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문과 산상수훈은 갈 수 있고 지킬수 있다 VS 없다] 2003-10-21
산상수훈은 좁은 문이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김병구 2003-10-21 22:28:42, 조회 : 105, 추천 : 8
산상수훈의 삶은 삶 속의 순교
I. 산상수훈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는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3년의 생애를 통하여 모범으로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사는 길을 산상수훈에서 집약적으로 철저하게 가르치십니다. 그분께서는 많은 무리가 아니라 소수의 제자들에게 이 산상수훈을 주셨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집약이요 정수인 산상수훈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우리가 과연 예수의 참 제자인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라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처럼 우리를 복음과 은혜로 인도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지 않고서는 산상수훈의 삶을 살 수가 없는데 그 새로운 존재는 성령으로 거듭난 영적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남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음의 능력으로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의 삶이 능력 있는 삶이 되려면, 산상수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며 그러한 복을 받는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천국이 무엇이며 천국 백성이 어떤 품성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II. 산상수훈은 교회 개혁과 복음 부흥의 길
산상수훈은 한국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빠져있는 돈 사랑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일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많은 한국 교회와 한국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미워하고 돈을 사랑하는 영적 간음을 범하고 있는 중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교회개혁은 돈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입니다. 주님께서는“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산상수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을 지키는 길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개혁과 복음 부흥의 비결이 산상수훈에 있습니다. 교회가 선교, 구제, 친교 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교회와 성도들이 소금과 빛의 삶을 살도록, 복음을 온전하게 깨우치는 일에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착한 행실이 없는 선교와 구제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없고, 육신을 좇아 사는 교인들 간의 친교는 교회가 더욱 세상을 닮아가도록 만드는 촉매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산상수훈을 사는 우리의 삶을 보고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면, 교회개혁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복음은 계속적으로 부흥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III. 산상수훈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
산상수훈은 최고의 도덕률로서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도 지킬 수 없으니 아예 지킬 염두도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삶을 살기를 애쓰자고 권면하는 신자를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이단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주님의 새 계명을 지키는 길을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의 삶을 살자는 신자를 이단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 수도 없으니 그러한 삶을 살려고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떠한 생각일까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산상수훈이므로, 우리도 산상수훈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님께서 내주하시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데, 같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삶을 왜 우리가 살 수 없단 말씀 입니까?
거듭난 신자도 산상수훈을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은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축소하는, 많은 영혼을 넓은 문으로 인도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IV. 산상수훈의 삶은 삶 속의 순교
기독교는 순교자의 피를 영양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의 산상수훈의 삶을 수분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순교는 죽음으로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요, 산상수훈의 삶은 삶으로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저는 기독교 역사상 무수한 신자들이 산상수훈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을 비롯한 초대교회의 순교자들, 카타콤의 지하 굴 속에서 공생공사 했던 초대 교회의 신자들,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과 성경 기자들, 성화가 필요 없다는 사탄의 거짓에 속지 말라고 경계하면서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였던 칼빈, 루터, 웨슬레, 허드슨 테일러, 마틴 로이드 죤스,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분들이 산상수훈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대원군의 박해, 신사참배, 무신론의 공산주의에 분연히 맞서 순교한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길선주, 박봉석, 손양원, 주기철 등의 수 많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대천덕 신부님도 산상수훈을 살다간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모슬렘 국가나 힌두교 국가에서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핍박 중에서 산상수훈을 살아가고 있으며, 조국의 북녘 땅에서도 수 많은 신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에서 산상수훈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순교자들이 제 정신으로 순교할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에게 순교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현장에서의 신앙고백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에서 일어나심은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 주심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 정신으로 산상수훈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우리는 산상수훈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산상수훈을 살아갈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는 산상수훈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창조의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말씀의 진수인 산상수훈을 매일 같이 기도하면서 묵상하면, 그 말씀의 창조적 능력이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더불어 우리가 산상수훈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매일같이 거듭나서 매일 같이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여, 산상수훈의 삶을 살아 갑시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삶을 사는 것 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V. 산상수훈의 삶으로 교회의 소금과 빛이 된다면
이 글을 읽으신 네티즌 크리스천 여러분, 순교의 믿음으로, 순교의 소망으로 그리고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산상수훈의 삶을 살아 갑시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그 길은 멀고 험난한 길이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길은 가깝고 평탄한 길 입니다. 그 길은 우리의 영생을 확실하게 해주고, 영적 순결의 회복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개혁을 이룩하며, 복음을 부흥시켜 한국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확실한 길 입니다.
마 10: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6: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죽는 순교의 믿음을 가진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삶을 살아갈 성령충만의 능력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형제 또는 자매 님은 주님께서 당신의 참 제자로 택정하신 한국의 엘리트 크리스천 중의 한 분이심이 틀림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 성도님들에게는 무거운 영적 부담감을 줄 수 있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형제 또는 자매 님께서 산상수훈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신다면, 한국교회의 개혁과 복음부흥은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형제 또는 자매 님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일 것이며, 형제 또는 자매 님이 한국 교회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7: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산상수훈은 좁은 문이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re] 새로운 존재인데 왜 산상수훈을 또 지켜야 합니까? 이근호 2003-10-22 08:20:30, 조회 : 146, 추천 : 11
>'새로운 존재' 그 자체로서 미완성입니까?
만약에 새로운 존재로서 그 산상수훈을 다 못지킬 경우에, '새로운 존재'의 '새로운 존재됨 취소되는 겁니까?
또한 만약에 예수님의 오심이 인간을 새로운 존재 만들기라면 구태어 십자가 질 이유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신학처럼 성신, (즉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지고 거기에다 산상수훈을 첨가해 주시면 그러면 하나님이 원래 원했던 완벽한 인간상으로 변모되지 않을까요?
도대체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공중 분해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불실의 신학을 가지고 아직도 할 말이 있고 교회 개혁을 운운하시렵니까?
신상수훈의 해석자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사도 바울을 위시해서 사도들의 해석에서 결론을 얻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종 적인 상태를 '義'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의는 인간의 행함에서 나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만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義는 인간의 義를 도저히 그냥 묵과하고 그냥 지니치는 법이 없습니다.
이점을 십자가에서 분명히 했기에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2:2에서는, "나는 십자가와 그의 십자가 못박힌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 산상수훈을 보게 되면, 그것은 완벽한 하나님의 義를 율법적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기 의를 죽이는 자에게 한해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밖으로 표출됩니다. 그 사랑의 내용은 곧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義'만 자랑하는 겁니다.
귀하께서 제발
전에 물었던 질의에 대해서 답변을 일단 하시고 그 다음 자기 주장을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re] 새로운 존재인데 왜 산상수훈을 또 지켜야 합니까? 김병구 2003-10-22 23:58:59, 조회 : 74, 추천 : 13
제가 올리는 글들 속에 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re] 동문서답의 전형적인 예 이근호 2003-10-23 07:40:03, 조회 : 164, 추천 : 20
>"저도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김병구)
"대한민국 대통령이 누구십니까?"(이근호)
"제가 전에 말한 것 속에 답변이 다 들어 있는 줄로 압니다."(김병구)
".......? (속으로) "
저는 귀하께서 과연 천국 사람인가 아닌가가 궁금해서 천국의 임금님이신 예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안 안갈사람도 귀하와 동일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천국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것은 천국의 왕이신 그 예수님라는 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서 자꾸만 회피하시니 진짜 성도같으면 예수님에 대해서 이토록 회피하고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정말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귀하께서는 평소에 사랑하시는 분도 그토록 철저히 배타시하십니까?
==========================================================================[re] 새로운 존재인데 왜 산상수훈을 또 지켜야 이근호 2003/10/22 11 146[re] [re] 신앙은 완성이 아니고 순종 김재국 2003-10-22 13:35:47, 조회 : 103, 추천 : 13
>>'새로운 존재' 그 자체로서 미완성입니까? >> 만약에 새로운 존재로서 그 산상수훈을 다 못지킬 경우에, '새로운 존재'의 '새로운 존재됨 취소되는 겁니까?
(의견) 거듭남으로써 새로운 존재라고 해도 거룩의 완성이 되지는 못합니다.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논하면 완성은 예수님으로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거듭난 성도는 주님의 뜻에 맞추어 자신의 행위를 분별해야 합니다. 완전은 불가능하지만 가치관의 변화를 세상의 영적전투의 장에 적용해야합니다.
>또한 만약에 예수님의 오심이 인간을 새로운 존재 만들기라면 구태어 십자가 질 이유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신학처럼 성신, (즉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지고 거기에다 산상수훈을 첨가해 주시면 그러면 하나님이 원래 원했던 완벽한 인간상으로 변모되지 않을까요?>>도대체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공중 분해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불실의 신학을 가지고 아직도 할 말이 있고 교회 개혁을 운운하시렵니까? (의견)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개혁이 없었으면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도 유지되었겠죠 지금의 제도나 미래의 제도가 완전,완성은 아니더라도 수정과 보완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새로운 존재만들기로 그이유가 확보됩니다. 산상 수훈은 완벽한 인간의 전제조건이 아닙니다. 성도가 추구해야 하는 가르침입니다.doing 과 완성은 예수님이 하십니다. 성도는 keeping과 순종, 즉 진리목적 추구성의 정당성를 확보하면 됩니다.> 신상수훈의 해석자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사도 바울을 위시해서 사도들의 해석에서 결론을 얻어야 합니다. >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종 적인 상태를 '義'라고 보았습니다. >> 그리고 그 의는 인간의 행함에서 나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만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義는 인간의 義를 도저히 그냥 묵과하고 그냥 지니치는 법이 없습니다.>>이점을 십자가에서 분명히 했기에>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2:2에서는, "나는 십자가와 그의 십자가 못박힌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 산상수훈을 보게 되면, 그것은 완벽한 하나님의 義를 율법적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의견) 동의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완성을 표상하고 인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완성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집니다. > 그리고 그 자기 의를 죽이는 자에게 한해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밖으로 표출됩니다. 그 사랑의 내용은 곧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義'만 자랑하는 겁니다. (의견)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의를 표출하는 데 그 양상은 공의와 정의, 진리에 합당한 이웃사랑으로 전달됩니다 사랑은 사랑을 전달하고 저주는 저주를 전달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사랑 전달의 도구입니다.>귀하께서 제발>> 전에 물었던 질의에 대해서 답변을 일단 하시고 그 다음 자기 주장을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 ==========================================================================산상수훈은 좁은 문이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김병구 2003/10/21 8 106 [re] 동의합니다. 지킬수 없는 것을 명하시지는 않습니다. 조부상 (Homepage) 2003-10-22 08:41:38, 조회 : 95, 추천 : 11
지킬수 없는 것을 행하라고 명하시는 분이 아니신 까닭입니다.자아의 생명이 죽음으로 거듭나는 것(새 생명의 탄생)이 십자가 아래 있는 것이라면거듭난 새 생명이 성장하는 것 역시, 지속적인 죽음을 통과하는 십자가 아래의 일입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려 할때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거나 값을 지불해야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이런 조건을 거절한다면, 외국에 갈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이는 항공사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도 비슷한 법이 있습니다.예수께서 직접 제시한 하나님 나라의 법은(요한복음 3:1~8)에 명시되어 있습니다."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행2:38)에 "주예수를 믿고.. 회개하여""죄사함을 얻는 자"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고분명히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이를 거절한다면, 그는 명백히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하늘나라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3:36)아들에게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믿고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영적으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육적 생명은 유통기한이 있는 생명이며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낡고 시들고 병드는 생명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으로 부터 태어나는 영적 생명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며,시공을 초월하는 새생명입니다.그러기에 시들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는 생명입니다.
새 생명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성령이라고도 하며, 주예수님이시기도 합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때그 음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임을 알게되는 까닭도, 바로 이런 비밀(성삼위 일체의 비밀)에서 연유합니다.새로운 생명에 대해 사도바울은 "새 사람" 혹은"속사람" 또는 "영의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육적 부모로 부터 태어난 나의 자아는 나의 옛사람입니다. 그에 반대로 기존의 자아(=본능적으로 죄를 즐기던 자아)와는 전혀 다른 성질(=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을 지닌 새사람이내 속에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바로 이것을"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 생명은 육적인 생명과 마찬가지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자라가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우리중 누구도.. 탄생과 성장에서 예외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감을(벧후3:18) 통해자아의 생명은 더 많이(자주) 십자가에 넘기워지며자아의 생명을 부인하는 것 만큼..하나님의 생명은 점점 자라가게 되는 과정(엡3:18~19)을 겪는 것입니다.(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그리스도와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이것은 개성말살이 아니라 죄와 세상에 대해 죽는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좁은문과 좁은길(마7:13)은 철저하게사람의 내면으로 나 있는 길이며,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길입니다.돈이나,크기나 외모나 화려함같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영원히 찾지 못할 길이며, 보지도.. 알지도 못할 길입니다.
천국가는 길은, 심령이 가난한자나,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마음이 청결한자, 善을 추구하려는 사람에게 보여지며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 속에서 찾아지는 길입니다. 또,여러 증거들과 실제적인 능력을 통해 확증되는 길입니다.
cafe.daum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re] 동의합니다. 지킬수 없는 것을 명하시지는 않습니다. 엄기욱 (Homepage) 2003-10-22 12:22:23, 조회 : 101, 추천 : 8
* 가나안 땅의 이중적 두 얼굴
어릴 적 지리부도 상에나 나옴직한
젖과 꿀이 흐른다는 전설의 땅!
그 땅은 과연 우리 마음 어디쯤 위치하는지
혹 마음 밑 까마득한 곳을 내려가 보면 그 흔적이나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로부터 그 자손들의 행적 이곳 저곳을 따라 성경 속을 아무리 기웃거려 보아도
거기 기근과 징벌과 전쟁의 두려운 소식만 있을 뿐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땅은 찾을 수 없어라
영원한 안식과 위로의 땅이라던 가나안!늘상 배우기로는 믿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다던 가나안!
저 거룩한 땅을 이제 볼 수 없는 것은내 눈이 나쁜 탓일까? 아니면 성경이 거짓일까?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렇게 두렵고 고통스러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려고 하셨던 것일까?
그것도 그 땅에서 평화를 누리며 잘 살고 있던 그 땅 거민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게다가 그들의 소, 양, 나귀까지 모조리 칼로 쳐죽이라는 실로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잔인한 명령까지 내리시면서..
여기 성경은 증언한다
믿음의 조상 때로부터 오늘날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으로 물려 내려온 가나안 땅!
그 거룩한 땅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위한 기업일 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거처는 아니라고..
선은 악과 그 거룩한 땅에서 공존할 수 없듯이스라엘과 그 땅의 거민 역시 그곳에 함께 살 수 없다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꽈리를 틀고 있는저 고질적인 악의 세력들! 그들이 우리의 애정을 지배하는 한하나님 나라는 우리 마음에 임할 수 없다
우리 마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에 악의 세력은 이스라엘에 의해 반드시 정복되어야만 한다는 것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토록 명백한 주님의 가르치심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그동안 가나안 땅이 평화와 안식의 아름다운 땅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아직 우리의 고질적인 악이 그곳에 살고 있어그 땅이 무척이나 흉하게 보였기 때문
전심을 다해 악과 싸우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면 질수록 그 만큼우리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는 더 무거워 보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 땅 거민을 물리치는 수고를 하지 않은 채
주님의 거저 베푸시는 달콤한 은혜와 사랑에 기대어손쉽게 다른 곳에서 그 땅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악을 떠낸 바로 그 자리야말로 우리가 들어가야 할 진정한 가나안 땅이 있는 곳이다
그곳 외에 그 어디에도 아름다운 가나안 땅은 있을 수 없다
법궤를 앞세우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며율법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주야로 묵상하고 지켜 행하며
요르단 강과 굳게 잠긴 여리고 성, 아이 성을 무너뜨리고마침내 그 땅에 살고 있는 부족들을 정복한 뒤 그 땅을 분할 받는 이스라엘의 행보는 무엇을 말함이던가
하나님 나라는 우리 마음 속 악의 세력들이 살고 있는 저 불경건한 땅! 거기 그 자리 바로 위에만 건설되어진다
그러므로 그 땅은 우리의 악을 치울 때에야 비로소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이다
이 방법 외에 다른 길로 그 땅에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분명 성경의 가르침에 벗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하리라
그 땅에 사는 거민들을 하나 둘 정복하고 나서궁극에 그 땅을 각 지파 별로 분할 받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영혼 구원의 밑그림이 아닐까
그동안 내면에 거하는 악으로 인해 우리 마음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기울지 아니했던가
이제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악과 전심을 다해 싸우면
주님은 마침내 우리 마음에 잃어졌던 사랑, 그 영혼의 참 질서를 다시 되찾게 해주실 것이다
==========================================================================[re] 천국 못갈 사람의 넋두리 이근호 2003-10-22 16:57:19, 조회 : 121, 추천 : 10
천국가서 뭘할건데요?
뭘 내놓고 자랑할 건데요?
자신의 자유의지로, 임의대로 악을 골라 싸워서 승리한 그 무용담을 꺼집어 내놓고 영원히 단독 간증집회 할 건가요?
그렇다면 어디한 번 천국 가서 예수님과 맞짱 붙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은혜만 믿다가 천국 못들갈 뻔 했다고요?
귀하는 천국이라고 여기는 곳에 가서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마침 나의 탁월한 자유의지의 제대로 작동을 해서 그나마도 악을 이겨낼 수 있을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예수의 보혈의 피만 믿다가 큰 코 다칠뻔 했다고요. 너무나도 아찔한 순간이었다고요, 자칫하면 영원한 지옥에 나락에 떨어질뻔 했다고요.
아마 귀하의 옆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차라리 나처럼 예수님을 팔아버리지 그랬어"(가롯 유다의 참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