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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로즈마리"씨와 "엄기욱"씨의 구원관에 대해서] 2003-10-08묻고답하기로마서

['로즈마리'씨와 '엄기욱'씨의 구원관에 대해서] 2003-10-08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로즈마리'씨와 '엄기욱'씨의 구원관에 대해서
이근호 2003-10-08 13:00:41, 조회 : 144, 추천 : 13

언른 보면 전혀 상관없이 극대극의 위치해 있다고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로즈마리'씨의 구원관은 이렇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일단 심히 왜곡되게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존재의 흔들림'을 거치지 않는 자는 자신이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착각 속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진짜로 구원받은 자라면, '존재의 흔들림(의심)의 절차를 필히 고백하게 된다. 이런 고백이 없는 자는 신자라고 볼 수 없고 올바른 신앙고백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존재의 흔들림은 예수님에게도 있었고, 사도 바울에게도 있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존재의 흔들림'의 통과 여부가 참 신앙인인지 아니면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우기고 있는지를 판명하는 기준이 된다."

이와같은 '로즈마리'의 씨의 구원관은 엄기욱 씨의 구원론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는 구원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성경'으로 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인간의 공통된 체험+성경 말씀'으로 전환 되기 때문이다.

성경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오면 모든 인간의 체험은 무의미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로즈마리'와 '엄기욱'씨에게 있어 인간의 체험은 무의미가 아니라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성령의 은혜가 오게 되는 결과로서의 체험을 성령께서 일하시는 내용물로 필수적으로 포함을 시켜버리는 것이다. 즉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존재의 흔들림이라는 체험'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 되어 버린다.

이런 주장은, 로마서 9:16에 위배되는 주장들이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진정 '로즈마리'씨가 존재의 흔들림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로마서 9:16의 고백이 그대로 마음 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나 '로즈마리'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오게 되면 필히 '존재의 흔들림'이 발생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로즈마리'씨의 주장이 옳을 경우는 '존재의 흔들림'이라는 것하고, '원하는 것, 달음박질'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사도 바울이 바라보고 있는 인간의 죄성이란, 바로 자기 구원을 위해 '원하고, 달름박질' 하는 것으로 충족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진짜 구원된 자라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온다. "존재의 흔들림이나 달음박질이나 , 내가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이나 기타 어느 것도 구원의 방편이나 구원의 흔적이 될 수 없고 오직 긍휼하심 만으로 충분합니다"라는 고백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오면 필히 회개를 하게 된다고해서 '회개'를 구원의 요건으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은혜가 온 결과에 의해서 생겨난 체험이라도 그것을 구원이 반드시 되어야 될 요건으로 집어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긍휼'이라는 그 어떤 인간 조건에 억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이 되는 이유에다 집어넣지 못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언급하는 것으로 구원의 요건을 설명하는데 도리어 방해가 되기 때문이요 악마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존재의 흔들림' 이야기를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에 착각을 했다고 우기는 것은 정신을 딴데 팔고 있는 증거가 된다.

원래 '착각'이라는 표현은 '착각'이 아닌 것을 확고히 다져진 연후에 '착각'이 요소가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착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질타할 때는 반드시 '착각' 아닌 것을 제가 확실히 착각하지 않는 상태에서 확고히 쥐고 있습니다. 라는 고백의 표현이다.

"본인이 한 때 착각했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착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과연 착각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착각이 아닌 진리적 요소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결국 그것은, '존재의 흔들림'이란 인간의 체험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로마서 9:16을 비롯해서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으진 성경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왜 이 사실을 시비를 걸고 싶어하는가?

그것은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체험에다 성경을 보충해서 확고한 구원론을 따로 갖고 싶어 하는 '구원이 욕망'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로마서 9:16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된다. 즉 '구원을 원하고, 구원을 위하여 달음박질'하는 것이 인간들의 죄성의 실체라는 것이다.

제가 보기에 '로즈마리'씨는 심각한 혼동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받은 자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을 구원받기 위해 노력의 일환으로 보는데 있다.
긍휼로 구원받았기에 그 길을 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데, '로즈마리'씨는 그 고난의 길조차 뭔가 갈등의 갭이 너무 심하게 동요되어서 (존재의 흔들림)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로즈마리'씨가 왜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성과 은혜성이 아무리 강해도 인간의 본래적인 죄성인 의심마저 삭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데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죄 한테는 못이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0:22의 말씀에 어긋난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그러니까 로즈마리씨는 예수님(성도)의 고난의 십자가 길=의심(착각)의 길 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 성도에게 심적인 갈등만 이르키고 하늘로 되돌아간 셈이 되어 버린다. 나머지 갈등과 착각과 의심에서의 해결은, 인간의 몫으로 남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로즈마리'씨처럼 "이것은 착각이야. 암 착각이야 말고. 그러나 내가 착각이라고 인정할 때 비로소 나는 착각 안한 제대로된 성도일꺼야"라고 나름대로 정리, 정도할 수 있는 논리적 기계(변압기)를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을 그는 '십자가'로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변압기(교류를 직류로 바꾸는)가 없는 자는 비신자로 간주하고 싶은 것이다. 이 변압기를 그는 은혜, 혹은 긍휼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이 변압기 마저 '착각'이라는 점을 고치는 변압기는 또 누가에게서 얻어야 하는가?
이점에 대해서 엄기욱 씨가 통채로 밝히고 있다.

자 여기서 '로즈마리'씨와 '엄기욱'씨가 동일한 구원의 맥을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즉 하나님은 인간이 행해야 몫을 따로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고한 구원관을 항상 꼭 간직하고 싶다'라는 의지에서 두 사람의 구원관은 일치된다.

엄기욱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제는 인간이 스스로 약하다는 생각을 벗어나 자기 속에 있는 강인한 의지
로 악과 싸워 이를 버리면 그때까지 악으로 인해 가려져 있던 하나님께로부
터 온 무수한 은혜들이 그의 소유가 될 것이다. 악을 하나 물리칠 때마다 은
혜를 하나씩 차지하게 될 터이니 결국 주님의 도움은 인간 스스로의 의지의
노력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강렬한 소유욕의 발산이다. 즉 은혜를 소유하려는 것이다.
자신이 주님의 소유물되고 사라져 주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자아를 주님(그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신神을 뜻한다)의 은혜 덕분에 강건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가?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사실 그 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인간 의지의 노력은 신앙적인 측면에
서 빈번하게 배제를 받아왔다. 강인한 의지의 노력보다는 연약이라는 구호
하에 하나님의 도움에 기대는 것만을 신실한 믿음인양 생각해온 것이다. 그
러나 의지의 노력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반대로 의지의 연약으로 인해 주
저앉아 있는 것만큼 추한 것은 없다. 의지의 노력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사랑이 벌써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 의지의 노력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로만 신앙이 완성된다는 생각은 일견 높고
고귀한 사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헛된 환상적 이론일 뿐이다.

이 세상의 일도 신앙의 일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노력하면 할수록 모든 분야
에서 발전이 나타나게 되어있는 것이 미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요 도움이
며 신적 질서이다. 하나님의 도움은 언제라도 우리 앞에 놓여져 있지만 결국
자기 스스로 모든 어려움을 풀기 전까지는 그 도움의 보따리는 풀려지지 않
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노력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지
속적으로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살려 애를 씀으로 우리는 주님께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인간은 연약이라는 병에
서 졸업을 하게 되고 또 자신을 도와주기만 하는 신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참된 진리의 주님을 맞게 된다."

그렇다 '발전'이다. 그는 발전 못해 환장한 것이다. 발전을 하고 싶은데 그 정당성을 신께서 인정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신처럼 능력을 갖고 싶은 것이다.

이런 기준을 따라 그는 비신앙을 이렇게 규정짓는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며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역시 겉으로는 크나큰 믿음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노리는 바는 무엇인가?

"상황을 타개하는 능력을 주님은 이미 인간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처리 능력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신이란 어떤 경지로 오르는 것을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유'이다. 신에서 마저도 자유이다.

"신앙이 불완전할수록 하나님께 종속되려 하고 보다 성숙해질수록 하나님 안
에서 자유를 누리려 한다. 신앙이 어릴 때는 하나님이 이것저것 모두 챙겨주
며 일일이 간섭하시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가 되면 스스로 알
아서 행하고 그 모두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이 완성될수록 전혀 하나님이 개입되지 않은
것처럼 독립적으로 살지만 실은 그 모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향아래
이루어지는 일임을 지각하며 사는 것이다."

피조물로서 창조주와 막먹자는 것이다.

도대체 이와같은 오류들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자신이 피조물임을 망각하고 그리스도에게는 관심이 없고, 신이 되려는 죄악된 피조물의 근성을 성경과 신학을 동원해서 포장을 하고자 하기 때문이요, 보다 성경적으로 말해서 '긍휼'을 입지 못해서 그러하다.

긍휼이 없기에, 성경에 나오는 구원에 대해서 하나부터 끝까지 자기 책임하에, 자기 노력하에, 자기 겸손으로, 자기 회개으로, 자기 헌신으로서, 자기 희생을 통해서 어느 정도 따라 붙여야 될 부담을 지고 살아가는 자가 되어 버렸다.

얼마나 긍휼이 없고 자유가 없으면, 은혜 받은 티를 내려고 하고 자유, 자유를 부르짖어야지만 다소 위인으로 삼을 수 되겠는가!

이것은 단순히 두 분께 국한해서 다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해서 오해가 없기를 바래서 드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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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신의 섭리 중 강요와 자유
엄기욱 (Homepage) 2003-10-09 02:16:48, 조회 : 101, 추천 : 11

신의 섭리 중 강요와 자유

인간의 이해와 의지가 다른 자에 의해 강요되는 것은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기에 참된 그 영혼의 형상을 이루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에 의해 강요되는 것은 자유로 행하는 것이며 이는 그 영혼의 형상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선과 진리가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유입되어 들어오는지 또 악과 오류 역시 어떻게 지옥으로부터 유입되어 들어오는지 알 수 없으며 신의 섭리가 어떻게 악에 대항하여 선을 위해 일하는가를 알 수 없는데 이는 주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왜냐하면 만일 인간이 그것을 안다면 인간은 이성에 따른 자유에 의해 자기 스스로 행동하기를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일들은 말씀이나 교리로부터 알고 있는 것으로써도 충분하다.

인간의 영혼은 기적과 환상, 공포와 형벌 등의 외적 수단에 의해서 개량되지 않고 말씀이나 거기서 얻은 교리로부터 나오는 모든 진리와 선의 내적 수단에 의해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영혼이 아직 개량되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기적이나 환상, 공포와 형벌 등의 외적 상황을 맞게 되면 그 영혼은 일시적으로 악과 거짓을 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악과 거짓들을 영혼 깊숙한 곳으로 가두어 드러나지 않게만 할 뿐이어서 언젠가는 더 큰 악과 거짓으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공포와 형벌 등은 사람이 탐하는 악과 허위를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혼이 이미 말씀과 교리의 정립 등 이런 내적인 수단에 의해 개량이 되어 있는 상태에 있을 때 기적 등의 외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그 영혼은 더욱 영적 진전을 이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그 생애의 마지막까지 신앙의 모든 진리와 사랑의 모든 선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처음 선한 삶을 살다가 중도 포기하여 나중에 악한 삶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계속해서 악한 삶을 사는 경우가 오히려 자신을 위해 나은 것은 전자의 경우 선과 진리의 모독으로 그 영혼이 더 큰 해악을 입기 때문이다.

인간 출생에 악이 먼저 허용되는 것도 사실은 이러한 모독을 막으려는 신적 섭리 때문인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여러 가지 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함에 따라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을 그 악으로부터 이끌어내고 계신다. 인간이 악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만큼 하나님은 그를 선으로 인도하시며 인간이 그것을 회피하는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가로막혀 그를 구원하시지 못하는 것이다. 또 인간이 악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행하는 선은 겉으로는 선으로 보일지언정 그 뿌리는 자아애와 세간애에 연결되어 외관상 주님과 이웃을 사랑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자기 사랑과 세상적 이기가 그 주된 목적이었음에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의지에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에 있지만 그럴지라도 그 의지가 자유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 안에 있는 주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인식하는 일을 할 수가 없으며 이는 생명이 자유로부터 느껴지며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이 수행하는 것 모두가 인간에게는 인간 자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자유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유는 마치 자기 자신으로부터 생각하고 뜻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실제에 있어서 이 일은 선이고 저 일은 악이며 또 이것은 참이고 저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궁극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자가 누구이겠는가. 그래서 자유는 인간에게 그 생명과 함께 주어졌으며 또 그것은 인간에게서 제거되지 않는다. 만일 인간에게 자유가 제거된다면 그의 모든 생명의 기쁨까지 제거되어 그는 자기 생명을 살지 못하고 노예적 생명으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사실 우리 중 어느 누가 무엇을 원하고 말하며 행동할 때 자기 스스로 한다고 인정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이와 같은 것은 하나님 섭리의 법칙에서 나오는데 인간이 그렇게 느끼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 가운데 무엇하나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을 수 없으며 주님의 생명을 수용할 수도 없고 행위의 주체가 될 수도 없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 활동하는 것처럼 지각하는 자유의 능력은 주님의 생명이 인간의 가장 깊은 내부를 구성하는 그의 수용용기에 끊임없이 유입된 결과인데 이 수용용기에는 인간의 이해와 의지가 깃들고 있어서 주님으로부터 유입되는 생명은 그 수용용기가 선과 진리를 수용하면 풍성해지고 악과 오류를 수용하면 감퇴하고 제거되기도 한다. 인간 내면의 이 수용용기에 의해 인간은 짐승과 구별이 되고 그 역할에 따라 이해와 의지는 다양하게 변화한다.

인간은 그 영으로 보면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살고 있는데 악과 거짓을 사랑하는 기쁨은 지옥으로부터 유입되고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기쁨은 주님으로부터 유입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생명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 같이 느끼고 인정하게 하며 이로 인해 어느 한 편을 택하는 자유와 그 능력 안에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악과 거짓을 받아들이는데 비례하여 지옥 쪽으로 끌려 내려가고 선과 진리를 택하는데 따라 천국 쪽으로 올려진다.

강요는 모든 자유를 빼앗아 버림으로 이해와 의지 등은 다른 것에 의해서 조금도 강요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나 인간이 스스로를 강요하는 것은 괜찮다. 왜냐하면 자기를 강요하는 것은 자유에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의지에 속해 있다. 의지에 의해서 자유는 이해의 사고 안에 존재하고 사고에 의해 자유는 인간의 언어나 생활에 반영되고 있다. 의지의 자유에는 힘이 있어 이 힘에 의해 인간은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뜻하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의지의 자유에는 그의 애정이 실려 있기에 이 애정이 원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어떤 사람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에서 그 사람 생명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이해와 의지 등이 다른 무엇에 의해 강요되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 신적 섭리의 법칙이기에 주님은 자신으로부터 인간 곁에 부어지는 일체의 것들이 마치 인간 자신의 것인 양 소유되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또는 무엇을 행하는지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에 속한다. 심지어 신에 복종하든지 아니면 반항하는 것까지도 그는 스스로의 자유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해와 의지는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에 만일 이것이 다른 무엇에 의해 강요된다면 이로부터 나온 결과는 그 사람 영혼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외적인 것은 형벌과 공포 등의 강요로 변화시킬 수 있지만 인간의 내적인 것은 강요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가해지는 외적인 것은 일시는 내적인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을 개량시킬 수 없으며 반드시 내적인 변화에 의해 그것과 조화하는 외적 나타남이 있게 되는 것이 신적 질서이다. 다시 말해 유입에 의해 내적인 것은 외적인 것 안으로 들어가지만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 안에 들어올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겉으로 드러난 선한 행위보다 그것을 하게 된 동기를 잘 살펴야 하는 이유이고 이를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신 것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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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언약에 대해서 아는 바 없기에
이근호 2003-10-09 07:41:16, 조회 : 126, 추천 : 10

>이 분은 언약에 대해서 아는 바 없기에 인간의 자율권과 하나님의 자율권을 상호 연결시켜 보려고 애를 쓰는군요.

그러니까 언약을 인간쪽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제조해 보겠다는 겁니다.

멋있는 종교적 자율성을 발휘해서 말입니다.

이런 것은 다 구원 욕망의 표출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아예 구원받을 권리나 자유도 없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나 행함도 모두 구원받을 자격도 없는 존재자의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모든 가능성은 악마의 가능성 밑에 눌려 조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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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간의 역할(명상)
엄기욱 (Homepage) 2003-10-10 19:43:42, 조회 : 77, 추천 : 14

*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간의 역할(명상)

사람이 신께 받은 재능과 힘을 신과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기 전에는 신이 주는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인간 자신이 본분을 다할 때 신은 그것을 완성시킨다.

나사로의 무덤에서 돌을 제거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일은 주님의 일이다. 돌을 옮기는데 신의 특별한 힘은 필요가 없다. 주님은 사람들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자신의 능력을 나타낸다. 나사로의 수의를 풀어주는 것도 인간의 일이다.

죄로 죽은 자들도 이와 같다. 생명을 주는 것은 주님의 일이나 이에 장애가 되고 곤란이 되는 것을 제거하는 일은 사람의 일이다. 또 영적 생명을 받은 후에도 어떤 이들은 묵은 습관과 악한 영의 세력에 묶여있는 경우가 있다. 이를 끊어버리고 자유를 주는 것은 주님 자녀들의 책임이다. 이와 같은 봉사는 그들에게 끊임없는 각성을 준다. 빛을 비추이는 것은 주님의 사랑이 행하지만 그 빛을 인간이 자유의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그는 계속 어두울 수밖에 없다.

성신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내린다. 수영을 잘하려면 설명과 교훈만으로는 안 된다. 친히 물에 들어가 연습하고 자주 숙달해야 한다. 처음에는 얕은 물에서 점차 깊은 곳까지 들어가 마침내 기술상 달인이 된다. 실제 신학교인 주님과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신앙의 비결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나님의 일에 겁을 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약한데서 강한 모습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사람은 병이 낫고 자양분을 먹으면서도 허약한 병신 같은 사람이니 이는 적당한 운동과 활동을 하지 않은 까닭이다.

고통은 인간의 사곡한 반역적 성질에서 일어나 온다. 차고 더운 것은 지구가 태양에 대한 관계에서 일어난다. 그같이 사람은 자기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신과 조화 혹은 부조화의 상태를 가지게 된다. 신의 도리는 인간에게 영적 건강과 행복을 주려는 것이나 인간이 신에 배반하면 영적 고통과 번뇌가 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신은 그 뜻에 반역하는 모든 상태를 제거하는 대신에 인간으로 하여금 이 지상은 길이 살 곳이 아니요 이방 땅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다.

양친의 병이 어린이에게 유전하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부모가 수족이나 눈을 잃었다해서 어린이가 절름발이나 장님으로 태어나는 일은 없다. 원죄도 그와 같아서 선악의 모든 성질이 양친으로부터 어린이에게 유전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의 성격은 그가 자각하여 행한 행위의 결과에 기인한다. 능력이나 성품은 적은 부분을 부모로부터 이어받는 것이지만 그들의 성장과 발달은 대부분 그들 자신의 노력에 따르는 것이다.

원래 있던 어떤 사물에 의해 생긴 그림자 때문에 우리가 어둠 속에 있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지만 우리 속에 솟아오르는 악의 구름에 의해 우리가 의의 태양을 받지 못하고 어둠 속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의지가 약해지며 무력화되는 것을 사람들은 자신의 본래의 성품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것은 죄라는 것 때문에 일어남을 그들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의 마음은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죄가 공격해 오는 것을 보며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당하기만 한다. 인간은 할 수 없노라! 라며...

적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여기 있다. 눈이 많이 쌓이는 곳에서는 짐승, 새들이 흰옷으로 자신을 감싸 주위의 자연과 같이 보호색이 되어 적의 공격을 면한다. 우리도 주님의 품에서 성품이 변화된다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보호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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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경책을 불필요하게 만든 명상
이근호 2003-10-10 21:34:11, 조회 : 76, 추천 : 12

성경의 내용없이 신에 대한 명상만으로 멋져보이는 종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마약이나 아니면 판콜이나 독감 예방주사나, 혹은 소주+백세주= 오십세주 같은 것을 마신 상태에서 명상하시면 보다 시적인 황홀한 명상이 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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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씨와 '엄기욱'씨의 구원관에 대해서 이근호 2003/10/08 13 145
[re] '로즈마리'씨와 '엄기욱'씨의 구원관에 대해서
로즈마리 2003-10-08 18:37:15, 조회 : 121, 추천 : 11

하도 기가 막혀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을 올리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이번 한번 양해 구합니다.

이목사님
목사님은 저와 몇번 이야기를 해보셨습니까?
어찌 그리 상상력이 뛰어나십니까?
목사님은 전혀 빗나간 추측만 하십니다.
지극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상대방의 몇 마디에 사로잡혀, 그 사람의 사고를 모두 꿰뚫고 있는 듯이 말씀하시는 군요.
거창하게 구원관이란 말까지 사용하시는군요.
저는 거창한 구원관이란거 따위 없습니다.
지금 단지 현재 저자신의 처지에 마음이 답답하고, 상해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단지 상대방의 몇마디를 듣고, 그 사람의 구원관이 어떠니 저떠니 식의로 자신의 구원관의 우월을 자랑치 마십시오.

제발 좀 오해치 마세요.
처음 저의 질문에 스스로 느끼기에 시비 거는 거 같아 마음 상했다고 끝까지 이런 식으로 몰아세우십니까?
목사님 먼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십시오.
어디 목사님의 권위가 두려워 질문한번 제대로 하겠습니까?
질문의 내용에 관심 가지기 보다 질문자의 태도부터 시비다 승부다 하며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고 나무래니 말입니다.

알았습니다.
목사님 권위에 흠집내지 않도록 다시는 목사님께 질문 안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여기에 글을 남기지 않을테니,
더 이상 저를 오해하며, 중상모략하는 따위의 글을 남기지 마세요.
정말 제가 '구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고 싶으시면, 먼저 저에게 물어보시는게 순서입니다.
그런 다음에 이런 글을 남기셔도 늦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무책임성과,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과, 권위의식이 너무 저를 짓누르는군요.
괜히 한 사람의 말을 가지고 끼워맞추기식으로 상대방을 평가하시 마십시오.
그건 신앙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 지나치신 오만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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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로즈마리'씨와 '엄기욱'씨의 구원관에 대해서
이근호 2003-10-08 21:22:08, 조회 : 126, 추천 : 11

>17 마디나 나누었으면 충분합니다.

남녀가 선을 봐도 이 정도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말 제가 귀하에 대해서 오해했다면 얼마든지 이 지면을 통해서 공격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저는 실명이고 귀하는 가명이니 귀하에게 조금도 손해 볼 게 없을게 아닙니까?

저는 귀하께서 잠깐 내비친 견해를 크게 확대해서 귀하를 자극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귀하의 그 다음 답변이 궁금해서요.

워낙 조목조목 따지시는 분이라, 그 조목조목 따지는 것 가운데 진정한 귀하의 구원론이 보다 폭넓게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귀하께서 실명을 사용하면서 17번씩이나 대화를 나눈다면 귀하에게 조금 조심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명을 사용했기에 그냥 내뱉아버리고 도망할 것이 뻔하니 자극이나 주어서 조금 귀하의 담아 있는 구원관을 더 귀담아 듣기 위해서입니다.

실명을 쓰는 제가 먹칠 되겠습니까 가명을 쓰시는 귀하께서 멱칠이 되겠습니까?

먹칠이 주어져도 가면만 다른 가면으로 바뀌어 쓰면 그만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귀하의 견해가 귀하만의 견해라면 어디 가시든지 잘먹고 잘사세요 하겠지만, 이 사이트는 구원관을 비롯해 복음을 중심으로 모든 경우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사이트입니다.

실명을 쓰는 제가 권위나 품위나 유지하고자 이런 행위를 하지는 않습니다.

욕은 제가 얻어먹되

이러 이러한 구원관이 있기에 이러 이러한 '착각론'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이 사이트에 방문하는 많은 목회자들에게 목회적 사례를 제공한다면 그것으로 저의 봉사는 다 했다고 봅니다.

더 하실 말씀이 있거든 가명이든 실명이든 가리지 말고 하세요.

저는 그 견해를 무심코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어떤 누가 거기에 동조하고, 혹은 호응하여 자기 구원론을 삼을 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다면 그 구원론을 참고 삼아 성경에서 원하는 바른 구원론을 원하는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면으로도 말입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주님께 봉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귀하의 '착각론'은 인간이라면 자기 품위와 자기 위신과 자기 자존심을 복음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견해입니다. 따라서 이런 좋은 기회를 제가 그냥 방치할 리가 없지요.

수석 줍기에 미친 사람 귀한 수석이 나왔을 때 그냥 방관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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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과 회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로즈마리님께.)
이상규 2003-10-10 00:20:50, 조회 : 111, 추천 : 11

며칠만에 게시판에 들어와서 로즈님글을 급하게 읽고(확실히 정리안됨)
개인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나타나는 저의 솔직한 모습(죄성)을
고백할까합니다.(로즈님과는 다를수도있음.)
언약에근거한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면서도 아직까지 죄가운데 있는 육신이
복음을 이용해서 이기심 나태함 세상욕심등를 합리화 하려는 내모습을 봅니다.
예를들면 믿음은 택한자에게 선물로 주심을 믿고 로즈님말씀대로
개인구원론자처럼 구원자체에 안주(보험) 하려는 제모습을 봅니다.
반대로 부모님 처자식이 생명책에 기록안되고 나혼자 천국가면 어쩌지?라는
가족 이기주의적인 생각도 들고
또 성령님께서 우리속에서 일하심을 믿으면서도
나태함, 게으름 ,세상쫓아감.현금에인색함등을 합리화하고
반대로 복음을 아는 교인들의 못마땅하는 모습을보고 믿는자가맞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드라마나 수필집 미담을 쓴 신문기사등을 읽고
휴머니즘적인 감동이 십자가 은혜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때가 있고.......등등

그러나 이런 갈등통해서(복음에 회의와 흔들림 아님)
성령님께서 내가 이런 불안정하고 연약한 존재인것을 실감케해주시고
(이성적 합리적으로 따지고 정리가 안되어도)
바울의 기도처럼 다시한번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풍성함을 깨닫게됩니다.
(사실은 먹고 사는데 신경쓰느라고 거의신경 안씀....가끔 은혜로...)
또 설교시간에 들은대로 불안정하고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흔들리고 회의적이고 세상가치관에
졎어있는 나 (인간) 의 개입없이 온전하신 하나님이 자기 멩세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완벽함에(다이루었다)
안도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흔들리고 갈등하며 회의하더라도 돌아올곳은 십자가 밖에는 생명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 뿐입니다.
(만유보다 크신 예수님이 기도와 끝까지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간구와 때를 따라 도우심으로)

그리고 이 믿음이 하나님께로 왔는지 아닌지 물어보셨는데.. 잘아시다시피 성경(언약)에
근거할수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3장)
이목사님의 인식론에서 잘 설명 해주셨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역으로, (죄송하지만) 질문을 드리자면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로즈님은 하나님이 로즈님을
사랑하심을 (선택) 믿습니까?(이것마저 흔들린다면.......)
마지막으로 몇가지 로즈님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흔들림과 회의에 대해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이목사님과의 토론갭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구체적인 표현은 있군요.
택함받았다는 것에 대한 안주함에 대한 표현은 복음에 대한(구원) 흔들림 보다는 저처럼 그 복음을
받아드리는 가운데서 나타나는 죄성들로 보시고 그 모습마저도 용서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함과
구원의 온전하심을 찬양함이 옳은 것 같습니다.(성령님의 깨달게 하심으로..)
기타, 구체적인 흔들림은 잘 모르겠지만은 인간의 약한모습으로 보시고 십자가 은혜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사망의...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리니... (롬 7:24-8: 쭈욱)

또,로즈님의 지금모습도(흔들림. 회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면 함력하여 선을 이루실줄 평안이 믿습니다.

이근호 목사님께.
제 고백과 경험이 구원의 조건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손 목사님(아빠방)표현처럼 죄의 깊이에 대한 인식과 구원의 높이와 영광과 위대성에 대한 고백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글 내용중 신학적으로 복음적으로 잘못 된 점이 있으면 고쳐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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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흔들림과 회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로즈마리님께.)
이근호 2003-10-10 08:56:23, 조회 : 110, 추천 : 11

사람이란 성도가 되었던 아니되었던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비성도가 차이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최종 해답과 결론을 성경에 확고히 나와있는 하나님의 복음에다 모든 것을 걸고 의지한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고백성, 혹은 증거성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로즈마리씨는, 그 성경 말씀까지 믿지 말자는 겁니다.

어떻게 고백하고 증거하든 그저 개인적인 착각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은혜의 권능이나 능력조차 비실제적인 되고 맙니다.

혹시 회의나 의심을 갖더라도 성령의 은혜의 임하면, "아하 그것이 잘못되었구나. 역시 현실은 성경만이 제시할 수 있어 하나님의 복음만이 확실해"라고 나와주어야 성도라도 할 수 있습니다.

로즈마리 씨에 있었던 경우가 왜 일어나느냐 하면 관심사가 성경이나 말씀이나 진리에 가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느낌과 타인의 느낌을 비교하겠다는데 관심과 촛점이 가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나'와 '주님' 사이를 생각해야 하는데 '나'와 '나 외의 타인'에 대해서 같이 견주어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왜 자꾸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주님이 없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주님이 속에 계신 자는 ,자기 속에 계신 주님이 성경 말씀대로 어떻게 말씀하시고 일하시는가를 고백으로 증거하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가짜에 이골이 난다'라는 글에서 복음을 아는 자는 두리번거리지 않고 복음으로 봉사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꾸만 자기와 타인을 대조하고 견주고 비교하는 것이 신경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가짜 신자임에 틀림없고, 그런 가짜는 하늘 나라에서 소용없는 자입니다.

그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품위와 위신과 체면과 자존심에 몰두하고 있으니 그런 자가 가는 나라가 어찌 천국이겠습니까! (특히 소위 신학자라고 자칭하는 신학교 교수들에게 이런 면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런 자들은 지상의 교회에서도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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