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개혁캠페인 동조 VS 동조하면 안됩니다.] 2003-07-16
기독청년, 최우선으로 회개와 개혁 캠페인 벌여야 김병구 2003-07-16 23:05:15, 조회 : 144, 추천 : 10
기독청년,최우선으로 회개와 개혁 캠페인 벌여야
서경석 김요한 목사의 글에 동조하며
www.newspower.co.kr
김병구 기자
한국 교회의 큰 재목이신 서경석, 김요한 기자님들의 한국 기독청년운동 고취에 감사 드리며 그 취지에 동조합니다.
그러나 보수 교단은 하나님 보다 돈을 섬기는 영적 간음, 진보 교단은 예수님의 구원주로서의 유일성을 손상시키는 에큐메니칼이즘 이라는 영적 간음에 깊이 빠져 있는 현실 속에서 한국 교회의 젊은 기독청년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이러한 교계를 깨우치는 영적 회개 운동을 선도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한국 교회의 영적 타락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지 6월 24 일자 오피니언 난에 실린, 필자의 “한국 교회, 지금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참조).
기독교 청년들이 속해 있는 교회가 먼저 개혁되지 못한 상태에서 기독교 청년들이 사회 개혁이나 사회 통합에 나서 보아야 사회의 호응이나 지지를 얻지 못할 것 명확 관화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사회, 국가, 민족을 고민하기 전에 자신의 영적 타락상을 고민해야 하며, 한국의 기독 청년들은 교회 밖을 향하여 외치고 캠페인 하기 전에 우선 자신들의 교회를 향하여 회개와 개혁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밖에 버리어져 불신자들의 발에 밟히고 있는 짠 맛을 잃은 소금에서, 짠 맛을 가진 소금으로 거듭나고 개혁되는 일이 우선 이루어져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에큐메니칼이즘의 문제성
“복음주의 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통합”을 이야기 하시면서 동시에 “이 운동은 철저한 복음주의적 열정에 기초한 운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여기서 말씀하시는 에큐메니칼 운동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이 어떻게 복음주의 운동과 통합될 수 있는 것인지요? 그리고 철저하게 복음주의적 열정에 기초한 운동이 그러한 복음주의 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통합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 일치라는 명분으로 카톨릭의 교리를 인정하고 근래에는 종교다원주의 경향을 보이기 조차 하는 예큐메니칼이즘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돈을 섬기는 한국교회가 세상과 더불어 타락의 춤을 추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면,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에큐메니칼이즘이 횡행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성에게 알몸을 드러내는 여인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 주의 신앙을 견지해온 보수 교단이 반성해야 할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정교분리를 외치면서 조찬기도회에서 군부 독재자를 칭송한 불의 등은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회정의를 세우며 사회구원에 애쓴 모습이 크게 부족했던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성경의 문맥을 파괴한 지나친 문자주의적 적용으로 바리새인 같은 모습까지 보였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주의 신앙의 본질적인 오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 복음주의 교단의 복음주의 신앙의 잘못된 적용 및 실행에 기인한 것임에 유의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사실을 표현하자면, 한국에서는 복음주의 보수 교단이 돈을 섬기는 일에 정신이 팔려 세상과 어울려 춤추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가운데, 잘 알지도 못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이즘에게 까지 알몸을 들어내고 만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삼위일체, 성 처녀 탄생, 십자가의 구속, 부활, 그리고 재림 등의 기독교의 근본을 성경 말씀대로 믿는 복음주의는 그 마음이 편협하고 옹졸하기 때문에 자유주의 신학이나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비 성경적인 방향으로 교회를 일치시키려는 에큐메니칼이즘 등을 반대하고 배척하는 것일까요?
무엇이든지 시작과 동기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하나 된다는 이상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한'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으니까요. 교회적 본질 자체로도, 그리고 선교적인 관점에서도 소망스럽지 못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동기가 좋다고 해서 모든 게 좋을 수는 없지요. WCC의 결과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굵직한 WCC의 총회들에서 '하나'라는 명분을 활용해 교회관은 물론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신관까지 크게 왜곡시킨 것은 결정적인 과오입니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무너뜨린 것은 초기의 일이고, 그 후의 타종교와의 대화(선교적이다 할지라도) 같은 것은 그 정도가 심각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종교다원주의로 흐른 것의 위험성은 말할 필요 없이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때(20세기 중후반) 세계가 냉전 양극화 현상이 있을 때는 WCC의 그런 논리가 많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대가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칠팔십 년대에 한국에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이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그러나 냉전시대가 지나고 다원주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WCC는 세계교회를 이끌 만한 명분을 제대로 찾고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WCC의 태생적 한계라고 생각됩니다. WCC가 불변하는 신앙적 원칙보다는 현상적인 이슈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하나되기를 추구한 데 기인합니다. 원칙은 오래 갈 수 있지만 상황과 현상은 시대에 따라 변모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냉전 양극화 현상이 해소된 지금, WCC도 뭔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수정해야 할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교회일치 운동
에큐메니칼이라는 단어는 원래가 좋은 단어입니다. 하나가 되자는 게 뭐가 나쁘겠습니까? 그러나 그 하나됨이 너무 인간 위주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 정치적으로, 투쟁적으로 하나 되려고 하는 것이죠. 해방신학, 민중신학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아픔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에큐메니칼니즘에 대해서는 목청껏 반대하면서도 사회정치적 불의에 대해서는 함구했던 보수교회들의 이중성 역시 자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를 과도하게 contextualize해버린 그들의 역사적 책임은 면할 길이 없습니다.
사회가 분열되니 교계라도 하나로 뭉치자 하는 식의 인간 중심의 교회일치운동은 지극히 세상적인 발상으로 성경적이지도 기독교 신자 답지도 못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더 열심히 하되, 그리스도를 만유의 유일한 구세주로, 성경이 하나님 말씀임을 전제로, 거기에 신앙고백을 같이 하며(원칙), 하나님의 은혜의 이끌림을 받아(방법) 교회일치 운동을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개혁 없이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하나님이 하시는 운동, 성령께서 하시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정론을 펴심에 열 번 동조합니다.
그러나 보수 교단은 하나님 보다 돈을 섬기는 영적 간음, 진보 교단은 예수님의 구원주로서의 유일성을 손상시키는 에큐메니칼 이라는 영적 간음에 깊이 빠져 있는 한국 교회의 청년들과 과연 성령님께서 동역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직도 한국교회에 얼굴을 향하시고 계신다면, 그것은 그 분의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 때문이지, 한국교회의 영적 상태나 행위로 봐서는 이미 얼굴을 돌려 버리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미스바 연합 회개 기도를 통하여 한국의 모든 택한 백성들이 영적 순결을 회복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기도하는 신자들로 거듭 나며, 보수와 진보 교단이 하나같이 성경 말씀 데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교단들이 되기를 원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 동안 자유신학과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에큐메니칼이즘 등을 무분별하게 수용한 죄와 하나님 대신 돈을 섬긴 죄를 전 교단이 연합하여 공동으로 회개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은 죄를 회개함 없이 어찌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바랄 수 있으며, 성령님의 동역 하심 없이 어떻게 우리가 무슨 일인들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청년 목회에 주력하시는 한 중견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서 묘사되고 있는“세상보다 부패하고 타락한 한국 교회”는 지금 그 무엇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튼튼하게 해줄 영적 간음에 대한 회개가 우선적으로 시급하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회개를 주도해야 할 중대형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아직도 회개의 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030 기독 청년들, 너희들만은” 하고 유일한 희망을 기독 청년들에게 두고 계실 것입니다. 만에 하나, 하나님께서 기독 청년들에게서 조차도 한국 교회의 영적 간음에 대한 회개를 받지 못하시게 된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우리가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눈 앞에 닥친 북핵 문제가 한 반도에서 핵전쟁으로 폭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에서라도 우리 한국의 기독 청년들이 오는 8.15일 저녁 8:00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서경석 목사님과 김요한 님의 인도하에 미스바의 영적 순결 회복을 위한 회개 기도를 선도해 주시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re] 동조하시면 안됩니다 이근호 2003-07-17 06:05:40, 조회 : 186, 추천 : 11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항상 새로운 창조입니다. 기존이 이미 존재하는 단체나 조직이나 교회를 긍정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부활해 계시는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직접 일하십니다. 마치 바람같이 임해서 말입니다.따라서 이러한 예수님의 일의 가장 큰 방해 요소는, 기존의 교회나 선교단체를 이용해보자는 식의 발상입니다. 그것은 기존의 힘을 이용해보자는 것밖에 안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미련두지 맙시다. 어제의 교인이 자동적으로 오늘의 신자인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일하시는 주체자는 과거와 상관없이 따로 계십니다.과거에 교회라고 지금도 교회라고 우기는 교회가 있습니까? 그런 교회들은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몸'과 전혀 다른 종교 단체에 불과합니다. 정말이지 오늘날 전도의 가장 큰 장애와 유혹거리는 기존의 교회가 계속 '교회'일 것이라고 여기는 안일함입니다. 친목계는 성경없이도 존속가능합니다. 교회는 친목계가 아닙니다. 과거의 한 때 교회였다고 지금도 교회로 간주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염두에 둔다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만 있으면 족합니다. 이런 의식이 아직도 유지될 때만 '현재의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교회운동은 교회을 단합하거나 협동을 몽땅 버리는 운동이어야 합니다. 은근히 교회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에 입맛을 다시는 그런 정치성을 버리고 그리스도께서 심판주 되심을 증거하는 그것 뿐입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복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우선 복음 자체에 관심도 없는데 무슨 교회 개혁이 되겠습니까.
복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수 의지가 없이 이루어지는 교회 개혁 운동은, 인간대 인간관계에서 형성되는 세속적인 힘의 부서러기라도 건져보겠다는 집념에 불과합니다.
귀하께서는, 진정 복음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re] 동조하시면 안됩니다 김병구 2003-07-17 22:49:54, 조회 : 144, 추천 : 12
목사님의 "진정 복음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는 말씀을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설명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re] 복음과 언약의 관계 이근호 2003-07-18 10:17:11, 조회 : 148, 추천 : 13
>복음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의'가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라는 분은 유대인의 메시야이지 이방인들의 메시야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방인에서 유대인으로 넘어오는 데는 '언약'이라는 장벽이 있어 인간들의 능력으로 그 영역에 넘어 올 수 없습니다. 세속적인 이방인이 어떻게 거룩한 유대 사회에 넘어들어올 수 있단 말입니까!어림도 없도 소리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유대인에게 주신 언약대로 오실 메시야가 있습니다. 그 메시야께서 이방인들 중에서 구원에 합류한 자를 일방적으로 뽑아내는 작업을 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뽑힌 자만이 언약 장벽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허물진 새언약의 효과로 인하여 구원에 합류하게 됩니다.(에베소서 2:11-17) 이것이 로마서 11:26에 나오는 '온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러한 성경의 진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유발하게 됩니다.
1.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될 수 없다. (교회를 세워도 구원이 안된다)2.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이방인은 언약 밖에 존재들이라 지옥에 가도록 정해져 있다 3. 이방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메시야와 교회를 세울 뿐이다. 4. 이방인들에게는 거룩이 없기에 마냥 지옥행이 당연하며 정상적이다. 따라서 스스로 천국가려고 하는 의식 자체가 수상하다. 모두 그저 종교적 구원관에 불과하다.5. 구원은 이스라엘의 메시야께서 자신이 정해놓은 자에게만 제공될 뿐이다. 6. 이렇게해서 구원받은 자들은 그 어떤 미완성이나 미완료를 생각조차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거룩이 란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이나 고난의 수고를 보태서 달성할 그 어떤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7.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의와 공로만 자랑한다.(고전 1:31/빌 3:3/ 갈 6:14)8. 이방인들의 성경을 근거로 한 모든 사고 방식들은 (특히 사도들의 교훈이나 가르침을 실천하자는 주장) 다 이방인들의 본성의 발로에서 나오는 종교성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 완성도를 끄집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남의 메시야에게 한 수 배우겠다는 자세뿐이다. 9. 참으로 이방인 중에서 유대인의 메시야로부터 건짐받은 자는 자신을 개같은 인간임을 확실히 자인한다. (막 7:28)10. 따라서 옆에서 누가 뭐래도 메시야의 의로움로 인한 구원, 그 자체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에는 이런 복음을 아는 자를 핍박하는가요?
다음과 같이 이유 때문입니다.
1. 누구도 언약이 성경의 중심인 것을 알려준 적이 없다. 2. 누구도 애초부터 이방인이 구원 대상이 아니됨을 알려준 적이 없다. 3. 유불도적 풍류도(토착적 신바람) 위에서 기독교를 접수하다보니, 자만심 외에는 남은 것이 없다. 부흥회를 통해서 이 가짜 복음은 더욱 전파된다. 4. 뒤늦게 존 로크의 천부인권설에 기초한 서구 민주주의 사상이 들어와서 한국 토착적인 유불선 신바람 운동의 비합리적이고 독단적인 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5. 둔탁한 고집쟁이 목사들은, 여전히 목사를 신격화하는 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려 한다. 왜냐하면 민중들의 원초적 요구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배받고 얻어맞는데서 오는 쾌감을 민중들에게 제공하므로 교회를 쉽게 부흥될 수 있는 것이다. 얼굴에 얼마나 뚜꺼운 철판을 까느냐에 따라 부흥은 비례된다. 사이비 종교집단인 북한의 김정일 집단이 이 점을 확실히 증거한다. 6. 약싹 빠르지만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얕잡아본 목사들은, 교회 교인들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므로서 자신의 목사 직업이 부지하려고 한다. (1)교회는 민주적으로 전문 경영인인 목사의 권한과 재정 이사급인 장로의 권한을 균등히 한다. (2)교회 헌금은 오직 당 교회의 명예와 착함과 가치성을 대외적으로 널리 홍보하는 용으로 구제와 선교와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일정 비율로 아에 정해서 지출한다. (3) 교회의 주권은 교인들에게 있기에, 목사의 정권교체(?)는 신사적이고 합리적으로 시행한다. 단 퇴직금만큼은 섭섭치 않게 해 주는 조건이다. 만약 이것이 원활치 못하면 노회에 있는 목사 노동조합에 고소하여 용병들을 동원한다.
이런 한국 교회에서 자신을 개같은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 있다면, 왕따 당하고 심리적으로 몰매당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종교성 발언으로 참된 성도를 학대합니다. "미쳐려만 하나님에게 미처라. 하나님은 모든 이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보다 한 수 아래인 예수 한테 미치치 말고!"
복음이란,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다 악마가 만들어낸 것이며, 참된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 십자가 안에만 계시다는 것"을 고백케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동안 믿던 하나님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예수님로만 교체할 위인은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도 남의 나라(유대인)의 언약 때문에 핍박받는 자들이 이 한국 땅에도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있을 것입니다.
==========================================================================[re] 복음과 언약의 관계 김병구 2003-07-19 05:58:15, 조회 : 101, 추천 : 13
이 목사님의 친절하고 자세한 응답에 감사합니다만,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아 이해가 쉽게 가지 안는 군요.
" 이 그리스도라는 분은 유대인의 메시야이지 이방인들의 메시야가 아닙니다. "
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이방인들의 메시야는? 바을 사도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진 사도로 바울 자신이 말하고 있지않습니까?
목사님께서는 삼위일체 설을 인정하시나요?
==========================================================================[re] 복음과 언약의 관계 이근호 2003-07-19 06:57:54, 조회 : 115, 추천 : 12
1.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이 어떤 종교관을 갖고 있는지 압니다. (사도행전 17장. 로마서 1장) 하지만 그들의 하나님에 부합되는 하나님을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짜장면(이방인들을 위한 메시야)을 원하는 이방인들에게 짜장면은 안 갖다주고 스파게티(유대인들의을 통해서 나타나신 메시야)을,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알렸다는 겁니다. 그것은 구약(옛언약에 보면 무너지 다윗의 장막에 세우는데 있어 이방인들도 참여해야만 한다는 예언 때문입니다. (아모스 9:11)그러니까 "이방들의 너희들이 종교심에 의한 종교를 포기하라. 거기에 따르는 천국 개념과 죄악 개념과 구원개념도 포기하라 오직 유대인에게 준 언약대로만 하나님은 일하신다. 너희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하나님은 상상의 파편들로 만든 우싱이었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하셨냐 하면, 예수님은 옛언약의 예언대로 오신 분이고 다른 자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삼위일체이론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성경의 말씀을 믿는 것이지, 거기서 조립된 인간의 신학 이론을 믿어서는 아니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재림'은 믿어야겠지만 '예수님의 재림론'은 따져봐야 할 대상으로 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믿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론'은 따져봐야 할 대상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학문이란 상황 따라, 시대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여지가 항상 남아 있습니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부적절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옷이 자기 몸에 안 맞는다고 "옷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옷을 고쳐서 자기 체형에 맞추면 되는 문제입니다.
3. 지금 이 크로스빌리지에 보면, 성경 신학에 대한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우선 차분히 그런 글들을 보시면서 공부하시면 조금씩 알아져 가실 것입니다.
##############################################################################################성경과 Time machine 원종석 2003-07-17 12:52:48, 조회 : 138, 추천 : 12
성경과 Time machine
“아버지 좋아 하실만한 영화가 있는데 가실래요? 금방 개봉된 영화죠”좋은 영화가 있으면 항상 그랬듯이 둘째 아들(26세)이 이미 두 번씩이나 본 “Contact"란 영화를 가 보았다. 기억에 남는 영화다.내용인즉 지구의 인간 존재를 우주를 향해 전파로 보내고 우주 어딘가 에서 그 답신이 오길 기다리는 여 주인공이 어느 날 ‘베가’라는 별로부터 전파를 받는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그 내용을 해석해 보니 일종의 거대한 Time machine이였다. 삼차원의 인간 존재보다 월등한 존재로부터의 ‘초청장’이다. 전 세계적 호응을 받고 그 ‘설계도대로’ 제작, 그리고 주인공 여인이 완성된 Time machine의 설계도를 보고 놀란다.“아니, 본래의 설계도에는 의자가 없는데...” 보통 방 두 배정도 커보이는 공 모양의 본디 설계도 안에는 아무 것도 없게 되어 있는데 과학자들 생각에 안전보호를 위해 의자가 필요하다고 판단. 아주 튼튼한 쇠파이프에 의자를 연결하고 그 다른 끝을 공 천정 중앙에 붙여 놓았다. (의자는 공 중앙에 위치함) 출발!엄청난 크기의 궤도 모양의 기계가 움직이면서 시간이 갈수록 의자의 진동이 가속되고 위험 한계선에 도달 할 즈음, 그녀의 연인이 준 목걸이가 진동으로 주머니에서 탈출된다.자기의 육신도 강한 진동으로 정신없을 때 그 목걸이를 잡으려는 순간, 그 목걸이가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고, 곧 자기 몸이 고정되어 있는 의자로부터 이탈. 그녀 자신도 조용한 무중력 상태가 된다.그리고 그 순간 의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강한 진동에 의해 천장에 붙여진 쇠파이프가 부러져 나가고 그녀는 삼차원을 초월 ‘베가’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다.만약 그녀가 그 의자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쇠파이프가 부러져 나가는 충격으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영화가 끝나고 귀가하는 차에서부터 가슴에 아픔이 시작. 2개월이 지난 지금도 “본디 설계도에 없는 의자”에 관한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왜 과학자들이 본디 설계도에 없는 의자를 설치했는가.고차원의 존재가 보내온 설계도엔 분명 의자가 불필요하기에, 그 설계도는 완전무결한 것이거늘. 미련한 과학자들의 생각으로 그녀를 충격사 시킬 뻔하지 않았는가!
<없었어야 할 의자>
‘성경’.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설계도.이것은 분명 고차원의 존재가 계신 신의 세계로 가기를 원하는 삼차원의 존재들에게 보내온 Time Machine이다. 본디 설계도대로 ‘나 자신을 제작’한다면 분명 우주 저 넘어(하나님 나라)에까지 안전히 갈 수 있도록 되어진 설계도.2천년 전에 ‘예수’라는 분이 스스로실험 해 보이기까지 한 ‘완전한 설계도’. (시험한 돌 사 28;16) 그런데 그 것을 제작 감독하도록 직책을 받은 사람들은 어떠한가?어리석은 어떤 신학자들을 통하여 배운 대로 거의 많은 목회자들이 설계도에 없는 의자들을 붙여 놓았다.아니 식탁도, 냉장고도, 거울도, 그리고 원형의 벽을 뜯어내고 창문을 낸다.그들은 성경에 없는 장노들의 유전들을 가르치고 믿으라고 한다.진리를 뜯어내고 그곳에 세상을 볼 수 있는 창문을 달아 놓았나 확인해 봐야한다.
예배당 출석 45년 후, 원 설계도에 99% 변경된 나 자신을 발견. 놀라고 망 할 것 같았다.그 이후로 가슴앓이가 시작되고 이로 인해 너무나 많은 밤을 설치며 의자(안일함)를 내 던지고 식탁(육욕), 냉장고(물욕), 거울(명예욕), 창문(안목의 정욕) 따위를 없이 하는데 전력을 다해본다.그리고 더 중요한 원형을 되찾기 위해 그 수많은 날들을 설계도를 들여다 보는데 내 생애의 1/3을 바친다.“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Back to the beginning)초대교회대로, 예수가 그리고 사도들이 가르친 대로.“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들어 갈 수도 없다”고 하신 그 분의 말씀.(요 3;1-8)물과 성령으로 태어나고 싶어도 태어나는 방법을 모르니, 그리고 그 방법이 틀리니 놀라고 망 할 수밖에 없다.“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하신 그 설계도. 예수여! 어디 계시오니까? 들으소서. 도우소서.“....영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8)”하였으니 영으로 태어난 사람이 <다> 어떻다는 것인지 저들에게도 우리와 같이 알게 하소서. 보게 하소서.
주님! 피곤토록 외쳐보지만 왜 이렇게도 듣는 자들이 적으니이까?제 외침이 적으니이까 아니면 저들의 의자와 창문이 너무 크니이까?주님! 긍휼을 베프소서, 듣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Contact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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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Contact 하소서
성경과 Time machine
“아버지 좋아 하실만한 영화가 있는데 가실래요? 금방 개봉된 영화죠”좋은 영화가 있으면 항상 그랬듯이 둘째 아들(26세)이 이미 두 번씩이나 본 “Contact"란 영화를 가 보았다. 기억에 남는 영화다.내용인즉 지구의 인간 존재를 우주를 향해 전파로 보내고 우주 어딘가 에서 그 답신이 오길 기다리는 여 주인공이 어느 날 ‘베가’라는 별로부터 전파를 받는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그 내용을 해석해 보니 일종의 거대한 Time machine이였다. 삼차원의 인간 존재보다 월등한 존재로부터의 ‘초청장’이다. 전 세계적 호응을 받고 그 ‘설계도대로’ 제작, 그리고 주인공 여인이 완성된 Time machine의 설계도를 보고 놀란다.“아니, 본래의 설계도에는 의자가 없는데...” 보통 방 두 배정도 커보이는 공 모양의 본디 설계도 안에는 아무 것도 없게 되어 있는데 과학자들 생각에 안전보호를 위해 의자가 필요하다고 판단. 아주 튼튼한 쇠파이프에 의자를 연결하고 그 다른 끝을 공 천정 중앙에 붙여 놓았다. (의자는 공 중앙에 위치함) 출발!엄청난 크기의 궤도 모양의 기계가 움직이면서 시간이 갈수록 의자의 진동이 가속되고 위험 한계선에 도달 할 즈음, 그녀의 연인이 준 목걸이가 진동으로 주머니에서 탈출된다.자기의 육신도 강한 진동으로 정신없을 때 그 목걸이를 잡으려는 순간, 그 목걸이가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고, 곧 자기 몸이 고정되어 있는 의자로부터 이탈. 그녀 자신도 조용한 무중력 상태가 된다.그리고 그 순간 의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강한 진동에 의해 천장에 붙여진 쇠파이프가 부러져 나가고 그녀는 삼차원을 초월 ‘베가’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다.만약 그녀가 그 의자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쇠파이프가 부러져 나가는 충격으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영화가 끝나고 귀가하는 차에서부터 가슴에 아픔이 시작. 2개월이 지난 지금도 “본디 설계도에 없는 의자”에 관한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왜 과학자들이 본디 설계도에 없는 의자를 설치했는가.고차원의 존재가 보내온 설계도엔 분명 의자가 불필요하기에, 그 설계도는 완전무결한 것이거늘. 미련한 과학자들의 생각으로 그녀를 충격사 시킬 뻔하지 않았는가! <없었어야 할 의자>
‘성경’.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설계도.이것은 분명 고차원의 존재가 계신 신의 세계로 가기를 원하는 삼차원의 존재들에게 보내온 Time Machine이다. 본디 설계도대로 ‘나 자신을 제작’한다면 분명 우주 저 넘어(하나님 나라)에까지 안전히 갈 수 있도록 되어진 설계도.2천년 전에 ‘예수’라는 분이 스스로실험 해 보이기까지 한 ‘완전한 설계도’. (시험한 돌 사 28;16) 그런데 그 것을 제작 감독하도록 직책을 받은 사람들은 어떠한가?어리석은 어떤 신학자들을 통하여 배운 대로 거의 많은 목회자들이 설계도에 없는 의자들을 붙여 놓았다.아니 식탁도, 냉장고도, 거울도, 그리고 원형의 벽을 뜯어내고 창문을 낸다.그들은 성경에 없는 장노들의 유전들을 가르치고 믿으라고 한다.진리를 뜯어내고 그곳에 세상을 볼 수 있는 창문을 달아 놓았나 확인해 봐야한다.
예배당 출석 45년 후, 원 설계도에 99% 변경된 나 자신을 발견. 놀라고 망 할 것 같았다.그 이후로 가슴앓이가 시작되고 이로 인해 너무나 많은 밤을 설치며 의자(안일함)를 내 던지고 식탁(육욕), 냉장고(물욕), 거울(명예욕), 창문(안목의 정욕) 따위를 없이 하는데 전력을 다해본다.그리고 더 중요한 원형을 되찾기 위해 그 수많은 날들을 설계도를 들여다 보는데 내 생애의 1/3을 바친다.“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Back to the beginning)초대교회대로, 예수가 그리고 사도들이 가르친 대로.“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들어 갈 수도 없다”고 하신 그 분의 말씀.(요 3;1-8)물과 성령으로 태어나고 싶어도 태어나는 방법을 모르니, 그리고 그 방법이 틀리니 놀라고 망 할 수밖에 없다.“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하신 그 설계도. 예수여! 어디 계시오니까? 들으소서. 도우소서.“....영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8)”하였으니 영으로 태어난 사람이 <다> 어떻다는 것인지 저들에게도 우리와 같이 알게 하소서. 보게 하소서.
주님! 피곤토록 외쳐보지만 왜 이렇게도 듣는 자들이 적으니이까?제 외침이 적으니이까 아니면 저들의 의자와 창문이 너무 크니이까?주님! 긍휼을 베프소서, 듣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Contact하소서.아멘.
==========================================================================[re] 성경과 Time machine 이근호 2003-07-17 13:20:43, 조회 : 150, 추천 : 12
>리모델링을 하시는데 아마츄어가 하시니까 어설프잖아요.
현재 사시는 집 수리한다고 새집 되는 것 아닙니다. 아예 내 집은 없다고 여기시고 십자가로 지은 새 집을 겸손하게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re] 성경과 Time machine 원종석 2003-07-17 21:53:20, 조회 : 117, 추천 : 12
님은 이미 리모델링 된 집에서만 살아 왔기 때문에 오리지날을 모르고 있습니다.
본인은 “원래대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인데 본인더러 ‘리모델링’한다니 님의 말은 우수개가 됩니다.님이 가진 <교파교리>가 성경과 터무니없이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식 못하는 건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오염됨 입니다.
님은 아직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전여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님의 글을 읽어 본 결과 성경적인 <복음의 정의>도 없이 <복음의 회복>을 주장함은 마치 허공을 치는 모습입니다.님은 아마츄어 수준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 아닌지요---- 먼저 성경에서 정의되고, 순종할 수 있으며, 태어 날 수 있는(거듭나는) 복음부터 확인 해 보십시오 ----
아래 글을 참고 하시고 과연 자신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에서 어느 쪽에 서있는지 확인 해 보시기를----
미혹 의 영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마귀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롬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행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죄 사함 막4:11,12)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막4: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여 함이니라' 하시고13 또 가라사대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
살후2:9-11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 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re] 성경과 Time machine 이종분 (Homepage) 2003-07-18 01:27:19, 조회 : 120, 추천 : 13
>>우선 원종석님께 양해를 구합니다. 제생각엔 목사님 같은데요 님의글을 계속해서 읽노라면 이원론적인 하나님이 느껴집니다. 저는 복음을 목말라하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그동안 님의글에 대해 수많은분들이 고쳐 드렸는데도 계속해서 글을 올리시는것을 보면 이젠 고집처럼 느껴집니다. 만일 홈싸이트가 계시면 소개해주시구요 어려우시다면 차라리 설교한편을 올리시든지요. 왜 넘의 게시판에다 그러잖아도 복잡한데 빨강 파랑글씨로 더 현란하게 하시나요... 순수한 복음만 그리고 성령에 사로잡히신목사님으로 복음을 외쳐주십시요 독일에서 재원엄마 올림
##############################################################################################거듭나게하는 복음 원종석 2003-07-18 13:25:41, 조회 : 92, 추천 : 12
거듭나는 복음
A) 중생의 필요성
요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Born) 자들이니라
? 하나님이 낳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나님 나라. 거할 곳이 많은 아버지 집에 가서 영원히 거할 수 있다. “거듭남”은 <변화>가 아니며, 물과 성령으로의 태어남이고, 곧 사람(육신) 안에 <새로운 피조물>의 탄생(Born)이다. <거듭 남>이란 육으로 첫째 출생된 몸 안에 성령으로 둘째 출생된 “새로운 피조물”을 말한다. 성령으로 오시는 예수를 영접하여 <영의 존재>가 “내 안에”있을 때, 그 영으로 피조 된 진정한 “나”라는 존재가 영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요3:1-8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영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영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참고: 원어에는 성령이 아니고 그냥 영으로 기록이 됨)
?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들어 갈 수도 없다. 물로만 태어나도 안되며, 영으로만 태어나도 안 된다. 반드시 <물과 영>으로 태어나야 한다. 거듭나는 방법은 각 교파마다, 각기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십 개의 각기 다른 ‘중생론’이 실지로 존재하고 있다. (어떤 교파는 아예 없다.)몇 가지의 예를 들면.
<물로 태어나는 것>의 “물”은 무엇인가?A. 물은 자연 출생이다.(어머니 양수속에서 9개월간 있었으니까)B. 물은 물 침례다. C. 물은 물 세례다.D.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한다.(어떤 말씀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일체 설명이 없다)E. 물은 물침례도, 말씀도, 자연 출생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니다.
<“영”으로 태어나는것은?>1. 예수를 믿으면 성령으로 태어난 것이다.2. 성령에 의해서만이 예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그 자체가 성령으로 태어 난 것이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 않음)3. 성령으로의 태어 남은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표적에대한 설명이 전혀 없음)4. ‘성령세례’가 성령으로 태어남이며, 그 표적은 그의 변화된 삶이 증거다.5. 성령침례가 성령으로 태어남이고 그 표적은 방언이다. 6, 성령은 144,000명의 특정인에게만 임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경우 A,B,C,D,E와 1,2,3,4,5,6만 둘씩 조합 해 본다해도 30가지의 다른 ‘중생론’이 있게되는데 30가지 모두가 다 옳은 것이 될 수 없고, 그 중에 하나만 진리이고 29가지는 틀리거나, 또는 30가지가 다 틀리고 또 다른 31번째의 것이 진리가 될 수도 있다.진리가 아닌 방법으로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이며 비진리을 믿고있다는 결론과 함께 ‘구원의 여러 가지 조건’ 중에 중요한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첫 번째조건(First Step)’이가 빠진 결과가 된다.과연 어느 것이 맞는가? “나는 옳은 것을 택하고 있는가?”
복음으로 거듭남 벧전1:3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거듭나게>하는 것은 <죽은 자(죽음) 가운데서(장사) (부활)>으로다. (죽음) (장사) (부활)=복음
벧전1:22-25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하나님의 말씀> 전부가 “복음”은 아니다.<하나님의 말씀> 안에 어느 한 부분이“복음”이고 그“복음” 의 내용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거듭난 것”은 말씀 안에 있는 “복음”으로 된 것임“복음”은 말씀이다(O)-말씀은 “복음”이다(X)말씀 안에 복음이 있으며, 말씀 전부가 복음은 아니다.“복음”이라 함은 말씀 안에 있는 어떤 한 부분을 지적한다. 사람은 동물이다(O)-동물은 사람이다(X)사과는 과일이다(O)-과일은 사과다(X)복음이 곧 이 말씀이다(O)- 말씀이 곧 이 복음이다(X)복 받는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다.(O)- 하나님 말씀은 복 받는 말씀이다.(X)
태어나게(Born again) 하는 “복음”고전4: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린도 교인들은 아비 역할을 한(Born하게 한)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으로 태어 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바울은 그들의 “복음의 아버지”이다.
구원의 “복음”엡1: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진리의 말씀”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구원의 복음은--듣고--믿어--성령으로 인 치심
복음은 순종 혹은 복종해야 한다. (순종 혹은 복종을 요구함)살후 1:7,8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 복음을 복종 혹은 순종치 않는다면 형벌의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당연히 복음도 알수가 없다. 그러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은 하나님도 알고, 예수도 믿고, 복음도 듣고, 알고있는 자들이다. 다만 그 복음에 복종(행위)치 않았으므로 형벌이 주어진다. 혹시 복음에 복종 혹은 순종하고 싶어도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또는 안다고 해도 엉뚱하게 잘 못 알거나 혼돈하고 있다면 엉뚱하게 잘 못 복종하는 결과가 되고, “복음에 복종하지 못하고 형벌(심판) 받는 사람”이 된다. 고로 바로 알고, 올바른 복종이 요구된다.
벧전 4장17,18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고후 9:13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복음은 진실히 믿기만 해서는 안되며 진실히 믿은 복음에 순종 혹은 복종해야만 한다.
롬10:16(사도 바울의 말)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선지자 이사야는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향 해 라고 정의한다.
눅16:16,17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하나님 나라는 <복음으로 침입>한다. <침입>이란 말은 ‘뒷짐지고 양반의 팔자 걸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다. <침입>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과생명을 걸고, 있는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상상 할 수 없는 nActio(행위)>을 요구한다.구원은 “사람의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과 생명을 걸고, 있는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상상 할 수 없는 Action(행위)》과 《하나님의 은혜》가 합쳐져 100%의 구원이 이루어진다.”구원={사람의 믿음의 Action(행위)}+{하나님의 은혜}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성경이 설명하는 복음 고전15:1-5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이다.
==========================================================================[re] 거듭나게하는 복음 손무성 2003-07-18 14:33:07, 조회 : 116, 추천 : 9
아래 내용이 원종석님의 주장이다.
"A) 중생의 필요성 요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Born) 자들이니라 하나님이 낳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나님 나라. 거할 곳이 많은 아버지 집에 가서 영원히 거할 수 있다. “거듭남”은 <변화>가 아니며, 물과 성령으로의 태어남이고, 곧 사람(육신) 안에 <새로운 피조물>의 탄생(Born)이다. <거듭 남>이란 육으로 첫째 출생된 몸 안에 성령으로 둘째 출생된 “새로운 피조물”을 말한다. 성령으로 오시는 예수를 영접하여 <영의 존재>가 “내 안에”있을 때, 그 영으로 피조 된 진정한 “나”라는 존재가 영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눅16:16,17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하나님 나라는 <복음으로 침입>한다. <침입>이란 말은 ‘뒷짐지고 양반의 팔자 걸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다. <침입>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과생명을 걸고, 있는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상상 할 수 없는 nActio(행위)>을 요구한다. 구원은 “사람의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과 생명을 걸고, 있는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상상 할 수 없는 Action(행위)》과 《하나님의 은혜》가 합쳐져 100%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구원={사람의 믿음의 Action(행위)}+{하나님의 은혜} "
위의 내용은 이미 모순이다. 말이 안된다. 요한복음1:12-13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 낳아야 한다고 해놓고 아래 누가복음16:16-17의 내용을 인용하면서는 하나님 나라는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리라 라는 말을 하면서 구원은 사람의 믿음의 행위 +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그러면 왜 원종석님이 자기도 글을 적으면서도 모순인줄 모르고 모순된 이야기를 하고 있겠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찾아 오심의 목적이 육정으로는 사람의 뜻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오셨음을 인용하면서도 모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해석을 할 때 사람의 뜻과 육정을 등에 계속 업고 하나의 카타고리(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사람의 믿음의 행위로 이루어진다.)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그에 맞게 해석하려 드는 것은 당연해진다. '침입'하니까? 침입하기 위해 인간이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야 하는 행위로 여기려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을 인용하면서 하나님 자녀되는 것은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본인이 인용해 놓고도 그 다음 '하나님 나라는 복음으로 침입하느니라' 라는 말이 나오니 인간이 나서야 하는 것인 줄 안다.
사실은 그게 아니다. 1)요한복음 1:12-13의 말씀이나, 2)누가복음16:16-17의 말씀이나 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복음이 전파되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침입한다는 것' 역시 사람의 뜻으로, 육정으로 되지 않고 복음=예수의 피흘리시는 그 결과가 죄인의 죄를 대신하고 거룩하게 하여 '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침입하게 한다는 말이다.
원종석님은 이것을 모르고 '침입'하기 위해 사람이 애쓰야 하는 '믿음의 행위'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요한복음 1:12-13의 말씀에 모순이 되는 말이다.
그러니 원종석님의 주장과 같이 구원={사람의 믿음의 Action(행위)}+{하나님의 은혜}이라는 논리 자체가 인간의 육정에서 나온 것이요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구원을 위해 '사람의 믿음의 행위'(이 말 자체가 모순이다.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의 행위가 가미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때 사용되는 용어다)가 열심을 못내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구원도 비끄덕거리며 구원 자체에 큰 차질이 생긴다. 이게 무슨 하나님의 은혜인가? 이것은 불안한 구원이요. 구원을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 말씀을 한없이 거부하는 말이된다. 이런 구원을 결국 인간의 애씀의 결과가 없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구원이 되버린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감히 들어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신 저주받은 예수님 피로 말미암아 '침입'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부활로 하나님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이 이미 확증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