적인 의식입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교회를 못 키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설립이나 유지 자체가 결코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있습니다.

절이나 성당이나 교회는 종교단체를 건립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몸’이 이미 이 지옥같은 세상 한복판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살아있음을 증거하는데 있습니다.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증거하는게 관심이 있지 않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앞장 세워 사업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참된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이 주님에게 달려있는 사항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존립이 좌우된다는 사상이 이 사회에 확산시켜 결국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의 훼방꾼으로 나서게 됩니다.

즉 참된 그리스도의 종은 종으로 인정 못 받고, 교회 부흥으로 신의 계시를 확정지으려는 사기꾼들만 참된 그리스도의 종으로 인정 받아, 기독교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이 핍박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교회 자체가 이단임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완벽을 앞장세워 측정에 나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은 인간의 완벽성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피’의 효력 앞에 자신을 부인하므로서 증거될 뿐입니다.

저는 황 박사의 파동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건방지고 교만한가를 새삼 느낍니다. 과학자의 자발적인 봉사정신이 어느새 여론과 명예와 재물이라는 유혹으로서 변질시켜놓고서는 이제와서는 자신들이 요구하는 완벽이 미흡하다고, 명예와 재물과 여론으로 벌을 내리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아파트 투기 정신’과 동일한 겁니다. 노동자들이 저 추운데 공사한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에는 관심이 없고, 저 아파트에 투기하면 어떤 이익차액을 얻겠느냐만 생각하는 이 더러운 자본 위주의 사고방식이 오늘날 이단의 기독교를 크게 키워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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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황우석 파동, 남의 일 아니다
정판옥 (Homepage) 2005-12-21 10:06:43, 조회 : 161, 추천 : 11

목사님의 글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네요.
그리스도의 자기 백성을 향한 그 사랑 안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기준에 대한 허구!
각자 자신들만의 선악의 기준으로 상대방에게는 엄격하게 적용을 하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뻔뻔함!
오늘 우리의 죄인된 모습이 아니겠는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차피 멸망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으로서
이 세상에서의 희망과 미련을 버리게 하시려는 현장학습이 아니겠는지요.
그리스도로 인한 부활의 소망! 영원한 생명에 감격!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사모함과 소망!
오늘도 들을 귀 있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로운 사랑의 음성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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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교회의 성도님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정판옥 (Homepage) 2005-12-22 11:03:03, 조회 : 180, 추천 : 12

한번도 성도님들의 얼굴을 뵌 적이 없었지만, 항상 그립고 뵙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십자가 마을’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시궁창과 같은 이 어두운 시대에 복음의 빛을 드러내셨고, 여러분들을 도구로 사용하셨고, 거기에 기쁨으로 순복한 결과임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조그마한 지하 공간에서 10 여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것이 진리요 복음이라고 외치니 어찌 세상은 냉소와 조롱을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그 분만을 의지하고, 그 분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함이라고 확신하며, 그 복음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려고 수십번 결심도 해보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리 만만치도 않고, 너무나도 힘이 들고 지쳐서 하루하루가, 매 주일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왜 없었겠고, 누구한테 그 어려움을 호소해본들 오히려 냉소와 조롱만이 다가올 것 같아 말도 꺼내 보지도 못했고...그러는 동안 급기야 이제는 한달 동안 서로가 돌아보면서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보자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안타깝고, 어떻게 위로를 드릴 수가 있을까 밤잠을 설치다가 이렇게 글로나마 마음을 담아봅니다. 심방을 다녀왔다는 제 말에 당신은 정수기 심방을 했다며, 새벽 1~2시가 지나야 하루 일과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목사님의 마음에 어찌 성도님들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다 주님께서 다 하게 하실거야! 주님의 은혜와 위로하심이 있을 거야! 나도 먹고 살기가 힘들기도 하고...' 하면서 확신도 없는 말을, 이 말이 무슨 의미도 모르면서...한낱 이웃집 아저씨 이야기 하듯이, 지나가는 개를 쳐다보듯이, 입으로만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라는 가증스런 입술을 놀려 되었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 할 뿐입니다.

스데반의 핍박으로 인하여, 살기 위해서 도망을 가야만 했던 예루살렘 성도들! 세상은 그 도망가는 자들을 향하여 인생 망조가 들었다! 생각한번 잘못해서 신세가 처량하게 되고 말았다! 고 수없이 비난과 냉소를 보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소리를 하는 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시기 위해서, 도망가는 성도들에게 세상적인 자존심을 팍팍 세워주시지도 않았고. 그저 하나님의 일만을 묵묵히 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나 비록 육신적으로는 힘이 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믿는 복음을 자랑하게 하셨고, 바로 거기에 교회를 세워가게 하셨던 것을 기억해 봅니다.

사랑하는 주안교회 형제님들이여!
지금 이 순간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저런 세상의 일들은 다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여 뒤로 접어두고, 우선순위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복음! 지금까지 믿고 왔던 복음의 가치와 그로 인한 은혜의 감격만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며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까짓 환난쯤이야 부활의 소망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까짓 고난쯤이야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곧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찬송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잖아! 괜찮아! 이러한 넉넉한 여유로움을 기대해 봅니다.

안디옥에서 복음을 듣고 교회가 세워지고, 말씀이 가르쳐진 결과로 연보를 통한 봉사의 일을 기쁨으로 참여하게 되었던 안디옥 성도들! 자신들도 동일하게 어려운 환난과 고통 속에 있었으면서도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였던 것처럼, 십자가 마을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기뻐하는 형제님들의 따뜻한 위로와 섬김을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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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문제를 노회에서 다루었으면 합니다.
김대식 (Homepage) 2005-12-26 13:15:09, 조회 : 129, 추천 : 13

저작권 문제를 노회에서 다루었으면 합니다.

일단 제가 교회사를 목사님으로 부터 의뢰를 받았기에
여기에 대해 질의를 하는 겁니다.

앞으로 목사님의 건강을 생각해볼때에 10여년 정도 생각하고
지금부터 진행되는 강의 저작권에 노회가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
의견을 올립니다.

개인적으로 들은 목사님의 의견은 자신의 이번 교회사 강의 자료는 심혈을 기울었기에
여기저기 막 떠돌아다니는(인터넷 속성상)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이야기 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취지로 강의를 만들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 목사님께 허락 받아
처음강의부터 다 공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강의에서 취소하기로한 시디제작을 목사님의 요청으로 제기함으로 인해
여기에 따른 저작권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노회에서 결정해주셔야

제작을 나설 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저작권은 그렇고,

저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강의 제작은 3가지 방법 중에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1번째 지금껏 해오던 파일 데이타 시디 입니다.

700메가 공시디에 음성 파일을 여러 시디에 담아 제공해오던 방식 입니다.

여기에 저작권을 어떻게 해왔는지 모르겟지만 이 방식은 이미 인터넷 서비스 개선으로 인해
불필요하고 개인이 직접 다운로드 받아서 직접 제작 할수 있기에 그 가치가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될듯 싶습니다.

2번째는 음성에서 동영상비디오 파일로 전환 확대되면서 데이타 CD로든 데이타 DVD-CD로든 데이타 자료화하는 방식 입니다.

아직까지 판매 한적 없지만 여기에도 저작권 붙이기가 거시기 합니다요.

예로 이번 교회사 강의를 CD로는 20장 에 담거나, DVD로는 3-4 장에 담아 (물론 데이타 파일 입니다)
보급하는 방식인데. 작업량도 만만치 않기에 일단 손을 못대고 결정사항이 날때까지 기다렸다가 작업에 들어갈려고 하는데
하여튼 그렇네요(DVD 자체를 만들어본적 없고 다루어 보지도 않아서 여기에 대해 전혀 모르기에 기다리는 중입니다)

3번째 방식을 앞으로 추진해야 할 듯 싶은데요.
DVD데이타 파일 방식이 아닌,

영화 DVD처럼 말그대로 DVD를 제작하는 겁니다. 영화 DVD 타이틀로 만드는 셈이죠.

물론 화질은 기대치가 못되지만 일단 점점 수정해 가는 방향으로 잡고
DVD를 제작하면 몇장이 나올지도 모르고
(DVD는 참고로 보급형 4.7기가(4700메가) 듀얼용은 8.4기가 정도 있는데 1장에 몇분 기록이 가능한지 지금 한 강의당 90-100분 정도인데)

잘은 모르지만 이 3번째 방식으로 제작을 앞으로 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상 1-2번째는 이미 제공되는 방식이기에

자 그렇다면 지금의 도서출판 후원이나 그런 방식 보다 더 비용이 더 들수 있습니다 물론 1년에 한번 정도되겠지만요.

또 이번 기회에 도서출판의 저작권처럼 흩어진 저작권이 하나로 모으는(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또 도서출판저작권은 어떻게 진행 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계기가 되기에 같이 한데 묶을수도 있지 싶은데요.
(저작권은 한 군데에 두고 책이나 기타 다른 것을 대행업체에 맡겨 하는 방식도 있겠죠)

자 이런 저의 생각을 두서없이 올렸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어차피 앞으로 해야되지 않나 싶은 이 문제를 한번 논의 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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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저작권 문제를 노회에서 다루었으면 합니다.
이근호 2005-12-26 16:22:31, 조회 : 140, 추천 : 11

저의 저작권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저 빼놓고서 저작권을 주장한 것입니다.

어떤 학문적 성과가 등장하면 그 성과를 만드는 것에 대해 희생한 분이 계시고, 그 희생의 덕분에 혜택을 입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그 희생한 분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으냐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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