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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미분화된 이근호목사의 사고구조에 대해서] 2004-01-29묻고답하기-

[re] 미분화된 이근호목사의 사고구조에 대해서 권정희 2004-01-29 17:01:32, 조회 : 138, 추천 : 23
손목사님, 보십시오.
이목사님의 저의 글에 대한 댓글을 보면, 내가 그의 신학에 대해서 무엇을 찬성하고, 무엇을 비판하는 지도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가,
그의 신학에 대해서 무엇을 동의하고 있습니까? 그의 신학에 대해서 무엇을 비판하고 있습니까?
손목사님께서도 그것이 구분이 되지 않습니까?
이목사님은, 제가 슬퍼서 운 그 눈물을 악에 바쳐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의 미분화된 사고구조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었고, 그로 인하여 왜곡되어지는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이거늘, 아, 그것을 "악에 바쳐서" 울었다고 보는, 이목사의 그 사고구조여! 인식의 구조여!
제가 예수님의 공로만을 인정하지 않던가요? 그 점에 있어서 이목사님의 신학에 공감을 하지 않았던가요? 제가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됨"을 역설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도, 이목사님은 제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의 글을 읽어보지 않았던지, 그의 매미채로 나의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의 비판은 이목사의 "십자가의 복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의 복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매미채로 그 십자가의 복음을 해석하는 바로 그 부분입니다. 그 부분에까지도 이목사는, "옳습니다"하고 동의해주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것이 "유치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판의 논지를 구분하지도 못하는 것도 유치하구요.
하여튼, 손목사님, 더욱 구체적인 비판이 곧 이어질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권정희
==========================================================================[re] 미분화된 이근호목사의 사고구조에 대해서 이근호 2004-01-29 18:21:00, 조회 : 108, 추천 : 21
귀하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증거'라는 말을 계속 흘리고 있습니다.성령이 임하시면, '주의 증인'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이 사실을 놓치고 있습니다.정신을 엉뚱한데 팔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귀하는 그 대신, '새로운 피조물'의 증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피조물'은 그 안에 주님께서는 일하시는 방식에 의해서만 규정되기 때문에
결코 '새로운 피조물'을 증거하는 식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직 '주님의 공로만'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는, 자신의 정체적을 인정해 줄 것만을 가득 챙겨놓고 삽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귀하는 '자신의 증인' 노릇만 한다고 보는 겁니다.
==========================================================================[re] 미분화된 이근호목사의 사고구조에 대해서 권정희 2004-01-29 19:13:02, 조회 : 151, 추천 : 29
이목사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목사님의 '증거'라는 말을 결코 흘리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주목하고 있는 그 '증거'라는 것과 더불어 진행되는 '증거의 방식'입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주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증인'이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발등의 불에 주목함으로 인해서, 자기 집 전체가 타고 있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로운 피조물의 증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똥'밖에 안되고, '죄인'밖에 안되는 나를 그리고 목사님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그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지, 계속 내가, 그리고 목사님이 "죄!죄!죄!"하면서 살아가도록 죄의 사슬에 계속 매어살라고 하시는 그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한쪽면만을 보지 마시고, 양쪽면을 다 보십시오. 그렇게 한쪽면만을 보면서, 복음을 왜곡시키고 있으시는 목사님의 복음"증거"의 "유치찬란함"을 곧 상세하게 적어올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나로 인하여 "자신의 정체성만을 가득 챙겨놓고 산다"고 하시는 목사님이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득 챙겨놓고 사"시는 바로 그 사람임이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손무성목사님께서 저에게 질문하신 질문의 요지이기 때문에,제가 그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정신차리십시오. 똑 바로 저의 글을 읽으십시오. 제가 지금 이근호목사님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근호목사님의 왜곡된 신학과 변질된 복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의 주님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께서는 어찌 자신의 신학을 비판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비판하고 있다고 여기시며, 자신의 모든 것을 비판하면, 곧 십자가의 복음을 비판한다도 여기시는지요? 아직 지적으로 미분화된 것이 아닌지요?
자신의 "복음"전개에 "옳습니다"고 하지 않는다고, "복음" 그 자체를 비판한다고 여기는 그 사고구조의 치졸함이여!복음을 사유화하고 있고, 자신의 전유물인 양 여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십자가의 이름으로 십자가를 모독하고 있군요.
정신 차리십시오!(이것은 목사님께서 저에게 먼저 하신 말씀입니다.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권정희
==========================================================================[re] 차라리 이근호 목사도 별수 없는 죄인이다! 라고 비판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요? 박병규 2004-01-30 00:34:37, 조회 : 112, 추천 : 17
제가 보기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시지만 가장 핵심적 논쟁점은 성경적 용어로 하면 '새로운 피조물'신학적 용어로 하면 '성화'일반적 용어로 하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사람의 상태'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더 쉽게 예를 들어보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골을 넣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기도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에 대한 권정희님과 이목사님의 견해가 다를 듯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밥퍼 목사님'에 대한 두 분의 견해가 전혀 다를 듯합니다.
==========================================================================[re] 차라리 이근호 목사도 별수 없는 죄인이다! 라고 비판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요? 이근호 2004-01-30 07:41:43, 조회 : 105, 추천 : 17
그렇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하심을 인간에게 적용하게 되면,
죄과 그 준동력에 작용하는 우발성으로 인해
신학과 인간의 지혜와 언어가 품고 있는 죄성으로 인해 구체적으로 정립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예를 들면, '밥퍼 주는 사랑'을 죄악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그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우발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는데 비해서,
만약 '밥퍼 주는 사랑'을 성령의 의로운 행위, 혹은 성도가 벌리는 거룩한 모습으로 파악하면, 바로 그것이 고정화된 가치체계의 기준(이것이 구약에서의 우상이 갖는 의미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인간 자체가 인간에게 우상으로 노골화됩니다. 따라서 인간 구원 의지도 우상입니다)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거스틴의 예정론과 삼위일체 교리의 수립 내력을 지켜보면서, "아 죄가 저런 식으로 움직이는구나"라고 이해하면, 거기서 주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만든 최상의 진리체제"라고 이야기해 버리면,
오직 복음의 은혜로만 구원하시는 예수님 보시기에 어처구니 없는 악마적인 고백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지혜와 행함보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위에 있고, 단순히 우위에만 점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주님께서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매일같이 분노로서 관여하기고, 사랑으로 용서하시면서 일하십니다.
==========================================================================[re] 차라리 이근호 목사도 별수 없는 죄인이다! 라고 비판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요? 박병규 2004/01/30 17 113
[re] [re] 그거야 비판할 것도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권정희 2004-02-01 00:27:37, 조회 : 105, 추천 : 24
저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목사님의 “밥퍼목사”에 대한 입장도 잘 읽었습니다. 솔직히, “이근호목사도 별 수 없는 죄인이다”고 비판할 것도 없지요. 당연한 이야기를 뭐 힘들여 할 것 있습니까? 문제는, 이근호목사가 자신이 별 수 없는 죄인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어서 비판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별 수 없는 죄인이라고 한다면, 다른 별 수 없는 죄인들에 대해서 그렇게 비판할 것 있나요? 그렇게 한국교회를 두고 비판하는 것이 자신은 별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밥퍼주는 사랑”에 대한 글에서만 해도 그렇습니다. 나는 “밥퍼주는 사랑”의 주인공이 누군인 지 잘은 모릅니다. 그리고 비판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 분의 행위에 대해서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지요. 왜 ‘밥퍼주는 사랑”을 죄악으로만 보거나, 성령의 의로운 행위, 혹은 성도가 벌리는 거룩한 모습으로 보아야 하는 지, 왜 그것이 그렇게 대립되는 것인 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관심이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랑”의 미추를 분석하기 보다는, 나도 가능한 한, 그렇게 ‘밥퍼주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목사님께서는, 그리고 저의 글에 댓글을 다시는 분께서는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에게 한그릇 “밥이라도 퍼주셨나요?”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비판할 것이 없지요?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 대한 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대신에 누군가를 판단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이근호목사의 신학에 대해서 비평을 하는 것은, 이근호목사의 신학으로 인하여 저질러지는 복음의 왜곡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분별하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밥퍼주는 사랑”을 보는 목사님의 너무나 이분화된 사고방식입니다. 흑백논리 말입니다. 왜 “밥퍼주는 사랑”을 “성령의 의로운 행위”로 보는 사람이 한국에 어디 있습니까? 혹시, 그 주인공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벌이시는 은혜의 행위로 보는 사람은 있을 지 몰라도….그리고 그것을 “성도가 벌리는 거룩한 모습”을 본다고 하더라도, 왜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지 않는 지 모르겠군요. 성도 안에 은혜로 역사하셔서 그 은혜의 힘으로, 전적으로 그 강권케하시는 사랑의 힘으로 이웃을 돌아보게 되는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요? 그 주인공이 그런 지 아닌 지 저는 모릅니다. 제가 지적하는 것은, 그런 내적 동기에 대해서는 하나님 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목사님은, 그렇게 만사를 흑백으로 나눠서 보실려고 하니, “밥퍼주는 사랑”을 흠모하면서 배울려고 하는 것도, “우상”앞에 절하는 행위로 보이게 됩니다.
이 목사님께서는, 하나님보다도 더 거룩할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 앞에서 따르고 본받을 인물들을 모범으로 제시해 주셔서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감히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구속”을 이루시기 위한 공로도 되지만, 또한 우리의 삶의 본이 되라는 것 아닙니까? (자유주의신학자들이 이 한 면만 강조해서 문제이지만, 보수주의자들이 “구속”만을 강조하다가, 십자가의 양면적 메시를 놓쳐버린 것 아닐까요? 빌립2:5이하를 참고하십시오.)
저와 이근호목사의 입장을 평행선같이 비교하셨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이목사님은 저를 “이단”이라 보고, “구원받지 못한 자”, “사탄에 속한 자” 등등으로 보는 지 몰라도, 저는 목사님을 “구원받은 자”로 봅니다. 만일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이렇게 목사님의 글에 일일이 비판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목사님에게 “전도”하겠습니다.
제가 비판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이목사님께서는,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 싶으면, 모두가 다 사탄입니다. 저를 두고도 여러 번 그러셨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사탄이 웃는 일 아니겠습니까?
“삼위일체”교리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목사님처럼, 죄의 각도에서 그 교리의 성립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교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만든 최상의 진리체제”라는 말이 누구의 말인 지는 몰라도, “은혜”라는 말이 “죄”라는 말을 전제로 하는 말이거늘, 그 말이 어떻게 “악마적인 고백”이 되는 것인 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최상”이라는 말이 거슬리지만, 그쯤이야 말을 하다보면, 진리체제중의 하나라는 말이구나 하고 이해하면 될 것인데, 이목사님께서는 “삼위일체”교리를 믿지 않습니까?
이 사이트에 “김인찬”이라는 분이 “삼위일체”교리에 대해서 이상한 얘기들을 하는 것을 읽었는데, 그 교리도 결국 이근호목사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까? “기존신학”의 “삼위일체교리”도 “자기의 존재유지를 위해서” 발명해낸 신학적 고안물일 뿐입니까? 그저, 그 교리의 성립과정에 있는, 종교회의를 통한 회의들 속에 있었던 추잡한 타협과 협잡들 속에 있는 인간의 “죄”들을 보면서 “아, 죄들이 이렇게 작용하구나” 고백해야만, 삼위일체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까?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조형한 터툴리안이 결국 그 당시 이단으로 낙인찍혔던 어떤 종파에 개종하고 말았던 것 때문에, 이 교리가 폐쇄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근호목사가 별수 없는 죄인이다 아니다하는 것은 저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그의 주장으로 인하여,야기되는 복음의 변형과 왜곡에 있습니다. 이 점에 유의하셔서, 그의 주장의 다양한 함축성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권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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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신학의 유치찬란한 점 몇가지(그 본론1) 권정희 2004/01/24 34 178
[re] [re] 똥! 똥! 똥! 아니라 죄! 죄! 죄! 입니다. 이근호 2004-01-25 08:15:50, 조회 : 140, 추천 : 26
자신을 똥으로 여기는 인식정도는, 현대신학보다 더 깊은 의식을 지닌 불교인들의 주특기 입니다.
육적인 인간들은,
자신의 겸손도 자신을 신격화 만드는 기능과 기본 자질로 보유하고자 합니다.
불교는 인간 육의 한계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학이 아무리 날고 뛰어도 불교의 무아론(無我論) 범주 안에 노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학이 원래 유(有)에서 유(有)를 설명하는 것이기에
그 유(有)에 대해 무(無)의 원천만 갖다대면 해명이 가능해지고 마는 겁니다.
즉 '가치없는 똥'이 이제는 '그 고유의 가치를 지닌 의미있는 똥'이 되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똥' 자체의 의미가 되살아 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게 육적인 인간의 적나라의 실체입니다.
현대 실존철학이나 노자, 장자 철학이 다 그런 겁니다.
김용욕 교수도 오직했으면 자기 호가 도올(돌)이겠습니까?
특히 스토아 철학 안에는 칼빈의 예정론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스토아 철학자들은) 그것을 '운명론'이라고 하지요.
이미 어차피 하나의 존재자로 되어 버렸다는 이 현실감을 어찌 할 수 없어 고대로부터 사색하고 관찰해 온 인간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라는 존재자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자기 존재를 절대 존재자인 신(神) 개념에 접목시켜 자아의 가치와 의미를 유지해 왔는데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사상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시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그 사유(思惟)의 방식으로 소위 영성 수련과 영적 세계관 수립을 통해 '자기 부인'을 인정받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절대신 개념에 토대를 두고 그 절대신 앞에서 자신을 '절대 똥!'으로 취급하여 자기 존재의 왜소함과 변화무쌍함에는 허약함을 스스로 수긍하고 인정하는 선에서
예수님이 요구하는 '자기 부인'의 요건을 맞추려고 한 것입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금식하면서 자신의 죄인됨과 자기 죄성을 절대신에게 사죄하는 방식 같은 겁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했죠?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것이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즉 어떤 식으로도 죄인이 의인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능력은 예수님 고유 권한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을 흉내내고 신학적으로 다듬어서 소유하는 것으로 의인됨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그것은 가당치도 않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언약적으로 볼 때, 인간은 아예 구원대상이 되지도 않는 겁니다. 특히 이방민족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 밖'에 있는 인간이 '예수 안'으로 들어오는 그 어떤 능력도 아예 인간들에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은 언약 안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언약적으로 봐서, '예수 밖'에서 '예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순전히 성령님만이 하실 일이고, 그 성령님도 자의로 하시기 않고 오로지 예수님의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진정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의 특징은,
어찌 되었던 인간은 태어나면서 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이제부터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만 의만 증거하게 된 피조물 되었음을 말합니다.
의인된 것도 '예수 안'에서 의인되었고, 그것은 피조물의 고유의 의미와 가치가 본격적으로 되살아남에서 나오는 의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작용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로 인해서 의인된 것 뿐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을 긍정하는 그런 식의 고백은 도저히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된 자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바입니다.
죄가 뭔지는 오직 언약을 알아야 알 수 있습니다.
언약은, 인간이 정리한 신학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의 맹세요 약속입니다.
귀하의 사고방식 자체가 죄의 관계에 있기에 나올 수 있는 '자기 긍정적' 사고방식입니다.
1년 동안 언약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re] 이근호신학의 유치찬란한 점 몇가지(그 본론1) 권정희 2004/01/24 34 178
(re) (re)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똥통! 그런데 우리는 왜 미련을 못 버리지? 박병규 2004-01-24 19:35:54, 조회 : 104, 추천 : 17
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이 목사님께서 기존의 모든 신학을 똥 취급하시고 기존의 신학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점에는 동의 할 수가 없군요. 제가 접했던 강의나 글에서는 여러 신학자들을 언급하시면서 그 분들의 신학의 탁월성을 언급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물론 그와 동시에 그 분들의 신학의 한계성을 언급하기도 하셨죠. 이 목사님의 신학의 핵심은 언약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간의 언약 그것이 핵심 아닌가요? 이 언약의 개념도 단순히 기존신학을 깡그리 부정하고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박형용 조직신학에도 나오고 일반적인 보수주의 신학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 신학의 핵심에 두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까요? 일반 보수주의 신학에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사이의 언약을 '구속언약'이라고 하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그 은혜를 누리는 것을 '은혜언약'이라고 하죠. 물론 '복음의 회복'이나 '하나님의 선택' 같은 책들에는 각주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이 목사님께서 기존 신학을 깡그리 부인하고 새로운 신학을 제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re] 이근호신학의 유치찬란한 점 몇가지(그 본론1) 권정희 2004/01/24 34 178
[re] 성의 있는 글, 감사합니다!! 구득영 2004-01-24 17:28:11, 조회 : 100, 추천 : 15
하지만 지금 쓰신 님의 글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근호 목사를 비판한 것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좀더 훈련된 문장을 쓰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다음은 전혀 오해입니다.
--------------------------------이근호신학이 찬란하지만, 그 대항의 대상이 그 “인식론적 단절을 경험하기 이전의 자기자신”에게 부단없이 돌려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애꿎은 “기존신학”에 돌리고 있고,애꿎은 “한국교회”를 향하고 있고, 애꿎은 “이단”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이근호 목사는 스스로 자기가 만든 신학에 의해서 이미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근호 신학(?)이 전혀 이런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똥을 이야기하면서 똥구멍을 언급하셨는데, 그것이 말이 안됩니다. 물론 의사들에게는 다르겠지만, 똥이란 똥구멍도 함께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 버려야 되는 것들입니다. 만약 이런 방향으로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근호 목사의 신학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기존신학을 연구하고 관찰하면서 등장하는지 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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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