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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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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교보다 "주일교"를 무너뜨려 보세요] 2004-09-11묻고답하기-

[안식교보다 '주일교'를 무너뜨려 보세요] 2004-09-11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안식교를 무너뜨리는 획기적인 성경적 연구(공개)\
김인찬 2004-09-10 16:49:27, 조회 : 333, 추천 : 9

[ 안식교에 대한 발론 글]=(안식교를 무너뜨리는 최초의 8일 무교절 이분설 도입)

안식교는 전통적인 안식일에 대한 이해를 거부한다. 그리고 토요안식일을 지킨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유월절은 니산월 14일이고 안식일은 15일이다. 그리고 주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안식교는 왜 이러한 문제를 두고 어려움을 겪는가?
첫 단추부터 맞추려고 하다가 잘못된 경우가 안식교이다.
종합적으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예수의 죽음부터 뒤로 거슬러서 생각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대력으로 본 유월절과 무교절의 절기는 아래와 같다.
유월절(14일)=무교절(15~~21일) 그리고 무교절은 7일이며 [첫 안식일]과 [마지막 안식일]이 있다. 이것이 전통교회의 성경적인 원리이다.

*그럼 이러한 원리가 예수의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역으로 살펴보자.

유월절은 니산월 14일(유대력)이다.
예수는 유월절(14일)에 죽으셨다.
안식일에 죽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이유는 안식일은 쉬어야 된다. 그래서 안식일 전날에 죽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안식일은 니산월 15일이다. 그렇다면 니산월 14일에 예수는 죽으셨다.

14일에 죽었는데 언제 죽었는가?(13일 혹은 15일이라고 믿으면 할 수 없지만)
14일 낮에 죽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해가 약 3시간 빛을 잃었다는 것은 해가 있을 때 죽은 것이며 목이 심히 마르다고 말한 것으로 햇빛이 있는 낮에 죽으셨다=)
그러면 죽기 전 언제 재판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는가?

그는 낮에 죽었기에 그 이전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서 아침에 재판을 받았다.(요19:14)
그럼 언제 잡혔는가? 아침에 재판을 받았으므로 그 이전 새벽에 잡혔다.(요16:28)
언제 만찬이 있었는가? 그 이전 밤에 유월절 만찬을 식사를 한 것이 분명하다.
유월절 만찬은 14일 밤이다. 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한다는 제자들의 증언이 있다.(마26:17)
그리고 성경은 만찬을 미리 했다는 어떤 정황이나 기록도 없다. 유월절 만찬으로 설명하고 유월절 어린양으로 설명하는 것은 예수는 유월절에 만찬하고 유월절에 죽은 것이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같은 날인가? 다른 날인가? 다르다.
그럼에도 유월절과 무교절은 땔 수 없는 관계이다. 왜인가?
유월절에도 무교병을 먹었다는 것이다.
무교병을 먹은 기간이 출12장18절에 보면 [14일 저녁부터~~21일 저녁까지]는 총 8일이 된다.

위의 구절로 본다면 무교병을 먹은 날은 사실상 7일간이 아니고 8일이 된다.
이것은 무교병을 먹는 총 날수가 8일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교병을 먹은 날은 [유월절]+[다음날 안식일]과 [마지막 안식일]모두를 포함한 8일이 된다는 것이다.

무교병을 먹는 날은 사실상 유월절 1일도 해당되고 두 안식일이 있는 7일 동안 모두 해당된다.(총 8일)
그렇다고 해서 8일을 무교절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구분해서 부른다. 왜냐하면 분명히 성경은 7일을 무교절로 말한다.(출) 그 무교절의 7일 시작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시작은 애굽에서 떠난 날을 의미하고 있다.(15일) 그렇다면 그 전날인 유월절은 [무교절]이 아닌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7일 무교절이 아닌 또 다른 무교절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무교병을 먹는 날이므로 무교절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교절은 8일이 된다. 그런데 성경은 무교절 의식을 7일 동안 하라고 명령한다. 결국 무교절 8일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8일을 나누면 아래와 같다.

[무교절의 첫날]이라고 하는 유월절과 그 다음날로 시작되는[7일 동안의 무교절 의식]이다.

이렇게 8일 무교절은 [유월절과 함께 첫날이라는 무교절]이 있고
그 다음날로 시작되는 [7일 동안의 무교절]이 있다(그 7일간 의식은 첫 안식일과 마지막 안식일로 끝난다)

이는 유월절이라고 하는 [무교절 첫날]이 있다. 그리고 다음날로 시작되는 [무교절 의식(7일간)]이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무교절 7일간의 의식]은 첫 안식일로 시작되고 마지막 안식일로 [무교절 의식(7일간)]이 마친다. 이것을 [무교절 7일 의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 [무교절 7일 의식]과 유월절과 같은 날인 [무교절 첫날]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아서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예비일은 무교절 첫날(유월절)에서 바라본 것으로 [7일 무교절]을 준비하는 첫날이었다. 동시에 [무교절 7일 의식]은 반듯이 [안식일 첫날]로 시작됨으로 무교절 첫날이 안식일을 예비한다는 예비일이라고도 부른 것이다.
결국 7일 동안의 무교절 의식인 첫 안식일을 두고 예비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예비일은 곧 7일 동안의 무교절 첫 안식일을 말한 것이다.

무교절 첫날(유월절)을 지나서 또 무교절 7일 동안의 기간이 있다. 그 시작이 안식일로 시작하고 그 마지막이 안식일로 마친다. 이 기간이 무교절 의식을 지키는 7일이다.

정리하면 [무교절 첫날(유월절)]이 있고 그 날을 지나서 [무교절 7일 의식]이 있다. [무교절 첫날]은 유월절 하루이며 [무교절 7일간의 의식] 기간은 첫 안식일과 마지막 안식일의 기간이 있다. 왜 유월절 하루를 무교절 첫 날이라고 말하는가?
그 이유는 [7일 무교절 의식]을 시작하는 [전날]로써 첫날이 된다는 것이다.

[7일간의 무교절(두 안식일)]이 시작되는 그 전날을 [무교절의 첫날(유월절)]로 본 것이다.
왜냐하면 [무교절 첫날]이 지나면 [무교절 7일 기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교절 첫날(유월절)]과 [7일 동안의 무교절 의식]은 구분되어야 한다. 7일 무교절 의식이 시작되는 안식일이라는 [첫날]과 유월절을 무교절의 [첫날]이라 부르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첫날이라는 말은 같은 말이나 그 의미는 다르다)

무교절 첫날이라고 부른 또 다른 이유는 8일 동안 무교병을 먹는 첫날로써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의 이론이 맞는 것은 무교절 첫날은 다음날로 시작되는 [무교절 의식(7일간)]을 향하고 있었고 이러한 이유로 무교절 첫날을 [예비일]로 부른 것이다.

일단 유대절기는 유대종교력에 충실해야 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이 유대인의 절기를 만들었고 유대력을 만든 것입니다.
로마력은 유대절기가 만들어질 때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14일 저녁을 지나서 다음날 아침이 14일이면 유대력이고 15일이면 로마력으로 계산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유대력이라고 본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로마력으로 지킬 이유가 없었다.

유대력으로 대부분 공관복음의 절기를 설명하고 있는 이유이다(예비일)
만약에 로마력으로 계산한다면 공관복음은 모두 잘못된 것이 되어버린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면 당연히 유대력을 선택해야 된다. 유대절기에 유대력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무교절, 안식일 모두가 사실상 유대인의 절기이며 당연히 유대력에 의해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서는 절기자체가 없기에 로마력으로 유대절기를 논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월절=1일
*첫 안식일=1일
*중간 기간=5일
*마지막 안식일=1일

&*모두 합치면 8일이 된다.
유월절 첫날은 [무교절 첫날]이며 [무교절 7일간 공식 의식]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시행된다.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하면 어느 정도 문제는 해결된다.

*[요한이 말한 유월절예비일과 다른 복음서의 예비일은 같다]

공관복음서와 달리 요한은 [유월절의 예비일]이라고 말하였다.(요19:14) 그러한 이유는 개인적인 소견으로 유월절이 아직 완전히 종료되는 시간이 아니어서 [유월절 예비일]로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육시) 그러나 십자가에 죽은 이후에는 유월절의 예비일로 말하지 않고 요한은 유대인의 예비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요19:42)

역시 공관복음에서 그냥 예비일로만 말한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이후는 유월절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이후(유월절을 아침까지로 본 것)에는 이미 유월절이 지난 것으로 보고 예비일이라고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비일이 어떤 예비입인가? 그 예비일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곧 다가오는 다음날인 안식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월절이 진행 중에 있을 때에 요한은 유월절의 예비일 곧 안식일을 가리켜서 말했다면 유월절이 지난 이후에는(14일 아침 이후) 그냥 예비일로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유월절의 예비일]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새벽에 만찬을 먹으러 급히 갔다는 것은 저녁 유월절 만찬시간에 먹었어야 되는데 예수를 잡고자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본다. 만약에 기회를 놓친 만찬이 예수잡기 전 저녁만찬이 아니고 관정으로 나간 이후에 오는 저녁을 가리켜서 말했다면 아직 멀었는데 그렇게 급하게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말 그대로 지난밤에 먹었어야 되는데 예수를 잡기 위해서 먹지 못했다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동이 트기 전에 재판정으로 가지 않고 급히 새벽에 갔다는 것은 유월절의 유효기간이 아침 동틀 때까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저녁에 먹지 못했어도 그 날 밤을 지나 새벽에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를 잡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벽에도 유월절 음식을 먹으려는 그들의 말대로 유월절은 아침까지 유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유월절 예비일이라고 요한은 말한 것입니다.
아침이 지난 모든 곳에는 더 이상 유월절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예비일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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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아래의 글은 삭제해도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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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인규님의 글입니다.(퍼온 글)

어떤 견해가 옳은가를 묻는 것입니다.

(1) 14일 일몰후 - 14일 밤 - 14일 아침 - 14일 낮 - 14일 오후 - 15일 일몰

(2) 14일 일몰후 - 15일 밤 - 15일 아침 - 15일 낮 - 15일 오후 - 16일 일몰

당연히 유대인들은 하루를 일몰부터 일몰까지로 계산하였습니다.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14일 일몰에 양을 잡았습니다.
만일 유대인들의 관점(1)으로 보면, 일몰 후부터 일몰까지는 14일이어야만 합니다.
즉 출애굽은 14일 아침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음 성경은 출애굽이 유월절 다음 날 정월 15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정월 십오일>에 라암셋에서 발행하였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진 쳤고.....

이 관점에서 보면 출애굽한 날은 유월절 다음날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짜도 15일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하루를 일몰부터 일몰까지로 계산하였지만....숫자적인 날짜는 로마력과 같이 계산하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2)번의 견해가 됩니다.....

여기에서 일출설(일출을 기점으로 하는 숫자적 날짜 계산)과 일몰설(일몰을 기점으로 하는 숫자적 계산)의 두 가지가 나오게 됩니다.

일출설의 증거는 마28:1입니다....

"안식일이 다 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직전의 미명입니다....그런데 일몰설로 보면, 이미 안식일은 전날 일몰에 끝난 것입니다.
일요일 해가 뜰 때에 "안식 후 첫날이 되려고 한다"는 표현은 분명히 일몰설이 아니라
일출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출설로 설명하면, 요한복음의 새벽은 유월절의 예비일이 되어집니다.
즉 로마력은 시간의 기점이 일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이미 언급하였듯이....
벤-하르바임이란 "두 일몰 사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단어가 포함하는 의미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 단어는 상번제를 드릴 때에 사용됩니다.(출29:38-46, 민28:4)
그런데 유대문헌에 보면 보통 오후3시경부터 일몰 전후까지 상번제를 드리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14일 일몰 다음은 15일 밤인가? 14일 밤인가? 이 관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12장으로 보면 유월절은 14일이 됩니다...

즉 유대력과 로마력의 차이점....
일출설과 일몰설의 차이점....
유월절이라는 단어가 식사인가, 출애굽인가의 개념....
가장 먼저 이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토론은 일년을 싸워도 끝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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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간단하다고 하는 분은 무조건 자기 주장만이 옳다고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히브리인들은 밤이 먼저 오고 낮이 다음에 옵니다.(창1장)

(1) 전통적인 유대인: 14일 일몰후 - 14일 밤 - 14일 아침 - 14일 낮 - 14일 오후 - 15일 일몰
(2) 일부 성경: 14일 일몰후 - 15일 밤 - 15일 아침 - 15일 낮 - 15일 오후 - 16일 일몰(예: 출12:18, 레23:32 속죄일은 십일인데 구일저녁부터 지키라고 하였음)
(3) 바람님의 견해(로마식) : 14일 일몰후 - 14일 밤 - 15일 새벽- 15일 아침 - 15일 낮 - 15일 오후 - 15일 일몰
(4) 애굽식 : 14일 일몰후 - 14일 밤 - 14일 새벽 - 15일 아침 - 15일 낮 - 15일 오후 -15일 일몰
(5) 또 다른 견해(1) : 13일 일몰 - 14일 밤 - 14일 아침 - 14일 낮 - 14일 오후 - 14일 일몰
(6) 또 다른 견해(2) : 13일 일몰 -13일 밤 -14일 아침 - 14일 낮 - 14일오후 -14일 일몰

즉 일출설과 일몰설, 그리고 유대력과 로마력이 혼동되어 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유월절이라는 개념이 음식자체를 말하기도 하고, 무교절의 개념과 혼동되어 출애굽을 한 날을 가르키기도 하며, 유월절의 의식을 의미하기도 하며, 예수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히브리어 단어적인 개념. 일몰과 저녁을 뜻하는 단어를 연구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라고 바벨론포로이후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구약처럼 지키지 않게 됩니다....다시 말하여 현대의 유대인들의 유월절의 개념도 공부되어져야만 합니다.

간단하다고 생각되십니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유월절에 돌아가셨다고 하여야만 됩니다....예수님은 유월절 예비일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주장은 엉터리 주장이 됩니다.

본인의 견해는 구약은 1번과 2번, 신약은 1번과 3번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이인규님의 글입니다. 유대력과 로마력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식일 예비일을 유월절예비일과 같은 단어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
유월절의 예비일은 안식일의 예비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입니다.

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다른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유월절이라는 단어는 음식자체(14일 일몰부터 아침까지 먹는 음식)를 말할 수도 있고, 명절자체(14일 일몰부터 15일 일몰까지의 날)를 말할 수도 있으며, 유월절에 행했던 의식자체를 말할 수도 있으며, 유월절의 절기기간을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신약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이라고 지칭되기도 하였습니다.(고전5:7. 헬라어원문에서는 양이라는 단어가 없음)
또 다른 후기유대교 문헌과 자료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혼동되어지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여 유월절이 어떤 단어를 의미하는가에 따라 그 날짜가 달라졌던 것입니다.
다음은 그 증거로 아가폐 성경사전을 올려 드립니다.

구약에서 페사흐는 일반적으로 절기를 가르키며(출12:48, 왕하23:21), 보다 한정해서 말하면 유월절희생제물을 먹는 것(출12:11, 대하30:18), 또는 유월절 양 그 자체를 가르키기도 한다. 후기 유대교에서는 유월절은 무교절의 의식들을 포함해 그 절기와 관련된 일련의 의식들을 지정했다.(참고: 미쉬나 Pesahim: 참조. 요세푸스 Ant, 유대전쟁사). 그러나 이것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그 절기들이 연이어 진행되기는 했지만, 구별된 두 절기였다. 즉 전자는 해의 첫달 곧 니산월 십사일 저녁에(출12:6) 그리고 후자는 그 다음 칠일 동안에 지켜진 절기였다.(출12:15, 레23:5-6, 민28:16-17. 대하35:1.17). 신약시대까지 유월절과 무교절을 이 절기들과 관련된 의식들을 가르킬 때 혼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두 절기는 여전히 구별되었다.(마26:17, 막14:1, 눅22:1. 7) - 아가폐성경사전, 1380-1381쪽

현재적인 달력(로마력)으로 볼 때에, 양을 잡는 날은 니산월 14일 일몰 시간이며. 양고기를 먹는 날은 14일 밤부터 15일 아침입니다. 또 출애굽을 하였던 날은 15일 아침이 됩니다.
즉 무교절은 15일로서, 유월절이라는 명절과는 같지만, 유월절 음식을 먹는 날(14일)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혼동이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대력과 로마력의 차이가 또한 서로 다른 날을 혼동하여 가르키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요한복음은 AD70년 예루살렘 멸망 후에 기록된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달리 로마력으로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픈2 주석성경(182쪽)을 올려 드립니다.

요19:14에 의하면 예수님은 유월절의 예비일, 곧 금요일 제 육시에도 여전히 재판을 받고 계신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막15:25에서는 예수님이 제 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한다. 이런 차이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가? 유대인들은 하루를 해질 무렵을 기준으로 하여 24시간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로마인들은 공식적인 시간계산을 오늘날과 같이 자정을 기준으로 하였다. 여기서 요한은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유대인들의 계산법을 따른 것과는 달리, 로마식의 계산법을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R. Taslcer, G. Archer, W. Hedricksen)

안식일에 부활하셨다는 궤변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이시며, 유월절 예비일의 어린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에게 예수님이 어린양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출애굽을 하는 역사적인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자 정리합니다.
유대력에서는 일몰에 양을 잡고, 그 같은 날에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일몰부터 일몰까지가 같은 하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력에서는 14일 일몰에 양을 잡고 15일 오후3시에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즉 유월절 양을 잡고, 양고기를 먹는 날을 유월절로 보는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을 유월절로 보는가.....
그 날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바로 키포인트가 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AD70년에 멸망당하고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로마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다른가?
요한복음이 예루살렘 멸망 후에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를 가기 직전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은 로마력의 기록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의 예비일에 대해서도 본인은 지나간 글에서 충분히 설명하였습니다.
제사장과 유대인들은 예수를 잡느라고 유월절 음식을 먹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이미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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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kssakam님의 글입니다(퍼온 글)]==*

“무교절 첫날” 마태 26:17의 다음과 같은 말과 관련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이 유월절 식사를 하시도록 우리가 어디에 준비하기를 원하십니까?’”

여기서 “첫날”이라는 표현은 “전날”로 번역될 수도 있다.
여기서 “첫”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의 용법에 대해
‘전날에’. 그리스어[프로토스]

프로토스를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요한 1:15, 30의 ‘그분은 나보다 먼저[프로토스] 계셨다’라는
비슷한 구문의 의미나 번역 표현과 일치한다.”
리델과 스콧 공편 「희영 사전」(Greek-English Lexicon)에 따르면,

“[프로토스]는 때때로 우리가 [프로테로스(‘이전, 앞서’라는 의미)]를 예상하는
곳에 사용되기도 한다.” (H. 존스 개정, 옥스퍼드, 1968년, 1535면)
그 시대에는 유월절 날이 일반적으로 무교절 축제의 첫날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그리스어 원어는 유대인 관습과 일치하며,
유월절 전날 예수께 그렇게 질문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크사캄님 두 번째 글=요한복음 18:28절이 알려 주는 것은??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
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1) 유월절 전날 돌아 가셨다 2) 유월절 식사후 잡히시고, 유월절 안에 죽으셨다
===어느 것일까??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실 때,,,,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유월절 식사를 하여야 했는데.....규정대로라면..............

예수를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던 그들이
.자기들의 규정조차 지키지 않고........못먹었기 때문에....
밝아지기전에 어떻게든 .....먹으려고.....
.새벽에......재판정으로 끌고 간것입니다....

일단 데려다 놓고..........들어가지는 않은 이유가...
...밝아지기 전에 유월절 식사를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예비일이라면
새벽
에 빌라도에게 끌고 갈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유월절 식사를 왜 서두르겠습니까??
아직 멀었는데...........시간 여유가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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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안식교보다 '주일교'를 무너뜨려 보세요
이근호 2004-09-11 07:27:24, 조회 : 238, 추천 : 11

지옥 가는 이유가 안식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일성수교'에도 있습니다.

마치 삼위일체론을 가지고

이단잡겠다고 나서는 그들이

곧 삼위일체론 위주로 참된 기독교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 보시기에 가짜 인 점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증언하기를 원하시는지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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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강해에 새힘을 얻고 있습니다.
김성수 2004-09-13 07:30:04, 조회 : 232, 추천 : 14

여러가지 신앙적 갈등에서 고민하다 이목사님과 손목사님 홈페이지 그리고 추천사이트의 교회에서 많은 답을 얻고 있습니다. 지금은 외국(일본)에 유학중입니다만, 귀국하게 되면 다닐 교회를 기도하겠습니다. 혹시 목사님! 경기도 '부천'지역에는 목사님과 같이 뜻을 함께하는 분은 안계신지요? 꼭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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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구 2004-09-10 12:42:49, 조회 : 216, 추천 : 13

[re] 미쳤군요!
이근호 2004-09-14 11:33:33, 조회 : 364, 추천 : 33

>한 푼이라도 돈 더 벌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주위 모든 사람들의 귀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요 본인이 소망이 아닙니까?

다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얼굴 돌리는데

아직도

돈과 상관없는 복음의 말씀에 관심을 갖고 있다니....

츠 츠 츠

언제 철이 들 것입니까!

복음의 말씀듣고 울다니!

복권 당첨금 앞에 놓고 우시기 바랍니다.

신의 축복으로

떼 돈 벌거든

그 때나 제대로

눈물다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습니까?

요즈음은

강단에 올라가는

설교하는 목사 조차도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목사 사모님 조차도

돈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말씀에 관심을 갖고 있다니....

혹시

말씀에 순종하면

신께서 돈 축복이라도 주리라는 순진한 생각 때문이 아닙니까?

어떻게 그렇지 않고야 ......

정말이지

아직도

말씀 그 자체

예수님 그 자체를

사랑하는 그런 인물이 다 있을 수 있습니까?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말씀의 성취성을 고려한다면

그래도

마지막 남은

그 믿는 자가 혹시 귀하가 아닙니까?

이것이 정말이라면

기적 중에 기적이며

아직도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잠시

아직도 예수 믿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진짜로 믿기지 않아서

악마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대신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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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산제사]그리고 [유월절과 만찬]에 대한 성경적인 소견\\
김인찬 2004-09-15 07:09:35, 조회 : 189, 추천 : 5

[카톨릭의 미사와 산제사가 같다는 것은 오류입니다]

카톨릭에서 미사를 산제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제사는 구약의 제사를 말하고 산제사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어디에서나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일정한 장소에서 드렸다면 신약의 제사는 어디에서든지 예배가 가능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는 구약에서는 제물과 일정한 장소가 반드시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가 제물이 되었고 일정한 장소가 아닌 성령으로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의미에서 산제사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카톨릭은 미사를 신약이 산제사로 보는 것이다. 미사는 보이는 것이다. 산제사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카툴릭은 철저히 구약의 제사를 가지고 신약에서 미사로 끌어들인 유전을 따르고 있다.
즉 구약의 제사가 신약의 미사로 슬그머니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구약적인 사상이 실재 교회에 만연하였고 그러한 사상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 미사제사가 태어난 것이다. 구약의 보이는 제사를 폐하였는데 다시 보이는 제사를 신약에서 만들 이유가 무엇인가?(초대교회는 구약적인 관점으로 형상화 한 것이 많다)

보이는 제사를 폐한 이유는 그것이 그림자였기에 그렇다. 그림자가 아닌 실체인 그가 제사를 드림으로 더 이상의 그림자적인 제사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림자적인 제사에서 실체인 예수로 성취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대제사장으로 계신다. 이미 대 제사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재물 됨으로 온전한 제사가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영원한 산제사가 항상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와 그가 이룬 제사로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산제사이다. 여기에 포도주와 떡이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된다. 산제사는 곧 예배는 기념이 아닌 실제적인 예배이다. 기념과 예배는 다르다. 산제사인 예배는 현재적으로 드려지는 것으로 대제사장이 있고 과거에 드린 완전한 제사가 있고 그리고 우리는 성령으로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께 예배자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사(만찬)가 제사라고 한다면 앞서 말한 대제사장이 있고 과거에 성취한 영원한 제사가 항상 있는데 그리고 성령으로 예배가 드려지는 것이 충분한데 무엇이 부족해서 기념으로 하라는 것을 예배로 합리화 시켰는가? 이다. 예배 자가 우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항상 대제사장이 있다. 그리고 성령이 항상 예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미 완전한 제사가 있다. 그 제사는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영적제사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항상 우리 앞에 계신다. 역시 우리와 여기에서 함께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에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우리를 연결하는 즉 예배가 가능하게 하도록 성령이 계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예배는 성령으로 드려진다는 것이다.

미사라는 성찬이 예배가 되게 하는 중간적인 요소로 생각한다면 성령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제사가 이미 우리 앞에 항상 있는 영적인 산제사인데 미사가 제사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또 우리가 제사장이 된 것은 영적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종합하면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리 세속화로 급속히 달려갔는가? 구약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신약에 대한 충분한 이해의 부족해서 나타난 거짓된 행위이다. 산제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행위는 성령의 역할 그리고 그리스도가 실제로 대제사장이 되시고 우리가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영적이다. 그리고 이미 예수의 제사가 온전한 제사로 우리에게 항상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 제물로 드린 제사와 대제사장과 우리의 제사장직과 그리고 중간에 제사를 가능하게 하는 성령이 계신다는 것이다.

예배는 영적으로 실제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이 실제로 그 안에서 역사한다. 이러한 일은 미사와 전혀 다르다. 미사는 과거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이라면 예배는 기념과 기억이 아닌 현제 드려져야 된다는 것이다. 예배로 나아갈 때에 미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룬 영원한제사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배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또는 예배를 드리는 요소로 미사가 중간에 개입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사가 없어도 예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미사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미사로 예배가 가능하다면 기념을 통해서 예배가 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나타난다.

예배는 기념하는 것이 아닌 또는 과거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행하는 의식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께 현제 나아가는 것으로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항상 대제사장으로 계신다는 것은 이미 영원한 제사를 이룬 것이지 다른 제사들이 없다는 것이다.

미사처럼 계속 하는 의식이 제사가 된다면 영원한 제사라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당신 앞에 영원한 제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앞에 영원한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당신 안에 성령이 계셔서 당신이 기도하면 하늘로 올려지고 당신이 찬송하면 하늘에 드려집니다. 당신이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직접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미사가 제사라면 반듯이 미사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기도도 미사로 기도가 되고 또 찬송도 제사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미사로 찬송하고 또 예배도 역시 미사가 있어야 예배가 된다고 가르쳐야 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미사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말이 있습니까? 왜 영적인 예배를 가시화 시켜서 만들었는가? 그 이유는 사람은 보이는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약에서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라는 의식을 산제사로 만들어버리는 오해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산제사를 원하십니다.
마음이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제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성찬식이 유월절 기념이라는 것에 반론합니다]

먼저 유월절은 출애굽에서 사건을 기념하는 동시에 실제 구약의 절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절기로 하나님께 출애굽을 감사한 것이 유월절입니다.
예수의 유월절 만찬은 이러한 구약의 것을 새롭게 하려고 자신이 유월절을 이루려는 새 언약의 약속과 같은 의미로 만찬을 행합니다. 이때에도 여전히 구약의 언약에 있었습니다.

새 언약의 성취는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그가 새 언약을 성취하자 그는 새 언약의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 구약에서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이 출애굽에 대한 것이라면 신약의 만찬은 출애굽이라는 유월절이 아닌 신 출애굽이라는 영적인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님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구약의 유월절 기념은 이미 새 언약으로 폐하여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새 언약을 상징하는 만찬을 가지는 것은 구약의 절기와 달리 의무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의 유월절만찬이 아닌 신약시대에 기념하는 만찬은 영적인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의 유월절은 자주 드리지 못했으나 반드시 드려야 되는 강제성이 있었다면 신약시대에서의 만찬은 행하여야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행하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자신을 성결하게 한자가 드린 것입니다. 또 구약에서는 이렇게 일년에 한번 드리지만 신약시대에서는 일주일에 보통 한번 합니다. 그리고 횟수도 자유롭게 조절합니다.(유대인들은 포도주와 빵이 식사의 재료라는 의미에서 매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일부) 그러나 한국의 사정상 매주 마다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따로 준비)

물론 현실적인 것은 매주에 한번씩 해야 되지만 너무 율법적으로 얽매이는 것보다는 모일 때에 한다는 의미를 살리면 됩니다.(주일이 적합하다고 본다) 이렇게 구약에서는 법적이라면 신약에서는 주의 명령인 것과 함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는다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는 의식은 거룩하고 경건하게 드려야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약의 유월절이 아닌 신약시대 주님의 죽음에 대한 만찬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유월절은 모든 자들이 의무로 드렸다면 그리고 죄가 사해지는 의식인 제사라면 신약에서는 믿음으로 개인이 선택해서 참여한다는 것입니다.(교회의 목사가 개인을 금지시킬 수 있음=도덕적 은혜의 수단) 그리고 신약의 만찬은 의로 말미암아 죄를 씻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은 절기가 아닌 기념으로 남는 의식이 된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이 아닌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만찬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영적인 신 유월절을 통하여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이라는 의미이기에 보이는 어떤 것을 가지고 절기와 같이 만드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기념하고 기억함으로 우리 구원의 주를 항상 몸에 두려는 의식을 가진 만찬이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단지 출애굽이라면 신약의 만찬은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을 한 가지 더 가지고 있습니다.

만찬은 주님의 죽음을 생각하는 동시에 주님의 부활을 곧바로 바라보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예배가 아닌 기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죽음을 기념하고 부활을 소망합니다. 주의 만찬이 은혜의 수단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절기도 아니며 예배도 아닙니다.

이 만찬을 주로 저녁시간에 가진 것으로 사료 됩니다. 즉 식사시간 이었습니다. 그 식사를 통해서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였던 것입니다. 식사시간 이었다는 것은 예배시간과 구분됩니다. 사람들이 의식을 강조한 나머지 성만찬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식사시간을 이용한 만찬으로 죽음을 기억하려는 의식이 사실입니다. 예배시간과 식사시간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매주에 혹은 매일 가능했던 것은 식사시간 이었기에 따로 준비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닌 가 사료됩니다.(평소에 먹는 것으로 가진 것)

그러나 예배 전에 사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예배 전 만찬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로 나아간다면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저녁 식사하고 나서 예배드리는 것도 상관없다) 왜 주일에 만찬을 해야 됩니까?? 그것은 주님이 금요일에 죽으시고 주일에 부활했기에 그렇다고 봅니다. 굿이 이렇게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한 날이 있는데 다른 날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금요일에 해도 상관없다고 본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만찬을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년에 한번은 사실 형식적이다. 형식을 없애기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형식이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주일에 만찬을 하는 것은 주일 전 금요일에 죽었기에 과거를 보고 기념하려는 것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만찬이 기념이 되려면 기억이 되려면 지나간 것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주일에 모여서 금요일에 죽은 예수를 기억하려는 의미로 만찬을 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시에 부활이 과거 오늘 주일에 되었기에 재림주님이 육체로 오실 것을 가다리는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유월절 만찬이라면 매 주일에 할 수도 없고 또 모일 때 할 수도 없으며 오직 유월절 금요일에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찬은 절기가 아니며 유월절을 이룬 것에 대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상징이지만 더욱더 적극적으로 실체가 올 것을 기다린 그림자라고 봅니다. 그러나 신약의 만찬은 이미 유월절 그림자를 이룬 실체를 두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을 기념하는 것이 아닌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것을 이룬 실체를 두고서 기념한다고 봅니다.

만찬은 어느 날이든 해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어느 날에 해도 기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서 주일저녁에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으로 형식을 너무 무시한 나머지 십자가의미를 어느 정도 살리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사도가 있다면 누구도 만찬을 약화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자랑은 교회자랑이 아닌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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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미사와 산제사]그리고 [유월절과 만찬]에 대한 성경적인 소견\\
이근호 2004-09-15 11:11:57, 조회 : 212, 추천 : 14

신약에 있어 '산 제사'란 (특히 로마서 12:1-3)

그냥 평범하게 몸으로 살아가는 생활 전체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산 제사'=' 영적 제사' 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있어

'영적'이란

몸으로 세상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자체를 두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 하나가

육을 위해 심는 것이 아니라 썩어지지 않는 영을 위한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즉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자기를 부인하는 상태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상태에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에 대해서 교회에서 그 어떤 형식을 요구하게 되면

그 형식을 구현하는데 동원되는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또다시 긍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율법적 예배'로 전환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천주교 비판할 때 주의 할 것은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출 필요가 있음'으로 공격할 것이 아니라

'인간 행함'의 바탕 위에 전개된다는 점에 대해서 복음으로 정죄해야만 마땅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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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예배 심각하게 타락했다.(각종 예배들은 세속화된 증거)\\
김인찬 2004-09-15 07:38:09, 조회 : 318, 추천 : 10

오늘날 개신교의 예배는 심각한 세속화를 겪고 있다.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예배를 사람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허다하다.

각종 개강예배, 신입생 환영예배, 출판 기념예배, 각종 헌신예배, 개업예배, 추도예배, 생일예배, 이전예배, 직분 임직예배, 돌잔치 예배 등 수 없는 성도의 일이 예배의 목적이 된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일이 목적이 되자 결혼 축하예배 등으로 사람의 의식을 예배로 만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배당 신축예배 그리고 교회 몇 주년 예배 등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일이 예배가 된다는 것을 바꾸어버리고 사람이 하는 목적이 예배가 된 전형적인 모습이다.

예배가 되려면 예배에 어떤 조건이 없어야 한다. 사람의 일이 조건으로 붙으면 예배는 사람의 공로로 드리는 행위가 나타난다. 자기 건물을 지었으니 감사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행위는 예배에 그 사람의 건물에 대한 목적이 추가된다.

예배는 순수성이다. 오직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의식이다. 그런데 예배에 사람의 일이 추가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예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배의 순수성을 상실한 것은 예배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에서 출발한다.

예배는 신령과 성령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헌금이 예배의 한 요소라면 물질만이 아닌 마음을 드리게 된다. 즉 헌금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이 받으시기 때문에 예배의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기도가 예배의 요소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다.
찬송이 예배의 요소가 되는 것은 찬송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받으시는 목적에 의해서 찬송과 기도와 감사가 있는 것이 예배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조건은 사람의 행위나 기타 어떤 것도 추가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예배는 하나님의 요구이며 명령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마땅히 예배의 조건이 하나님의 요구에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요구에 순종해서 드리는 것이 순수한 예배이다.

우리는 예배의 조건이나 의미를 만들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받으신다는 것이 참 목적이며 하나님의 요구에 의해서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그러나 오늘날 예배는 하나님이 요구보다 사람의 요구와 목적이 앞선다. 축하예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누굴 축하한다는 말인가? 예배에 사람의 축하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예배의 회복 그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받으신다는 것이다. 사람의 축하할 일이 있어서 예배가 되고 예비의 제목이 설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는 분이며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입장이다. 예배를 드리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임으로 예배의 목적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요구하는 것 외에 우리가 어떤 목적을 정해서 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추도예배와 장례식예배 등 사람이 죽은 것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지극히 이상한 예배이다. 추도식이며 장례식은 될 수 있지만 예배는 아니라는 것이다. 죽은 자들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했는가?? 예배당을 건축해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했는가?? 지교회가 오래되었다고 몇 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명하셨는가?

이미 교회는 초대교회로 시작되었다. 모든 지 교회와 앞으로 오는 모든 교회는 이미 사도로 세워진 교회에 이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 교회 들이 예배를 지교회의 목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러면 사도들이 세운 교회를 두고 예배를 드려도 된다는 논리가 정당화 된다.

카톨릭도 이미 우상화가 되어서 예배를 사람의 목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의 업적에 의해서 성인이라고 호칭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개신교는 신약성경에서 거부하는 온갖 절기를 만들어 놓고 또 예배가 아닌 것을 예배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성경에서 상당히 벗어난 한국교회가 스스로 잘못을 찾기는커녕 개혁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시대가 오늘의 시대이다.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는가??

십일조가 성경적이지 않는 것이라고 외쳐도 교회의 절대적인 예산으로 십일조 주장한 사람을 제명시킨 한국교회이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한국교회 총체적으로 개혁해야 된다는 것에는 누구도 의심이 없지만 막상 현실이 그렇게 어려우니 타협하자는 식이다.

예배도 타협의 대상인가?? 하나님께 진실로 드리는 헌금도 타협의 대상이라는 것인가?
특히 교회를 나누는 행위는 정당화 하면서도 개혁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는 한국교회이다. 참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나서야 한다. 성령이 홀로 개혁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가? 하나님이 교회를 스스로 정화시킬 것으로 믿는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는 믿음이라고 했다. 행함이 없는데 하나님이 홀로 교회를 살린다고 보면 착각이다.

심은 대로 거둔다. 한국교회는 거짓을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서야 한다.
이방의 종교도 한국교회 정도는 충성을 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이슬람과 회교 국가를 보라 그들의 열심이 스스로 구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교회 참으로 종교적인 열심을 버리고 참으로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종교적 열성은 이미 유대인과 카톨릭에서 우리가 보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진 자들로 살아있는 믿음과 신앙이 나타나야 한다.

실재로 그렇게 나타나면 이방의 종교들과 엄격하게 구분되고 그들은 감히 우리의 참 신앙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들과 그렇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진정으로 한국교회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세상에서의 나그네 된 삶을 가르쳐야 한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신앙 그리고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신앙과 종교생활은 이방의 종교들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참으로 변화할 것이라면 성도들에게 이 세상은 잠간이며 하늘에 소망을 품게 해야 한다. 우리가 어찌 하늘의 구원과 세상의 향락을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성도가 진정으로 하늘에 소망을 보면 그는 오늘 죽어도 소원이 없는 영적인 깊은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신앙이 있다면 그는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제 아시아 최대의 복음 선교지인 중국이 문을 잠그려고 한다. 우리는 몇 년 동안 중국에 대한 물적 질적으로 선교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회가 없어져 간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교회의 헌금을 자기 교회의 운영이나 방만한 지출로 대부분 사장시킨 것이 범죄가 아니라고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것인가?

물론 한국교회 선교비가 얼마 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낸 것이 사실이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믿음과 행위로 나타나는 헌금은 분리될 수 없다
교회세우고 짓는데 열성인 한국교회가 무슨 선교에 대해서 얼마나 믿음으로 투자를 했다는 것인가?? 교회 예산의 70%를 선교비로 사용해도 아쉬워하는 마음이 선교의 마음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전체 헌금의 예산에 2%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선교했다고 자랑한다면 하나님이 비웃을 것이다.(국내선교를 제외하면 더 적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교회는 스스로 가난한 자처럼 되어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에 식량을 무기로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것도 억울한데 언제까지 국내선교에 목숨을 걸려는 것인가??

이제 목사배출 그만해야 한다. 이방의 종교처럼 성직으로 생계를 누리는 것이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헌금이 비상식적인 이유로 허비되고 있어도 목사배출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20명의 성도가 1명의 목사를 책임져야 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어차피 성직의 길을 가려한다면 한국은 포화상태이다. 해외로 나가서 선교사가 된다면 몰라도 목사가 되는 것이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한국교회가 거짓을 벗고 진정한 개혁으로 나간다면 지금의 헌금보다 배는 증가할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세상이 깜짝 놀란 만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느 종교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과 헌신이 나타난다면 헌금의 액수는 믿음으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교회의 헌금예산보다 수배는 될 것이고 선교비는 70% 이상을 하게 된다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선교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단순히 선교를 위해서 또는 예배를 위해서 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 스스로 살아나는 축복이고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통해서 세계를 품으려는 원대한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스스로 깨우치고 일어나야 한다. 더 이상 세상의 것에 교회가 종속될 이유가 없다. 교회는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고는 세계의 넓은 선교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반쪽나라 한국교회에 거는 기대가 아닐까??

한 순간에 나라가 망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에 한국이 언젠가 망한다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심판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단들이 돌아오는 것과 지금 나누어진 교회가 하나로 화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은 것이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 한다.
우리가 잠자는지 혹은 깨어있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다.
한국교회 무엇을 거두고 있는가?? 교인수를 거두었다고 자랑할 것인가?

종교의 확산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었다. 우리가 빠른 성장을 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성장도 그렇고 종교성장도 그렇다. 적절한 때에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의 복음전파는 우선 기회가 좋았다. 반공사상으로 다른 기존 종교나 사상들을 어느 정도 약화시키는 것이 적절했고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과 서방의 경제와 군사원조가 절실했다는 것은 기독교를 확산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물론 해방이전부터 기독교의 뿌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제의 학대와 남북전쟁은 한국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았고 기독교사상이 쉽게 내린 결과이다. 하나님의 작정이었다. 이러한 결과와 함께 한국인의 종교적인 열성도 한몫했다는 것은 부흥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서방에 대한 비판보다는 오히려 서방에 의존하려는 것이 강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한 의존적인 한국인에게 기독교외에 다른 종교는 없었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개척정신과 같은 새로운 민주사회 개발논리는 새로운 기독교도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같은 민족끼리 치열하게 싸웠으니 그들의 혼란이 얼마나 크게 나타났겠는가? 그런 혼란은 기존의 것보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데 충분한 원동력이 되었다.

교회의 성장은 이렇게 환경적인 조건을 하나님이 예비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이성계 시대에 복음이 들어 올수 없었던 것은 환경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이 쉽게 들어오게 하는 기초로 일제의 압제를 이용한 것이고(기독교의 특성은 압제 속에 오히려 저항하면서 뿌리를 내림) 그리고 전쟁으로 사회가 개방에 대해서 급물살을 타게 되면서 기독교도 함께 강하게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스스로 잘해서 부흥했다고만 자랑한다면 오늘의 교회가 과연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과는 별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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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한국교회 예배 심각하게 타락했다.(각종 예배들은 세속화된 증거)\\
이근호 2004-09-15 11:01:53, 조회 : 351, 추천 : 17

하나님께서 제사하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

예수님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이게 하시는 분이

오직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위함'이 필요요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언약(약속)이

그 어떤 작용을 하셨는가를 믿는 것이 관권입니다.

언약 중심이 아닌

그냥

'하나님을 위한 모임'이 되어 버리면

이것이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의 본성적인 종교성의 발로에 불과합니다.

'율법 외의 한 의(義)' 중심으로 모이는 예배에 대해서

[십자가를 아십니까]라는 책에 제가 소개해 두었습니다.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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