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요아킴 크라우스의 『조직신학』] 2004-09-04
너무 너무 좋은 글 (손성식 목사님의 글) 이근호 2004-09-04 11:58:04, 조회 : 411, 추천 : 12
한스 요아킴 크라우스의 『조직신학』출판사: 한국신학연구소(서울:1986) 옮긴이: 박 재순
욕망 하는 인간이 역사라는 장(場)에서 놀고 있기에 자신의 모든 철학-과학-신학도 역사의 이미지 속에서 정리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역사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진실을 모른 채 모든 것을 역사에 기대어 봅니다. 하지만 역사 자체가 이미 거짓으로 판정되고 희망이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역사의 진실을 모른채, 왜곡된 현실 속에서 종말을 규정짓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끝나면 올거라고!"
본 서는 시간적인 미래의 종말이 먼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먼저 정리해 놓고 갈 부분이 있습니다. 뭔가 하면 종말이란 늬앙스입니다. 즉, 역사 쪽에서만 보면 이제 "끝났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본 서의 저자가 보기에는 "끝냈다"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요, 늬앙스를 느끼시겠습니까? 거듭 말하자면 "끝났다"의 주체가 인간이라면 저자가 말하는 "끝냈다"의 주체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본서가 말하는 종말은 [도래 한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 나라를 도래시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질문해 볼까요? 본 서의 저자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본 서는 오리게네스의 "autobasileia"(인격 안에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를 해답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즉, 그냥 가만히 시간이 흘러가면 도래하는 미래가 아니라, 시간의 개념을 부수면서 미래가 현재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시간의 마지막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속에 마지막 때가 현재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과 관계없다면 마지막 때의 하나님 나라와도 상관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현실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예수님과 상관없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유토피아로 이해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을 떠나서 이야기하는 모든 사설들은 다 가짜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즉, 내 욕망은 되겠지만 예수님과는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자, 이제 어떤 질문이 가능해지요. 하나님 나라가 역사 속으로 들어오면 일어나는 부대현상이 뭐냐는 것입니다. 본 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계를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으로 "세계의 변혁"을 들고 나왔습니다. 우리 식 표현으로 하면 뒤집어엎겠다는 것이죠. 기존의 세상나라는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또 질문해야겠지요. 하나님 나라가 세상을 뒤바꾸겠다는데, 도대체 세상나라의 무엇 때문일까요? 본 서의 대답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열과 적대관계, 이기심과 증오, 거짓과 잔인함은 있는데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활약상은 사랑이 꽃피는데 있는 것입니다.
조금 앞으로 돌려서 얘기하고 넘어갑시다. 하나님 나라는 마지막 때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화되었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지금 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와 있는 건가요? 예수님의 말과 행동의 모습으로 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면 무엇에 대해서 알면 될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면 인간의 상상력에 의지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원사신에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본 서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원(原) 사신"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역사상 직접했던 도달할 수 없고 재구성할 수 없는 말을 의미하지 않고 초대교회 공동체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해석된 나사렛 사람의 케리그마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어렵게 이야기했지요. 어려워도 좀 참아 주셔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한 마디 한 마디가 상당히 함축적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원사신이 뭐냐가 궁금하지요. 본 서가 말하는 원사신의 내용은 복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숨기워진 하나님 나라의 현재에 관한 소식입니다.
본 내용으로 돌아와 봅시다. 다가올 마지막 때의 하나님 나라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와 있다는 것이죠. 어떤 모습으로요? 본 서가 제시하는 것은 사랑의 얼굴이고, 그 내용은 사죄를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본 서의 말을 한 번 들어 볼까요. "하나님 나라는 치유하고 구원하는 사랑의 능력으로 세상을 채우며, 단절을 극복하고, 적대성을 종결짓고, 이기주의와 집단이권에서 세상을 해방시킴으로써 세상의 모든 영역과 생활 영역을 전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에서 혁명적으로 실현된다."(p.22) 어떻습니까? 본 서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본 서는 하나님 나라를 현실적인 문제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 나라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지 않습니까. 사실 이러한 현실문제를 우리도 경험하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있나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있습니까? 문제는 알지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이고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바로 본 서가 말한 대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혹시 그렇지 않다고 대들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도 세상엔 아직 사랑의 훈훈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구!.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사람은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인간의 욕망의 몸부림입니다.
그래서 본 서가 사랑과 죄 사함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 두 개다 어디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몸소 하나님 나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사죄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은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회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바꾸고 새롭게 방향 설정하는 계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죄인이 스스로 계획하거나 사전 모의하지 않고 십자가지신 예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다가오셔서 생긴 사건이므로 "은혜의 우발성" 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생각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본 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주적 변화의 우발적 과정이며, 진화가 아니라 다른 혁명들과는 비길 수 없는 유일한 혁명이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제한이 없는, 삶과 세계의 모든 영역에 걸친 변혁과 격변이다. 하나님 나라의 변화시키고 갱신하는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인간 소외의 깊이에까지 이르고 삶과 공동생활을 파괴하는 근원적인 뿌리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변화와 갱신과는 구별된다."(p.30) 어떻습니까? 상당히 급진적이지요. 여러분은 본 서의 생각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저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본 서가 하나님 나라의 싸움을 너무 땅의 현실에만 종속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싸우신 것은 이 땅의 현실이 아니라 이 땅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던 마귀라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예수님이 이 땅에서 마주 본 실체는 마귀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나쁜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마귀와 한 통속이 되어 있는 지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 나라가 세계의 변혁이라는 내용은 마귀와 같은 사고방식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되어야 하는 것이 원래 창조의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변혁이라는 말을 제가 좀 바꾸어서 이해한다면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뒤집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체제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말한 "회개"라는 말도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불순종의 체제에서 순종의 체제로 바뀐 것입니다. 저는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 나라가 현재 하는 얼굴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 죄인을 공박하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의를 알게 하시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보는 맥락에서 본 서의 입장은 너무 거창하게 주제의 내용을 잡았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본 서가 보기에 저의 입장은 너무 소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는 십자가의 모습으로 구현되기에 사회나 공동체의 변화된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회개시켜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즉,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내용이 확산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안으로 헤쳐 모이게 되는 것이지,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왜요? 이유는 주님께서 세상을 이미 폐기처분 하실 장(場)으로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현재 하는 세상은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확인시키는 장(場)으로서 도구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의 변천을 하나님 나라로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보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저의 넋두리에도 불구하고 본 서의 장점을 따라 잡으시겠지요.
==========================================================================[re] 너무 너무 좋은 글 (손성식 목사님의 글) 조 규 현 2004-09-07 08:32:37, 조회 : 212, 추천 : 11
손성식 목사님의 글은, 공부하는 사람의 글이라 무척 무게가 있고 장래가 기대됩니다.
신학이란 원래 말작난하는 인간의 놀음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렇게 쉬운 표현이었는데도, 천국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된 자들에게는(마13:11) 골수를 쪼개고도 남는 생명의 말씀으로 깨닫게 되었고,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는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 용어나 내용들을 어렵게 표현하는 이유가 마귀들이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보아 집니다. 한스 요아킴 크라우스의 조직 신학의 내용에 대한 손성식 목사님의 서평을 읽고 저가 느낀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역사철학 혹은 역사신학의 내용을 저는 다음의 성경 귀절로 종결 지을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4:16-5:1)"
==========================================================================[re]그냥 넘겨도 좋은 짧은 답변 손성식 2004-09-07 16:56:23, 조회 : 219, 추천 : 12
>>신학이란 원래 말작난하는 인간의 놀음이라 생각합니다.
@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신학이란 그렇게 가볍게 애들 장난치는 것처럼 말할 성질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신학안에 인간의 모든 노력과 열정과 수고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이런 땀과 노력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욕먹이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진실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신학에 대해서 이를 가는 것이지, 신학 이라는 존재의 가벼움때문에 신학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렇게 쉬운 표현이었는데도, 천국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된 자들에게는(마13:11) 골수를 쪼개고도 남는 생명의 말씀으로 깨닫게 되었고,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는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렇게 쉬운 표현이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기존의 유대교 신학을 뒤집어 엎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학 용어나 내용들을 어렵게 표현하는 이유가 마귀들이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보아 집니다.
@ 일단 저는 제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언급하는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을 어렵게 쓴다고 해서 마귀가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십자가의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철학 혹은 역사신학의 내용을 저는 다음의 성경 귀절로 종결 지을가 합니다."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우리가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4:16-5:1)"
@ 저는 고후 4:16-5:1이 역사철학이나 역사신학의 내용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신학이나 철학을 공박하는 묵시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저의 짧막한 답변은 조 규현 장로님에 대한 반박성 글이 아니라 제 글속에 담겨진 내용을 다시금 확인시키기 위한 글임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인찬 목사입니다.(좀더 쉽게 종합정리 했습니다)수정된 글 김인찬 2004-09-07 18:55:33, 조회 : 215, 추천 : 11
이 글은 전통신학을 중심으로 게재하고 있습니다.유월절과 안식일도 여증이 주장하는 것보다 기존 신학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사후세계에서도 위치만 리의 신학보다 전통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글을 올렸습니다. 저의 이론입니다.
먼저 보수주의 이분설을 중심으로 죽은 자들은 모두 영혼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힙니다.여증을 반대하려고 작성한 글이 아래의 글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지적을 부탁드리고 또 조언을 구합니다.
참고: 안식일은 금요일 오후6시부터~토요일 오후6시까지의 24시간임.(유대 종교력 채택)
========[유대절기로 보는 구원의 과정]=======종합정리
출애굽으로 광야에서 시작된 안식일은 매주 마다 지켜야 되는 날이었다.(7일)이 안식일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확실히 성취되었다.(문자적 성취)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도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한 것으로 증거 한다.(마28:1)이렇게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한 것은 안식일 성취 후 부활한 것과 같은 것이다.안식일은 금요일 오후6시경부터 토요일 오후6경까지의 24시간 하루를 말한다.
예수는 이 안식일을 성취하기 위해 서둘러서 금요일에 오후 3시경에 죽고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6시 이전에 무덤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무덤으로 들어간 것은 안식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들어간 것이다. 참 안식일은 육체를 벗고 영혼으로 쉼을 의미한다.
그는 육체를 벗고 참으로 쉼을 얻는 것이다. 그의 영혼이 안식일 날 하루를 온전히 하늘에서 영혼으로 쉼을 얻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이 지킨 육체적인 안식은 그림자라면 실체는 영혼의 안식을 말하는 것이다.(히4장)
예수가 유월절 희생양으로 죽고 그가 영혼으로 안식일을 지낸 것이 이를 입증한다.이러한 안식은 참 하늘의 안식으로 성도들이 죽으면 곧바로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히)
예수는 죽음으로 자신의 영혼이 안식한 것뿐 아니라 안식의 처소를 하늘에서 준비한 것이다. 그 안식의 처소는 그가 죽음으로 마련된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서두에서 증거 하는 것은 예수가 처소를 준비하러 간다는 말에서 분명히 그 처소가 안식의 처소인 낙원을 의미한다.
예수는 안식을 이루는 것과 동시에 낙원이라는 장소도 준비하려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강도에게 약속한 낙원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장소이다. 이렇게 예수로 시작된 낙원에 이제는 누구나 믿음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예수가 죽어서 낙원을 준비하기 전에는 누구도 예수보다 앞서서 하늘로 간자가 없다고 성경은 증거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3:13)
참 안식과 낙원의 준비는 이렇게 예수로 시작된 것이다.(요14:1~2)유대인들이 지킨 안식일은 참 것이 오기를 기다린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림자를 예수는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며 그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늘 안식으로 들어간 것이 안식일의 성취이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집이라는 장소로 우리를 넉넉히 인도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구약의 그림자인 안식(일)에 누가 먼저 들어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당연히 예수가 먼저 들어간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동시에 강도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미 죽었던 구약의 성도들도 함께 포함되어서 낙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도 죽으면 음부가 아닌 낙원에 곧바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가 영혼으로 하루를 온전히 안식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난 성도들의 영혼이 안식과 처소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안식으로 들어가는 일은 예수의 죽음으로 예수가 들어가면서 시작된 것이다.
예수는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하였듯이 예수는 오늘이라고 하는 금요일 3시쯤 운명하면서 하늘의 낙원에 올라간 것이다. 강도에게 약속한데로 예수는 오늘이라는 금요일 3시쯤 운명함으로 그를 데리고 낙원으로 간 것이 분명하다.(어떤 자들은 예수가 음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도 있다)
그리고 구약의 모든 성도들의 영혼들도 예수로 낙원에 올라간 것이다.구약의 성도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낙원에 올라간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하게 되자 그들의 영혼이 음부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것이다. 구약성도들의 영혼이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도록 예수의 죽음이 그들이 있는 옥에도 전파된 것이다.(밷전4:6) 이렇게 전파됨으로 예수와 함께 강도에게 약속한 금요일(오늘)에 하늘로 올라가 쉼을 얻는 것이다.
이렇듯 안식일이 죽은 영혼의 쉼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예수로 시작된 낙원과 안식은 신약의 죽은 성도들에게 항상 적용되고 있다. 누구든지 믿고 죽으면 그는 곧 바로 낙원에 이르게 된다.
유월절이 예수의 죽음을 의미한다면 안식일은 예수의 죽음으로 들어간 영혼의 쉼을 의미한다. 현재 예수는 부활해서 육체로 살아있다. 그는 부활 전에 유대인의 안식일 날 온전한 영혼의 안식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도 영혼만으로 온전한 하루의 쉼(안식)을 하였고 이는 모든 죽은 성도들을 참 안식으로 인도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산자들에게 소망을 준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어디로 갈수 있다고 믿는가? 라고 누가 질문한다면 예수로 시작된 안식과 낙원이 나의 처소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안식과 낙원을 믿는다면 죽음이 결코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예수의 안식과 낙원이 나의 안식과 낙원이 된다는 것이다.마지막에는 예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될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생명의 길이 된다.이렇게 안식일에 대한 이해가 영혼의 안식으로 이해하여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 무교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다.무교절은 출애굽 당시 무교병을 먹었던 것을 기념하는 것으로 지키게 된 것이다.유월절과 무교절이 이렇게 동시에 이해되는 것은 출애굽에서 함께 이루어진 것 때문이다.그리고 이 절기는 일년에 한번씩 지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예수가 죽을 때에 유월절이었고 예수가 무덤에 들어간 다음날이 안식일이었다.이는 유월절로 희생으로 안식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이 유월절 성취이고 예수가 영혼으로 들어간 다음날이 안식일의 성취이다. 그리고 부활함으로 더 이상 유월절과 안식일을 지키는 의식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과거 구약에서 의식을 지킨 것은 참 것이 오지 않아서 지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참 것이 게 됨으로 말미암아 기다리는 의식이 없고 오직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교절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무교절은 유월절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교절을 지키는 것은 유월절 다음날 안식일부터 7일간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이렇게 보면 무교절은 유월절과 동시에 시작되지만 절기를 지키는 것은 다음날 안식일부터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무교절의 시작이 유월절과 함께 시작되고 그 다음날부터 7일간 지속 된다는 것은 무교절이 안식일과도 분리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유월절은 14일이었고 그 다음날인 15일은 안식일이며 마지막 무교절의 21일도 안식일로 끝난다.(무교절은 안식일로 시작해서 안식으로 끝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이와 같이 무교절은 안식일과 연관해서 이해해야 한다. 흔히 무교병을 영적인 깨끗한 양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무교절은 누룩을 없애고 무교절 기간(안식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죄를 사함 받고 무교절(안식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앞서 설명한데로 안식은 영혼의 안식이 분명하며 이는 영혼이 안식과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무교절의 무교병은 누룩이라는 죄를 재거한 깨끗한 영혼을 의미한다고 봐야 된다.(구약에서 재물과 제사 드리는 곡식은 예수를 예표 한다)
예수가 오기 전 사람이 죽으면 음부에 있었다. 그들은 죄가 사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가 아직 죄에 대해서 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세상에 와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이전에 죽었던 모든 영혼들이 비로써 죄가 사해진 것이 확실하다. 결국 그들도 안식이라는 아버지 집에 믿음으로 그날(금요일)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죄가 사함을 받은 자들이 예수의 죽음인 유월절로 말미암아 안식에 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 안식(15일)이 바로 무교절의 첫 안식일(15일)이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안식(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성도들의 영혼들은 참으로 죄가 없이 안식(낙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마치 무교병과 같이 누룩이 없는 즉 죄가 없는 깨끗한 영혼으로 안식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누룩은 세상의 것으로 죄를 의미한다고 믿는다. 그 죄가 사해진다면 그는 낙원에 충분히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무교절 첫 안식일에 영혼들이 들어간 사건이다.(무교절은 두 안식일이 있다. 첫 안식일은 15일이며 마지막 안식일은 21일이다)
여호와께서 15~21일까지 무교벙을 먹고 집안에 절대로 누룩을 없게 하라는 것은 바로 하늘 영혼들이 누룩과 같은 죄가 없는 깨끗한 상태로 지내는 것과 같다.무교절에 두 안식일이 있는 것은 첫 안식일은 안식의 시작을 말한다면 마지막 안식일은 안식의 끝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교절의 7일 동안의 기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월절(14일)===무교절 7일간(첫 번째 안식일<15일>---------마지막 안식일<21일>)
그 무교절 기간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1) 첫 번째는 구약시대 모든 기간(역사)에 있었던 자들이 예수의 성취로 안식에 들어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영적 의미 상징)2) 다른 하나는 신약시대 안식으로 들어간 하늘안식의 기간을 의미한다.(영적 의미 상징)당연히 그 끝은 재림으로 나오게 된다. 예수가 안식 후 부활을 했듯이 무교절의 마지막 안식이(7일째 날) 끝나면 모든 안식에 있는 자들이(죄가 없는 깨끗한 영혼) 일제히 부활로 나오게 될 것이다.이렇게 구약에서 죽은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것과 신약에서 성도들이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가 성경적인 내용이다.
{첫 번째 구약시대 중심의 내용 설명}구약에서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구약의 백성들이 이러한 절기를 지켰으며 예수가 절기를 성취함으로 그 절기를 지키고 죽은 영혼들이 모두 일제히 적용된다는 것이다.즉 예수의 유월절 성취로 죽었던 구약의 백성이 사함을 받고 예수가 안식일에 안식으로 들어감으로 죽은 구약 백성들의 영혼이 강도와 함께 예수로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낙원)
{두 번째 신약시대 중심의 내용 설명}이 무교절의 7일간은 예수로 시작된 안식에서 재림 전까지의 안식기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무교절에 두 안식이 있고 그 첫 안식은 예수가 먼저 시작한 안식이다. 이는 안식의 출발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두 번째 안식은 하늘에서 영혼으로 있는 마지막 안식을 의미한다.마지막 안식으로 예수는 재림 할 것으로 본다.이러한 무교절의 기간이 죽은 자들에게 해당 된다. 그 끝은 재림으로 나오게 된다.
======구약시대 중심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이 첫 번째 내용에 관심을 갖고 먼저 살펴보자. 이유는 구약의 절기라는 것이며 구약의 절기가 구원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연속성은 아래와 같다.
*유월절==>무교절(두 안식일)==>초실절==>오순절==>나팔절 등이다.
<이러한 연속성은 그대로 구원의 과정과 연결된다.(A-->B-->C-->D-->E)>A.예수로 시작된 유월절-->B.예수로 들어간 무교절-->C.예수로 첫 열매인 초실절-->D.예수로 시작된 신약교회-->E.예수로 끝나는 나팔절이다. 끝
이렇게 볼 때에 유대인의 절기는 예수의 구원을 나타내는 그림자로 서 있었던 것이다.위에서 무교절이 안식을 의미한다면 초실절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무교절이 과거에 죽은 유대인을 안식으로 인도한 절기라면 초실절은 부활 후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예수의 부활 전에 무교절과 예수의 부활후에 초실절이라는 것이다.
[A] (중심) [B]*무교절(부활 전 죽은 유대인)-------예수의 부활-------초실절(부활 후 남아 있는 유대인)
=<위내용에 대한 이해는 아래와 같다>=[A] 무교절: 안식일을 지키고 죽은 구약시대 모든 성도들의 영혼들이 무교절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B] 초실절: 예수 당시에 예수가 안식일을 이루자 이것을 믿은 살아있는 유대인들로 이스라엘의 첫 열매이다.(초실절=여호수아가 마지막 두 번째 안식을 끝내고 다음날 첫 열매들을 거두는 거둔다. 그들은 예수가 부활 후 첫 열매들인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거둔 것이다=살아있는 제자들과 예수를 믿는 이스라엘 성도)
무교절의 7일 동안의 기간은 예수 오기 전 구약시대 안식일을 지킨 총 안식일을 의미한다. 무교절의 첫 안식일과 마지막 안식일은 이렇게 모든 구약시대 죽은 자들의 안식 기간을 포함하는 의미이다.(이스라엘의 역사적 안식일 기간) 구약에서는 마지막 안식일인 무교절 7일 이후에 다시 기다리는 안식일이 있었지만 예수로 말미암아 안식일을 기다리고 지키는 것에서 벗어나 이미 하늘에 있는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무교절을 지킨 구약의 안식기간에 있었던 죽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일시에 안식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약시대 우리는 죽으면 곧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하늘 안식을 기다리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안식기간이 끝나면 8일이라는 새 출발의 재림으로 나올 것이다.
구약에서는 무교절 마지막 날 [제 7 일]안식일이 끝나고 다시 반복적으로 안식일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이는 계속 반복되어 해마다 유월절이 다시오고 7일 동안의 무교절도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가 오기 전까지는 계속 지켜야 되는 그림자적인 의식이었다. 이러한 반복은 내년에 또다시 유월절과 7일 동안의 무교절을 다시 맞아야 되는 계속적인 순환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예수가 유월절 양이 되시고 예수가 안식일을 이루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다시 기다리고 맞이해야 되는 순환이 아니라 예수 오기 전 반복해서 지킨 자들이 모두 하늘의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무교절은 예수 오기 전 과거 이스라엘 안식일의 전 기간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아래와 같이 매년, 매주 마다 반복되어 지키었다]*유월절(14일)==>[안식일15일<==(무교병 먹는 기간15~21일)=>>7일째 안식일(21일)]=>>>>위에서와 같이 다시==>> 반복된다.*유월절(14일)==[안식일(15일)====(무교병 먹는 기간(15~21일)>===>마지막=날이 다시시작===>또 내년에도 반복되고 그 다음 년도 에서도 반복되고 예수 오기 전까지 이러한 절기가 유효했다. 이 절기는 해마다 반복되어 예수가 참 절기를 성취하기 전까지 해마다 계속 된 것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것은 참으로 오는 큰 절기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예수) 그러나 이제는 이미 안식일이 실재 예수로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그림자적인 예표인 절기와 날을 성취하기 위해서 실체인 그가 세상에서 일한 것이다. 그의 유월절 안식일의 사건이다.(유월절, 안식일, 무교절 등은 예수로 성취되는 그림자였으며 예수는 그들이 지킨 절기를 실체인 그가 와서 완전히 이루고 과거에 절기를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시에 적용시킨 것이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것을 성취한 그 순서는 아래와 같다*유월절 만찬과 희생(14일)==>>하늘 안식일 성취(15일)로==>> 무교절이 그 안식일 날로 시작되어 마지막 안식일 날로 끝나고 다음 안식일의 의식이 필요 없는 것은 무교절을 지키고 죽은 모든 구약 성도들이 이미 안식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들의 절기를 이미 이룬 것이다.
예수의 안식일성취로 다시 반복되는 것이 없이 8일의 재림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과거 같으면 유월절=> 안식일과 무교절이 지금도 계속 반복되어야 되지만 완전한 유월절과 완전한 안식일 그리고 무교절 성취로 이것을 믿음으로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먼저 적용된 것이다. 예수는 첫 열매가 되시고 구약의 백성들은 첫 열매들이 된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절기가 계속 반복된 것은 참으로 오는 유월절과 안식일과 안식의 기간인 무교절이 그들에게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림자에 불과) 그래서 8일이라는 진정한 재림의 소망이 없었던 것이다. 과거 그들에게는 다시 유월절이 시작되고 무교절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성취로 구약에서 지킨 자들이 적용되고 신약시대 믿는 성도는 세상에서 유월절을 경험하고 죽으면 안식에 들어가고 마지막 재림으로 오는 8일의 부활로 나타날 것을 기다린다.
<과거 예수의 안식일, 무교절 성취는 과거 죽은 구약성도들에게 먼저 해당된다는 것이다>
1. 예수의 이스라엘의 절기성취로 이스라엘에 적용되는 것을 보면 아래와 같다.*예수로 과거에 죽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일시에 사함 받고(유월절)*예수의 안식으로 이스라엘의 백성이 안식에 일시에 들어가고(안식일)*예수의 무교절로 과거에 모든 안식일을 지킨 자들이 모두 안식에 들어옴(무교절)*예수의 첫 열매부활로 이스라엘에서 모든 남은 자들이 첫 열매들이 된 것이다.(초실절) *예수의 재림은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들어온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이 될 것임(나팔절)
그리고 오순절은 이스라엘의 구원인 초실절이 아닌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절기이다.사실상 이 절기부터 신약교회가 형성된 것이다. 오순절은 예수의 영이 오게 됨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으로 들어오는 사건이었다. 이 오순절이 시작된 시작은 유월절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은 나팔절이다. 이 절기로 모든 백성들이 즉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신약시대 중심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신약시대 교회에 적용을 하면 아래와 같다>*예수의 승천으로 성령이 오셔서 적용한다.*예수와 함께 우리가 죽는다(유월절)=6일이라는 세상에서 육체를 벗고 영혼으로 떠난다.*예수로 우리가 안식에 들어감(무교절 첫 안식일)=7일이이라는 안식일에 영혼으로 들어감*예수와 함께 하늘에서 무교병을 먹음(무교절 기간)=7일 동안의 낙원에서 영혼의 안식 기간 *예수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다.(나팔절)=8일이라는 재림으로 모든 영혼이 육체로 나온다.
이렇게 예수는 이 땅에서 죽음으로 하늘에서 안식일을 성취했고 죽은 성도들은 지금 낙원에서 무교병을 먹고 있듯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교병이 살아있는 자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안식일이 세상에서 얻는 안식이 아닌 하늘의 안식이며 무교절은 안식일로 시작된다. 무교절의 특징은 안식일로 시작해서 안식일로 마침(예수의 재림 전까지의 기간)
그럼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와 함께 육체가 죽는 유월절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는 우리의 육체가 죽지 않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죽으면 그의 영혼은 유월절을 지나서 하늘의 안식에(무교절) 자동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무교절의 의미가 마치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것과 같이 하늘에서 죄가 없이 그렇게 지내는 영혼들을 의미한다. 그들이 육체가 없기에 무슨 맛을 느끼겠는가? 육체가 없는 영혼들이 머무는 기간이 무교절의 기간이라는 것이다. 신약의 성도들도 유월절 예수와 함께 죽고 안식일이라는 낙원에 들어가서 무교절의 기간을 지나 재림으로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즉 창조 때의 6일에 죽고, 창조 때 하나님이 안식하신 7일의 안식일(무교절)에 들어가고, 창조 때 아담이 새 출발한 8일과 같이 신천지로 나타날 것이다. 신약시대에서도 영적으로 유월절 예수와 함께 죽은 자들에게는 무교절(안식기간)과 그리고 재림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수는 구약 안식일의 참 성취라는 것이다. 안식일도 무교절도 먼저 구약시대 죽은 자들에게 해당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다린 절기였다. 물론 신약시대 우리도 주님의 하늘안식에 들어가고 그로 말미암아 무교절의 안식기간인 7일(상징=토요일)이라는 하늘 안식기간에 기다리다가 마지막 재림으로 8일(상징=일요일)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그리스도의 희생된 [몸과 피]이다.(성령으로) 그것을 얻고 죽으면 그는 하늘안식에 들어가고 또 재림 때까지 있다가 재림 때에 나타난다.세상에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사건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안식일이나 무교절이나 재림부활은 바로 초기 유월절을 건넌 자에게 자동으로 주어질 것이다.
*신약의 성도는 아래와 같이 영적으로 적용된다.[유월절]로 죽으면 [무교절 안식]에 들어가고==>[무교절==7기간]이 끝나면==>재림 새 출발
*위에대해서 구체적으로 신약시대 적용으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오순절]==성령으로 구원에 들어가도록 돕는다.[유월절]==예수가 세상에서 죽음으로 육체는 죽고 영혼은 죄에서 해방되었다.[무교절 첫 번째 안식일]==예수가 하늘에 올라가 온전한 안식을 하심으로 시작된다.[무교절 두 번째 안식일]==위 안식일에 들어가서 안식에서 나올 때까지의 기간이다.(죽은 자들의 기간)[나팔절]= 무교절과 같은 안식의 기간을 지나서 새로운 날로 나오는 재림을 의미한다.
==========================================================================[re] 김인찬 목사입니다. 여증도 아니고 지방신학도 아닙니다. 이근호 2004-09-07 19:52:38, 조회 : 212, 추천 : 11
예수님에 관해서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에 의해서 이미 틀이 확정지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는
박목사님처럼이나 여호와증인이나 혹은 워치니 만이나 위트리스 리 처럼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귀하께서 하는 해석으로는
사도가 정말 전하고 싶은 복음적 의미가 도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행적의 의미를 사도들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 바로 끄집어 낼 그 어떤 자격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사도가 소개하는 복음은
날짜 계산이나 시간 계산이 아닙니다. 그 기간에 예수님께서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도 아닙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음부에서 무얼하느냐도 아닙니다.
그런 것인 불신자들의 호기심이며
그 호기심의 눈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거기서는 결코 복음적 요소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그런
호기심들이
어떤 비복음적 충동으로 출발하느냐를 사도들의 복음적 해석을 통해서 도리어 지적받아야 마땅합니다.
베드로전서 가 되었던 요한계시록이 되었던간에
그 어떤 귀절이든
주님이 행하신 복음만이 도출되어야 바른 해석입니다.
성경 대신
예수님의 일대기를
아예 비디오로 찍어 놓은 것을 다 훑어본다 할지라도
거기서 믿음이 생겨나고 복음이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발 보수주의를 증거하거나 '이분설'을 수호하려고 하지 마세요.
사도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하지를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오직 예수님의 의(義)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여호와 중인을 공박하기 위해서 글을 쓰셨다든데
과연 여호와 증인과 오늘날 한국 교회와 차이점이 있는지 저는 참으로 궁금합니다.
다 먹고 살기 위한 변명들이 아닙니까?
제가 아는 복음에 의하면
지옥 가는 자는 기준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사랑, 신학 사랑, 자기 사랑, 국가 사랑, 교단 사랑, 모두다 그 어느 것이라도 예수님보다 우선된다는 그 사람은 필히 지옥가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귀하께서 이런 심정이라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오직 왜 인간의 의는 아니되고 (즉 왜 인간들의 신학적인 논리와 수고는 아니되고) 왜 그리스도의 그 분의 義만이 구원의 바탕이 되는지를 스스로 고백하는 글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즉
"저의 이분설이나 보수신학도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라고 말입니다.
==========================================================================[re] 김인찬 목사입니다. 여증도 아니고 지방신학도 아닙니다. 김인찬 2004-09-07 21:09:48, 조회 : 160, 추천 : 15
[먼저 글이 많이 수정되었으며 신중하지 못한점 사과를 구합니다.(급하게 작성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목사님께서 긴 글로 설명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교회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요즘은 거의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너무 전통적인 기독교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정신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예수라는 신앙이 살아나려면 우리가 주장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것으로 치부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의 교회는 자아가 드러나도록 만든 모든 것들이 오히려 참 신앙을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의 생각은 개혁이지만.. 사실 저도 기존의 교단과 교파에 가입되어서 글을 올렸으면 벌써 제명이 됐을 것입니다.저도 결단한 것은 모든 사람의 것을 십자가 밑으로 넣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성경신학은 사람의 것입니다. 성경과 신학은 분류된다고 믿고 있습니다.그 신학이 얼마나 성경에 가까운가가 우리의 관심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 구절을 사람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리 나타납니다.어떤 사람은 허무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좀 교리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어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문자적인 해석을 고집합니다.그러나 모든 것은 사람의 이론으로 성경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저의 신학적 견해는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다행이도 여증이나 기타 이단들과 맞서야 되는 입장인 것은 사실입니다.전통신학에서 볼 때는 비슷하게 볼 수도 있으면서 약간 다르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터넷 문화는 모두에게 열리고 모두가 함꼐 배우고 모두에게 가르침을 받는 공간으로 생각합니다.이유없이 저를 음해하는 자들에게 저는 더욱더 사랑을 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절대로 그들의 유화책이나 또는 협박과 거짓에 굴복하지 않을 것으로 다짐하면서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설 것을 촉구할 것입니다.
앞으로 목사님과 같은 의식 있는 분들이 한국교회의 개혁에 앞장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항상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의 성경신학은 절대적인 교리가 아니며 성경을 볼 때에 다양성 중에서 하나라고 생각합니다.아주 많이 벗어난 이론이라면 이단적인 이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저에 대해서 이단적인 글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으며 저의 글은 보수와 진보 모두 수용되고 있으며 게재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면서 교단과 교파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나 십일조와 같은 글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관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항상 주님의 은혜가 목사님과 가정에 함께 하길 바랍니다...
=작은자=
==========================================================================[re]수고하셨습니다. 이근호 2004-09-07 22:57:50, 조회 : 308, 추천 : 14
사도바울에 있어서 복음 전파란
필히
복음이 아닌 것을 관해서도 함께 언급하면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단인 점은 그들의 교리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신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마치
아예 교회에 다닐 생각도 없고,
또
불교에 심취하다든지
아니면
그냥
집에서 정기적으로 조상 제사드리는 것으로 종교를 대신하려는 대다수의 사람들 같은 동일한 의식과 사고방식을 갖고 자칭 목사. 자칭 장로, 기독 청년이라는 자의식을 갖추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글을 보면,
인간들의 기본적인 종교심의 근거를
복음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통용되고 있는
신학의 미진한 점이라든지,
뭔가
교인들이 궁금증해 하는 그런 에피소드에 대해서
변증에 누락된 논리성을
보다 치밀함을 더해 그 이음새에 덧칠해 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목사님의 신학이
인간의 신을 찾고자 하고 신을 의식하고자 하는 그 종교성 그 자체를 죄라고 부정하는 선에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예를 들면,
워치니 만의 성경 해석을 보면,
왜 인간이 구원을 따 내야만 하는지도 모르는채
기존의 교회와 신학이 제도화하여 인간들의 자유로운 구원에 족쇄를 채웠다는 불만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이미 기독교화 사회 풍토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크게 의식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예를 들면,
예수님은 "헌금 생활을 제대로 하는 신자가 되어라"라고 당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헌금을 제대로 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거기에다 성경 해석을 결부시키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교회는
그냥 성인들의 노는 장소입니다.
낚시나 골프 친목 동우회가 자기네 조직 운영을 위하여 회부 거두는 것을 가지고 거기에다 성경 귀절을 들이대면서 "이 이단들아. 이래도 너희들이 천국에 갈상 싶으냐!"고 공격하는 것은
마치
풍차에 대드는 동키호테의 모습과 같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나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들어갈 나라, 즉 '하나님 나라인 동시에 자기들의 동우회들이 즐길 나라인 극락'을 상상하며 자체적으로 돈 거두어 중국으로, 러시아로 선교사도 보내어 회원 모집에 열을 올리는 겁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고린도후서 2;15-16 말씀을 새겨 들으셔야 합니다.
"(사도의 복음 전함은,)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복음 전파,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임을 이해하고 감당 것을 사람이 누가 있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결과?
처음부터
주님의 일은 '전파됨' 그 자체가 주님의 일의 결과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 탐구도
교회 갱신을 위한 성경 연구가 되면 안되고
복음만을 증거하는 성경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