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근호님께 질문 드립니다] 2004-08-31
다시 이근호님께 질문 드립니다 최성욱 2004-08-31 15:02:02, 조회 : 158, 추천 : 12
먼저 제 질문에 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부족하여 이근호님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질문했다면 어른이 아이를 대하듯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는 25살의 청년이고 아직 신학을 배우는 중에 있습니다. 제가 이근호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많이 있습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십시오. 처음부터 다시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1.먼저 이근호님은 저에게 '십자가는 구원용이 아니라 계시용'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죽음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보기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약의 성취자이시기 때문에요. 그러면 저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보기 원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 부분만 생각한다면 이근호님의 신학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의 글에서도 이미 말씀드린 바처럼 '우리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누구인가'하는 초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십자가는 '계시용'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확증'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존의 교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너무 사랑의 측면에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 문제된다면, 이근호님은 예정,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라고 하는 면에서 십자가를 이해하시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는 점수를 줄 수 있지만 그것이 단지, 예정이고 사랑의 확증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요?
2.이근호님 자신도 신학을 많이 공부하시고 철학을 많이 공부하셔서 오늘 날 이 모습에(이근호님 본인이 생각하기에 바른 복음) 까지 오게 되었다면, 신학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신학은 필요없다고 보십니까? 저는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신학을 해야 진리를 고수하는게 될까요? 신학을 하지 않는 것이 바른 길일까요? 신학은 정말 필요 없습니까?
3.만약 신학이 부정된다면 기존에 이단으로 판정받았던 많은 사람들을 다 방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신학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 문제가 전혀 안 된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신학에는 역사성, 보편성이 있기에 판단의 근거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근호님 본인은 이단을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언약과 십자가로 대서 선을 끄어야 됩니까? 그것은 주관적인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4.예수님도 주관적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관적과 우리의 주관적은 차이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주관적이라는 말이 맞지 않습니다. 독단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관적이 될 때 남을 배척하는 태도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무시하고 공격해도 예수님의 주관적이심과 같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5.위의 질문과 연결될 수 있는데 이근호님은 계시를 주장하는 겁니까? 계시의존적 사고를 주장하는 겁니까?
6.만약 님이 말하는 십자가가 성경적으로 인정 받으려면 해결되어야 할 요소가 있다고 보여집니다.그것은 기존의 구원론(개혁주의 조직신학)에는 성화라는 차원이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인데이 부분은 훌륭한 자아상 만들기에 불과하니까 무시 되어야 하나요? 그렇다면 기존의 개혁신학의 구원론이 무시되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수님의 이름의 뜻에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에서 죄에서의 구원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목적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요. 만약 이근호님의 신학이 맞다면 죄에서의 구원에 대한 개념도 다르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단지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이라고 하는 단정적인 논리로 인간의 구원은 안되고 하나님의 구원만 맞다고 하는 사변적인 논리가 성경적 타당성을 확보해야 합니다.단지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이 그렇기에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은 모두 이단적 발상이라고 몰아부치면 안되고 정확한 왜 기존의 구원관이 틀렸는가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근거를 대야 합니다.그 성경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기존의 구원관이 틀렸다는 성경적 근거는?
7.저는 고신대 기독교교육과의 한 학생으로 이제 3학년 차에 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기독교 인간학, 제가 배운 개혁 신학의 인간학은 '하나님의 형상인 전인적 인간'으로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이근호님은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는데 고신대의 조성국 교수님의 논문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전인적 인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에 이근호님이 본체, 따로 속성 따로 있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존재론적 형상론'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이근호님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따지시니까 제가 보기에 교육철학적으로 본다면 이근호님의 하나님의 형상론은 플라톤적 철학의 영향 같은데... 아무튼 플라톤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이근호님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만 되고 인간은 안 된다고 보십니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기존의 신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을 남겨둔 결과로 이해하십니까? 인간을 살려두고 인간의 주체는 살아있다= 행함의 가치는 살아있다 = 돈 많이 모으고 전도 많이 해서 교회를 세우자 이런 식의 비판이 타당합니까? 저 역시도 '기존 교회'라는 용어를 쓰고 싶지 않은데 이근호님이 모든 한국의 기존 교회가 그렇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니 굳이 이 용어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이근호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개혁신학의 구원론에 문제가 있다면 저 역시도 이근호님의 말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보기 원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기에...참된 복음을 보기를 원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의 통치를 보기 원하고 무조건 다수가 맞다고 동의하는 신앙보다는 소수가 성경적인 길을 간다면 그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그러나 제가 개혁신학을 옹호하는 것은 다수의 신앙이 그렇게 틀렸다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바가 맞다면 이근호님의 신학과 개혁신학의 큰 차이는 구원론에 있습니다.
개혁신학의 구원론에서 성화라는 개념은 신앙인격의 변화를 포함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인격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은 되는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인간의 훌륭한 자아상 만들기에 불과한 것이니까 안 되는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습니다.'일방적인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저도 그렇게 믿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일방적인 언약으로 말미암아 관계(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성경이 말하지 않나요. 물론 일방적인 언약이 항상 깔려 있고 말이죠. 즉 이것은 제 개인적으로 정리한 바이므로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은혜는 일방적이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관계마저 일방적이 되어 버린다면...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독재자라는 오명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주체가 인격을 무시하고 나아가므로...
성경이 인간의 회복을 주장하는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인간이란 말 앞에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즉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말하는 겁니다. 성경에 편의상 구분하자면 하나님, 인간, 자연 세 관계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보입니다. 내가 거룩함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 이 질문의 답을 성도로 말씀하셨더군요. 맞습니다. 성도도 거룩의 대상입니다.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곁길로 새는 느낌이 드네요.다시 묻겠습니다. 은혜도 일방적, 관계도 일방적인가요? 아니면 제가 생각하는 대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그로 말미암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양자간의 관계회복인가요. 관계도 일방적이고 성도는 아무런 반응도 못하는 채 자신의 죄인되만 고백하고 의인됨만 고백하는 그것을 반응으로 이해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저는 일방적인 은혜와 양자간의 관계회복을 붙들고 있습니다만...물론, 이근호님처럼 하나님께 대한 반응을 점점 나의 죄인됨만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됨만 고백하는 그런 반응이 아닙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더불어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전인격을 드려서요.대속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요. 이것이 참된 구원 아닐까요. 죄에서의 구원이 나의 죄인됨만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됨만 고백하며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삶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죄에서의 구원이 나의 죄인됨만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됨만 드러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정당하고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대 주십시오.개혁신학의 구원관이 정당하지 못하다는데 단정적인 논리(이근호님처럼 보지 못하는 것은 신앙적인 안목이 아니라는)가 아니라 충분한 성경적 근거와 그에 따른 해석을 해 주십시오.한 번 더 친절히 답변해 주셔서 참된 복음을 잘 설명해 주시길...
==========================================================================[re] 다시 이근호님께 질문 드립니다 이근호 2004-08-31 15:44:25, 조회 : 191, 추천 : 16
'조직신학의 고속도로'(대장간 출판사)라는 책에 보면 귀하께서 문의하는 답이 거기에 다 들어있습니다.
1. 사랑이란 계시로만 주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하나님이 사랑으로 인해 참된 사랑이 이 땅에서 처절하게 배반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픈 그 마음씨가 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척하는 가짜사랑이었음을 사도 바울의 경험과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정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그리워하는 신의 사랑을 고대할 것이 아니라 분명 사랑아닌 것처럼 주어지는 '낯선 사랑'에 주목해야 하는데 그것이 십자가 희생입니다.(요 3:16)
이 사랑 안에서 비로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 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전영역을 점유하시고 박탈해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2. >2.이근호님 자신도 신학을 많이 공부하시고 철학을 많이 공부하셔서 오늘 날 이 모습에(이근호님 본인이 생각하기에 바른 복음) 까지 오게 되었다면, 신학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신학은 필요없다고 보십니까? 저는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신학을 어떻게 해야 진리를 고수하는게 될까요? >선배 소위 신앙이라고 여기는 자들의 주장과 고백과 논쟁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저는 믿습니다. 목회자들의 교만은 딴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줄기차게 공부하지 않해도 됨이라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 지금도 은혜의 넓이와 깊이를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지식이나 새정보를 소유하기 위한 공부가 되어서는 아니되고, 어떤 점에서 왜곡된 사상을 지닐 수 있는가를 하나님께서 가르치기 위해 각가지 면을 살피도록 배려하신다는 은혜를 놓치면 안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늙고 병듭니다. 나중에 공부하고 싶어도 육체적 힘이 허락되지 않아서 못할 때도 있고, 주님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 별 필요없다고 여길 때도 찾아올 것입니다.
공부하고 싶은 것고 주님의 은혜로 사랑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3.만약 신학이 부정된다면 기존에 이단으로 판정받았던 많은 사람들을 다 방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신학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 문제가 전혀 안 된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신학에는 역사성, 보편성이 있기에 판단의 근거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근호님 본인은 이단을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언약과 십자가로 대서 선을 끄어야 됩니까? 그것은 주관적인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이단들은 자기의 이단성을 스스로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삽니다. 즉 십자가의 원수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방향을 택하여 살아가는 겁니다. (빌 3;18)
그 예가 예수님의 공로대신, 교회나 교단의 부흥을 자랑하는 말합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는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받는다"라고 명시되어 있건만(고전 16:22) 그들은 자신이 고생해서 세워놓은 교회나 신학교나 교단의 전통을 자랑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조리 이단입니다.
단 이렇게 하는 저도 또한 항시 십자가 지신 예수님 대신에 '십자기 지신 예수님을 내가 믿고 있음'를 자랑할 이단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놏치면 안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설사 우리 자신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갈 1:8)여기에서 사도와 사도의 복음에 순종하는 자들도 얼마든지 이단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어넣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4.예수님도 주관적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관적과 우리의 주관적은 차이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주관적이라는 말이 맞지 않습니다. 독단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관적이 될 때 남을 배척하는 태도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무시하고 공격해도 예수님의 주관적이심과 같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관'이라는 말은 근대서양 철학에서 비로소 의미있게 사용된 개념입니다. 그것은 '과학=객관'이라는 인식이 확정되면서 그 과학에 복종되지 않으려는 다른 요소를 상정하느 뜻에서 '주관'이라는 개념이 철학에서 유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과학적 인식이 진리로 보편된 상태에서는 '주관' 혹은 '주관주의' 자체가 나쁜 의미로 통용됩니다.
즉 "당신은 당신의 주관에 빠지면 비 객관적인 것이 되고 그것은 진리로부터 멀어진 사고체계"라는 의미가 됩니다.
인간이 남을 배척하는 것은 자기 주관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 주관을 포기했다고 선언하므로서 남의 심정을 잘 알아듣는 사람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숨겨진 자기 주관이 시키는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주관을 버리세요"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객관적인 진리"라고 제시하면 참으로 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같이 동조할 것입니다.
비로 이런 식이 선지자들의 증언방식이었습니다.
>5.위의 질문과 연결될 수 있는데 이근호님은 계시를 주장하는 겁니까? 계시의존적 사고를 주장하는 겁니까?
계시는 주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증언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계시는 주장자가 만든다든지 증언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증언을 하는 겁니다.
따라서 질문을 이렇게 바꾸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무엇을 증언하십니까?" 혹은 "어떤 계시를 증언하시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답변을 듣고서는 상대방이 엃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계시에 의존적이군요"라고 말입니다.
>6.만약 님이 말하는 십자가가 성경적으로 인정 받으려면 해결되어야 할 요소가 있다고 보여집니다.>그것은 기존의 구원론(개혁주의 조직신학)에는 성화라는 차원이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인데>이 부분은 훌륭한 자아상 만들기에 불과하니까 무시 되어야 하나요? 그렇다면 기존의 개혁신학의 구원론이 무시되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수님의 이름의 뜻에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에서 죄에서의 구원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목적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요. 만약 이근호님의 신학이 맞다면 죄에서의 구원에 대한 개념도 다르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단지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이라고 하는 단정적인 논리로 인간의 구원은 안되고 하나님의 구원만 맞다고 하는 사변적인 논리가 성경적 타당성을 확보해야 합니다.>단지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이 그렇기에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은 모두 이단적 발상이라고 몰아부치면 안되고 정확한 왜 기존의 구원관이 틀렸는가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근거를 대야 합니다.>그 성경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기존의 구원관이 틀렸다는 성경적 근거는?
기준의 구원관에서 '하나님-인간' 관계를 직접 연결 시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인간의 종교적 본능에서 나온 논리적 기교입니다.
성경대로 보면,
하나님의 언약(맹세)대로만 일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언약'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기존의 개혁주의의 '언약관'은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주'되시기 하기 위한 조치로서 언약이 주어진 것임을 알지 못하고
언약에다 '인간의 구원적 당위성'과 결부시켜
결국 구원용으로 전환시킨 겁니다.
따라서
그 결과로
'하나님의 형상'=예수님 이라는 관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하나님의 형상의 최종 상태'라고 규정지어놓고 형상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내막에는
개혁주의 신학이
성경 말씀에 충실하기 보다는
'교회에 봉사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비복음적 발상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7.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습니다.>'일방적인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저도 그렇게 믿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일방적인 언약으로 말미암아 관계(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성경이 말하지 않나요. 물론 일방적인 언약이 항상 깔려 있고 말이죠. 즉 이것은 제 개인적으로 정리한 바이므로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은혜는 일방적이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관계마저 일방적이 되어 버린다면... 그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성경이 인간의 회복을 주장하는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인간이란 말 앞에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즉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말하는 겁니다. 성경에 편의상 구분하자면 하나님, 인간, 자연 세 관계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보입니다. 내가 거룩함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 이 질문의 답을 성도로 말씀하셨더군요. 맞습니다. 성도도 거룩의 대상입니다.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곁길로 새는 느낌이 드네요.>다시 묻겠습니다. 은혜도 일방적 관계도 일방적인가요? 아니면 제가 생각하는 대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그로 말미암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야자간의 관계회복인가요. 관계도 일방적이고 성도는 아무런 반응도 못하는 채 자신의 죄인되만 고백하고 의인됨만 고백하는 그것을 반응으로 이해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저는 일방적인 은혜와 양자간의 관계회복을 붙들고 있습니다만...>물론, 이근호님처럼 하나님께 대한 반응을 점점 나의 죄인됨만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됨만 고백하는 그런 반응이 아닙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더불어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전인격을 드려서요.>대속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요. 이것이 참된 구원 아닐까요. >죄에서의 구원이 나의 죄인됨만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됨만 고백하며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삶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죄에서의 구원이 나의 죄인됨만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됨만 드러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정당하고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대 주십시오.>개혁신학의 구원관이 정당하지 못하다는데 단정적인 논리(이근호님처럼 보지 못하는 것은 신앙적인 안목이 아니라는)가 아니라 충분한 성경적 근거와 그에 따른 해석을 해 주십시오.>한 번 더 친절히 답변해 주셔서 참된 복음을 잘 설명해 주시길...
언약은 항상 예수님과 인간을 비교합니다.
왜 거룩한 언약이 인간의 힘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 이루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에게만 '다 이루었다'가 성립한가를 보이기 것이 언약의 취지입니다.
그렇게해서
모든 것이 주에게로 나와서,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감을 하나님께서 증언하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11:36) 자기 백성을 철저하게 죄인임을 들추어 내면서 말입니다.
##############################################################################################질문에 성의껏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성욱 2004-08-31 19:53:36, 조회 : 177, 추천 : 8
앞으로도 저의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낍니다. 항상 내 삶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고 보여지며, 그 이외의 제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 제가 요구한 정도는 논리적 전개가 아니라 하나의 본문을 택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왜 예수 그리스도인지 왜 인간은 될 수 없다고 하는지 성경강해를 듣기를 원했는데, 그래서 단정적인 논리적 전개가 아니라고 말씀드린 것인데 뜻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제 책임이 큽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실히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의 구원관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듯 하구요. 훗 날 한 5년 쯤 지나서 다시 만나 이 문제를 놓고 대화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아무리 봐도 결론이 나지 않는군요, 그러나 나름대로 성의껏 답변해 주셔서 감사하고, 개혁주의 구원관을 좀 더 충실히 배워서 다시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저 역시 분명 한국교회가 항상 정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정상적인 부분이 많은 듯 보여집니다. 신학교 내에서 설교를 들을 때에 오늘도 역시 이런 설교를 들었습니다. 모교수님으로부터 첫 개강예배 때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공부를 열심히 하자'입니다. 그 설교 가운데는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나'하는 본문 속에서 주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미리 정해 놓고 본문을 거기에 맞추는 그런 설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면 성도가 당연히 강조하지 않아도 강조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래서 철학적 논리이긴 하지만 주체를 강조하면 인격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게 된 것인데,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지 인격 속에서 주체가 드러난다고 하는 것... 이 부분은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듯 합니다. 저의 편견으로 님을 판단해서 님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직 남은 시간 동안 성경도 열심히 묵상하고 개혁신학도 열심히 봐서 다음에 이 부분에 대해 다시 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나의 삶을 이끌어 가는 주체, 주관자...언약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본다는 말은 마음 속에 담아 두겠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주관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나서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개혁신학은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기 때문에 고루 연구가 필요한 듯 합니다.그리고 저 자신에게는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정녕 그리스도의 통치를 바라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직 확실한 답은 없지만, 나의 하나님이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전체는 아니지만 중심으로 생각했던 구속사, 다시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그럼 5년 뒤에... 마지막으로 제가 나가면서 부탁하나 드리고 싶네요. 구원을 칭의의 관점만이 아니라 성화까지 포함하면 부르심(소명)으로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구원이라 한다면 적어도 성화의 과정에는 자유의지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듯 한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즉 자유의지를 어떻게 보시는지 설명을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re] 질문에 성의껏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근호 2004-08-31 19:59:07, 조회 : 200, 추천 : 12
'조직신학의 고속도로'의 구원론에 보면,
소명에서 영화까지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구원론은
1. 먼저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구원성 (율법에 근거한 유대인들의 구원성)에 어떤 체계를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야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 보수 신학교의 교수들이 아직도 이 틀을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그것을 어떻게 비켜갔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유대인의 존재 의의를 빠트리지 않는 신학을 늘 생각해 보세요.
==========================================================================[re] 질문에 성의껏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득영 2004-08-31 23:21:02, 조회 : 151, 추천 : 11
저는 고신대 4년과 신대원 3년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님이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삶을 살아가게 될지 조금은 짐작이 됩니다.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그리고 님의 예사롭지 않은 질문들을 보면서 저의 과거(?)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부끄러운 마음밖에 들지 않는군요.짧지만 이번 토론이 아마 님의 신학공부에 많은 도움과 고민을 하게 해줄줄 압니다.무조건 따라가지 마시고, 항상 '왜 그러한지' 의문을 품고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라는 책을 구입하기 어려우면 연락을 주세요.이 책의 초고가 된 녹취된 글을 이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님의 성의 있는 질문과 이근호 목사님의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re] 참으로 잘 생각 하셨습니다. 김대식 (Homepage) 2004-08-31 23:31:37, 조회 : 183, 추천 : 13
신학생 중에 그렇게 고민하는 자 잘 없거든요? 몇년 전에 신직수(침신대) 형제 아니 전도사님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말입니다.
교회 때문에 고민하는 자는 많아도 예수님 때문에 고민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막상 실세를 잡으면 심각합니다.
방금 충청도 오장로님(감리교)이랑 전화 통화를 했는데요, 얼마나 교회가 주님이 주시는 자유를 박탈하던지 지옥이 따로 없음을 느꼈습니다. 천국을 증거하는 교회가 지옥을 적극적으로 두 팔 걷어 발 벗고 나서서 외치는 현실에 예수님의 증인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목사가 아닌 예수님의 증인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교인들이 비록 목사를 원하고 예수님의 증인을 원치 아니할지라도, 제발 목사될 생각 먼저 하시지 마시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면 목사든 전도사든 그 직분은 개의치 않을 겁니다.
제발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요. 평신도가 부탁 드립니다.
##############################################################################################이근호님께-혹시 착각하실까봐... 최성욱 2004-09-02 19:17:36, 조회 : 208, 추천 : 13
제가 지금 물러나서 5년 뒤에 다시 보자 한다 해서 이근호님의 신학이 맞다고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미지수로 놓겠다는 겁니다.이근호님의 글들을 통해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한 가지는 나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혁신학자들 모두가 이런 면을 놓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또한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개혁신학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시는데에는 물론 나름대로 성경적인 근거를 대시지만 더욱 많은 근거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좀 더 연구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즉 이근호님의 신학도, 개혁신학도 아직 부족한 저로서는 다 알지 못하기에 (개혁신학 안에도 흐름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압니다.) 미지수로 놓아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자유의지를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상세한 답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또한 이왕 부탁 드리는 김에 한 가지만 더 묻고 나갑니다. 일반계시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럼 진짜 5년 뒤에...그 때는 좀 더 개혁신학에 대해 풍성 하게 알게 되겠지요. 그 때 다시 뵙기를...ps; 김대식님 저는 등 떠 밀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제 삶 가운데 이루어 오신 일들이 인격적으로 말씀 속에서 삶 속에서 저를 설득하셔서 그런 마음을 주셔서 사용했다는 제가 경험한 하나님을 말씀 드린 것이며 이근호님께 물었던 제 질문은 하나님이 나를 기계적으로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신가를 제가 만난 하나님에 비추어 단지 그런 기계적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신가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식님의 질문 속에서 다시 한 번 나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고 물러가고 싶네요.
==========================================================================[re] 이근호님께-혹시 착각하실까봐... 이근호 2004-09-02 20:57:29, 조회 : 218, 추천 : 11
'조직신학의 고속도로'라는 책에 잘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회복'이라는 책에 봐서 계시론편에 잘 나와있습니다.
일반계시에 관한 것이든, 개혁신학에 관한 것이든 잘 나와있습니다.
자유의지에 관한 것은
이곳 '게시판'의 지난 잘의와 답변 가운데 잘 나와있습니다.
단,
왜 '의지' 앞에서 '자유'라는 말을 꼭 붙여야만 하는지 질의자 본인이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즉 그냥 '의지'라고 할 때는 왜 자유성을 빠진 그런 '의지'로 봐야 하는지 그 타당성이 수립되지 않으면
'자유의지'라는 말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겁니다.
##############################################################################################자유 게시판이라 해서 글을 올렸더니 삭제 되었군요. 김금용 2004-09-03 02:14:05, 조회 : 192, 추천 : 11
운영자님 성경이 말하는 죽은자에 대해서,성경이 말하는 산자에 대해서,변화산의 비밀,등의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가는 성경 말씀 까페에 좋은 글이 있어서 이곳 자유 게시판에 올렸는데 삭제되었군요.이곳에 게시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어떤 내용이 이곳과 맞지 않아서 삭제 하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제가 방믄하는 까페는 http://jayou.ne.kr/입니다.
다른 내용의 글을 두편 올렸는데 맞지 않으시면 삭제 하셔도 됩니다.삭제 하실때에는 내용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re] 자유 게시판이라 해서 글을 올렸더니 삭제 되었군요. 이근호 2004-09-03 06:32:44, 조회 : 216, 추천 : 11
예수님을 자체를 증거하는 것하고
"예수님 덕분에 이익보고 살자"하는 사고방식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워치만 리 류'의 글들은 게시판을 지저분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