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고 나서 ] 2004-04-02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고 나서 이근호 2004-04-02 20:48:07, 조회 : 399, 추천 : 40
어스레한 달 빛 아래서 예수님은 혼자 하늘을 본다. 그리고 고뇌한다.
"제가 어찌해야만 합니까?"라고.
"아, 피해 갈수만 있다면…"
자신에게 주어질 그 고통을 과연 쉽게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하신다.
그러나 정해진 때는 어김없이 들이닥쳤다.
고난의 열림이다.
다른 길은 허락되지 않았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현대 미학에서 극(極)사실주의는 허구적 세계의 허구성을 감추어보려는 방패막이 구실을 한다.
실재세계가 결국에는 가상세계에 불과함을 들키지 않기 위한 조치로서 극사실로서 실제를 대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영화는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 이르러 극도의 사실적인 묘사를 집중시키므로서 관객의 시간 호흡을 느리게 지나가도록 조정한다. 즉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에게 매맞는 장면이다.
잔디밭에 물뿌리개 돌아가듯이, 예수님의 맨 육체 위에 피가 사정없이 뿜어지고, 살쪼가리들이 튀어 공중에서 재처럼 난무한다.
그냥 좌시만하는 민중들,
(옆자리에 앉은 여자 분은 영화 처음부터 계속 울고 있다)
모성애만 남은 마리아는 십자가 지시다가 자빠진 예수님에게 다가간다.
끝까지 예수님에게서 자식됨을 건지려 한다.
죽을 힘을 다하여 모질게 예수님의 맨 몸에 납이 박힌 채찍질로 패고 있는 로마군병 뒤로 배경처럼 악마가 희죽 웃으면서 지나간다.
과연 예수님의 고난이 인간의 의도한 것인가, 악마가 사주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전략인가?
막무가내로 방치된 예수님의 수난을 접하면서 관객들의 미지의 그 누구에게 대한 불만스러움이 악마처럼 휙 지나간다.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놓고서 알 수 없는 울분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수난을 유발시킨 책임자를 색출해서 기어이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는 상식에서 나온 분노들이다.
과연 극도로 적나라한 십자가 묘사가 사람들로부터 복음을 고백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동정심이 오히려 복음을 가로막는다. 눈물이 오히려 복음을 녹아내려 사라지게 한다.
왜냐하면 물리적인 폭력 앞에서는 누구나 정의로움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의분은, 사람들마다 전혀 다른 예수상을 생각케 한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네 딸들을 위해 울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본 영화에는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물리적 고통에서 오는 심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영화가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 할지라도 정작 엄몰해오는 악마의 교묘함은 그 어떤 영화의 예술성으로 묘사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예수를 위하면서 한다는 일, 예수편에 서 있다고 장담하는 모든 자들, 예수님의 고난을 보고서 회개하면서, 이제부터 자신도 아뭇소리 않고 그 고난의 길을 따라 나서겠다고 그 모든 자가 다 예수님 반대쪽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물 위를 걸은 멋진 간증거리를 가지고 죽도록 예수님을 뒤따르겠다는 베드로가 결국 예수님을 저주한 것을 생각해 보라!
누구든지 예수님의 기도 없이 구원될 위인은 한 사람도 없다.
차라리 마음 바꿀 생각말고, 예수님의 기도를 잠잠히 믿는 사람이 되자!
##############################################################################################양무리마을에 대한 궁금증. 최종운 2004-04-04 10:24:22, 조회 : 494, 추천 : 33
목사님 ! 우리교회 홈에 글쓰기가 안되어 이곳으로 질문을 드립니다.이광호목사님 목사제명과 관련된 글을 읽다가 양무리마을에 대한 카페에 들어가 봤더니 방 하나는 이광호목사님 복권을 위한 방이고 하나는 이근호목사님의 신학에대한 반론이 도배하듯이 올려졌는것을 보았을때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양무리마을의 실체가 뭐고 권정희라는 분은 어떤 분이신지요?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소의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글을 대강 읽어 보았는데 아예 죽이기로 작정하고 독침을 쏘듯이 글을 쓴것 같습니다.
이광호목사님에 대한 글들은 우호적이고 이근호목사님에 대해서는 독기를 품은듯 해서 좀 얼떨떨 하고 두분을 잘아는 저로서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re] 양무리마을에 대한 궁금증. 이근호 2004-04-04 18:56:04, 조회 : 547, 추천 : 45
어떤 누구의 신학도 절대적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남들이 분석하고 반박하고 비평하는 것을 기분 나쁘게 여기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제대로 비평하느냐 아니하느냐 하는 문제도 그분들이 하나님과의 문제이기 때문에 거부반응을 가져서도 아니됩니다.
즉 '이근호' 혹은 '이근호 집단' 혹은 '이근호 신학 사수' 같은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거나 기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그것도 또한 악마의 시켜서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근호가 어떻게 되든 감사할 일은 하나님은 언약대로 일하시는 점입니다. 차질없이요.
이광호 목사님의 복직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로마서 12:19에 보면,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겨라 원수 갚는 것은 내게 (하나님에게)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광호 목사님께서 정말 복음대로 사시는 분이라면, 이 로마서12:19에서 의해서 이광호 목사님을 공격하는 자들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이광호 목사님께서 비복음적으로 사시는 분이라면 목사 제명이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게 됩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복직의 여부로서 사태를 볼 것이 아니라 과연 이 광호목사님의 전하고 고백하는 것이 성경적이냐 하는 점이 중요하리라 봅니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나 (이광호 목사님이나) 다른 사람이나 (아직 노회에 적이 있는 목사이거나) 그 사람의 형편을 주목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 사람의 입에서 무슨 진리가 나오느냐를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가을에 이름 모를 꽃이 지고, 봄에 이름 모를 들 꽃이 하나 피어나는 것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는 것처럼 세월이 지나보면, 우리 모두도 이러한 들풀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 질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추억!! 구득영 2004-04-29 14:24:43, 조회 : 269, 추천 : 24
요즘 정치권에의 화두는 '경제'입니다. 한나라 당이던, 열린당이던, 민노당이던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믿는 자들은 이 경제, 즉 먹고사는 문제는 항상 마귀가 인간을 유혹할 때 쓰는 도구임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사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국회의원 중에서 그 누구하나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기에 말입니다. 마귀는 얼마나 좋아할까요?
그런데 교회에서도 이러한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함'입니다. 신학서적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가 부담스러운지 '실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믿음도 이런 실천이 있어야 제대로 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야고보서가 상당히 고마울 것입니다. 시골에 있는 목사로서 이 행함 때문에 항상 기죽어 사는 것도 열 받지만 복음이 왜곡되는데 참을 길이 없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행함을 이야기해도, 이것이 사람과 그 환경에 따라서 얼마나 상대적인지 진지하게 한번 생각을 해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백 명을 전도한 사람 앞에서 10명을 전도한 사람은 온전한 행함이 되지 못하겠지요. 도무지 믿음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복음이 철저히 무시되고 왜곡되는 이 시대,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
==========================================================================[re] 복음에 대한 추억!! 이근호 2004-04-29 15:08:02, 조회 : 270, 추천 : 25
>지옥 속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구원이 뭔가를 모르는 법입니다.
훌륭한(?) 행함의 기억은 누구나 본인들이 만들어내어 남들에게 과시함으로서 이 세상을 지옥의 바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진짜 구원되는 자는, 자기에게서 죄만 나온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re] 복음에 대한 추억!! 구득영 2004-04-29 17:49:38, 조회 : 208, 추천 : 23
뉴스앤조이 최재호 기자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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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 -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분들이 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들자랑님께서는 어떤 이해를 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16: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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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관한한 저는 인간의 행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 주께서 쓰시는 것이 있을 줄 압니다. 그것은 저의 행함이 아니라 주님의 행함(이루심) 덕분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순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지요. 믿음에 관한한 저는 인간의 행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 주께서 쓰시는 것이 있을 줄 압니다. 그것은 저의 행함이 아니라 주님의 행함(이루심) 덕분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순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지요.그리고 여기에 인간의 게으름은 들어올 여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기에 그렇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행함만을 믿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봅니다. 믿음, 그러니 로마서의 행함과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은 전혀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행함은 로마서의 행함이고, 야고보서의 행함은 로마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믿음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행함을 가지고 믿음을 판단하려는 못된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니 로마서의 행함과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은 전혀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행함은 로마서의 행함이고, 야고보서의 행함은 로마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믿음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행함을 가지고 믿음을 판단하려는 못된 본능이 있습니다.저는 것을 마귀가 심어준 선악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함과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고, 이런 싸움은 언제나 교회안에서, 그리고 제 자신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원수는 이방나라가 아니라, 이스라엘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