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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마가복음 서론과 다른 복음서와의 비교] 2003-10-23묻고답하기마가복음

마가복음 서론과 다른 복음서와의 비교 조정재 2003-10-23 09:48:17, 조회 : 130, 추천 : 12 ... [re] 그렇다면 왜 모든 것의 시작을 마가복음에 담지 않았습니까? 이근호 2003-10-23 10:05:21, 조회 : 111, 추천 : 10
산상설교의 시작이 마가복음에 나옵니까?
안나온다면 왜 안나오는 겁니까?
최초의 이적이 요한복음에는 나오는데(요 2:11) 왜 마가복음은 안나옵니까?
요한복의 핵심이 '본다'에 있다고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보고도 못믿게 하기 위한(요 12:39-40) '표적'에 성격을 두고 복음을 소개한 책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있어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아기로 탄생할 때 이미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2:10)
만약 '마가'라는 제목이나 '누가'라는 제목을 다 떼내어 버리고 빈 공란으로 남겨 주었을 때, 누가 더 기쁜 소식의 '시작'으로서 부합되는지를 골라보라면 백이면 백, 예수님의 아기 탄생부터 꼽을 겁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장차 성인이 될 대 벌어지는 '기쁜 소식'을 미리 언급한 것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 탄생 그 자체를 기쁜 소식, 즉 복음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난 뒤 빈 공란에 '마가'나 '누가'라는 명칭을 붙어넣어도 결과는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마가복음의 '끝'도 복음의 '시작'에 관한 것이라고요?
마가복음의 끝부분에 있는 내용이 비로소 복음의 시작에 관한 것이라면,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가 쓰지 말고 마가복음의 저자가 쓰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끝에 보면, 사도행전을 마치 염두에 두는 것처럼, 즉 새로운 복음 전파가 가져다 줄 사태를 대비하고 끝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이 복음 전파로 인해 도래할 새로운 상황에서 얼마나 고대했으면 누가복음을 차라리 마누리 짓지 않는 것으로 남겨 두었겠습니까!
그렇다면 복음 전파의 새로움을 전할 적임자는 마가가 아니라 누가입니다.
이래도 우길 겁니까.
##############################################################################################오래간만에 신학생 필독서를 올립니다. 이근호 2003-10-24 11:09:44, 조회 : 200, 추천 : 11
신학생의 필독서
1.입문자회개하소서 십자가의 원수된 교회여! 허성 지음 홍성사기도의 신비 소재열 지음 대장간
2.초보 단계 히브리식사고와 기독교 밀톤 지음 컨콜디아사 하나님의 열심 박영선 지음 새순 출판사 예수를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로핑크 지음 분도출판사 로마서서 강해 1,2,3 권 로이드 죤스 지음 기독교문서선교회 에베소서 강해 전 권 로미드 죤스 지음 기독교문서선교회
3.초급 단계하나님의 나라 죤 브라이트 지음 컨콜디아사교회란 무엇인가? 한스 큉 지음 분도출판사예수 루카스 그롤렌버그 지음 종로서적 예언자 상권 아브라함 J 헤셀 지음 종로서적성령 은사론 리챠드 개핀 지음 기독교문서 선교회
4. 중급단계 교의학 펠 만 지음 한국신학연구소신의 세속화 박봉랑 지음 대한기독교출판사예수 그리스도 카스퍼 지음 분도출판사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제임스 던 지음 무림 출판사십자가를 아십니까 이근호 지음 대장간복음의 회복 이근호 지음 대장간 예수 그리스도의 길 몰트만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신의 약속은 파기되지 않는다 김이곤 지음 한국신학 연구소
5. 고급 단계 바울과 예수 에버하르트 융겔 지음 이화여자대학교 출판사 공관복음 문제 안병철 지음 카톨릭대학 출판부 구약신학 발터 침멀리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하나님의 선택 이근호 지음 대장간 교회를 넘어서 이근호 지음 대장간
일반 교양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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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님의 막 9:43-49 강해 반론 조정재 2003-10-24 18:46:50, 조회 : 180, 추천 : 12 ... [re]귀하께서 지금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말씀을 하시네요? 이근호 2003-10-24 20:16:33, 조회 : 177, 추천 : 14
제가 언제 마가복음 9장을 언급하셨습니까?
혹시 다른 사람의 글을 논하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그건 그렇고,
귀하께서는 제가 말하는 취지를 제대로 파악하세요.
출애굽에 나오는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마가복음에서 당연하지요.
그것은 마태나 요한이나 누가에서 당연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귀하께서 제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시장바닥에서 자식 넷을 데리고 나온 아줌마가 계십니다.
아는 옆집 아줌마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요즈음 예를 어떻게 자라지요?하고 물으니
자식 넷을 데리고 나온 아줌마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얼마나 착한지요"
그런데 자식 넷 중에서 셋 사람은 엄마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유독 '마가'라는 이름의 자식만은 마치 이 칭찬이 자기 자신한테 집중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마가'라는 형제가 다른 형제를 불러놓고,
"오늘 엄마가 나만 칭찬해 주었다"하니
다른 형제들이 화가 나겠어요, 안나겠어요?
제가 귀하의 성경 방식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반 교인들을 상대로 성경 공부하는데 공관복음 신학 사이의 연관성까지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마가와 출애굽하고 연관시켜서 성경 전체를 구속사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도 길러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바람직하고 성경 교습이지요.
제가 그동안 언급한 것은,
막상 마가 복음 강해가 끝나고 난 뒤,
그 다음에 마태복음과 출애굽 신학과 연관시키고, 누가와 출애굽 신학과 연관시키고, 요한복음과 출애굽 신학과 연관시킬 때, 전에 마가와 출애굽 신학과는 또다른 색다른 무엇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귀하의 교인들이나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귀하의 교인들은 아직 마가도 다 못한 것이기에 그것가지 생각을 안하겠지만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수 십번 되풀이해서 성경 저체와 연결시켜 성경 강해를 해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귀하의 그런 일방적인 작업이 초보처럼 느껴지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격려를 하고 싶은 겁니다.
이번에 20일-21일 인천에서 있었던 세미나에서도
귀하의 작업에 대해서 모범적이라고 제가 늘어지도록 칭찬만 했고, 아무 것도 흠 잡지 않았습니다.
(증인들이 많습니다. 곧 그 강해녹음이 이 싸이트에 실릴 것이고)
왜냐고요?
잘하고 있으니 뭘 토를 달겠습니까.
하지만
신학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안타깝지요. 짧은 분석 능력과 밑천가지고 뭔가 큰 멧돼지를 잡으려고 하니 멧돼지가 안 놓을 길만 접어드는 셈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그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구요"라는 느낌 뿐입니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그렇게하게 되면, 자기 작업의 합당성과 정당성과 변명꺼리만 자꾸 늘어날텐데.... "
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분석할 수 있는 좀 더 더 큰 도구들을 공부를 하셔야 될텐데
그 도구는 그만하면 됐다는 식으로 제쳐두고 , 짧은 도구를 가지고 성경을 헤집고 다닐려니 , 나오는 것은
억지 변명과 무리한 논리와 오버 액션하는 자세만 나오는 겁니다.(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요. 저것 빵꾸떼우는 식으로 순간순간 넘어가자니 억지가 동원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워치니 만보고 창세기 강해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고 김홍전 목사의 여호수아 강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참 어설프다는 겁니다.
그래서
"열심 하나는 끝네준다"하고 관망할 뿐입니다. .
성경 본문 연구도 열심히 하시되, 다른 책들도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점에 대해서 제가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re]ㅎㅎㅎ 조정재 2003-10-25 00:16:04, 조회 : 182, 추천 : 12
>>제가 언제 마가복음 9장을 언급하셨습니까? >> 혹시 다른 사람의 글을 논하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답변> 주안 교회 마가복음 강해 두번 째 글에 작성자 이근호는 동명이인이군요. 죄송합니다. 봉창을 두들겨서.
>> 그건 그렇고, >> 귀하께서는 제가 말하는 취지를 제대로 파악하세요. >> 출애굽에 나오는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마가복음에서 당연하지요.>> 그것은 마태나 요한이나 누가에서 당연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귀하께서 제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 시장바닥에서 자식 넷을 데리고 나온 아줌마가 계십니다. >> 아는 옆집 아줌마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요즈음 예를 어떻게 자라지요?하고 물으니 >> 자식 넷을 데리고 나온 아줌마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우리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얼마나 착한지요">> 그런데 자식 넷 중에서 셋 사람은 엄마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유독 '마가'라는 이름의 자식만은 마치 이 칭찬이 자기 자신한테 집중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시장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마가'라는 형제가 다른 형제를 불러놓고, >> "오늘 엄마가 나만 칭찬해 주었다"하니 >> 다른 형제들이 화가 나겠어요, 안나겠어요?>> 제가 귀하의 성경 방식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반 교인들을 상대로 성경 공부하는데 공관복음 신학 사이의 연관성까지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마가와 출애굽하고 연관시켜서 성경 전체를 구속사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도 길러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바람직하고 성경 교습이지요. >> 제가 그동안 언급한 것은, >> 막상 마가 복음 강해가 끝나고 난 뒤, >> 그 다음에 마태복음과 출애굽 신학과 연관시키고, 누가와 출애굽 신학과 연관시키고, 요한복음과 출애굽 신학과 연관시킬 때, 전에 마가와 출애굽 신학과는 또다른 색다른 무엇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귀하의 교인들이나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는 겁니다. >> 귀하의 교인들은 아직 마가도 다 못한 것이기에 그것가지 생각을 안하겠지만
>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수 십번 되풀이해서 성경 저체와 연결시켜 성경 강해를 해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답변> 아주 귀하의 교만이 절정이군요. 그렇게 우리 교회를 잘 아시는 줄 몰랐습니다. 근데 잘못 아시는군요.이미 마태와 요한을 수년에 걸쳐 강해를 마쳤습니다.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귀하가 정말 놀랍습니다. 대단한 영적 권위자이십니다.
>귀하의 그런 일방적인 작업이 초보처럼 느껴지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격려를 하고 싶은 겁니다. >>이번에 20일-21일 인천에서 있었던 세미나에서도 >> 귀하의 작업에 대해서 모범적이라고 제가 늘어지도록 칭찬만 했고, 아무 것도 흠 잡지 않았습니다. >> (증인들이 많습니다. 곧 그 강해녹음이 이 싸이트에 실릴 것이고) >> 왜냐고요? >> 잘하고 있으니 뭘 토를 달겠습니까. >> 하지만 >> 신학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 안타깝지요. 짧은 분석 능력과 밑천가지고 뭔가 큰 멧돼지를 잡으려고 하니 멧돼지가 안 놓을 길만 접어드는 셈입니다. >>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 "그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구요"라는 느낌 뿐입니다. >> 그러면, 저는 속으로 >> "그렇게하게 되면, 자기 작업의 합당성과 정당성과 변명꺼리만 자꾸 늘어날텐데.... ">> 라고 말합니다. >> 성경을 분석할 수 있는 좀 더 더 큰 도구들을 공부를 하셔야 될텐데 >> 그 도구는 그만하면 됐다는 식으로 제쳐두고 , 짧은 도구를 가지고 성경을 헤집고 다닐려니 , 나오는 것은 >>억지 변명과 무리한 논리와 오버 액션하는 자세만 나오는 겁니다.(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요. 저것 빵꾸떼우는 식으로 순간순간 넘어가자니 억지가 동원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워치니 만보고 창세기 강해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 고 김홍전 목사의 여호수아 강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참 어설프다는 겁니다. >> >그래서 >>"열심 하나는 끝네준다"하고 관망할 뿐입니다. . >>> 성경 본문 연구도 열심히 하시되, 다른 책들도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 그 점에 대해서 제가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반론> 마가의 십자가 신학은 뭇사람의 첫째가 되려고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어야 한다고 합디다. 일부러 막 9장을 택해서 강론한 것은 귀하의 예의없는 자세와 말투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를 주님처럼 영접한다는 말을 알고서 십자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서. 신약의 화목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해서.
'워치니 만'이 아니고, '워치만 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홍전 박사 계열도 이미 토론을 많이 해보아서 알고 있고 귀하보다 더 많은 분과 교제하고 있을 것입니다.
글을 공개적으로 내놓으려면 적어도 교정을 하고, 또 한 번 더 살펴보고 올려야 하는데, 도대체 어느 말이 주어인지 한국말도 이해할 수 없게 써 놓고, 오타 난 것도 그냥 올려 놓으니 ...
여느 때보다 귀하 글을 읽으려면 두 배나 시간이 필요합디다.
뭘 배우라는 것인지?
아하,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막12:39)
귀하가 위에 한 말은 모두 '내가 너보다 한 수 높다'는 말 뿐이니, '예수', '예수' 하는 자가
무언가 더 고상하고 더 높고 위대한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데, 성경본문 가지고는 한 마디도 언급을 안하니 ...
이곳에 있는 글은 전부 동명이인 글이니 그럼 귀하의 글은 어디 있습니까?
귀하가 그렇게 잘 알고 있는 마태나 요한 복음 글로 소개해 보시지요.
나도 하나 예를 들지요.
신학생 때 구약 신학 시간이었구만요.
창세기를 배우고 토론하는 시간에 학생들이 여러 이론들을 내세워 자기가 옳다고 주장을 하더구만요.
그러자 우리 교수님 왈, "네가 말하는 것이 본문에 어디 있니?"
==========================================================================[re]귀하는, 교만해 보인다고 욕얻을 먹을 것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다꾸쳐 본적 있습니까? 이근호 2003-10-25 02:41:34, 조회 : 169, 추천 : 10
귀하는 저만 보이시지요.
그러나 저는 귀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칭찬할 것은 아끼지 않고 하고 격려할 것은 아끼지 않고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혹시 귀하의 귀한 수고를 통해 이렇게 열심히 성경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을게 아니겟습니까?
인간하고 싸우는 것이 교만입니까 아니면
어떤 본문 분석을 하던지간에 제발 십자가 복음 정신을 삽입해서 성경 강해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제가 교만합니까?
예수님께서 성경 강해를 한다고 칩시다.
어떤 문맥으로 따진다 할지라도 십자가의 의의, 즉 해석 자체를 의존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라는 정신이 나오는 쪽으로 해석하시지 않을까요?
그래도 누가 교만하신지 모르겠습니까?
이미 수십차례 글을 올린, 엄기욱씨나 김병구 씨나 귀하의 글을 일방적으로 지워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글을 살리고 꼬박꼬박 성의있게 답변해 드리는 이유는,
바로 엄기욱씨, 김병구, 귀하의 견해가 숱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각가지 욕심과 욕망들의 좋은 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거쳐야 되고, 누구나 검토 되어야 되고 반성되어서, 결국에는
성경 해석술 자체도 의미가 없고, 완벽한 신학 정립도 의미가 없고, 지금도 철없는 우리를 오직 은혜로 인도하시고 그래서 결국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이 의지하고 증거해야 하는 자 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아는데 있어 좋은 공부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음 속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출렁거려고 곧 흘려 넘칠 것 같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에 급급한 그런 모습이 성경 강해 속에 속속들이 스며져 있어야 정상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런 노선에 같이 시선을 모아서 논쟁을 하면 이 논쟁에 대해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는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 것입니까?
도대체 평소에 정신 상태를 어디다 팔고 있습니까?
정말 직접 대하면 냉혹한 영적 전쟁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의미에서도 심하게 나무라주고 싶은 분입니다.
참고: 귀하에서 언급하신 설교는 지금 저로서도 정말 오랜간 만에 봤네요. 1997년, 그러니까 무려 6년전, 그것도 새벽기도용 5분 설교, 그것도 대중들이 듣는 방송국에서 한 설교네요.
세상에 시비걸 것을 걸어야지, 정식 30분짜리 설교도 아니요, 그리고 본문 강해도 아니라 그 본문에서 핵심되는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 설교한 것을 가지고 시비겁니까?
야 참 너무한 것 아닙니까?
==========================================================================[re]결국 적반하장이군요. 조정재 2003-10-25 08:40:37, 조회 : 163, 추천 : 12
자신의 이름을 사용해서 글이 어디에 어떻게 올라와 있는 지도 모르니 ...
그래 놓고 귀하와 이 무리들은 실명제를 운운하고 있더구만요.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령 방송설교라 하더라도 글로 올릴 때는, 또 복음으로 봉사하려고 할 때는
하늘의 성도들이 이 사이트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고 더 풀어서 쉽게 글을 쓰던가,
다시 교정을 해서 성실하게 올려야 자기 실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지
'자다가 봉창을 두들긴다, 그게 내 글이냐?' 해놓고는
자기 이름에 대하여는 한 마디 말도 없고 겨우 그것 가지고 야단이냐는 식이니 ...
또 우리 교회는 이제 마가복음도 다 풀지 못하였고, 귀하는 사복음서를 수십 차례 풀었다고 자랑해 놓고는,
그 말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언급이 없구만요. 그것도 실명제에 걸리는 말이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쉽게 이야기하는 귀하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보는 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십자가는 잘못한 말에 대하여 적어도 책임을 지는 것이라오.
언제 귀하가 우리 교회 마태복음 강해와 요한복음 강해를 본 적이 있소?
실제 귀하의 성경 강해란에 표시된 글보다 우리는 더 많은 자료를 갖고 있소. 이제 그 정도 하면서 누구보고 ...
귀하의 교회에 지금 하고 있는 강해는 우리는 이미 몇 년 전에 다 마친 것들 뿐이오.
귀하는 고매하고 뛰어난 사람인지 모르지만, 나는 비교적 상식적인 사람이 되고 싶소.
이미 귀하가 설교한, 더구나 방송에서 많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교했다면 더더욱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지, 어디에 글이 실려 있는지도 몰랐다 하니 ...
그리고 상대가 글을 반론하고 있다면 적어도 어디에서 이 글을 인용했는가 찾아보고 그런 다음 '자다가 봉창을 두들긴다'라고 하면 그래도 받아줄만 하건만 대뜸 '내 글이 언제 그런 것이 있었냐?고 하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는 이제는 '뭘 그것 가지고' 란다.
설령 자기 글이 아니더라도 복음으로 함께 교제하는 이 곳의 글이니까, 공동체의 책임을 갖고 우선적으로 본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런 초보적인 자세도 없으면서 내가 아는 것은 고상하다고 하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구만.
귀가 있는 자들은 귀하의 설교와 내 강해를 비교해 보면 어느 것이 본문의 바른 해석인가, 알리라 생각하오.
귀하와 같이 자기 필요에 맞게 본문을 뜯어 와서 한 설교는 괜찮은 주석에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소.
허기사 유아독존이시니 그런 주석이 별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요.
귀하가 말한 중심이 과연 그러한지 본문을 따라 밝히지는 못하고, 늘 말로만 나는 너보다 높다는 식이니
서기관보다 더 상석에 앉기를 좋아하누만요.
귀하에게서 주님도, 십자가도 성경본문 보다 더 높은 고상한 철학으로 옷을 갈아 입고 말았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요?
성경본문 보다 지극히 뛰어나신 귀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철학 선생으로서.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나도 귀하처럼 본문을 뜯어 와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였소.
==========================================================================[re]갑자기 화제의 판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이근호 2003-10-25 09:31:32, 조회 : 126, 추천 : 13
저는 귀하의 마가복음과 출애굽 신학의 연결성이 다른 복음서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귀하는 이렇게 나와야 합니다.
"마태에서의 출애굽은 이렇고,
누가에서의 출애굽은 이렇고,
요한복음에서의 출애굽은 이렇다고 말입니다."
물론 다 강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마가와 출애굽 사이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관계의 핵심 되는 부분이 있을 게 아닙니까? 그 차이점만 말씀해 주시면 저와 다른 분이 많이 참고로 하겠다는 겁니다.
더구나 마태와 요한과 다른 복음서에서 많이 다루었다니 차이나는 핵심부분만 찝어서 쉽게 설명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갑자기 귀하는
저의 마가복음 설교를 문제삼고 나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서로의 약점을 상쇄하자는 것으로 무승부 되겠다는 겁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충만해서 그리스도만 증거하겠다는 마음 자세입니까?
지금 많은 분들이 귀하의 글과 저의 글을 모두 읽고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해도 '싸나이' 답지 않는 태도라 여겨지지요.
제가 그토록 무엇을 질의했는지 그 분들은 다 압니다.
저는 귀하가 마가복음과 출애굽을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 전적 추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런 출애굽 신학이 왜 마태나 누가나 요한에는 왜 안되느냐 하는 겁니다.
정 모르시면 제가 말씀드릴 수 있어요.
모르면 배우시면 됩니다.
'배움은 최고의 즐거운 쾌락'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앞으로 귀하가 어디서 누구에세도 그런 약점을 공격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라리 매를 먼저 맞는 것이 낫습니다.
==========================================================================[re]이미 알고 있지요. 조정재 2003-10-25 10:52:58, 조회 : 143, 추천 : 10 ... [re] [re] 과연 맞는지 한 번 봅시다.. 이근호 2003-10-25 14:45:10, 조회 : 123, 추천 : 9
>귀하께서는, 마가복음 9:49-50에 나오는 '소금'에 대해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것은 레위기 2:13 이나 민수기 18;19의 말씀이 속해 있는 출애굽신학을 근거로해서 모세언약을 완성, 내지는 성취하는 의미에서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이것이 마가에만 나오는 특징이요 다른 복음서에서는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 만이 '새출애굽신학'을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마가복음 9:49-50를 다시 보겠습니다. 9: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귀하는 여기에 나오는 소금을 레위기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찌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찌니라"과
민수기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과 연관시켰습니다.
귀하는 모세→예수님 으로 나아가는 식의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두 구절에 소금이 나오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귀하께서는, 구약을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말이 안된다는 겁니다. 모형은 실체가 아닙니다. 모형이 실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실체가 모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해석은 '모세→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모세'가 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소금을 언급하신 것은 구약의 소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소금이 생활용품과 식품으로 널리 사용되어 사람들 가까이 있는 필수 재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 유념할 것은, 유대 사회가 구약 율법과 무관한 사회가 아니라 이미 저들 나름대로 귀하께서 성경을 '모세→메시야'으로 굳혀 왔다는 겁니다. 따라서 때로는 예수님께서 그들이 아는 신학대로 '모세→메시야' 식을 인정하는 것처럼 활용하시지만 사실은 그런 방식의 해석에 동의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런 방식의 해석이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한다는 점을 까밝히기 위해서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레위기와 민수기의 소금 언약은 어떻게 되는가요?
언약의 출현과 진행에서 세 가지 큰 원칙이 있습니다.
(1). 그 당 언약에 해당되는 모든 신학적 개념들이 독자적으로 그 다음 언약에 대해서 '예언-성취'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고 일단 통일된 언약 의미 안으로 흡수 된다는 점입니다.
(2). 언약이 그 다음으로 넘어갈 때는, 그 때까지 확립된 모든 언약의 구원 가치가 인간의 죄로 인해 전혀 남아 있지 않고 해체되어 구원에 대해 무능력한 언약으로 전락된다는 원칙입니다.
(3)그 다음 언약은, 지난 언약의 죄성을 고발하는 의미에서 반드시 더욱 더 큰 '희생자'의 희생을 기초로 피어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죄를 보다 근원적인 밑바닥을 향하여 수직 하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인간에 이해에 따른 '예언-성취'라는 도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언→실패→고발→절망→긍휼'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소금 언약'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소금 언약'은 모세 언약 중에서 제사법에 속한 법이요 그 제사법은 또한 전체 모세 언약, 즉 율법에 속합니다.
따라서 '소금 언약'의 운명은 모세언약 전체의 성격변화와 운명과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약의 운명 변화는 그 언약을 수행할 인간들의 죄악된 자질과 연계되어 있어 결국 실패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그 예를 들어보면, 사무엘상 15:22-23에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사무엘선지자가 '순종'을 거론하면서 하필이면, 그 대립 가치에 '제사'나 '수양의 기름'을 배치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왜? 왜?
그러니까 제사라는 모세 율법도 살리고 순종도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라 '제사'와 '제물'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순종'에 대한 제대로 된 의미를 세울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모든 제사법과 제물법은 무용지물로 변해 해체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역대하 13:5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것이 아니냐"
바로 이것이 귀하께서 그렇게 애지중지 하는, 레위기 2:13과 민수기 18:19의 완성체입니다. 즉 '소금 언약'의 진정한 성취는, 인간들이 제물에 소금을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실패, 성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왕, 다윗의 등장 그 자체가 곧 '소금 언약'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다윗왕이 '소금'이나 '소금역할' 한다고 또 잘못 생각하지 마세요)
어째서 이렇게 해석됩니까?
시편 51:16-17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여기에 보면, 또다시 제사나 번제에 대한 부정적 의미설정이 나옵니다. 이것이 다윗이라는 왕의 고백 안에서 나오는데, 다윗의 입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곧 새로운 언약의 주체자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지난 언약(모세언약)은 이 새로운 주제자의 존재성으로 말미암아 흡수 통합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신약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 의(義)가 되는 다른 방식이 긍휼로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은혜를 받아서 언약을 본인이 세운다는 말이 아니라, 다윗의 등장 그 자체가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으로 일방적으로 사용하셨다는 겁니다. 즉 다윗의 등장이 곧 긍휼이요 자비요 은혜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다윗 언약 안에 있어서의 제사나 예물를 폐지해 버려야 합니까? 다윗 언약 이후의 제사나 예물의 입지를 봅시다.
아모스 5:21-24에 보면,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찌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미가 6:6-8에 보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66:1-3에 보면 보다 충격적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그러니까 다윗 언약 이후에 제사나 예물이 폐지되지 아니하는데 그 이유는, 제사나 예물이 계속되어야지만 비로소 다윗의 존재 자체의 긍휼성이 확인되고 확립되고, 새로운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 시대는 곧 제사를 전담하는 제사장 계열을 통해서 비쳐나온 저 이스라엘의 죄악성이 모세 언약을 도리어 죄를 양산하는 매개체로 변질시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다윗 언약 이후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제사와 예물은 이제 왕 지배 체계 안으로 흡수되면서 올바른 왕 유지시키기 위해 봉사하는 율법으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백성과 왕의 불실은 다윗 가문의 존재 그 자체를 더 깊은 죄악이 분출하는 매개체로 바뀌어서, 그 유대 자손에 의해서 참된 메시야가 살해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더 이상 소금언약이니 제사니 예물이니 하는 것은 아에 성취될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이 점은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이고, 사도 바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귀하께서 안일하게 탐구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출애굽신학을 확립하셔서 그 율법 안의 세계를 제대로된 상태로 회복시키시려 세상에 오신 것으로 아시는데, 그렇게 되면 다윗을 등장시킨 아무런 의의가 없게 됩니다.
즉 새삼스럽게 예수님께서 소금언약을 거론할 이유도 없는데, 귀하께서는 소금언약과 이 마가복음의 소금으로 침을 당하는 지옥의 형벌과 연관시키고 또 화목과 연관시킵니다.
그런 것이라면 마태복음 5:22-26이 더 확실하게 실감나게 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보세요. 얼마나 귀하의 표현대로하면 새출애굽신학 답습니까! 얼마나 완벽한지 마가복음의 그런 모호함 보다 더 완벽합니다.
그렇다면 새출애굽신학은 마가에서 찾을게 아니라 마태에서 찾는 것이 더 부합되지 않겠습니까?
형제보고 욕하고, 형제보고 화목하지 못했기에 지옥 보내시는 하나님, 이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성을 모르는 데서 오는 모세 언약이 지니고 있는 저주성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마태복음의 대목은 출애굽의 핵심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웃환대법'을 출애굽 사건에서 직접 확실하게 도출해 내는 확고한 신학적 고리를 갖고 있는 22:21-27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찌라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귀하께서 오해한 예수님의 율법적 분위기 있는 말씀들은 모두 그 당시 유대 사회의 율법적 경향과 율법 해석의 현장에 그대로 뛰어들어 통째로 그것을 뒤집어 엎는 작업의 일환이었습니다.
즉 '율법→예수님' 식으로 성취하고자가 아니라 '예수님→율법'의 식으로 성취하고자 함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인간도 율법으로는 구원될 자가 없고, 이제는 새 술이 동원되고 새 부대가 동원될 시점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로마서 3:21의 말씀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여기에 보면, '율법 외의 의'입니다. '율법 외의 의가 아니면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예수님 존재 =율법 외의 의(義) =소금 언약=은혜입니다. 소금이 영원해서 소금언약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소금 언약 자체가 영원하신 묵시적 인물이신 에수님에게 골인되기에 영원한 소금언약인 것입니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소금 외에 나머지 모든 마가복음 해석도 전부 잘못된 견해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심판과 구원 말씀은, '율법→예수'라는 식의 완성자나 성취자라는 말이 아니라, 율법과 전혀 무관하게 예수님만을 믿는 자가 구원될 자라는 새로운 발생의 격변의 충격을 표현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기존 율법의 완전성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겁니다. 고발자로서 말입니다.
그것은 기존 유대인들이 여전히 율법의 완성을 기대를 거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율법으로 공격해서, 결국 그들의 잘못된 율법해석과 율법의 성취 기대감의 희생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로서 율법의 소임은 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쓸쓸한 죽으심, 즉 십자가 사건으로 율법은 다 이룬 것입니다. 그 진노성을!
제가 귀하의 첫 글에 대해서 평하기를
'모세-예수' 입니까 아니면'예수-모세'입니까? 했을 때 귀하께서는 한꺼번에 뭉쳐서
모두 사족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그토록 친절히 설명하셨건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설명을 해드려야 된단 말입니까?
이제는 눈치 때리시기 바랍니다.
==========================================================================[re]답답하시군요. 조정재 2003-10-25 15:41:27, 조회 : 140, 추천 : 10 ...
[re]그러니까 이단이라는 말입니다. 이근호 2003-10-25 16:47:36, 조회 : 148, 추천 : 13
이단이 왜 이단인줄 아십니까?
십자가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이단입니다.
십자가로 시작않고 있다는 말은 아직도 십자가 안에 못 들어와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 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귀하의 글을 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단은 아니고 복음을 알기는 아는 사람인데 열심히 성경 연구에 열중하는 분" 정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엇으로 귀하의 이단성을 점검하고자 했는가 하면
"귀하의 글 속에는 귀하마저도 부정하는 요소가 없습니다."
이 말을 귀하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못알아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 정도 수준이 안되서 못 알아들은 줄 알겠지요.
천만에 말씀!
이단이기 때문에 못 알아들은 겁니다.
이번의 주고 받은 글들은,
이단들이 결국에는 공통적으로 십자가를 거부한다는 진실로 다시하면 검증된 것으로 큰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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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