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수련회를 대비한 공부 - 사회론의 기초 1] 2004-12-15
[겨울 수련회를 대비한 공부 - 사회론의 기초 1] 200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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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수련회를 대비한 공부
이근호 2004-12-15 11:54:17, 조회 : 316, 추천 : 25
겨울 수련회를 앞두고 예비적으로 사회론의 기초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대충 썼으니 대충 훑으시면 됩니다.
서론
총체로서의 사회와 한 사회 안에 있는 연합체나 또는 클럽들과는 명백히 차이가 있다. 만약 사회를 하나의 결사체라고 한다면, 정상적으로 보아서 그것은 우리가 수월하게 거기에 관여하고 또한 마음대로 그것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란 그럴 자유가 없이 오히려 우리가 그 안에서 출생되어 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물리적인 위치 점유가 하나의 지속적인 사회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회란 바로 영토상의 집합체 또는 사람들의 집단일 수는 없다. 일단의 사람들이 우연하게 동일한 장소에 자리해 있다고 하여 그것이 곧 어떤 사회를 구축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상호연계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BC 384-322)의 생물학적 접근 방법은 모든 실체들을 그들의 부분들로 분석하고 그것을 유(類)와 종(種)으로 분류하는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도 어떤 특수한 요소들, 특히 이성과 언어를 가진 동물이다. 그런데 그 특성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윤리적 준칙들에 순응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며, 인간의 이러한 특질들은 또한 모든 동물에 공통되는 비이성적 요소들과 결합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든 동물에 공통되는 비이성적 요소들이라는 것은 유기체의 무의식적인 성장과정 및 성적 욕구나 본능과 같은 정서 또는 욕구 등을 말하며, 이것들은 특히 고통의 회피나 쾌락의 추구 등과 같은 충족감 또는 '선'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이성적 부분은 의식적이며 명상적인 부분이다. 그것은 실천이성과 이론이성으로 나누어지는데, 실천이성이라는 것은 (습관에 의하여 지배되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의식적으로 그들의 비이성적 충동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욕구를 제어하는 기능을 가지며, 이론이성은 우주의 여러 활동을 포착하고 그 작용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론이성이야말로 최고의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인간 활동, 즉 명상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들도 그것이 성적 파트너에 대한 욕구, 타인에 대한 자연적 애정 그리고 타인과의 교제에 대한 욕망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사회적 욕구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최소한도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화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쾌락의 추구나 타인보다 우월한 힘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무제한적인 소유욕 등으로 말미암아 전반적으로 사악한 존재로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탐욕스럽고, 비겁하다. 그리고 인간은(동물과는 달리) 그들의 의사에 따라 행동할 수 이t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성과 동일시하였던 정의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났을때에는 '최악의 동물'이 되며, 이와 같은 저질의 쾌락에 빠져들기 쉬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해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란 도덕적, 정신적 활동으로부터 보다 높은 질적 쾌락을 발견하여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는 인간의 진정한 본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인간이 언제나 친근감을 갖고 있는 질서정연한 공동체의 삶을 탐구한다.
또한 그는 인간이란 그 내면의 세계 속에 사회적 생존이나 성적 욕구 그리고 교우관계에 대한 욕구 등의 운동인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본성이 발전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회집단과 더불어 가능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사회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본성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한 부분은 행위의 준칙을 준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준칙이라는 것들이 인간의 감정과 행위 사이에서 나타나는 극단과 결여와 균형 또는 그들 사이의 '중용'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용기라는 것은 비겁과 만용 사이의 중요이다. 관련이라는 것도 인색함과 낭비 사이의 중요인 것이다.
정의라든지 도량 또는 선량한 기질이나 절대 등의 도덕적 덕들도 이와 마찬가지의 중용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중용을 나타내 보이는 인간 감정의 정밀한 수준이나 행동 유형을 결정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판단의 대부분은 모든 종류의 쾌락을 경험한 사람의 실천이성의 판단에 맡겨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덕이라는 것은 본래 그러한 일반적인 준칙들을 따르고자 하는 품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품성이란 덕스러운 행위를 습관화시켜 주는 엄격하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서 주로 형성된다.
그러나 덕이라는 것이 인간의 사회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그것을 조장해 주는 선량한 삶의 유일한 특성은 아니다. 보다 높은 수준의 인간 능력의 발현, 특히 이론적 명상의 생활이나 또는 자족적이며, 가장 만족스럽고 가치 있는 인간 활동에 필수적인 물질적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는 사회적 협동이라는 것도 필요한 덕성으로 보았다.
중세 후기 유럽의 사회이론을 창시한 홉스(Thomas Hobbs: 1588-1679)는 사회와 결사체 간을 유추하여 그것들의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생활 이 전에 있는 '자연상태'를 생각하게 되는데, 자연상태에서는 질서정연하게 상화 관계할 수 있는 여하한 사회적 조직도, 어떠한 규칙도, 어떠한 규제방식도 없었으며 따라서 협동적 생활의 유지란 불가능했었다. 이같이 상정되어지는 바의 탈사회적 생존이 불확실성과 불편함과 순전한 위험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상호 결합하여, 현생의 사회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상화 결합하여 결사체를 결성하거나 혹은 기업체를 확립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하나의 사회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홉스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결의 결사체가 지닌 기본규칙들에 동의하고 또한 단일의 정치적 권위가 행사하는 지배에 복종하기로 상호 약속함으로써 위험스럽고 전도를 예측할 수 없는 그 자연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이성적인 것이었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파괴적 성향을 들을 순치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지닌 하나의조직체에 대해 공통의 지지를 서약함으로써 그들 개개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사회계약적'적 사회이론의 모델이 되었다.
모든 사회계약론자들에 있어서 한결같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홉스에 있어서 하나의 사회를 빚어내는 것은 동시에 하나의 국가나 또는 '공화국'을 빚어내는 일이다. 문제의 권위는 주권자의 힘에서 생겨난다- 다시 말해서, 규칙 제정권은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 보장된다. 그런데 홉스에 있어서마저도 사회란 국가 이상의 것이다. 일단 최초의 사회계약이 이루어지면, 다른 부차적인 집단들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부차적인 집단들은 비록 절대적인 정치적 권위가 존립해 있음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주권자에 의해 이룩되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종교적 및 교육적 조직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만족스러운 물질적 및 문화적 생활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하나의 정치적 사회 안에서 그 스스로를 발전시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체들은 그 자체 계약적인 기반을 지닌 것이어서, 개개인들 간의 명시적인 합의나 또는 계약의 사상이 홉스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사회관계를 이루고 있다.
홉스는 고정되고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 있어서 이것이 사회의 여러 조건들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점에 있어서 '개인주의적' 이론가임을 부인할 수 없으며, 이 같은 사실에 입각하여 그는 인간의 사회생활에 대한 궁극적 설명을 제공해 준다. 반면에 표준적인 현대의 관점에 따르면 사회란 개개의 인간존재들이 지니는 활동과 속성의 소산으로 환원되어질 수 없는 근본적으며 또한 지속적인 실재이다.
따라서 홉스와 더불어 에밀 뒤르께임Emile Durkheim(1858-1917)은 사회가 개개인들을 통제해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러나 그의 생각에 의하면 개개인들에 대한 이 같은 사회의 통제는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러한 자연스런 과정에 m이해 모든 개인들이나 또는 일련의 개인들의 행동과 선택에 앞서 집합의식 또는 집단의식이 생겨나며, 이러한 의식이 개인의 신념과 정서와 행동을 규정해 준다. 이러한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서 개인은 자기 사회의 다른 성원들이 갖는 행동과 더불어 하나의 통합된 총체를 이룩해 주는 복합적인 관련유형에 적절히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간을 형성해 준다. 사회란 인간에 선행하는 일련의 상호관련적 행위양식들로서 이것들이 개별적 인간존재들의 심리와 행동에로 편합되어져서 인간을 위사하여 단연코 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조종한다. 인간들의 언어, 인간들의 도덕, 인간들의 종교, 인간들의 경제활동, 심지어서는 인간들의 추리작용까지도 모두가 사회적 산물들이다. 이러한 '전체론적(holistic)' 사회관에 의거하여 개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사회가 지닌 본성 및 그러한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개인들의 위치 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뒤르께임은 그의 유명한 자살연구(사회가 그 인간을 죽인다) 통해, 외관상 이처럼 아주 개인적인 행동들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에 있어서는 개인적 요소들이 아닌 사회적 요소들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증명코자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살은 개인적 자살이 지니는 동기들을 살펴보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자살률이 문제의 사회가 갖는 유형과 단계와 의해 특히 사람들을 그들의 사회적 집단들 안에 결속시켜 주는 '연대'(solidarity)의 성질에 따라서 어떻게 규정되어지는지를 밝힘으로써 연구해야 한다. 인간의 행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개개인의 본성이 기여하는 바는 적도 오히려 사회가 기여하는 바가 퍽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 뒤르께임은 때때로 생물학적 유추를 끌어들이고 또한 사회이론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개념인 사회적 '유기체'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뒤르께임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들이 개인에 대해 지니는 바 압도적인 중요성을 들춰내 보여주기 위해서, 또한 사회가 개인들로서의 인간을 창조하고 유지하며 또한 개개인들의 충성과 서약과 심지어는 경배까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를 일종의 신으로 간주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의 사회란 문자 그대로 생물학적 유기체 라든가 또는 하나의 신일 수 없기 때문에, 뒤르께임은 다른 모든 탈개인주의적 사회이론가들과 같이 자신의 사회론을 명석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진술하는 일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뒤르께임의 이론은 현대 사회이론의 일반적 경향들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뒤르께임은 홉스와는 달리 현대 사회학에 있어서 중심적인 인물이다. 현대 사회학은 사회를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및 교육적인 각 국면으로 세분하고 이들 제국면에 있어서 과학적 탐구를 진척시키려 한다.
홉스는 계약이 개념과 주권의 개념에 집중함으로써 이 같은 일을 수행하고 있으며, 뒤르께임 역시 사회적 연대에 대한 개념 및 노동분화와 같은 중요한 다른 사회현상들과 사회적 연대와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통해서 마찬가지로 일을 수행하고 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영시 노동분화라는 개념을 많이 활용해 왔는데, 스미스는 그 개념을 상호간의 동정과 공감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사회적 결속이라는 사상과 연결시키고 있는 데 반해, 마르크스는 노동분화를 사회적 갈등의 원인임과 동시에 결과인 것으로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모든 정상적인 사회관계들을 통해 이러저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우애의 개념을 통해서 똑같은 역할이 수행되고 있는 데 반해, 베버에 있어서는 사회적 행위의 개념이 추상화로 일반화를 위한 토대로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각 이론가들은 자신의 특수한 일련의 중심개념들을 전개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개념군들을 중심하여 사회적 실재에 대한 관찰로부터 수집해 오는 자료들을 조직하게 된다.
홉스의 야망은 모든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진정으로 보편적인 이론을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는 예를 들어 지적하자면, 정복을 통해서 등장하는 주권과 자의적인 동의에 기반해 있는 주권 간의 다양한 차이점들까지를 열거하고 있다. 뒤르께임의 경우에 있어서 그의 연구의 상당부분은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라고 하는 두 가지 유형의 연대 간의 차이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상 많은 이론가들의 명성은 사회들과 사회적 제연관들을 구분하고 또 분류해 주는 방안들에 대해 그들이 어떠한 제안을 해주고 있는가에 의존하고 있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좋은' 형태의 시민사회(군주제, 귀족제 및 온전한 민주제)와 세 가지 '나쁜' 형태들 (참주제, 과두제 및 중우제)과를 대비시킨다. 아담 스미스는 사회들이란 수렵, 목축, 농법, 상업 등의 4단계를 통과한다는 사상을 창안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마르크스의 가장 예리한 분석은 그가 봉건주의와 자본주의와를 대조시키고 있는 점에서 발휘하고 있으며, 베버(Max Weber:1864-1920)는 탁월성 또는 전통적 사회 조직체로부터 합리적-관료제적 사회조직체에로 이해해감을 밝히는 데에서 드러나고 있다.
홉스는 권력과 영광과 재산을 위한 투쟁,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것들이 상호 파괴적인 활동으로 연결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계약상의 합의로 연결되는 방법, 모든 사회적 상황들이란 바로 이와 같은 두 가지 요소들의 결합체라는 등등의 사실들을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뒤르께임은 만약 인간들이 홉스가 생각하고 있는 바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여하한 효과적인 합의도 이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뒤르께임의 생각에 따르면, 모든 계약은 일치와 동의를 지속 시켜 가고자 하는 도덕적 의미에 관한 근본적인 사회적 합의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들이 의존해 있는 바 이와 같은 도덕적 합의의 기반을 해명하는 일이 뒤르께임의 목적이다.
홉스는 암암리에 이성적인 개인들로 하여금 주권자의 권위 있는 규칙들에게 복종할 것을 권유한다. 스미스는 산업 및 상업에 대한 제약과 제한들을 배제시키고자 하며, 반면에 뒤르께임은 교육과 의식과 정치적 조직을 통해 경제생활의 기능분화에 근거해 있으며, 또한 사회 유기체의 통일과 방향성을 토대로서의 '집단양식'이 전면적으로 조정해 감으로써 결합되는 집단의식을 발전시킬 것을 요구한다.
마르크스는 말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 제도를 혁명적으로 타도하고자 한다. 베버의 소망을 요약해 내기란 다소간 어렵지만, 그러나 그의 소망 속에는 합리적 조직과 카르스마적 지도에 대한 찬미가 들어 있다.
A.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사회론
사회 속에서 산다는 것은 죽음을 피하는 데 충분한 평화스러운 상태 속에서 다 함께 살면서 그의 종족을 재생산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경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를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은 정의인 것이며, 그것은 다른 사람을 해치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적 성향을 억제하기 위한 어떤 체계를 말한다.
만일 정의가 없다면 사회는 그 스스로 붕괴될 것이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수중에서 피해를 입은 경험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강화한 동정의 감정이 사회생활의 바탕이라고 스미스는 말한다. 개인들은 그 공평한 관찰자들이 시인할 정도의 보복을 통해서 사회의 존속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개인의 행동은 미래의 잠재적인 비행자를 견제함으로써 이런 효과를 갖는다. 정의의 침해자를 재판하고 처벌하는 법원의 제도화된 절차는 단지 이러한 수정된 보복 본능의 확대인 것뿐이다. 그래서 형법의 내용도 죽음과 중대한 신체적 피해의 경우에 가장 큰 고통을 느끼게 되지만 재산이나 개인적 명성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형태의 피해를 겪은 사람들이 느꼈거나 또는 느낄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분노의 감정을 규정화한 것일 뿐이다. 정의와 분노의 연결은 정의라는 것아 왜 순수한 소극적인 덕목인가를 설명하여 준다. 왜냐하면, 분노라는 것은 해악을 가져올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야기되는 것이므로, 정의롭게 된다는 것은 아무일도 하지 않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미스는 정의란 인위적인 것으로 보는 홉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의는 확실히 비반성적인 도덕 감정에 기초하고 있으나, 사실 그것은 개인의 생명과 생활의 가능성을 함께 보존시켜 줄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특히, 상업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평화스러움을 보장함으로써 일반적인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의는 인간 생활의 불확실성에 관한 공포감 및 우주의 근본 원인에 관한 인간의 형이상학적인 사유에 그 근원을 두고 형벌에 대한 영원한 공포심을 유발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불의를 저지르지 못 하도록 제도화된 종교에 의하여 지지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하여 종교는 법적 제재를 지지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경제생활을 이롭게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관계들을 지적함으로써 스미스는 사회라는 것을 하나의 전체로서 전반적 목표를 가진 통합된 기계라는 보는 그의 관점을 확립하였으며, 이것은 가정이라는 것을 성적 본능에 그 근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면접관계를 가진 사람들과의 심정적 일체감으로 결속된 사회라고 설명한 그의 입장에도 반영되어 있는 주제이다. 가정은 그 어린이들이 오랜 성장의 과정을 거쳐 그 사회의 목격자들의 태도를 내면화할 때까지 보호되고 양육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되는데, 이것은 계획된 바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결과이다.
자연적 정의에 관한 규칙과 그것들은 조직적으로 재강화할 수 있는 어떤 제도들을 생각할 때, 스미스의 경우에 있어서 가장 외부의 핵심적인 사회관계는 경제관계였다. 사회는 생산의 기본 방식에 따라 수렵, 목축, 농경, 상업(이 상업형태의 사회는 숙련공과 상인에 의하여 지배되는 형태임) 형태의 사회로 구분되며, 이들 각각은 특징적인 재산제도와 계급 구조를 갖고 있다. 그의 일반이론에 따르면 재산제도에 관한 규칙은 의식적 창조물이 아니라, 가계의 정상적인 경제활동 과정에서 토지를 점유하고 재화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계속적인 소유의 기대로부터 자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 가정에 정착하지 못한 수렵인들은 그들이 사냥하여 얻은 짐승들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그러한 기대를 가진 사람이 없었고, 유목사회에서는 가축의 무리를 계속적으로 보살피는 일이 그 동물들의 계속적인 소유에 관한 '합리적인 기대'를 갖도록 하였다. 그리고 농업의 발전과 더불어 각 개인들이 그의 정착지에 가까운 토지를 경작하고 그 토지의 독점적 점유와 사용에 관한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또한 숙련된 기술과 광범한 노동 분업의 출현에 따라, 생산 도구 및 생산물의 소유문제와 관련하여 상이한 기대들이 발생하였고, 그러한 기대를 나타내는 복잡한 재산관계의 법칙들이 나타났다.
또한 사회적 계급 분화의 요인은 이 재산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대력 200-300명씩 무리지어 개인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던 수렵민들 사회에서는 거의 그 예를 찾을 수 없었으니, 개인적 부의 인정에 따라 그것을 기초로 계급이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목생활의 단계에 나타난 가축의 소유권 문제는 소수의 부자들과 나머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불평등을 유발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곧바로 타타르족 추장들의 경우와 같은 권위주의적 지배 형태를 창출하였다.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을 조직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었고, 또 가난한 사람들의 부양은 물론 그의 가축을 보고하여 주는 다수의 추종자들을 부양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정착된 농경 생활은 소규모 농민들의 보호 본능과 봉건 귀족들의 부와 권위를 발생시켰으며, 이 봉건 귀족의 부와 권위는 도시의 발전으로 새로운 상인 계급과 기술자들의 연합이 형성되어 새로운 상공업 계급의 존속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는 난공불락이었다.
이와 같은 도시의 발전과 상공업 계급의 출현은 다시 공장제 수공업 제도의 발전과 전체적으로 새로운 경제 체제를 형성하였으며, 그 새로운 경제체제 속에는 '지주', '자본가', '임금노동자'의 커다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질서가 나타났다.
스미스이론에서 기초적인 경제적 생산 양식의 차이에 따라 매우 많은 사회 조직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첫째로는 생존을 위하여 다름으로는 이웃의 평가로부터 높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물질적 재화를 획득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사회 구조 결정과 사회 변동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스미스는 군사적인 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지 않는다. 누가 스스로 지배자가 되어(지배자가 됨으로써 자동적으로 존경받게 되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부를 축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현존의 생산 양식에 의존하는 기본적인 사회 조직을 갑작스럽게 변경시킬 수는 없다. 경제 생활은 재화를 교환하고자 하는 각 개인들의 자연적인 성향과 최소의 노동으로써 그의 물질적인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욕구에 따라 이해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욕구는 그 자신들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욕구만은 아니다. 인간의 물리적인 욕구란 쉽사리 충족되기도 하지만 관심과 선망, 달리 말하여 다른 사람들의 심정적 동조를 받고자 하는 욕구는 그보다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미스의 경제적 동시에 관한 설명은 심정적 동조의 이론을 활용하여 중력이라는 개념으로 천문학을 통합시킨 것과 매우 유사한 통일성을 그의 사회이론과 연결시켰다.
부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고 예상되는 쾌락 때문에 사람들은 부를 통한 진정한 이득, 달리 말하여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고 있는 부유한 사람들의 감정에 동조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물리적 욕구를 초월하여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성향을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나한 사람들이 그 지위의 격차와 정부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 부유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복종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경제적인 구조와 정치적인 구조가 상호 보완적인 지지를 유지하는 이유이며, 사회적 메커니즘의 유기체적 통일을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예에 해당한다.
경제 활동의 동기에 관한 이와 같은 분석은 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쾌락이란 예상했던 정도의 쾌락에 접근한 사례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많은 경제 활동이 비합리적 활동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스미스도 역시 덕에 대해서 보다 적절하게 주어지는 존경을 부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를 도덕의 타락이라고 간주한 종래의 편견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심정적 동조 이론에 따라 인과론적으로 설명하면서 또한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 부가 가지고 있는 유익한 결과에 따라 목적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그러한 '불규칙성'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스미스가 전체 사회체계 속에서 경제, 정치, 재산, 종교, 기타 사회의 여러 측면들의 상호 연쇄적 관계를 주의 깊게 탐색하는 성과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명성의 대부분은 상업 경제를 자기 규칙적인 체계라고 분석한 그의 업적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스미스의 시장경제 체계 분석은 모든 상품의 자연 가격 또는 '실질' 가격이라는 개념에서 출발되고 있는데, 이 가격은 근본적으로 그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의 양과 관련되는 가격이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됨에 따라, 그 가격은 상품 생산에 필요한 정도로 충분히 공급되는 자본에 대한 보수(이자)와 토지에 대한 보수(지대)를 포함하게 된다.
즉 모든 사회에는 임금, 이지, 지대 등의 평균적 또는 자연적 수준이 있으며, 그 수준은 상품을 시장에 공급하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비용으로서 누구나 일정 기간 동안 그의 상품을 팔 수 있는 최저가격이 되는 자연 가격을 구성하는 수준이다. 만일 시장가격이 자연 가격의 수준보다 낮다면, 시장 가격은 오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품의 공급이 중단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시장 가격이 자연 가격보다 높다면, 높아진 이윤에서 공정한 몫을 얻고자 하는 다른 잠재적 생산자들이 값이 오른 상품의 생산을 통하여 시장에 참여하게 되고 그들의 상품을 현재의 시장가격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 판매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생산자들은 그들의 상품가격을 인하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며, 이와 같은 과정은 자연 가격이 상품 매매의 표준으로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자연 가격이라는 것은 스미스의 말과 같이 시장 가격이 '지속적으로 그 인력에 끌려들어 가는' 자동조절적 균형점이다. 이 균형점은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변동된다. 그것은 이 균형점이 노동 분업의 증가, 시장의 확장, 통신 기관의 발달 등 여러 가지 원인에 따른 경제 발전의 축적된 효과들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상품의 자연 가격은 언제나 그 상품의 생산비와 함께 노동, 토지, 자본의 자연적 보수 비율과 관련되며, 또한 이 보수의 비율은 이 생산 요소들에 대한 현실적인 수요와 공급을 반영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품경제 체계의 일반적 성향은 최저 수준의, 적정 가격으로 소비자 재화의 지속적인 유통을 보장하는 생산이 이루어지는 체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정의에 관한 일정한 제한이 가해지기만 한다면, 각 개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은 전체 사회의 번영을 극대화하게 되는 한편, 성공적인 소수의 상대적인 부는 경제 발전에 필요한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사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의하여 나타나게 되는 결과인 것이다.
효율적인 자기 규제적 체계는 특히, 그 내부적인 작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함부로 다루어져는 안된다. 상품경제체계의 작용에 관한 스미스의 설명에서 보면, 정부는 경제 활동에서 충분히 배제되어야 하고, 또한 그가 '자연적 자유의 명백하고도 단순한 체계'라고 불렀던 상태가 나타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분명한 의미를 수반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방임주의 정책에서 구현되고 있는 최소의 정부를 요구하는 자유주의적 사상이다.
모든 사람은, 그가 정의의 법칙을 침해하지 않는 한, 그 스스로의 방식에 따라 자기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서나 그 자신의 사업과 자본으로 다른 사람의 사업과 자본에 경쟁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이점에 있어 군주라 하더라도 그가 개인의 사업을 감독하고 또 사회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기업들이 고용을 증진하도록 지도하는 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정부는 경제체계의 작동을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정부는 정의를 구현해야 하며, 국가의 방위를 담당하고 교량이나 도로 등 상업 활동을 편리하게 하는 내부 시절을 마련하기 위하여 조세를 징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정부는 다른 이유로 수요와 공급의 능력을 간섭하여서는 안되며, 또 어떤 개인이 그 사유 토지와 자본 및 노동을 활용하여 그의 수입을 극대화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시도하여서는 안된다. 따라서 무역(국내 또는 국제적인)에 대한 규제나, 독점권 및 제한적인 직업 규제 등은 제거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해갈 때 이웃 나라의 희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웃 나라와의 상호 이익의 증진을 통해서 국가의 부는 반드시 증진된다. 왜냐하면 보다 큰 시장이란 더욱 발전된 노동의 분업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 더욱 효율적인 제조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의 국내적 분배는 단지 부유한 사람들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을 유익하게 하는 그러한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자연적 자유의 체계는 정당하고 편리한 것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도덕성이라는 것이 일종의 자비심의 문제라고 여겨지는 한 그 사회적 도덕에 간섭하는 것은 정부의 의미가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을 도우라고 강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의에 의하여 도덕성을 부정하는 측면을 강압하는 일, 달리 말하여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그것을 금지하는 일에만 그 기능이 한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라는 것은 창의적인 행위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심정적으로 동조적인 분노라고 하는 자연스러운 도덕 감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며, 이 때 그 도덕 감정이라는 것은 그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상처받기 쉬운 손상의 형태에 따라 각 사회 형태마다 특수한 내용으로 발전되는 보편적인 감정을 말한다.
따라서 정부는 아무런 근거 없이 정부 자체의 목적에 봉사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며, 모든 정부들은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미 만들어진 법률을 발견하여 적용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정부한 자연적 정의에 관한 강력한 감정과 상치되는 그런 법률을 강요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지 못한다. 예를 들면, 밀수를 자연적인 범죄활동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연법이 발견되고 적용될 소지가 마련되며, 스미스는 자연법 자체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서 경고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도는 외관상 '변칙적인' 도덕 감정을 전체로서의 체계를 위해 유용한 것이도록 해주는 바 배후에 가려져 있는 메커니즘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저질러지기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오로지 낙관적이며 자기 만족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공공의 선을 위하여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능력을 믿지 않았으며, 그들의 기득권을 가지려는 권력을 두려워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집단이란 그 구성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결합되는 것인데, 정치가라는 사람들도 그들의 직접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교활하고 간사한 동물'이며, 또한 상인들도 무역에 관한 제한에 대항하여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결속할 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인은 효율적인 경쟁의 과정에서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 이러한 다양한 부분적인 집단들의 압력에 저항할 수도 있고 또 저항하여야 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그의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경제체계의 이상적 형태가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는 노동의 분업이 노동계급에게 주는 해로운 결과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해로운 결과란 노동자들의 권태로운 작업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됨으로써 '마음의 무감각' 상태가 초래된다는 사실이며, 또 한편으로는 도시에서의 삶이 사람들로부터 촌락 공동체에서의 사회적인 압력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전반적인 영향력을 제거하게 되고, 그 결과 상업경제형의 사회는 노동계급의 '지성, 사회성, 용감성의 덕목들'에 중대한 손실을 입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손실은 일정한 기초적 교육을 통해서만 부분적으로 구제될 수 있을 뿐인데, 이러한 교육의 기능이 정부의 보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스미스가 이해하고 있었다.
B. 마르크스(Kars Max:1818-1883)의 사회론
우리가 마르크스의 인간론을 고찰하게 될 때 그의 사상에는 강력한 '휴머니스트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 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온전하게 발전시키는 것을 역사적 진보의 목표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창조적 자유라는 것은 인간이 드디어 자기 자신의 운명을 지배해 갈 수 있게 될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은 그의 사회가 지닌 경제적 현실에 의거하여 특정한 행동 유형 및 행동구조를 빚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믿음에 따르면, 인간들은 자신의 역사를 창조해 갈 수가 있으며, 나아가 자체의 원리에 따라 자기 자신의 본성을 이룩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변동을 추동시키며 또한 모든 것들을 통합시켜 주고 있는 기본 실재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있어서 관념론에 해당된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를 따라서 인간이 신을 대신하여 역사과정의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헤겔의 신학적 관념론을 변형시킨다.
헤겔에 있어서는 신이 자신을 소외시키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창조하였으며, 그것을 다시금 실제적인 자신에게로 통합시켰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통해서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인간이 신이라는 개념을 창조하여 그에게 최상의 인간적 특성을 부여한 뒤 이렇게 '소외되어 있는' 인간의 자아상을 경배해 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경제적 영역에다 적용시켜, 노동활동이란 인간의 성질을 물질적인 생산물을 통해서 구현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 인간의 종교적인 사상이 그러한 사상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을 지배하게 되는 것처럼, 이러한 물질적 산물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이것이 소외를 결과하는데, 마르크스에 있어서 소외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산물의 노예로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소외란 대립상태가 아니면 발생하지 않는 현상이다.
인간은 그 자신이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적 산물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 인간은 그가 완전히 통제해 갈 수 있는 새로운 생산과정들을 발전시켜 감으로써만이 이 같은 물질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에 따르면 역사란 실제의 모순들이 사회적 갈등으로 나타나고, 또한 인간과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 간의, 그리고 인간들간의 소외로 체험되며, 또한 사회적 발전에 있어서 각각의 특징 단계들이 갖는 물질적 환경으로 빚어진다.
사회 안에는 갈등을 빚었다가 나아가 통합을 도모해 가는 세력은 경제적인 세력 또는 물질적인 세력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경제적 요소들이 지닌 모순과 그것을 해소시켜 가는 운동이다. 이념이란 사물들의 모상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것들은 역가적 과정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결과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마르크스가 정치적 및 사회적 이념(또는 '이데올르기')들이란 계급투쟁에 있어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이 같은 이데올르기적 무기들이란 지배적인 사회계급들이 지닌 경제상의 기본적인 이해관계를 표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연구를 위한 마르크스의 접근방법이 지니는 본질은 노동을 통해 인간생활의 물질적 요건들- 음식, 의복, 주거 등등-이 획득되는 방법이 여하한가 하는 점이 모든 사회 및 그것들의 발전유형이 갖는 성경을 규정해 준다는 것이다.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을 생간하는 일이 모든 사회적 구조, 사회적 갈등, 따라서 모든 사회적 변동의 토대를 이룬다. 마르크스의 대부분의 연구는 이러한 명제들은 소상히 해명하는 일에 바쳐지고 있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사회론은 실증주의적 모습을 띤다. 그는 역사란 빈틈 없이 결정되어지며, 따라서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점을 사실로 전제하면서 사회적 변동을 엄밀히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일을 자신을 목표로 설정한다. 개별적 행위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계급적 지위에 의해 개개인들에게 부여되고는 길과 그러한 개개인들이 속해 있는 역사적 발전의 단계로부터 결코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분석이다. 그러나 각 과정상의 물질적 토대가 역사에다 순전히 기계적 성향을 부여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계급들 간에 투쟁이 물리적 갈등뿐만 아니라 이데올르기적 수단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며, 또 그러한 과정이 지닌 변증법적 성격은 물질적 요소들과 사회적 및 정치적 사실들 간의 상호작용을 허용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사실상 이들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엄격하고도 완고한 유형을 마련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역사적 발전의 목표는 물질적으로 결정되어지는 상호작용의 속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회론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이익을 단순하게 해명해 주고 잇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이익은 역시 객관적으로도 진리이며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이익을 보편적으로 수용하는 일이 공산주의 사회가 지니는 자유를 지향해 가는 운동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을 명백히 해주려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인간은 명백하고도 고정된 어떤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 사회적 설명에 대한 전체론적 접근방법의 일부를 이룬다. 개인의 행위와 태도는 신념은 그의 사회적 제관계들에 의존하며, 그의 사회적 제관계들은 그의 계급적 상황 및 그의 사회가 지닌 경제구조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그의 사회적 입장에 의해 자신에게 부여되는 바를 떠나서는 결코 여하한 성격도 지닐 수 없다는 의미에 있어서,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동시부여에 관해 홉스가 말하는 바 보편적 진리라든가, 또는 인간에게는 '전적으로 달라지는 일'이란 결코 잇을 수 없는 그런 어떤 국면들이 있다는 스미스의 믿음 따위는 존립할 수가 없다. 인간의 본성이 그의 행위와 동일시되고 있는 한 인간의 ,본성이란 '그의 사회적 관계들의 총화'이며, 이것들은 사회변천에 따라 변한다.
개인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보다 극단적인 견해는 본래적으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고전적 경제학자들의 전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갈등이란 인간이 지닌 본유적인 경쟁심과 공격성과 이기심의 결과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있다. 그는 인간에 대한 홉스의 묘사를 단지 소외되어 있는 인간이 자기중심적이며 적대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고 또 느끼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어떤 단계들에만 적용시킬 수 있는 것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과 감정은 자본주의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것이며, 그것들은 일단 자본주의가 지양되고 새로운 경제관계들이 확립되면 새로운 형태의 행동과 동기부여로 대체될 것이다.
홉스적 분석에 있어서, 사회적 갈등을 통제하기 위해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반-사회적 행동에다 제재를 가하고자 하는 합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접근방법이 강제장치를 통해 가는 데에는 적어도 일부의 탈이기적이며 계몽된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현실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부류의 주민들은 대체로 그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그는 벤덤과 같은 공리주의적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보다 정교한 교육적 장치들은 활용하는 것으로써는 성공적인 사회공학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벤덤은 "인간이 생활환경을 변경시킬 수 있으며 또한 교육자 자신이 교육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역사적 발전이 만개하면 인간의 '자본주의적' 본성이 진정으로 자애롭고 또한 자발적으로 협동해 가는 성향으로 변형될 것이며, 그 때에는 여하한 강제적 조작도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치른 후의 인간들은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들의 몫을 수행해 갈 것이며, 따라서 분배는 각자 그의 능력에 따르는 것으로부터, '각자 그의 필요에 따르는 것에로'라는 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질 것이다.
마르크스가 믿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인간이란 일시적으로 사회적 요소들을 통해 부패되는 하지만 그러나 본래는 비이기적인 존재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란 자신이 탄생하거나 또는 가입하게 되는 바의 제관계들이 지닌 성격에 따라 이기적으로 또는 비이기적으로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사실상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 내의 인간을 '비이기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기적 또는 비이기적 존재라는 것은 경쟁하고 있는 개인들의 이해관심상의 긴장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며, 반면에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사회에 있어서는 인간들 간의 자발적인 협동이 이루어짐으로써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시작하게 만드는 이른바 인간들 간의 소외상태가 일소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된 생산수단을 공유하게 될 때 사실상 경제적 이해관계의 객관적 마찰이란 과거사로 될 것이기 때문에서도 그러하다. 더욱이 이런 사회의 인간들에게 활용될 수 있는 성취유형은 개별적인 성취가 아니라 공동체적 성취로 된다. 그 까닭은 모든 것이 함께 이룩되어야 하거나 아니면 전혀 이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란 "인간을 통해서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본성을 실질적으로 점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 다시 말해서 실질적으로 참된 인간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같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존재현실은 인간의 생산능력들이 균형 있고 만족스러운 양식으로 발전되는 세상이다. 인간은 언제나 생산하는 자이지만 그러나 인간을 보다 진정한 생산자일 수 있도록 해 주는 어떤 제도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제도들이란 곧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지시하고 또한 그가 원하는 방법을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룩하기 위해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그런 제도이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스스로를 긍정한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형태의 노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긍정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업은 강제되고, 비인간화되고, 무의미해질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작업은 소외의 상태를 빚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작업은 또한 자유롭고 인간적이며 만족스럽고 창조적인 것일 수가 있다. 달리 말해서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작업은 소외되지 않은 사람의 생활상태로 될 수가 있다.
인간의 노동이 어떻게 하여 지금까지의 전자의 경우로 되어 왔으며,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앞으로는 후자의 경우로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마르크스가 자신의 역사관을 개진시키는 토대를 이루고 있다.
역사의 종국적 결과로서의 창조적 생산성이라는 마르크스의 이상은 모든 인간 속에서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구비되기만 하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어떤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함축적인 전제를 지닌 것이다. 그의 보다 역사적이고 보다 과학적인 접근방법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만족할 수 있는 활동들에 관한 경험적 관찰과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가치평가와를 결합시키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초기 저작들에서 인간이 지닌 '유적 성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마르크스는 다양한 실제의 인간행위들 가운데서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한 가지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원인이 되는 토대와 '생산력'과를 동일시하고 있는데, 생산력이란, '생산되는 산물과 그것이 생산되는 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생산력은 원료, 최종적 산물 및 여기에 관련되는 도구와 숙련도, 생산과정에 활용되는 전반적인 작업방법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사회의 경제적 토대로부터 다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경제적 토대가 일정한 양식을 통해 일정한 유형의 물건들을 생산해내게 되는 그러한 모든 요소들을 결합시켜 준다.
생산력의 가장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결과는 '생산관계'이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산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이러한 생산관계 안으로 들어간다. 생산관계들이란 노동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담당하게 되는 역할이다. 노동과정은 분업, 명령체계,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와 소유하고 있지 못한 자와의 관계 등을 포함한다.
공산주의 사회가 여타의 모든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생계를 유지해 갈 수 있기 위해서 이러한 관계들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들 관계는 농장주와 노예 간의 관계, 봉건영주와 농민 간의 관계, 공장소유주(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산업 임금노동자)와의 관계 등을 포괄한다. 따라서 봉건영주는 토지와 제분소를 소유하고 농노는 자신이 생존해 가기 위해서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산업 자본가는 생존수단을 획득하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러한 생산관계로부터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 간의 계급구분이 빚어진다. (공산주의 사회를 제외한) 모든 사회들은 계급들 또는 서열들로 분화되며, 각기의 성원들은 생산수단에 대한 그들의 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호 갈등을 빚게 되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달리 말해서 한 계급에 유익한 것이 다른 계급에는 해로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급분화는 바로 경제적(효율적인 기능조절에 따른) 분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분화는 단순히 수입이 수준이 다르다는 데서 빚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계급적 구분의 본성과 계급들 간의 갈등이 갖는 본성은 그들의 수입이 얼마 인가하는 수입의 양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수입의 원천에 의존하는 것이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절대적 마찰을 빚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빈한하고 자본가가 부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는 임금을 받고 자본가는 이윤에 의거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소유 여하에 의거한다는 말이다.
경제적 계급들 간의 투쟁이 갖는 성격과 강도가 '상부구조'의 안정 여부를 결정해 준다. 상부구조란 마르크스가 제도 및 문화적 장치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경제적 토대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어떤 사회가 지닌 도덕과 종교란 지배계급이 그들의 입장을 유지해 가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모든 계급들의 이익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false-consciousness)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모든 계급들이 단순히 계급적 이해관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규칙과 이상들을 마치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잘못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법률적 제도는 단순히 국가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미스로부터 등을 돌리고 홉스 쪽으로 나아간다. 달리 말해서 자연적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기능이란 경제적인 지배계급의 이익을 폭력적으로 방어하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에 있어서는 마르크스가 홉스를 넘어선다. 정부란 경제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또 그것을 방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에 선행하는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사회의 생산양식을 토대로 하여 사회으ㅟ 여러 가지 유형을 구분한다. 마르크스의 도식에 따르면 역사는 부족사회로부터 노예제 사회에로, 그리고 봉건제와 자본제를 거쳐, 결과적으로 공산주의에로 나아가는 진보의 도정이다. 그의 가장 소상한 분석은 봉건제로부터 자본제에로 이행해 간 것과 자본주의가 자체의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 종국적으로는 자기 붕괴에로 발전해 간다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이 토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원시공산주의로 명명되고 있는 부족사회에서는 사냥, 낚시, 가축사육 그리고 훨씬 후기 단계에 이르러서는 정착된 농업 등이 중심적 경제활동을 이룩하였다. 도구들은 원시적이고, 노동의 전문성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본적인 사회단위는 가족이고, 그러한 일련의 가족들이 그들 자신의 가부장적 수장(首長)에 따라 부족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 단계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계급이 없다. 따라서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모든 사회적 관계들은 혈족관계이며 노동분화란 가족집단 내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농업 생산으로 진보해 가고, 인구가 늘어나고, 상업상의 거래가 시작됨으로써 대규모의 부족사회들이 점차 보다 전문화된 생산제도를 조직해 가기 위한 한결 효과적인 방법의 일환으로 노예제도를 발전시키고, 자의적으로나 또는 강제적으로 부족들을 결합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도시의 탄생을 가능케 하였다.
이러한 노예제 사회가 계급들의 출발을 이루며, 노예들에 있어서는 처음에는 주민들 전체가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생산수단의 일부가 사유화됨으로써 계급적 갈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노예제는 생산방법상의 발전 결과인 것이지 단순히 인간이 본래부터 서로 다투고 투쟁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봉건사회는 도시의 생활로부터라기보다는 시골생활로부터 발생한다. 기본적인 생산과정은 농노들에 의해 수행되는 소규모의 소작이었다. 이 단계에서의 생산은 각 소작농이나 또는 수공업 노동자가 자신의 원료를 취합하여 거기에다 노동을 가미함으로써 제품을 생산해내었다는 사실에 있어서 개인적인 활동 또는 가족적 활동이다. 이는 k로 생산수단, 특히 도구들이 그 자체 개인들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각자의 농민은 자기 자신이 소규모의 토지와 자기 자신의 쟁기를 갖고 있었고, 다른 한편 도시에서의 장인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물레와 베틀 등과 같은 도구들을 이용하여 작업을 하였으며, 이러한 도구들은 그 자체 노동자 자신의 소유물이었다.
가족 내에서 그리고 연령과 성별과 변화하는 계절에 따라 일어나는 자연스런 노동분화는 점차 확장되어 일정한 정도의 전문성을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개별적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확인하는 일이란 언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초기 단계에서 있어서의 생산이 주로 직접적 소비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별적 노동자는 정상적으로 자기 자신의 필요나 자기 가족의 필요를 위해서 생산하는 바의 일체를 점유하며, 자신이 생산한 것 중의 일부를 봉건제하의 자신의 상관에서 제공하는데, 이들 상관은 자신들의 군사력으로써 신민적인 생산계급의 잉여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생산방법에 있어서 부의 원천은 토지이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결과되어지는 사회구조는 영토상으로 봉건적 귀족제에 바탕을 두고 있는 위계적 구조이다. 여기에서 농민들은 자기 생산물의 일부를 자신의 직접적 상관에게 상납함으로써 그들의 보호를 받음과 동시에 그들 상관이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들을 활용할 수가 있고, 상관들은 보다 넓은 영역에 걸쳐 군사력을 통솔해 가는 자신들보다 윗자리에 있는 봉건영주들의 상태유지를 위해 공헌함으로써 위계제 하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유지해 가게 된다.
봉건적 상관은 한 가정 내의 수장이 갖는 가부장적 성질들 중의 일부를 유지해 갈 뿐 토지를 통제함으로써 최대한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위와 같은 관계들을 분명히 인간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도시에는 길드 마스터, 직인장, 품팔이 직인, 견습공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들이 있으며 이들 조직 내에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성격의 관계가 존재한다. 이들 모두는 개별적인 생산단위를 중심으로 모여있으며, 길드 마스터는 직인과 품팔이 직인의 활동을 통제하고 보호하며, 이들은 각기 그들 자신의 도구를 가지고 있으며, 견습공은 품팔이 직인이 되기 이전에 일정한 훈련의 기간을 거친다.
봉건제로부터 자본제에로의 변천은 소비를 능가하는 생산의 과잉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생산의 과잉이 점점 더 많은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직접적 소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교환과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해내도록 유도해 갔다. 그 결과는 새로운 상인계급의 등장을 촉진시켰다.
다수의 노동자들을 보다 대규모이며 보다 복합적인 도구와 기계들을 작동시키는 일에 협동할 수 있도록 동일한 장치하에 집합시켜 주는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과 더불어 결정적 변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새로운 생산양식이 마련됨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계급 즉 부르조아지가 출현하여, 이들은 필요한 원료와 도구와 약속을 제공함으로써 이미 마련되어 있는 원료와 기계에다 자신의 노동을 결합시키게 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새로운 계급은 새로운 노동도구의 결과라고 하겠다.
총체적인 교환과정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세계의 여러 지역들을 탐사하고 또 식민화함으로써 가능해지는 바 시장의 확대와 새로운 원료의 발견 등을 통해 촉진된다. 그러나 그것은 봉건적 계급들이 지닌 강력한 힘을 통해 억제된다. 이들 봉건적 계급은 국가적 통제와 폐쇄적인 길드라는 한정된 장치를 통해서 부르조아적 제조업자들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할 수 있다. 이들 경쟁은 '상품'의 생산에, 즉 생산자들 자신에 의한 소비보다는 오히려 판매를 위한 재화를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제도의 본질적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봉건귀족과 부르조아적 자본가들 간의 투쟁은 사회갈등의 고전적 실례이다. 그 투쟁의 결과는 당시 상황의 경제적 현실에 의해 결정된다. 공장제 수공업이 지닌 보다 강력한 효율성이 보다 많은 부를 생산해 주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강화를 위해 국가와 그 밖의 기구들을 통제해 갈 수 있도록 부르조아 계급에게 정치적 권력을 마련해 준다. 그러한 과정에서 개개의 자본가들은 상호 필사적인 경쟁을 치루어 가야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의 생산수단은 그것들이 더 이상 단일한 노동자에 의해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인 것이다. 베틀과 동력직기는 생산을 일련의 사회적 행위로 만들어 준다. 이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분업과 세심한 계획과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생산관계 등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의 인간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임금 노동자들과는 금전적 관계 이외의 다른 여하한 관계도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단지 그들 노동자가 지니고 있는 유용성에 따라서 취급될 뿐이다. 봉건사회에서의 임금노동은 단지 일시적으로 견습을 받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만이 갖는 특성이었다. 그것이 자본주의 하에서는 사회적 인간관계의 표준으로 된다.
공장 내의 상품생산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