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침을 경계하며...VS 모든 이단의 사고] 2003-12-12
... 양병구 2003-12-12 08:14:52, 조회 : 157, 추천 : 10
==========================================================================[re] 치우침을 경계하며... 조부상 (Homepage) 2003-12-12 09:38:20, 조회 : 157, 추천 : 9
성경의 dogma는 하나만 강조한다면 필연적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십자가가 죄에 대한 준엄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의미하지만그것에만 치우치면 무섭고 잔인하신 분이 되실 수 있습니다.그렇다고 아들을 주신 사랑이라는 측면만 강조되고 공의의 측면이 상대적으로약화된다면, 그것은 죄와 상관없이 무조건 사랑만 하시는 천박한 감상주의적 사랑으로해석되고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측면만 강조된다면 행위위주의 바리새적 믿음이 될 수 있으며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측면만 강조된다면 운명론자와 다를게 뭐 있겠습니까?기독교적인 운명론자일 뿐이죠.
이것은 분명히 서로 상충하는 이론이지만 이 두 이론은 함께 강조되어야 하며또 이 두 이론 모두 진리라는 사실이죠.
사람들은 자신이 비교적 편안하게 안주하기 쉬운 하나의 진리만 붙들고 있으려는속성이 있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한가지로 치우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십자가마을에서 느끼는 바가 지나치게 한면만 강조하다보니다른 면을 강조하고픈 분들의 대화가 팽팽한 긴장감속에서 평행선을 달린다는 것이죠.
구원문제나 상급문제 역시 마찬가지 일껍니다.저는 민간 다큐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을 어떻게 선택하시는지에 대한 힌트를살짝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선한양심을 가진자가(어떤 아줌마)6.25사변 당시 포로로 잡혔고 어쩌다가 잡힌 포로들이다 도망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자신만 도로 잡힌 처지가 되었답니다.그래서 공산당들이 도망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라고 하자 끝까지 말하지 않았답니다."나 혼자만 죽고 말지."하는 일념으로 나중에는 생이빨을 뻰지로 다 뽑히고 손가락이 짤려서버려지는 처지에 까지 이르러 스스로 죽나보다 생각했었답니다.그런데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당시 불신자였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고음성을 따라 갔더니 기적적으로 살길이 열렸으며 살아날 수 있었다는 간증입니다.(기독교 방송에서 나는 왜 크리스쳔이 되었나..하는 간증프로그램에서 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캐이스는 아마 텔레비젼에서 시청하신분도 계실 껍니다.시골 산골에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인데 자신의 시어머니가 너무 착하셨답니다.심지어 이웃집 사람이 소낙비에 자신이 말려둔 고추가 다 젖었다고 한탄을 하자젖지 않은 자신의 고추와 다 바꿔주기까지 해서 동네 사람들이 바보할머니라고놀릴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는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며느리에게마지막에 자신이 언제 죽을꺼며, 또 죽기 전날밤에 무슨 일이 생길것을 예언하셨고(물론 맞았죠)죽는 그날 역시 건강한 모습으로 조금 피곤하다며, 며느리의 무릎을 베고 누워선녀들이 자신을 데리고 오는데 단정한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고 걱정하시더래요.잠이 들었나 싶었더니... 어느 순간에 보니 이미 돌아가셨더라는 것입니다. 복음도 전해듣지 못하였고, 양심을 다해 선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했던 두 케이스 다하나님과 연관 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안에서 느껴지는 진리입니다.
단지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는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로몽땅 다 쓰레기처럼 지옥행? 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re] 귀하는 여호와 증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근호 2003-12-12 11:01:42, 조회 : 189, 추천 : 12
여호와 중인에서 주장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사랑과 공의를 병행하되 항상 사랑이 우선이기에 결국 지옥이라는 것도 사람들로 하여금 일종의 겁주기 위한 한시적 비유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귀하는 또 통일교 교리를 주장하는 겁니다.
통일교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심어놓은 과오였다는 겁니다. 인간들이 설마 자기 말 안 들을 줄 몰랐다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실수한 바를 하나님께서 알아서 자기 선에 처리하겠다는 식으로 생명나무를 개방해서
에덴동산을 도로 '회복'케 하셔서 낙원을 원상복귀 하신다는 겁니다.
귀하는 또 안식교 교인과 같습니다.
사람들란 항상 마음이 어떻게 결정하기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 '조사 심판'을 감행 할 때, 그 때까지 운명을 유보해야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귀하는 또 볼테르의 무신론과 같습니다.
예수라는 작자는 십자가에 희생당하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겁니다.
그것 한다고 죄가 일시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좋은 말씀과 교훈으로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감동적인 산상 설교로도 충분했다는 겁니다.
사람이란 점차 점차 인격을 수양하므로서 나아지는 법이지 일시에 죄가 사라지고 의인되는게 아니라는 주장을 그는 하였습니다.
귀하는 스웨덴보르그 이단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성경이라는 계시 이전에 먼저 신과 인간의 존재가 있었고 그 사이에는 이미 계시가 성립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만 고집하지 말고, 인간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신을 향한 존경심과 감성이 모든 종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고, 성경은 그저 참고서로만 약간 활용하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깊은 영적 체험을 한 사람에게는 보편적 인류애로 그 사랑이 확장될 것이며 그저 기독교인 되기만을 요구하는 성경 따위는 귀하의 표현대로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성'을 갖기에 충분하기에 성경을 한 번 읽고서는 쓰레기 통에 던져 버야야 한다는 겁니다. 신과 합일되면 남은 것은 신이 내리신 보편적 인간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귀하께서는 온갖 이단이라는 이단은 다 품고 사시는 분입니다.
이번에는 무슨 새종교를 퍼뜨리려고 하십니까?
백날 해봤자 새종교 못 만듭니다.
귀하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기독교 2000년 교회사 중에 이미 다 나왔던 주장들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단 주장을 하신면, 십자가 마을 관리자에게 이 사이트의 이미지를 고려해 달라고 부탁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방송국은 라디오나 채널 TV는 이단들이 돈 내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re] 대화가 무의미함을 느낍니다. 조부상 (Homepage) 2003-12-12 15:45:23, 조회 : 164, 추천 : 18
님의 주장의 헛점과 치우침을 지적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님은 시종여일하게 그들을 정죄하고 끝까지 님자신만 옳다고 주장하시는군요.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re] 토론의 핵심은 시합이 아니라 성경 해석에 관한 봉사정신입니다. 이근호 2003-12-12 15:52:00, 조회 : 147, 추천 : 11
성경 본문을 제공하시고
그 해석을 내려주신다면,
이곳에 들리는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토론에 임하는 봉사정신입니다.
귀하께서는 성경 본문과 해석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봉사정신으로 임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절 행사 비 성경적인 것이다.(전격 공개)\\\ 김인찬 2003-12-15 00:31:49, 조회 : 194, 추천 : 3
[교회의 각종 절기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성탄절의 날짜는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러한 날을 정한 자체가 비 성경적인 것이 아닌지??
성탄절기는 사실 초대교회에서도 성경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사람이 임으로 만든 절기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절기가 되려면 성경적인 근거가 분명히 있어야 된다. 그런데 오히려 성경은 이러한 구약의 절기나 날짜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히) 신약시대 초대교회는 성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이 아닌 그 정반대로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고 예수의 부활을 소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러한 불법적인 절기를 성경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용기가 있는가??
예수는 자신이 살았을 때에 한 가지만을 기념하라고 가르친 것이다.(자신의 탄생, 세례, 기적, 등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 그것이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이다.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성경에 근거하고 사도들의 증언에 근거한다.초대교회는 유대인들의 각종 절기를 폐하면서 절기에 매이지 않는 신앙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앙이 이제는 퇴색하여서 마치 과거에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듯이 기독교가 절기를 지키는 비 성경적인 원리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구약의 절기도 예수와 관계된 것이지만 구약의 절기라는 것은 많은 부분 기념하는 것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절기는 과거 어떤 중요한 사건을(출애굽) 기억하기 위해서 절기행사를 대부분 시행하였다. 이는 장차 예수로 이룰 것에 대한 그림자적인 약속으로써 주어진 구약의 절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 절기의 특징이다. 이러한 구약의 절기가 예수의 죽음으로 모두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수로 과거가 된 것은 예수도 먼저 자신을 율법 안에 오게 하였고 그 다음에 율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부활의 육체를 입게 된 것이다. 율법 안에서 지켜졌던 것이 이제는 율법을 벗어난 예수로 말미암아 신약의 교회가 율법 안에서 지키던 유대인들의 절기에 매이지 않게 된 것이다.
예수의 탄생은 사실 유대인의 왕으로 먼저 왔던 것이다. 유대인으로 오신 왕이라는 의미이다. 예수가 세상에 만왕의 왕으로 탄생한 것이 아닌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사건이 그의 탄생이다. 예수가 탄생함으로 그는 먼저 유대인의 왕으로 죽기까지 활동한다. 예수가 이렇게 유대인의 왕으로 활동한 사역의 기간은 그가 십자가에 죽기까지의 기간이었다. 그 후 그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것이었다. 예수가 십자가로 죽기 전에 행한 모든 기적들은 십자가 죽음이라는 최종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일한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역의 과정이 모든 이방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예수가 십자가에 죽기 전 그의 사역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유대인의 왕이었다는 것이다.(옛 언약에 해당되는)
그렇게 과거 유대 땅 베들레헴에 유대인의 왕으로 왔던 아기 예수를 신약시대에 우리가 믿는 것보다는 그가 세상에 와서 한 가지 이루고자 했던 죽음과 부활의 주님을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에서는 만왕의 왕인 부활한 예수를 믿는 것이다. 이는 부활한 예수와 신약의 성도들이 항상 관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탄생을 절기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은 이미 지나갔다. 축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부활로 말미암아 이미 지나간 것) 만약에 이 땅에 예수가 다시 탄생한다면 축하하러 갈 수 있지만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의 탄생을 절기로 만들면 유대인의 왕을 절기로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가 유대인의 왕으로 온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십자가에 죽고서 만왕의 왕이 되기 위해서 탄생한 비하의 사건이다(특별한 육신이 아닌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탄생=성 부활이 오히려 의미가 있다) 이러한 예수의 비하 된 사건을 우리의 축제로 만들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만이 신약의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죄 사함의 사건인 요나의 표적과 같은 사건이며 이 사건으로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매 주마다 시행하게 된 것이다.(최소한 매 주마다 행한 것)이것은 성경에서 증거 되고 있으며 초대교회가 행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구원과 직접 관계된 성찬은 무시하고 과거 가톨릭처럼 예수에 대한 인간적인 탄생에 우리 신앙의 표준을 삼은 것이 문제이다.(아기 예수는 마리아와 관계되는 것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숭배사상에 기초-가톨릭의 영향)
성찬은 사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비극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성찬을 행할 때에 예수가 부활한 주일에 모여서 시행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죽음만을 가지고 성찬을 행한 것이 아닌 이미 살았다는 주일에 모여서 그들은 과거의 예수에 대한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즉 예수의 죽음을 성찬으로 기념하고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자신의 부활을 소망하려고 주일에 모인 것이다.(부활의 소망은 재림과 직접연결) 이러한 주일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구원의 중심이 예수의 죽음이라는 것을 크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예수의 죽음을 잃어버리게 만든 것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중요성을 사람 중심으로 둘 때에 나타난 것이다.
미사와 같이 의식만이 아닌 예수 부활의 날에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그가 이미 살아난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 초대교회에 형식이 따라오게 된 것이 성찬이다. 이러한 성찬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 할 수만 있으면 예수의 죽음을 매주 기념해야 되면서 예수의 부활을 매주 소망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거의 자동적인 모임과 의식이었다.
개신교는 오늘날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가르치고 그날에 성찬을 잊고 주님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이 부활의 신앙은 재림의 신앙과 직접 연결된다) 그 예로 여러 가지 각종 주일에 이름을 걸어서 각종 절기를 만든 것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자 어버이 주일과 예배라는 기막힌 일이 일어난 것이다. 주일에 사람이 중심이 될 수 없는데도 사람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주일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교회가 모였다는 것이며 이러한 것이 절대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이 중심이 된 것은 이렇게 이상한 절기를 만들어 놓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땅에서 절기를 만들 만한 어떤 내용도 교회에서는 없다. 어떤 사람도 죄인이며 그들의 업적은 사람들에게 기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만이 그러한 업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위도 사실 신앙으로 보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참 생일이 있다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날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기념하는 것은 우리의 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그 어떤 의도 없다.(죄악 중에 출생) 오직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먼저 죽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한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만이 우리의 신앙의 감사 행위가 된 것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우리의 생일을 지키듯이 예수의 생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만든다. 예수는 이미 새로운 생일이 있다. 그것이 부활이다. 이미 새로운 육체로 부활한 그가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서 하늘에 계시는 것이다. 그럼으로 사실 예수 부활의 날에 우리가 모이게 된 것이고 그 부활을 소망하는 것이다. 예수의 생일은 사실 유대인을 위한 생일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또 한번의 생일이 있는 것이다.
그 또 한번의 생일이 예수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활이 있기 전 우리는 우리들을 위한 십자가를 보게 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구원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사실 매주일 예수의 참 생일인 부활을 통해서 자신의 부활을 소망하는 동시에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표적인 예수의 죽음을 기념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유대인에게 찾아 온 것보다 예수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찾아온 부활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다.(예수 자신도 이일을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증언한다) 유대인으로 온 예수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살아난 그 일이 모든 죄인에게 더 중요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가 육체로 세상에 오심은 그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왔으나 그러나 먼저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 먼저 일하고 그 후 그가 십자가에 죽고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만왕의 왕으로 우리에게 부활하여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새 언약의 출발이 예수의 죽음으로 성취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죽기 전에는 누구도 새 언약에 온전히 적용되지 못하였다. 예수의 죽음이 있기 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여전히 유대인의 왕이었고 예수는 여전히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 때에는 신약의 시대가 아닌 것이며 구약의 시대에 있었고 그들이 모두 옛 언약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세례요한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직 그 때에는 새 언약의 체결인 십자가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죽음으로 새 언약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왕은 지나갔고 예수의 과거 모든 사역은 예수의 십자가로 이루어져서 새 언약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새 언약의 시대에는 우리가 기념할 것이 있다면 옛 언약에서 새 언약의 출발인 그의 죽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념의 대상이 된다.
예수가 죽기 전 유대인의 왕으로 일한 모든 기적과 행위는 기념이 아닌 이미 지나간 교훈으로 남겨진 것이다. 만약에 예수가 죽고서 살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예수의 이러한 행위를 기념할 것이다. 왜냐하면 죽기 전 모든 것이 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과거 죽기 전 예수가 병든 자를 고쳤던 일이나 예수가 기적으로 바다를 걸어간 것이나 예수가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인 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궁극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행한 것이고 또 하나는 가장 큰 구원의 죽음을 이루기 위해서 준비 된 과정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있는 우리는 과거 예수가 죽기 전에 행한 기적들은 우리의 구원의 표적이 아니며 오직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 죽음이 바로 새 언약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옛 언약에서 행한 예수의 기적도 새 언약에 있는 우리에게는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가 죽기 전 행한 기적을 오늘날도 이루어져야 된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그 일은 기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닌 십자가를 이루려고 걸어간 준비된 길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구원의 표적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신약 시대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표적은 예수의 탄생도 예수의 기적도 아닌 예수의 십자가라는 사실이다. 이것만이 유일한 요나와 같은 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표적인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찬이 이미 사도들에 의해서 교회에 명령 되었는데도(만찬) 이것을 소홀히 하고 다른 절기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각종 절기들은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이미 예수가 하늘에 부활의 주로 살아 계시기에 매주일에 부활을 소망하고 모인다는 것이다. 이는 따로 부활절을 갖아야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매 주일이 부활절이 된다는 것도 아니다. 매 주일이 절기가 아닌 예수의 부활을 소망하기 위해서 모인다는 것뿐이다. 오순절은 이미 성령이 왔으며 이는 구약의 오순절을 성취하였다. 즉 성취한 오순절을 지키는 것은 구약으로 돌아가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오순절에 이룬 성령의 강림으로 세상에 있는 성령시대에 이미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추수감사절이라는 것은 더욱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신약에서 유지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실수 이다. 구약의 절기는 유대인의 것이다. 이러한 절기가 있어야 한다면 다른 유대인의 절기도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십일조) 구약의 절기는 예수가 오셔서 이루실 것에 대한 약속의 성격이다. 이미 예수가 오셔서 구약의 절기를 패하신 것은 그 절기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대부분 이루어진 것이며 또는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구약의 추수감사는 신약에서 영적 구원의 추수) 신약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아닌 추수 감사를 하면 된다.
만약에 추수감사절기가 타당하다면 우리가 감사할 내용을 모두 절기로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된다.(생일감사절, 결혼감사절 등) 사실 이러한 비슷한 일이 있다. 그것이 교회들이 행하는 각종 기념행사이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몇 주년 행사 등이다. 교회가 몇 년 되었다는 것에 대한 행사는 절기와 같이 지켜지고 있는 실정이다.(사실은 예배당이 몇 년 되었다는 것을 교회가 몇 년 되었다는 것으로 오해한다) 지 교회가 세워진 것에 대한 행사가 거부되어야 하는 이유는 초대교회의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모든 교회의 출발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의 동상을 만들어서 사람을 기념하는 타락한 일도 있고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념하는 것으로 건물에 사람의 이름을 지어서 기념하는 비 성경적인 행위도 즐비하다.
부활절, 오순절, 각종 절기들은 신약시대에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절기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러한 것으로 우리 신앙의 기념과 행위를 삼는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빠지지 말아야할 성찬을 약화 시킨 것이다. 주님의 명령과 사도들의 명령과 초대교회의 전통인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만찬을 우리는 거의 약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주의 만찬도 사실상 절기가 아니다. 절기가 아닌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기념일뿐이다. 부활절이 정당화 되면 주님이 죽으신 유월절이 정당화되고 주님이 안식하신 안식일이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은 이러한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사실 구약의 절기는 구약에서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부활절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이 부활을 했으니 부활절을 만들면 주님이 금요일에 죽었으니 신 유월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 할 것이고 또 주님이 토요일에 안식하셨으니 신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억지 주장이 정당화 된다는 것이다. 단지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에 모이는 것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활한 일요일이 매주 있듯이 매주 모이게 된 것이다. 만약에 일요일이 한달에 6번 있었다면 그렇게 모였을 것이다. 이는 주님이 부활한 날에 모인다는 의미일 뿐 그 날이 신성한 날이 되거나 절기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날에 비해서 일요일 날이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중요한 날로 모이게 된 것이다.(예수의 일요일 부활 사건으로 인해서 일요일이 성도들에게 중요한 날이 된 것)
그리스도의 죽음이 없었다면 교회가 있을 수 없고 세상의 모든 구원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는 애찬(성찬)을 매주일에 갖아야 되는 충분한 명분이 있는 것이다. 교회의 각종 절기는 헌금과 관계된다. 상당한 헌금을 차지한다. 이러한 사실은 물질과 절기가 별개가 아닌 것이다. 여러 가지의 절기로 헌금을 걷어내는 것은 사실 교회들의 물질적 세속화의 결과이다.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성탄절 행사의 비용을 선교에 써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먹고 마시는 사이게 지금도 굶어서 죽어가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우리의 축제가 아닌 우리의 자비를 원하신다. 모든 교회가 성탄의 비용을 선교지역에 보낸다면 고통 중에 있는 선교지역은 적어도 성탄절이라고 부르는 기간에는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을 것이다.[다른 글들은 기독교 신문들 안에서 자유게시판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김 인찬 목사]
==========================================================================[re] 성탄절 행사 비 성경적인 것이다.(전격 공개)\\\ 이석규 2003-12-15 12:15:21, 조회 : 152, 추천 : 11
예, 요즘 교회가 지키는 모든 절기가 다 그렇다는 점에 동의 합니다.신약에 예수님이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믿음과 성찬식 밖에 없다고 배웠습니다.
참고로 제가 배운 것 중에 하나는세례 요한의 생일이 유월절이고 예수님은 6개월 뒤에 태어나셨으니 생일은 초막절일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보음 1;14)
이 구절에서 거하시매란 단어가 타바나클인데 영어성경에 원어 그대로 쓰였군요.초막절이란 뜻이랍니다.
==========================================================================[re] 타바나클이 아닙니다. 김우성 2003-12-17 15:19:14, 조회 : 106, 추천 : 9
요1:14절의 "거하시매"라는 단어가 "타바나클"이라고 하셨는데, "스케노"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장막이라는 뜻도 있습니다만, 절기로 해석하기엔 좀...
==========================================================================[re] 타바나클과 스케노오에 대하여 스트롱 사전 검색을 해 보니... 이준 2003-12-17 17:36:04, 조회 : 108, 추천 : 9
다음은 스트롱 사전 검색 결과입니다. 제임스왕성경에는 dwell이라고 되어 있지요.
코드 번호 : G4637그리스 원어 : σκηνο?ω영어 음차 : ske?noo? skay-no'-o어원 : From G4636; 사전적 의미 : to tent or encamp, that is, (figuratively) to occupy (as a mansion) or (specifically) to reside (as God did in the Tabernacle of old, a symbol of protection and communion): - dwell.->천막을 치다, 캠핑(야영)을 하다, 즉 (비유적인 의미로) (주거지를) 점유하거나 (특정한 의미로서) (마치 하나님께서 보호와 교제의 상징으로서 구약시대의 성막에 거하셨던 것처럼) 머물다 : - 거주하다
따라서, 타바나클의 의미가 흔히 "장막절(초막절)"이라는 말로 굳어져 있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요1:14에서 사용된 "스케노오"는 개역성경 본문 그대로 "거하시다"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이석규 형제님께서 굳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스케노오의 어원이 스케노스, 즉 타바나클이기 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
코드 번호 : G4636그리스 원어 : σκη?νο?영어 음차 : ske?nos skay'-nos어원 : From G4633;사전적 의미 : a hut or temporary residence, that is, (figuratively) the human body (as the abode of the spirit): - tabernacle.->오두막(임시 막사) 또는 임시 거처, 즉 (비유적으로는)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곳으로서의) 인간의 몸 : - "타바나클(장막, 성막)"
어쨌든 앞서 올려놓으신 글들을 대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타바나클의 의미가 그저 명절이라는 시간적 차원이나 성막과 같은 특정한 공간적 차원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관계성)는 데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특정한 시기나 물리적 공간에 묶여 계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시간성과 관련하여 볼 때, 지키려면 맥추감사절이나 언제인지도 모르는 성탄절,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추수감사절 따위만 지킬 것이 아니라, 유월절, 속죄일...등등 모두 다 지켜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그리고 오늘날 교회당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무슨 그 옛날의 성전이나 되는 것 마냥, 교회당에만 모이면 살 길이 생긴다는 식으로 떠벌리는 것도 문제이지요. 자세한 "내막"은 이근호 목사님의 "교회를 넘어서"에 잘 피력되어 있습니다.
==========================================================================성탄절 행사 비 성경적인 것이다.(전격 공개)\\\ 김인찬 2003/12/15 3 195
[re] 짧은 글 추가합니다.(감사) 김인찬 2003-12-18 13:36:20, 조회 : 99, 추천 : 7
[추가]성탄절과 아기예수 찬양은 예수승천 이후 성경 어디에도 강조되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오히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 그들의 신앙의 절대적인 중심이 된 것이 사실이다.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예수 승천이후 아기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찬양이 초대교회에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요한 계시록을 보면 우리는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그곳에서 찬송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아기예수가 아닌 죽으시고 부활하여 계시는 어린양 찬양이라는 사실은 우리들의 신앙 기준이 어디에 있어야 되는 것인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곳에서 아기예수 찬양이 아닌 죽으시고 부활하여 현재 살아계시는 주님을 죽은 성도들이 찬양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지금 살아계신 주님 앞에서 찬양해야 되지 과거 아기예수를 찬양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토요일 안식일을 거부하는 신약교회이다. 이는 토요일 안식일 이전 그 어떤 것도 날짜숭배나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re] 성인 예수님에게 찬양해야지 설익은 아기 예수는 겅배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인데..... 이근호 2003-12-18 17:11:16, 조회 : 174, 추천 : 11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심의 의의 안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마땅히 아기 예수님에게도 경배해야 합니다.
동방박사나 시므온 선지자가 결코 아기 예수님이 다 잘아날 때까지 찬양을 유보한 것도 아니요,
아기 예수님이 장차 하나님 말씀을 다 수행해야만 한다는 조건을 걸어놓고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 그 자체를 말씀의 성취로 본 겁니다.
크리스마스 절기를 지키는 것과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크리스마스 절기를 지키는 것은, 연말에 몫돈으로 들어오게 되는 헌금을 챙기기 위함입니다.
##############################################################################################이번 인천 모임에서의 주제는 타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는가? 입니다 이근호 2003-12-18 07:42:45, 조회 : 144, 추천 : 7
일반적으로 무종교에서 단순히 교회에 나와 복음을 이해했다고 했을 때,
그 분들이 알고 있는 십자가가 과연 어떠한 내용으로 정립되어 있을까를 목회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란 필히 주변에 둘려쳐져 있는 죄가 있기에 그 속에서 발생된 사건인데,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죄라는 것이 단순히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이고, 반사회적으로 이웃에 대한 해약을 끼치는 정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정도의 죄라면 여타 종교에서도 철저하게 정죄하고 관리하고 제거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공연한 과도한 행위가 되어 버립니다.
과연 다른 종교에서 이 십자가 사건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지를 알아서
이미 스스로 기독교 신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의 십자가 이해와 과연 일치되는지 아니면 또다른 차이가 있는지를 를 필수적으로 살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십자가 의의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십자가를 이해하고 있는 자는 결국은 구원될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슬람인, 유교인, 힌두인, 불교인, 무속신앙인, 그리고 세속적 지성계에 속한 사람을 거론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