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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짜에 이골이 난다] 2003-10-04묻고답하기-

[가짜에 이골이 난다] 2003-10-04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가짜에 이골이 난다
이근호 2003-10-04 13:53:24, 조회 : 184, 추천 : 12

숱한 가짜들이 지나쳐 갔다.

소위 복음도 알고 어느 정도 교계나 교회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꾸 두리번 거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제발 두리번거리지 마세요.

이들은 자기의 말이 먹힐 곳을 찾는다.
그래서 자꾸 교회나 교계 형편을 살피는 것이다.

이것은 자아의 불안감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모습이다.

그러나 진짜 성도는 그렇지 않다.

복음으로 즐거워하고 그것을 증거하고자 한다.
그리고 복음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계속해서 복음 안에 머물고자 하며 산다.

이미 얻었기에 나누어주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아직도 "날 안 알아주나? 어디 날 알아주는데서 없을까?"를 찾는 것은 확연히 다른 피조물이다.

마치 천국과 지옥이 먼 것처럼 멀다.

복음은 자기를 인정해 주는 용도가 될 수 없다.
세상이 예수님을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이미 우주의 주(主)로 계심에서 즐거움과 안도감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진솔한 모습이다.

그 이상 더 바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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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가짜에 이골이 난다
로즈마리 2003-10-04 15:40:18, 조회 : 158, 추천 : 11

소위 진짜 성도라는 자들이 느끼는 복음의 기쁨과 예수에 대한 안도감과 즐거움 --이것 또한 자기 착각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동안 목사님이 인식하고 있는 예수와 본인에게 다가온 복음이 자기 생각과 착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음이라는 사실을 본인은 어떻게 아실 수 있습니까?
그 둘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목사님은 자신이 가진 복음이 진정 '자아 불안감'과 '자기 착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실 수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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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가짜에 이골이 난다
이근호 2003-10-04 17:03:35, 조회 : 153, 추천 : 13

글을 남길 때 실명을 쓴다는 점입니다.

자기를 숨기기까지 하면서 남에게 승부를 걸 필요조차 느끼지 않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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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가짜에 이골이 난다
로즈마리 2003-10-04 17:23:35, 조회 : 145, 추천 : 12

>글을 남길 때 실명을 쓴다는 점입니다.
--------->
실명을 사용하는 것이 확신의 이유가 되겠습니까?
자신의 실명을 쓰면서까지 스스로 하나님에 대해 착각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겠지요.
(적어도 나는 실명을 사용하니 남앞에 진실하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무리 남앞에 자신의 주민등록상의 이름을 걸고 나와도, 인간은 스스로 속고 속이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실명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자기를 숨기기까지 하면서 남에게 승부를 걸 필요조차 느끼지 않기 때문이죠.
--------->
자기를 숨기는 것과 남에게 승부를 거는 것은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습니다.
가명을 쓰는 저또한 누구와의 승부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저의 글에 목사님이 지나치게 오버해서 보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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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까?
이근호 2003-10-04 17:59:14, 조회 : 151, 추천 : 10

쓸데없는 데 관심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귀하의 속옷 갈아입는 주기가 어떻게 됩니까?

손톱 손질은 자주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만약에 님에게 하게 되면 대단히 불쾌하겠지요. 아마 실명으로는 차마 감히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익명으로 (가면을 쓰고) 하게 되면 님을 모독하기 위해서 이런 되지도 않는 질문을 남발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질의 자체에서 오는 불이익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분명히 제가 지적하기를

'가짜= 복음 안에 머물지 않는자'라고 했으면,
관심사가 '지옥가는자= 복음 안에 머물지 않는자'가 복음적으로 성립되는지 아니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그 사람은 '복음 안에 있는 자=진짜'라고 누가 봐도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하께서는
복음과 무관한 질의를 했기에, 제가 보기에는 아마 그것은 실명을 쓰지 않아서 자기에게 어떤 비난이 날라오더라도 불이익이 없기에 나온 계산이 아닌가 하고 여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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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까?
로즈마리 2003-10-04 18:56:32, 조회 : 136, 추천 : 12

>쓸데없는 데 관심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 귀하의 속옷 갈아입는 주기가 어떻게 됩니까?
> 손톱 손질은 자주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만약에 님에게 하게 되면 대단히 불쾌하겠지요. 아마 실명으로는 차마 감히 못할 것입니다.
> 그런데 제가 만일 익명으로 (가면을 쓰고) 하게 되면 님을 모독하기 위해서 이런 되지도 않는 질문을 남발하게 될 것입니다.
> 왜냐하면 질의 자체에서 오는 불이익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
제가 물은 것은...
쓸데 있는 말을 하시는 목사님은 과연 무엇을 근거로 스스로 쓸데 있는 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였습니다.
어떻게 목사님은 이것은 복음(쓸데 있는 것), 저것은 비복음(쓸데 없는것)이라고 정확하게 선을 그으실 수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셨기때문입니까?
그렇다면
혹시 하나님이 목사님께 보여주진 그것이 목사님 스스로의 착각이나 지식으로 부터 오는 신념은 아닙니까?
아니라면 그 말에 대해 남들에게 책임지실 수 있으신지요?
물론 착각이 아닐 수도 있겠죠.
착각이 아니라면 '과연 목사님은 무엇때문에 착각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지 물었을 뿐입니다.
보여 주실 수 있다면 보여주십시오.

>마찬가지로,
> 분명히 제가 지적하기를
> '가짜= 복음 안에 머물지 않는자'라고 했으면,
> 관심사가 '지옥가는자= 복음 안에 머물지 않는자'가 복음적으로 성립되는지 아니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그 사람은 '복음 안에 있는 자=진짜'라고 누가 봐도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
같은 복음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 뜻이 서로에게 천양지차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서로 속고 속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금 복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며 본인이 사용하시는 복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나, 본인이 착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신에 차서 사용하시는가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에 대해 조금의 두려움도 없고,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이 절대로 틀릴리가 없다는 확신으로 말씀하시는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있으시다면, 그 확신이 틀릴 수도 착각일 수도 있는 개연성은 없습니까?

이러한 질문이 목사님께 모독이 되고 불쾌가 되었다면 용서하십시오.
'아마 저 또한 자아의 불안함과 불신이 이런 물음을 하게된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에게 이렇게 물어서라도 참으로 진리안에서 사는 사람을 보고 확인하고 싶었고 위로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과 물음이 복음과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옳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복음과 무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물음에 대해 회피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 그런데 귀하께서는
> 복음과 무관한 질의를 했기에, 제가 보기에는 아마 그것은 실명을 쓰지 않아서 자기에게 어떤 비난이 날라오더라도 불이익이 없기에 나온 계산이 아닌가 하고 여겼던 것입니다.
------------>
비난에대한 불이익은 전혀 관심없습니다.
제가 가명을 사용하는 것은 가명이 오히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기 때문입니다.
실명을 사용하는 사람이 오히려 남을 더욱 의식합니다.

혹,,, 목사님께 쓸데 없는 질문이 되었다면, 용서하십시오. 제 마음과 생각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답글을 달 가치 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면 , 답글을 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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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바로 그것이 '인식론' 문제입니다. - 답변해 드립니다.
이근호 2003-10-04 20:43:32, 조회 : 139, 추천 : 15

1.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에 있어 성경 복음에 대한 인식론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3;24에 의해서 하나님은 이미 인간이 알 수 있는 너머에 계시기 때문에 어떤 인간이든 자신이 가진 이성이나 감성적 능력(종교성)으로도 하나님은 알 길이 없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여기서 귀하의 질의 자체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공히 자신의 가진 인식론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귀하께서는 저(이근호)와 타인과 구분지겠다고 나서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종의 '승부의식'(남에게 지기 싫어하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 해서 '승부'라는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인식론에 있어서는 인간이면 모두 동일한 보편성 안으로 묶어야 합니다. 즉 어느 누구도 자력으로 하나님을 알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특정인과 다른 타인을 따로 구분지어 개인의 역량의 탓으로 돌리고 비교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혜는 저쪽(하나님쪽에서) 건너와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건너와서 어떤 식으로 자기 백성에게만 복음을 아는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요?

3. 여기에 난해한 언약론이 등장됩니다.
즉 예수님께의 공생애의 마무리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 이루심'은 분명 하나님의 언약의 이루심인데, 그 언약 안에는 무엇도 포함되어 있는가 하면, 오로지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이미 택한 자에게만 대속(대신 죽으심의 효력에 근거한)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그 과정까지 몽땅 다 "다 이루심"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알미니안주의자나 천주교 신학처럼, 십자가 지신 것 까지는 예수님의 몫이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아니믿고는 본인이 가진 자유의지를 얼마나 적절하게 발휘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 안에는 무엇까지 다 '이루심'이냐 하면 구원될 당사자가 그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반드시 십자가의 복음(하나님의 지혜는 이곳을 통해서만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고전 2:7-13)을 믿지 않으면 안되게 놀라운 위세로 작동하게 되어 있다 라는 것도 언약의 내용으로 다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6-17)

이미 여기서 '성령'께서 성도된 자의 인식론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분명히 언약적 완성 차원에서 거론하고 있습니다.

4. 즉 택한 자 안에서의 새로운 보편적 인식하게 되는데 그 분이 바로 성령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도들 끼리는, "너는 무슨 재주로 예수님의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어?"라고 물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너의 인식론'과 '나의 인식론'을 따로 구분짓지 않는 것이 바로 성도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절대로 인식론을 안 묻기'가 아니라 주 예수를 증거하는 식으로 보편적 인식론을 내포된 고백을 한다는 겁니다.

5. 다시 쉽게 말해서
성도란,, "누가 구원받을지 아무도 몰라! 내가 어떻게 상대편의 인식론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수 있단 말이야" 라고 고백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고백하는 자입니다.

'십자가 복음 안에 있는 자=성도'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신자라는 말입니다.

6. 결론

따라서 귀하께서 성도로서 고백할 것에 관심두고 같이 고백할거냐 아니면 거부할 거냐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른 궁금증을 고백하는 것으로 자신의 고백성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신(神)도 아닌 주제에 함부로 복음/비복음, 진짜/가짜를 구분 짓느냐? 다른 사람은 바보라서 가만있는줄 아느냐? 당신의 그 발언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모독하는지 알기는 아느냐?" 고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저는 같이 천국갈 형제와 찾는데 있어 당사자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복음의 보편성으로 찾는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저는 신(神)이 아니기에 누가 형제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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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바로 그것이 '인식론' 문제입니다. - 답변해 드립니다.
로즈마리 2003-10-04 21:32:56, 조회 : 125, 추천 : 13

>1.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에 있어 성경 복음에 대한 인식론은 동일합니다.
>
> 왜냐하면 창세기 3;24에 의해서 하나님은 이미 인간이 알 수 있는 너머에 계시기 때문에 어떤 인간이든 자신이 가진 이성이나 감성적 능력(종교성)으로도 하나님은 알 길이 없습니다.
>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여기서 귀하의 질의 자체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공히 자신의 가진 인식론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귀하께서는 저(이근호)와 타인과 구분지겠다고 나서신 것입니다.
------------->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 말입니다.
목사님도 이 '모든 인류'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습니까?
저는 목사님과 타인을 구분지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같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종의 '승부의식'(남에게 지기 싫어하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 해서 '승부'라는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
승부의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인식론에 있어서는 인간이면 모두 동일한 보편성 안으로 묶어야 합니다. 즉 어느 누구도 자력으로 하나님을 알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특정인과 다른 타인을 따로 구분지어 개인의 역량의 탓으로 돌리고 비교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
저는 오히려 목사님이 특정인(본인)과 다른 타인을 구분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이것은 복음, 저것은 비복음이라고 선을 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선의 기준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왔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혜는 저쪽(하나님쪽에서) 건너와야 합니다.
----------------->
동감입니다.
저쪽에서 건너왔다는 증표가 있으십니까?
보여주십시오.

> 어떤 식으로 건너와서 어떤 식으로 자기 백성에게만 복음을 아는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요?
>
>3. 여기에 난해한 언약론이 등장됩니다.
> 즉 예수님께의 공생애의 마무리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입니다.
> 그렇다면 그 '다 이루심'은 분명 하나님의 언약의 이루심인데, 그 언약 안에는 무엇도 포함되어 있는가 하면, 오로지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이미 택한 자에게만 대속(대신 죽으심의 효력에 근거한)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그 과정까지 몽땅 다 "다 이루심"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
>그러니까 제 말은, 알미니안주의자나 천주교 신학처럼, 십자가 지신 것 까지는 예수님의 몫이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아니믿고는 본인이 가진 자유의지를 얼마나 적절하게 발휘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입니다.
>
> 십자가의 "다 이루심" 안에는 무엇까지 다 '이루심'이냐 하면 구원될 당사자가 그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반드시 십자가의 복음(하나님의 지혜는 이곳을 통해서만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고전 2:7-13)을 믿지 않으면 안되게 놀라운 위세로 작동하게 되어 있다 라는 것도 언약의 내용으로 다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
위의 목사님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아는 것' 따로 '행동'따로 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목사님은 이 둘이 합쳐진 상태에서(구분이 없는) 하시는 말씀입니까?

>"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6-17)
>
>이미 여기서 '성령'께서 성도된 자의 인식론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분명히 언약적 완성 차원에서 거론하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제말은,
목사님은 본인이 성도로서 언약적 완성차원에서 위의 모든 말씀을 하시는지 묻고싶습니다.

>4. 즉 택한 자 안에서의 새로운 보편적 인식하게 되는데 그 분이 바로 성령이라는 겁니다.
> 그러니까 성도들 끼리는, "너는 무슨 재주로 예수님의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어?"라고 물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너의 인식론'과 '나의 인식론'을 따로 구분짓지 않는 것이 바로 성도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
동감입니다. 하지만, 정말 알고 구분 안짓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착각하면서) 구분안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나는 이러이러하니, 성도의 특징을 가진 성도'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 그러니까 '앞으로는 절대로 인식론을 안 묻기'가 아니라 주 예수를 증거하는 식으로 보편적 인식론을 내포된 고백을 한다는 겁니다.
>
>5. 다시 쉽게 말해서
> 성도란,, "누가 구원받을지 아무도 몰라! 내가 어떻게 상대편의 인식론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수 있단 말이야" 라고 고백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고백하는 자입니다.
>
> '십자가 복음 안에 있는 자=성도'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신자라는 말입니다.
--------------------->
이러한 고백은 철저히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되물어보고, 회의하고, 불신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고백이지,
이러한 과정없이 성경의 언약이라는 지식을 붙들고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닐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6. 결론
>
> 따라서 귀하께서 성도로서 고백할 것에 관심두고 같이 고백할거냐 아니면 거부할 거냐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른 궁금증을 고백하는 것으로 자신의 고백성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
옳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로서 마땅히 고백해야할 것에 관심두고 싶어한다고 해서' 본인은 그렇게 되던가요?
목사님은 다른 궁긍증이 없으십니까?
정말 하나도 없으십니까?
있는데, 억지로 숨기시고 회피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아예 100% 없으십니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신(神)도 아닌 주제에 함부로 복음/비복음, 진짜/가짜를 구분 짓느냐? 다른 사람은 바보라서 가만있는줄 아느냐? 당신의 그 발언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모독하는지 알기는 아느냐?" 고 말입니다.
-------------->
이건 철저히 오해하시는 겁니다.
저나 목사님이나 다른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바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 바보인 주제에 어찌 복음/비복음, 진짜/가짜를 구분짓느냐고 물었습니다.
혹,,,
바보가 아니라면.. 바보가 아니라서(나는 바보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셔서) 복음/비복음, 진짜/가짜를 구분짓는다면,
그 보여주신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뿐입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보여진 그것에 대해 목사님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시고 여기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
>"저는 같이 천국갈 형제와 찾는데 있어 당사자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복음의 보편성으로 찾는다"고 말입니다.
>
>왜냐하면
>정말 저는 신(神)이 아니기에 누가 형제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그 복음의 보편성에 흔들려 보신적은 없으신지요?
목사님 본인도 그것에 흔들리지만, 그 흔들리는 것에 본인이 견딜 수 없어서 ,,,,,, 억지로 자신이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진정한 성도라면,
오히려 평생 철저하게 흔들리는 자가 아닐까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은혜로 생명을 주시는 것이겠지요.
성도가 자기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이런 측면인것 같습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예수조차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흔들릴때 구원은 이때 비로서 전적으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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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식을 갖기 위한 인식론이 아니라 증거를 위한 '인식론'이기에 그러합니다.
이근호 2003-10-04 22:52:40, 조회 : 111, 추천 : 9

귀하의 말씀대로 은혜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아닌데도 억지로 은혜라고 우겨서 은혜받았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물으신다면, 그렇게 해야 될 필요성을 구태어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100% 라는 표현은 언제 쓰느냐 하며는, '자기 것', 혹은 '자기 인생'이라는 것을 가져야 되겠다고 했을 때, 그 전체가 하나의 양(量)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양(量)이 되면 그 다음은 비율이 나오겠지요.

몇 %인지 아니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고백이란 하나의 현재적 사건으로 터지고 곧장 사라집니다.

즉 저 고백의 "나의 것"이라고 붙잡을 새도 없이 말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라고 말입니다.(갈 2:20)

70% 믿음이나 80% 믿음이나 100% 이나 상관없이 내가 지탱하고 관리하고 유지해서 계속 '나의 것'으로서의 '나의 신앙'으로 존속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도 바울이 고백한 신앙과 상관없습니다.

그저 사도 바울 속에는 그리스도가 살아있어 시도 때도 없이 "툭툭" 은혜성이 터져 나옵니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몇 %가 은혜있는 시간이었고 몇 %가 옛사람적인 요소가 튀어나온 비은혜적 시간이었나 라고 물을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비율과 상관없이 사도 바울 안에서 숨쉬게 계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예수 안'에 있는 자의 현실입니다.

이것을 은혜 안의 관계성이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란, 말씀 자체의 능력으로 인해 그 사람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바를 마음껏 보이는 그런 새언약 관계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 당사자보고 물어 보게 되면 그저 주님과의 언약 관게만 증거할 뿐이지 몇 % 관계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귀하는 귀하의 부친과의 촌수가 몇 % 까지 정당하십니까?"라는 물음이 무의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귀하께서 '행함'이라고 하셨는데 행함이란 주체자를 증거하는 것으로 의미가 도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증거를 위한 은혜'라고 표현하므로서 주체자가 성도 자신이 아님을 이런 인식론을 가지고서는 주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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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식을 갖기 위한 인식론이 아니라 증거를 위한 '인식론'이기에 그러합니다.
로즈마리 2003-10-05 00:13:54, 조회 : 189, 추천 : 12

맞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할 수도 없겠지요.
은혜 또한 양적으로 퍼센트로 따질 수있는 것도 아니지요.
또한 우발적으로 곧장 터지고 사라지는 은혜를 내가 붙들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성도라면, (제가 질의한) 이 물음 앞에 항상 진지하게 서야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결코 대충 넘어가야할 것도, 대충 덮어두어야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항상 이러한 물음 앞에 철저하게 흔들리게 두어야
하나님의 은혜가 참 은혜되지 않는가 싶습니다.(물론 인간이 이렇게 행위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오게된다라는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라면 다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게 된다 것입니다.)
문제는 ,
사람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자기 자신이 철저히 흔들리는 것을 견딜수 없어한다'데 있습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빌미가 '예수, 복음, 성경 등등'을 가지고서라도 말입니다. 즉 어떠한 이유를 달아서라도 말입니다.
저는 '70% 믿음이나 80% 믿음이나 100% 이나 상관없이 내가 지탱하고 관리하고 유지해서 계속 '나의 것'으로서의 '나의 신앙'으로 존속해야 하는 것'으로서의 믿음과 확신을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목사님이 복음 이야기를 하실때
목사님의 믿음이 '예수께서 현재적 사건으로 터지고 사라지게하는 믿음'인지 아니면, '본인의 어떠한 양적 확신'에 근거해서 말씀하시는 것인지 확실하게 구분이 안됩니다.
저는 목사님의 글 속에서 후자의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앞의 글에서 그런 쓸데없는 질문들을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이 저의 착각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의 생각에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을 어떡하겠습니까?
이런 물음이 서로에게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다고 굳이 회피할 이유는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언어'라는 것 자체가 불완전하며 한계가 있습니다.
'행함' '예수'라는 단어조차 언어로서는 절대 바르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압니다.
그러므로 항상 오해와 불완전한 이해가 따르기 마련이겠지요.
이건 각자가 알아서 감당해야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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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바로 그것이 '인식론' 문제입니다. - 답변해 드립니다. 로즈마리 2003/10/04 13 126
[re] [re] 귀하의 의혹과 의심은 제 탓이 아닙니다.
이근호 2003-10-05 08:00:22, 조회 : 126, 추천 : 11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제 3자를 통해서, 잘못된 정보가 귀하에게 흘러 들어갈 수가 있고, 또한 귀하의 본인의 느낌에 의해서 제대로 된 정보가 흘러들어간다든지 할 때 이미 그것이 선입견으로 확고히 다져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달라"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악하고 음란한 너희들에게는 요나의 기적 외에는 달리 보여줄 것이 없다" 했습니다.

그 요나의 기적이 오늘날 십자가 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귀하의 질문의 요지는 자꾸 저에게 이런 느낌으로 옵니다.

"나는 말씀이나 복음에 대해서 흔들릴 때가 있는데 이근호 당신은 뭔데 100% 확신과 확신으로만 이어지는가? 당신은 통뼈냐? 당신은 죄악된 아담의 후손이 아니더란 말인가?" 당신도 나처럼 오히려 흔들림을 통해 바른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아직도 한 번도 흔들림이 없는 당신의 믿음이야말로 오히려 미완성된 신앙이 아니겠는가? 나는 당신의 신앙이 정말 제대로 확고한지 여부를 알기위해 한번쯤 흔들인 경험이 있는지 여부를 묻고 싶은 것이다."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답변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은혜란, 새언약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임의로 사용한다고요.

그 사람을 세번 흔들고 네번째 반듯하게 세우든, 9번씩이 흔들고 세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지옥에 버리든,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하면 그것으로 하나님 편에서 족한 것입니다.

바로 신앙인은 이런 관계 안에서 주님의 일에 즐거움과 안도감으로 주님의 복음만을 증거하며 두리번거리지 않고 사는 자, 바로 그 자가 진짜 성도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제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 의심과 의혹은 저에게 물을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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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귀하의 의혹과 의심은 제 탓이 아닙니다.
로즈마리 2003-10-05 14:08:33, 조회 : 115, 추천 : 26

그렇습니다.
은혜주실 자에게 은혜주시겠지요. 결론은 여기겠지요.
전 저의 물음에 대해 목사님께 답변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답글을 안다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대로 답글을 다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의혹과 의심이 목사님 탓이라고 말한적 없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목사님이 너무 오버해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흔들림을 통해 바른 확신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흔들림이 구원얻는 또다른 인간의 행위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주님의 일에는 그런게 있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해볼 뿐입니다.)

>>바로 신앙인은 이런 관계 안에서 주님의 일에 즐거움과 안도감으로 주님의 복음만을 증거하며 두리번거리지 않고 사는 자, 바로 그 자가 진짜 성도입니다.

목사님은 진짜 성도를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은 과연 이렇게 사시는가 하고 여쭈었습니다.
진짜 성도를 정의하며 말하시는 목사님 본인은,
자신의 착각으로 오는 즐거움과 안도감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안도감이 있으신지, 그리고 오직 본인은 주님의 복음만 증거하시며, 다른 곳은 두리번 거리지 않는지....궁금했습니다.
이런일에 관심가지고 궁금해하는 것이 쓸데 없고 비복음적인 거라고요?
'은혜주실 자에게 은혜주신다'라는 결론만을 꺼내놓고 본다면 당연히 쓸데없는 질문이며 이야기겠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때 은혜만 역사하십니까? 죄도 필히 드러내시지 않습니까?
죄가 드러난다는게 '자신의 전존재가 모두가 철저히 흔들려 무너지는게 아닌가' 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알고 느끼고 경험한 복음조차도 말입니다.(이말이 아주 오해의 소지가 많겠지요.)
(사람들은 이것이 싫고 두려워서, 복음조차 자기 앞에 내세우지 않나 생각합니다. : '오직 은혜주실자에게만 은혜주신다'라는 말을 사용해서라도 말입니다.그리고 이런 고백이 나에게서 나오지 않았고,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서 현재적 사건으로 나에게 툭툭 터져 나온 것이다라고 말하면서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에 기대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철저히 착각하며 안도하고 즐거워하며 살고, 또한 이런 안도함과 즐거워함이 자기에게 나왔으면서 철저히 착각하며 말로는 주님 주신거라고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죄가 죄로 드러난다는 것은 이것조차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이 그런 흔들림이 없으시다면, 없으신 것이겠지요. 이런 것이 없기에 목사님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습니다.
단지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답변을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험하거나 승부할 의도는 처음부터 단연코 없었습니다.
제가 쓸데없고 비복음적인 질문을 한 것으로 목사님께서 보셨다면,
죄인을 용납하신 주님의 심정으로 저를 용납해주십시오.
연약한자의 질문을 연약한대로 용납해주십시오.
제 심정이 지금 그만큼 절박하기에 목사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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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까? 로즈마리 2003/10/04 12 136
[re] [re] 물론 말은 되지만,,,
구득영 2003-10-04 19:04:52, 조회 : 122, 추천 : 11

그러나 그런 질문은 정치인들이 잘하는 소위 '물타기' 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감히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물타기 질문은 의미가 없는 줄 압니다.
님이 왜 그런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 한번 돌이켜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실명이냐, 익명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러나 상대방으로서는 충분히 그런 책임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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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물론 말은 되지만,,,
로즈마리 2003-10-04 20:21:10, 조회 : 114, 추천 : 11

물타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님께서 물타기로 보셨다면, 님의 관점에서 그렇겠지요.
저또한 생명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도 저의 질문의 동기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승부욕이나 비아냥 거리는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저한테 있어서 만큼은 진실된 물음이었으며,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였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이 복음과 관계없고,, 의미가 없다고 보신다면,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그렇게 보시는 님이 오히려 삶에 대해서 진지함이 없어 보입니다.
님께서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토록 붙들고 믿는 이유가 오히려 자신이 흔들리고 불안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그래서 저의 물음이 물타기로 보여져서 견디기 어려운 것은 혹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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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물론 말은 되지만,,,
구득영 2003-10-04 23:15:14, 조회 : 249, 추천 : 12

물론 로즈마리님이 정치인들처럼 고의로 물타기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질문을 해버리면 본의 아니게 모든 논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진지하게 그런 질문을 하셨다면, 그것은 복음에 대한 실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서로 논의를 할때 정말 궁금하고 진지하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철학적으로 이런 논의를 뭐라고 하는데 무식해서리,,, 이것은 결코 흔들리고 불안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 좀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는 그 빛이 너무 확실해서 눈을 뜨지 못하고 숨을 구석을 찾는데, 님은 마치 우리를 빛이 아니라고 여겨서 도망가는 것으로 생각하시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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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물론 말은 되지만,,,
로즈마리 2003-10-04 23:44:51, 조회 : 167, 추천 : 12

>물론 로즈마리님이 정치인들처럼 고의로 물타기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질문을 해버리면 본의 아니게 모든 논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진지하게 그런 질문을 하셨다면, 그것은 복음에 대한 실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서로 논의를 할때 정말 궁금하고 진지하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철학적으로 이런 논의를 뭐라고 하는데 무식해서리,,, 이것은 결코 흔들리고 불안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 좀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는 그 빛이 너무 확실해서 눈을 뜨지 못하고 숨을 구석을 찾는데, 님은 마치 우리를 빛이 아니라고 여겨서 도망가는 것으로 생각하시니 말입니다.
>
>------------------------------------------>
제가 본것이 옳고 남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동안 제가 봐왔던 복음이라는 것이 모두 착각이요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기때문입니다.
님이 본 '너무 확실해서 눈을 뜨지 못하고 숨을 구석을 찾게 하는 그 빛'을 저또한 간절히 보고 싶을 뿐입니다.
전 그동안 제가 본 참 복음이 너무나 확실해서 흔들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정확하게 복음을 보았다고 한들..... 모든 것이 착각일수 있는 개연성은 늘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인간은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다는 전제가 깔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확실히 보인다고 하는 모든 것들(성경, 예수, 복음.. 등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놓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성 전체가 송두리채 흔들리고 무너지지 않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게 복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철저한 흔들림의 흔적이 없이
님께서 '나는 복음의 실체를 보았다. 나는 이것을 안다, 나는 확신한다'라고 하는 것은
저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듭니다.

빛은 우리가 증가한다고 증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인간이 철저히 흔들릴때 '참 빛되신 예수'를 보게 됩니다.
인간이 정말 철저히 절망하고 모든 것(성경조차)을 놓고 쓰러질때, 저는 그때 비로소 '나는 확신한다'라는 고백이 나에게로부터 은혜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성경의 어떤 객관적이고 보편 타당한 진리들을 알고 있다.
성경의 어떤 핵심적인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고 확신한다....등등의 이야기를 들을때
저는 의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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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물론 말은 되지만,,,
구득영 2003-10-05 02:39:49, 조회 : 171, 추천 : 12

'의심하다, 고로 존재한다' 맞습니까? 우리가 죄인이기에 항상 이런 한계에 부딪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휴 벌써 2시가 넘었네요. 설교도 다 마무리 하지 못햇는데, 그래도 이젠 그만 자야겠네요.

제 표현이 조금 그런 면도 있었는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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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물론 말은 되지만,,,
로즈마리 2003-10-05 14:18:42, 조회 : 93, 추천 : 12

'의심하다. 고로 진정 주님 앞에 죄인으로 존재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저의 글이 유익되지 않은 면도 있는거 같은데,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로즈마리 2003-10-05 16:15:13, 조회 : 142, 추천 : 10

이 목사님: 진짜 성도는 자신의 삶(행위)따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데 관심을 가지는 것은 비복음적이고 쓸데없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만 관심 가지고 그분의 언약과 십자가만 증거해야한다.

로즈마리: 사람에게 위의 목사님의 주장과 같은 그런 생각과 마음이 생긴다면 그런 마음과 생각조차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스스로 회의하고 물어보아야한다. 그러면 사람은 필히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이때야 비로소 하나님은 나에게 전적 타자로 존재하고, 하나님의 손길이 은혜가 된다.

이 목사님: 로즈마리의 그런 생각조차 인간편에서 나온 하나의 구원의 방법론이며 살고자하는 인간의 죄된 욕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런 식의 생각은 무의미하다. 그것이 죄인의 특징이다.

로즈마리: 목사님의 생각에 동의한다. 구원이란,,, 성도의 삶이란,,, 언어와 말로 규정되지 않는다. 인간 언어 이전의 것이다. 사람의 머리 속에 구원의 개념이 그려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은 구원과 떨어져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어떠한 구원의 개념이라도 철저히 회의되어져야하고, 완전히 흔들려야한다. 내가 흔들려야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차원이다.

------>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제가 이해한대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목사님의 의도가 제가 쓴 것과 같은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러한 고민과 질문이 저의 당면한 실제적인 문제이기때문에 글을 올렸습니다.
결코 다른 의도가 있어서 질문한게 아닙니다. 그럴 여유조차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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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일 중요한 것은 '증거성'입니다.
이근호 2003-10-05 17:36:37, 조회 : 146, 추천 : 10

복음적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물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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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일 중요한 것은 '증거성'입니다.
로즈마리 2003-10-05 20:44:45, 조회 : 119, 추천 : 11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나아가서 우리가 증거해야한다고 남에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우리가 증거해야한다고 말한다고해서 증거되어지는 것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증거는 하나님이 하시겠죠.
죄에 빠진 피조물로서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저는 말씀에 대한 순종을 사람이 무엇을 하는 행위로써가 아니라 '인간 전존재의 흔들림'으로 보았습니다.
나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이 진정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내가 순종하겠다고 결심해서 그렇게 순종 되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말씀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전존재적 흔들림을 회피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정확하게 복음을 보고 있다고 스스로 믿으면서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것을 하나님께서 믿게 하셨다고 말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주어졌다고 고백하면서까지 사람은 그 뒤에서 스스로 안도할려고합니다.

제가 과하게 본 것입니까?
사실 저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할 자격도 자신도 없습니다.
다만 지금 이순간에 이렇게 보이니 한번 말씀 드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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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일 중요한 것은 '증거성'입니다.
이근호 2003-10-05 22:26:09, 조회 : 127, 추천 : 8

과하게 보신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 보고 계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길 가고 저는 붙들고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근호입니다."

"당신 이근호 아니지요? 이근호하고 우기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이근호라고 여기는 것이 당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없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당신은 자신이 이근호라고 우기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저의 눈은 못 속이십니다. 당신은 자신을 이근호라고 생각하면서 존재의 흔들림이나 양심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는 있지 않습니까? 끝으로 묻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이근호 인 것을 증명해 보세요"

제가 이렇게 답변하지요. "아저씨 취미가 뭐예요? 길 사람 붙들고 자신의 불안을 하소연하는 겁니까?"

귀하께서 하신 질문들에 사도 바울에게 하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는 자는 맨날 사람 붙들고 시비거는 법입니다. (요한 일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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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일 중요한 것은 '증거성'입니다.(다시 올립니다.)
로즈마리 2003-10-06 08:31:24, 조회 : 112, 추천 : 11

목사님의 답변 잘 알겠습니다.
더이상 시비(?)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에게 있어서 저 자신이 궁금하고 답답하고 절박해서 물어본 것인데... 그걸 자꾸 시비건다고 보시는군요.
시비건다는 말은 남과 대결해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의도가 깔린 말인데,,,,
전 누구와 대결한다는 생각도 승부하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럴 여유조차 없습니다.
남에게 기분나쁘게 시비건다는 인상을 주면서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 글을 남기지는 않겠습니다.
제 글이 그렇게 보였다면, 저의 글쓰는 능력의 미숙함입니다.

목사님 말대로 길 사람 붙들고 자신의 불안을 하소연하는 측면도 저자신에게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에게 그 하소연을 들어줄 의무는 없겠죠.
그렇다면, 지나가는 개가 사람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끙끙대며 하소연하며 짖어댄 것으로 봐주십시오.
쓸데없는 개의 짖음으로 주위를 소란케 하고 피곤케했다면, 죄송합니다.

어쨌든, 저의 연약함과 죄됨, 어리석음이 이번 기회로 낱낱이 드러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려봅니다.
그리고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는 삶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물론 저의 소망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님은 주님 하실일을 하신다는 것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주님과 사귐이 없는 제 자신이 언젠가 주님과의 진정한 사귐의 날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아! 참. 한가지 빠졌습니다.
목사님의 비유가 적절치 않은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는 '목사님이 이근호입니까?'라는 식으로 물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 본질은 모두 죄인이지 않습니까?
저는 인간의 본질이 죄인이다라는 사실을 깔고 말했습니다.
다만, 저는
목사님(죄인으로서)이 알고 있는 어떤 대상이 확실하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대상을 100%확신하며 증명(?어감이 이상합니다만)할 수 있으시냐고 물었지, 목사님의 이름(본질)을 물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와 목사님의 본질은 죄인이라는 사실은 변치않는데, 그걸 물어서 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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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죄란 미흡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근호 2003-10-06 08:49:30, 조회 : 120, 추천 : 11

죄란,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이 자기에게 승부 걸며 살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타인에 대한 승부도 일종에 자신을 보다 단단한 자로 곧게 세우기 위한 방편일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자신에게 너무 미련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난 자아든지 못난 자아든지 말입니다.

그 분의 채찍 맞음에 다같이 즐겁게 의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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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전환에 대해
로즈마리 2003-10-06 22:49:24, 조회 : 131, 추천 : 10

그동안 별 말없다가 웬일로 갑자기 실명 전환을 요구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명을 쓰면 자신의 글에 책임성이 결여되기 때문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법 아래 있다는 분께서 이제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잣대로 도덕성과 책임성을 요구하시는군요.
가명을 사용하여 남을 욕하거나 인신공격을 한다면, 관리자께서 경고후 회원자격박탈을 하시면 될 것을....
제가 알기론 여기 가명을 쓰는 사람들이 남을 헐뜯거나 인신공격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단지 관리자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글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하시겠다는 거군요.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실명이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실명을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체가 궁금하고,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겠지요)
그 실명을 알아서 아! 저사람 저렇구나,,,판단하시고 싶은 심정은 없으신지요?

글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했습니까?
아! 좀더 주의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서 스스로 알아서 글을 쓰라는 말씀이시군요...튀지 않게...

이번에 저는 글을 쓰면서,, 몇번이나 상대방께 제발 오해하지 마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승부나 시비걸 의사도 없었는데, 끝내 저를 가명을 이용하여 남과 승부할려고하고 시비거는 자라고 몰아부치시더군요.
(몇번이고 저는 양해를 구했고, 절대 시비거는 것이 아니고 저의 절박하고 진심에서 나온 물음이라고 글을 올렸지만, 저보고 승부욕에 사로 잡혀 끝까지 시비걸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이젠 책임성 운운하시며 실명 전환하라고 하시는 군요.
사람의 실명과 가명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스스로 필요에 따라 실명이든 가명이든 원대로 쓰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실명이든 가명이든 그 사람의 글과 말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것 아닙니까?

가명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도덕적으로 문제 있어 보이십니까?
가명 사용하는 사람이 그렇게 구차하거나 비겁하게 보이십니까?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이 '기본적인 예절이 없거나, 욕을 하거나, 상대방을 고의로 비방한다'면 당연히 1대 1개인적 차원에서 실명 전환을 요구하거나, 탈퇴를 명하실 수 있다고 생각 됩니다.
제가 여기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 인신비방을 하거나 무례하게 굴었습니까?

그러나,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책임성 운운 하시면서 실명 전환을 요구하시는 것은 지나친 처사시군요.
가명을 쓰는 사람은 '그 뒤에 뭔가 꿀리는 것이 있거나, 자신의 글에 대한 비난의 방패막이로 가명을 쓴다'라는 식으로 아예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군요.
,
책임감을 빌미로 실명전환을 요구하여 이 사이트를 (본인 생각에) 괜찮은 곳으로 만들어 보실려고 하는 시도는
정말 평소의 말다르고 행동 다른 처사십니다.

글에 대한 책임감이란 단어를 그렇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것은...
자신의 글에 대해 진지함이 결여되고, 글의 본뜻 외에 사욕이 있을때 요구될 수 있는 겁니다.
가명을 쓰면 무조건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고, 실명을 쓰면 책임감이 있게 된다는 구분은 잘못입니다.
가명과 글에 대한 책임성은 전혀 관계없습니다.
실명을 사용하면서도 얼마든지 책임성 없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색안경끼시고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14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저를 회원 제명시켜 주시지요.

객관적인 사실도 없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처음부터 상대방을 시비거는 자로 몰아부치고, 승부욕에 사로잡혀 대드는 사람으로 정죄하고, 이제는 가명을 사용하는 것이 글에 대한 책임감 없는 자라고 색안경 끼고 못박아 버리는 이곳에 저는 더이상 글을 쓸 생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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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도끼리 가명 쓸 이유가 있습니까?
이근호 2003-10-07 08:47:18, 조회 : 127, 추천 : 10

귀하께서는 교회에서 가명을 사용하십니까?

물론 교회에 처음가면 금방 사생활을 전부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이 교회 사람을 믿을 만하냐를 따지면서 서서히 공개하겠지요.

요즈음 어디 마음놓고 믿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어느 교회를 가든, 혹 어디를 가든지 복음의 사명을 갖고 있다면, 어느 정도 분위기가 익숙해졌다 싶으면 당당하게 "저는 이런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곳에 나타났습니다"라는 뜻에서 실명으로 전환하는 것이 상대를 공평하게 대우하고 싶다는 태도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고린도전서 13:5)

상대에 대해서 무례히 행하지 않을 자세를 저는 갖추렵니다 라는 뜻에서 형편이 되는 한 실명이 가명보다 훨씬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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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도끼리 가명 쓸 이유가 있습니까?
로즈마리 2003-10-07 10:39:47, 조회 : 112, 추천 : 11

그렇죠.
그렇게 말씀하셔야지요.
성도로서 서로 더 잘 알 수 있기 위한 교제를 위해 실명으로 전환해달라고 말을 했어야죠.
그러나, 관리자님은 '가명을 사용하는 것이 글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이러한 관리자님의 사고가 '상대방에 대한 무례한 자세'입니다.
저는 그부분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만약에 관리자님이 가명보다 실명을 통해 서로 더 깊이 알고 교제하길 원해서 전환을 요구했다면, 제가 글을 올리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한건지 제발 저의 글을 잘 좀읽고 답글을 좀 다십시오.
목사님은 처음부터 저를 시비거는 자로 승부욕에 사로잡힌자로 보셨습니다.
상대방의 글을 고정관념이나 사심없이 객관적으로 보는 것부터가
목사님이 말하는 '상대에 대해서 무례히 행하지 않을 자세'입니다.

그리고, 게시판에 글을 올릴때 사용하는 가명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는 별 상관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그 글의 내용에 있습니다.
상대방이 가명을 쓰기때문에 기분나쁘다면 그건 본인의 강박관념(나는 실명을 사용해서 다 드러내놓는데, 너는 가명을 사용하니 너의 정체를 모르겠다. 나는 이게 기분나쁘다라는 식의)때문입니다.
정 안심이 안되고 기분나쁘다면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될 거 아닙니까?
실명이니 가명이니 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상대방에게 존중을 요구하지 마시고,
글의 내용으로 요구하십시오.
그리고, (쓸데 없는데는 관심없고, 비복음엔 관심없다 하시면서) 복음만 바라보고, 십자가에 피흘려 달리신 예수만을 바라보겠다고 하신 분이 어찌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중과 자존심이라는 허명아래 가명의 책임감을 논하십니까?

이것이야말로, 목사님께서 저에게 시비를 거시는 것이고 승부를 거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먼저 시비와 승부를 놓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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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실명전환에 대해
손무성 2003-10-07 10:45:37, 조회 : 104, 추천 : 11

로즈마리님 관리자인 저가
"우리 이번에 인천에서 1박2일 세미나가 있는데 한번 만납시다."

이런 제안을 했을 때
님께서 성도라면 저와 만났을 때 그래도' 로즈마리'입니다. 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만날 것입니까?
아니면 '로즈마리'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0 0 0 입니다.' 라고 소개 할 것입니까?
분명 만나게 되면 본명을 사용할 것입니다. 가명을 사용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성도라는 것은 주님의 증인이지 자신의 증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이나 어느 시공간 속에서 서로를 만난다 할찌라도 드러내 놓고 '이러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존재이어야만 합니다.(행1:8)
성도는 자기를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글에 대한 책임성을 가지기 위해 실명으로 해 달라는 것은 실명을 사용하나 안하나 글에 진실만 있으면 안되느냐? 라고 반박할 지 모르지만... 관리자인 저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가명으로 글을 남김으로 책임없는 말을 함부러 할 수 있습니다.(물론 로즈마리님이 그랬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방지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가명으로 함으로 말미암아 묻고 싶은 말이나 주장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 속에는 자기에 대한 애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채면이 깎기지나 않을까하는 심정에서 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가리는 것이 될 뿐입니다. 성도라면 그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2.실명으로 글을 남김으로 말미암아 그 글을 보는 다른 성도로 하여금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활동을 볼 수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를 핍박했을 당시의 '사울(바울)'이라는 사람을 핍박 당하던 성도들이 그의 이름을 들었을 치를 떨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바울이 이제는 예수를 믿는 성도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바울'이라는 그 사람 속에 활동하시고 일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은혜'-저 바울과 같은 인간도 사랑하고 있는 분이 주 예수 그리시도시다.라는 것을 알고 더욱 예수님의 은혜의 깊이를 더 알아갔습니다.

마찮가지 입니다. 관리자인 저는 이곳에서 성도로서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이나 서로가 만났을 때 그들 속에 일하고 역사하시고 계시는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분명한 소리가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실명을 하자는 것입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속에서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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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