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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복음과 다른복음] 2004-01-31묻고답하기-

복음과 다른복음 손무성 (Homepage) 2004-01-31 15:23:01, 조회 : 131, 추천 : 18
복음과 다른복음과의 차이는 간단하다.
복음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 곧 새언약의 완성은 예수님의 피 말고 그 어떤것도 첨가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처음부터 얘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은혜받고 그 다음 인간이 자기가 책임지는 행위를 첨가 한다고 구원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발생한 은혜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구원에 효력를 발생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은 율법지킴, 전통,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율법 지키기, 도덕 윤리적인 인간 되기,은혜받고 은혜지키기 위해 자기 책임하에 행하는 것 행하기...등을
추가 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말한다. 이것이 다른복음이다.
최근에 올려진 글을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조부상님의 글 인용 이곳 게시판 "제목:믿음과 행함은 뗄수 없는 관계다."에서 인용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도덕적 율법을 지키는 삶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중략)... 행동의 근원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그분의 말씀의 골자이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5:20) , 즉 하나님 나라의 충만함을 누리며 살아가려면 인간적으로 꾸며내는 종교 인사들을 능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이 의도하신 도덕법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말씀이다. 이것 역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훨씬 "넘어 서는"것이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 말은 많았지만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듣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行)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마23:3) 중략...믿음과 순종/믿음과 행함의 결합이야 말로 21세기에 들어서는 교회의 중대과제이다.
#유동화님의 글 인용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다음 1597번글 "하나님의 은혜는 스스로 지켜 나가야 한다"함
1.조부상씨가 보여 준 다른 복음은 :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믿음과 율법(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고, 죄 아래서 벗어날 수 없는 자, 심판 받아야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아브라함 이후 430년 후에 율법을 준 것이다.-로마서3장 19절[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 믿음과 순종/믿음과 행함의 결합이야 말로 21세기에 들어서는 교회의 중대과제가 아니고 다른복음으로 들어서는 최고의 가르침이다.
2.유동화씨가 보여준 다른 복음은 :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인간이라면 그 다름 인간 스스로 그 은혜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성령은 왜 주셨을까요? 스스로 인간이 관리 하는데 성령은 왜 오셨나요? 성령이 오신 것에 대해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John] 14장 26절 [개역]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John] 3장 5절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한 사람은 믿음과 행함을 결합시키려고 던벼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선물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그 자체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거나 잘 관리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은혜가 아니다. 이런 사람을 지칭하여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런 자에 대해 갈라디아서에서는 복음(은혜) + 행위(조부상님은 예수님께서 율법지킴에 대해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예수 믿고 그 다음 이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동화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다음 1597번글 "하나님의 은혜는 스스로 지켜 나가야 한다"함) 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조부상님과 같은 다른복음을 복음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갈라디아서 3장 10절의 말씀을 [개역]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로마서 [Romans] 3장 21절[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유동화님과 같은 다른복음을 복음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요한복음6장 39절을 [개역]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율법외 한 의로 등장하신 분(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 때문에 이제 우리는 나의 모든 행위와 상관없이(행위와 상관없다는 것은 내가 책임을 다해 행했던지 안행했던지 라는 말이다-그 다음 바울이 말하는 행하라. 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서는 주님께 붙어 있는 자이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표출되어 나오게 되는 산물들이다. 내가 책임져서 나오게할 산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 받은 자다. 은혜를 주신자도 주시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이도 주시다. 뿐만 아니라, 진정 우리를 흠도 띠도 없게 하시기 위해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분도 예수님이시다. 이 사실에 대해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그의 영광-인간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 말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을 믿는 자야 말고 성도가 아닐까?
##############################################################################################갈라디아3:3절에 대한 입장 손무성 (Homepage) 2004-01-31 19:01:32, 조회 : 128, 추천 : 18
이 글은 유동화님이 의문스러워하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갈라디아서 [Galatians] 3장 3절 [개역]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에베소서의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예정하심을 입은 자들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심과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음과 하늘의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통일(재회복) 되게 하는 일과 예정을 입은 우리가 기업이 됨(하늘의 몫을 상속받을 자)을 보장 하심에 대한 분명한 확증이요. 보증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것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제공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끼어들었다던지 끼어들어야 한다든지 하는 어떤 구석이 없다. 유동화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은혜를 자신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 자체가 말이 안된다. 왜나햐면 은혜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노력을 배제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에게 맡겨 그것을 인간이 관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관리 여하를 이미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갈라디아 3:3절에서 말하는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라는 것은 유동화님께서 말하는 식으로 말하면 인간이 성령을 받고 -은혜를 받고(유동화님 식 표현)-그 다음에 육체로 마치지 않기 위해 은혜를 붙잡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갈라디아 3:3절의 말은 그런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에베소서에서 말하고 있는 신령한 복으로 받은 주의 은혜를 인간의 개입에 의해 받은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낸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확증을 짓는 보증의 표시가 성도가 성령을 받은 것이다. 이것에 대해 변동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는 이 복음에 덧붙여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은 것 처럼 되돌아가려고 한 것 때문에 '성령을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하면 유동화님은 '어찌 내가 율법의 행위를 강조했느냐? 라고 할지모르나 율법의 행위라는 것은 인간의 가능성 곧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일에 대해(유동화님의 표현에 의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관리해야한다)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동화님의 이와 같은 입장이기에 관리자는 다른 복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동화님께 이 곳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이 무엇인지 읽어 보라고 말했고, 소경코끼리 더듬듯이 비판을 하지 말것을 말했으나 더 이상 변함이 다른복음을 글로 남기기에 이 사이트에서 글을 올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혹시 유동화님께서 이 글을 보시고 납득이 가신다면 기회를 드릴테니 다시 가입하시고 이곳의 글들을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부탁입니다. 아니라면 이곳에 글을 더 이상 회원됨과 글올리는 것을 사양합니다.
==========================================================================[re] 좋습니다. 유동화 2004-01-31 20:30:25, 조회 : 173, 추천 : 27
일단 유동화의 이름으로 글을 쓰게 해주신것에 대해 감사합니다.제가 잘사용하는 단어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네티켓은 지키겠다는 말입니다.손무성관리자님은 십자가의 마을의 주장에 코드가 맞으면 글들을 더보고코드가 맞지 않으면 반박의 글도 올리지말고 그냥 나가라 하시는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콩을 팥이다 하면 그냥 믿고 따르라는 말씀인지저는 십자가마을의 주장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반박의 글을 올리고 있는것 입니다.그런 반박의 글을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으로 비판 하지 말라니요.코기리의 전체를 보지 않코도 코끼리의 다리가 큼직하지 않고 개다리처럼 가늘고 휘어 졌다면그 다리만을 가지고도 반박할수 있는것 아닙니까?십자가마을의 코끼리다리를 설명함이 틀렸다십자가마을은 개다리를 코끼리 다라다 라고 하고 있다.어느것이 참인지 실물을 보여주고 증명하자 하는것 아닙니까?
갈 3:3절의 구절에 대해 다시 질문 합니다.질문: 하나님의 은혜 없이 성령을 받을수 있습니까?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받은자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자기의 육신과 정신이 나아 갑니까?율법의 첫 시작은 할례받음 입니다.그렇습니까?그렇다면 갈리디아의 사람(곧 그리스도를 믿는자)중에 성령받은후에 자기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율법으로 돌아간자가 있씁니까? 없습니까?만일 있는데 성령받은자가 율법으로 돌아가 생을 마치면 어떻게 됩니까?
디모데가 할례받은적이 있는데 이 질문은 나중에 경과를 보면서 제질문 하겠습니다.위의 질문만 간단히 답을 해주세요.
참고로 아래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표시 다음에 저의 답변 입니다.\\\
>이 글은 유동화님이 의문스러워하던 질문에 대한 답이다. >> 갈라디아서 [Galatians] 3장 3절 >[개역]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에베소서의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예정하심을 입은 자들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심과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음과 하늘의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통일(재회복) 되게 하는 일과 예정을 입은 우리가 기업이 됨(하늘의 몫을 상속받을 자)을 보장 하심에 대한 분명한 확증이요. 보증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것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제공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저도 백퍼센트 그렇다고 믿습니다.\\\
>여기에는 인간이 끼어들었다던지 끼어들어야 한다든지 하는 어떤 구석이 없다. 유동화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은혜를 자신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 자체가 말이 안된다. 왜나햐면 은혜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노력을 배제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에게 맡겨 그것을 인간이 관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관리 여하를 이미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마지막 생을 마감할때 까지 받은 그은혜를 우는사자같은 사단의 졸개로 부터 빼앗기지 않게끔끝까지 지켜야 하는것 입니다.그 지킴을 인간 자신이 하지만 지켜서 이긴자는 하나님이 이기게 해준것으로 영광을 돌린뒤인간 자신이 지킨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지킴을 받았다 라고 하는것 입니다.유혹에서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자는 하나님께서 떨어져 나가게 한것이 아니라스스로 떨어져 나간것이아니다 라고 하느것은이사람은 처음부터 은혜받은자가 아니었다 라는 논리밖에 설명할수가 없습니다.이설명을 하면 성경의 여러구절들이 모순에 빠지는 결과가 옵니다.성경은 무오류이며 무모순이기때문에 위와같은 설명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에서와 갈4:6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것은아들의 영 즉 성령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시기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 사람은 모두 구원 받았다 라고 할수가 있겠습니까?그러니 성경전체를 모순 없이 풀기 위해선은혜받은자 즉 성령받은자도 은혜에서 떨어질수가 있다(갈5:4)라고 해야 하는것 입니다.\\\
>갈라디아 3:3절에서 말하는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라는 것은 유동화님께서 말하는 식으로 말하면 인간이 성령을 받고 -은혜를 받고(유동화님 식 표현)-그 다음에 육체로 마치지 않기 위해 은혜를 붙잡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
>갈라디아 3:3절의 말은 그런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에베소서에서 말하고 있는 신령한 복으로 받은 주의 은혜를 인간의 개입에 의해 받은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낸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확증을 짓는 보증의 표시가 성도가 성령을 받은 것이다. 이것에 대해 변동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동의 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는 이 복음에 덧붙여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은 것 처럼 되돌아가려고 한 것 때문에 '성령을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하면 유동화님은 '어찌 내가 율법의 행위를 강조했느냐? 라고 할지모르나 율법의 행위라는 것은 인간의 가능성 곧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일에 대해(유동화님의 표현에 의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관리해야한다)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손무성님 갈라디아 교회교인이 그리스도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 받았는데왜 율법으로 의롭게 될려고 율법을 지킬려고 합니까?성령이 시켜서 그렇습니까?자유의지의 발동 때문입니까?십자가마을의 논리대로라면하나님의 은혜받은자이면 율법으로 돌라갈 마음이 생길수 없는것 아닙니까?그런데 성경은 은혜받은자가 율법으로 의롭게될려는자가 있기에그러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자가 된다(갈5:4)라고 말한뒤 율법의 행위를 중단할것을가르칠려고 편지를 쓴것 아닙니까?갈리디아교인이 은혜받았다가 은혜에서 떨어질 우려가 없는데도 이런 펀지를 바울이 썼다면바울은 헛편지를 쓴것이 됩니다.노파심도 이런 노파심이 없습니다.창세전에 택함 받았는데 율법으로 돌아가는 제스쳐만 치했지 실제로 율법으로 돌아가생을 마감 하지는 않는것이 창세전 택함받은자의 인생여정이란 말씀 입니까?창세전 선택 구원받음 이란 것은 결과론적 말씀 입니다.
\\\\>*유동화님의 이와 같은 입장이기에 관리자는 다른 복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동화님께 이 곳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이 무엇인지 읽어 보라고 말했고, 소경코끼리 더듬듯이 비판을 하지 말것을 말했으나 더 이상 변함이 다른복음을 글로 남기기에 이 사이트에서 글을 올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제가 다른복음을 전하고 있는것이 아니고십자가마을은 복음은 전하는데 성경전체를 조화롭게 보지 못하는군요.
\\\
>*혹시 유동화님께서 이 글을 보시고 납득이 가신다면 기회를 드릴테니 다시 가입하시고 이곳의 글들을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부탁입니다. 아니라면 이곳에 글을 더 이상 회원됨과 글올리는 것을 사양합니다. \\\===>서두에 썻지만 코드가 맞지 않으면 나가 달라는 말씀 이군요.즉 십자가마을은 한국교회를 비판 해도 되고 한국교회교인은 십자가마을을 비판 하는것은 보지 않겠다는 말입니까?그럼 십자가마을의 글에서 기성교회를 비방하는것을 즉각 중단 하십시요.그러면 오라고 해도 안옵니다.그리고 제가 여기에 글을 올리는것은본인과 나와 친분이 있고 나아가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형제자매인 분들이 십자가마을에서 날리고 있는 더러운 붓에그리스도 예수에 의해 입혀진 옷이 더럽혀지고 있기때문에당사자로써 또 피해자로써 여러분들의 더러운붓이 꺽어야 한다고 생각이 되기에시간을 쪼개고 글을 쓰는것 입니다.
저와 같은 분들의 글을 보기 싫어시다면한국의 다수교회의 교인의 믿음을 향하여 십자가마을의 잣대로 폄하하지 마시길 바랍니다.이상 위의 질문의 쉽고도 성실한 답변을 보고 싶습니다.
==========================================================================[re] 좋습니다. 손무성 (Homepage) 2004-02-01 16:59:01, 조회 : 99, 추천 : 17
약속한 바와 같이 더 이상 이 곳에서 복음이 무엇인지 아시고 싶지 않으신것 같군요.
지금 이시간 이후로 유동화님의 질문이나 대답 및 글 올림에 대해 사양하며 회원에서 제명하겠습니다다.이 곳에 들어 오시는 분들께서 다른 복음에 시달리거나 시간 보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미 님은 다른 복음에 대해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혹시나 님께서 이 곳에서 복음을 들을 귀를 가졌는가 싶었는데...역시...
그 동안 님을 통해 짧은 지식으로나마 다른 복음을 드러내신 것만으로 할일을 다 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
##############################################################################################양병구님께 올리는 편지. 김재국 2004-02-01 08:23:57, 조회 : 191, 추천 : 24
샬롬.추천해 주신 이근호목사의 동영상설교 (자유) 는 잘 보았습니다.음성과 글로만 대하다가 직접 얼굴을 보면서 들으니 감개무량했습니다.과학기술의 발달로 복음의 전파와 성도간의 교제도 1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시드니와 런던,지구 어느 곳에서든지 교제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집니다.형제님은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이근호신학은 과학기술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그런 관점으로 인간의 행위를 애써 자기신학에 맞추어 억누르는 것이 노장사상과무위자연론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지금 오가는 십자가 마을의 게시판 상의 토론도 과학기술(인간의 행위)의 결과고그 행위의 결과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행위는 구원을 받기 위한 노력이 아닙니다.구원에 대한 감사의 반응인 것입니다.
추천해 주신 이목사의 설교를 듣고 자유에 대해 눈이 띄였습니다.한마디로 자기충만의 상태인 것 같습니다. 더이상 원할 것이 없는-그런데 그 자유는 천국의 것이지 세상의 현실적 인간은 완성하지 못하는 자유인 것 같습니다.자유의 상태에 있다하더라도 인간은 지금 천국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러한 자유에 충만한 성도는 천국에 갔다온 사람처럼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하나봅니다.
머나 먼 타국에서 올바른 복음전도의 첨병으로 역할을 감당하는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저도 뉴질랜드와 호주에 몇일 묵은 적이 있었습니다.특히 시드니는 놀라운 곳이더군요.어떻게 먼지가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까?순간 저는 부패의 왕국 한국을 떠나 그런곳에 이민가고 싶더군요.그러나 그때 뿐입니다. 이미 부패와 시끌벅적한 엉터리 삶에 익숙한 제가그렇게 심심하고 깨끗한 곳에는 전혀 적응이 안되겠더군요.
왜 한국은 이렇고 시드니는 그렇습니까?이목사가 한국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라고 선포하둣이저도 선포합니다. 한국은 나라가 아니다라고.저는 정말 아이들에게 한국의 삶과 교육을 물려주는 행위가 심각한 죄악이라고통탄합니다. 차라리 낳지를 말지 한국교육과 한국에 어떻게 살라고--그렇다고 제가 한국인 되게한 하나님과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러한 한국사회와 교육을 온전하게 만들려는 행위와 개혁이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왜냐하면 부패의 한국이 있고 깨긋한 시드니가 있기 때문에,한국인간은 호주인간처럼 깨끗한 삶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여름철 한국의 해수욕장은 개판 쓰레기장입니다.그것을 개판되지 않게하는 행위 ,쓰레기장 된 곳을 청소하는 행위를이근호 신학은 정죄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해야 할 질서와 청소를 인간이 하는 것은 자기공로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주신 해수욕장를 인간은 은혜로 누리지만 질서와 청소는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두서없는 글을 이만 접겠습니다.양병구 형제님에게 주님의 평강이 있기를....
==========================================================================[re] 양병구님께 올리는 편지. 이근호 2004-02-01 09:34:18, 조회 : 188, 추천 : 15
귀하께서는,
'자연계시', 혹은 '일반 은총'이라고 불리는 이론에 대해서 좀 더 고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탐구하게 되면, 중세 천주교가 왜 교회의 전통과 행정과 경영방침과 의결 사항까지 신의 계시로 간주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오늘날 개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쓴 '과학의 정체'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인간의 문명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義)가 없는지,
그리고 그 의가 없기에 영광이 되지를 못하고, 예수님의 화목제물 속에 합류하는 것(세례)만이 영광이 되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자칫 하면,
자기의 인생 자체를 절대화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경대로 신앙생활 하셔야 합니다. 성민혁 (Homepage) 2004-02-02 17:10:10, 조회 : 289, 추천 : 56
*히 2:1-3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복음=새언약)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율법(옛언약)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사사롭지 않고 공평함)보응을(선악의 행위에 대한 앙갚음)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복음(새언약)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10:28-31 '모세의 법을(=옛언약) 폐한 자도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하물며 하나님 아들을(=새언약)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성도들)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첫번째-율법, 두번째-복음) 주께서 그의 백성을(=성도들)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re] 새 언약도 쌍방간(하나님과 백성)의 언약입니다. 이근호 2004-02-03 07:53:55, 조회 : 174, 추천 : 26
언약이 쌍방간의 준수해야 될 성질의 것이라는 말은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에게만 그러합니다.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언약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나 , 그것을 전파할 때나 , 성취에 있어 전혀 관여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언약원리'에 의해 덮쳐진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모든 인류가 아니라) 장치 오실 성자 하나님의 기능을 모형으로 보여주어야 하기에 그들은 '옛언약'의 범주에 한해서 준수해야 될 책무를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re]이근호님께 부탁드립니다. 성민혁 (Homepage) 2004-02-03 13:52:12, 조회 : 161, 추천 : 19
이근호님의 관심과 성의에 감사를 드립니다.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올린 본문에 대한 양병구님 식의주석형식의 글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re]이근호님께 부탁드립니다. 이근호 2004-02-03 15:33:16, 조회 : 162, 추천 : 17
양병구씨께서 바르게 잘 하셨네요.
==========================================================================[re] 새 언약도 쌍방간(하나님과 백성)의 언약입니다. 이근호 2004/02/03 26 175 [re] [re]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조부상 (Homepage) 2004-02-03 14:31:19, 조회 : 132, 추천 : 21
빌립보서 2장 12절을 보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시제로 되어있다.너희라는 것은 주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이고 보면분명히 은혜만 주장하면서 자기 행동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듯이합리화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그렇다고 행위중심의 구원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13절에 연이어 "너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은 우리의 행동에 대한 책임회피를 못하도록못을 박고 있다. 우리안에 행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데그분의 능력이 한 인간을 죄에서 떠나 선을 행하게 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것인가?절대적으로 잘못된 교리이다.인간은 그저 십자가 아래 철퍼덕 엎드려 "죽을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조아리기만 하면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죽을 죄인이로소이다는 먼저간 선진들이사야나, 에스겔, 베드로나 사도바울의 례를 본다면주님을 만나게 된 초기신앙때 전부 공통적으로 시종여일하게 주장하는 바다.그러나 여기에서 계속 머무르고자 하는 것은스스로 선을 행하지 않겠다는 죄악과 고집이나 마찬가지다.(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그것은 죄가 된다.)
거짓말이 하나님의 미워하심을 알고도 계속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면서 그저 "죽을 죄인이로소이다."라고만 하면서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외치고.. 십자가의 능력은 나를 구원시킨다고 주절대는아이를 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분명히 너희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성령의 내주, 보호, 인도하심이 있을 뿐 아니라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에 접붙임바 된 그리스도인이 당연한 맺어야 할 열매는 성령의 열매이며 선한 행실과 성결되고 화평한 열매가 아닌가?이런 것들을 모조리 도외시 한채로 십자가만을 외치고 노래한다고 하면그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오죽 답답하고 무너지겠는가?자신은 조금도 움직이지도 않은채 감나무에서 감떨어지기를 기다리는몰염치한 자녀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사람이 되게 하신후에그 새사람의 주도적인 새로운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데로 성장해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 육적 생명이든 영적생명이든 생명이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단지 십자가만을 붙들고 철퍼덕 주저앉아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되뇌이는 사람들은도데체 무슨 심보로 이런 무책임하고 기괴한 신학을 합리화하려 드는 것일까?
십자가만을 붙들고...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시키고(하나님의 일방통행이라느니..행동이 아무가치가 없다느니. )나는 손도 안대고 코를 풀겠다는 심보는 어디서 나온것일까?오직 십자가를 부르짖고 행위는 전적으로 부인하는이런 신앙생활처럼 쉬운것이 또 어디있으며, 이 같이 싸구려 믿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re]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김상철 2004-02-04 08:31:47, 조회 : 109, 추천 : 23
진작 이렇게 표현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가요
왜 그동안 부드러운 말에 아름다운 글과 아름다운 노래를 잔뜩 소개하던 그 처음 모습의 일관된 모습이 아닙니까. 원래 본 모습이 이제서야 나타나니 기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구원이 우리 소관이 아니라 주님 소관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먼저 된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자가 먼저 되는 순서 바꾸어버리기의 달인인, 주님의 지혜에 속한 일이니까요.두려워 하고 벌벌 떨면 다 구원된다는 말이 아님을 님도 잘 아실껍니다. 그건 오바죠. 연기죠 연기. 탈렌트 달란트
문제는 님이 어른다움, 부모심정, 자라고 성숙함 이라는 말을 통해 어른 흉내를 내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작 여기서의 주장은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주장들입니다. 어린아이도 쉽게 알아듣는 주장입니다. 그러니 싸구려 믿음이라는 조부상님의 표현이 딱 맞는 말입니다.
여지껏 보아온 어른스러운 믿음, 부모심정 같은 믿음, 자라고 성숙한 믿음들이 어디 가짜 아닌것이 있어야지요? 다 가짜 아니던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이란 타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타락과 다릅니다. 윤리에서나 철학에서나 교육학에서 등등 인간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상들의 타락은 수준 낮아지는 것, 진화 하지 않고, 퇴보하는 것, 짐승처럼 단순하게 밑의 삶을 사는 것 등등의 타락개념이지만(결국 수준 높아지고, 진화 발전하고,신 따라잡기, 영웅따라잡기, 믿음 따라잡기 등등이 성숙이겠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은 바로 그런것들(수준 높은 믿음, 자기 스스로 무럭 무럭 잘 자라고 성숙한 믿음, 영웅스러운 믿음, 뭔가 내세울만한 가치있는 믿음, 남과 비교해서 꿀리지 않는 자기가 봐도 멋들어진 믿음 등등)을 추구하는 겁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저 어린아이처럼 수준미달의 싸구려 믿음이라도 감사하게 여기는, 누구든지 그저 공짜로 주시는 그 은혜로만 바라보도록 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것을 부모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요? 퇴보 하심이 어떨런지요?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제발 조부상님 돌이키세요. 수준높은 믿음을 추구하는 님의 욕심은 남까지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부모는 다시말씀 드리지만 노시는 분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자기 자녀를 손에 곡 쥐고 여기 저기로 데리고 다니면서 부지런히 가르치고, 자라도록 먹이시고, 뱀을 달라고 해서 뱀주거나 독을 달라고 해서 독을 주는 부모가 아님을 아십시요, 좋은 것으로 먹이십니다. 그래야 자라거든요. 독(수준높은믿음 따라하다 가랑이 찢어진)을 먹고, 뱀(스스로 지혜 있다고 이정도면 성숙했지 아마)을 먹고 하나님 백성임을 자부하던 유대인 원가지들은 다 잘려나갔습니다.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접붙임 받은 우리 이방인이 그 은혜 앞에 수준 떨어지는 싸구려 믿음을 가졌더라도, 그게 어딥니까? 그 은혜만 바라볼뿐이지, 다른 뭐 어떤 것이 있어야지요? 어차피 불에 다 타버릴것인데요 뭘.
(마 15: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러니 열심히 밤 낮으로 쉬지 않고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시고 주야로 놀라운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을 주시는 주님의 열심 앞에 두손 두발 때시고, 놓치지 말고 주님의 일을 바라보심이 어떤지요, 전쟁은 우리 소관이 아니니 걱정 마시고 용사 되신 주님의 열심에 함께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왜 그 멋드러진 무기인 창과 칼로 구원을 이루실려고 합니까? 인간이 겨우 내세우는것은 창과 칼 말고 다른것 있던가요? 주님의 전쟁은 젖먹이에게 맡겨진 겁니다.
(시 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어른 흉내 그만 하시고 젖먹이가 되셔서 원수와 싸우심이 어떨런지요.
(엡 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엡 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참 재미있는 현상 김상철 2004-02-03 23:18:17, 조회 : 141, 추천 : 13
여기 십자가 마을을 보고 있으면 참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다른 기독매체나 기존 교회 사이트에서 발견 할 수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사이트에 불만이 있는 자들이 대부분 한결같은 성향으로 가고 있고, 거기에 대한 답변 또한 고집스럽게도 같은 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참 재미있게 보인다는 겁니다. 분명히 교단 교파 신학 다 차이나는 자들인데, 그 공격 성향은 결국 한결같은 공격입니다.
영지주의자들도 그랬었고, 근본주의자들도 그랬고, 개인적인 공부를 했던 자들도 그랬었고, 개혁주의자들도 그렇고, 복음주의자들도 그렇고, 기존의 건전한 신학의 영향을 받은자도 그렇고, 자유주의적인 신학에 영향을 받은 자도 그렇고 덩달아 안티들도 같은 공격을 하네요 기타 등등
한결같은 불만 사항이 뭐냐 하면 하나 같이 예수님은 믿음의 주체자 이시다 라는 것에 대한 불만입니다.
어떤 신학 성향을 추구하고 신앙하던간에 그렇게 되어 버리면 자기가 공들여 믿어오던 믿음들이 인정 받지 못하는 쪼다가 되어버리기에 그럴수 없다고 반발하여 나서는듯 합니다.
그리고 더욱 더 재미있는 현상은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라는 것이 믿음을 더 통일성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기 신앙적 배경을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결과로 미리 겁먹고 자기 믿음 변호에 나서는 모습 또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교파, 신학이 어떻게 되든 간에)
정말로 놀라운 것은 인간이 주물럭 했던 신학 사상들에선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질 않는데요, 왜냐 하면 내가 열심히만 하면 다 되니까 내쪽의 문제로 보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반해, 내 선의 문제에서 떠난 문제라면 그것을 주장해 버리면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도 무너뜨리고 그러면 기존 신학 모든 기독교로 잉태된 이단사상부터 건전 신학, 정통 신학 까지 다 무너지는 결과가 나타날까봐 겁을 먹고 똑같은 공격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 라는 이 이름만이 인간이 쌓았다는 정통 신학 마저 다 허구로 취급하면서 날마다 다시 믿음의 세계로 주님이 직접 활동하셔서 새롭게 다시 창조하시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살아나게 하는 그 이름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쓰레기더미 같은 인간 신학에서 못 벗어나는 구나 라는 것을 보게됩니다.
결국 남는 것은 예수 라는 이름 뿐일텐데 다른 것은 불에 다 타버리고 예수 라는 이름만 남을텐데 왜 타버릴 것을 붙잡고 같은 공격을 어쩜 그렇게도 같은 공격을 하는지? (그 본심을 다 살펴보면 같은 내용의 공격이더군요)놀랍게도 10여 년간 같은 싸움만 계속 해요. 다른 성향이 나타나질 않았더군요, 같이 공부해서 반대하고 나가버린 분들도 같은 불만이고, 질문 또는 게시판의 불만 자들이 다 같은 내용입니다.
그래서 무지 은혜 받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말씀대로 되어가는 참현실이 뼈 깊숙히 하나하나 새록 새록 알게 됩니다. 빛은 스스로 발하고 있음을 ...
여러분 빛을 흉내 내지 맙시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삭제 holyjoy (Homepage) 2004-02-04 04:44:49, 조회 : 112, 추천 : 12 삭제합니다.
[re]안티십자가마을 인 양무리마을의 출범을 보면서 김상철 2004-02-04 07:13:46, 조회 : 368, 추천 : 35
먼저 카페를 새로 개설 하셨군요.
좀 때늦은 감이 있는것 갔네요. 자료를 좀 놓치셨으니 따로 저장을 해 두었으면 권정희님이 주실수 있겠군요.
그런데 건전한 신학이 무엇이길래 서로 알지도 않은분 같은데 같은 편 먹기를 하는지요? 그냥 웃으워서 한번 리플 달아봅니다. 권정희님이 아쉽게도 여기 반대자들과 무조건 다 손잡을 분은 아닌것 같네요.(물론 최근 글이나 삭제된 글에서 다 잡을듯이 보였으나 그 타켓이 이근호 목사 라서 그런듯) 자신이 정통이나 건전한 신학의 배경을 한 자라고 말했다면 무조건 응하질 않을껍니다.
그러나 권정희님이 이근호 목사를 타켓으로 삼은 이상 또 모르지요. 끝까지 무슨 방법을 쓰든지 간에 씨울지. 이제 장외 전쟁이 된 이상 권정희 팬 카페가 그 인기대로 잘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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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리 마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
왜 십자가마을신학을 검토하려고 하는가? 번호:1 글쓴이: holyjoy 조회:2 날짜:2004/02/03 19:46
양무리마을에서 시도하는, 이단성있는 집단에 대한 건전한 비평과 토론의 제안으로서, '십자가마을의 신학', 곧 '이근호신학'을 그 첫번째로 잡은 것은, 이 '십자가마을'이 한국교회를 가장 심하게 피해를 주고 있다든 지, 가장 심각한 이단이라든 지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도, 이 '십자가마을'의 홈페이지를 우연히 들르게 되었습니다.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십자가중심의 신앙과 신학을 개진하는 것처럼 보여서 인상이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군데서 묘한 표현들을 발견하고 있는데, 그것을 '권정희'님이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 묘하게도 그 질문의 핵심을 피하면서 답변하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권정희'님은 그 질문의 핵심을 더욱 강조하면서 질의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중에 '십자가마을'의 묘한 문제점들을 발견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발견되었습니다. '권정희'님도 그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비판하면서, '십자가마을'의 그 '십자가'의 본질과 정체를 기술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 지, 권정희님의 글들이 올리는 즉시 삭제해 버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올리는 글들을 살제해 버리는 것 만큼, 비열한 태도가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들의 입장을 비판하는 글들을 어떤 이유의 설명도 없이 삭제하면서, 권정희님의 견해를 조롱하는 글들은 그대로 실어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이런 삭제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 그 홈페이지에서 권정희님의 의견에 공감해 주시는 어떤 분의 생각처럼, 그냥 그 홈페이지를 떠나버리는 것이 좋은 것일까? 다른 '주의 일'에 이 귀한 시간을 보내어야 보다 보람있는 일이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정말로 보람있는 일이라면, 이렇게 한국교회를 좀먹어가는 이단적인 신학이나 태도들에 대한 여러 분들의 생각들을 모아가다 보면,그것이 바로 한국교회를 위한 수고와 봉사들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분들이 있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분들과도 연계를 하면서, 정보를 공유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좀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비판과, 그 비판의 장이 마련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복음의 왜곡을 막는 수고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권정희'님과도 의논해서 이 카페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다고 해서, 권정희님의 의견이나 생각에는 비판할 것이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권정희님께서 원하십니다. 그녀의 생각에 대해서, 그녀의 신학에 대해서, 비판의 소리를 올려주십시오.진지하게 검토하면서, 주의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가 무엇인 지를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십자가마을'과 관련된 권정희님의 논의를 그 처음의 질문부터, 반복되어지는 이근호목사의 응답과 더불어서 모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깊은 관심이 개진되어서, 우리가 더욱 십자가의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증거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 주님, 참으로 주의 영은 증거의 영이시니이다(계시록19:10).
우리 가운데서 주께서 판단하옵소서.
양무리마을 지킴이
==========================================================================[re]고마운 일이지요 구득영 2004-02-04 10:43:05, 조회 : 161, 추천 : 12
이런 일들이 좀더 일어났으면 합니다.십자가 마을은 무너져도 주님만 증거되면 되니 말입니다.사실 권정희 사건은 좀 엉뚱하게 만들어진것 같습니다.제가 보기에 그분은 결코 이곳을 반대하기 위해서 방문한 분이 아닌 줄 압니다.그레도 신학을 좀 공부한 자로서 충고를 하기 위해서 왔는데 그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자빠졌습니다.사실 그런 한 수 가르치겠다는 교만(?)은 신학을 공부하는 자들에게 종종 나타나는 것입니다.그러면 이곳 분들이 사람을 잘못보았다고 죄송하다고 하면서 일으켜 세워서 커피나 한잔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여기에 어디 그런 여유가 있습니까?피흘려 싸우신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제한된 문자로 서로의 의견을 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지 않도록, 좀더 깊은 통찰력이 필요할 것입니다.이렇게 적으니 제가 제일 뜨끔하네요.
그리고 손 목사님, 권정희님의 글을 누가 지웠습니까? 목사님이 촌장으로 지웠다면,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싶은데 말입니다. 계속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권정희님과 이근호님의 토론 분석 天命者 2004-02-04 15:14:41, 조회 : 302, 추천 : 31
권정희님은 이근호씨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보고 있으면
그로인해 권정희님의 글에는 이근호씨의 이름뒤에 목사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예수를 믿는자가 상대방에게 형제의식을 갇고 있지 아니하면
이름뒤에 하나님의 은사인 목사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근호님은 권정희님의 글에 답을 달아도
권정희님의 이름뒤에 "성도" 라든지 "자매" 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이근호씨는 권정희님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형제자매로 인정치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근호씨뿐만 아니라 십자가마을에서 목사라는 호칭을 이름뒤에 붙이고 있는자들이
십자가마을의 주장에 반하는 글을 올리는 자들을 향하여 형제니 자매니 성도라는
호칭을 붙인것을 본적이 없는것 같다.
형제자매라고 붙여주기는 힘들것이다.
붙이는 그순간 십자가마을의 신학은 허물어 지기 때문이다.
신학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우위에 두는 십자가마을 사람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낀자가 있다면 권정희님 이름뒤에 성도라 붙일수 있는 목사가 나오길 바란다.
==========================================================================[re] 사람의 신앙을 검증하는 그 순간부터 이근호는 '신'이 된다 이근호 2004-02-04 16:36:22, 조회 : 290, 추천 : 28
호응해줄 사람을 찾아 두리번 거길 여유가 과연 성도에게 있을까요?
누가 내 편이며 누가 적인가를 살필 그런 자격이나 권리를 갖출 필요가 있을까요?
십자가 피 흘리심 앞에서,
예수님의 옷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가위 보를 하는 군병처럼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길 가에서
'누가 더 높으냐?'를 따지는 제자들처럼.
과연 '새로운 피조물'이 그런 짓하라고 성령님이 찾아와주신 겁니까?
'새로운 피조물'이란, 주님께서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폭로시키시고, 그 죄마저 십자가의 피로 용서해주심을 통해 십자가의 효력이 건재함을 증거하는 일을 하게 될 뿐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에,
구원되는 것도 순전히 주님 소관인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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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