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의 유혹] 2005-02-06
['도파민'의 유혹] 2005-02-06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글은 이렇게 쓰는 것입니다!-구자근 사모님의 작품
이근호 2005-02-06 08:29:24, 조회 : 419, 추천 : 20
'도파민'의 유혹
<광주ㆍ전남 성경공부 모임을 마치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함평 산골짜기 여인이 보고픈 마음에 이끌려서, 꽁(꿩)요리를 먹으러 간 것뿐이었는데, 이야기 중에 자연스럽게 나온 소리들은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기이한 열망>으로 모아졌다.
‘이런이런 집사님이 계시다... 저런 분도 계시다... 나도 그랬다... 당신도 그렇지... 그 사람도 그럴 거여... 그럼 한번 전화해보자... 확인해보자... 그러자... 참, 강목사님께 미리 말씀드려야지... 당근이지... 우리는 엄연한 질서의 옹호론자...그러나 파괴도 이해하는 자... 가만, 그런데 이 목사님이 강의하는 곳이 많아서 힘드시지 않을까... 무슨...! 그런 거 전혀 개의치 않는 분이여... 그렇지, 공부한건 계속 쏟아내야 하는 법... (사람은 쏟아내는 기쁨으로 사는 것!)’ 하고선 헤어지자마자 만들어진 것이 어제 밤의 성경공부 모임이었다.
참 즐거웠다. 말씀이 부르는 자리가 벅차서 즐거웠다. 듣고 또 듣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성도라면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되 뇌이게 되는 그 십자가의 도를 함께 들을 수 있는 무리가 있어서 즐거웠다. 사랑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 즐거웠다. 좁은 공간에 놓여있는 난로가 더 훈훈해서 즐거웠다. 호박고구마의 타는 냄새가 기분 좋아서 즐거웠다. 1년 2년, 가는 세월과 상관없이, 여전히 반짝거리며 열강하시는 강사님의 열정이 즐거웠다. 가히 세계적임을 뛰어넘어 세기적이라 평하신 김 집사님(실로암 교회)의 알고도 짓는 죄가 즐거웠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유혹을 그리워한다” (강의 30여분 경과 중). 아- 헤어져야 하는 그 순간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잔인한지. 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어찌 헤어질 것인가. 비단 여기뿐이랴. 울산, 그 먼 곳에서 헤어질 때는 또 어땠었고. 인천, 안산, 두루두루 그런 것을. 그렇다고 특별히 하고 싶었던 말이 있던 것도 아니고 이러쿵저러쿵 속 시원히 말해 본 적도 없는데. 멀뚱멀뚱하니 戮?슬쩍 바라보기만 할 뿐인데도, 이상하게 헤어질 때는 가슴 한쪽이 아리한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서 십자가의 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만인데, 그게 끝인데, 왜 좀더 시간을 연장하여 갖고 싶은 걸까. 십자가의 그 복음을 구절구절 더 듣고 싶고, 똑같이 좋아하는 형제자매들과 더 오래 붙어있고 싶고...마음 약한 바보만 그런 건가. 뭐 이렇게 요란을 떠는지. 이건 또 무슨 죄인가.
하여간에, 사람에게는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그 상태를 더욱 지속시켜나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봉고차 안에서 두 여인은 계속해서 아쉬움을 토로하게 되었는데......
-진짜, 이왕에 대구에서부터 그 피곤한 길을 왔는데, 이렇게 일찍 끝나다니(90분 강의)... 진짜 아쉽다... 안그래요?
-어머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만 생각해보니 그러네... 아까 파장할 때는 왜 그런 생각이 안났지? 아니 나도 조금은 더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끝나버렸네?
-아니야... 나는 아까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갔거든요. 다음 26일에 내가 또 나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이렇게 모였을 때 더 많이 듣고 싶은데...
-집사님도 참... 그랬구나. 그럼 조금만 더 해달라고 말씀드리지 그랬어요...
-그렇지만 그런 말은 또 못하겠대. 어쨌거나 진짜 아쉽다...
-그러게... 생각하니 진짜 아깝네. 이 좋은 밤, 시간도 많았는데, 일찍 헤어진 게 속상하다... 우리 ~형제는 휴가까지 내서 왔는데... 쯧! (이때 운전목사가 참 철없다는 말투로 )
-핫따... 시절 좋네그려... 좋은 밤이라... 그려, 뒤에 탄 사람들은 ‘좋은 밤’이라니 좋겄다! (이 철없는 사람들아) 나는 지금 집에까지 몇 시간이 걸려서 갈지 암담하구만... 이 덜거덕거리는 체인으로... 이 곳에 살면서 이렇게 사나운 눈발은 처음이네. 집에까지 잘들 가야 헐텐데...
-어차피 이렇게 차도 밀리는데, 이 시간에 더 듣고 아예 늦게 나오면 차도 밀리지 않고 시간도 안아깝고... 얼마나 좋아... 에이, 참 속상하네...
-그렇게는 생각대로 안됩니다. 이렇게 퍼붓는 밤은 일찍 출발할수록 좋아요. 지체하면 큰 일 나는 수가 있어요~
-여차하면 우리도 아예 광주에서 자고 가면 되지요.
-참, 속도 좋다... 나도 저렇게 한번 낭만적으루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네...
-아니, 내말은... (왜이렇게 안통하냐, 아유 답답해)
그러니까 우리 둘은 더 듣고 싶었다~ 이거지... 그런데 오늘 아침, 어젯밤의 안부를 묻는 서로의 전화통화 후, 어젯밤의 그 헤어짐은 우리 둘 만의 안타까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잘 들어가셨어요? 체인도 안채웠다면서요.
-예... 어젯밤 같은 좋은 기분으로 눈길을 달리다가 단번에 죽었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런디, 요렇게 또 살아 돌아왔네요... 하하하
-하하하하, 참내...집사님도...
-그 분들도 너무 좋았대요... 그리고 ... 그 집사님 딸도 요즘 힘들어했었는데, 목사님 말씀이 그렇게 좋았다는 거예요... 더 했어도 좋았는데... 우리 아들한테도 물어봤더니, “글쎄요... 처음이라서.. 그게...”이러는 거여...그래서 내가 그랬지요.“에이, 이놈아! 너는 아니다...”하하
-하하하하... 우리도 그런그런 얘기 하면서 왔는데...
-다음 모임 시간이 너무 오래 남았지만, 우리가 원한다면 앞당겨서 모일수도 있지요...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말씀을 좋아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존재들인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만만하게 기쁜 마음들이 토로되었다. 그야말로 십자가를 앞세운 상호기만에, 상호위선에, 상호인정투쟁이다. 매번 자신한테서 들키는 또 다른 죄인의 모습이다. 아담 안에 있는 유혹을 어찌 끊어낼 수 있으랴. 내가 엄청 좋아하는 내용이니까 시간을 더 내야 돼... 내 몸 중심사상, 내 몸 만족케 되기를 바라는 또 다른 색깔의 그 기복신앙에서 어찌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기복신앙을 버리지 말라. 또 하나의 위선에서 벗어나라-강의 도중)......
기쁨과 감동의 마음을 연장하여 끈으로 묶고 싶은 인간의 시간 속에는 <위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함>이 소유의 터널을 지나면서, 필경은 각각의 개별자로 진행시키고자 하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인간에게는 받은 은혜를 은혜로 지속시킴이 실로 불가능하다. 곧바로 <소유시켜서> ‘자기 의’로 쌓아둠을 기뻐하게 만드는 악마의 근성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애초에 복음을 찾아볼 수도 없고 찾는 자도 없다. 아니 처음부터 아무도 이 복음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복음 스스로 단절시키고 있음을 볼 뿐이다(사도행전 28: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뇌의 호르몬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 몸의 전체를 지배하고 관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감동의 샘이라 불리는 <도파민>은 기쁨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것으로, 이것이 대량 분비될 경우에 기쁨이나 행복감은 말할 것도 없이 창조성이나 영감, 지적 쾌락과 적극성이 싹틀 정도여서, 강렬한 감동은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혁명적인 작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도파민의 법칙>이다. 각성제의 효과로 치면 인간이 만드는 약품의 10배이고 이것의 과잉분비가 지속될 경우 환각과 망상이 일어나는 정신분열증세로 천재적인 창조나 자기파괴가 이어진다고 하니, 그 곳에서 파생되는 능력은 가히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속기에 충분하며 속이기에도 부족하지 않다.
이러한 감동과 기쁨은 자신의 마음에 흡족한 것을 받을수록 강력히 일어난다. 아름다운 꽃을 보았을 때, 진한 커피 향과 음악을 섞었을 때, 울산 몽돌 바닷가의 우유빛 파도를 보았을 때, 코드가 맞는 남녀의 눈빛이 부딪혔을 때... 등등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도파민을 분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거나 마음속 깊이 와 닿은 설교에도 이 호르몬은 왕성하게 분비된다. 자신의 마음에 만족스러운 복음을 듣는 순간 우리의 뇌에서는 사랑과 창조를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방출되기 시작하고 우리의 마음은 기쁨과 감동과 행복감이 가득 퍼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지적 만족의 쾌감이 절정에 이르고 이 땅에서 감내해야 하는 어떠한 고생과 고난조차 아주 마땅하다며 적극적으로 이겨낼 수 있음이 확신된다. 다시는 절망하지 않으리,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붙잡고 살리, 다짐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누구에게라도 어찌 그렇게 사랑스런 마음이 샘솟는지. 내게 깊은 상처를 준 남편을 향해서도 속으로 짓씹었던 욕들이 스스로 부끄러워지며 다 용서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못난 나를 데리고 살아주는 것이 그저 고마운 생각에 남모르는 눈물도 재빨리 훔쳐낸다......사실 이러한 변화는 꼭 교회 안에서만 생겨나지는 않는다. ‘인간극장’만 잘 봐도 살아 움직이는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
때문에 기쁜 마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용솟음쳤다고 해서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며 박수치고 펄쩍뛸 일은 아니겠다. 왜냐하면 수많은 교회나 절, 성당 등의 종교단체뿐만 아니라 사람이 속해있는 모든 조직의 공동체는, 사랑과 섬김으로부터 오는 감사와 기쁨 등의 본질적인 가치를 가르치면서, 최고로 인정하며 권장하며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훈련해서라도 이 도파민을 이끌어내느라 안달이다. 친절훈련, 감사훈련, 웃는 훈련, 기도훈련...... 그러므로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교회를 다니냐, 안다니냐,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등의 외형적인 모습으로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진짜니 가짜니 따질 수 없다.
다만 십자가의 능력은 <성도를 기쁘게 해주는 일>에 있지 않고, 성도로 하여금 <죄인의 자리에 앉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십자가는 우울한 마음을 기쁨과 감동으로 만들어주고 무능력을 능력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죄인이었음을 알려줄 뿐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고린도전서 1:24)이기 때문에, 복음을 들으며 감동하고 기뻐하는 그 순간일지라도 복음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로 소유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복음을 듣고, 이러이러한 것이 너무 좋았다며 기뻐할 수는 있어도 그 감동이 복음의 내용인양 하늘 위엣 것과 섞어놓으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자신(땅)의 기쁨을 위해서 이제는 거꾸로 복음을 이용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은혜를 알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됩니다, 저렇게 해야 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기복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애초에 이 세상에는 복음이 없다고 했는데(골로새서 3: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전도서1:14), 땅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내 안에 ‘도파민’이 넘쳐나는 상황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하늘 위엣 것과 섞으려고 하는 시도를 계속한다. “이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거야,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다니,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여해야지,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려야지, 이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지......”
이러한 땅에 속한 행위들로는 죄 사함이 없거늘, 어떻게 하늘에 속한 생명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하늘 위엣 것과 땅의 것을 섞고자 하는 시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이 유일한 복음이라고 전하는 성도를 정죄하는 일이나, 반대로 어떤 인간을 특별히 우상화시키는 위험에 빠뜨린다. 즉 성도가 가리키는 하늘 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쏟아지는 용서의 은총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고마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전도자의 행위를 문제 삼거나, 아예 하나님 같은 영적존재가 특별히 존재하는 양 떠벌리는 것이다.
“믿는다는 사람이 왜 저렇게 자기만 생각하냐. 부모도 없고 가족도 없냐. 도리가 있지.”
“목사라는 사람이 교인들 심방도 제대로 안하냐. 양을 위해 목자가 기도해야지.”
“복음 전한다는 사람이 왜 그리도 사랑이 없냐. 저렇게 무관심하다니.”
“왜 인간을 무시하고 한쪽 복음만 얘기하냐... 그러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성장도 안되지.”
“이번 부흥사경회에 전도열정(말씀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이 특별하신 분이 오십니다.”
“이번 부흥사님은 신유의 은사가 있는 분인데 세계에서도 아주 유명한...”
“그 목사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중에 아주 큰 비젼을 받았답니다.”
“영적으로 특별하신 분이고 예언의 은사가 있는 분이니 기도제목과 돈 10만원씩을 ....”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세요.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종입니다.”......
인간의 모든 감동과 기쁨을 낳는 행위들은 일단 뇌 속에서 차곡차곡 저장 된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하나하나 ‘자기 의’로 떠올려진다. 아담 안의 유혹, 도파민의 법칙 아래 있음이다. 그러기에 그것들은 이미 해아래 새것이 아니며 새 피조물의 모습이 아니다. 땅엣 것이다. 은혜는 여전히 내리지만 인간이 저장하고 소유하려는 순간에 이미 부패하여 가기 때문이다. 마치 쌓아둔 ‘만나’가 썩고 냄새나는 것처럼.
그러나 십자가의 능력은 어떤 인간에 의해서도 결코 장악되지 않으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갇혀있지도 않다. 예수님께서 독점하고 계신 사항이기에 그렇다. 땅과 하늘의 것을 확실하게 분리시키는 진리의 세계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동일한 말씀이라도 성도에게는, 매일 내리는 ‘만나’를 그날그날 받아먹어야 하듯이 늘상 생소함으로, 낯선 세계로 들려오기 마련이다. 땅엣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섞여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파민의 유혹은 끝도 없이 따라다닐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조직, 종교단체들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도파민의 파도 아래서 즐거워하고, 그 기쁨과 감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인 양 감격스러워 하며 그것을 섞어찌게로 간증하고 다닐 때,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똑같이 행복한 상황을 경험해도(물론 그 반대라도) 그것은 마땅히 땅의 소산물이요, 하늘 위엣 것으로 임한 십자가의 능력과는 섞여질 수 없는 헛된 것임을 증거 하게 될 것이다.
이 진리 안에 있을 때 은혜가 은혜로 남기 위하여, 성도는 끝까지 죄인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을 살아가게 된다. 기복적 신앙의 유혹을 그리워하는 작태만큼 모든 인간의 죄의 양상은 다양하게 노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추한 것을 덮을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완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마다 죽임당하는 현장은 지금처럼 은혜의 눈발이 퍼붓는 순간이다.
일생동안 하나님의 뜻만을 기뻐하는 자, 순전히 복음만을 좋아하는 자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한가지로 치우쳐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서 자기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도파민의 유혹대로 살 수밖에 없는 땅의 존재이다. 죄에 갇혀있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늘 하늘 위쪽에서 먼저 온다(요한일서 4: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출애굽기 33:19) 새 언약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을 날마다 새롭게, 더 깊이 알아감을 고마워한다. 그 분의 용서하심의 은혜를 노래한다. 도파민의 유혹과 그 터전을 도말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이다!
##############################################################################################
레위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장우 2005-02-07 12:23:43, 조회 : 320, 추천 : 12
저희교회 곽진계 집사님의 서평입니다. 같이 나누고자 올립니다.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평소에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책들을 즐겨 읽는 저로서 전정진 성결대학교 교수의 이 책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을 설레임 반, 의구심 반으로 구입하였습니다. 왜 의구심 반이 들었냐면 저자도 처음 들어보는 저자이고, 더군다나 우리 나라에서는 레위기에 대해서 주석이나 강해서를 많이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그 의구심은 한 권의 양서를 만났다는 기쁨으로 변하였습니다.
이 책의 장점을 이야기하면, 저자는 레위기의 제사제도, 제사장제도, 정결등의 규례를 설명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단 번에 이루신 제사 및 제사장 사역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히 이루심”의 사역에 기초를 둘 때 이 레위기의 모든 제사제도 등이 진정한 의미가 밝혀진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레위기 1-7장을 제사규례, 8-10장을 제사장 제도의 설립, 11-16장을 정결과 부정의 규례, 17-27장을 거룩한 삶을 위한 규례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정결과 부정의 규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레위기나 성경의 규정이 거룩과 정결, 부정의 세 가지로 구분(구별)하였다고 합니다. 즉 거룩하지 않은 모든 것은 속되며, 속된 모든 것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이스라엘의 삶 다방면에 나타나는데, 먼저 광야 이스라엘 진의 배치를 보면, 진 중앙의 회막은 거룩한 장소이고, 이스라엘이 머무르는 진은 정결했으며, 진 바깥은 부정하였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거룩하게, 이스라엘 백성은 정결하게, 이방인은 부정하게 간주되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거룩의 정도도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 백성이 구분되었고, 회막도 성소와 지성소, 회막뜰로 구분되었고, 성막 내의 기구들도 구분되었고, 심지어 시간도 구분되었는데, 안식일과 속죄일은 특별히 거룩하여 모든 활동이 금지되었고, 무교절 등 각종 절기들은 일상 활동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월삭은 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성경은 거룩과 정결, 부정을 구분하고, 거룩의 정도도 구분을 하였을까요? 제 생각에는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 거룩한 하나님이기에 죄많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또한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거룩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면서 희생 제물이 자신의 죄(부정) 대신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고, 이것이 점진적 계시를 통하여 이제는 동물이 아니라 한 인격으로 모아지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마저도 자신의 죄 때문에 속죄제를 드려야 했고 결국 죽어야 했지만, 죄없으신(거룩하신) 예수의 제물 되심과 제사장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를 믿는 자들도 이제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거룩, 즉 성화는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구별됨, 즉 상태입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정결 및 부정의 규례에 대한 저자의 설명 중 아쉬운 점은, 부정한 자와 접촉한 자는 그 부정이 접촉한 자에게 이전된다는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결시키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신약(특히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예수의 치료사역 중 예수의 손을 문둥병자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며 문둥병을 고치시는 장면과 열병으로 앓아 누운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시며 열병을 고치시는 장면 등은 예수께서 친히 병자들의 부정을 흡수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 라는 뒷구절에서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온갖 부정과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짊어지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우리가 깨끗함을 입은 것입니다.
끝으로, 거룩한 삶을 위한 규례(17-27장)에서 개인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구약의 율법이 명령하는 내용들은 우리는 도저히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율법의 모든 명령( 총 613가지 라고 함)들을 항상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 것입니다. 율법을 다 항상 지키면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을 다 항상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레위기를 상세하게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저자의 구분과 설명을 따라 차례대로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
숭사리라는 단체의 교회 바라보는 법!!!
장병엽 2005-02-08 18:51:42, 조회 : 306, 추천 : 12
건강한 교회의 선정은 성경에 근거한 사도신경적 신앙 고백이 있고 복음의 분명하고
확실한 선포가 있는 교회로서 기본적으로 숭사리 신앙고백 16조에 배치되지 않는 기
성교회중에서 아래의 기준 및 체크리스트에 따라 결정됩니다.
<건강한 교회 기준 및 체크리스트>
대분류 7개 항목에 걸쳐 50점씩 총 350점 만점이며 체크리스트 한 항목당 10점씩 입니다.
평가 결과 70%인 245점 이상을 득점하면 건강한 교회로 선정되며 이후 교회에 변화가 생겨
이 점수대를 만족하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그 즉시 선정이 취소되고 등재에서 삭제됩니다.
숭사리 명칭 사용을 문의해 오신분들이 계시는데 숭사리의 개혁정신하에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교회나 기존교회중에 개혁을 통해 기준 점수를 90%인 315점 이상을 득점할 경우에는
교회명 앞에 개혁의 상징 ' 숭사리 '의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할 예정입니다.
(예) 숭사리00교회
첫째) 벽돌 성전 건축이 아닌, 우리 몸의 정결한 성전 건축에 온 힘을 쏟는
교회입니다.(50점)
1. 예배당을 성전이라 호칭하지 않고 강단을 성역화 하지 않으며 성도 누구나 설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2. 성전건축(?)을 한다고 성도들의 보증으로 은행에 융자를 받고 있거나 성도들에게
무리하게 헌금약정을 강요하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3. 예배당의 소유권이 담임목사나 특정 장로등의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4. 사리사욕을 위해 예배당에 포함된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 융자를 받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5. 긴급한 소요도 아닌데 주차장이나 교육관, 수련관등의 명목으로 부동산 소유를
늘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둘째) 복과 저주의 액막이식 같은 율법의 십일조를 강제하지 않고, 아들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십의 십조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입니다.(50점)
1. 십일조가 거제의 헌물로서 복음시대에는 맞지않는 헌금이라는것을 교인들이 알고
있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2. 강단에서 십일조를 하면 복받고 십일조를 안하면 벌받는다고 가르치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3. 성도들의 십일조 헌금액수로 중직이나 기타 직분을 선출하는 기준을 삼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4. 십일조가 레위인이나 제사장의 몫이라는 개념으로 목사의 당연한 몫으로 생각하고
대부분이 목회자의 사례비로 가져가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5. 십일조에 관계없이 성도들이 소득의 일정부분을 구제와 선교 그리고 교회 유지 관리
를 위해 헌금해야 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세째) 헌금을 걷기 위한 어떠한 절기나 행사가 없으며, 헌금자의 이름을 공포하거나
주보에 드러내는 인간의 의가 없고 100% 자원하는 헌금과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천국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교회입니다. (50점)
1. 감사헌금 외에 각종 절기헌금이나 목적헌금을 만들어 헌금을 유도하거나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2. 예배시간에 헌금자의 이름을 공포하여 인간의 의를 들어내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3. 주보를 할애하여 종류별 헌금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4. 교회의 모든 재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구제와 선교에 헌금의 50% 이상을 할애하고
있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5. 교인들이 헌금을 100% 자원해서 내며 헌금으로 인한 부담으로 교회를 떠나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넷째) 안식일을 지키듯 억지와 형식의 주일성수가 없고, 자발적인 예배, 감동적인
예배, 경건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배당을 향하는 교회
입니다. (50점)
1.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2. 교인들을 하루종일 교회에 붙들어 놓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3. 주일에 출석교회가 아닌 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것을 잘못된 것으로 가르치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4. 개신교 전체를 하나의 교회로 보지 않고 내교회, 내성도 만을 챙기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5. 각 기관이 활성화 되어있고, 서로가 봉사하려고 하며, 자발적, 감동적, 경건한 예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다섯째) 목사가 율법의 제사장처럼 교인과의 차별화를 위해 법복을 입거나 복과 저주
로 압제하는 권위주의가 없고, 예수님처럼 오히려 낮은 자세로 서로서로를
섬기는 복음의 요구를 따르고 있는 교회입니다.(50점)
1. 목사가 스스로를 레위인이나 제사장처럼 구별된 사람으로 착각하고 교인과의 차별
화를 위해 예배시 법복을 입고 권위를 나타 내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2. 목사가 설교시 주의 종을 잘모시면 복받고 대적하면 벌받는 다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3. 목사가 자기 부인을 사모로 호칭하며 교인들에게 그렇게 대접하도록 유도하고 있지
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4. 목사부인도 직분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5. 담임목사의 물질적 욕구는 어떠한가? (10점)
가) 승용차는 최고급을 타고 다니지 않는가? (만족 2점 보통 1점 불만족 0점)
나) 사택은 고급아파트에 너무 넓은 평수를 사용하지 않는가?
(만족 2점 보통 1점 불만족 0점)
다) 기본연봉외에 갖가지 명목으로 교회예산을 축내고 있지는 않는가?
(만족 2점 보통 1점 불만족 0점)
라) 시무교회를 섬기기 보다는 개인의 사욕을 위해 부흥회등 외부 강연에 시간을
많이 뺐기고 있는것은 아닌가? (만족 2점 보통 1점 불만족 0점)
마) 심방시 교인들로 부터 촌지를 챙기는가? (만족 2점 보통 1점 불만족 0점)
여섯째) 있고 없음, 높고 낮음의 세상 냄새가 없고, 모두 한 형제와 자매로서 천국을
향하여, 천국의 가치관으로 유지되는 행복한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입니다.
(50점)
1. 목사가 교인들을 형제/자매로 여기고 그렇게 호칭하고 있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2. 부목사, 전도사등의 사례비에 비해 담임목사의 사례비가 너무 과도하게 책정되어
있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3. 교인들이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신분에 관계없이 차별없는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4. 제직회나 공동의회 등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당회의 결정을 추인하는 거수기 역할
을 하지는 않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5. 교회에 정관은 있으며 목사나 중직들에 대한 신임 및 임기제가 보장 되어 있는가?
(만족 10점 보통 5점 불만족 0점)
공 통 ) "축복 제일주의", "예배당 제일주의"가 아니라 교회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말씀대로 정직하게 성실히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모두
의 다짐이 있는가? (50점) (만족 50점 보통 25점 불만족 10점)
※ 숭사리 여러분께서도 주변에 있는 교회나 출석교회를 평가해 보시고 총점의 70%
대를 넘는 교회가 있으면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 숭사리라는 단체의 교회 바라보는 법!!!
이근호 2005-02-08 22:46:53, 조회 : 269, 추천 : 16
교회사를 통해 보면 이런 발상들이 모여 소위 '신앙고백서' 같은 것을 양산시켰습니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왜 이런 이단적인 발상이 나올까요?
1. 믿음이 없어서 그러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성과를 통해 하나님의 움직임을 포착하려고 합니다.
즉 이성(理性)의 활동을 통해 신앙을 영글어내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 공동체가 그리운 것입니다. 혼자서 신앙생활을 도저히 못하겠고, 남들이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안심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는' 신앙의 본질과 틀립니다.
아브라함은 누구보고 물어보고 약속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두리번 거리면서 신앙생활 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 자신이 없기에 단체를 원하고 소속을 원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이런 짓거리는, 신앙도 없으면서 남들에게 신앙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위선적 행동에 해당됩니다.
2. 땅의 힘을 그리워하는 태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낳습니다.
사람은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좋게 말해서 '생존 본능'이요, 나쁘게 말하면 '자아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욕구'입니다.
남을 꺽는데서 자아의 우월함과 동시에 자기 존재에는 남보다 뛰어난 가치가 있음을 대외적으로 확인받고 싶은 겁니다.
이것이 걷잡을 수 없는 욕망입니다.
땅의 세계를 모두 차지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정복욕이죠!
3.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교회란 이미 있는 것이지, 단체로 만든다고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교회일까요?
바로 이런 욕망이 자기에게 여전함을 십자가 피 앞에서 회개하는 그 심령이,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의 부활의 능력 아래 놓여 있는 진정한 교회요, 몸의 지체입니다.
##############################################################################################
헌신예배 후 강사목사님 사례비..
김태우 2005-02-10 15:46:41, 조회 : 224, 추천 : 12
다른 교회는 어떤지 모르지만 저희 교회는
헌신예배를 하게되면 강사목사님을 초청하게 되고
따로 헌금을 냅니다.
예배가 끝난 후 헌금의 일부를 강사목사님 사례비로 드리고
남은 돈은 헌신예배를 드린 기관의 운영비로 쓰는데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물론 강사목사님께서도 사례비를 적절하게 잘 사용하실것이고,
먼데까지 오셔서 설교하신 목사님께 사례를 한다는것이 인간적인 생각엔
오히려 당연한 것이겠지요..
오늘 요한 삼서 1장을 읽던 중에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해선 안될거 같은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회에서 결정하는 것을 청년회 회원인 제가 말씀드렸다간
책망만 들을것 같고..
과연 제 생각이 틀린걸까요?
==========================================================================
[re]당연히 틀렸습니다
이근호 2005-02-10 20:25:32, 조회 : 218, 추천 : 15
헌금 하는 사람 따로, 헌금 처리하는 사람 따로 한다고해서
헌금한 사람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의 문제는,
본인이 한 헌금 행위에서 본인이 슬그머니 책임에서 뺄려고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께름직하게 느끼면서도 헌금을 하는 이유가 헌금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에서부터 자신의 정당함을 유지하려는 처신에 해당됩니다.
즉
주님은 안보이고, 안믿어지고 사람만 보이는 전형적인 형태이지요.
본인이 교회 유지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주님과 교제하면서 사는 사람인지 확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태복음 10:32)
괜히 헌금 잘 썼니 못썼니 당회 책임론으로 뒤집어 쒸우지 마시고 아예 헌금하지 마세요.
##############################################################################################
손무성 목사님?
김대식 (Homepage) 2005-02-17 00:24:20, 조회 : 118, 추천 : 14
전용선 서버로 인해 무한정 용량에 관한 이야기를 최종훈집사님이 말씀 하시길래 저도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용량 문제를 해결할수 있지 싶어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손목사님이 아니면 서경수 목사님이 잘 아신다고 하셨는데
컴분야는 워낙 발전이 빨라서 새로운 정보에 따라 유용하게 활용할수 있는 것이 있기에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고픕니다.
(우리교회 강이아빠도 제가 잘 모르는 이 부분을 관심있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저렴한 비용으로(약 3만원?) 용량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하시길래! )
답변을 좀 빨리 재촉하고 픕니다 지금 서버 초과를 지워야 할 자료가 많아서(5기가 정도) 혹 이 부분에 대한 해결점이 있다면 시간절약이 가능해서 말이죠. 바쁘신 손목사님께 주변분들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른분들도 이 부분에 아시는 정보가 있으시면 좀 자세히 알려주십시요 리플 부탁 드립니다.
==========================================================================
[re] 손무성 목사님?
서경수 2005-02-17 04:13:59, 조회 : 108, 추천 : 18
서경수는 컴맹입니다.
손무성, 이창섭 목사님이 그 분야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
[re] 손무성 목사님?- 서버 컴 제작에 관하여
손무성 (Homepage) 2005-02-20 23:22:03, 조회 : 87, 추천 : 18
답변 늦어 죄송합니다.
1.전용서버 고정 IP를 KT-메가페스 VDSL 급으로 받아야 하고요.
2.컴 본체를 서버 전용 컴퓨터를 전문 서버용 컴을 만드는 곳에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통해 알아보시는 것이 제일 빠름) 알아보시면 됩니다.
3. 또는 컴퓨터 도매상가 서버용 컴 제작에 관해 문의해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1) 제작 문의시 1일 방문 숫자 500-1000명 정도 예상 방문.
2) 듀얼 CPU , 스카시 하드(서버용) 등
4. 서버로 사용할 os 선택에 관한 것도 문의 해 보십시오.
==========================================================================
[re] 답변 감사합니다
김대식 (Homepage) 2005-02-21 00:20:53, 조회 : 68, 추천 : 14
최일규님 답변과 손목사님의 답변을 확인하고 대충 무슨 말인지 감이 옵니다
아마 아직까지는 좀 무리인듯 보입니다. 컴도 아무리 중고로 해서 새로 구비해야 관리하기에 용이할테니 아직까지는 좀 그렇네요.(서버전용 컴은 우리가 예상 못했군요)
좀더 빠르고 싼 서비스가 앞으로 쏟아질테니 좀 더 기다려 봐야 할것 같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2280 손무성 목사님? 김대식 2005/02/17 14 119
2279 [re] 손무성 목사님?- 서버 컴 제작에 관하여 손무성 2005/02/20 18 88
2278 [re] 답변 감사합니다 김대식 2005/02/21 14 69
2277 [re] 손무성 목사님? 서경수 2005/02/17 18 109
◁ 이전글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