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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2004-10-02묻고답하기누가복음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2004-10-02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정낙원 2004-10-02 16:05:50, 조회 : 302, 추천 : 13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약 4:13-17)

성경은 이 세상을 일컬어 고해라고 합니다. 즉 고생의 바다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근거로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은 고난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고난을 당하며 살아가게 된 원인을 창세기 3장 14-19절에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고 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서 죄의 삯으로 고난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들에게 주어진 고난은 죄의 삯인 것입니다.
인간이 왜? 죽느냐! 죄 때문입니다.
인간이 왜? 고생하며 살아야 하느냐! 죄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모두가 죄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얼굴에 땀을 흘리며 살아가야 될 운명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가 어떠한 죄를 지었는지를 망각하고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죄인이 스스로가 죄인임을 안다면 하나님이 어떠한 환경에 처하게 한다 할지라도 불평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임에도 말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미혹으로 죄인들은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므로 죄로 인하여 주어진 고난 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내가 왜! 고생하며 살아야 되는가? 나는 열심히 하여 잘 살꺼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가 이처럼 자기 잘못을 모르고 하나님을 잊고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살도록 창조된 인간이 죄로 인하여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죄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 사랑을 버릴 수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모든 인간들은 자기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귀는 어느 시대이고 인간들에게 세상의 것으로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고 미혹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5-7절에서 증거하기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고 하여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세상 영광을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에게 절만 하면 세상에서 잘 살게 해 주겠다고 예수에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귀가 광야에서 사십 일을 주리신 예수를 찾아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을 떡되게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네 능력을 떨쳐 영웅이 되라고 하고, 세상 모든 부귀영화와 권세를 움켜 잡아보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말을 지금 성도에게 적용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잘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자녀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가난하게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그럴듯한 말입니까? 인간이 바라는 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씀이 아닙니까? 지금도 교회에서 육에 속한 많은 목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마귀처럼 광야에서 주린 예수에게 준다고 하는 것을 성도들에게 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미혹에 빠진 신자들이 행복이 돈에 있는 줄 알고 너도 나도 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교회에 열심히 충성하면 복 받는다고 하니 죽을둥 살둥 하면서 경쟁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열심 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면 복을 준다고 하니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댓가를 바라고 하는 열심을 성경은 뇌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신자들이 충성이라는 뇌물을 하나님께 드려놓고선 삼십배, 육십배, 백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죄라고 하면! 순진한 교인들은 우리는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한 것뿐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2장26-27절을 보면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고 하면서 성도 안에는 성령님이 와 계시기 때문에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거짓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그 속에 기름부음이 없다는 것이고 그 속에 기름부음이 있는 자는 거짓된 설교를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요한복음 10장에선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씀을 복음인양 듣는다는 것은 다른 양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즉 자기도 추구하는 것이 동일하기 때문에 듣는 것입니다. 결국 거짓 복음을 증거하는 자나 그 거짓복음을 듣는 자는 동류인 셈이지요.

그러므로 진짜 거듭난 성도는 열심히 충성하면 복 받을 것이라는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습니다. 충성이란? 구원받음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타나는 감사의 행위이지 결코 댓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이란? 죄인이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았다는 것이고, 또 죄로 인하여 쫓겨난 에덴동산(천국)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성도는 이 세상을 지향하고 살아가지를 않습니다. 다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천국을 소망하고 사모하며 현실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가짜 신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이용해서라도 이 세상에서 출세하여 자기 이름을 떨쳐 보겠다고 달려갑니다.

빌립보서 3장 18-19절에서는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고 하며 육신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일컬어 십자가의 원수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성도들 역시 과거에는 공중 권세 잡은 자 아래서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공중 권세 잡은 자 아래서 건져 주셨습니다. 건져주신 이유는 너희들은 세상 가치관으로 살지 말고 하늘에 가치관으로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땅의 방식으로 살지 말고 하늘에 방식으로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역설적으로 살으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인들 중에서 얼마를 선택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만족은 모든 인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뽑힌 존재들입니다. 애굽백성이 세상사람이라면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광야로 빼낸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애굽식으로 살수 없는 곳입니다. 광야는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만 살아가는 곳입니다. 만약에 애굽식으로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께 징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애굽식 사고를 빼내라고 몰아 낸 것입니다. 이것을 이 시대의 의미로 살펴본다면 교회는 세상의 사고를 뽑아 내는 곳입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게 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요한일서 2장 15-16절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고 하여 세상 것은 모두가 마귀가 주는 것이라고 증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의 실상은 세상 것을 많이 가진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성경과 반대되는 비 복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빼내시고 너희들은 하늘백성이기 때문에 땅에서 나는 것을 바라며 살지 말고 하늘에서 내려주는 만나를 먹고 살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신약식으로 표현한다면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31-35절에서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광야에 내린 만나는 장차 하늘에서 오셔서 사람들에게 영원한 양식이 되실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여서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셨고, 신약에선 성도들에게 너희는 너희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행할 신앙생활이란? 범사를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고,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비록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자기를 위한 것이면 불신앙인 것입니다. 성도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과 같이 이 세상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하늘에 것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말은 속세를 떠나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것 다 버리고 굶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것으로 힘을 삼지 말고 있는 자는 없는 자 같이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나는 세상의 것으로 살지 않고, 나는 돈의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들에 꽃같이 공중에 나는 새와 같이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부에 처하든지 풍부에 처하든지 개의치 않고 거지 나사로 같이 불평하지 말고 그 환경 속에서고 구원받은 은혜로 기뻐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성도들이 허탄 한 세상 것을 좇아가고 있음을 보게되고 그들의 잘못된 삶에 모습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절을 보면 이 서신을 받는 자가 흩어져 있는 성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가 비록 구원을 받아 하늘에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 것으로부터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에 야고보 사도는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자들이니"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성도는 이 세상에 잠시 살다가 영원한 천국으로 가야할 존재들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서 원대한 계획과 꿈을 이루려고 살아가느냐 인 것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세상이고 존재들인데 왜? 그리 세상에 집착하느냐고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개처럼 사라질 허망한 세상에서 무슨 인생의 계획을 세우느냐고 네 실존을 알고 살아가라고 하시면서 나무라는 것입니다.
지혜란? 자기 주제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로 인하여 세상 지혜는 발달하였지만 하늘에 지혜는 감각을 상실하여 버렸습니다.
하늘에 지혜를 상실하니 자신이 안개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일 죽을 놈이 자기 주제도 모르면서 백년을 살 것같이 준비하는 어리석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 모세는 일찍이 시편 90편 3-12절 말씀을 통해서 고백하기를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 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라고 하여 죄인들의 삶이란? 한낮 티끌 같은 인생이고, 풀 같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아침에 돋는 풀 같다고 합니다. 천년이 한 경점 같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백년을 못사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시간관으로 몇분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몇분 밖에 안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네 꼬라지를 알도록 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지혜를 받아야 세상에서 헛된 일에 분요하게 살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선 "하나님을 핑계삼아 이것 저것 하려고 하는 것을 다 허탄한 것이며, 악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도움을 입고 살아가는 피조물에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계획이 필요가 없습니다. 피조물은 그져 창조주만 바라보고 살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 화복이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16장 1절을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즉 인간이 아무리 멋진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 마음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흔한 말로 손오공이 뛰어보았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인생을 계획하여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 내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서 6장 2절에서는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장래를 위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먹고, 구경할 것 안하고 돈을 모아 놓았는데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더라는 말입니다. 병으로 날아가고, 강도 만나 날아가고, 형제 친척 때문에 날아가고, 빚으러 떼어 날아가고 이래 저래 내 뜻대로 쓰여지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뉴스에 보니 금산에서 인삼농사를 지은 분이 하룻밤 사이에 도둑을 만나서 몽땅 잃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농부는 최고의 품질로 육 년근 인삼 농사를 정성스레 지어 놓았는데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도둑을 맞은 것입니다. 육년 동안 모은 재물이 하루아침에 날아간 것입니다.
농부는 육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원대한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둑을 맞을 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이와 같은 일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합니다. 이게 죄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3-21절에서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고 하셨습니다.

어떤 청년이 물질 없으면 죽는 줄 알고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아버지 재산을 독차지한 형님에게 가서 동생에게도 좀 분배해 주라고 말좀 해달라고 하니 어리석은 부자 비유로 대답해 주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란? 이처럼 재물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고 사는 부자와 같은 자라는 것입니다.
재물은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 낼 수도 없을뿐더러 네가 땀흘려 모아 놓아도 엉뚱한 놈이 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모으고 또 모으고 했는데 어느 날 밤 하나님이 불러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22-23절에서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고 하여 재물을 모으기 위해 살려고 하지말고 목숨(영생)을 위해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24-31절에서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하면서 너희는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일로 살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우리 인생이 우리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라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자기가 곧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종으로 살지 않고 주인으로 살려는 것이 악이고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종 주제에 자기 인생에 꿈을 꾸고 무슨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건방진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계획도 세우지 말고, 꿈도 꾸지 말고 현재 주어진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맡김과 못 맡김은 믿음에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관자임을 믿는 자는 맡기고 살 것이고, 못 믿는 자는 못 맡길 것입니다. 결국 자기 믿음의 여부에 따라서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 갇혔어도 평안하게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리석은 부자처럼 모든 것을 소유하였음에도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자가 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중에 인간이 죽을 날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날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범사에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서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복음 25장의 등불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의 비유나, 달란트 비유는 장차 일을 현재화 시켜서 살아가는 성도의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와 상관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주인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치 않고 지금 자기 눈앞에 주인이 계시다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에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잠시 후에 닥쳐올 심판을 생각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노아시대 사람들처럼 잠시 후에 홍수가 밀려오는데도 사람들은 종말을 생각지 않고 현재의 세상 살아가는 일에만 몰두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5-44절에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고 하시면서 악이란? 자기 살아갈 궁리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의 죄란? 하나님을 생각하고 살아야 할 인간들이 세상만 생각하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안중에 두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이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죄란? 인간의 착함과 악함이라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 곧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미를 모르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게 하셔야만 했는지를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멸망시키는지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세대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고 장차 재림하실 때에도 노아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들의 사고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도 하나님의 일보다 먹고사는 일에 우선을 두고 살아가는 죄성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긍휼을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내일 일도 모르면서 십년 백년을 계획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안개 같은 인생임에도 안개같이 살려고 하지 않고, 태양처럼 살려고 하는 탐욕을 회개하여합니다.

그래서 시편 39장 4-7절에서는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라고 하면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헛된 일에 분요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혜로움이란?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지혜를 누가복음 16장 1-8절에서 말해주고 있는데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비유의 교훈은 청지기의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현재의 삶으로 미래를 준비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청지기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옳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서도 자기 살 궁리를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칭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도 이렇게 자기 앞날을 준비하고 살아가는데 너희들은 빛에 아들들이라고 하면서 빛에 나라인 하늘나라를 위해서 어떤 준비로 살아가고 있느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성도란? 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성도란? 미래의 삶을 현재를 통해서 보여 주어야하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상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과 같이 복받으라고 하니 자기 주제를 알고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즉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수 없는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주께 긍휼을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잠시라도 잊으면 안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면 무엇인가를 챙기게 됩니다. 자기 생각대로 인생이 살아지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는 마땅히 하나님께 징벌을 받고 저주를 받아야 함에도 버젓이 현재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고 긍휼하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환경 때문에 불평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빈곤과 풍부로 인한 것으로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오직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셔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만 성령을 보내셔서 자기가 죄인임을 자각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를 긍정하지 않고 날마다 부정하며 다가오십니다. 너희는 죄인이야! 라고 고발을 합니다.
죄인임을 안다면 현재의 환경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하기보다는 늘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구약시대 광야의 이스라엘의 사십년 세월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길이 험하다고 불평하고, 떡이 없다고 불평하고,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또한 매일같이 똑같은 떡만 준다고 불평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식으로 법대로 하면 우리는 이미 죽었어야 할 존재들인데도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지금 버젓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똑같은 인간인데도 구약에 백성들은 멸망을 당하였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퍼부어야 할 저주를 예수님에게 퍼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복음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상대하였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상대를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님이 상대하는 것을 일컬어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즉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판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성도는 구약 이스라엘 같이 잘못하고서도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바라볼 때 예수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시기 때문에 죄인의 허물이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피 흘리심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구약 이스라엘이 출애굽 때 하나님의 심판이 온 애굽 땅에 임할 때 그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발리운 피를 보시고 재앙이 넘어간 것과 같습니다. 집안에는 강도도 있었을 것이고, 도적놈도 있었을 것이며 간음한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착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보지 않고 흠없이 희생당한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피 때문에 산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강도 같은 인간도, 간음한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법 없이도 살수 있는 착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들의 행위를 보시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이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겐 불공평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칙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이렇게 하기로 두 분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같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악독한 놈들도 예수 안에서 평강을 맛보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했다고, 헌금했다고, 열심과 충성과 봉사했다고 잘난 체하고 예수 밖으로 나오면 하나님께 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죄인이 죄인의 행사를 못 벗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을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고 하십니다.
원래는 성도가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에도 죄인의 몸뚱이가 죄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지금도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중보자로서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줄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기도하겠습니까? 성도들이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란? 앞서 말했듯이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리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라 하여도 안됩니다. 아무리 누구든지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나 자기까지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은 내게 합당치 않느니 라고 하여도 이 말씀을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조금씩 간헐적으로는 나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가 있겠지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은 구하지 말라고 하여도 그것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입니다. 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구하고 구하라는 것은 구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될 종자들입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 말씀과 거꾸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은 아흔 아홉 개를 법을 지키다가도 한 개를 못 지키면 다 못 지킨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은 완벽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인간의 모습은 예수님이 샘플입니다. 그런데 죄가 임하자 변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하기 시작하고 토를 달기 시작합니다.

나는 로봇트가 아니므로 나에게도 주권을 좀 달라고 덤비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흔 아홉개 지켰다고 까불지 마십시오. 과거에 우주선이 폭발을 할 때 한 개의 부속품이 잘못되어 폭발한 것 같이 인간도 하나님 말씀에 하나라도 저촉되면 진노를 받게 됩니다. 죄인의 한계란? 아무리 정답을 가르쳐 주어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다 알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는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죄를 이길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란? 불나방처럼 저렇게 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존재들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존재들입니다. 마치 불나방이 불을 보면 미치듯이 죄인도 죄의 요구인 육신의 소욕에 미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가만 내버려두면 자연적으로 인간은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입은 자와 입지 못한 자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간섭하고 잡아주는 자가 없지만, 성도에겐 간섭하고 잡아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성도를 부모와 같은 보혜사가 되셔서 간섭하고 계십니다.
왜? 간섭하십니까? 구원받은 성도라 하여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육신의 소욕을 완전히 억제하며 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보혜사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가감 없이 다 지켜야 된다고 합니다. 성도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킬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이 죄인의 몸이라는 것을 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 받은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다 지킬 수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실 필요가 없어집니다. 구원시켜 줄 때만 예수의 도움이 필요하고 구원받고 나서는 이제부터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합니다. 이는 악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예수가 항상 주와 그리스도로서 계시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서 아들이 영화롭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도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선택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택되어진 자들에게 하나님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육신의 소욕과 싸워 보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이기라고 싸움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이기면 예수의 주되심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성도는 말씀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의를 믿음으로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성도를 죄인으로 세우시는 일을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요? 성도가 죄인으로 남아야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여 어떤 사람들은 그럼 개판으로 살아도 되겠네 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가 왜? 죽었는지를 모르는 자입니다. 이런 개판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에게 죄값을 뒤집어 씌웠는데 이 사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럼 개판으로 살아도 되겠네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떠나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너희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11절을 보면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고하시면서 성령이 오시면 무엇이 죄고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심판인가를 깨닫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알고 있던 선과 악이라는 법 아래서의 죄의 개념이 아니라 이제는 생명의 원리 안에서 새로운 죄의 개념을 알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믿지 않고 인간의 착한 삶으로 의인되고자 하는 것이 죄이고, 예수가 죽음에서 살아 난 것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구원받는 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선 예수님만이 의로운 자라고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만 인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은 하나님 말씀을 지킨 착한 삶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겠다는 의를 거부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말씀을 지켜서 의를 만들어 내는 길을 애초부터 주시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19절에선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고 하십니다.

즉 율법은 원래 죄가 없으면 필요가 없는 것인데 죄 때문에 더해 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너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2-3절을 보면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고 하시면서 유대인들이 망한 것은 자기 의를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에 마침이 되시느니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3장 22-27절에선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夢學)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고 하여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이라는 길잡이를 따라가면 예수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율법을 지킨 자이냐 하면 예수를 믿는 자입니다. 왜요? 율법이 죄인을 예수를 만나도록 인도하는 몽학선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의 죄를 고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오해하기를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지켜서 충성하자고 한 것입니다. 완전히 핀트가 엇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어서 넌 죄인이고 너는 멸망받아 죽을 놈이야! 라고 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우리가 열심히 잘 지키고 하라는데로 다 충성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께요! 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게 아니라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도들에게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죄가 죄 되게 드러내는 일을 성도에게 보혜사가 되셔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아야 예수님의 대속을 믿게되고 그 대속에 은혜가 감사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범사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고, 항상 기뻐하지 아니할 수가 없고, 늘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며 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성령의 깨달음으로 나타나는 증거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사람들은 예수만을 자랑하고 예수만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일컬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하고 하나님은 이런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고 이런 정신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산 제사라 하기도 하고 영적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어떻게 하든지 성도의 죄를 고발하여 시선을 자기에게서 예수에게로,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바꾸게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라는 인간이 참으로 고집이 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제 불능이라는 사실을 절감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추하고 더럽고 미운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 나 같은 인간은 당연히 멸망 받아야 할인간이구나 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안에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인생이로다 누가 날 이 죄에 사로잡힌 몸에서 구원해 줄꼬! 라고 하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뿐이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들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잠시라도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에 있어 예수님에게 붙어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을 보존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들은 모두 모아다가 불에 태운다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수겟 소리로 가제는 바위 밑에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듯이 죄인도 예수그리스도 품안에 있어야 안전한 것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님만 의지하며 살 때가 가장 행복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예수 이외에 평안을 주신 곳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만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사람들처럼 예수그리스도를 떠나서 오늘이나 내일 어디 가서 돈을 벌어서 행복을 만들어 가려고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면 자유가 있고 행복이 있는 줄 알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강도들이고 불행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갈 땐 아들로 나갔지만 돌아 올 때는 스스로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하며 종이 되겠다고 돌아 온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나오미(기쁨)가 약속의 땅인 예루살렘이 기근이 들어 살아가기가 힘이 들어서 예루살렘을 떠나 모압으로 가면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결국에는 모압에서 남편과 아들 둘을 다 잃어버리고 과부가 되어 마라(슬픔) 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떠나갈 때는 나오미라는 기쁨의 이름이 돌아 올 때는 마라 라는 슬픔의 이름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을 때 나오미라는 기쁨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만 잘 살아보겠다고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면 마라 라는 슬픔의 이름을 얻고 종국에는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으로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상은 괴로운 것입니다. 오죽 했으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린 솔로몬이 노동자는 잠을 달게 자지만 부자는 재물로 인하여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하였겠습니까? 이는 사람의 안식은 재물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라는 것으로 고민하지 마시고 그 나라와 그에 의를 구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빈부이든 풍부이든 어떤 환경이 따르더라도 하늘에 사람답게 믿음으로 사시란 말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면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먹고 입고 마실 것들은 다 알아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 잘살게 해 주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는 그에 나라와 그에 의를 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이지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개는 안개답게 사는 것이 순종입니다.

죄인이라면 죄인 대우받으면서 사십시오. 죄인주제에 죄 없는 자답게 살려고 하니 매사가 불만이고 불평이 되는 것입니다. 죄 지었으면 교도소 가서 콩밥먹고 살아야지 왜? 청와대 들어가서 대통령같이 살려고 합니까?
고난 없이 잘살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져 주어진 환경에 따라 불평하지 말고 천국에 소망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원망한다고 환경을 바꿔주시지 않습니다.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실 것입니다. 깨달아지면 아멘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예만 되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즉 성도에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무서움을 깨닫게 하시려고 잠시 지옥 같은 세상에 살게 하셨는데 우리는 자꾸만 왜? 우리를 이런 곳에서 고생을 시키십니까? 라고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 대접하시기 위해 날마다 징계를 가하시는데 우리는 왜? 아들이라고 하면서 징계를 하십니까? 라고 합니다. 로마서 8장 17-18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이 말씀으로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긴 설교를 읽으신다고 수고 하셨습니다.
주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이 설교는 울산 목양교회 정낙원 목사님의 주일낮 설교입니다.
잘난 것이 아니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여 올린 것입니다.
책잡힐 것이 많지만 은혜될 것들만 취하시고 은혜되지 못하는 것은 흘러 보내시기 바랍니다.
굳이 책할 것이 있으시면 로 해 주시면 겸허히 경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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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이근호 2004-10-02 19:02:34, 조회 : 298, 추천 : 34

아, 용감하시군요.

자기 설교를 올린다는 것은

설교자로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걸리면

글자, 하나하나를 가지고 씹히고 또 씹히는 수모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아시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본 설교를 어떻게 보시느냐가 관권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네요.

정목사님께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면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먹고 입고 마실 것들은 다 알아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만약에 믿음으로 살아도 먹고 입고 마실 것을 알아서 공급하지 안해주면
그냥 앉아서 굶어죽거나, 전셋방에서 추방당하거나 가족이 뿔뿔히 살 길을 찾아 도피해야는 파탄 지경을 이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번 자기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7)

이미 재정이 마이너스로 치달은 지 오래된 개척교회를 목회하면서 생활비는 몇 개월치 얻지도 못하고, 아내는 일나갔다가 공장 일이 힘들어서 오래 다니지도 못하고 집에 쓰려져 아파 누워있고, 자식은 차비가 없고 도시락도 못사 학교도 못다니고 집에서 자습하고 있는 형편에 놓인 목사가 한 둘이 아니고

앞으로 그런 목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판인데

그래도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 입을 것, 잠 잘 주택을 마련해 주시는 겁니까?

교인들은 헌금할 형편이 못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하튼 복음을 원하고, 목사는 특정 직장을 구하려 다녀봐도, 복음을 전할 시간 만큼은 따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번번히 취업 거부당하는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래도 하나님은 믿기만 하면 먹을 것, 입을 것, 잠 자리를 마련해 주시는 겁니까?

아예 교인들보고 헌금 안낸다고 질책하고 닦달내는 식으로 설교를 선회할까요?

교인들에게 집을 담보로 잡히고 강제로 교회를 운영시킬까요?

아니면

복음이고 뭐고 당분히 목회를 접어두고 생업에만 매달릴까요? 아니, 그래도 직장이라도 나타나면 숨통이라고 트이겠는데 그것만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때에도 '믿기만 하면 먹을 것, 입을 것, 잠 자리를 하나님이 허락하실까요?

그렇게해서 입을 것 먹을 것을 제공받은 사례가 목사들 세계에서 확률상 몇 %가 되지요?

저만 궁금한 것이 아니라

이 설교를 대하면 모든 분이 다 이런 궁금증을 가질 것 같아서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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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정낙원 2004-10-02 20:52:12, 조회 : 236, 추천 : 13

먼저 설교에 대하여 코멘트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것과 같고,

반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먹으라는 말과 같다고 보여집니다.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은 생명과 속에만 있다는 말이겠지요.

이것을 신약적으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에
에덴동산의 생명과는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시대이고 마귀의 노림수는 생명으로부터 눈을 떼게 하는 것이엇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로서 생명과로부터 눈을 떼게 하였듯이 말입니다.

지금은 자신의 생존을위해 예수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부터 눈을 떼게 하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너희는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은 신자들의 관심사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신자란 자기의 생존에 의미를 두고 사는 자가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인 예수그리스도에게 의미를 두고 사는 자라는 의미이겠지요..

자기 생존에 의미를 두고서 성경을 대하는 자들은 모든 성경을 자기 생존 차원에서 해석을하게 되지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모든 성경을 예수 안에서 해석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란?

신자는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자기 죄를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의 대속하심에 은혜를 생각하며
세리와 같이 상한 심령으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라고 하며 감사하는 자이고

불신자는 바리새인과 같이 주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날마다 전도하였고 기도하였고 헌금하였고 충성하면서
말씀에 순종하고 살았으니 복을 달라고 하며 자기 생존을 위한 욕구에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하는 자이겠지요.

그렇다면 성도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에 의미를

자기 생존에 의미를 두고 사는 자가 한다면
나는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 져 주실 것이야 라고 해석을 하지만

예수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다고 여기는 자들은
내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구원에 은혜를 감사함으로 해석을 하겠지요.

이미 영생을 가진 자는 성경을 가지고 생명을 증거하겠지만 영생이 없는 자는 성경으로 생존하려고 하겠지요.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기 보다 영생 얻음에 대한 감사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그 은혜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높이에 대한 것을 자랑하며 살게 되지요.

그러니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은 자들에겐 무슨 일을 하든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겠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내신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군고구마 장사를 하더라도 그게 곧 주의 일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말씀을 들을 성도가 있으면 교회문 열고, 없으면 닫으면 되지요.

생명으로 사는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교회문을 열든지 닫든지 염려치 않고 굶더라도 이미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의 증거로 감사하며 살 것이지만

생존을 위하여 목회하는 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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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