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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하나님의 중심이 되십시오,이근호 목사님.! ] 2004-06-19묻고답하기-

하나님의 중심이 되십시오,이근호 목사님.! 이무용 2004-06-19 11:54:11, 조회 : 312, 추천 : 16
이근호 목사님!
인간 이란? 알면알수록 교만 해집니다.
여기서 어떤 개념에서 의 사고방식으로 알고있느냐 하는 마음가짐이 결국 교만 & 순종으로 이어 집니다.
먼지만도 못한 인간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었든 것은 [ 말 ] 즉 언어 입니다.
언어,와 생각(혼) 는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 입니다.
이근호 목사님은 지금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이상적 발상에 심취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속에 하나님을, 예수님을 가두어 놓고 열심히 주물럭 주물럭,가지고 놀고 있다는것 이며~.
이런 증상은 자기체면적 이상발동 이라고 하는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셨으면 합니다.즉 언어속에 지나치게 심취하게 되면 자기자신과 무관한 자기체면에 빠지고 그것은 일종의 환상&환각적 사상에 빨려 들고 이것이 더 기고만장 하여지면 결국에는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는 세계로 완전히 빠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근호 목사님의 증세가 바로 이와 같다고 생각 합니다. 깨어 나십시오.
떼묻지않은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유혹하여 함께 자폭(지옥에 끌고가는)하는 행위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순진한 자매님들이 이근호 목사님의 사상에 빠질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철학적 사상 으로 해석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 에 대하여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있는그대로 전하라,전파하라,
이근호 목사님!아시겠습니가??하나님 말씀을(성경)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는 것 이해 하시는지요??
그런데 이근호 목사님의 말씀에는 전혀 생명력이 없고, 순수한 하나의 소설 을 읽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는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이근호 목사님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라는것 이지요!!
아마추어가 프로되기 위한 아마추어적 행동,, 표가 확연히 나타나고, ~~여기에 어느정도의 사람들이 호응하는 이유는 한국사람의 고유한 사상, 미신적 사상이 깊게 내면에 깔려있기에 그렇다는것 ,입니다. 이근호 목사님,, 양떼들을 푸른초장에 바로 인도 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중심이 되어 양떼들을 하나님 중심에 인도 하시기 바랍니다.
이근호 라는 인간 자신의 중심(사상)을 강제로 주입시켜려 하지 마시고,,,~~~
두손들어 하나님께 반성 하십시오, 회개 하십시오. 회개치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악한사람 모두 사랑 합니다. 그러나 행한일에 대하여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상벌을 주시는 하나님 이므로,,~~ 나는 개인적으로 이근호목사님께 어떤 나쁜 감정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까지 인간 중심의 길 로 인도하는 목회자 가 안되셨으면 합니다. 목회자는 중심이 예수님 이며, 하나님 입니다. 일반 사람 모두 역시 마찬가지 이지만, 특히 목회자는 [좌로나 우로 ]지우치는 행동은 안됩니다.
하나님께 잘못을 회계 하십시오. 이근호 목사님!!
하나님의 중심, 예수님의 중심 이 되십오.. 이근호 목사님,!!
==========================================================================[re]저의 어떤 설교를 들으셨는지요? 이근호 2004-06-19 12:34:01, 조회 : 281, 추천 : 25
>무턱대고 회개하라고 하지 마시고
어떤 본문은 어떻게 해석하기에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인지
몇 군데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글을 일단 대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말을 더 보탠 것이 저의 죄가 되는데 같은데,
그러면 귀하께서 누구에게 하나님을 소개할 때는
성경 귀절, (그것도 개역 번역 성경)을 그대로 국어시간에 낭독하듯이 읽으주고는
책 덮어버리는 겁니까?
그것이 귀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것인자요?
(그런 것이라면 저도 많이 해왔는데..... )
##############################################################################################<실미도>와 십자가마을 또는 예정론 김재국 2004-06-20 16:01:35, 조회 : 222, 추천 : 36
<실미도>의 주제는권력자에 의해 인권을 말살당한 인간들의 존엄성과 인간가치의 회복이다.그 권력은 세상권력,정치권력,경제 권력,종교권력 등이다.이 영화를 통해 십자가마을이 인간의 존엄성에 눈을 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684부대원들은 권력자에 의해 이용당한 후 권력자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지고오히려 그들의 정권유지에 장애가 되자 제거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인간이 아니라 완전히 소모품 취급을 받은 것이다.이것은 십자가마을의 인간관과 흡사하다.하나님에 의해 저주받기로 예정된 애굽의 바로왕은 하나님의 조종으로 강퍅함을 더하다가결국 지옥에 간다는 인간관이 비언약성도에 대한 인간관인 것이다.
인간(특히 한국인)은 세상정치,경제,종교권력자들에 의해서그들의 유익을 위해 소모품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미도>는 군사정권 하에서는 결코 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현 정권의 정직함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지금도 국민이 모르는 어떤 사건의 진상이 왜곡되고 은폐되고 있을 것이다.특히 기득권의 유익에 저해가 되는 요소는 교묘히 실상을 위장하고 있을 것이다.노통만 하더라도 선거유세를 다니면서 충청권에서는 "이곳에 행정수도를 이전해서 발전시키겠다"고 하고 인천지역에서는 "돈안되는 것은 충청도에서 하고 돈되는 무역 경제 첨단산업은 이곳에 유치한다"고 오로지 권력 획득을 위한 말바꾸기를 일삼었던 것이다.
이제 <실미도>를 통해서 보여지는 인간관을 살펴보자.684부대의 구성원은 인간말종,인간쓰레기,사형수들이다.사회와 권력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낙인 찍힌 것이다.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들은 여전히"하나님의 사랑하는 인간들"이라는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하나님은 그들의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기를 간절하게 기다리신다.그러나 권력자들에 의해서 그러한 성경적 인간관은 폐기처분되어 버린다.그들에게는 684부대원은 "어차피 버림받은 죽을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십자가마을에서 주장하는 예정론과 흡사하다.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인간을 저주받을 그릇과 긍휼의 그릇으로 확정지어 놓았으며에서로 대표되는 지옥갈 자들과 야곱으로 대표되는 천국으로 선택받은 자들은각자 어떤 짓을 하던지 확고부동하다는 것이다.이러한 신학에 의하면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할 것이다.하나님=세상정치권력,십자가마을=긍휼의 그릇십자가마을 외의 인간=지옥갈 존재(684부대원)
영화 <실미도>는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기로 예정된 인간은 없고어떤 사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있은을 외치고 있다.그런데 십자가마을은 684부대원을 빼도박도 못하는 죽을 존재로 취급하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684부대원을 사살하라는 권력자의 명령을 하달받은 입장에서선택을 강요받고 있다.3가지 길이 있다.
1.부대장 안성기는 인간존엄성 회복을 위해 권력과 투쟁하다가,명령복종의죄를 지을 수도 없어 자살을 선택한다.카드 빚이나 생활고에 목이 조이면서어쩔 수 없이 자살하는 유형이다.
2.그의 참모 허준호는 진리에서 벗어난 부당한 명령에 거부한다.3.또다른 참모는 명령을 거부하면 자신도 상부에 의해 제거되는 현실을 인정하고 부대원 사살을 주동한다.
3번의 현실타협형이 사회의 주류를 이우고 있으면 그곳은 부패한 곳일 것이다.
==========================================================================[re] <실미도>와 십자가마을 또는 예정론 이근호 2004-06-20 17:33:12, 조회 : 278, 추천 : 43
그 쓰레기 가운데 예수님도 들어가 계십니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을 염두에 두면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우리(사도들)는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re] 인간 존엄성에 대한 변호 김재국 2004-06-21 10:12:31, 조회 : 430, 추천 : 33
목사님은 아직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예수와 상관없는 자로 여기시는군요.그리고 아직도 자신들은 가나인 원주민들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메뚜기라고자처하고 계시는군요.
인간의 존엄성은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하나님의 자녀,예수님의 친구,예수님의 신부,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받을 수 있는 인간의 가치를성경이 말합니다.물론 그 전제는 인간이 죄인임을 통렬히 자각해야지요.우리 내기 한번 할까요?누가 더 자신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는지 말입니다.목사님이 이기시는 것이 더 보기가 좋을 것 같습니다만.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은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부작용이 따르게 됩니다.위대함을 강조하면 교만의 자율적인 바벨탑을 올리려고 하지요.성경의 전체가 바로 목이 곧은 인간의 교만과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사이의 줄다리기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그러나 인간의 교만은 결국 창조주의 죽음을 불러왔습니다.인간이 일찌기 항복했으면 십자가가 없어도 될 뻔했는데 말이지요.
인간의 죄와 비참만 강조하게 되면 결국 십자가마을 처럼 순수의 블랙홀에말려들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말살하게 되는 것이죠.
십자가마을은 684부대를 창출한 중앙정보부입니다.십자가마을의 하나님은 정보부장내지는 독재자입니다.십자가마을에 의해 착출되고 이용되고 버림받은 684부대원은십자가마을외의 타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마을의 하나님은애굽왕 바로와 에서를 창세전 부터 진노의 그릇으로 예정하여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용한 후에그들을 제거해 버리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마을은 천국이요 타인들은십자가마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악한 모습으로 사용되는도구일 뿐이지요.
684부대원은그들의 존재증명을 위해 자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십자가마을외의 타인들은십자가마을에 의해 어차피 가치없는 백성으로 심판당한 채인간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줄 것을 호소합니다.이런 상황에서 십자가마을은 비정한 결정을 내립니다."사살해"
그렇습니다.어차피 그들은 어차피 제거의 대상이었을 뿐이니까요.
==========================================================================[re] 인간 존엄성에 대한 변호 이근호 2004-06-21 13:32:35, 조회 : 406, 추천 : 47
>복음은 인간 존엄성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식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로부터 복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귀하같이 신을 규명하는 것은 대한 불교 조계종 선사들이 고집하는 겁니다.
앞으로 그 동네 사이트에 '인간 존엄성'을 가지고 글을 올리시면
그 스님들부터 대찬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님들도 귀하가 믿는 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확고부동인가, 취소가 가능한가?(긍극교회 홈페이지서 퍼옴) 이석규 2004-06-21 12:50:43, 조회 : 596, 추천 : 24
구원은 확고부동인가, 취소가 가능한가?
기독교의 여러 교리 중 모든 교단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구원문제에 있어서의 이신득의 교리일 것입니다. 즉 인간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신득의 교리를 신앙의 신조로 삼고서 주님을 믿고는 있지만 교단이나 교인에 따라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서정에 있어서는 각기 다른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로 칼빈주의 계열에서는 인간의 전적 패괴론을 주장하여 인간은 영혼이 완전히 죽은고로 죽은 영혼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당신의 예정과 주권대로 택자의 죽은 영을 살려야 만이 영혼의 살림을 입은 그 자가 예수를 구주로 믿어서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고, 알미니안 계열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이 99%라면 인간의 노력이 1% 정도 들어가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칼빈주의 계열에서는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인간의 노력은 전혀 필요치 않고 전적으로 주님께서 살려주셔야만 가능하다고 말을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자가 그 후에 성경을 통해 깨닫고 보니 자신이 구원을 얻은 것은 자신의 어떤 노력이나 수고로 된 것이 아님을 알게 돼서(기본구원, 중생) 그 은혜에 감사해서 주님의 뜻을 따라 믿어나간다고(성화구원) 하는 부류가 있고, 또 한 부류는 인간의 전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완전히 죽은고로 죽은 자 스스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죽은 영을 살려주셔야 만이 살아난 그 영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때 후자의 경우 그런 주장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음에도 칼빈주의 계열의 성도들 대부분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고, 이러한 신앙사상이 온 교회에 팽배해 있는 것이 현대교회의 실정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첫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는 죄 아래 빠져 영혼이 죽은 상태라고 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죽은 그 자가 예수를 구주로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이 말이 이치에 맞습니까?
첫째로는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가 아닌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하면서도 내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닙니까? 구원을 얻기 위해 선행을 하고 수양을 하고 도를 닦고 하는 것만이 인간의 행위이고, 마음으로 믿는 것은 육체적 힘을 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의 행위가 아닙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죽은 송장이 스스로 살아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반드시 타의 세력이 죽은 그를 살려주어야 만이 살아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처럼 논리에도 맞지 않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 온 교회를 휘감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구원관(구원론이 아닌)에 대해 어둡기 때문이요, 성화구원의 이치와 도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장로교회를 위시한 칼빈주의 계열의 교회들에서 대부분 이런 구원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계열의 성도들보다 더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과연 이런 분들에게 더욱 더 진보된 신앙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알미니안 계열에서는 인간이 구원을 얻었다고 해도 범죄하면 이미 얻은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칼빈주의 계열에서도 이런 주장을 하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영리로가 아닌 인간의 논리로 접근을 해서 이해하기 때문인데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사회와 국가에 큰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큰 죄를 범하면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을 시키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타락함으로 죽은 영혼이 살아났다는 말인데 이렇게 구원을 얻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는 것은 거듭난 그 영혼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닌 이성과 몸이 죄를 짓는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영혼과 이성(몸)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을 보십시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으니 이 말씀은 거듭난 영혼은 하나님과 단일성적인 성분으로 중생을 한고로 절대로 죄에 감염되거나 오염이 될 수가 없는 것인 반면에, 영혼이 거듭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이성과 몸(육체의 정욕)은 아직도 죄에 찌들여 있는고로 죄를 짓기도 하는 것이니 이 사실을 알고 진리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어기며 죄를 지으려고 하는 이성과 몸을 제어하여 새사람을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영혼과 이성을 분리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듭난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은 거듭난 영혼이 죽고 사는 문제(천국이냐, 지옥이냐)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은 성도가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입어나가는 성화구원과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한 이 영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 거듭난 것인데 만일 중생한 영혼이라도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하면, 다시 말해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된 것인데 하나님의 생명으로 된 이 영이 어떠한 이유로 건 죄에 감염이 된다거나 죽는다고 하면 그와 똑같은 성분이신 하나님 역시도 죄를 짓거나 죽는다는 말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짓지 않는 한 중생한 영은 절대로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죽지 않는 한 중생한 영은 절대로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다거나 죽을 수 있다고 한다면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되니 천국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 된 곳이고,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 된 것만 들어가는 세계이기 때문에 결국은 중생한 사람이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한 사람이라도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갈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은 첫째는 중생한 영혼과 이성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중생한 영의 성분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세 번째는 죄에 대해 지옥에 갈 죄와 성화구원적인 면에서의 죄에 대해 구분을 하지 못하는 까닭이니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구원의 도리와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이라도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하는 분들은 앞에서 말한 것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분들의 최대의 약점은 하나님에 대해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법적으로만 알고, 법적인 관계성만 가지기 때문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절대로 구원이 취소되지 않고, 따라서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런 분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그렇다면 중생한 사람은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냐, 결국 성도들에게 죄를 마음껏 지으라는 소리밖에 더 되느냐’ 라고 대꾸를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그 말 자체가 그들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도 자식이 별의 별 죄를 다 짓고 돌아다니며 부모님의 속을 썩여도 부모는 끝까지 그 자식을 버리지 않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한다고 할 때 그 자식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님의 그 마음은 모른 채 ‘우리 부모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하고 나에게 잘 해 주니까 나는 망나니짓을 해도 괜찮다’ 라고 한다면 그 자식은 비록 그 부모의 자식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부모의 그 깊은 사랑을 모욕하는 것이며, 부모와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가 전혀 없이 사는 자이듯이 성도가 ’나는 중생을 했으므로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기 때문에 마음껏 죄를 지으며 살아도 된다‘ 라고 한다면 그 자식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애정적 관계가 없이 살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이용해 먹는 패역부도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진정으로 주님의 지극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인격적으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절대로 지옥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 마음껏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랑에 감격해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려고 해야 하는 것이 망나니 노릇을 하던 자식이 자신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푸시는 부모님의 사랑에 감복해 효자노릇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마땅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내가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면서 우리의 구원(기본구원, 거듭남)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린 것임을 믿고, 또한 한 번 구원 얻은 사람은 절대로 구원이 취소될 수 없음을 알고 이제부터는 성경말씀을 통해 나를 향하신 영원 전, 만세 전부터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의 인격과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데 삶의 목적을 두고 전 인격을 기울여 그 삶을 위해 매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그 좋은 천국에 곧바로 데려가지 않고 이 땅에 살게 하시면서 여러 가지 사건과 환경을 통해 마찰과 충돌과 대립 등을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re] 구원은 확고부동인가, 취소가 가능한가?(긍극교회 홈페이지서 퍼옴) 이근호 2004-06-21 13:56:27, 조회 : 584, 추천 : 32
귀하의 논리는
>성령님이 하실 일이 새삼 끼어들 필요조차 없는 논리입니다.
'열심히 주를 위해 사는 것'이 중생된 영혼이 하게 될 일이 죄 아닌 것이 된다면 이미 그것 자체가 의로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의로워지게 할 ' 요소는 더이상 불필요하고,
이왕 의로워진 존재를 더욱 완벽하게 의롭게 만들 요소만 아직 남아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까 중생된 자에게는 새삼 하나님쪽에서 하실 일은 남아 있지 않고,
단지 남아 있는 일은, 이미 의로운 요소가 능력이 되어 잠재되어 있는 본인이 스스로 자신을 독려하고 절제하고 관리해서 예수님 수준까지 끌어올리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력 발휘 뿐입지다,
이럴 경우에 죄란, 딴게 아니라
"아, 좀더 열심히 낼 걸, 좀더 힘을 더 쓸 걸, 좀 더 신경을 더 쓸 걸, 좀 더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아놓을 걸" 차원의 자생적인 능력 부족성을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미 중생된 자는, 능력면에서 모자람이 있기에 죄를 짓는 것이지 사고방식 자체는 완벽한 것이 되기에 자연적으로 보다 많은 능력을 발휘하는 제법 높은 경지의 의인이 생기는 반면에, 여러가지 여건상,교육 기회상 상대적으로 능력이나 자제력 발휘에 뒤떨어지는 의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이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라는 고백과 전혀 무관한 딴 신앙고백이 됩니다.
성경 해석에서 어떤 식으로도 인간 행위를 따로 분리해서 끄집어내는 것은 결국,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그저 도중 차단시켜 제한시킬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즉 어디서 어디까지는 하나님쪽에서 하실 일이고, 어디서 어디까지는 인간이 담당해야만 하는 일을 구분짓는 태도입니다.
이런 주장은
근본적으로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모르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은혜로 인정하는 바로 그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그 사람은 성경 귀절에 충실히 복종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 와중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지도 못할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죄가 되는가?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조건을 이미 예수님께서 독점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re] 구원은 확고부동인가, 취소가 가능한가?(긍극교회 홈페이지서 퍼옴) 안성수 (Homepage) 2004-06-28 10:01:01, 조회 : 286, 추천 : 36
답변의 마지막 글에 대해서...'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조건을 이미 예수님께서 독점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셨는데,그럼, 고전 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인지요?
저는 요즈음 교회 건물의 문을 들여서면 짜증이 시작되곤 합니다. 교회 건물의 대문을 넘어 인도에 세워놓은 교회차량들. 인도에 차를 세우도록 가이드하는 차량위원들... 하나님께 존칭도 제대로 쓰지 않는 목사의 설교... 그러함에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가르치는 자들이 수두룩한 교회... 그러한 모임을 교회라는 이름을 달고 거창한 간판을 달고 있는 집단...
==========================================================================[re] 구원은 확고부동인가, 취소가 가능한가?(긍극교회 홈페이지서 퍼옴) 이근호 2004-06-29 13:27:20, 조회 : 232, 추천 : 18
예수님 믿는 것 만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직 아들의 이름만이 사람들로 통해 높아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빌 2:10-11)
"하늘에 있는 자나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깨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도의 모든 행함이란 이 믿음으로부터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남 영업 장소에 대해서 짜증내면 안됩니다.
단지 '하나님 영광'이라는 것을 도용하는데 있어서만 불쾌하게 여겨야 합니다.
##############################################################################################창세기3장 주해 (나됨, 448p) 가 처음 세상에 나왔읍니다. 이홍기 2004-07-01 10:03:08, 조회 : 258, 추천 : 29
창세기 3장 주해서를 출간하였읍니다. 현재 교보문고 ,생명의 말씀사, 기독교문사, 대구일신기백 , 부산새부산기독교서적센타, 창원갈릴리, 대구보문거점, 대전기백,안동협신사,대구 대우기독서적,마산로뎀기백,대전침례회서관, 호산나넷. 등 곳에서 판매시작하였읍니다. 많은 관심부탁바랍니다.
031-452.4658 011-9756.4658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주해서이다.
저자 목사님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첫사람 아담의 죄는 구속의 언약을 배반한것이며( 본문 349p중에서), 여자의 죄는 탐심으로 인한 우상숭배라고 전개하고 있다(본문 172p중에서). 그리고 따먹고 안따먹고하는 자유함은 땅에 속하여 흙의 형상을 입은 마귀와 짐승과 같은 썩을 육체의 자유이며 우리가 가진 자유함은 예수안에서 죄와 사망안에서의 자유함이다(본문109p중에서)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의 뱀의 출현은 아담이 가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의 자유를 엿보고 죄의 종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본문 110p).
생명나무는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규례로 아담과 여자를 늘 생명나무에 가까이 나아가게 하셨다. 이야기하고있으며, 신약에 와서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언약의 규례로 세우시고 생명나무와 같이 우리로 하여금 늘 예수님에게 나아가게 하여 예수안에 있는 생명을 얻게하셨다. 라고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율법으로 공의 지혜로 선과 악을 판단 하신 하나님의 판단이 온땅에 있게 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 율법을 통해 저희를 거룩하게하여 저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저희의 하나님이 되셨다. 전개하고 있다.
그외에 저자 목사님의 예리한 성경의 시각을 볼수있는데
짐승과 같이 땅의속한 흙의 형상을 입은자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입힌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를 만들고자 한것이라 하여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이며, 이 형상을 통해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 강조한것이라 전개하고있다.
그리고 생기는 하나님의 기운된 성령으로 땅의 형상을 입은 사람과 짐승은 생령 곧 육신을 입은자로 그코에 같은 공기를 마쉬워 숨을 쉬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그 코에 생기곧 성령으로 숨을 쉬어야하며, 성령으로 숨을 쉰다는것은 성령을 좇는자이며 이는 성령을 좇는 약속의 자녀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령곧 육신입은 자이지만 생기된 성령을 호흡하는 약속의 자녀가 되었다고 전개하고있다.
그외에 톡특한 성경의 해석을 맛볼수 있을것이다.
이렇게 저자 목사님의 톡특한 시각의 성경의 해석은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부분들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경을 볼때 보통 저자들은 한 관점으로 계속해서 보며 쓰는것이 대 부분이나 이 창세기 3장 주해책은 신,구약과 마지막 계시록까지 넘나드는 풍부한 성경의 예화와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할 부분까지 충실한 해석이 곁들어져있다.
이 책은 신,구약전장에서 창세기3장과 관계된 사건들과 구절들을 통하여 충실히 각절 각절들을 주해하고 있으며. 성경에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목사님들과 신학생들에게 많은 도전과 유익을 줄것이다. 이에 강력히 추천한다.
창세기 3장 19절 절에서 일부를 발취해본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1.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1) 첫 사람 아담의 얼굴의 땀은 율법적인 수고함을 나타내며 순종한 행위를 증거한다. 얼굴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은밀한 마음과 육의 행위의 모습을 드러낸다. 가인은 그 얼굴에 자기의 마음에 담고 있는 모든 것을 표현했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창 4:5-6). 하나님은 은밀한 마음이 드러난 가인의 얼굴의 분내 함을 보시고 추궁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얼굴의 땀은 율법적인 육체의 수고함을 나타내며 특별히 땀은 율법에 순종한 행위를 증거한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땅은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자라게 했고 황폐한 땅을 아담에게 경작하게 하여 가난한 자와 같이 낮추고 겸손하게 살게 하셨다. 식물은 ‘레헴’이며 짐승과 사람을 위한 양식 빵을 뜻한다. 아담은 이런 황폐한 곳에서 종일토록 얼굴에 땀을 흘리는 고통의 수고가 있어야만 육에 힘을 주고 육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아담은 범죄하여 더 이상 믿음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육의 행위로 식물을 얻어 살아가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식물은 육에게 힘을 주고 생명을 유지시켜주지만(왕상 19:8; 시 136:25)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육체에 생명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민 27:16). 오직 저희는 영원한 양식으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2) 마지막 아담 되신 예수님의 수고함은 믿음의 행위이며 우리의 대속제물 되시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것 이다.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이 모습을 본 사도 누가는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연약한 육신을 입은 사람의 모습으로 율법적인 수고하는 모습으로 보았지만 예수님의 내면적인 모습, 즉 영적인 모습으로는 땅에 떨어지는 땀을 믿음의 행위의 수고함인 핏방울로 보았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 수고하셔야 할 것은 죄인 된 우리를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이루실 수 있는 방법은 창세전?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생명 있는 피를 땅의 흙에 쏟으시고 완전한 사망에 이르셔서 우리의 영원한 대속제물이 되셨다. 이렇게 마지막 아담 되시는 예수님의 수고함은 우리의 죄를 전가받은 대속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는 것이다.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1- 13).
2.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육신의 소욕을 좇아 성령께서 떠나시므로 죄의 삯인 사망에 이를 육체가 되었다.
흙은 ‘아다마’이며 ‘붉은색을 띠고 있는 흙’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붉은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다. 붉은 흙은 땅의 형상으로 아담의 몸을 이루고 있는 근본이며 연약하고 죄 있는 육체를 의미한다. 아담은 생기 되신 성령을 호흡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사실을 양자의 영되신 성령께서 친히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셨다.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 아담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과 유업을 이을 하나님의 아들이다(a.롬 8:14-17). 여기서 생기된 성령으로 호흡한다는 것은 육신의 일을 좇지 아니하고 성령의 일을 좇는 것으로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한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다(b.갈 5:16-18). 이처럼 아담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 8:2), 은혜 아래 있는(롬 6:14)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나 성령의 일을 좇던 아담은 이제 육신의 소욕을 좇아 성령께서 떠나시므로 죄의 삯인 사망에 이를 육체가 되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게 된 것이다(갈 3:3).
3.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1) 아담은 짐승과 같이 땅에서 낳아 흙에 속한 형상을 입은 육신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본래 죽기 위해서 태어나는 짐승과 같이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형상을 입은 자가 될 것이라고 심판하셨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썩고 냄새나는 생명 없는 진흙을 택하사 이 진흙 된 자를 사랑 안에서 하나님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a.엡 1:3-6). 죄 있는 붉은 흙으로 지어 땅에 속한 흙의 형상을 입은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믿음 없이 행한 죄악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원래의 근본된 모습 곧 땅에 속하여 흙의 형상을 입은 육신의 자녀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짐승 또한 땅의 흙에서 취함받아 지은 것들로 흙의 형상을 입은 육체 입은 자들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아담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b.전 3:18-21). 혈과 육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c.고전 15:48-56). 이렇게 아담은 썩어 없어질 혈과 육의 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45-50).

(2) 아담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아비가 되었고, 아담의 씨 된 이들은 아비 된 아담과 더불어 육신의 자녀가 되었다. 이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옛사람을 다시 입어 죄 있는 육신의 자녀가 된 아담은 세상 모든 자의 아비가 되어 육체를 따라 혈통과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요 1:13) 육신의 자녀를 낳게 되었다. 아담의 씨에서 나온 세상 모든 자들은 아비 된 아담과 같이 율법 아래 매여 죄의 종 노릇 하는 육신의 자녀가 된 것이다. 성경은 율법이 없어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어도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롬 5:13-14). 죄를 짓지 아니하여도 세상 모든 자들에게 사망이 임한 것이다. 이는 세상 모든 자들이 아담의 씨인 육신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이렇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다(고전 15:22).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고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둔 것이다(갈 3:22).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자로 살려 주는 영이시다. 예수 안에서 모든 자가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3) 마지막 아담 되시는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약속의 자녀이다.
==========================================================================[re]가식적인 성경 이해 이근호 2004-07-01 11:53:53, 조회 : 245, 추천 : 23
성경을 풀이하는 것을 대하게 되면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뒤고 감추고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의도로서 성경을 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의 창세기 3장 풀이도 그러하다.
1. 아담이 범죄한 내용과 아담이 받는 형벌의 내용이 성격상 어떤 일맥성을 갖는지 전혀 설명이 없다.
즉 만약 형벌의 내용이 일관성을 갖고 있으면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그 형벌 속에서 자기 반성을 하라는 촉구이다.
하지만 형벌의 내용이 범죄한 사건의 내용과 연결성이 형성되지 아니하면 그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반성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자기 약속 안에서 자기 뜻을 실현하는 재료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벌 내릴 것이 아니라 그 즉시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불쌍한 아담을 구원하시지 않는가?
즉 하나님의 찾아오심이 아담과 그 아내를 구원할 요량이라면 인간을 애먹이지 말고 바로 구원하시든지,
아니면 아담을 구원하지 않을 것 같으면, 차라리 하나님 쪽에서 먼저 찾아오지 말든지 해야 한다.
(아담과 여자가 어떻게 살든 방치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하나님에 의한 합당한 징벌을 받을 자기 죄 값이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책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꼭 찝어 인간에게 형벌을 언질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아뭇 소리를 못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성경 강해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은 모르면서,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동정받고 겸손한 몸짓을 해서 구원을 얻어내기 위해 '열심히 성경 읽기'를 시도한 것에 불과하다.
자기 구원욕심을 채우기 이기적 종교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2. 하나님이 정말 인간에게 생명을 줄 마음이 있다면 예수님을 보내어 복잡스럽게 대신 고통을 당하는 일없이 가까이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허락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가까이는 있는 생명나무 과실은 거두시면서 자기 죄값으로 당연히 죽어야 될 자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계시는 자기 아들까지 땅의 세계에 보내는 등 부산을 떠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애초부터 인간을 영적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제대로 된 영적 인간이라면 육으로 도로 환원됨이 없이 튼튼하게 만들어야지, 죄 지었다고 육으로 곧장 환원해 버리는 그런 부질공사같은 영이라는 '영적'이라는 말을 아에 붙이지 말아야 한다.
정 하나님께서 장차 인간을 영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처음부터 성급하게 성령을 코에 부어넣지 말고, 그냥 자연적인 기(氣)를 코에 불어넣어서 (물론 짘승들보다는 수준을 높여서 하나님의 형상의 티를 내는 조건 하에)차츰 제품의 품질을 높여나가는 방식이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왜 하나님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결국 아담 자체가 미완성품이라는 말인가?
미처 완성되지도 못한 미완성 존재에게 전적 창조에 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창조자 자신의 실수를 피조물에게 전가하는 비겁한 일 밖에 안된다.
저자는, 예수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마치 아담이 실수한 것을 뒷 치닫거리해주는 분으로 증거하고 있다.
이것 역시, "예수 이용해서 구원받도록 해 주겠습니다"라는 자기 상술을 역설하는 것에 불과하다.
3. 저자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 자체가 죄인지 아니면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을 확보한 것이 죄인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선악을 아는 것이 범죄라면 -저자의 주장대로-그 선악의 율법으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치 독약을 먹고 죽어가는 자식에게 독약을 더 먹으라고 주는 것은 감당못한 치사량을 안기는 것 밖에 안된다.
또한 율법으로 거룩하게 되면 갈라디아서 2장의 사도 바울의 주장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헛되게 하는 이단적 발상이다.
만약 단지 선악과일을 따먹은 것이 범죄라면, 그것은 아담의 개인적 결정 사항이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들의 죄책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아담의 자유의지에 후손이 가담한다면, 아담의 후손들의 자유의지는 선조나 고참에게 예속되는 온전한 의지가 아니기에 의지 앞에 '자유'라는 표현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치열한 종교시장에서 신학 배웠으니 신학 지식이나 팔아먹고 밥벌이 하자는 속셈에 불과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을 중국사람이 번다는 식으로,
죽기는 예수가 죽고 그 쇼로 인해 돈은 자신이 챙기겠다는 음흉한 생각이다.
성경 귀절로 전체를 도배를 해도 악마는 안 떨어지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악마는 '걸어다니는 셩구 사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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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