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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진리는 진리 그대로 전해져야 합니다.] 2004-02-12묻고답하기-

진리는 진리 그대로 전해져야 합니다. (보충분) 이희진 (Homepage) 2004-02-12 04:14:37, 조회 : 331, 추천 : 39
"예수님을 믿는 것만 믿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믿음은 "예수님만 믿는 믿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이다. 오직 "위로부터 내려주신 믿음만이 믿음이며, 그 믿음의 실체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의 할 일은 허무한 논쟁이나 하고 있을 자들이 아니라 그 "예수님만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복된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파해야 할 사명을 감당해야할 자들입니다.
행함이란 우리가 선물로 받은 그 믿음을 적극 드러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믿음에 대한 정의를 깨달았다면 이제 그 믿음을 주신 분께서 하신 크고 놀라우신 일들을 적극 드러내는 일을 하세요. 그게 바로 행함입니다. 그 행함은 내가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라고 택하시어 보내신 자들이 당연히 감당해야하는 사명이자 의무인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이고 행함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자라면 허무한 논쟁에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이제 삶의 현장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세요. 그것이 복음을 깨달은 자들의 정체성입니다. 허무한 논쟁은 하나님의 말씀이 조롱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렇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세요.
저희 목사님께서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을 반대하시는 이유가 바로 인터넷상의 허무한 논쟁은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들로 하여금 조롱 당하는 모습들이 허다하기 때문에 저에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동안 인터넷상으로 토론을 왕성하게(?) 많이 해 본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때마다 전혀 의미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결국 인터넷의 한계와 논쟁의 끝은 허무함이라는 것을 늘 느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어지는 것이지 토론을 통해 결론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저는 충분히 공감하였고 오프라인에서 '면대면(面對面)'의 복음전파 방법이 역시 가장 좋은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죠. 제가 글쓰는 것을 막으셨던 진짜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그것은 제가 아직 "목자의 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도 이 근호 목사님을 닮아서(?) 그런지 선지자적 심성은 강하나 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어 그 영혼이 돌아 올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는 '목자의 심정'이 저에게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꼼짝없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의 논쟁들을 보면서 두 달을 꾹~ 참으며 인내(저에게는 인내였죠. ^^)해 왔듯이 앞으로도 인내하며 눈으로만 훑어보며 글쓰는 것은 자제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 동안 저를(?) 궁금해 하셨던 분들 그리고 메일로 성경공부에 대한 문의를 하셨던 분들께 그 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리겠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달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삶의 현장에서 잘 감당하시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분들을 위해서 "진리가 진리 그대로 전하여지므로 하나님의 말씀만이 왕 노릇 하는 곳"을 소개해 드리며 저는 다시 잠수하겠습니다.
*-----------------------*사망의 그늘에서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길밖에는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교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건물 안의 강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말들이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무지에 의해서 변질되어진 인간의 말들이 전해지고 있는 모습들이 허다한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위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시대마다 각 처소에 그 역할을 감당하는 그 한 사람을 심어 두셨음을 십자가 마을에 계신 분들을 보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이 곳 십자가 마을에 계신 분들이 세례자 요한이 감당했던 '소리'의 역할을 감당하고 계시다고 한다면, 저희 교회는 모세가 하나님과 백성의 사이에 서서 감당했던 '사이'의 역할을 함께 감당하므로 이 시대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임을 선포되어지는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때마다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비록 소수의 무리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 천("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수23:10)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르신 자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이천에서, 안성에서, 오산에서, 기흥에서, 서울에서... 성도의 절반 정도가 이렇게 먼 곳에서 오직 말씀 하나만 바라보고 수원의 자그마한 건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천에서 오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전도사였는데, 결국 그것이 치유의 은사가 아니라 자신도 죽고 남들도 죽이는 능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행하던 자신의 무지함을 수원을 떠나 멀리 이천으로 이사간 후에야 깨닫게 되었는데, 그나마 수원에 살 적에 원래 다니던 교회 못 나갈 때 몇 번 저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적이 있었는데 그 때 들은 말씀이 결국 그 분을 살리는 말씀으로 다가 와 자신도 살고 그 때 자기에게 말씀을 배우던 분들도 살리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지금 전도사 직분도 다 버린고 완고해 보이던 남편과 딸을 데리고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고 말씀의 깊이에 푹 빠져 계십니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깨달은 바를 전하는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그 분을 보면서 늘 느끼게 됩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혹시 교회 자랑, 목사 자랑, 목사의 종노릇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 질까하는 두려고 떨리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를 자랑할 때는 이 정도쯤은 아니 그 이상은 다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 이런 말씀 드리는 이유는 저와 성도들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모순된 적인 한 번도 없는 진리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있는 교회 중에 하나라는 것이며, 진리가 진리의 자리에 서서 왕노릇하고 있는 교회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지금 다니고 계신 교회 버리고 저희 교회에 나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의 저를 비롯한 저희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방황하며 애타게 찾아 헤메다가 찾게 된 그 진리의 말씀이 어떠한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해서 이렇게 이단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말들을 늘어놓으면서까지 그리고 글을 안 올리겠다는 결심도 져버리면서까지 말씀드린 것입니다. 괜한 짓 했다고 후회도 되고 행여 오해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되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는 이발사의 심경을 털어놓은 듯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
어쨌든 앞으로는 이런 씰데 없는 짓 절대로 안 할 것을 약속하며, 혹시 멜을 보내 실 분들은 아래 주소로 보내 주시면 반드시 답장을 해 드리겠습니다. 어제 먼저 멜 보내신 두 분께는 낼 꼭 해 드릴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 hasomi7@hanmail.net
끝으로 이 근호 목사님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강하게 외치는 소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긍휼의 신학을 더하여서 시대를 상대하신다면 목사님을 향한 오해와 불신들이 사라지리라 생각됩니다. 신학이 부족한 것은 더 깨달을 수 있는 것이지만 긍휼하심을 입은 자가 긍휼히 여지기 못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 선지자의 역할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 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소리를 누군가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해 주고 있다는 것은 목사님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하시는 사역을 통해 돌아 올 자들이 돌아 오게 되는 충만한 역사가 늘 일어나게 되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평안함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나는 쇠하고 예수님만 흥하게 되기를 소원하는 하소미 아빠가...
==========================================================================[re] 가 보고 싶습니다. 이 춘식 2004-02-12 07:47:12, 조회 : 284, 추천 : 19
이 희진님의 글을 보니 너무 반갑다는 마음이 앞섭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희진 집사님처럼 복음을 깨달은 자의 기쁨을 누리고 계신 분은 보기 드물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교회가 있다면 저도 정말 다니고 싶습니다.십자가 마을의 문제점을 우회적이지만 정확히 드러내신 것을 보면서 그동안 왠지 허전했던 의문들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긍휼의 신학이라.... 전 이 표현이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글을 안 쓰실려고 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한 편의 글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시원하게 해 주시는 군요.오해할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행함에 대한 집사님의 정의에 적극 동의합니다.기회가 되면 저도 그 교회에 한 번 꼭 가보고 싶습니다.
==========================================================================진리는 진리 그대로 전해져야 합니다. (보충분) 이희진 2004/02/12 39 332
[re] 너무나도 옳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근호 2004-02-12 07:56:21, 조회 : 323, 추천 : 31
아무리 이 세상에서 망가지고 파멸되었다해도, 욥의 고통에 비할 바가 없을 것이고,
욥이 아무리 심한 고통을 당했다할지라도 십자가에서 버림받은 예수님에게 주어진 저주의 고통을 능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명자에게 주님이 주신 일이란, 늘 사명자로 하여금 이 십자가 고통 안에서 도리어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하는데 있는 줄 압니다.
믿음이든, 소망이든, 사랑이든 모든 것이 예수님이 주신 것으로만 증거하고, 사명자 본인의 행함의 결과라고 증거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누가 봐도 주님의 사람이라고 확증할 수 있으리가 여겨집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는 하는 한 이런 사명자가 주님 재림 때까지 계속 우발적으로 등장하는 기적이 이어질 줄로 함께 믿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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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제가 부족해서 좀 헷갈린데요... 구도자 2004-02-13 16:15:40, 조회 : 376, 추천 : 47
인간의 편에서 자기를 높이려고 봉사를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요?
혹시 그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열심을 품고서 최선을 다할수도 있는것은 아닌지요..
그저 인간의 이기적인 기본적인 성격으로 단정짓지 말았음해요..
"행함없는 믿음"이란 있을수 없는말인것 같은데요..믿음과 행함은 같은 결과 아닌가요?
행함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것이 아닌지요?
그러니 직분을 맡음이 그저 인간적으로 높아지려는것만이 아니라 믿음도 있어서가 아닌지요...
좀 더 쉽게 설명좀 해주시면 갑사하겠습니다.(글이 길어지더라도 말이죠...) ==========================================================================[re] 아직은 제가 부족해서 좀 헷갈린데요... 이근호 2004-02-13 16:39:06, 조회 : 408, 추천 : 34
>전부다입니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습니다.
(예수님 빼놓고서는)모두다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두면서 일하게 되고 행위에 나서게 됩니다.
그것도 평생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런 죄성을 마음껏, 유감없이 발휘되기 위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re] 구약을 보시면........ 구득영 2004-02-13 16:54:44, 조회 : 332, 추천 : 31
인간의 죄가 얼마나 뿌리깊은 것이지 잘 나와있습니다. 이 세상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다들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그렇게 삽니다.문제는 누구 안에서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이곳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그것이 얼마나 상대적이며 애매한 것이지를 알자는 것입니다.그리스도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남들을 보고 자기처럼 안한다고 인상을 쓰는 것일까요?궁극적으로는 믿음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믿음이 있는 자는 더 이상 그런 행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만족해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반대말도 되고 동의도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지요. 우리는 믿음과 행함을 말하면서, 인간언어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언어는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구도자'라고 가명으로 글올리시는 분께... 손무성 (Homepage) 2004-02-13 17:09:11, 조회 : 377, 추천 : 28
안녕하세요. 십자가마을 관리자 입니다.
박상윤님께서는 십자가 마을에 글을 남기실 때 구도자라는 가명으로 계속 글을 남기시고 계십니다.
등록하실 때는 실명으로 등록하시고 글을 남기실 때 가명으로 하시는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마을에 접속하시는 분들 중에 홈에 방해가 되는 글을 남기시는 분들 중에 가명으로 글을 남기고 빠져 버리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홈에 들렸을 때 가명으로 글을 남긴 것을 보면 서슴없이 가명으로 홈 취지에서 벗어나는 글들을 마음대로 올리고 빠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글을 남기실 때 꼭 실명으로 글을 남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회원등록 및 글쓰기는 언제나 실명을 원칙으로 합니다.
ps.혹시 등록시에 실명으로 하셨다가 글 남길 때에 가명으로 명의를 바꾸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관리자의 사전연락 없이 올리신 글과 회원자격을 정지토록하겠습니다.
이를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리자 손무성 목사 드림
##############################################################################################이드로의 방문 성민혁 (Homepage) 2004-02-16 05:54:23, 조회 : 247, 추천 : 42
이00님 행악의 종자이며 행위가 부패하여(사1:4)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붙들지 아니하면 소망없음을 믿는 자가 무례하게 글을 올립니다. 글제를 이드로의 방문이라 함은 모세에게 사심없는 충고를 하였던 이드로처럼 이00님께 그렇게 하고픈 마음에서 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모두다 모든것에 진자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하신거죠(수1:7)종교개혁가들도 역시나 좌우로 치우치므로 오류들이 더러 있잖아요. 그러므로 현재에 사는 우리들은 '개혁된 신학' 으로 만족함이 아니라 항상 '개혁되는 신학'를 추구해야 할 이유가 있겠죠. 그리해야 할 여러 이유 중에는 다음의 말씀 때문이죠.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1:8) 특별히 님처럼 보편적으로 되어져 있는 신학이 아닌 다른 신학을 말하는 이들은 더욱 심사숙고 해야 할 일이죠. 그러므로 지혜로운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신학을 늘 살피며 이드로의 사심없는 충고에 귀기우려 고쳤던 모세처럼 다른 사람의 말도 귀담아 들을 줄 알아 잘못됨을 인식했다면 모든 불이익을 감수 하고서라도 즉시로 개혁함이 옳은 것이죠. 우리들이 잘못됨에서 개혁하기 어려운점 하나가 핍박(?)의 유무로 자기가 말하고 있는 '신학'을 확신해 버린다는 것이죠. 그러나 잘못된 신학을 가진 바리새인들도 핍박(?)을 받았음을 심도있고 냉철하게 묵상해 볼 필요성이 있죠. 그런데 예수님이 받으신 핍박은 부당하고 그들이 받은 핍박(?)은 정당하다는 것이죠.
모세에게도 이드로의 사심없는 충고는 필요 했습니다. 이 땅에 충고가 필요치 않는 완전한 '신학'을 가지고 있는 자는 존재치 않지요. 그러나 이미 숲속에 있는 같은 부류는 나무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숲밖에 있었던 이드로가 보았지요.
직무에 바쁘실텐데 시간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드로는 물러갑니다.샬~롬
==========================================================================[re] 이드로의 방문 이근호 2004-02-16 07:40:57, 조회 : 221, 추천 : 31
저를 두고 이야기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답변해 드립니다.
어느 시대마다,
스스로 도사요, 도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 나름대로 취미요 성격이기 때문에 나무랄 수 없습니다. 수염기르고, 개량한복입고, 혹은 머리를 다깍고, 주로 환경운동에 열중하고, 생명운동에 열중한 사람들이나, 깊은 산 기도원에서 감자나 유기농이나 도자기를 굽거나 약초 기르면서 오직 성경 보기와 기도에 매진하는 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아닙니다.
왜 사람들은 도인이나 도사가 되려는 걸까요?
그것은 신이란, 변화가 없고, 안정되어 있으며, 침착하며, 조용하며, 정도된 존재라는 인상을 갖고 있기에 그 신에 부합되는 자도 그와 유사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것 역시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한 말입니다.
문제는 신은 신 위에 또 신이 있을 수 없는 사실에 입각해서,
이런 도인들은 계속해서 자기 반성이나 회개나 자기 공부를 포기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개척교회 하면서 복음을 안다고 자부하는 목사들이,
너무나도 게으려서 공부(남이 지은 책들)를 계속하지 않으니 비록 교주 차원에는 아니지만(교회 규모가 너무 작아서 그렇지 규모가 크다면 얼마든지 대교회 교주들의 행세를 그대로 할 가능성이 큽니다.) 거의 교주처럼 교회를 사유화하려고 합니다.
그 증거로서는,
설교 할 때, 설교자가 스스로 자기를 치고, 설교자 본인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을 포함된 설교를 하지 않는 겁니다.
사실 말씀 앞에서는 누구나 골수를 쪼개시는 성령님의 지적을 받아야 마땅하고 그래야 늘 회개되는데 말입니다.
자신은 교인을 가르치는 사명을 가졌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주의 종'으로 간주하려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을 영원히 자기로부터 신학 강의나 들을 수강생으로 안다는 겁니다.
그러나 교회의 진정한 목회자나 설교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목사는 남을 가르칠 생각을 먹지 말고, 늘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생각을 가지고 설교단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현 시대의 온갖 루트를 통해서 가르침을 주십니다.
성경 뿐만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어느 분야든 남들을 통해 예수님은 성도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늘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유유자적하는 도인의 자세가 아니라 아직까지 부족하다는 느끼는 학생 신분의 자세입니다.
계속 설교자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서 인간은 평생 배워야 되고 공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무엇이 좌(左)이며 무엇이 우(右)이냐 하는 것은 공부를 해가는 과정에서 수시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전에는 좌였던 것이 우가 될 수 있고, 우였던 것이 좌가 될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좌우 모두 좌가 된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증거해야 하는가 하는 사명성이 중요합니다.
그런 와중에서 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의(義)가 이 우주의 원리임을 되새기면서 확신하게 됩니다.
이 확신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신앙 문제입니다.
"십자가 복음까지 버려라"고 요구하는 것은, 악마의 속삭임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그만 믿고 이제는 스스로 자립하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바다. 그래야 너는 절대신으로 환생할 수 있어"라고 하는 소리는 이호식 집단에서 가르치는 영지주의적 가르침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중요시 하는 자들입니다.
제가 믿는 바를 소개한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행하심을 통해서 우주를 재편성했으며, 그 앞에서 성도는 평생의 회개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만약, 어느 인간이든 자신의 완성됨을 증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적그리스도인 '자기 義(의), 자기 정당성을 자기 존재의 기본으로 삼은 사라들의 이단적인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신학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re] 십자가마을에는 왜 청지기가 없는가? 김재국 2004-02-16 10:57:04, 조회 : 219, 추천 : 26
샬롬이근호 목사님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저는 그동안 목사님을 보면서 목사님이 도사나 도인이 되려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그런데 지금 글을 보니 목사님은 다른 사람이 도사가 되려는 행동을 바람직 하게여기지 않고 계시군요.그런데 그것은 오히려 목사님 자신의 추구성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함으로써자신의 도사되려는 신학을 옹호하려는 고차원적인 책임회피로 보여집니다.
다른 목사들은 회개도 않고 자기부인도 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 존재 기반을 유지하는 데목사님만 예수님과 십자가복음을 외치신다고요?
혹시 다른 목사도 이근호목사님 처럼 예수님과 십자가복음을 사랑하고 사명을 실천하는 분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해보셨는지요?
성도는 평생 회개하는 입장에 있다는 목사님의 결론은 오히려 도사가 되려는 신학으로 보여집니다.자기義는 부인되어야 마땅하지만 평생 회개만 하는 사람이 도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고 주인과 청지기의 관계가 성립됩니다.이근호 목사님이 청지기와 자녀를 애써 회피하려는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있는 말씀을 도외시 하면서까지,자녀와 청지기로서 순종하려는 성도들을 적그리스도로 매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 공간 물질 인간 까지도 자기것 이라고 주장하지 않고은혜로서 받아들여 주님의 뜻에 맞는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십자가마을에는 왜 청지기가 없는가?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인간의 가치를 도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re] 십자가마을에는 왜 청지기가 없는가? 이근호 2004-02-16 13:48:40, 조회 : 234, 추천 : 24
남의 글을 건성으로 대했기에 그런 오해를 하시는 겁니다.
제 강의한 녹취록에 보시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의외로 예수님만 증거하는 자들이 많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하다고 해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으면 자신은 죄인에 불과하다고 증거하기 때문에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돈 관리를 완벽하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 관리조차 제대로 못하는 죄인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돈 관리술 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자들은 주님에 의해서 아직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없다고 여기고 보시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있다고 기대하고 여기고 보시면 거의 없습니다. )
이들의 있음을 이들의 솜씨나 공로 봐야합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공로로 봐야 합니까?
제발 관심사를 예수님에게 두시기 바랍니다.
##############################################################################################... 양병구 2004-02-16 23:01:13, 조회 : 264, 추천 : 29
[re] 그렇습니다. 이근호 2004-02-17 00:05:08, 조회 : 219, 추천 : 17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에
자기 사랑을 위해서 예수님의 사랑까지 차용하려고 합니다.
진정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최종적으로 주님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만 증거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에 지독한 자기 사랑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지금 주님이 사랑을 받아 산상보훈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악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더 상위단계로 조정된 숙제물을 안겨줍니다.
"그러면 네가 이런 수준까지 실천에 옮기는 위인이라면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고, 다시는 너에게 찾아오지 않으마. 이 거룩 수준을 달성할 수 있겠니?"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이것이 내가 치뤄야될 악마와의 영적 싸움이구나. 그렇다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서 기어이 악마를 이기고 천국에 골인하고야 말리라"라고 투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런데서 찾으려고 합니다.
아 이 지독한 자기 집념과 애착이 더욱더 악마의 노리개감으로 전락되게 합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re]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운 고백 김재국 2004-02-17 07:58:49, 조회 : 144, 추천 : 11
네예수에 대한 사랑이 없었슴을 고백합니다.저에게 예수사랑이 없다는 증거는아직도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예수를 사랑한다면 이 세상에서 이미 축출되었어야 할 텐데세상에 붙들려 그 부스러기로 연명하다보니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강성희 자매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햬석이 양심을 찌릅니다.자색 옷을 종교의 절대권력 으로고운 베옷을 확고한 구원받음을 자부하는 선민의식의 상징으로 풀이합니다.자색 옷과 고운 옷을 입고서유대의 절대 종교권력과 선민의식의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려는나사로를 핍박한 것은 아닌가?
오늘도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은하루하루 연장되고 있음이예수님에게 더욱 모독이 되고 있음을 회개하며 지내야겠지요.
이 세상에서살아남고 있는 자로서는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살인자'가 아닌 '살리는 자'로 살고 싶습니다. 성민혁 (Homepage) 2004-02-18 15:33:01, 조회 : 186, 추천 : 33
모세의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살펴보므로 우리들의 귀감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세의 일생에 전환점을 행7:35에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소명을 받기전 그는 "관원과 재판장"으로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난 후 그는 "관원과 속량자"로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모세의 간증을 듣고 곧바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라고 도전과 결단을 하고서 삶의 현장에 뛰어 들어서는 십중팔구 실패의 씁쓸한 잔을 마시고 말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원리를 따르므로 실패하지 않고 모세와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요? 그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세를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믿음을 나도 가져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모세는 이 믿음을 따라 "살인자"에서 "살리는 자"로 사는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나의 고갈된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여 "재판장"으로서 "살인자"로 끝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세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즉, 고갈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공급받아 "속량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자"로 일생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 '살인자'가 아닌 '살리는 자'로 살고 싶습니다. 이근호 2004-02-18 15:41:09, 조회 : 164, 추천 : 18
악마가 인간에게 안겨주는 최고의 선물은, '자아실현의 욕구의 달성'입니다.
남들에게 도움주는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꿈입니까!
이보다도 멋진 자기 존재의 긍정이 없을 것입니다.
악마는 인간에게 신이 되는 온갖 길을 제시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경말씀을 인용해서
인간의 신격화를 정당화시켜는 겁니다.
성경을 귀하가 같이 해석하는 것이 악마가 심어준 정신상태입니다.
모세를 만나 직접 물어보세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
모세 답변 왈.
"예수님의 죽으심 (별새)없이는 이곳 천국에도 오지 못할 위인에 불과합니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인간이나 모세에게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려내는 자' 역할은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고린도전서 15:45)
==========================================================================[re]냉무 성민혁 (Homepage) 2004-02-19 10:51:17, 조회 : 126, 추천 : 22 [re][re]'비본성적 행위'로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 이근호 2004-02-19 14:19:06, 조회 : 140, 추천 : 11
복음에 능력에는 인간의 능력이 가미되지 못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인간에게 주어지면
그 때부터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자기 본위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절감케 됩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성령받은 자는,
결코 자신의 위대해짐을 가지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마음 조차 먹지 않게 됩니다.
진정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한다면,
십자가 사건을 유발시킨 인간의 죄악을 더불어 말해야 합니다.
=========================================================================='살인자'가 아닌 '살리는 자'로 살고 싶습니다. 성민혁 2004/02/18 33 187
[re] '살인자'가 아닌 '살리는 자'로 살고 싶습니다. 이성희 2004-02-19 12:41:05, 조회 : 106, 추천 : 15
모세가 신을 벗은 것은 모세 자신의 겸손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모세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하나님이 벗어라 하는데 안 벗고 배길 인간이 어딨겠습니까??
모세든 엘리야든 성경에 나오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든지그들은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며전적인 타락으로 무능한 죄인들일 뿐입니다.성경은 이런 신앙의 인물들의 무엇을 본받으라고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우리 인간의 무능함과죄인 됨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그분의 택하심에 따라 어떤 이들의 인생에 개입하여 (님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비본성적인 삶인) 언약 가운데로 몰고 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성경의 어떤 인물을 예를 들면서 그들의 신앙심, 순종, 열심, 인격 등을 본 받으라는 설교를 들을 때면 가장 역겨움을 느낍니다.. 왜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성경은 오직 그분만을 증거하는 책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분을 알지 못하는군요.
요한복음 5장 39-40절"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re] 냉무 성민혁 (Homepage) 2004-02-19 13:07:05, 조회 : 111, 추천 : 11
[re] [re] 성민혁 님 이성희 2004-02-19 19:02:24, 조회 : 102, 추천 : 16
> 성민혁님글..>님의 의견에 온전한 동의를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비성경적인 요소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함과 함께, 예수님으로 인한 성령님께서 그 사람안에 거하실 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가 어떠한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증거합니다.>또한 그들을 우리의 거울로 주셨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10:5-6)>>'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1-12)
'비성경적인 요소'란 저의 글 중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이신지요? 성경이 예수님만을 증거하는 것이라 강조한 저의 말이 비성경적인 요소란 뜻인가요?
성경 뿐 아니라 성령께서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분을 증거하신다고 보는데요요한복음 15장 26절"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그리고 구약에 믿음으로 산 인물들 또한 그리스도의 모형이나 그림자로 역시.. 그분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지 그들 자신을 증거하기 위해 성경에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성경적이니 비성경적이니 하는 말씀은 조심스레 사용하셔야 될 거 같습니다.그리고 성경적이라 하여 모두 복음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얼마간 불순종한 요나에 대해 소개를 하셨는데..님이 인용한 몇몇 성구들을 저 또한 어찌 못 보았겠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기적인 세상인데요.
제가 한 말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누가 신발 벗는 일로 불순종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고 신 벗어라는데... 겁이 나서도 얼른 벗겠습니다.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이 벗어라는 신발 벗는 것 가지고 무슨 그리 큰 겸손의 행동인 것 처럼 해석을 하시는지요. 물론 옛날엔 노예들은 신발을 신지 않았으니, 신발을 벗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행동이다..뭐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여 여러분들도 모세처럼 겸손히 자신을 낮추십시오..그러면 하나님이 복 주실 것입니다.. 이런 식의 훈계가 따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것을 교훈하고자 하나님이 이 사건을 일으키고 성경에 기록한 것은 아니란 걸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의 얘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누구나 순종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순종케 하신 다는 것입니다.로마서 11장 32절에는"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하십니다.로마서 9장 15절"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출애굽기 10장 20절"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
위의 몇 구절만 보더라도 강퍅하여 순종치 않거나, 순종을 하는 것이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고하나님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저는 그래서 제가 혹 그분을 순종하게 될 때면 그분께 감사합니다.제게서 어쩌다 낯설은 사랑이나 희락이나 화평.... 등등의 모습이 비칠때면 성령의 열매임을 인하여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왜냐면 그것이 나의 열매가 아닌 오직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저 또한 그분이 강퍅케 하시면 불순종할 것입니다.저를 강퍅한대로 내버려 두셔도 애초부터 할말이 없는 죄인이니까요..
성민혁님글>모세를 비롯한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부어주신 성령님으로>말미암아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재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님도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저는 오늘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찌라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큰 희생을 치루시고 이루시고자 하신 일이>그 일 말고는 없기 때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옛모세가 죽고 새 모세가 된 것이 모세의 순종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요 일방적인 선택행위가 아니겠습니까?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것 조차도 그분의 일하심으로 알고 그분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는 주님 홀로 지셨습니다. 이제는 성령께서 성도를 견인해 가십니다.하나님께서 가장 큰 희생을 치루시고 이루신 일에 인간은 털끗만큼도 공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
==========================================================================[re]냉무 성민혁 (Homepage) 2004-02-19 19:38:36, 조회 : 111, 추천 : 11
[re] [re] 성민혁 님.. 책임전가라니요?? 이성희 2004-02-20 02:38:01, 조회 : 121, 추천 : 10
네..짧은 글을 통해 토론할 때에는 그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파악해야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저도 다시금 처음부터 님의 글과 저의 글을 여러번 읽었습니다.저의 글과 그 속의 성경구절도 다시금 차분히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성민혁님의 글>성경은 윗글를 통하여 전달되는 님의 의견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0)>'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이러한 말씀들은 일방적인 성령님의 견인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성령님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반면에, 성령님을 '근심''소멸'시키며 불순종하여 육체의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입니다.>>그리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자에게는 강퍅이란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유혹'하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약1:13..친히 아무도 시험하지>아니하시느니라)>오직 '시험'만 하실 뿐입니다.(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그러므로 순종과 불순종을 온통 성령님께만 책임을 전가 시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제 글이 순종과 불순종을 온통 성령님께 책임을 전가 시키는 것으로 이해가 되셨나요?불순종의 아들들에게서는 불순종 밖에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철저하게 순종하고자 살았던 유대인,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 너희 아비는 마귀니라..고 하신 주님을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만큼 하나님의 법을 잘 알고, 지키려고 애쓴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순종처럼 보이는 불순종이 얼마나 많은지..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불순종입니다.(롬10:3)애초부터 선악간 행할 능력도 없는 인간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것부터가비극이었습니다. 그런 선악 구조에 갖힌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고 언제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할 때는 가장 종교적인 삶으로 스스로 속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글이 성령님께 책임을 전가시키는 듯한 느낌에 대한 답으로 로마서 9장 말씀을 보시죠.인간들이 출생하기도 전에 이미 택하심을 따라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시는군요(야곱과 에서)그 분의 이름과 능력을 전파하기 위해 바로는 강퍅의 그릇으로 택하심을 입었군요.
19절에 보면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하나님이 다 정해놓고 왜 인간에게 책임을 묻느냐 뭐 그런 뜻이지 않나요?
20절에는 그렇게 선악간 판단하여 묻는 너는 누구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주권자라는 것입니다.타락한 후에 인간은 자신의 선악구조 속으로 하나님까지 끌여들여 판단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선악의 기준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창조주며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0절-23절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re] 냉무 성민혁 2004/02/20 22 115
[re] [re] 성민혁 님.. 질문요 이성희 2004-02-20 23:29:49, 조회 : 96, 추천 : 19
믿음과 순종에 대해 손바닥과 등의 비유는 참 재밌군요...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같이 죽는다는 것은 조금 비약인것 같습니다만^^그런데 님의 그 비유에 대해서 저는님이 말하는 "믿음"과 "순종"에 대한 용어의 정의에 따라 동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우리 두 사람의 논점이 조금 서로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님은 지금까지 이미 선택받은 자로서 믿음으로 순종할 수도 있고, 반면에 불순종할 수도 있다라는 성경 말씀을 피력하셨다고 하셨기에...다음 몇 가지의 질문을 먼저 드리고 답변을 듣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질문을 드립니다.
첫째로, 자신이 혹은 어느 누가 이미 선택받은 자인지 아니면 선택받지 못한 자인지 무엇으로 알 수 있는지요?
둘째로,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의 순종과 불순종이 어떻게 다른지요?
세째는, 혹자가 이미 선택받은 자라고 가정하고,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무엇이 순종이고, 무엇이 불순종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위 질문들에 대해서는 민혁님 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습니다.
==========================================================================[re] 제가 생각하는 성경적 관점에서 본다면... 권범식 2004-02-21 13:42:29, 조회 : 97, 추천 : 12
>>1. 사실 선택받았는지 아닌지는 주님께서 심판하실때 확실히 드러나겠지요...그래서 성도라면 남을 이야기 하거나 성도를 이야기 할때 함부로 선택받았다라는 말을 할수 없다고 봅니다(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중에 어찌될지 모르므로)...하지만 그렇다고 판단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그래서 어느누구의 말씀이나 행동, 설교가 성경적인지에 관해서는 성도라면 판단해야하고 판단할 수 있지요...일단 성도는 세상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틀리다고 봅니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일단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겠지요, 왜냐면 세상과 한통속이므로...성경을 쭉보면 선택받은 사람들의 일생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일생은 원래 세상적이어야(세상을 긍정하는)하는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어 세상과 다른, 세상을 부정하는 모습으로 바꾸십니다. 세상을 부정한다는 말은 육적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말하는 거라 할수 있죠.결국 이런 사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선택받은자의 모습인데 이들은 성경말씀과 같이 이 세상은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며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게 되겠죠...나그네 이기 때문에 세상에 미련이 없으며 사도 바울과 같이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게 되죠(왜냐면 천국이 자기의 집이므로)그러므로 선택받지 못한자는 위와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상을 좋게 여기므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며, 세상에 미련이 많아서 천국도 좋지만 세상에서도 뭔가 좋으네 있다고 여기는 생각으로 삶을 살게 되겠죠. 자꾸 자기의 세상에서의 처지를 중시하고 말씀조차도 자기 처지에서 해석하게 되며 모든 신...하나님 조차도 자기의 세상에서의 삶에 도움을 주실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죠...
2. 순종과 불순종은 사실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이미 타락이후 불순종으로 갈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순종과 불순종을 비교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지요. 율법에 순종하면 구원이요, 불순종하면 지옥인거죠. 하지만 이스라엘에 의해서 인간은 아무도 율법에 순종할수 없다는 것이 밝혀지죠...하지만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주셔서 순종하는 사람들을 만드셨는데 이것이 바로 복음인거죠...그래서 순종과 불순종은 우리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언제나 순종하시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성도(선택받은자)는 단지 그것에 동의하고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인에 불과 한거죠...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성도라 할지라도 현세(죄가 왕노릇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천국에 갈때(혹은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때)까지는 죄(불순종)를 지을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며 죽을때 까지 예수님께서만 하나님의 말씀에 전부 순종하셨다는 것을 증거하게 되겠죠...
3번은 2번에서 어느정도 설명이 되었습니다.삶속에서 어떤일을 하실때 이것이 순종인지 불순종인지 고민하시는 것도 좋지만, 어떤것을 하시던지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순종하셨음을 믿고, 우리는 이것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합니다.
==========================================================================[re] 제가 생각하는 성경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성희 2004-02-22 22:08:46, 조회 : 139, 추천 : 12
권범식 님의 글에 저도 동의합니다.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re] 성민혁 님.. 질문요 이성희 2004-02-20 23:29:49, 조회 : 97, 추천 : 19
[re] [re] 그러니 결국은... 구득영 2004-02-21 00:09:57, 조회 : 94, 추천 : 11
3번 질문이 제일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순종을 믿음으로 밖에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행함을 말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요즘 문제가 되는 주일성수도 그런 것이지요.결단코 주일성수를 율법이라고 말하지 않으니, 구체적 실천사항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천차반별일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니 기준도 없는 그것이 무슨 순종이 됩니까? 각기 자기가 알아서 '이만하면 되었겠지' 라고 하면서 행동하는 것이지요.똑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순종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그러니 이것은 결국 행함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구체적 실천사항이 없습니다. 누가 감히 건방지게 그것을 계시가 종결된 지금 이야기합니까? 교주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자기 삶에서, 자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삶의 결단을 보이게 됩니다.바로 그 결단이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런데 그런 삶의 결단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들은,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결코 믿음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 그것은 방종이고 교만이겠지요.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분의 증인으로 살아가면 됩니다.자기의 결단력조차도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기에,자기의 삶은 항상 부인되는 것이고 주님의 십자가 만이 자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가끔 야고보서를 행함의 차원에서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보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로마서를 읽을 때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라고 말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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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