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층위] 2005-03-18
[ 05대구일일특강 1 ] - 인간은 무엇인가(강의정리) 구득영 2005-03-18 12:14:30, 조회 : 207, 추천 : 38
이근호 목사님이 대구 천성은 목사님이 봉사하는 주님의 교회에서 한 강의입니다. 강의녹취의 '철학의 함정' 코너에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철학의 함정 (도서출판)복사실'은 아마 3월 말은 되어야 만들어지지 싶습니다.계속 수정중에 있습니다.가능하다면 강의할 때 이근호 목사님께 부탁하시면, 목사님 편에 안전하게 부쳐드리도록 하겠습니다.가격은 약 200페지 정도라서 만원이 되지 싶고, 우편으로 받아보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12000원에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못기다리겠다 싶은 분들은 저에게 메일을 주시면 한글97로 된 수정본을 지금이라도 보내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
메일주소 : word009@kornet.net
##############################################################################################[믿음의 층위] 손성식 2005-03-18 21:17:05, 조회 : 285, 추천 : 24
【믿음의 층위】
믿음하면: 열심 내는 것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복음의 풍성함이 외면당하고 가난하게 됐다는 증거야. 현실교회를 들여다보면 종교적인 모임의 활동여부로 신앙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것 같애. 마치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학생들 신앙을 체크하듯이 말이야. 하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평가 기준이 아닌 것 같애. 그러므로 신앙에 있어서 “열심”은 핵심이 아니야.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식을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럼 뭐든지 대충 하라는 얘기: 아니야, 아니야!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열심”이나 “대충”은 모두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있는 것이잖아. 이게 아니라구. 내가 중심에 놓이면 안돼. 왜냐하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활약상을 나타내는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그래.
그렇다면 주도권에 문제: 그래 주도권 문제야.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활약하시는 현실을 한 마디로 믿음이라고 그러는 거야. 또한 이런 맥락에서 믿음은 인간이 얼마나 주도권과 상관이 없느냐를 고발하고 있다는 것 놓치면 안돼. 예를 들어서 에스겔서를 보자구.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사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에스겔 37:1-2)
나는 이 본문이 믿음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봐. 인간의 본질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것처럼 말라버린 뼈들이라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 마른 뼈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안 그래. 이 지점이 믿음을 시작하는 장(場)이야. 예수님도 얘기하셨잖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
믿음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를 거부하는 이유: 그래, 믿음은 인간의 행위를 거부해. 왜냐하면 인간은 이미 믿음의 세계와 단절되어 있거든. 마른뼈들이야. 이런 사실을 근거로해서 믿음은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서 새로운 소속으로 만드시는 예수님의 활약상이야.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능력으로 경계선을 넘을 수 없어. 왜? 마른 뼈니까. 예수님이 살리시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마른 뼈들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돼
그렇다면 믿음은 우리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말: 그래 철저한 무능력이야. 아니, 마른 뼈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예수님을 믿고, 내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내가 확신하는 것으로 표현된 내용은 자기확신이고 자기증명이지 믿음은 아니야. 사람들은 믿음을 자신의 잣대로 검증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어. 이것은 욕망이야.
그렇다면 예수님이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확신시키셨다는 말: 그래, 예수님의 열심이야. 이것을 나는 다른 표현으로 십자가 달리신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해.
왜 그렇게 쓰는지: 이유는 십자가를 전면에 세우시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성경해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믿음의 층위란: 아, 그건 로마서, 히브리서, 야고보서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이 서로 약간씩 늬앙스가 다른 것 같다는 거야.
어떻게: 로마서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거절한다는 의미에서.히브리서에서는 약속을 현실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야고보서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충돌하는 현장으로 본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거야.
믿음의 내용을 풀어 헤치고 있다는 것: 그래, 바로 그거야. 믿음은 이런 것이 라고. 믿음은 묵시세계가 역사 안에서 경험하고 있는 십자가의 현실을 증거 하는 거시적 개념이야. 즉, 인자라는 묵시적 인격체가 역사를 가로지르며 그 밑바닥을 갈아엎으시는 활약상을 나타내는 총괄개념이야. 그러므로 만만하게 보면 안돼.
끝맺는다면: 믿음이란 욕망하는 인간의 몸부림과 관련된 미시적 개념이 아니라, 인자라는 묵시적 인격체에 의해서 주도된 묵시세계가 역사세계를 거부하고 그 폐허 위에서 새롭게 건설해 나가는 활약상을 그리고 있는 거시적 개념이야.
기억할 것은: 간단하지 않다는 거야. 아니, 소나무 뿌리 파헤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야. 그건 내 열심이잖아. 내 노력이고. 믿음이란 내 정성으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야. 알겠지. 내가 주님을 포로로 잡는 것이 아니고, 주님에 의해서 내가 포로된 거야. 내가 주님을 다운 시킨게 아니라 주님께 내가 항복 당한거야. 완벽하게.
얼마나: 나의 죽음도 유익할만큼!
##############################################################################################[설교와 설교집] 손성식 2005-03-18 22:25:43, 조회 : 308, 추천 : 23
【설교와 설교집】
시중에 떠도는 수 많은 설교집을 크게 나누어 보면 두 가지야. 하나는 책을 사볼 가치가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을 사보기에는 돈이 아까운 책들이지. 너무 자본주의적 습성을 드러냈나! 사실이 그러니까. 어디 요즘 책 한 권 사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 지역 도서관을 뺀질나게 드나들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좋아: 아니. 기분 얘기가 아니야. 설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그리고 덧붙여서 설교집 이야기도 좀 하구. 더욱 바라기는 돈 아까운 설교집은 사보지 말자는 거지.
아니 네가 뭔데 설교집을 사라 마라야. 너무 한 것 아니야: 내가 너무 한 거라고. 그러면 되도 않은 설교집 내서 우중을 선동하는 건 잘한 짓인가!
하여튼 좋아. 그래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한 번 해봐: 설교에는 설교집으로 나와야 될 설교가 있고, 설교집으로 나오면 곤란한 설교가 있다는 얘기야.
좀 구체적으로: 설교집으로 나오면 곤란한 설교들은 그 핵심이 대중들을 감동시킨다는 거야. 감동적인 설교지. 예화도 많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문제는 감동은 재현할 수 없다는 거야.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거지. 보통 교인들이 은혜 받았다는 거야. 사실 은혜받은 것이 아니라 감동 받은 거야. 재미있는 사실은 감동이란 인간애와 어울려져 있다는 거야. 즉, 감동이란 심파극 같애. 울고 울리는 현장. 마치 [불효자는 웁니다!]같은 느낌이야.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아, 이런 설교집은 안 사보는 것이 좋다는 거지. 듣는 거야 각자 마음이고. 머리 숫자 많은 교회에서 나온 설교집들이 다 그렇지 아마?
그럼 설교집으로 나와야 할 설교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케 하는 설교야. 현대인들이 싫어하는 내용이지. 현대인들은 생각하는 것을 괴로워하잖아.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교회 와서 편안해져야 하는데 머리 뜯고 갈 수는 없잖아. 마음이 위로 받고 희망으로 가득차서 한 주 힘내고 살게 만드는 재충전의 시간이 되야 되는데, 괜히 설교들었다 싶으면 안되잖아. 그래서 현대인들은 생각하는 설교를 싫어해. 물론 다는 아니고. 하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설교야말로 설교집으로 나와야 돼.
도대체 생각하는 설교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데: 로이드 죤스 목사의 『로마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 『산상설교』등이지. 아주 대표적인 것이야. 이 설교의 특징은 설교자의 개인적 자질과 연결되어 있어. 그는 성경을 보면서 대충 넘어 가지 않아. 세세한 부분까지 따지고 들어가. 이 부분이 중요해. 따지는 것은 아무나 못해. 그 부분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어. 성경이 그를 하나님의 속 깊은 뜻까지 파헤치도록 허락 한 거야.
로이드 죤스 목사는 뭘 따졌는데: 접속사지. 로마서 3장 21절의 "그러나", 로마서 5장 12절의 "이러므로"등등. 보통 접속사를 지나치게 되는데, 그는 그것으로 바울 서신의 핵심들을 짚어내는 거야. 어때, 한 수 배워 볼만하지. 교인들은 뭐 좀 열심있으면 신학교 가려고 하는데 신학교 안가도 돼. 로이드 죤스 목사의 설교집을 사 봐. 그리고 생각 좀 해봐.
그래서: 진리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면 바보가 돼.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교회는 복제시장이야. 뭐가 진짜인지 구분을 못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네가 해야지. 누가 밥 먹여줘. 알아서 해야지. 그러니 일주일에 한 두 번 예배당에 가서 설교 듣는걸로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자신하지 말고 좋은 설교집으로 생각 좀 하고 살아.
결론적으로: 로이드 죤스 목사의 설교집을 사서 봐 라는 얘기지. 혹시 로이드 죤스 목사 설교집이 너무 어려워서 못 보겠다면 박 영선 목사의 설교집을 보길 바래. 이 분의 설교에서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녹아 있으니까 친근감이 들겠지.
##############################################################################################삭제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인찬 2005-03-19 09:34:44, 조회 : 297, 추천 : 26
아무 이유도 없다고 보는데요....혹시 실수로 삭제되어진 것인지 확인차 글을 올립니다..
<아래 글은 삭제된 글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몇 가지 이해와 결론}*처음으로 공개된 이론(3번)
<5 가지 이해로 본 구약의 십일조>
1) 구약시대 십일조를 신약시대에서도 정해진 십일조를 그대로 드려야 한다는 주장이다.2) 구약시대 십일조는 신약시대 연보(헌금)로 이해하는 것이다.3) 구약의 십일조는 신약시대 성도들의 모든 재산으로 이해하는 것이다(본인의 이론)4) 구약의 십일조는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견해이다.5) 구약의 십일조는 신약시대 성도들의 모형이라는 견해이다.
이렇게 5가지로 압축해서 이해한다면 우리는 먼저 1)번의 전통적인 십일조는 사실상 구약의 그림자와 실체에 의해서 오류가 나타난다. 구약에서 율법적인 모든 것이 지나갔는데 신약시대에서도 구약과 같이 정해진 십일조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율법주의 신앙이다.
2)번째 이해는 구약의 십일조가 신약시대 헌금이라는 이해이며 사실상 서로 같은 기능으로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설명되어진다. 구약시대 십일조의 성격이 신약시대 헌금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헌금으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히 신약시대에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3)번째 이론은 앞서 2)번째의 이론을 수용하면서도 좀더 영적으로 넓게 이해한 방법이다. 구약시대에서 십일조는 장자지파가 소유해서 사용되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약시대 영적으로 장자지파가 된 것이며 그 장자지파들의 모든 소유가 구약시대 레위인의 소유가 되었던 십일조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구별된 [장자=그리스도]가 있듯이 [장자지파=신약의 성도]로 이해하는 것이다.[구약 장자지파의 십일조=신약 장자지파인 성도의 재산(십일조)]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신약시대에 십일조는 성도들의 소유가 된다는 전재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론도 하나의 학설로써 이해할 수 있는 것뿐이다.
어찌 되었든 신약시대에는 정해진 구약의 십일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분명히 3)번째 이론도 2번째 이론과 다른 이해이지만 2)번째 이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1)번째 이론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해진 십일조는 이미 지나간 구약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신약의 헌금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약의 십일조를 다양하게 이해해도 결국은 신약시대 정해진 것으로 이해되는 것은 매우 구약적인 사고에 기초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번과 같이 실제적으로 나타난 것을 두고 이해해도 구약의 십일조는 폐지 된 것이다. 또한 3)번과 같이 영적으로 이해해도 구약의 십일조는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4)번째로 이해하는 것은 십일조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견해이다.십일조 자체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직접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지만 십일조의 성격이 첫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렇게 모형으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이해라면 앞서 말한 헌금과 그리고 성도들의 모든 재산이 구약의 십일조라고 이해하는 것은 실제적인 것(2번)과 영적인 이해(3번)로 각각 나누어 적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5) 번째의 이해는 십일조가 성도들 자체라는 이해이다.십일조가 장자의 것이듯이 예수장자의 것은 십일조와 같은 성도들이라는 이해이다. 이는 십일조가 신약시대 구원받은 성도들을 예표 한다는 이해이다.
위와 같이 십일조가 다양하게 이해되어진다. 중요한 것은 1)번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십일조를 구약의 십일조와 같은 제도로 혹은 신약의 헌금으로 직접 이해하는 것보다 오히려 성도들이 세상에서 취한 모든 제산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본인의 3)번 이론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구약에서 본래 장자는 한 사람을 강조되었다. 그 장자가 이스라엘의 유일한 장자 이삭이다. 그리고 그 이삭으로 말미암아 12지파의 모형인 야곱이 나타난다.
이렇게 [이삭-야곱]에서 이삭은 유일한 장자라면 야곱은 장자로부터 장자권을 얻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장자라는 한 사람에 의해서 모든 백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리는 성경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자가 후에 장자지파로 나타난다. 장자지파는 다른 지파의 것들을 취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형은 [장자-장자지파]로 발전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장자이삭-장자권 야곱(12지파)*장자지파-장자권에 포함된 이스라엘의 12지파
위와 같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에서 십일조를 이해하면 십일조는 한 사람 장자의 소유가 되었듯이 또한 장자지파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이 맬기세댁에게 드린 것은 세상에서 승리로 얻은 재산을 맬기세댁이 얻었던 것이 될 수 있다는 예표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장자가 아닌 장자지파와 같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영적전투로 이긴 결과는 성도들의 모든 재산이 구약의 십일조와 같이 구별된 것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구약시대 장자는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구약시대 장자지파는 신약시대 모든 성도들*구약시대 장자지파의 십일조는 신약시대 성도들의 모든 재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즉 구약시대 장자지파와 십일조가 신약시대 영적 성도들과 영적십일조(재산)가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이 있다.장자가 한 사람으로 출발하듯이 대제사장도 한 사람으로 출발한다.아론이다. 이 아론 한사람의 [대제사장]에 의해서 [여러 제사장]들이 나타난다.
*[대제사장 아론-여러 제사장들]--->[이후]--->[다른 대제사장-다른 많은 제사장들]
죽게 된 아론대신 다른 대제사장이 세워진다. 그 대제사장이 죽으면 다른 대제사장이 나오는 반복이 연속해서 계속되었다. 죽으면 또 다시 이어지는 것이 아론의 반차이다. 이것을 히브리서가 말하는 아론의 반차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것은 계속 반복되어 그리스도까지 모형으로 나타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제사장 예수는 한 사람으로 끝난다.히브리서는 이를 맬기세댁의 모형으로 설명하고 있다.맬기세댁이 한 번의 십일조를 받았다. 그는 이렇게 전쟁 승리의 대가로 십일조를 얻었다.
예수로 영적 출애굽 한 성도들도 십일조를 얻는다는 것이다. 첫 장자가 첫 것이라는 십일조를 얻었듯이 그 첫 장자예수에 의해서 출발된 장자지파인 성도가 세상에서 첫 것과 같은 구별된 재산을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영적 출애굽한 자들의 모든 재산이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구약시대 십일조는 장자의 것으로 장자의 첫 것을 의미한다.
A)[첫 것이라는 장자예수]가 [첫 것이라는 모든 십일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라는 첫 장자로 말미암아 첫 장자자파들이 나타난 성도들이다.
B)[첫 장자지파들이 된 성도들]도 [첫 것이라는 모든 십일조]를 세상에서 얻게 된 것이다.그것이 세상에서 구별된 장자지파인 모든 성도들의 모든 재산이다.
이렇게 구약의 십일조를 신약의 헌금으로 바로 이해하는 것보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취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헌금과 달리 이해되는 것이다.
물론 신약의 헌금도 구약의 십일조로 이해되지만 이 헌금은 레위지파가 얻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때어 대제사장에게 드렸듯이 이와 같이 헌금이 오늘날 사용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도들의 모든 재산이 십일조이며 그것 중 얼마를 떼어서 교회에서 일하는 자들을 위해서 연보하는 것이다.
신약시대로 적용하면 아래와 같다.*장자예수--장자지파 성도들이다. *대제사장예수--많은 제사장인 성도들이다.*부활한 장자예수가 모든 첫 것들의 십일조를 얻게 되었다.--장자예수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모든 성도들의 재산이 십일조와 같이 구별되어서 나타난다
우리는 유일한 장자인 그리스도의 것이며 우리 모든 소유도 유일한 장자인 그리스도의 십일조라는 것이다. 우리는 장자로 장자권에 들어왔고 장자로 세상에서 구별된 재산을 얻었다.
끝으로 전통적인 십일조인 1)번째 이론을 거부하는 것은 2,3,4,5번의 이론이라는 것이다.
==========================================================================[re] 삭제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근호 2005-03-19 09:49:16, 조회 : 342, 추천 : 30
>귀하의 글은 대하면 포르노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귀하께서는 교회가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부터 새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조작] 손성식 2005-03-20 00:35:39, 조회 : 249, 추천 : 29
『묵시와 현실』
【조작】
후기 자본주의에 의해서 조장된 현실이 역사세계를 뒤덮고 있어. 예전에 루터나 칼빈은 로마 카톨릭을 "글루미 데이"처럼 여겼겠지만, 나에겐 후기 자본주의가 그래.
어떻게: 나의 감각으로 경험하는 모든 교회의 움직임이 자본과 결탁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자본은 현대를 조작된 현실로 관리하는 것 같애.
관리되는 사회: 그래. 자본의 유지 본능을 위해 던져지는 석탄 같단 말이야.
그럼: 나는 이 세계를 거짓된 현실로 경험해. 최근에 도서관 가서 DVD 한 편을 보았는데 제목이 뭐더라. "City Hall"이야. 이 영화는 조작된 현실에 대한 고발이지.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거든. 자본에 길든 권력은 자기 유지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을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지.
그래: 그럼. 우리의 삶을 봐. 내가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무엇이야. 더 이상 우리는 세계를 내 눈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잖아. 세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대부분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서 얻은 것이잖아. 세계는 이제 육안으로 본 게 아니라 기술 복제된 영상들로 구성된거야. 우리는 그 기술 복제된 영상들을 통해 세계를 체험하고, 그것을 재료로 우리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지.
그럼 눈 감고 살자는 얘기: 아니 눈 감고 어떻게 살아. 자본주의 현실을 살려면 산업사회에 역군이 되야 되는 돼. 그러나 이것은 알아야겠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니라는 거야. 그건 단지 자본주의 흐름에 잘 부대끼고 있는 거지. 그것으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은 아니야. 마치 박 주영이 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이 상관없듯이 말이야.
근데 걔는 왜 기도하는 걸까: "골 넣은 것으로 구원 받은 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 덕분에 구원 받는 현실을 망각하지 말게 하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리고 골 넣어 준 골키퍼도 골과 상관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는 현실을 믿게 해 주시옵소서" 뭐 이런 기도인가.
자본주의로부터 도망쳐 버릴까: 바보 같은 소리. 자본주의는 현대를 사는 모든 아담들을 하나되게 하는 역사적 장(場)이며 삶을 지탱시키는 힘이야. 그것은 눈에 보이는 감옥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공포를 가져다주는 유령 같은 것이야.
그래도 탈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던데: 그래. 현대 예술이 그렇고, 현대 철학이 그래.
어떻게: 자본주의 조작된 현실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단독자로 남는 것이지.그런데: 교회는 안 그런 것 같애. 현실 교회는 자본으로 복음을 전파하려는 시건방진 작태를 보이고 있으니까 말이야. 내 친구 하나가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한국 교회들이 자본으로 시건방을 떤다고 하더라고.
이 자리에서 복음이란: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자본의 조작된 현실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현실. 아담세계를 버리시고, 십자가의 장(場)을 통해서 새로운 그리스도의 몸이 배태되는 십자가의 현실이지.
그래서 성도란: 단 하루를 살아도 "예수님, 고맙습니다!"
##############################################################################################욕망의 정의 김상욱 2005-03-25 11:50:14, 조회 : 185, 추천 : 13
사람의 욕망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그 욕망이 하나님을 향하면 사모함이 되어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사물을 향하면 탐심이 되어 우상 숭배가 되지요.죄가 사망과 어둠으로 향하는 성향이며 의는 생명과 빛으로 향하는 성향이듯이거듭난 사람, 다시 말하면 십자가를 건넌 생명의 성령의 사람은 그 욕망의 성향이하나님께로 줄달음을 치게 됩니다(롬8장, 시편 참조)
==========================================================================[re] 욕망의 정의 이근호 2005-03-25 15:35:05, 조회 : 169, 추천 : 15
>하나님께 향한 욕망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처참하게 돌아가시고
사도 바울이 죽도록 욕을 얻어 먹었다는 점을 귀하께서는 놓치고 있습니다.
##############################################################################################책 소개 - 한 권으로 보는 현대 사상가 50 구득영 2005-03-25 19:09:57, 조회 : 125, 추천 : 13
한 권으로 보는 현대 사상가 50 - 원제 Fifty Key Contemporary Thinkers (1994)
존 레흐트 (지은이), 곽동훈, 김시무 (옮긴이) |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정 가 : 15,000원판매가 : 12,750원(15%off, 2,250원 할인)- 알라딘
-------------------------------1.초기구조주의 - 7명2.구조주의.구조주의 역사 - 12명 3.포스트구조주의 - 5명4.기호학 - 8명5.2세대 페미니즘 - 3명 6.포스트마르크스주의 - 5명7.모더니티 - 6명 8.포스트모더니티 - 4명--------------------------------
'철학의 함정'에 나오는 생소한 인물은 대부분 여기 다 들어있습니다.단순히 백과사전식이 아닌 저자 나름대로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그리고 각 장마다 참고할 다른 책들을 소개해주고, 또한 번역자는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을 함께 전해줍니다.그리고 저자는 페미니즘의 대표주자(?) 쥴리아 크리스테바의 제자라고 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