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형상 창조부인과 인간 구원이 아닌 예수님만 구원한다에 대한 반론] 2004-05-06
[하나님형상 창조부인과 인간 구원이 아닌 예수님만 구원한다에 대한 반론] 2004-05-06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이근호님의 답변에 반론을 제시합니다.
박홍섭 2004-05-06 16:05:23, 조회 : 194, 추천 : 14
답변 감사합니다.
제 두가지 질문에 우선 한 가지를 답하셨군요
저는 두 가지 질문을 드렸는데
1.이근호님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맞는가?
2.이근호님의 구원론에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원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가?
여기에 대해 님은 1번의 답만 우선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2번에 대한 답도 곧 자세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선 제 질문 1에 대한 이근호님의 답변에 저의 반론을 제기합니다.
이근호님이 답변하신 순서대로 저도 반론을 하겠습니다.
1.우선 님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부연을 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타락한 천사도..라고 하셨는데 성경 어디에 타락한 천사, 다시 말하면 사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람녀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표현을 한 것입니까? 존재론적 하나님의 형상론(?)이란 말이 원래부터 있는 말인지 이근호님이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존재론적 하나님의 형상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까?
2.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고 죄로 말미암아 그 형상이 파손되었다면 그 형상을 위해서라도 모든 만민을 구원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파손된 모든 인생을 구원해야 한다는 성경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 논리가 바로 이근호님이 그렇게 싫어하는 타락한 인간의 자기를 앞세우는 인간의 소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인간 중 그 누구도 구원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구원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공의에 조금도 손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기쁘신 뜻대로 택한 자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신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은혜죠....왜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인 죄인된 인간 전부를 회복시키지 않느냐구요? 왜 그걸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물을 자격도 없는 것이 인간인데.....오직 그렇게 회복받은 자들만 또 감사 또 감사할 뿐이죠....
3.'하나님의 형상'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형상'이 될 경우에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간주된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것을 주장하기 위한 님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라는 말입니다. 성경 어디에 하나님의 형상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형상이 될 경우에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간주한다는 말이 있습니까? 그것이 성경적 논리전개가 아니라 바로 사상적 철학적 사변적 논리전개라는 것입니다.
4.하나님의 형상이 창5장부터 아담의 형상으로 전환된다고 하면서 그 아담의 형상으로의 전환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는데...이제 본격적으로 이근호님의 사상이 드러나군요..
창5:1을 잘보십시오. 아담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3절에 오면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오지 않고 아담의 형상,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님의 말처럼 전환이 아니라 죄로 인한 타락이죠. 애초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그 죄가 지배하는 아담의 형상을 닮아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그의 후손들이 태어난다는 말이죠...그래서 아담의 후손들은 전부 죽었더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담의 족보에 들어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죄의 형상 곧 아담의 형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타락입니다. 이것을 뭘 그래 복잡하고 이상한 전환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괴상한 논리를 펼치십니까? 심히 위험한 사상입니다. 사실 이근호님의 복음과 십자가를 벌써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인간으로 동원되기 위한 작업이 하나님의 형상에서 아담의 형상으로의 전환이라고요? 참으로 심각합니다. .....너무나 비성경적입니다.
5. 아담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처음부터 선악과를 심지 말아야 하고 심더라도 더 거부감을 느끼도록 했어야 한다고 했는데 님은 선악과부터 소위 말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군요....선악과는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으로 지은 인간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어 하나님과 유일하게 교제할 수 있고 사랑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또 인간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언약입니다. 은혜의 언약이며 사랑의 언약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임을 알리는 결혼서약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호6:7절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사건을 주석하면서 이스라엘이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라고 주석했던 것입니다.
선악과는 언약입니다. 그 선악과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그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야 할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자유 의지를 하나님께만 제한시켜 그 안에서 만족한다는 언약인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자신을 제한시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교제나 관계를 꿈도 꾸지 않는다는 말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악과 언약을 창2:16-17절에 제시하고 바로 뒤인 창2장18-25절까지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하와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의 교회로 넘어오면서(신약의 교회는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과 이런 특별한 언약의 관계로 회복된다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고 십자를 통해 부름받은 성도는 그의 몸이 되어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랑의 관계로 만들어져간다는 교회론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엡5:22-23절은 이런 의미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6.이근호님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만 동원된 존재라고 하면서 그 근거구절로 요17:1-11절을 해석하시면서 이렇게 제시합니다. '오직 '아들'을 '아들답게'하기 위해 아드님에게 영광돌리기 위한 일군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등장하게 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요17:1-11절은 그런 구절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것이고 그리고 이땅에 남아 있어야 할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그의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바로 제자들을 위해서입니다. 그 제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지 않고 태초부터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 동원된 존재가 아니라 처음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스스로 타락한 아담의 후손 중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택정함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7.아담의 형상이 구원해달라고 하는 것은 주제파악이 안된 것이라고 했는데 누가 아담의 형상인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구원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까? 이근호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신학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은 구원에 대해 관심도 없고 구원해 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열심을 동원하여 그의 아들을 통해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한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믿는 것이 기존의 신학이요 성경의 흐름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은혜이죠.....
8.반복되는 말같지만 님이 되풀이 하니까 언급해야 하겠군요. 이근호님은 기존신학의 인간론,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존재론적 하나님의 형상론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수님 안'이라는 말로 인해 이 세상에 모든 '하나님 형상 회복론은 인간들의 구원욕구에 의해서 조작해낸 것임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아직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이기에 인간의 요구가 개입할 여지도 처음부터 차단됩니다. "저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달라는 요구"조차 성립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영원한 계약에 의해 이미 확정되어 버린 일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참으로 이상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니 도대체 누가 타락한 인간,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달라고 했단 말입니까?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향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달라고 했습니까? 그리고 기존의 신학이 그랬게 했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전부 이근호님이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려면 한쪽은 그렇게 몰아가야만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거듭말씀드립니다. 죄로 인해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생이 어찌 그 형상을 회복시켜 달라고 요구하며 또 그렇게 하겠습니까? 오히려 더 이성없는 짐승처럼 자신의 욕망을 향해서만 달려가죠. 이런 인생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개입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관심도 없고 오직 자기 욕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를 붙들어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의 열심 아닙니까? 그러나 그 열심에 의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받는 다는 것이 기존의 구원론입니다. 우리가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그렇게 회복시켜서 다시 그와 교제하는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위대한 분인 것입니다.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측랑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달라고 했다고 몰아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지음 받아 그 형상의 모습으로 그 앞에 온전한 자로 세워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9. 그 뒤에 주체나 자유의지에 대한 개념을 조금 언급을 하셨는데 그 부분은 꼭 토론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전부 성경을 가지고 토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나 철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토론의 집중화를 위해서 다음에 하기로 하죠. 아뭏든 이근호님의 인간론의 결론은 이 짧은 대답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동원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차이가 심각한 것입니다. 그게 그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간론의 기초는 필히 구원론의 심각한 왜곡으로 진전되기 때문입니다.
이 방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인간이 애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동원된 존재라는 이근호님의 인간론에 대해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더 시급한 것은 제가 질문한 두번째의 질문입니다. 이근호님이 구원론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신데 대한 설명을 부탁드렸습니다. 이근호님의 인간론이 그러하면 필히 구원론도 그렇게 도출될 수밖에 없다는 짐작을 하면서 모든 분들이 이 말에 대한 이근호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을 줄 압니다. 바쁘시겠지만 빠른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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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님의 답변에 반론을 제시합니다.
이근호 2004-05-06 17:46:16, 조회 : 167, 추천 : 12
귀하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전혀 구원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귀하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은 전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마음이 추호도 없는데,
단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귀하가 처음부터 저를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인이 구원받고 싶은 자만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마음이 있는 자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고 제가 그렇게 주장했던가요?
모든 게 예수님의 뜻한 바대로 예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요?
제가 그렇게 주장하니까
귀하께서 이렇게 공격했습니다.
사람을 아주 죄인취급하고 한국 교회를 전부 이단시 했다고!
그렇다면 귀하는 제게 거짓말 했습니다.
정말 귀하에 주장대로 전혀 구원받을 마음도 없었는데 구원받고, 전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될 마음도 없었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것으로 믿는다면, 자신의 과거가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가를 알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 증거하는데 급급해야 합니다.
만약 귀하가 그러하다면 귀하의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람을 너무 죄인취급하고 한국 교회의 이 많은 신자를 무시하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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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님의 답변에 반론을 제시합니다.
박홍섭 2004-05-06 18:21:37, 조회 : 145, 추천 : 10
딴소리 하지 마십시오.
제가 님의 구원론에 대해 질문한 것을 답변하셔야죠..언제까지 선문답하듯 하실 것입니까?
저의 주장만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그렇게 은혜주신 그분을 전적으로 사랑하려고 합니다.
님처럼 주님을 사랑하려는 시도를 과거의 나처럼 나를 위한 사악한 인간성의 발로로 보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신 선한소원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14:21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의 계명을 지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주님의 주님되심을 경험시켜주십니다.
그렇게 경험한 주님을 통해 나는 영생이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게 됩니다.
바로 이게 님과 저의 차이입니다.
자신의 과거가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가를 알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 증거하는데 급급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자신의 과거가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가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공로로 지금 내가 얼마나 존귀한 자가 되어 있는 것도 압니다.
문제는 님이 이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하면 펄펄 뛰겠죠....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의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보겠다는데
님이 어쩔 것입니까?
님이 감정적으로 나오니까
저도 감정이 나오네요.....
그리고 왜 님의 그 이상한 구원론에 대한 설명은 자꾸 미루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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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죄송합니다. 끼어들어서.....
구득영 2004-05-06 17:06:33, 조회 : 150, 추천 : 12
양해를 구합니다. 하지만 여긴 자유 게시판이나 넘 야단치지 마세요. 이근호 목사님 못지 않게 성격이 대단하시군요. 하지만 운전을 너무 급하게 하면 서로가 다칠까 싶어서, 제가 빨간 신호등이 한번 되어보려고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님의 글 가운데서 공감이 가는 일부분을 인용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래는 님의 글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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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님의 말처럼 전환이 아니라 죄로 인한 타락이죠. 애초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그 죄가 지배하는 아담의 형상을 닮아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그의 후손들이 태어난다는 말이죠...그래서 아담의 후손들은 전부 죽었더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담의 족보에 들어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죄의 형상 곧 아담의 형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타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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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님은 그 다음에 이와 같이 적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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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뭘 그래 복잡하고 이상한 전환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괴상한 논리를 펼치십니까? 심히 위험한 사상입니다. 사실 이근호님의 복음과 십자가를 벌써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인간으로 동원되기 위한 작업이 하나님의 형상에서 아담의 형상으로의 전환이라고요? 참으로 심각합니다. .....너무나 비성경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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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는, 님이 설명하신 창세기 5장의 내용을,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인간으로 동원되기 위한 작업이 하나님의 형상에서 아담의 형상으로의 전환이다] 라고 해도 말이 되지 읺습니까? 여기에 어떤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까? 왜 이러한 표현을 가지고 그리 흥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근호 목사님이 표현을 쉽게 하지 않고 어렵게 철학적인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입니까? 아니 그렇다면 그 '전환'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하면 되지 않습니까? 제가 둔해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보기엔 그것은 그렇게 심각하지도 않고 비성경적이지도 않지 싶은데 말입니다. 실제로 이근호 목사님은 조직신학 '인간론' 에서 창세기 5장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좀 안타깝네요.
제가 왜 이런 의문을 품는지 아시겠지요? 인간은 말이죠, 자기가 한번 밉게 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것 조차도 미워서 뒤에서 마구 태클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밉습니까? 좋습니다. 그건 어쩔 수가 없겠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복음이 증거되길 바랍니다. 물론 그 미움이 복음에 대한 열정이라고 하고 어쩔 수 없고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 가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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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죄송합니다. 끼어들어서.....
박홍섭 2004-05-06 17:28:41, 조회 : 146, 추천 : 5
제가 이미 다른 분들의 토론참여를 제안했기 때문에 끼어드신 것을 환영합니다.
님께서 전환이란 단어와 타락의 단어문제가 뭐 그리 심각한 문제라고 하셨는데
이근호님의 인간론 설명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이 아담의 형상으로 전환되었다는 단어를 채용한 것이 구득영님의 말처럼 원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그 형상이 죄로 인해 타락했다는 차원의 다른 표현의 전환이 아니라 이미 이근호님의 답변에서 나왔듯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을 부인하고 단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창조된 존재임을 뒷받침 하기 위해 채용한 단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근호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심각하다고 했고 비성경적이라고 심한(?)말을 한 것입니다.
구득영님께서 창세기 5장의 내용을,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인간으로 동원되기 위한 작업이 하나님의 형상에서 아담의 형상으로의 전환이다] 라고 해도 말이 되지 읺습니까? 여기에 어떤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까? 왜 이러한 표현을 가지고 그리 흥분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치명적인 결함을 찾지 못한다면 이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니 저뿐이 아니라 기존의 신학을 받아들이는 모든 분들은 이런 부분에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별 결함을 찾지 못한다면 이미 이근호의 신학에 물들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건 아닌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애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것입니다. 비성경적입니다. 전환이란 단어는 이런 이근호님의 사상을 뒷받침하는 단어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릴까요? 그럼 왜 이근호님과 구득영님은 굳이 전환이라는 단어를 고집해야 합니까?
그냥 모든 기존의 인간론이 주장하듯 원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타락해서 아담의 형상, 즉 죄인의 형상이 되었다는 말을 왜 못하는거죠?
암튼 님의 지적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토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급하게 가서 사고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달라서 부딪쳐야 한다면 빨리 부딪치는 것이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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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군요!!
구득영 2004-05-06 18:30:50, 조회 : 142, 추천 : 11
저는 지금까지 이근호 목사님이 그런 차원에서 '전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전환이라는 단어조차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목사님이 인간이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기가 인간이 죄를 지은 이후 기록된 것이기에, 그러므로 예수님의 형상과 아담의 형상을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우기 그것을 지금 새언약 시대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면 말입니다. 변명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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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군요!!
박홍섭 2004-05-06 19:37:35, 조회 : 132, 추천 : 11
정말 이근호님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가지로 말을 돌려서 하고 그리스도중심으로 해서 해석한다는 전제를 달아서 보아 달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너무 그리스도중심으로 해석하려고 해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들이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근호님이 인정하면
구원받은 이후의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근호님에게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인간은 여전히 죄를 드러내어야 할 용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야 그가 그토록 외치는 그리스도만이 강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성경적으로 보이고 가장 신앙적으로 보이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 그 가르침에 어쩌면 가장 무서운 독선이 들어있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까?
님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겠습니다. 이런 좋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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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독선이라........
구득영 2004-05-06 19:48:38, 조회 : 130, 추천 : 12
인간에게 있어서 독선이라하고 하면, 그것은 철저히 자기 형상에 집착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인간이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그리스만을 드러내는 것을 독선이라고 하니, 그것이 어떻게 말이 됩니까? 그런 독선은 차라리 믿음이 아닙니까? 인간이 자기 형상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중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첫째 아담이 아니라 둘째 아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모습인 줄 압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어떤 가능성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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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문제는
박홍섭 2004-05-06 20:01:15, 조회 : 138, 추천 : 12
인간에게 있어서 그 어떤 가능성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 참으로 신앙적인 말입니다. 이게 정상적으로 사용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이 이 표현을 사용해서 전달하고자 했던 그 의미대로 사용한다면 왜 그런 말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심지어 이단이라고까지 하는 것일까요?
문제는 이근호님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들이 인간의 그 어떤 가능성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이 말을 사용할 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열망마저 포함시키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소욕, 즉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는 의도마저도 님들은 인간의 자기 의라고 규정한다는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걸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깨달은 비밀이라고 여기고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는 거룩한 소망마저 부정해야 할 인간의 가능성과 자기를 높이려는 악한 시도로 치부해버리니까 독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된 인간을 그리스도안에서 구원하여 너는 의인이다.(신분상) 너는 나의 것이다. 나의 아들의 피로 값주고 산 나의 소유된 백성이다. 나의 보배로운 존재다라고 한 것마저 자꾸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왜곡시키는 것임을 생각해본적 없습니까?
과연 그리스도가 그것을 원하실까요?
>인간에게 있어서 독선이라하고 하면, 그것은 철저히 자기 형상에 집착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인간이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그리스만을 드러내는 것을 독선이라고 하니, 그것이 어떻게 말이 됩니까? 그런 독선은 차라리 믿음이 아닙니까? 인간이 자기 형상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중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첫째 아담이 아니라 둘째 아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모습인 줄 압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어떤 가능성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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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동의해도 될까요?
이진수 2004-05-06 22:20:40, 조회 : 132, 추천 : 12
홍섭님 말씀:
문제는 이근호님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들"이 인간의 그 어떤 가능성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이 말을 사용할 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열망마저 포함시키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소욕, 즉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는 의도마저도 님들은 인간의 자기 의라고 규정한다는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걸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깨달은 비밀이라고 여기고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는 거룩한 소망마저 부정해야 할 인간의 가능성과 자기를 높이려는 악한 시도로 치부해버리니까 독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된 인간을 그리스도안에서 구원하여 너는 의인이다.(신분상) 너는 나의 것이다. 나의 아들의 피로 값주고 산 나의 소유된 백성이다. 나의 보배로운 존재다라고 한 것마저 자꾸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왜곡시키는 것임을 생각해본적 없습니까?
과연 그리스도가 그것을 원하실까요?
저의 생각: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다스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은 그리스도의 영으로'만' 이해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지적하신 내용은 잘 지적하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거룩한 소망도 죄의 산물임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거룩한 소망이 죄일수 있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것을 고려하면 어떤 문제점이 나올까요?
하나님이 죄인되었던 인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여(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여러가지의 호칭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여러가지의 호칭으로 부르시게 한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찬송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사료됩니다.
물론 저는 그것을 '그리스도만 고집하는 독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구득영님은 그것도 믿음이라고 주장하시고요.
님께서 잡은 그 논리는 반드시 님의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이근호님도 이근호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모르긴해도 각자의 성경해석(결론)으로 상대방이 틀리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어쩌면 두 분 다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군요.(물론 저도 틀릴 수 있겠죠?^^)
그리스도는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성도와 멀어지게 하는 자"를 길에서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마도 그리스도는 절대로 인간들에 의해 왜곡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홍섭님의 질문(그리스도가 그것을 원하실까요?)은 성경의 몇몇 구절에 의하면 자기 논리의 모순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뻐하지 않으시죠.
그러니 그 거룩한 소망을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머:
내가 오늘 미쳤나 보다.
와 이라노?
자고나면 다시 제정신이 되겠지~
구득영목사님, 그 동네에 비가 많이 왔지요?
추가:
이근호목사님께
목사님 글쓰실 때 따옴표나 쉼표를 적절한 위치에 넣어주시면 읽기도 편하고, 문맥의 의미전달상 조금 더 명확해 질 것 같습니다. 참고해 주시면 좋겠더군요.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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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문제는 박홍섭 2004/05/06 12 139
[re] [re]문제는
손성식 2004-05-06 21:00:54, 조회 : 165, 추천 : 15
> 제가 보기에 문제는 홍섭씨와 이 근호 목사의 관심사가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홍섭씨는 자신의 견해를 성경적이라고 부르고 이 근호 목사의 견해를 철학으로 몰아붙이는데 이것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홍섭씨의 견해도 성경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홍섭씨와 이 근호 목사 사이의 논의는 성경의 중심사상으로 옮아져서 홍섭씨가 성경의 중심사상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에 제 홈페이지에 박 영선 목사의 "계시의 인격성"에 대한 논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근호 목사의 언약사상과 상당히 맥을 달리하는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는 성경적이다, 아니면 누구는 이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는 안목의 차이를 인정하시고 배울 것은 충분해 배우는 것이 배우는 자의 자세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양무리 마을 담당자 홀리조이씨는 신학적 논의를 마치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 악마 응원단처럼 한 쪽을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데 이것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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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문제는
박홍섭 2004-05-07 10:10:06, 조회 : 141, 추천 : 11
박영선목사님 이야기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십자가 마을 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박영선 목사님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박영선 목사님이 여기 이 마을에서 십자가를 외치는 분들보다
십자가를 덜 사랑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설교도 언제나 십자가입니다. 자신의 의를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열심을 주창합니다.
그럼에도 박영선 목사님을 두고 아무도 이단이라 하는 자가 없고
같은 십자가를 말하는데 이근호님에게는 이단이라고까지 말하는 이유를 아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성경적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이근호님의 주장이 어쩐 성경적 근거에
기반하여 전개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물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이근호님이 거기에 마땅한 응답을 안한다고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거기에 응답을 안하시니까 이근호님의 주장이 성경에 근거하기 보다 철학적이나 사변적이 아니냐는 논리입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사상이 성경에서 나왔다면 상대방이 거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상대방의 제기가 아무리 우스워보여도 성경을 가지고 답을 하는 것이 순리아닙니까? 제대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덧붙이죠...
성경을 보는 안목의 차이를 인정하라고 했는데 그것을 먼저 인정하지 않는 분이 누구입니까?
한국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는 시도까지 장사하는 장사치에 비유하여
전부 마귀의 앞잡이라고 싸잡아서 비난한 분이 누구입니까? 이근호님입니다. 이근호식의 언약사상을 가지고
비난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한국교회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속화와 기복주의와 율법주의에 물들어 있고 그 부분에 있어서 강력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늘 인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에는 이근호님의 십자가를 순수하게 보고 호의를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근호님이 먼저 한국교회를 향하여 싸움을 걸었습니다. 이근호의 언약사상을 가지고 한국교회만 아니라 기존의 신학에까지 싸움을 걸었습니다.
이근호님은 저에게 이근호님을 공격한다고 했는데
저는 지금 이근호님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할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한국교회를 방어하는 것이고 기존의 신학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감히 제가 신학의 모든 것을 다 알아서가 아니라 기존의 복음과 십자가가 너무 심하게
왜곡되고 욕을 먹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또 이근호님의 언약사상이 욕을 먹어 견디지 못하는 분이
달려들겠죠....어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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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문제는
이근호 2004-05-07 10:16:54, 조회 : 158, 추천 : 12
신앙적으로 이야기하면 신앙이 없이 이야기 안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논리적인 바탕이 안되서 이해 못하겠다고 하고
성경으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해도 또 한국 교회 들먹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라는 이야기도 그렇게 부담이 된다면
차라리 "나는 눈에 안 보이는 예수님 운운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한국 교회의 정당성이 더 믿습니다"라고 솔직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귀하는 제가 보기에 자꾸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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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과연 문제는......
구득영 2004-05-07 10:37:13, 조회 : 140, 추천 : 11
박영선 목사를 두고 왜 한국교회가 침묵할까요? 그가 한국교회로부터 이단 소리를 과연 듣지 않았을까요? 물론 지금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보기에 이근호 목사님이 분명 님의 질문에 나름대로 성경말씀을 가지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님은 그것을 성경적이지 않다고 몰아부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님은 자기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제가 지금 말장난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말을 하면 안됩니다. 님은 한국교회를 옹호하면서 이근호를 이단으로 몰아부치세요. 그러면 이근호는 또 이근호의 길을 가면 됩니다. 저는 또 저의 길을 가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학이든 철학이든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그분을 영화롭게 합니까? 개혁주의 신학과 한국교회를 잘 보존해서 드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습니까? 아버지의 영광은 오직 아들밖에 없는데, 왜 자꾸 우리가 끼어들어가야 합니까? 그 아드님이 자기 피로 우리를 형제 삼아주시고 양자의 영을 부어주시면 감사해하면 되지 않습니까?
십자가 사건은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지 온 세상에 알린 사건입니다. 그 십자가 사건에 우리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지 맙시다.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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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
박홍섭 2004-05-07 16:00:17, 조회 : 276, 추천 : 22
이방의 운영자는
이렇게 삭제할 것을 뭐하러 지금까지 두고 보셨나요?
그리고 이근호님에게 제가 드린 두번째 질문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원한 것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설명에 대해서 다른 분들의 견해를 들어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근호님의 언약신학이 어떤 언약인지....
객관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비겁한 플레이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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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답변해야 합니다.
이석규 2004-05-07 16:21:43, 조회 : 155, 추천 : 12
하나님이 하나님을 구원했다고도 할 수 있는 말은
답변을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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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
이근호 2004-05-07 18:18:56, 조회 : 283, 추천 : 27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막으십니다.
그것은 죄악된 인간들이 생각하는 구원관이 악마의 지배하에서 나올 구원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구원관은 자기 중심적 구원관입니다.
거기에 부수적으로 자기 행함의 구원방식이 곁들여 등장됩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 소유, 자기 구원됨의 소유, 교회의 소유 같은 열매로 튀어나오지요.
따라서 누구든지 자기 구원됨에 공격을 가하면 기를 쓰고 악을 쓰면서 저항하고 반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 밖의 이방민족의 종교를 통해 보여진 양상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은, 예수님의 통일을 위한 구원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서 통일되게 하기 위한 구원입니다.
여기에 인간은 구원 의지는 전혀 반영이 안됩니다.
왜냐하면 구원될 자는 이미 창세 전에 성부와 성자 사이에 의논된 바로 끝난 이야기입니다.
아직 대상자가 태어나서 선이나 악을 짓기 전에서 이미 확정된 상황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이 우주의 운행을 통해 적용시키게 됩니다.
구약에 미리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 안에는 오직 '긍휼로만 구원'이라는 원칙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 긍휼을 위하여 언약의 대상이 되고자 뽑힌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의 죄를 귿대로 드러내게 됩니다.
그 죄란 제가 위에서 언급한, '자기 구원을 위한 구원관', 혹은 '소유하기 위한 구원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늘 죽게하시고 동시에 긍휼과 은혜로만 늘 살게 하십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진정한 언약의 성취는 흠없는 분의 희생으로만 되도록 이미 창세 전부터 확정되었음이 신약에 와서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즉 자신이 소유하기 위한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가 되기 위한 구원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성령님이 오셔야 비로서 그 은혜는 적용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정말 구원받은 자 안에는 언약적 요소가 늘 폭발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악, 즉 자신을 영원한 절대적 존재자로 구원되려는 욕망과 의욕이 피어나게 되고(계속 자기 점검을 시도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어느 정도 성화 단계에 속하는가?" 하면서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고린도후서 4:10-11의 말씀처럼' 성도를 늘 죽음에 넘기우고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만 그 죽을 육체로 나타나게 하사' 결국에 오직 예수님의 공로와 긍휼하심과 은혜만 증거케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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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 박홍섭 2004/05/07 22 277
[re] 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
구득영 2004-05-07 17:01:47, 조회 : 194, 추천 : 16
입장을 한번 바꿔놓고 생각해보시죠.
님의 그런 태도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했습니까?
그것은 말하기에 따라 만인 구원설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구원했습니다.
지금 칼 바르트의 이중 선택설이 머리속을 맴돌고 있습니까?
말꼬리 물지 말고 페어 플레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함부로 비겁하다느니 하는 표현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님과 같은 분을 한두번 대하는 줄 아십니까?
이 정도에서 그만하시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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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균 2004-05-07 19:55:32, 조회 : 203, 추천 : 22
구득영 목사님!
기억하시는지요
전에 '믿음은 예수다'는 용어로 인해 이근호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다시 또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용어로 인해 토론이 벌어진 것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역시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말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근호 목사님의 강의 중에는(어떤 강의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원하셨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말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말은 도통....
그런데 구 목사님은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를 구원하셨다는 말을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를 구원하셨다'는 말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구원하셨다'는 말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시는지요.
제가 생각할 때는 전혀 같은 의미가 될 수 없는데요.
예수와 예수 안에 있는 자가 같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같을 수가 없다면 구 목사님 역시 '예수를 구원하셨다'는 이 목사님의 말은 틀린 것으로 여긴다는 결론이 되는데..
전에 '예수는 믿음이다'라는 용어에 대한 질문에서도 지금과 같은 혼란을 보이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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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2004-05-07 20:28:08, 조회 : 184, 추천 : 11
히브리서 5:7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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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
정영균 2004-05-07 21:11:33, 조회 : 168, 추천 : 11
목사님 뒤의 구절은 보지 않으셨습니까?
히 5:9절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목사님은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를 구원하셨다'는 말은 틀렸다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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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2004-05-07 21:37:13, 조회 : 159, 추천 : 10
>무슨 말씀인지?
제 말이 그 말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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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균 2004-05-07 22:15:06, 조회 : 162, 추천 : 12
목사님의 답변을 보니 다시 예전에 '믿음은 예수다'라는 용어에 대한 논쟁이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목사님께 '믿음은 예수다'라는 말이 '믿음=예수'를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했었는데 처음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아서 저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시더니 결국 나중에는 '믿음=예수'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답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부연 설명으로 '믿음은 예수다 '라는 용어에 대해 겨우 조금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용어는 누가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없고 혼란만 가중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이 사이트에서 질문에 대해 답을 하시는 것도 결국 봉사입니다. 봉사란 목사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목사님의 봉사를 대하는 이웃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목사님이 사용하시는 용어로 인해서 혼란과 의문과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 수정하고 고치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은 목사님의 신학을 자신의 자존심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것으로 여기실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용어로 인해 타인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면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자세한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압니다.
목사님은 어떤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대 교인은 자극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자극을 주기 위해서 강한 문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깊이 고려해야 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자극을 주기 위해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이 복음을 제대로 증거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든지 평어를 써서 설명을 해도 귀있는 자는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 글에 대해 '제 말이 그 말 아닙니까'라고 답하신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말은 일반인들이 듣지 못한 생소한 용어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용어는 죄인에게 해당된 용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말이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막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구원관은 욕망에서 도출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구원관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에 대한 구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자기 욕망을 기초로 해서 해석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참된 구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을 보내신 것이고, 죽음에서 예수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건지신 것과 같은 본질의 구원임을 보이시기 위해 예수님을 죽음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히 5:9절의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를 구원하셨다'는 말이 맞는가를 물어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것으로 끝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필히 예수님을 구원하신 구원을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언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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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
이근호 2004-05-07 22:51:28, 조회 : 150, 추천 : 10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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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
정영균 2004-05-07 22:15:06, 조회 : 163, 추천 : 12
[re] [re] 삭제하지 말고 답변을 하십시오.
김대식 (Homepage) 2004-05-07 23:27:52, 조회 : 172, 추천 : 15
언어 배후 세력까지 염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근호 목사님의 사랑의 실천을 요구 하시지 마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하나님이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모두 내어주신 그 사랑을 바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은 행함과 분리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행함 따로 믿음 따로 분리 시킬려고 하는 시도가 인간의 언어 배후 세력에 의해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구원과 예수님의 구원을 따로 분리 시켜 적용할려는 시도가 예수님의 구원 보다 하나님의 구원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 라는 차이성을 자꾸 따로 보신다면 더욱더 헷갈릴껍니다.
예를 들어 믿음의 선배들은,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기다렸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은 가짜 하나님을 폭로한다는 거지요 하나님이라는 언어 단어 배후 세력을 폭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 8: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요 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히브리서 5장을 언급하셨는데요 5장 전체를 보시면 좋을까 합니다.
(히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의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하면 안되겠죠 대제사장의 순종이 없다면 우리의 순종도 소용없습니다.
부활도 마찬가지 입니다.(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구원이 부활입니다) 고전 15장
즉 부활의 첫열매가 없다면(하나님이 예수님을 구원하심) 우리의 부활은 아무 의미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막으시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것은 다시 노골적으로 말해서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서는, 인자가 들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고서는, 화목 제물이 되지 않고서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서는 없다는 겁니다.
똑같이 예수님 또한 인간의 구원을 막으시는 분입니다.
(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눅 10:22)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인간 구원을 막으시는 분입니다.(마 11:6)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입니다.
한국인의 언어세계관에 성경을 끌어들이지 마시고, 성경 말씀의 세계에 끌림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으시면 한국교회라는 한국인의 언어라는 (육체를 따라 난 것들) 그 허물 마저 손 놓게 하십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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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균 2004-05-08 06:12:31, 조회 : 116, 추천 : 11
귀하의 이런 식의 답글이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것입니다.
논쟁의 촛점을 벗어난 답글은 짜증밖에 나올 것이 없으니까요?
한국인의 언어세계관에 성경을 끌어 들이지 말라고 하셨는데 도대체 저의 어떤 부분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생소한 언어말고 평어를 쓰시라는 말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성경 말씀의 세계는 무엇으로 전달할 수 있죠? 언어 아닌가요? 그렇기 때문에 언어 사용에 주의를 하시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생소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말이 히브리서 5:7절의 한구절로 비춰 본다면 맞는 말이라 할지라도 전체를 놓고 본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말만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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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Homepage) 2004-05-08 06:52:56, 조회 : 133, 추천 : 11
논지에서 벗어났다면 죄송합니다. 짜증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토론이다면 이런 식의 답글을 던져 봄도 좋을 듯 합니다.
복음 자체가 생소한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논리 구조에 맞추질 않는 다고 봅니다.
또 복음 자체가 효과를 요구 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항상 낫선 언어로써 기존 언어를 깨뜨리며 증거 된다고 봅니다.
인간의 모든 언어는 죽은 언어입니다. 유독 살아있는 성경 말씀만이 활동하는 것에 촛점을 둔다면 낫설은 표현, 생소한 언어에 대한 불만은 가질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렇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 라는 표현으로도 충분히 복음은 그 역할은 다 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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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균 2004-05-08 07:50:40, 조회 : 154, 추천 : 11
언어는 생각이나 느낌, 감정을 음성이나 문자로 전달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장애인들의 언어수단인 수화도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귀하께서는 복음은 항상 낫선 언어로서 기존 언어를 깨뜨리며 증거된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언어를 낫선 언어 기존 언어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무엇이 낫선 것이고 무엇이 기존의 것입니까? 귀하의 언어도 낫선 언어와 기존언어로 구분할 수 있습니까? 수화도 낫선 것 기존의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까?
복음이 낫설게 등장하는 것은 복음의 사고방식이 기존의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 자체가 생소한 언어가 아니라 복음의 사고방식이 생소한 것입니다. 생소한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언어가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지요.
또한 낫선 언어로 기존 언어를 깨뜨리며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낫선 사고방식이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뜨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언어는 죽은 언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입술로 증거되는 복음도 죽은 언어입니까? 언어를 죽은 언어 살아있는 언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살아있는 언어를 하는 것입니까?
살아있는 성경 말씀이 활동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살아있는 성경말씀의 활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언어와 상관이 없는 활동입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는 표현 역시 인간의 언어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낫선 언어입니까 기존 언어입니까?
제가 이근호 목사님께 말씀드린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신 구원을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분’이라는 언어는 낫선 것입니까 기존의 것입니까?
언어란 표현의 기술입니다. 그러므로 언어 자체를 구분하기보다는 언어를 사용하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때문에 언어사용에도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구요. 사람들이 들어 보지 못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복음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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