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구원의 야망] 2004-05-08묻고답하기갈라디아서

구원의 야망 김대식 (Homepage) 2004-05-08 17:11:10, 조회 : 162, 추천 : 16
참으로 인간은 끝까지 한다리 걸치고픈가 봅니다. 신학을 통해서도 믿음을 통해서도 다 자기소유화 시키고픈 욕망에 들 끓고 있는가 봅니다.
믿어줄테니 구원 내 놔라 라는 식의 욕망을 당연히 여기며 다수화 하였고 교리화 했습니다. 그것이 곧 전통이 되었으니 이젠 그 전통만 잡으면 되는 가 봅니다.
아무리 봐도 인간 구원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그 십자가 앞에 그저 마땅히 버림받아야 할 자인 상한 심령일수 밖에 없는데
십자가는 그저 통과용일 뿐이고, 이제 믿고 따라 주었으니 구원을 보장하는 확신의 말들을 요구 한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 입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1) 『형제들아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날을 세우시기를 (펌) 구득영 2004-05-10 14:04:19, 조회 : 122, 추천 : 15
손성식 목사의 아빠방에서 허락없이 퍼왔습니다. [교회교의학]따라읽기8 번 글의 리플입니다.
운선생 조회: 134 (0) (1)
날카로운 날을 세우시기를 IP : 글 작성 시각 : 2003.07.29 07:40:49
교회의 특징은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자들의 모임임이 드러나는 곳입니다.그런 의미에서 강단에서 설교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설교를 한다면 이미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니지요.물론 이들도 복음을 들어야 하는 자들임은 틀림없습니다.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는 교회나, 그 말씀을 듣는(물론 믿음으로) 성도들은 다 알고 있지요.그러니 바울이 스스름 없이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말할 뿐 아니라.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그냥 한편의 좋은 강의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글들이 되었으면 합니다."아 좋다, 괜찮구나"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예수님만 믿을 수밖에 없구나". 아니면 "너랑 놀기 싫다" 의 반응이 나올 정도로 말입니다.이 땅은 중립지대가 없습니다.오늘날은 흑백논리를 싫어하는 세대지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니 말입니다.그러나 성경을 보면 오직 흑백논리입니다. 의의 종이냐? 죄의 종이냐?진짜 취미 생활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날쌘 검으로 글이 쓰여지기를 바라며.칼 바르트 선배님이 현실과 직접싸움으로 많은 핍박을 받았듯이, 그의 글을 연구한다면 오늘날 교회와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자신과도 싸워야 합니다만, 이것을 핑계로 교회와 싸우는 것을 가만히 있다면, 결국 신앙은 개인주의, 즉 자기 우상화에 젖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칼빈, 칼 바르트, 이들의 특징은 예수님의 설교, 사도들의 설교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모습.죄를 정확히 찍어내는 지혜, 그런 가운데 핍박을 받지만 순결한 모습.이런 설교자를 보기 힘든 시대이지요. 왜냐하면 목회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자신은 나그네로 살지 않으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으로 붙들고 있다고 설교하는 사기꾼들.책을 써도 마찬가지, 글을 써도 마찬가지. 상황에서 말씀을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하시지요.
---------- 손성식 : 취미생활이라는 말은 상당히 함축적인 말입니다. 인간의 몸의 활동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운선생님도 취미생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꾸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을 붙이는 것은 자유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런 못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총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놀라워 할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운선생님이 무사(武士)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운선생님의 실력으로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저는 운선생님이 드신 칼의 위력을 보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복음의 우발적인 사건이 일어날 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일상적으로 사는데 우리도 모르게 복음을 알아가는 생명현상이 일어날 때 깜짝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묵시와 역사의 관계성입니다. 저는 묵시란 역사와의 투쟁 속에서 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좀 함축적인 명제지만 생각해 볼만합니다. 좋은 우정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07/29 11:33)
##############################################################################################손성식 목사의 [교회교의학]따라읽기 10 (펌) 구득영 2004-05-10 17:40:39, 조회 : 303, 추천 : 19
감히 허락을 받지 않습니다. 추천사이트 '아빠방'에 있으니 한번 살펴보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전에 이근호 목사님이 질투가 나도록 칭찬하시던데.......
[교회교의학]따라읽기 10
제9강 『Church Dogmatics』Ⅰ/1 chapter1 The Word of God as the Criterion of Dogmatics 4 The Word of God in its threefold form1. The Word of God Preached pp. 88-99『교회 교의학』Ⅰ/1 제1장 교의학의 기준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4 삼중적 형태에서의 하나님의 말씀1.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 pp. 126-140
안녕하세요.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거시적인 맥락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몇 번이나 교의학의 문제가 권위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기억하시겠지요. 이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봅시다. 즉, 이성은 납득과 설명을 요구하고, 계시는 복종을 요구하기에 둘 사이에 어떤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 충돌이란 궁극적인 권위가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싸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권위의 싸움이란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의 권위를 주장하는 반면에 우리의 이성은 그 권위를 납득시켜 달라는 말을 함으로써 그 권위를 사실상 부인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부분에서 몇 가지를 더 검토해 봅시다.
먼저 권위적이라는 말을 초월적이라는 것으로 인식하는 종교적 사상이 갖는 위험성입니다. 즉, 기독교적 권위를 초월성으로 이해한 로마 가톨릭의 문제점입니다. 로마 가톨릭에 있어서는 초월과 자연을 대립되는 두 영역으로 생각합니다. 신적이고 절대 권위적인 것, 즉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초월적이지 자연적일 수 없다고 봅니다. 이것을 로마 가톨릭의 이원론이라고 합니다. 헬레니즘의 이원론이 육체-정신이라면 로마 가톨릭이 갖는 이원론은 초월-자연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을 해봅시다. 왜 초월과 자연을 나눈거지요?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불합리한 모습이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즉 이 세상과 자연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생각하려니까, 하나님이 악한 것에도 원인이 되시는가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상은 은혜의 법과 생명의 법이 통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이고 불의한 자가 의로운 자를 괴롭히는 법칙이 성행하고 있는데 만일 하나님이 자연을 다스리신다면, 하나님은 악의 원인자가 되거나 최소한 방조자가 돼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그 절대적 권위를 옹호하려는 데서부터 초월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의 본성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납득시키고 싶을 때 그에게 초자연성을 들이댄다면 꼼짝 못할텐데 라는 본성적인 종교심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이 종교성, 이것이 초자연주의입니다. 계속 얘기를 이어나가 볼까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높이자는 것은 좋은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높이다 보니까 문제는 하나님이 간섭하셔서는 안되는 영역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즉 자연은 하나님 손에서 빠져 나와서 독립해 버린 영역으로 존재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제일 많이 강조한 것이 수도사 제도 같은 것입니다. 즉 자연으로부터 도피이며 금욕주의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자연을 놓음으로써 초월로 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연을 무가치하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 초월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은 이제 어떻게 된 것이지요? 자연을 죄라고 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자연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서 탈출해 버린 꼴이 된 겁니다.
그러면 자연은 누구의 손에 있게 된 걸까요? 일차적으로는 자연 자체에 맡겨진 셈입니다. 인간도 특별한 은혜 속에 들어 있지 않은 모든 인간은 자연인이 된 겁니다. 이것은 디즘(Deism)으로 까지 나가게 된 원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디즘을 알아볼까요? 디즘(자연신론)이란 실제라고 하는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미신으로 간주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자연 세계에 있는 모든 현상과 실제에는 종교라든가 초월과 관계없이 자체의 원리와 규칙만이 진행되더라 하는 사상입니다. 즉, 자연은 자연의 법칙이 있어서 자연이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생각에 얼마나 침투해있는지 예를 들어봅시다. 아침마다 해는 동쪽에서 뜹니다. 물론 지구가 자전을 하는 겁니다만 표현상 아침마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매일 아침마다 동쪽에서 해를 띄우시는 걸까요, 아니면 천지창조 때 해는 24시간마다 한 번씩 동쪽에서 떠올라라 그래서 그 법칙을 따라 매일 뜨는 걸까요. 후자의 사상을 바로 디즘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경과도 관련시켜 볼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맞지요.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각자가 어느 만큼 캐어 가느냐의 싸움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은 아니지요.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향하여 어떤 뜻을 갖고 계시며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는가를 다 공개하신 책이지, 거기에 하나님의 보물을 담아둬서 성경책 자체를 두고 무슨 보물지도 마냥 신성시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 정리를 한번 해볼까요. 초월주의에서는 자연을 배제하고도 그나마 초자연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자연주의에서는 초자연을 빼버리고 자연만 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도, 주권도 없어지고 인간의 인과율밖에는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들이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지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재난을 만나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죄 값이다'든지. '내가 학교에 떨어졌다' 기도 안 했지'. 라는 생각들은 모두 초월주의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기도했으면 됐을 텐데 라는 생각은 바로 자연주의입니다.
내가 어떤 원인을 집어넣는 한 결과는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선교단체에 가장 만연되어 있는 사상이기도 합니다. 저도 옛날에 많이 해 봤지만 모든 것을 체크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성경 본 분량, 하루에 기도한 시간 이런 것들을 체크하는 것은 결국 그렇게 한 것만큼 틀림없이 결과가 온다는 법칙 하에서 행해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뭘까요? 은혜가 자꾸 배제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인간의 자유의지, 인간의 행위의 법칙이 자꾸 은혜를 밀어내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가 충돌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비주의가 됩니다. 은혜는 초자연에다가 요구하고 방법론에 있어서는 분명한 자연주의를 외치는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요한 부분이지요. 깊이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사실 종교 개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자연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습니다. 즉, 로마 가톨릭이 초자연으로 가버린 데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를 해석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잇는 개혁파 신학은 초월이라는 것과 자연이라는 구별은 원래는 없다라는 것으로 답을 찾았습니다. 구별은 초자연이나 자연이라는 것으로 구별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은혜 아닌 것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반과 특별이란 것은 천주교식으로 얘기하자면 신적인 내용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눠서 일반과 특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혁파 신학에 들어와서는 성경연구에 좀더 정확한 추적을 통해서 그런 구별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시고 초월로써도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거기에선 일반과 특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의미에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즉 은혜의 유무입니다. 한쪽은 은혜가 있고 한쪽은 은혜가 없던 것이지요. 이것은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죄 문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일반과 특별이란 문제가 생긴 겁니다. 죄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특별계시라 하고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일반계시라 합니다.
이 부분에서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아침에 뜨는 태양은 일반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특별계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어떤 사람에게는 일반계시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이 성경이 특별계시입니까, 일반계시입니까? 우리가 보통 특별계시라 하지만 특별계시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보고 깨우쳐야 되는 것을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버틀란트 러셀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성경책을 많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가 보통 특별계시라 하는 것은 거기에 죄 문제를 처리하는 것과 그것을 극복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서 일반적으로 명칭을 붙일 때 특별계시라고 말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특별계시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사람에게 사용되는 것으로 볼 때는 꼭 특별계시가 특별계시고, 일반계시가 일반계시라는 어떤 명확한 선을 긋기가 곤란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를 믿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종소리를 듣거나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도 회심을 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결국에 가서는 죄 문제를 걸고넘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죄인 된 것,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 된 인간을 공격하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죄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서 하나님 앞에 항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여기에 항복하지 않고 나오는 사상이 바로 윤리와 철학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인본주의입니다.
사실 바르트는 특별계시나 일반계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연신학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만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강조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죄인에게 찾아오셔서 손을 내미시고 화목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면에선 위에서 언급한 종소리를 듣고 회심한 신자의 경험을 바르트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만남이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신 모습으로 인간을 만나는 사건이 벌어져야만 신앙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서 선포를 중요시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선포는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시는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교회가 교회로서 현실화되는 원인을 성령의 역사로 보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보충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속에 은폐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은폐되어 있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화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만남의 장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만남이란 것은 종말론적 표현입니다. 예수님만이 옳다는 것과 죄인 된 자신의 자각이기도 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에 놀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함축적인 만남이지요. 이 만남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성령의 사역이 실존화 된다고 할까요. 뭐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예수를 믿게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 것이 되겠지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삼중적 형태로 본 바르트의 견해는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십자가 사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성경, 선포로써 죄인들을 만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좀 거시적인 맥락에서 계시의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쟁점들은 기억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초월-자연-은총-해석에 대한 논의는 박 영선 목사님의 [평신도를 위한 신학입문](서울:엠마오)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많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이근호 :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즉 죄에서 벗어나 의인이 된 자가) 자연의 운행에 대해서 궁금해서 자연 질서와 하나님의 섭리와 관계를 논할 때, 이럴 때도 자연신학이라는 것이 성립될 수 없을까요? 구원된 자가 시편 19:1-6를 가지고 자연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을 고백할 때 과연 그것도 왜곡된 고백일까요? (08/23 12:28) 손성식 : 구원된 자의 고백이라도 자연신학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이란 항상 죄문제를 걸고넘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학이나, 신성을 말하고자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으로만 한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08/23 16:12)
##############################################################################################부산의 어느 장립 집사님께서 자기 교회 부흥집회를 보면서 올린 글입니다. 이근호 2004-05-12 14:42:30, 조회 : 529, 추천 : 35
제목 :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목사님
00교회 홈페이지에 글이 올려지지 않아
부득이 개인 메일로 이 글을 보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하고픈 말이기도 하여
몇몇 메일 주소를 아는 분들에게는 보냈습니다.
다음 글은 이번 부흥회를 보고 난 느낌으로 써 내려간 글입니다.
무례을 용서하시고 읽어 주십시오.
저의 소견이 잘못 되었다면 말씀으로
권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7: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보면,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목사나 부흥사,교사,...)을 하고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고도,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을 행하고도 마지막 날에 예수님으로부터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들을 사람들이 있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마태복음 24:24에 보면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기적이나 능력을 보이면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하게 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어떻게 구분할까?
이것은 돈 몇 푼이 걸린 일이 아니라 우리의 귀중한 영혼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므로 쉽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기도해서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참 선지자일까?
기도해서 병이 낫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다른 종교에서도 일어나며 특히 거짓 선지자들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행한다. 과거에 전도관의 박태선 장로가 큰 기적으로 병을 고치면서 행하다가 따르는 사람이 많으니 교만하여져서 타락하고 이단의 괴수가 된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병 고치는 기적만 보고 그는 무조건 하나님이 보낸 사자라 생각하고 맹신적으로 따른다면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면 귀신을 쫓아내는 정도면 굉장한 능력을 가진 주의 종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다.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도 주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귀신을 쫒아 낸다하여 그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라 단언할 수도 없다.

예수의 이름으로 설교를 하고 무엇인가 능력을 행한다고 주의 종일까?
그런 것도 아니다.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얼마든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왜 그런 거짓 선지자들을 그냥 버려두는 것일까?
그 답은 다음 성경 구절에 있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 9절-12절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금번 부흥회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요일 저녁 한번 참석했었다.
초반에 뛰쳐 나오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았지만 여러 사람의 얼굴을 봐서 끝까지 인내하며 갈 때까지(?) 가보며 지켜 보았는데, 지금도 얼마나 분하고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을 어떻게 써 내려 가야할지 아니 이 글을 쓸 가치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다만 주께서 감찰하시길 바라며...

폐일언하고 박모 부흥사의 모든 행동은 차라리 무당이 하는 짓 보다 못하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 하겠다고 하는 것들이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신실한 신자까지도 미혹하여 그릇된 믿음에 빠지게 하는 소경된 인도자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다.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몇 사람을 불러내어 눈을 감고 글도 아닌 낙서를 하게 하고는 성경을 그런 식으로 기록되었다고 “아멘”하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성경이 그런 식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신학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신 분들은 알 것이다. 성경은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다. 성령은 사람을 그런 식으로 정신없이 미치게 만들어 도구 사용하시지는 않으신다. 성경마다 기록한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이나 시대적 배경에 따라 문체가 다 다르지만 일관된 성령의 감동하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세가 기록한 모세오경도 시편을 기록한 다윗도, 복음서도 바울 서신도 모두 그런 식으로 미쳐서 갈겨 쓴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런 사기극을 보고도 “아멘”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것을 목사나 전도사? ?그냥 보고만 있는지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이제 정경이 완성된 후로 성경의 계시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담겨 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더하면 이단이다. 오직 성경만이 계시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등에 돈이 붙어 다니고 만사 형통한다는 그런 것들은 부흥사가 자의적으로 지어내 하는 말들이며 마귀가 얼마든지 원하는 자들에게 주는 것들이다. 마귀는 얼마든지 자기에게 영혼을 파는 자들에게 줄 것이다. 마태복음 4장에 마귀는 세상 모든 영광을 줄 터이니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예수님을 유혹하였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살아계심”을 결코 증거 하실 필요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들에게 자신을 믿어 달라고 애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박모씨가 보여준 그런 얄팍한 것들로 하나님은 자신이 살아계심을 애처롭게 보여주시려고 애쓰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증거도 필요 없으시다.(요2:25)
진실로 말하지만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에는 죄인은 결코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
지성소 제물을 몇 천억을 갖다 바쳐도 결코 죄인이 의인될 수 없고, 천국은 꿈도 꾸지 말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인간은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롬3:23)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25억이든 7억이든..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노아 8식구 외에는 모든 인류를 홍수로 수장시키실 정도로 정확하고 결코 타협이 없으신 분이시다. 롯의 3식구 외에는 소돔과 고모라 도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황불에 불타 버렸다. 하나님은 이제 이 세상도 불로 태워버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하나님의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다.(히1:1)
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믿지 아니하면 구원은 없다.
믿는 자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이다.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버려 두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 아들의 십자가를 대수롭잖게 여기는 자들에게 내릴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지 생각해 보라.
십자가의 원수된 자여, 제발 회개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짓밟고 하나님의 은혜를 돈을 살 것으로 하찮게 만드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9)

사도행전 8:18 -20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이것을 돈을 드려 사려고 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또한 마음이 약한 형제를 속여 치부하는 거짓 선지자들 또한 저주를 받을 지어다.

지성소의 예물이라니 당치도 않는 말이다. 원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법궤와 시은좌가 있어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들어가는 곳이었으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으로서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이제 구약의 성전은 없어졌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성전이다. 그리고 또한 성령으로 난 자가 곧 성령의 전이다.

마27:51 이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히10:18-20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박모 부흥사는 본 교회 목사에게 능력의 허리끈을 주고 간다고 하니 모든 성도들이 열렬히 아멘하고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성령님을 그 끈에 묶어 둘 수 있다고 여기는가? 성령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너희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의 역사와 그로 인한 성령의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성령이 사람을 쓰시는 것이지 사람이 성령을 좌지 우지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다른 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에도 떠나는 날 역시 능력의 허리끈을 주고 갔는데 모 교회 목사는 그런 것을 그저 받을 수 없다 하여 100만원을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통 사기꾼이 아니다. 몇 만원하는 허리끈으로 100만원을 벌어들이니... 이렇게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돈으로 거래하고 주고 받으니 그것이 어찌 성령의 역사이겠는가? 하늘에 계신이가 웃으심이여 참으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자고로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인기가 없었으며 창세 이래로 늘 고난을 당하며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마지막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까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였으며, 이제 그를 따르는 사도들과 신자들까지 핍박을 받는 세상이 오늘날 세상이다.

복음은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거짓된 인간 종교 때문에 처참하게 죽으신 곳이다.
자기들만이 참 하나님 아버지를 바르게 섬기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유대교인들에 의해 그 하나님의 아들이 처형되었다. 그분은 불신자들이나 불교도에게 처형 당하신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는 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조차 알아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들의 현주소이다.

이제 주님의 십자가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신자의 죽음의 자리이다.(갈2:20)
십자가, 그곳은 나의 명예나 부귀나 돈을 벌게 해주는 능력이 나오는 곳이 결코 아니다.
십자가, 그것은 교회를 부흥시켜주는 도구가 아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죽어야할 곳이다.
죄인인 우리가, 욕심덩어리인 우리가 죽어서
오직 주님의 긍휼만을 구해야할 곳이다.

혹 이 글을 읽는 교인이여.
제발 믿음의 좁은 길로 가기를 힘써십시오.
제발 십자가를 바로 아십시오.
십자가에서 왜 예수님이 수난 당하셨는지를 모르시면
오늘도 당신은 예수님을 두 번 죽이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일평생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은 예수를 믿는 다고 (착각) 하다가
그리고 마지막 날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는
무서운 선언을 들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님
목사님은 교회 부흥 시키라고 주님이 이 교회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에서 바른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숫자를 보지 않으십니다.
바른 복음이 선포되어지지 아니하면 아무리 그럴 듯한 건물이 지어져 있고,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든다고 해도 그곳은 교회가 아니며 하나님은 그곳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하는
목사님의 사명은 다음 말씀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8 절 말씀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참으로 교회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만을 증거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봉사와 헌신과 선교를 높이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주의 종이 할 일이 아닙니다.
주의 종은 주님의 말씀만 들으시면 됩니다.
부흥사가 와서 성경에도 없는 엉뚱한 소리를 하면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말씀은 없고
무당 같은 짓으로
인간의 타락한 종교심을 부추겨서
자기 배를 채우는 이런 부흥사를
이번에 누가 초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제 글이 너무 과격하고
여러사람에게 무례하게 보여질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마음이 불타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빕니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49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4,942 묻고답하기 [십자가를 모르는 자의 "자기 존재성 구축"] 2004-12-04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941 묻고답하기 [죄인이면?] 2004-11-26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7-03-13
4,940 묻고답하기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 2004-11-24 디모데후서 최고관리자 07-03-13
4,939 묻고답하기 [인간은 왜 법에 민감한가?] 2004-10-21 - 최고관리자 07-03-13
4,938 묻고답하기 [하나님의 지옥만들기] 2004-10-06 - 최고관리자 07-03-13
4,937 묻고답하기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2004-10-02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07-03-13
4,936 묻고답하기 [『삶의 진실을 찾아서』를 읽고] 2004-09-22 - 최고관리자 07-03-13
4,935 묻고답하기 [안식교보다 '주일교'를 무너뜨려 보세요] 2004-09-11 - 최고관리자 07-03-13
4,934 묻고답하기 [안식교보다 "주일교"를 무너뜨려 보세요] 2004-09-11 - 최고관리자 07-03-13
4,933 묻고답하기 [여호와증인에 대한 복음적인 반박] 2004-09-07 - 최고관리자 07-03-13
4,932 묻고답하기 [한스 요아킴 크라우스의 『조직신학』] 2004-09-04 - 최고관리자 07-03-13
4,931 묻고답하기 [다시 이근호님께 질문 드립니다] 2004-08-31 - 최고관리자 07-03-13
4,930 묻고답하기 [이근호님께 25가지 질문?] 2004-08-31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7-03-13
4,929 묻고답하기 [이근호 신학 = 주관주의 신학] 2004-08-16 - 최고관리자 07-03-13
4,928 묻고답하기 [구원파. 김기동 목사. 류광수 목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2004-07-22 - 최고관리자 07-03-13
4,927 묻고답하기 [이근호목사님! 악마 목사입니다.] 2004-07-01 - 최고관리자 07-03-13
4,926 묻고답하기 [하나님의 중심이 되십시오,이근호 목사님.! ] 2004-06-19 - 최고관리자 07-03-13
4,925 묻고답하기 [우연성과 우발성에 대해서 !!] 2004-06-11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924 묻고답하기 [박길현: 이근호 목사의 신학을 반성하며] 2004-06-06 - 최고관리자 07-03-13
4,923 묻고답하기 [천국에 가는 것인가.. 아니면 천국이 오는 것인가] 2004-05-27 - 최고관리자 07-03-13
열람 ➜ 묻고답하기 [구원의 야망] 2004-05-08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7-03-13
4,921 묻고답하기 [이상하고 복잡한 어법파괴의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2004-05-08 - 최고관리자 07-03-13
4,920 묻고답하기 [하나님형상 창조부인과 인간 구원이 아닌 예수님만 구원한다에 대한 반론] 2004-05-06 호세아 최고관리자 07-03-13
4,919 묻고답하기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고 나서 ] 2004-04-02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13
4,918 묻고답하기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고 나서 ] 2004-04-02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