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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십자가 마을의 치명적인 결함] 2003-12-05묻고답하기고린도후서

[십자가 마을의 치명적인 결함] 2003-12-05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십자가 마을의 치명적인 결함
조부상 (Homepage) 2003-12-05 10:04:24, 조회 : 211, 추천 : 18

<<< 고쳐야 완전히 고쳐지겠습니까? 10번? 100번?
혹시 고쳤다고 장담했는데 도로 탈나면 또다시 100번?
그리고 최종적으로 "수리 끝났습니다"라고 외치는 그 기준과 모델과 샘플로서 이 시대, 이 땅에 어느 교회, 어느 누구로 잡을 수 있단 말입니까?
따라서 변화될 수 밖에 없을 것 속에서 변화되지 않는 것을 증거하고 의지하며 기쁨으로 사는 자가 성도입니다.>>>
ㅡ 이근호 목사님의 글 인용 ㅡ

십자가 마을에서 주장하시는 바가 십자가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며
오직 십자가만이 복음이라고 하는데는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그 이름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양대 속성 중 하나가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속성이시자 성도의 당위입니다.

주예수께서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도들이 철저하게
하나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요17:15)
같은 성질이 아니고서야 어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거룩한 성질은 그 속성상 거룩함과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거룩함과 죄악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물과 불이 하나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근호 목사님의 사상이 위험한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죄의 굴레
죄인됨의 굴레는 그대로 두고, 십자가만을 의지하자고 주장하시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만을 높이고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증거하는 것으로 일견 비추어 지겠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그의 명령의 反해도 된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라는 도의 초보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혹은 살전 4:3절에 기록된 다른 말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등등 거룩함을 요구하는 말씀들은
많이 있습니다.(일일이 구절들을 표시하는 것은 생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리될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고 죄인됨만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어차피 최종적으로 수리되지 않을 일....시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암시를 주고 계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반쪽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과 말씀에의 순종이 양쪽 다리처럼 함께 걸어 가야 온전한 신앙의 걸음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 밑에 굴복하는 것 만이 모든 것이고 능사이며, 말씀에 순종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인간 자신을 드러내려는 가치없는 것이라는 뉘앙스로로 일괄 매도하는 것이야 말로
위험한 일입니다.

가장 성경적인 주장 같으면서도 가장 비성경적인 주장이 바로 한쪽만 강조하여
믿음로만 치우치는 것이 아닐까요? 파급효과를 생각하신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신앙사상 전반을 주도 면밀히 재 검토하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변화되지 않는 것을 인정함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안에서 넉넉히 변화됨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요?
그러나 변화의 방법에서 인간노력이나 인간 주도가 아니라
성령의 주도하심으로 ..성령의 내주 충만하심으로
새사람으로..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품의 표출이나 열매의 드러남이라는
의미에서의 온전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ㅡ예그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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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십자가 마을의 치명적인 결함
이근호 2003-12-05 12:54:27, 조회 : 210, 추천 : 12

성령님이 안계신다고 한다면 귀하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1:17-18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제가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3:15-19의 기도는 보다 이 대목의 실제적인 내용이 나오는데요 거기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이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충만',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을 뜻합니다. 곧 십자가 사랑의 충만이지요.

그 사랑이 능력이 되는데

그 능력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4:7-12까지 잘 나와있습니다.

요약하면,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나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입니다.

즉 늘 죽어지내라는 겁니다.
그럴 때만 예수님의 사랑의 충만이 증거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랑의 위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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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희진 (Homepage) 2003-12-05 12:19:46, 조회 : 153, 추천 : 10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혹은 살전 4:3절에 기록된 다른 말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등등 거룩함을 요구하는 말씀들은
많이 있습니다.(일일이 구절들을 표시하는 것은 생략합니다)]

거룩하여 질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줄 수 있나요? 혹시 거룩해진 사람의 샘플이 있으면 말씀해 주셨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거룩한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성경에서도 저는 못 찾겠습니다.

혹시 조 부상님께서는 거룩하신가요?

먼저 그 단계에 이르신 상태라면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거룩해 지는 길을 말이죠.

거룩 거룩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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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가능합니다. 그분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조부상 (Homepage) 2003-12-05 15:42:17, 조회 : 140, 추천 : 8

거룩의 기준이 있다면 말씀이겠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의 모습일껍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창조주와 같지 않으며, 인간은 신과 같지 않습니다.
절대자와 상대자의 거대한 갭에도 불구하고 절대자를 닮을 수 있는 것은
고도의 인격적인 존재...그의 형상으로 피조되었기 때문이며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완전한 성결(거룩.혹 성화를 약속하진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표준으로 끊임없이 진행하는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거룩의 완성을 말씀하시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며, 우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행하는 과정을 일컬어 사도바울은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잡았다 함도 아니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그분의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심으로
충분하고도 넉넉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수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교리에
의해서 라기보다는 성령하나님의 소원에서 그렇게 진행하게 됩니다.
날마다 죽는 이유가 내 육체의 소욕이 죽어짐으로 성령의 소욕대로 행하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성령의 소욕이며 하나님의 소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꼭 같은 분량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100점을 맞을 수 없다고 해서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를 생각해 보셨나요?
100점을 얻을 수 없더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성장기 아동이 해야할 의무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 앞에 완성된 자로써 자부하지 못할찐대
어찌 우리가 당연히 적극적으로 준행해야 할 선이나 거룩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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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근호 2003-12-05 16:49:37, 조회 : 130, 추천 : 7

사랑이 나와야 하고 그 사랑이 더 깊이 나오는 와중에서 자신이 더욱 죄인됨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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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성도의 자기인식(펌)
박종희 2003-12-05 16:26:12, 조회 : 109, 추천 : 14

성도의 자기인식(성민혁님)

사람들의 삶을 결정 짓는 요소 중 자기인식을 바르게함보다 중요한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접하고 있는 신학들은 성도들에게 왜곡된 자기인식을 형성하도록 하는 요소가 다분히 있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서 베풀어 주신것을 바르게 앎으로서 우리 성도들이 바른 자기인식를 가지고 권세있게 신앙생활들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셨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하나님과 이웃사랑) 그러나 선악과를 먹는 죄 지음으로 사람은 고장이 나버렸습니다.(세상과 자기사랑)

이렇게 고장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새것이 되도록 하셨습니다.(옛사람 죽이고,새사람으로 살게하심)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이제는 고장난 사람으로 살지말고, 내가 이미 고쳐주었으니 새것으로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성도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만 구원을 완성시켜주신 이유는 결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살후5:16 '항상 기뻐하라'라고 하신것은,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고 항복하도록 이 말씀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우리의 힘(옛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살전5:18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새사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로 새사람(구원받은 후)으로는 가능합니다.(물론,성화에는 완성은 없습니다)

우리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유한한 우리 사람들도 제품이 고장나면 새것처럼 고치는 능력이 있는데 어찌 유독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을 새것으로 고칠 수 없다면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폄하하고 있는지요.

도리어 고장난 사람을 새것으로 고쳐버리시는 하나님이 더욱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다우심이 아닐까요?(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도'라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고장난자들을 새것으로 고쳐주신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답게 살아야되고,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우리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고쳐 주셨기 때문입니다.(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않고 그 영(요6:63..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값진 제품에는 모두다 사용설명서가 있듯이 우리 사람에게도 사용설명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제품을 사용설명서대로 사용하면 그 제품과만든 사람에게 영광이 있듯이, 우리 사람도 사용설명서대로 살면 그 사람과 만드신 하나님께 영광이 있습니다.(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단지 너희가 얼마나 지독한 죄인인가를 보여주는 죄의 목록을 기록한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는 신학들은, 마치 어느 제품이 고장나면 사람이 새 것처럼 고쳐주지는 않으면서 그 제품이 얼마나 심각한 고장이 나 있는지 고장목록을 제품에게 내밀고 있다는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고장난 제품을 새 것처럼 고쳐주지 않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와 마찬가지 이십니다.

부족하기 그지 없는 글을 통하여 아무쪼록 성도님들이 자기인식을 바르게하는 계기가 되며,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자기존재(새사람)로 권세있는 신앙생활들을 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졌으면 참 좋겠습니다.(고전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니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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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책입니다.
이근호 2003-12-05 16:51:50, 조회 : 117, 추천 : 12

예수님의 의와 공로를 증거하는 삶이 성도의 새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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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무
박종희 2003-12-05 18:26:59, 조회 : 95, 추천 : 12

[re]그 빛이 사도 바울에서는 예수님의 의에서 나오는 사랑을 말하는 겁니다.
이근호 2003-12-05 18:58:12, 조회 : 112, 추천 : 7

성도가 행할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보면, 반드시 '은사'로 주어지게 되어 있고, 그 '은사'란 십자가 정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죠.

즉 자기 부인이 안된 상태에서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모습이 안나오게 되어 있답니다.

예수님이 산상설교는 바울 서신에서 그 체계를 다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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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같은 아마츄어 기독교를 개탄하며!-(펴온 글)
이근호 2003-12-05 17:19:10, 조회 : 152, 추천 : 10

너무나도 아마츄어적인 발상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나물 넣고, 계란 후라이 넣고, 미나리 넣고, 고추장도 넣고 하면서 비빔밥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각양 좋다는 것,
예를 들면,

하나님 존재성도 넣고, 그 하나님의 사랑도 넣고, 하나님의 공의성도 넣고, 바람직한 목회자상도 넣고, 소금의 열매들을 넣고, 철저한 자기 부인과 자기 죄인됨을 집어 넣어 현 한국 사회가 보기에 좋은 이미지로 인정할 만한 이상적(理想的)인 교회상을 구축하려는 너무나도 마귀적인 의식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십자가 정신이 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글이 있어 인용했습니다.

손성식 목사님의 글입니다.

『묵시와 현실』

【선】

인간은 마치 거미가 먹이를 잡기 위해서 쳐놓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무수히 많은 선들의 배치 속에서 몸부림칩니다.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무수한 선들은 다양한 계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종교계, 사회계, 정치계, 노동계, 인문-자연계, 여성계, 체육계 ....등등.

선은 이런 계열 속에서 가치와 인식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면 종교계에서는 나름대로 자신들의 선을 그어서 그 이상을 넘어가면 이단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사회계는 나름대로 자신들의 선을 그어서 그 이상을 넘어가면 범죄, 패륜, 불륜이라고 판정하여 일정한 선 안에 가두어서 몸을 제한하여 버립니다.

이런 맥락에서 선은 각 계열 안에서 통념(doxa)이 되어 버립니다. 통념화 되어 버린 선은 인간을 구속하는 지배체제가 됩니다. 인간의 개체성은 상실되고 공통된 목표를 향해서 전진해야 하는 사회 구조는 국가를 탄생시킵니다. 국가란 인간의 공통된 욕망을 분출시키는 장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탄탄한 구조 안에서도 탈주하려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국가는 이미 인간의 공통된 욕망을 성취해야 한다는 임무를 맡았기에 개인의 일탈을 용서하지 않는 권력체가 되어 버립니다. 권력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기에 끊임없이 선을 긋습니다. 이 선도 넘지마라, 저 선도 넘지마라. 국가가 그은 선들은 어느새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던 인간은 어느새 욕망의 집합체인 국가라는 새장에 갇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한 사회의 통념(doxa)이 만들어 집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 안에서 탈주하려는 몸부림은 계속되고 새로운 구조가 고개를 내밀게 되는데 이것이 일명 파라독스(paradoxa), 또는 아이러니입니다. 결국 인간 사회란 독사와 파라독스로 그어진 그물망입니다. 이 곳이 인간 역사의 현실입니다.

묵시는 종교계를 포함한 모든 계열의 인간 역사의 현실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인간의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요? 이유는 인간의 선 긋기는 근본적으로 잘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뭐가요? 인간이 선을 그을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죠. 그러면 누가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인간 역사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 자야 합니다. 그래 그가 누구죠? 묵시로서 인자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희생당한 자입니다.

아니, 역사로부터 희생당한 사람이 한 둘입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부조리 때문에 희생당한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인자의 희생은 그냥 희생이 아니라 언약적 희생입니다. 하나님의 현실은 언약이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는 언약으로 인간 역사를 검증하십니다. 뭘 찾기 위해서죠? 잃어버린 하나님의 의를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죽어가는 인간보다 소중한가요?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배태되지 않는 인간은 단지 흙에 불과한 것이죠.

그러므로 하나님의 현실은 언약의 현실입니다. 더욱더 구체적으로는 십자가의 현실이며 역사가 묵시를 거부한 현실입니다. 역사가 고발당한 현장입니다. 이제 역사란 묵시의 복수 앞에 놓여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공포란 묵시의 복수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제 묵시는 역사 안으로 침투해서 선긋기에 나섭니다. 이것은 묵시의 선택적 사랑이며 선택적 은혜입니다. 묵시의 선 안에 들어간 자들은 은혜의 우발성에 놀라며 역사 안에서 묵시의 현실을 경험합니다. 여기서 역사란 묵시의 현실을 배태하며 십자가의 내용이 재현되는 장(場)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묵시의 현실을 동질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묵시의 현실로서 선은 성도를 옭아매는 사슬이 아니라 묵시로부터 단절된 역사 안에서 성도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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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무 박종희 2003-12-06 11:56:44, 조회 : 121, 추천 : 11

[re] 밥만 먹고 복음 밖에는 전하지 않는 저를 비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근호 2003-12-06 12:18:33, 조회 : 133, 추천 : 7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밥만 먹고, 밥이 되고 돈이 되는 그런 일에만 매달릴까요?

자기만의 세계를 따로 구축하는데 열중할까요?

복음을 가지고 남을 봉사하는 하는 것이 과연 비난받아 마땅한 일일까요?

누가 배후에서 복음에 대해서, 성경 말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전하는 자를 비난하라고 합니까?

토론이란
성경 말씀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성경 귀절이 상대로부터 주어지면, 그 성경 귀절에 대한 자기 해석을 내놓아서

이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가 평소에 갖고 있는 성경 해석과 견주어 보고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오야 마땅하다는 봉사의 일념으로 토론에 임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본인한 한 말에는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이유는, 지금도 주님께서 지켜보시는 그 현장에 우리들이 모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들도 이단들과 논쟁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 핵심은 오직, 복음이었습니다. 교회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개혁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義(의)는, 인간의 교회 개혁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화목제물 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지혜와 복음의 자체적인 능력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반박을 하시더라도 항상 성경 귀절에 대한 성의있는 해석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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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무 박종희 2003-12-06 11:56:44, 조회 : 121, 추천 : 11

[re] 성도님 전상서
성도 2003-12-06 12:01:52, 조회 : 119, 추천 : 10

님이 두손을 들던 두발을 내리든,
논의를 지켜보는 저나 다른 성도나,오직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있습니다.애초에 사람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그가 바른 말을 하는지만 유일한 관심사란말이지요.

그냥 님이 하고싶은 말을 하시면 됩니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는 없습니다.
오직 바른 성경 말씀만이(그리스도) 세워지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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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무 박종희 2003-12-06 11:56:44, 조회 : 121, 추천 : 11

[re] 박 종희님께...
이희진 (Homepage) 2003-12-06 13:54:51, 조회 : 132, 추천 : 12

저 같으면 이런 식의 글을 쓰지는 않겠습니다. 스스로 이 글을 쓰시면서 유치함이 느껴지지 않으시던가요? 저는 신학교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어서 두 분의 신학을 자세히는 파악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복음을 드러내기 위한 논쟁을 할 때에는 상대의 조건을 가지고 유리하니 불리하니 하는 식의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의 많고 적음은 시간의 차이이지 신학의 깊이의 차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일 때문에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해서 글쓰는 시간으로 따진다면 시간이 제일 없는 사람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글을 한 번 쓸 때에는 새벽에 글을 쓰고 오전에 시간 있을 때 잠깐 정리해서 올리곤 합니다.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글을 쓸 때가 많아서 다시 읽어보면 엉망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 날 하루는 피곤을 감수하는 거죠.

만약 님의 말씀대로 이 근호 목사님과 토론을 하는 것이 우이독경 같아서 포기하셨다면 이 또한 님의 모순이며 자신의 우매함을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근호 목사님께서는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이거나 들을 귀가 없는 자... 님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자에 속한 분이라고 생각하셨다면 포기하는 님이 잘 못된 것이고, 후자에 속한 분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또한 이 근호 목사님의 신학을 어느 정도 인정하셨던 님의 모순입니다. 설령 님의 인정이 예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더라고 그것 또한 복음을 가진 자의 올바른 모습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님의 신학인데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이 시대를 살릴만한 신학을 가지고 계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신학의 소유자라고 할 지라도 말이죠. 전 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회원정보도 비공개로 하셔서 최소한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길도 차단하셨으니 더욱 알 길이 없죠. 하지만 님의 글을 통해 드러난 님의 신학은 이 근호 목사님의 신학을 앞서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할 지라도 이런 식의 글은 너무 유치해 보입니다. 그냥 님의 신학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만족해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남의 글쓰는 조건을 탓하며 핑계대지 말고 말이죠. 들을 귀가 있는 분이시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주제넘게 초보집사가 이드로처럼(?) 한 마디 드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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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도님 전상서(교회가 다릅니다.)
이상규 2003-12-06 13:11:31, 조회 : 130, 추천 : 7

십자가 마을에서 이야기하는 교회와 님들이 이야기하는 교회는 다릅니다.

님들은 현실교회를 이야기하시고 이곳은 예수님께서 완성해놓으신 교회(그리스도의 몸)

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성경구절해석도 다르고 교회관도 다르고 은혜론도 다르고 죄관도 다릅니다.

이진리는 김재국님글(1294) 히브리서4장 1절 두려움이란 단어처럼 복음은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 되는것이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선택과 능력만으로, 가능하기때문에 두렵고 떨림으로

이진리를 전합니다.

참고로 이게시판 추천싸이트 아빠방 73번대에 들어가셔서 제목은 축복의 혁명(서평)이지만

현실교회속에서 하나님이 무슨일을 하시는지 (그리스도의 몸)잘설명해 놓았습니다.

저같은 평신도도 읽을수있도록 쉽게 써놓았습니다. 꼭!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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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런 것 같았습니다.
김재국 2003-12-06 13:46:04, 조회 : 114, 추천 : 10

>십자가 마을에서 이야기하는 교회와 님들이 이야기하는 교회는 다릅니다.
>(의견)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님들은 현실교회를 이야기하시고 이곳은 예수님께서 완성해놓으신 교회(그리스도의 몸)
>
>를 이야기합니다.
>(의견) 저는 예수님이 교회인 천국의 교회를 개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구절해석도 다르고 교회관도 다르고 은혜론도 다르고 죄관도 다릅니다.
>
>이진리는 김재국님글(1294) 히브리서4장 1절 두려움이란 단어처럼 복음은 사람의 지혜나
>
>능력으로 되는것이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선택과 능력만으로, 가능하기때문에 두렵고 떨림으로
>
>이진리를 전합니다.
>(의견) 구원론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하나님의 인도를 거부하지
않도록 항상 마음의 할례를 해야합니다.
>참고로 이게시판 추천싸이트 아빠방 73번대에 들어가셔서 제목은 축복의 혁명(서평)이지만
>
>현실교회속에서 하나님이 무슨일을 하시는지 (그리스도의 몸)잘설명해 놓았습니다.
>
>저같은 평신도도 읽을수있도록 쉽게 써놓았습니다. 꼭! 꼭! 읽어보세요
> (의견) 저는 축복의 혁명을 지지합니다.
현실교회의 기복주의적 축복관은 혁명적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목적관을 십자가로 공격하여 혁명하고 회복의 길을
만들어 백성을 인도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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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상규 2003-12-06 17:23:12, 조회 : 152, 추천 : 12

>십자가는 교회의 기복주의적 축복관이 혁명적으로 개혁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재국님도(?)저도 공격 하십니다.

성령은 모든 믿는자의 삶속에서 죄를 공격 하시면서,

십자가은혜만을 증거하며 자랑케 하십니다.(갈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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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런 것 같았습니다.
김재국 2003-12-06 18:55:31, 조회 : 131, 추천 : 12

>>십자가는 교회의 기복주의적 축복관이 혁명적으로 개혁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
>
> 김재국님도(?)저도 공격 하십니다.
>(답변)예, 매 순간순간 공격받고 있습니다.
> 성령은 모든 믿는자의 삶속에서 죄를 공격 하시면서,
>
> 십자가은혜만을 증거하며 자랑케 하십니다.(갈6;14)
> (답변) 십자가복음의 증거와 자랑의 양태는
인생역정의 생활속에 엉킨 삶을 통해 나타납니다.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몇시간전(오후 2시경)
제가 올린 <인격적 항복>이라는 글을 왜 삭제했는 지
관리자님께 알아 봐 주십시오. 삭제 이유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글도 삭제했더군요.
그냥 저의 신념만 적었을 뿐인데 많이 섭섭하군요
제가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셨으면 좋았을텐데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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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사례 통일 시키고 성지 순례 금지해야 한다.(개혁)
김인찬 2003-12-06 22:31:29, 조회 : 105, 추천 : 8

[목사 사례 통일의 근거]

교회가 주님의 것이며 교회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교회의 종도 모두가 주님의 것이다. 주님의 종들이 스스로 차별하여 각각 대우받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사례가 천차만별인 것은 성경적인 원리에서 멀리 떨어진 경제관에서 비롯된다. 어떤 이는 천만 원 가까이 되는 자도 있고 어떤 이는 이십만 원으로 사례가 이렇게 차별이 크게 된다는 것은 주님의 같은 종들로써 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안수와 성령에 의해서 같은 세움을 받은 자들이 목사이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한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은 차별이 있을 수 없고 같은 공동체의 실천을 먼저 보여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종들은 스스로 자신 보다 남을 더 섬겨야 된다는 것이 성경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본적인 상식이라면 이러한 상식에서 벗어난 것은 어쩌면 지금의 교회가 빛을 잃고 있다는 것과 연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조건 사례를 통일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종들이 주님 안에서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마땅하다.
세상의 논리는 많이 가진 자가 나올 수 있어도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서는 그렇지 않다. 가족 수 그리고 활동에 의한 비용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책정하는 사례의 통일이다. 가끔 교역자들 중에 비관 자살하거나 특히 교인을 두고 싸우는 목사들이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비극이며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옆 교회에서 교인을 뺏어갔다고 불을 지르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교인을 두고 양쪽이 나누어져서 싸우는 일이 있다는 것은 교회가 얼마나 깊숙하게 세속화 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세속화에 대한 자기 개혁과 그리고 의지이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서 얼마든지 개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탓하기 전에 현실을 개혁해야 되지 않겠는가?
지금도 배를 움켜쥐고 고통 받는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이 땅에는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용기는 주님으로부터 자신을 포기하는 삶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목사로써 가장 큰 개혁은 자기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례가 천차만별인 지금의 상황이 성경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목사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들은 같은 안수와 성령에 의해서 세워진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감독하는 자들이다.
목사의 직분은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생계가 유지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것인 헌금이다.
목사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것을 과다하게 독식하는 것은 성경적인 원리가 아닌 것이다. 어떤 이는 천만 원이 된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실재 어떤 이는 십만 원도 안 되는 것으로 사례가 주어진다는 소리에 우리가 얼마나 세속화된 교회가 된 것을 확인해야 된다. 세상의 논리는 가능하나 교회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회사는 사장이 있고 그리고 큰 회사가 가장 많은 수입이 되며 작은 회사는 적은 수입의 사장이 있는 것같이 교회가 마치 세상에서 주식회사와 같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돈과 권력과 명예로 사람이 차별된다는 것이다. 목사들은 이러한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는 세속화의 극치인 것이다. 높은 자리에 가려면 많은 돈을 들인 것이 얼마 전이고 큰 교회가 아니면 교계에서 얼굴도 내밀지 못하는 기형적인 교회가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세상에 의해서 교회가 세속화 된 것이다.

교회 이제는 사례 통일이라는 것을 주님의 명령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믿음으로 개혁해야 한다. 같은 주님의 종이면서 육적인 가족보다도 더 진한 영적인 가족이 된 목사들은 스스로 세상의 논리에 더 이상 합리화 시킬 필요가 없다.

우리의 당당한 것은 주님의 종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상의 논리대로 세상에서 큰 회사의 사장이 많은 대우를 받고 작은 회사의 사장은 그렇지 않다는 이 논리가 적어도 교회에서는 통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이것이 통하게 되자 성경에 있지도 않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목사 부목사 파트목사 전도사 등으로 나누고 사례가 그러한 계급에 의해서 책정된 논리는 마치 회사의 사장 부사장 과장 대리 등으로 나타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세속화에 의해서 교회가 오늘날 목사들의 타락과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진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교회는 큰 교회의 목사에 의해서 좌지우지 된 것이 사실이다.
목사들의 사례의 통일은 교회의 개혁에 대한 본질적인 것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목사들 중에는 생계가 힘들어서 노동에 나가는 자가 있으며 사모는 부업으로 신문 배달하거나 과외학습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자들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모는 아이의 분유가 없어서 혼자 울면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사모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실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이다.
목사의 최소한의 자존심과 양심은 썩어져 가는 양식을 나눌 수 있는 용기이다.

어떻게 사례가 천차만별인 것이 정당한 주장인가? 성경적인가? 신학적인가? 성직자로 말하면 도덕적인가? 세상에서도 남보다 먼저 희생할 줄 아는 것이 부모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사도들은 마치 자녀를 양육하듯이 모든 것을 희생한 것이다. 이와 같이 교인에 대해서 희생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하나님의 같은 종들이 서로 사랑의 실천인 나눔을 베풀지 않고 서로 경쟁하고 높고 낮음이 된다면 이미 세상에 물든 하나님의 종들이 된 것을 시인해야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만약 핍박이 오면 먼저 고난의 불속에 들어가서 순교함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참 믿음을 보일 주의 종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의 종들이 세상의 논리가 마치 신앙의 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세속화된 주의 종들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가려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권세에 연연하지 말자. 성경은 사례의 통일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미 통일된 경제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 사례의 통일은 교회개혁의 중요한 의미를 던지는 질문이다.
교회의 개혁은 평신도들은 결코 할 수 없다. 성경에 의해서 교회가 개혁된다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인 목사들로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타당하다.

교회의 타락과 그 관계는 목사들과 먼저 깊이 관여된다. 목사가 살면 교회가 살고 목사가 죽으면 교회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주님의 것이다. 주님의 것이 되므로 교회는 그 안에서 차별이 없다고 목사들은 가르친다. 그러한 목사들이 스스로 차별해서 사례를 천차만별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스스로 참된 지도자상을 포기하려는 세속화의 영향이다. 목사들은 같은 안수와 같은 하나님의 종이다. 그들은 자신의 직분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부른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므로 그 종들이 그리스도로 한 몸이 되어야 그들의 가르침이 정당하게 교인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성지 순례는 폐해져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중세시대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이다.
세상에서 주님은 믿음을 요구한 것이지 주님의 고향이나 행적을 보고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주님도 보고 믿는 것보다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천주교도 아니고 개신교에서 성지순례라니 말도 안 된다. 영적인 거지순례이다.

국가의 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신용불량자들이 많은 나라에서 해외여행을 가려는 목적으로 성지 순례라는 신앙을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성령이 내주 한다고 믿는 자들이 무엇을 보려고 많은 경비를 들여서 가는지 알 수 없다. 성령이 차라리 그들을 위해서 색깔 있는 모습으로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도 지구에는 많은 수가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고 있는데 그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다는 말인가?
회개하자. 주님도 고난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고난은 고사하고 향락을 찾는 길에서 돌아 서야한다. 성지순례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단체로 가는 것도 많은 것 같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개혁을 위한 것입니다.

성지순례는 분명히 경제가 되는 자들이 가게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시대에도 순교자가 초대교회처럼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한 형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는 것이다.
성지 순례의 도덕적인 문제는 개인이 결정할 사항이다. 그러나 성지순례라는 말이 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성지는 과거 예수님의 행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이 세워지면 성지는 성경적으로 볼 때에 우리 자신이 성지가 되기도 하고 예배당이 성지가 되기도 한다. 성도가 있는 곳이 성지라는 것이다. 성지 순례, 예수나 그 행적을 그린 성화 등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다. 불교인들도 성지가 있고 세상 종교도 성지가 있지만 기독교는 성지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이 성지가 된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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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목사 사례 통일 시키고 성지 순례 금지해야 한다.(개혁)
이석규 2003-12-07 23:56:34, 조회 : 147, 추천 : 10

유적을 통해 성경말씀을 살펴보는 것은 큰의미가 있습니다.
가령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동문은 시멘트로 막혀져 있다는 사실 같은 것을 전해주는거 말입니다.
갖다 온 분이 전해주 사실 입니다.

'"예루살렘 성지 다녀왔더니 은혜스럽더라."라는 말은 난무해도
"유적지를 가보니 어디어디가 성경의 예언하고 일치되고 이루어져 있더라. 앞으로도 이뤄질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목사님은 거의 없더군요.

예언과 종말에 관한 말씀들은 거의 전무해 좀 아쉬워하고 있는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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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사례 통일 시키고 성지 순례 금지해야 한다.(개혁) 김인찬 2003/12/06 8 106

[re] 사례금을 제공할 만한 분은 목사는 거의 없습니다.
이근호 2003-12-07 08:12:31, 조회 : 137, 추천 : 10

복음을 모르는 판에 무슨 목사입니까!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돈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복음을 아는 자가 있어

공동체가 설교자로 세우고 싶다면 사례비 정도가 아니라 신학교 학비부터 전액을 그 공동체가 부담해야 합니다.

돈보다도 복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복음을 위해 인생을 끝내려는 목사가 거의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복음적인 설교나 신학으로 인해 살려는 자가 약간있고,

대부분은 교회로 인하여 살려는 자들 뿐입니다.

그리고 해외 여행은 자신들의 자유입니다.

돈이 있고 외국 바람 쇠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허용되어야 될 자유입니다.

해외 놀려가는 것을 '성지순례'라고 우기는 사기꾼이나 그 사기꾼에게 속는 교인들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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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교회 개혁에 앞장서시는 목사님들 힘내십시요.
김인찬 2003-12-07 11:37:53, 조회 : 142, 추천 : 10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목사님에 대해서 저는 전혀 모르지만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영적으로 한국교회가 이렇게 암울한 시대에 목사님과 같은 귀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글이 항상 부족하지만 항상 주위의 충고에 귀 귀울이는 자세로 일하는 목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읍니다.

목사님 평안하세요.................김 인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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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다른 분들이라도 나름대로 공부하신 흔적을 이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근호 2003-12-07 15:32:04, 조회 : 187, 추천 : 10

감사합니다.

그러나 과거란 항상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저나 다른 분들이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따라서 저나 다른 목회자들이 계속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다른 분들을 통해서는 지혜의 말씀을 주시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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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는 자
김병구 2003-12-06 22:48:07, 조회 : 108, 추천 : 12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기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 임이요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을 찾아 의지하는 자, 자기의 죄성과 죄악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악함과 세상의 불의를 애통하는 자, 자기의 죄성과 죄악을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의 어떠한 대우도 과분한 것으로 여기는 온유한자,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으로 거듭 난 자입니다. 그가 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으며, 그의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채워져 그가 죄악과 죄성에서 벗어난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 성품을 가지게 될까요?

그는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동정하는 긍휼의 성품을 가지게 될 것 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빈민들을 먹이는 데 자신을 받친 성품이 긍휼히 여기는 성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수 많은 선교사들이 불쌍한 영혼들을 살리려는 일념으로 살기 어려운 환경을 마다하지 않고 복음 전파에 진력하는 것은 긍휼한 성품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강도 만나 모든 것 빼앗기고 죽어가는 행인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성품은 긍휼의 성품을 잘 가르쳐 줍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에서 사회구원을 외치는 진보적 신앙인들과 또 시만 단체의 지도자들과 그 구성원들의 대부분도 선한 사마리아의 긍휼의 성품을 지닌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하여 개인과 자신의 구원에 집중하며 자기 교회와 자기 교단을 생각하기에 급급해 하는 일부 보수적 교회 및 보수 신앙인들은 자신 속에 혹시나 긍휼의 성품이 없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죄지은 다른 사람 또는 나의 원수에게 베푸는 긍휼은 더욱 크리스천 적인 성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 현장에서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하시라고 기도하는 성품과 자기 아들을 죽인 자를 양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신 극치에 달하는 긍휼의 성품을 닮은, 최고의 경지에 달한 긍휼의 성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이를 내가 나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하나님께서도 내 죄를 용서하신다고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하나님의 죄 사하심은 조건적이며, 일방적인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관련하여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인간의 원죄를 용서해줄 수 없음에 유념해야 합니다. 인간은 아무도 다른 사람의 원죄는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들의 모든 죄의 원천인 원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제 성령으로 거듭난 크리스천은 다른 인간이 우리들에게 범한 자범 죄는 용서해 줄 수 있을 만큼 긍휼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 중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는 부문은 이미 거대한 원죄를 용서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는 자신에게 자범 죄를 범한 다른 인간을 마땅히 용서해야 하므로, 자신의 자범 죄의 용서를 구하기 전에 자기에게 범하여진 다른 사람들의 자범 죄를 용서하라는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빚진 자의 예화를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에는 조건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거액의 빚(원죄)를 탕감해 주셨습니다. 다만 악한 빚진 자가 자기에게 작은 빚(자범 죄)을 자를 용서하지 않자 징계하십니다. 그에게 긍휼이 없음을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자이며, 자기의 죄를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회개하는 자이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그리고 남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에게 과분한 대우라고 생각하여 세상적인 힘과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고 남에게 자기를 낮추는 크리스천의 온유의 성품을 가진 자이므로 자기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긍휼의 성품을 가진 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믿지 않은 자들은 사탄의 종 노릇으로 밤낮없이 죄악을 범할 수 밖에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그가 나의 원수로 나를 해친다 하여도 그의 죄를 미워하더라도 그 인생에 대해서는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자신에게 죄 지은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원죄를 용서 받은 경험이 없는 자입니다. 곧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크리스천이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늘날 많은 교회들이 천국과 은혜 만을 설교하고, 죄와 벌과 지옥을 균형되게 설교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많은 교회 출석 인들이 진정한 참회의 눈물과 회개의 기도를 할 기회를 빼앗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의 기우이기 바랍니다.

뜨거운 눈물과 가슴 찢는 통회 자복이 없이는 진정한 회개가 있을 수 없으며, 진정한 회개란 죄를 짓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므로, 오늘날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타락 상이 극심함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많은 성도들이 눈물의 통화 자복의 경험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게 합니다. 오늘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 모두는 우리의 원죄와 죄성 그리고 자범죄를 자복하고 통회해야 할 것입니다. 죄 용서함 받음 없이는 개인의 구원이 있을 수 없으며, 십자가는 의미가 없어지고 그러한 십자가를 내건 교회도 그리스도 교회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지 못하다면, 나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지 못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원죄 중에 있고 아직 원죄를 용서 받지 못한 자 입니다. 세상과 육신과 사탄의 종 노릇하여 죄를 범하기를 밥 먹듯 하는 모든 믿지 않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 십니까? 저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우리의 입과 우리의 삶으로. 그래야만 우리는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크리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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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신적인 긍휼이 아닐까요?
이근호 2003-12-07 08:23:53, 조회 : 214, 추천 : 6

>테레사 수녀는 이단입니다.

차라리 그런 구제에 대해서는 불교 성자나, 종교 없이, 자비를 베푸는 숱한 사람들 쪽에서 찾아보세요. 감동이 넘치는 구제담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기독교에서 행하는 구제나 긍휼은 어디까지 얄퍅한 술책에 불과합니다.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정책적 배려인고로

어떤 의미에서 극도로 인간의 자율성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처사의 일환입니다.

줄려면 화끈하게

아예 "지옥은 없다! 참혹한 지옥을 만들어 놓고 자비를 운운하는 그런 하나님을 이 지구상에서 추방하자! 내가 앞장 설께요!"라고 외치는 것이

몇 푼의 푼돈을 동냥하듯이 던져두는 것 더 인간들의 정신을 해방시키는 진정한 이웃 사랑의 구현이 아니겠습니까!

테레사 수녀는 이단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원죄라는 것이 없습니다.

죄인이면 그냥 죄의 지배를 받는 상태일 뿐입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잘못 지어내면 안됩니다.

죄를 지배를 받으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바로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은연중에 불만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겁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구제 행하기'라는 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밥퍼 주는 사랑'이 곧 신에 대한 도전인 것을 귀하께서는 아시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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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신적인 긍휼이 아닐까요?
김병구 2003-12-08 13:45:10, 조회 : 180, 추천 : 13

이근호 목사님,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이단이 아닌 종파나 교파나 교회는 어떤 종파, 교파 또는 교회인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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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단이란...
이근호 2003-12-08 16:02:54, 조회 : 199, 추천 : 13

예수님의 의로만 하나님께서 심판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것을 최종 증거할 능력이 없는 모든 자 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을 안받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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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은 삼신론에서 비롯되었는가요? (펌)
김형익 2003-12-08 10:40:25, 조회 : 193, 추천 : 15

아래 글은 '킹제임스 진영' 어느 분의 '삼위일체'에 관한 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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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는 신비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님은 그 신앙을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유일신 신앙은 전통적인 성경신앙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님이신 성령님(Holy Ghost)의 관계를 사람의 이성의 범위 안에서 설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이성으로 설명되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이성을 뛰어넘는 신비의 영역일지라도, 오직 순수한 말씀의 계시와 순수한 믿음으로써 이해되고 경험되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이 계시하는 데까지만 말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게 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님이십니다. 우리는 삼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님과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성경의 계시 그대로 믿을 뿐입니다.

로마 카톨릭 신학을 정립한 어거스틴을 계승하여 칼빈(깔뱅)은 삼위일체론을 주장하였는데, 그 골자는 삼위의 개별적인 하나님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이 세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하면 바빌론 삼신론 사상과 다를바 없습니다.

바빌론 삼신론 사상은 사탄의 삼위일체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사탄과 거짓 대언자와 적그리스도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세 인격체로서 존재하지만 본질은 하나라는 사상입니다. 머리가 셋이고 몸은 하나인 괴물이 바로 바빌론 삼신사상을 대표하는 상징이며 곧 사탄의 삼위일체인 것입니다.

바빌론 사상의 계승자인 로마 카톨릭이 바빌론 삼신사상에서 비롯된 삼위일체론을 내세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빌론 삼신사상이 철저하게 성경적 삼위일체론인 것처럼 위장되어 있다는 데 있으며, 개신교가 이를 맹목적으로 답습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가 똑같이 붙잡고 있는 삼위일체론에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화형과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진실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명백한 이단교리는 거부되고 정죄되어야 마땅하지만, 그럴지라도 삼위일체론 때문에 사람을 화형시키고 죽여야 한다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명백한 살인행위라는 사실입니다. 칼빈도 삼위일체론에 어긋난다 하여 많은 사람을 화형시키는 등 살인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성경은 살인자에게는 영생이 거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3:15).

순수한 신앙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즉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성경 그대로 믿는 신앙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유일하게 나신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고 믿는 신앙이며, 성령님 역시 하나님의 영이시라고 성경 그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세 분의 관계성에 대하여 성경은 "이 세 분은 하나다"(these three are one)라고 말씀합니다(요일 5:7, 권위역). 우리는 성경 그대로 이 세 분은 하나다 라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성경 그대로 믿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에서 조금이라도 지나게 되면,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이에서 지나쳐 삼신론에 가깝게 주장하면 거부해야 하며, 양태론이나 양태론에 가깝게 주장하면 거부해야 합니다. 둘 중 어느 견해냐고 양자택일을 요구하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답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경에 있는 그대로 신앙고백을 하고 그 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세 분의 관계성에 대한 이성적이고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교리를 우리에게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삼위일체론이라는 신학적 교리를 기준으로 이단판별을 하라는 말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더구나 삼위일체론을 기준으로 이단정죄를 하고 종교재판을 하여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오히려 반성경적이며 마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지식은 이스라엘의 지식이 바른 지식이므로 이방인 교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지식을 그대로 계승해야 합니다. 신약의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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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