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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아빠방(묵시와 역사 등)을 읽고] 2005-10-20묻고답하기이사야

[아빠방(묵시와 역사 등)을 읽고] 2005-10-20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아빠방(묵시와 역사 등)을 읽고, 손성식 목사(화평교회)
신직수 2005-10-20 16:45:54, 조회 : 327, 추천 : 12

자기 배설물을 자기 몸에 문지르며 잘 말린 모양으로 치장하는 자들이 있다. 또한 그것과 함께 살고 때론 즐기며 자기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덧 붙여 드높이려는 허탄한 블랙코메디로 사는 자들이 있다. 바로 우리네 인생들이다. 왜 이렇게 사는가? 해답은 간단하다.

아담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예수님과 분리된 것이다. 분리된 채 인간들은 무수히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면서 죽어간다. 인간들은 지금도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3:5절) 자신들의 죽은 욕망들을 쏟아내고 있다. 분리된 욕망들이기에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죽은 내용들뿐이다. 주님에게 제한되고 분리된 선악적 욕망들이 쌓이고 쌓여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역사가 곧 아담 안이다. 그러나 이 역사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만들어낸 죽이심의 결과물들이다.

배설물로 사는 자들의 욕망이 되지도 않는 자신들의 선을 축적시킨 것이 도리어 악을 쌓아놓은 모양이 되었다. 선악적 욕망의 한계이며 선악이 곧 악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창2:17절)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욕망의 흐름의 잔재를 쌓아놓은 참 재미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악만 쌓을 뿐이다. 죽이신 역사가 이런 모양이라고 증거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선이 있겠는가? 부끄럽고 창피하고 후회스러워도 소용없다.

묵시는 역사와 관계없이 출현한다. 십자가는 그 전에도 출현했고 그 후에도 끊임없이 출현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신 예수 십자가 피의 출현이다. 십자가 피는 종말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출현인 것이다. 역사는 의미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말씀으로 죽이고 없애시는 모습으로 십자가 피를 적용하고 계시는 것이다.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미 십자가에서 죽이셨고 삭제하셨기 때문이다.

죽이심과 함께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나 묵시와 함께 된 자들이 개념 없는 모양으로 출현한다. 볼품없고 미련하고 대책 없고 이 정도로 엉성할 수 있을까 라는 내용으로 살고들 있다. 또한 있는 힘마저 버리는 능력도 갖추어서 그 내용을 보면 참 맘 아플 정도로 비참하다. 이런 웃기는 내용으로 저들에게 내어 놓으니까 저들이 돌 던지고 무시하고 쇠파이프로 때려 묵사발을 만들어 버린다. 저들을 죽이셨기에 죽음으로 몰아 버리시는 현장이다. 죽이신 생명과 죽이신 저들의 싸움이 이런 모양이라는 것이다. 이들도 배설물과 함께 살되 배설물이 묵시에 의해 제거되면서 끝내 묵시만 고집한다. 예수님만 고집한다. 다른 것은 일절 웃기는 것이기에 내 던져 버린다. 이것 또한 주의 능력임 고백한다. 그러면서 ‘존심이 있지 또 배설물 가지고 노는 내 모양이라니’ 하며 맘 아파하고 탄식한다.

묵시와 역사를 공존시키어 묵시는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임을 밝혀내고 있다. 묵시는 예수님이다. 또한 그 뜻과 운영방식이다. 역사는 예수님에 의해서 마귀가 인간들을 욕망의 법이라는 것으로 끌고 다닌 흔적으로서 악이다. 묵시와 역사를 차례차례 읽고 서평도 다 읽었지만 한권의 책을 읽은 것 같다. 자신이 알게 된 묵시 내용만을 증거 하기 위해 역사를 강력한 칼로 내려치는 케리그마가 놀라울 정도여서 내용물 읽는 내내 피해 다니느라 즐거웠다. 힘없는 힘이 힘 전혀 없을 것 같은 분의 맘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교회였고 만나보고 싶은 분이어서 함께 만났지만 역시 사진대로 초라함 그 자체들뿐이다. 하지만 그 맘속은 찬란한 십자가 영광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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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가슴아픈 현주소!!
정판옥 (Homepage) 2005-10-28 09:29:39, 조회 : 223, 추천 : 10

하용조 목사의 설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설교가 연구, 유상현·강사문·한영태 교수 등 발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의 설교를 평가한 신학자들이 입을 모았다. "놀라운 발상과 과감한 실험정신을 갖춘 미래 교회 지도자의 새로운 전형이다."(유상현) "칼빈연구소처럼 하용조연구소가 생겨 그의 신앙과 삶이 계승되었으면 한다."(강사문)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장로교회의 한계를 극복한 설교가이다."(한영태)

대형교회 목회자 열 명을 선정해 그들의 설교를 연구하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민경배)이 올해 열 번째 연구 대상자로 하용조 목사를 지목했다. 민경배 원장은 "이 사업(10대 설교가 연구-편집자 주)의 마지막 연구 대상으로, 설교의 묘미와 그 깊이를 높은 수준에서 구성하여, 이를 소박한 언어와 부드러운 밀착 접근으로 다가서고 계셔서 그 호소 지수가 압도적인, 한국교회 설교와 목회의 기축(機軸)이신 하용조 목사님을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은 '제10회 한국교회설교가 연구-하용조 목사의 설교와 신학'을 주제로 지난 10월 24일 연세대 1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발표회를 개최했다. 유상현(연세대)·강사문(장신대)·한영태(서울신대) 교수가 각각 △하용조 목사의 설교 세계 △하용조 목사의 설교와 목회△하용조 목사의 설교에 나타난 신학적 특색을 주제로 발표했고, 문성모 총장(대전신대)이 논찬했다. 온누리교회 교인들과 신학생 등 5백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균형감각 지닌 설교가"

유상현 교수는 하 목사가 사도행전의 오순절과 같은 성령을 지금 체험하라고 강조하는 설교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 목사가 이렇게 뜨거운 신앙을 지향하면서도 열광주의적으로 몰입하지 않는 균형감각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하 목사의 균형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부흥사들과 대조했다. 유 교수는 하 목사가 '뜨거운 믿음'만을 강조하는 '위태로운 모험적 부흥사들'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고 말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부흥사들은 고대의 성경 언어를 깊이 연구하지 않고 기복주의적 해석과 같은 주관적 성경 해석을 한다.
또 신앙과 실천의 부조화에 대한 자기반성이 실종됐다. 이에 반해 하 목사는 성경을 자기 주장의 증빙 자료로 떨어뜨리지 않고, 모든 본문에 동일한 무게를 두는 강해설교를 평생 했다. 또 하 목사는 기독교인의 삶과 윤리적 실천, 경건을 강조한다. 이는 교회 지도자의 도덕적 불감증과 관련된 수치스런 행태에 대한 하 목사 나름의 집요한 성찰과 비판이 내면화되어 있음을 방증한다고 유 교수는 말했다.

칼빈과 하용조 목사의 공통점 다섯 가지

강사문 교수는 하 목사와 칼빈의 공통점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두 사람이 모두 병에 시달렸다는 것. 강 교수는 칼빈은 설교 때 지팡이나 친구의 팔에 의존했는데, 하 목사도 병을 달고 다닌다고 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설교가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칼빈이 성경만을 선포해야 된다고 강조했듯이, 하 목사도 성경만을 인용해 설명하려 애를 쓴다고 말했다.
하 목사가 제시한 예화도 거의 성경 이야기라고 한다. 그럼에도 설득력과 감화력 있는 설교를 한다는 점이 세 번째 공통점. 칼빈은 1년에 286편의 설교와 186회의 신학 강의를 했으며, 그 가운데 2023편의 설교가 남아 있다고 강 교수는 주장했다. 하 목사도 지금까지 문서로 남긴 설교가 1천 편이며, 앞으로 1만 편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강 교수는 "칼빈의 설교가 명쾌하고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으나 혹독했다"며, "하 목사의 설교도 편수가 많은 것 못지않게 설득력과 감화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 목사가 작년에 출간한 설교집 <예수님만 바라보면 행복해집니다>가 넉 달 만에 6쇄가 인쇄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말이 아닌 글로도 그만큼 설득력 있고 감화력 있을진대 설교자를 보고 직접 듣는 설교야말로 얼마나 감동적이고 매력적이겠는가" 하고 감탄했다.
네 번째 공통점으로 칼빈과 하 목사의 설교가 주석적 강해이며 통전적이라는 것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칼빈과 하 목사는 사회·정칟경제 및 문화 구조의 변화로 하나님나라 구현을 목표로 설교·목회·전도하는 점을 들었다. 칼빈이 제네바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되고 다스림을 받는 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듯, 하 목사도 온 누리가 다 하나님 말씀대로 변화되어 하나님나라가 될 것을 희구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장로교의 약점을 보완한 목회자"

성결교 출신 학자인 한영태 교수는 하 목사가 장로교의 약점을 보완하고, 지금도 오순절과 같은 성령 체험이 가능하다는 성결교적 신앙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장로교인들이 성령 체험과 성령의 은사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전통이 있다"며 "그러나 하 목사는 장로교회에서는 드물게 성령의 은사는 지금도 주어지며 성도들에게 이 선물을 받으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하 목사의 성화관이 장로교회와 성결교회의 성화관이 혼합되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 목사에게는 점전적인 성화의 개념이 있으므로 장로교회와 같으나, 성령세례를 성결로 보는 점에서는 성결교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예정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신 선택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는 점을 들어, "하 목사의 신학에 장로교회의 엄격한 전통적 예정론이 희미한 것은, 그가 가슴이 뜨거운 목회자요 복음전도자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올해도 삼행시 등장

작년에 이어 올해도 논찬자로 나선 문성모 총장은 이번에도 연구 대상자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용조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용서와 사랑과 권면을 하며, 조용한 어조 속에 강한 의지의 사도행전적 인물"이라는 것. 문 총장은 하 목사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점을 보여준 독보적이고 특이한 목회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자극적인 유머를 곁들이고 신유를 강조하며 과대 포장한 간증 중심의 설교가 유행하는 이 시대에 하 목사는 조용하면서도 감동적인 설교, 조미료를 넣지 않고도 맛이 일품인 (요리와 같은) 설교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하 목사는 '예언자적 선포 부족' 반성

주최 측과 발표자들, 논찬자까지 하 목사와 그의 설교를 극찬했다. 그러나 하 목사 자신은 자신의 설교에 문제가 있다고 반성했다. 그는 △예언자적 선포가 부족하고 △약자를 위한 설교가 빈약하며 △화해를 이루는 설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 목사는 "대중을 위한 설교를 했는데, 약자와 소자, 농촌 목회자를 생각하면서 설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세계가 분쟁 중이다"며 "설교자의 얼굴에는 화해자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있어야 한다. 승리의 선포 뒤에 고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은 1996년부터 한국교회의 10대 설교가를 선정하고 신학교수들이 이들의 설교를 분석해 발표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그 동안 조용기 김선도 곽선희 이만신 김장환 김삼환 옥한흠 길자연 이종윤 목사 등이 대상에 올랐다. (뉴스 엔조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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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익 목사님의 사랑 강의
이근호 2005-11-13 07:31:43, 조회 : 300, 추천 : 20

오용익목사 광주 성경공부

어떤 사랑을 받았는가?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1. 사랑의 메커니즘

사람은 혼자 못산다. 외로움은 애초부터 인간 본래의 것이 아니다. 사람은 외롭게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외로움을 자각하면 외부에 있는 대상을 향하여 다가간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식은 대상을 소유하는 방식뿐이다. 인간의 사랑이란 외부의 대상을 자기 소유물화 하는 일환으로서 한 몸 되기이다(창 6:4)①.

외로움은 신체의 소멸에 대한 일종의 경고성 자각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신체의 소멸을 먹고자 하는 충동의 산물이다②.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력의 산물이다. 사랑은 자기연민에서 비롯되어 전개되기에 잔인성이 도사린다(창 4:23,24)③. 인간의 사랑의 화두는“나(우리)라는 인간 불쌍해서 어떻게 해”(출 32:1)④이다. 사랑이란 자기에 대한 집착과 애착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토해놓은 퇴적물이다. 사랑은 층층이 지층이 되어 퇴적되어 간다. 대상을 소유하는 만큼 외로움은 해소되지만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사랑이기에 외로움이 해소되면 대상의 존재가치도 그만큼 희석된다⑤.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 예수님을 통해서만 참 사랑과 거짓사랑의 정체가 다 밝혀진다. 예수님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하는 주체(아버지)에 의해서 사랑받는 대상(아들)이 버려짐(잃어짐)과 되찾음이라는 방식이었다. 왜 하나님은 버림과 되찾음이라는 형식으로 자기 사랑을 알리셨는가? “대상의 소유 + 소유된 것의 강화 = 사랑(구원)”라는 방식으로 스스로 자기 사랑 찾기에 골몰하는 세상의 모든 거짓구언(사랑)을 심판하기 위함이다.

3.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양상으로 표출되었는가?

절대자아성으로 인해 표출되는 인간의 사랑은 단절되며 언약 안에 담긴 사랑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세상의 사랑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식이 아니라 원활한 흐름을 오히려 거슬리면서 언약은 자기성취를 보게 된다. 언약상대자는 남성이기에 여성은 언약에서 남성에 종속되는 형식이지만 실제로 언약의 성취는 남성이라는 혈통을 끊어놓은채 여성 쪽에서 성취를 보는 식이다. 이와 같이 언약 안에서의 사랑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언약자체의 능력만 으로의 성취를 내보이는 것은 있음에서 있음으로 결과물을 퇴적해가는 식의 인간의 사랑은 폐기의 대상에 지나지 않으며 없음에서 있음으로 열매를 내어놓은 언약 안에서의 선택적 사랑만을 이 지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신 것,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 노아의 벗은 몸을 덮어줌의 의미를 아느냐 모르느냐로 세상을 나누는 것,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 이삭이 야곱을 장자로 세우는 것, 모세가 피남편이 되는 것,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취한 것, 선지자가 간음한 아내를 되찾아 오는 것, 룻이 나오미의 아들을 낳는 것.

이는 다 장차오실 예수님의 사랑, 잃어버림과 되찾음의 사랑의 맛보기였다.

4. 참 사랑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한 몸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엡 5:30, 롬 5:15, 고전 12:12-19). 언제나 인간은 자기를 머리로 하는 한 몸 만들기에 나서기에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어긋나며 머리싸움의 결과물로서만 하나님의 사랑은 주어진다(창세기 3:15, 히브리서 2:14-15).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 안에 놓여있는 선택적 사랑이다. 그 낯선 사랑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이미인간은 절대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의 하수인노릇밖에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창 3:5)⑥.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부어주어도 사랑은 늘 자기소유물로 전환되기 일쑤이다⑦.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 하나님의 사랑은 잃어버림과 되찾음의 사랑이기에.

이 지상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하나님의 심판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로마서 8장에 따르면 이정도로 질긴 사랑이어야 한다. 이정도로 실패가 없는 사랑을 받았기에 실패 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결론)

더 이상 인간의 사랑 같은 것은 안하겠다는 것도 위선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죽는 순간까지도 끝나지 않는 연기) 연기를 하면서 땅을 헤집는다⑧. 그런 가증스런 인간에게 찾아오신 진짜 사랑을 믿기에 마음 놓고 기어보자. 그래도 나타나고 울리는 진짜 사랑을 믿는다. 십자기는 나의 가증스러움을 훨씬 능가한다(요 21:18-19, 고전13:8). 십자가는 하나님사랑의 최후 확정이기에(롬 13:8-10).

“진짜 사랑이란?(엡 4:9-15,16)”

1) 잘해주기.
2) 나도 제멋대로 살고, 남도 막살게 내버려두기.
3) 주님 한분께 밀어주기(고전 13:1-3).

① 하나님의 사랑이란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사랑과 비사랑의 세계를 경계 지움으로써 그리스도중심으로 세P의 질서를 세우시기 위함이다. 인간의 몸이란 각자 가진 힘을 모아서 하나 됨을 꾀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간주하지만 하나님은 인간각자가 지닌 몸의 다양성과 특이성을 개별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아담 안으로 처리된 한 몸에 불과하다. 이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 안에서의 한 몸과 대비체를 구성하기 위해 마련된 몸이다(롬 5:12).

②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이끌림이다. 인간의 애정을 동물의 짝짓기와 구별 지으려는 시도들을 허무한 것으로 돌려놓는 신체성의 발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학은 인간의 사랑이 동물들의 짝짓기 본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규명해 내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랑의 감정을 유발시키는 호르몬의 기능들이 계속해서 규명되고 있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사랑을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는가?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관습의 산물인데 그 관습조차 본능의 발현이 학습이라는 것을 통해서 누적되고 조작된 조잡스런 조립에 불과한 것이어서 일관성이 없다. 인간은 별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을 고정시키려는 방안을 늘 강구한다.

③ 인간의 신체란 에너지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할 때 불쾌감을 맛보게 되며 이 불쾌감을 줄이려는 본능에 의해서 신체는 움직인다.

④ 장밋빛인생에서 맹순이 동생이 맹순이에 대해서 하는 말, “우리 언니 불쌍해서 어떻게 해”. 맹순이 왈, “사람 마음이 간사해. 그 인간한테 여자가 생겼다니까 그 인간이 멋있어 보이는 거야. 그 인간이 미워 죽겠는데 미워지지가 않는 거야.”

⑤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려고 한다. 사랑하는 순간 사랑의 대상은 나의 메시야가 되지만 동시에 나의 잘못에 대한 책임전가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어느 순간 미움의 대상으로 돌변한다. 인간은 이미 절대자아가 되어 있기에 비록 내가 사랑하는 나의 메시야라 할지라도 나의 절대자아성에 흠집을 내는 것을 용서하지 못한다. 사랑이란 자아와 타인의 타협과 적응의 관계성이다. 인간은 이 조정안을 서로 밀고 댕기면서 자아의 독립을 향한 갈망과 외부세계가 주는 자기억압 사이에서 평생을 시달리게 된다. 혼자 살려니 춥고 함께 살려니 귀찮다. 인간은 외로움에 치를 떨면서도 외로움을 포기치 않으려고 하고, 유혹을 금기시 하면서도 유혹을 그리워하는 존재이다. 로마서 7장은 이를 두고 법안에 갇혀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⑥ 인간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안개 같은 임의적 존재(절대적이 아니라는 것)라는 사실을 누가 인정하려 들겠는가? (약 4:14-16).

⑦ 인간은 은혜에서 늘상 격리되고 스스로 분리되려고 한다. 법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구한다. 즉 세상은 생존위주이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 위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롯과 그의 딸들로 인한 종족의 보존을 어떻게 볼것인가?(창 19:3-38) 소돔과 고모라라는 사회라는 관습의 막이 벗겨지면 윤리도 함께 벗겨진다. 남는 것은 윤리라는 것으로 가리워져있던 생존본능만 남는다. 즉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남기기 원하는 생명은 생존본능에서 우러나온 사랑의 결과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없음에서 있음이라는 언약의 능력으로 출현하는 생명을 원하신다는 점이다.

⑧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들키우는 인간은 무엇인가? 나라는 인간의 가증스러움이다. 그것은 창세기의 뱀을 닮아 있다. 배를 깔고 땅을 기면서 더욱 더욱 땅에 집착하는 태도이다. 사랑이란 그런 집착의 강한 단면이다. 남자(여자)는 자기의 여자(남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예쁘기를 원하고, 여자(남자)는 자기의 남자(여자)가 자기만 사랑하기를 바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의 소유자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연약성을 날마다 실감하기에 연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사랑은 연기(예쁜척, 강한척)이며 연기에 능한 자만이 사랑(적응)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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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천 성도님의 글- 개척교회-
이근호 2005-11-17 17:25:07, 조회 : 221, 추천 : 8

개척교회" (25호)

신학생의 고민 중 하나는 졸업을 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입니다.
신학을 시작할 때는 말씀을 바르게 잘 배워서 주님의 증인으로 살려 하지만 졸업이 가까우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이미 교회를 담임하고 있기에 뒤를 이어갈 자리가 있거나 출석하는 교회가 졸업하여 담임이나 부 교역자로 일해 주기를 고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고민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신학생들은 진로를 걱정합니다.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면서도 신학을 했으니 체면상 다른 일은 할 수 없고 교회를 중심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신학을 졸업하고 일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을 타락한 존재로 봅니다. 그런 평가가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중시킵니다.

현실은 냉정합니다.
졸업하는 신학생을 수용할 수 없고 수용해도 자기들 교회가 추구하는 것과 일치해야 가능합니다.
예배당 없는 지역이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 몇십 가구만 살아도 교회가 들어와 진을 치고 있기에 신학생의 고민은 더해 갑니다.
이에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해외로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생계와 연결하여 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목사로서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이유와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는 특권을 동시에 누리려는 것입니다.
아직도 선교사에 대한 특별한 시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해외 선교사로 몇 년씩 있다 귀국하면 국내 교회들은 특별한 존재로 대접하고 그들을 간증 집회로 불러 업적을 기리고 본보기를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외 선교사로 가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 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신학생 중 대부분은 국내에서 개척을 준비합니다.
개척은 예배당으로 사용할 장소를 월세나 전세로 빌려서 사용하면서 교인들을 모아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돈을 얼마큼 모아서 번듯한 예배당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하고 확실한 목회지 에서 죽을 때까지 자랑스럽게 목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설계도를 가지고 개척 교회를 시작하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습니다.
기존에 있는 교인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주위에 있는 예배당보다 시설이 못해서는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학 공부하는 동안 있는 없는 돈 모두 사용해서 남은 것이 없어서 결국 작정 기도나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기에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현실에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척하는 목회자를 대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을 합니다.
이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전도를 하지만 잘 안됩니다.
수천 명이 졸업하여 얼마나 많은 개척을 하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좁은 땅덩이에 이미 굳건한 자리를 잡은 대형 교회 밑에서 발버둥을 치면서 해봐도 부흥(?)이라는 것이 쉽게 안되고 오히려 예배당 세는 오르고 지원자는 줄어들면 또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직업으로 바꿀 것인가?
그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른 직업으로 바꾸면 실패한 목회자란 딱지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체면상 바꿀수도 없고 많은 사람이 기대를 걸고 있고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을 저버릴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는 것입니다.
산 기도도 해보고 철야는 수도 없이 하고 금식 기도도 하고 기도원에서 작정 기도도 합니다.
그러다 가끔씩 눈먼(하나님을 모르는 영적인 소경) 교인 하나 만나서 경제적 지원을 받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를 특별히 사랑해서 사람과 돈을 붙여 주었다고 의기양양해서 돌아옵니다.

아무런 응답도 없고 지원자도 없고 손을 벌릴 때도 없을 때쯤 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기대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쯤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될 대로되라는 삶이 되기 일수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응답은 없지만 오기를 부려서라도 반듯이 이 어려움을 극복하여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우뚝 서서 간증할 그날을 바라고 부흥을 일으켰다는 성공 사례를 찾아다니면서 어떻게 하여 부흥됐는가를 조사하여 자기도 그들을 따라 합니다.
그러다 성공하면 자기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떠벌리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철야 열심히 하고 금식 기도하고 기도원에서 삼각산에서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나님도 들어주더라 입니다.
자기의 열심을 자랑하고 자기 인내를 자랑하며 하나님도 인간의 열심 앞에서는 꼼짝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 신학생과 개척 교회의 현주소입니다.

이것이 종교 놀이 입니다. 직업 종교인 입니다.
왜냐면 그들 열심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고 부흥도 없을 것이며 세계적인 교회들이 탄생되지 못하고 대부분 한국 교회는 없어 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위 간증 집회라는 곳에 가면 온통 기도 열심히 했던 자기 자랑과 금식한 자기 자랑에 굴복되는 하나님 낮추기뿐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살아서 일하시고 주님에 의하여 교회가 날마다 탄생되고 있음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자기가 아니면 우리 목사님이 아니면 안되는 일이었다고 하나님 영광을 자기 영광으로 취하여 마귀의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로 바꾸기도 합니다.

과연 개척 교회란 말이 가능한가?
개척 교회란 말은 우리가 개척하여 교회를 세우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없는 곳에 자기가 들어가서 교회를 만들겠다니 얼마나 주님의 일하심을 부정하는 자들인지 모릅니다.
진짜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이 교회를 이루실 것을 믿고 주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교회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죄인들의 열심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개척이 아니라 잃은 양 찾기입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가 어디에 있을까 를 찾는 일이 믿는 자들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인간들이 세운 교회는 유대교 안에 다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희생으로 탄생되고 주님의 이름 위에 세워집니다.
죄인이 세워서 된 교회라면 죄인이 무너뜨리면 무너지고 맙니다.
하지만 주님이 세운 교회는 사람이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사람의 교회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하지만 주님의 교회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신학 공부해서 세운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성령님이 일하셔서 세운 교회가 주님의 교회입니다.
성령이 세운 교회라면 숫자에 관계없이 주님만 찬양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보존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운 교회라면 박사 학위를 가진 목회자가 세웠다 해도 반드시 무너뜨립니다.
주님이 친히 무너뜨립니다. 진짜와 가짜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주님의 교회는 일을 많이 하고 안하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안 받고도 중요치 않고 특히 사람의 숫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통이나 수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 안에 있느냐 입니다.
염불하듯 입술로 뇌까리는 신앙고백은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왜냐면 주님이 직접 살아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 교회라면 개척이란 말을 쓰면서도 날마다 자기가 세우는 것이 아니고 주의 성령께서 약속에 자녀만 부르시고 구원하심을 알고 고백하게 됩니다.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모든 일을 아버지 뜻에 따라서 반드시 이루시는 주님이 오늘도 교회를 세우시고 무너뜨리심을 믿기에 세상의 기준이나 인간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고 십자가의 의로운 피만 믿고 살게 되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입니다.

죄인이 세우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주님의 성령이 세우는 교회만 영원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죄인의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잃어버림을 당한 자를 성령이 만나게 해주심으로 주님의 은혜 안에서 교제가 있을 뿐입니다.
개척이란 죄인들이 원하는 것이지 주님의 일은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만이 세우시고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주님이 주신 믿음에 의해 교회로 드러납니까?
자기의 열심 있는 신앙 활동 때문에 믿음이 유지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열심으로 유지되는 믿음은 가짜요 무너질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어디에 교회가 드러나게 하실지 모르니 보내주는대로, 만나게 하시는 대로 복음 전할 믿음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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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라는 것은 믿음의 현상/김성수교수와 이근호목사의 견해
손무성 (Homepage) 2005-11-22 23:06:33, 조회 : 175, 추천 : 11

발췌 - 우리교회 질문답변 중

이대희 님의 질문:

다음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김성수 지음,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에서 이삭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단원의 본문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이삭에게 친히 확인하시면서,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그의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지킨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약속의 근거가 마치 아브라함의 순종에 있다는 말처럼 들리나,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 경위를 살펴보면 그 참 뜻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약속은 아브라함의 순종이나 경건, 심지어 그의 믿음과도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먼저 그 원하시는 뜻대로 주셨으며 아브라함은 이를 믿음으로 받은 것뿐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받은 이 약속이 그의 순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믿음의 열매, 곧 순종의 삶이 약속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실현되어 가게 하는 조건임을 밝힌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는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와 이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시작하나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헌신하는 믿음과 순종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현되어 간다는 뜻이다.1) 이 역시 은혜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1) 창 18:19를 참조하라.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의와 공도의 순종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임을, 하나님의 약속이 의의 순종의 삶 속에서 실현되어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언약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는데요, 그 반응의 내용과 성격이 무엇인지 항상 의문이 들었습니다. 위의 본문을 보면 이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은데요, 이근호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과 동일한 내용인 듯 하면서도 다소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여쭙니다. 아직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서질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헌신하는 믿음과 순종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지속적으로 실현되어 가는데, 이 역시 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과 순종의 삶이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요구를 다 이루셨음을 믿는 믿음인가요? 아니면 더 나아가서 우리 또한 예수님을 따른다, 닮아간다는 차원에서 은혜로 그분처럼 하나님께 헌신하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인가요?

이근호목사 답변:

김성수 교수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약속이 인간 세계에 밀어븥이게 되면, '순종'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어 있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교수의 뜻은, 믿음이나 순종이라는 것을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김성수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단지 그에게 미흡한 것은,

그 믿음과 순종이 곧 바로 인간에게 주어지거나 연결되는 것이 아님이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즉 약속에 반응하는 믿음과 순종은 우리 죄인인 인간에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일어나며 동시에 그에게 종결됩니다.

그리고 성도에게 일어나는 믿음과 순종은, 예수님을 모델로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일어나는 예수님의 구원 능력 때문에 생기는 결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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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질문과 그 답변
이근호 2005-12-03 12:47:14, 조회 : 248, 추천 : 10

목사님께.

평안을 여쭙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1. 설교가와 설교가 자신의 삶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즉, 설교가 자신도 자신이 한 설교의 내용에서 자신의 삶이 절대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 같아서 여쭙니다.

2.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유대백성들이 호산나를 열광하며 영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인정했기에 종교지도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은 믿음의 모습이었다면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 유대인들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 유대인들은 호산나를 열광하던 유대인들과는 다른 부류인가요?

답변

1. 설교가 본인이 만든 설교라면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즉 설교 내용대로 살지 못하면 설교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설교하면서도 설교자가 주님으로부터 복음적 진리의 들어야만 하는 대상이라고 여기고 전달자 역할이라면 자기 설교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 내용에 대해서 책임져야 합니다. 이럴 때는 설교를 그만두는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살 수 있다는 권리가 자신에게 없음을 명심해야겠지요. 왜냐하면 복음의 진리는 늘 자신을 겨냥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안하나 평신도로 돌아선다 할지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2. 민중들은 풀어주면 풀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영웅이나 메시야나 스타에 대해서 환호성을 보내고 반깁니다. 새로운 권력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권력자가 등장해서 그 영웅을 굴복시키고 영웅 분위기를 해체하고 무효화하고 그것을 불법화해서 처벌한다고 위협하면, 곧 자신의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거기에 맹신합니다. 왜냐하면 ‘죽음’만이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있어 최종적 초권력자이기에 이런 죽음의 위협을 그 어떤 경우에서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선택은 ‘예수님 안’에서의 선택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 안’의 정신에 위배되는 구원을 위해 쓰여지는 ‘가짜 선택’을 일일이 가려내어 삭제시켜 버립니다.

즉 개인의 이름과 영광과 영생을 위한 선택론을 저주하고 그 대신 예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선택론만 펼치게 됩니다.

이런 작업에는 반드시 마치 ‘교체’나 ‘취소’처럼 보이는 활동들이 ‘불변적인 선택관’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실시됩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 부인’이 유발되지 않는 상태에서 ‘창세 전부터 확정된 선택론’을 개인적으로 소지하려는 경향을 철저하게 발각시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분쇄하는 것이, 예수님의 자의로운 뜻에 의한 선택론의 전개과정입니다.

선택론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인간들이 지적으로 소지 가능한 선택론을 철저하게 박살되는 선택론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선택론입니다.

즉 “예수님(=참 하나님)을 위하여 죽을 생각이 없는 자는 저주받아라!”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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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식 목사님의 글
이근호 2005-12-08 16:35:46, 조회 : 202, 추천 : 13

『묵시와 현실』

【교회】

1970년 어느 날 한스 큉 신부는 『교회란 무엇인가』(분도출판사)라고 물었다.

1982년 어느 날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분도출판사)라고 물었다.

1994년 어느 날 허 성 목사는 『회개하소서 십자가의 원수 된 교회여』(홍성사)라고 소리질렀다.

2002년 어느 날 이 근호 목사는 『교회를 넘어서』(대장간)라고 외쳤다.

2005년 어느 날 나는 "현실교회를 가로지르는 묵시적 교회"를 이야기한다.

현실교회는 자본교회이다.
묵시적 교회는 자본을 넘어선 교회이다.

현실교회의 힘은 돈의 있고 없음이다.
묵시적 교회의 힘은 돈과 무관함이다.

현실교회의 케리그마는 자본의 보상현실이다.
묵시적 교회의 케리그마는 십자가의 현실이다.

현실교회의 복음은 자본주의 제국에서 살아남는 비책이다.
묵시적 교회의 복음은 묵시적 인격체로서 인자이신 예수님의 활약상이다.

현실교회는 대중이다.
묵시적 교회는 성도이다.

대중은 욕망의 선을 긋는다.
성도는 항복 당하는 십자가 사건을 경험한다.

현실교회의 기쁨은 대중의 욕망이 달성되는데 있다.
묵시적 교회의 기쁨은 십자가의 묵시적 사건을 현실로 확인 당하는데 있다.

대중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한다.
성도는 예수님에 의해서 무릎꿇고 손든 자들이다.

현실교회는 항상 계산하고 잰다.
묵시적 교회는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소망한다.

현실교회는 세력화되고 조직화된다.
묵시적 교회는 힘없이 되고 은사화된다.

현실교회와 묵시적 교회는 갈등하고 싸운다.
출애굽은 현실교회로부터 일어나는 묵시적 현상이다.

묵시적 현상의 중심부에는 십자가 사건이 항상 자리잡는다.
그러므로 교회란 십자가 사건으로 대중의 욕망을 항복시키고,
"예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묵시적 고백이 터져 나오게 하는 예수님이 만들어내시는 몸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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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도님의 글
이근호 2005-12-11 08:11:04, 조회 : 270, 추천 : 10

A급 목사의 설교

인간의 귀는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전하게 되며

듣는 성도의 깊은 내면을 뒤돌아 보며 참회하며 감사함을 느끼게 하지요

B급 목사의 설교

성화와 예정의 미묘함을 언어적 기교로 잘 활용하지요

듣는 성도의 자신을 뒤돌아 보며 반성하고 성화로 이끌지요

C급 목사의 설교

이 땅에서 합리적 긍적적 적극적 사고 등등..을 강론하여

듣는 교인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게 만들지요

D급 목사의 설교

성경보다는 맹목적 믿음과 기도만을 강조하여 종교화를 부르짖습니다

듣는 종교인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일으켜 은혜라고 이야기 하지요

E급 목사의 설교

모든 구원의 통로와 복의 통로가 교회에 목사로 통하여 이루어 진다고 하여

듣는 종교인들은 목사의 말을 믿어 행함으로 복을 구하지요

F급 목사의 설교

자신이 천상의 복과 생사 여탈권을 직접행사 할수 있다고 하여

듣는 무속인(빌어서 바쳐서 복 받자고 찾아온 사람)에게 물질과 몸을 요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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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어떤 성도님의 글
이근호 2005-12-11 08:55:23, 조회 : 289, 추천 : 15

교회사를 통해서 나타난 인간 분류

1.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죽었고 그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내가 사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갈 2:20)

2.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여기는 자

3. 십자가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다름 말씀에 실천에 옮기며 살아가야지만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자

4. 예수님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더 우선적이고 더 범위가 넓고 근원적이라고 생각해서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지만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자,
즉 예수님을 삼위일체 속에 귀속시키는 자.

5.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은 실제로 역사적 교회를 통해서 구현되기에 교회를 위하여 충성되게 사는 자만이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자

6. 교회도 잘 섬겨야하지만 자기 가정도 하나님이 세우신 일반은총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서 양쪽을 적절하게 에너지 배분하면서 살아야 옳다고 여기는 자.
만약에 양쪽 다 성실하지 못하면 어떤 식으로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징벌을 내린다고 믿는 자.
7. 교회도 잘 섬기고 자기 가정도 잘 다스려야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일도 충실하고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야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여기는 자
만약 세 쪽 다 성실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도 자신에게 징벌을 내린다고 믿고 있는 자.

8. 성경 말씀을 믿고 일단 구원을 챙겼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더 이상 교회에 대해서는 교회 월급장이나 지도자급에게 다 일임하고 자신은 교회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고 싶지도 않다고 여기는 자.

9. 성경 말씀의 내용은 평소에 자신이 살아가는 인생 경험이나 자신의 양심의 소리와 동일한 내용을 가졌기에 내 양심대로 묻게 되면 더 이상 성경은 볼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자

10. 성경은 옛날 만화책 같은 것이며, 종교란 문화활동에 불과하며, 평생을 두고두고 신나게 하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사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축복이라고 여기는 자

11. 신이든, 악마든, 내세든, 천국이이든 지옥이든 심지어 가정이라 할지라도 다 관념적이고 모호한 것이요 확실치 않으며, 현실적으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오직 내 몸이라는 덩치뿐임을 절감하며 사는 자.

이 중에서 지옥가는 사람은

2에서부터 11번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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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