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의 오류] 2003-10-16
인간론의 오류 김재국 2003-10-16 00:48:13, 조회 : 110, 추천 : 2
저의 어줍잖은 성경이해가신유대주의이며,그사상의 근저를 이루는 인간구원 중심의 남은 자 사상이예수님을 핍박한다는 이근호 목사님의 지적을 귀담아 듣겠습니다.
이번에는 인간론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이근호 목사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규정합니다.그래서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성도는 모른다고 하십니다.이목사님의 피조물이라는 인간론 만으로는 창조와 구속과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1.인간의 피조된 인격체(하나님 안에서만 자유할 수 있는 영적존재)2,하나님의 형상3.죄인4.영육합일체로서의 전인
이 4가지 요소가 통합되어 있는 것이 인간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 목사님의 인간론은 3 번 죄인과, 1 번에서 인격을 뺀 피조물로만 되어 있어서인간=피조된 죄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그래서 인간은 일방적으로 은혜를 수용만 하는 입장에 있게됩니다.
피조된 죄인이라는 인간론 만으로는 우주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설명이 안됩니다.더구나 죄인인 인간을 하나님이 구원하는 이유도 알 수 없고 그냥 은혜만 있을 뿐입니다.구원의 이유는 영적 인격체와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전인 사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거기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전제하면 긍휼의 이유가 더욱 분명해 지겠지요.
하나님의 형상도 아닌,의미 없는 죄덩어리 물건을 사랑하고 구원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데이 목사님의 견해는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인간이 터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 권리인가요?
==========================================================================[re] 인간론의 오류 이근호 2003-10-16 07:39:34, 조회 : 123, 추천 : 2
>인간은 영육 합일체가 아닙니다.(영, 육이란 모두 인간세계의 심리적 개념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성경하고 전혀 무관한 개념들입니다. 즉 자기가 자기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고자 해서 동원된 표현들이 바로 영과 육이라는 단어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과 육이란 존재물을 놓고 분석하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즉 영적인 관계를 말하고 육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인간을 놓고서 두 속성이나 두 요소로 분류하는 것은 인간들의 스스로 사색해서 일방적으로 내린 결론이지 하나님 뜻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탐구들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볼 때에, "너는 누구의 지배 안에 놓여 있느냐"를 가지고 인간을 판단하십니다.
성령의 세례 안에 있는 영적인 사람이요, 그렇지 않으면 모두 육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은 그 자체만 놓고서 아무리 분석해봤자 전혀 하나님의 인식이 아닌 악마가 심어놓은 사고 원리 밖에 안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 구원의 요건을 자체적인 파악으로 가능하다는 인식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천주교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음-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것이 따로 들어있음-그것이 인간의 물질적인 요소로 둘러싸여 있음-그런데 죄로 인해 파괴되었음-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음- 성령을 주셔서 그 부서진 형상을 회복케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음(이것은 칭의 혹은 중생이라고 흔히들 말하지요)- 중생은 단지 씨앗이고 본격적으로 그 은혜의 능력으로 무서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될 책임이 신자에게 있음- 그 하나님의 형상의 모델은 예수님의 심성임- 그 회복 과정을 '성화'라고 함- 개인적인 은혜의 능력에 따라 회복 레벨의 차이남- 따라서 천국에서 보상체제를 마련하셨는데 하나님깨서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심- 착하고 바르게 산 사람은 큰 상급을 받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음- 복음이 들어오지도 않아서 예수님을 못 믿었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을 양심과 본성적으로 지킨 사람을 위해 패자부활전을 마련 했음(이것이 연옥입니다) -이로소 하나님의 형상은 본디 하나님의 자기 품성으로 인간에게 심은 인간의 영혼임이 밝혀짐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게 한 유대인의 메시야 구원론입니다.
"누구든지 바리새인이너 서기관보다 더 의가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이 세상에서 유대신학보다 더 완벽한 신학은 없습니다. 그만큼 악마가 심어준 인간적 지혜로서는 최고를 자랑합니다.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 악마의 의식임을 확실하게 보여주자는 것이 십자가 피흘리심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언약의 자체적인 능력으로 긍휼 할 자만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하실 뿐입니다. 이러한 언약 행위의 중아에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되시는 분이 따로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이 아닙니다.
이점에 대해서 저의 책과 저의 글을 통해서 수십번씩이나 언약 개념을 가지고 공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예수님을 말합니다.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피조물, 특히 인간의 지으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되시는 예수님과 언약적 관계를 형성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되시는 분(예수님)을 증거하는 언약 관계로 인해 사람이 지어졌습니다.
이것은 골로새서 1:15-17의 말씀, 즉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형상'되시는 분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창세기 1:26절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내막에 대해서 요한복음 1장에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란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흙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 '관계'라는 것이 언약이며, 구약에서는 '언약 안'에서 벌어지는 피로 인해 기존의 인간을 죽이고 신약에서는 '새언약 안'에 있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인해 이미 죽은 자를 확인케 해 나가서 그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만 발현되게 하시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분명히 십자가 사건 현장에 사도 바울은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하는 겁니까?
그것은 성령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성도 안에서 계속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로서 성도는 그리스도 의를 증거하는 증인으로만 세상에 나타나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이를 위하여 신약성경은 무수히 많은 명령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거룩하라"라는 완벽한 명령들이 주어지지요. 그럴 때 십자가 안에 있는 성도는 그 완벽한 요구를 대하면서 자신이 죽어마땅한 죄인이었음을 제삼 확인하면서도 동시에 오직 긍휼과 십자가의 능력으로 된 그리스도의 의만이 만이 세상에 증거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골로새서 1:15-16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형상되시는 분을 위하여 지음받았다'에 담긴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