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신학의 유치찬란한 몇가지] 2004-01-23
[re] 이근호신학의 유치찬란한 점 몇가지(그 본론3) 이근호 2004-01-29 10:15:30, 조회 : 121, 추천 : 15
정말 성도라면 십자가 복음에서 시작해서 , 마지막 증거가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그냥 생겨난 게 아닙니다. 인간들의 죄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해서 면제되거나 발생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는 모든 인간이 죽을 때까지 계속 피어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죄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행하심보다 인간으로 관심을 돌리는 그것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게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종교 행위요, 교회 세움이요 신학 정리요, 과학 발달이요, 기업 운영들이요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귀하는, 예수님의 행하심을 증거하기 보다는, 인간의 행함 속에는, 의가 될 수 있는 바를 따로 뽑아 낼 수 있음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러한 경향성 자체가 죄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다 이루심'의 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귀하는 이렇게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교계를 알고 세상 선진 문화와 문명의 혜택을 현재 입고 있기에 인간의 본성상 어지간하면 조금이라도, 예의상으로도 그 인간들의 행함에 대해서 찬양할 만도 한데, 저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죄라는 규정되는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그 어떤 위대한 신학이 나오고, 그 어떤 위대인 인물이 등장해도 제가 찬미하고 감사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저와 같이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 쳐다보는 형제, 자매가 없는지요?"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귀하는 이 고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행하심을 믿기 보다는, 인간의 행함과 지혜 속에서 예수님의 행하심이라고 할만한 것을 따로 찾아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선배 신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참고로 해서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행함과 인간의 행함이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간의 행함과 의식의 비교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증거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남보기에는, 예수님의 행하심을 현실 속에서 찾아내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 찾아내는 자신의 행함만큼은 그리스도 앞에서 부정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 되었다'라는 것을 원용하여, 이제 자기 행함 안에서는 죄 안되는 것도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워나가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은 '자기 증인'일 따름입니다.
정말 귀하에서 예수님의 증인이라면, 인간과 비교해서 예수님의 공로만을 의로운 것으로 인정하는 저를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냥 "옳습니다."하고 동의하고 동참하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단독 공적으로 달성된 의만 증거하자고 하는 저의 제안에 대해, "너는 뭐냐? 너의 그 신학은 대단하냐?"하며 시비 걸고 나서는 그 귀하의 의식은
제가 보기에 결국 예수님의 단독 공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인간의 행함으로 전환된 특별한 인간의 행함에 기대를 걸고 그 특별한 인간의 모습에서 신앙의 내용을 새삼 채워보겠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의 공로를 못믿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신앙없는 사람입니다.
왜 솔직하지 못합니까?
'유치찬란'하다고 모독감을 주는 것도 모자라서, 악에 바쳐 우셨다고 한다면, 이는 곧 "누구든지 예수님의 공로와 의만 주장하는 자는 내가 나서서 다 죽여버릴꺼야"는 악마적 본성에 의한 완화된 심리 표출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결코 성령께서는 이러한 사이코한 열등의식으로 예수님만을 증거케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정신차리세요!
저는 '새로운 피조물'의 완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됨을 증거하려는 겁니다.
도대체 이 점에 불만을 갖고 이의를 건다는 것 자체가 악마가 시키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