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어떵게 하면 제 마음이 밝아 지겠습니까?] 2003-07-02
목사님 어떵게 하면 제 마음이 밝아 지겠습니까? 김병구 2003-07-02 05:23:22, 조회 : 116, 추천 : 10
전 목사님,
좋은 교회가 많이 있습니까? 제가 지난 4반세기를 해외에서 살아서 한국 교계를 몰라서 그러나요? 정말 목사님 말씀처럼 좋은 교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좋은 교회의 이름들을 좀 가르쳐 주시겠어요?
목사님 지적하신 데로 제 마음은 참 어둡습니다.
교회개혁에 목숨을 걸겠다는 베스트셀러 저작자 목사님께서 주장하는 교회개혁의 내용이 교회의 양적 성장의 재개를 위한 경영개혁 같은 것에 불과하며, 더욱이 그것을 그 동안 한국교회의 영적 타락의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목사의 교회 통전, 즉 목사가 교회의 재정, 재산의 운영 등을 포함한 교회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일을 강화함으로써 이루겠다는 생각을 보고 저의 마음은 어둡습니다.
분당과 분당 근처에 수 만명의 교인을 가진 교회를 그리고 미국에도 연관된 교회을 섬기시는 제가 기대하는 어느 목사님께서 최근6.25를 기념하는 예배의 설교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한지 10여년이 가까운데도 아직 한반도에는 통일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분단 상태가 우리 한민족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저는 마음이 어둡습니다.
제가 지난 1개월 남짓 동안, 교회 개혁은 영적 순결의 회복과 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목사 및 장로의 말씀과 기도에의 전념, 재산 및 재정운영의 제직회 일임, 그리고 목사 임기제 및 신임투표제 도입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말씀에 근거한 교회개혁을 말씀 드리며 영적 순결의 회복을 위하여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교회가 하나님 보다 돈을 사랑해온 죄를 회개하는 미스바의 회개 연합기도회를 인도해 달라고 3ctv에 설교를 올리시는 100명의 목사님 들에게 5회에 걸친 e-메일을 보냈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답신 하나라도 학수고대하고 있는 저의 심정은 아직 어둡습니다.
“형제님의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교회가 형제님의 글에 동의하지만, 막상 실천을 할려고 하면 반대가 많거나 ,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교회분열세력으로 왜곡하여 많은 시련(?)이 있게 됩니다.
형제님의 글을 저의 교회게시판에 등재하였더니 삭제가 되었습니다...
좋은 자료나 지혜가 있다면 멜 주시기 바랍니다. 김영만드림”
위와 같은 e-메일을 생면부지의 한 형제로부터 받는 저의 마음은 어둡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저의 마음이 밝아 지겠습니까?
==========================================================================[re] 목사님 어떵게 하면 제 마음이 밝아 지겠습니까? 이근호 2003-07-02 06:12:09, 조회 : 151, 추천 : 12
>밥 먹고 나면 화장실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한국 교회를 마치 교회인 것처럼 여기다가는 실망만 커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도 탄식하시고, 성령님도 탄식하시는데 우리라도 해서 꼭 탄식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고난으로 인해 성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참 마음의 밝음은 이런 소망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
어쩌면 "그동안 본인이 소위 '순수'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큰 욕심을 가지지는 않았는지...". 라는 자기 반성도 겸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원종석 2003-07-02 12:42:46, 조회 : 168, 추천 : 12
귀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17절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바울에 의해서 침례를 주고, 받았고, 침례 자체를 바울이 직접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침례를 주는 자는 누가 주느냐가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궁금했던 것은 귀하께서 '세례 자체'가 '복음에 포함된다고 생각되느냐 아니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세레 자체를 바울이 직접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복음과는 완전히 구분된다는 뜻에서 사도 바울은 세례 자체를 복음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귀하께서 말씀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또 귀하께서는 세례 주는 행위, 세례 받는 행위를 복음에다 집어넣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안에는 회개와 죄사함의 물침례와 새피조물의 성령침례가 들어있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귀하같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결코 '(물)세례를 주려 함이 아니요'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를 인간의 순종으로 달성하라고 촉구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위에서 님의 글은 본인의 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를 위한 twist한 글입니다.본인은 “복음과는 완전히 구분된다는 뜻에서 사도 바울은 세례 자체를 복음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님이 그런 식으로 본거죠.바울은 <복음의 내용에 있는 침례의식을 행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라는 성경적 내용입니다.그러나 바울도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곳에서는 침례의식을 행했으나, 이미 교회가 서있는 곳에서는(고린도 교회-고전 1:1-19) ‘그 교회의 사람에게 침례의식을 하도록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복음을 전 한다”함은 <복음의 내용을 말로 전함>이지만 <복음의 순종은 “침례를 받는 것”임>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님이 본인의 글을 반대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반대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을 against하는 것은 후일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의 말씀에 특히 구원에 관한 “하라, 말라”에 “순종했느냐, 불순종했느냐”에 관계가 됩니다.
또 “귀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를 인간의 순종으로 달성하라고 촉구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라고하신 님의 글은 “행설수설” 같아서(미안) 잘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만약 복음의 결과 문제를 인간의 순종문제로 전환시켜 버리게 되면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단지 물세레를 받지 아니했다는 이유 때문에 천국에서 탈락되는 겁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입니까?'
복음의 결과는 <물침례, 성령침례>를 통한 “거듭남”입니다.복음의 내용인 <회개와 죄사함과 영으로 태어남>은 <회개, 물침례, 성령침례>임을 성경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님이 속한 교파교리 기준으로는 분면 <이단>시 될 내용입니다.그러나 성경에 있는 것입니다.문제는 님이 속해 있는 <교파교리>의 내용이 성경에 없는 “멸망에 이루는 교리”로 되어 있다는 결론입니다.<침례는 구원관 직결됨>을 성경이 증명하고 있는 반면,님의 교파교리는 <침례는 구원과 무관하다>고 가르치고, 반대하는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증거입니다. 미안하지만요---
근본적으로 복음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17에 보면, '하나님의 의'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순종함'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순종함'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의인되는 것은 그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 뿐입니다. 그런데 귀하께서 '세례 받으라'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구원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보기에는 사도 바울의 생각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님이시여, 순종함이 없는 믿음도 있습니까?야고보서는 “순종함(=행함)이 없는 믿음음 죽은 믿음”이라고 분명한 결론입니다.님은 교인들에게 “죽은 믿음만 가르치고 있다”는 부Rm러움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약속(신약)의 내용을 믿고, 그 믿은 내용의 순종(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은 <이미 의인이 된 사람이 믿음의 생활을 해 나간다>입니다.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shall live(살아가다) by faith” 입니다.문제는 어떻게 의인이 되느냐죠.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죄사함 엡 1:7, 골 1:14, 히 2:17)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위의 성구 28절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옳습니다. 먼저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었으면 그 믿은 내용에 <순종함>(행위)이 뒤따라야 <산 믿음>이 된다고 성경이 설명하고 있습니다.또24절에서는 <구속(죄사함=물침례)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하고 있지 않나요????????
“하나님의 언약(구약이 아니라 신약)을 믿는 아브라함”를 “의롭다고 하셨고, 그리고 그 의를 인친 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할례>라는 것이었습니다.(롬4:11 이래의 성구 참고) 구약시대에 할례를 받지 아니해도 <의롭게>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그러나 이러한 할례라는 것도 실체의 그림자이고 모형임을 님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후에 신약시대에서는 그 인침이 침례로 이어집니다.물침례 성령침례로 “의롭게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롭게 된 사람>은아브라함이 <할례>라는 <순종>을 통해 인침을 받은 것처럼, ‘물침례 성령침례’에 <순종>을 통해 인침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구속=죄사함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히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에게 '세례'란 '옷'과 같습니다. '옷'이 흙을 사람 만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해서 '옷'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옷벗고'다녀도 안 죽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옷 입고 다녀야 인간 사회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법입니다. 성경에서 말해는 세례란 '제가 성령을 받았습니다'라는 표시를 하는 것 뿐입니다. 마치 '제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옷입고 다닙니다'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물를 머리에 뿌리던, 욕조에 잠기든, 그것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중요했더라면 성경에 욕조의 크기나 아니면 물에 잡기는 시간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지침서가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위의 님의 말은 성경에 없는 내용이며, 성경적이지도 못한 ‘님의 철학’입니다.님이 욕조 애길하니 생각이 납니다.구약에서 선전에 있는 10개의 “물두멍”과 한개의 큰 “놋 바다”의 크기와 그 것이 왜 ‘그 곳’에 있었는지 생각 해 보셨나요???
물두멍의 직경-- 1m 80Cm, 큰 놋바다 직경--4m 50Cm오순절 날 삼천 명이 침례를 받은 곳은 바로 그 10의 <물 두멍>과 한 개의 큰 <놋 바다>에서 11 사도가 하나 씩 들어가 침례를 주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곳은 원래 <씻는 곳>이죠.베드로가 설교를 한 후회개한 사람들이 바로 “죄를 씻기 위해” 곧 <죄사함>을 받기 위해 삼천 명을 침례를 할 수 있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들에 놓인 물두멍들이었습니다.또 그 때 성령침례도 많이 받았을 것을 믿습니다.삼천 명이나 <침례>를 받았다는 기록은 <물침례, 성령침례>를 포함한 것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으니까요---
사도 바울이 중요시한 것은 비복음입니다. 즉 예수님만의 온전한 순종으로 만들어진 복음에다, '인간의 순종함'을 더 보태야 구원된다고 여기는 그런 사이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전력을 다하여 정죄하고 있습니다.
님의 정죄기준으로 본다면 <바울도, 베드로도, 모든 사도들도 다 “사이비”가됩니다. 예수님도 사이비이고요--->
십자가로 다 이루었던 그 복음에 딴 것을 끼어넣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道)는 바로 <복음> 입니다.님처럼 복음의 내용을 변질 시키는 자들을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복음을 변케 마십시오.복음은 고전15:1-4에서 정의되고 있으며, 롬6:1-11--에서 적용을 확인 해 보시기를---우선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하시고,<복음에 순종>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re]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이근호 2003-07-02 15:17:58, 조회 : 174, 추천 : 12
그러니까 귀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행함 즉 물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는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그렇지요? 제가 잘못 이해한 것입니까?
그리고 구약 성전의 물두멍은 오늘날 침례 의식에 동원되는 욕조의 그림자라는 뜻입니까?
==========================================================================[re]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원종석 2003-07-02 21:28:35, 조회 : 137, 추천 : 12
그러니까 귀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행함 즉 물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는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지요? 제가 잘못 이해한 것입니까?
아니죠, 성경은 “믿기도 하고, 침례도 받아야 구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성경은 항상 믿음이 먼저이고, 다음이 '믿은 것'에 대한 순종(행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순종이 없는 믿음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던가요?님은 "믿기만 하라, 행위는 필요 없다"로 믿고 가르치겠지만 그건 죽은 믿음입니다.
막16:15,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리고 구약 성전의 물두멍은 오늘날 침례 의식에 동원되는 욕조의 그림자라는 뜻입니까?
놋제단이 십자가의 그림자라고 믿어진다면,유월절이 예수님의 죽음의 그림자이고.무교절이 예수님의 장사의 그림자로 믿어진다면,요제일이 예수님의 부활의 그림자로 믿어지고,오순절이 성령으로의 재림으로 믿어진다면,그리고 성소가 성령 침례로 믿어진다면물두멍은 그렇게 믿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re]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구득영 2003-07-03 00:23:21, 조회 : 124, 추천 : 13
원종석님이 지금까지 복잡하게 말씀하셨는데, 이제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근호 목사님도 세례를 부인한 적이 없는 줄 압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토론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까요? 문제는 왜 세례을 믿음과 같은 레벨에 두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8+2=10 이라고 할때 8과 2의 자격은 같은 것입니다. 과연 세례가 그러합니까? 오히려 믿음의 영역에 그것이 들어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세례(침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제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라는 고백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믿음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유대인들의 할례처럼 그렇게 여기신다면 좀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교와 침례교는 서로 다른 것으로 압니다만. 그런데 이제 마지막에 그것을 행위와 연결시키는 것을 보니, 그것은 바로 구원을 이루는 믿음의 또 다른 짝으로 여김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가 전혀 달라지지요. 믿음을 손상시키는 것이 되니 말입니다. 믿음이 온전하다면 왜 인간의 행위가 들어갑니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믿음은 온전합니다. 거기에 인간의 행위가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순종은 행위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한 믿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인간이 움직인다고 해서 다 행위가 아닙니다. 그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행위는 바로 인간에게 초점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외롭게 이렇게 욕을 들어가며 싸워온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런 인간의 행위에 의미를 둡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행위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선악과를 먹었기에 항상 이런 유혹이 있습니다. 아니 이미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re]믿음과 순종을 오해한 ‘구득영’님께 원종석 2003-07-03 12:32:40, 조회 : 102, 추천 : 12
구득영 님의 글에서그리고 가 무엇입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라는 고백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믿음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세례(침례)의 의미가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라는 고백>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100% 목사라는 사람이 그렇게 갈쳤을 것입니다.그러나 성경에 설명에는 비슷한 것도 없습니다.님은 성경에 없는 내용으로 <침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침례 의미가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라는 고백>이다고 갈치는 것은 거짓입니다.님은 본인이 올린 <침례는 왜 받아야하는가>라는 글을 읽었으리라 믿습니다.그 글에는 “침례의 의미와 그 목적”이 성경 말씀 자체로 설명되고 있습니다.님이여, 성경적이 아닌 말로, 성경에 없는 말로 님을 미혹하는 <장로들의 유전>을 믿지 마시고 성경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유대인들의 할례처럼 그렇게 여기신다면 좀 문제가 됩니다.”라고 하신 님의 글은 성경이 지적하는 “그림자, 모형, 비유, 몽학선생 등이 실체와 어떤 관계인지 연구 해 보신 후 글을 올려주십시오.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부정하시지 마시고 <믿음으로만 배부를 수 있나>의 글을 참고 해 보시기를----
==========================================================================[re]믿음과 순종을 오해한 ‘구득영’님께 구득영 2003-07-03 14:25:58, 조회 : 114, 추천 : 11
만약 제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까?' 아니면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붇는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만약에 둘다 같은 말이라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둘 다 해야 한다고 하면 결코 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기존 장로교가 침례를 세례라고 잘못 오해한 것을 바로 잡는 것은 좋지만, 그러나 님은 지금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님은 분명 침례를 인간행위에 영역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믿음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의 행위는 그 믿음을 오히려 공격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분명 물세례나 성령세례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님이 침례를 인간의 행위로 여긴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주어진 주님의 행위를 모독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리고 님의 '믿음으로만 배부를 수 있는가?' 라는 글은 읽는 사람을 좀 서글프게 합니다.
==========================================================================[re]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원종석 2003/07/02 12 137 [re] [re]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꽃분아빠 (Homepage) 2003-07-02 23:27:41, 조회 : 126, 추천 : 13
안녕하세요.믿음과 행위에 대한 토론이 있는 듯 하여 잠깐...
야고보서 등 많은 서신들이 그 때의 상황에 대한 대화체가 많다고 봅니다. 즉, 그러한 상황에 적절하게 적혀진 글이라는 것입니다.만약 바울 사도 혹은 야고보 등에게 그냥 교리를 강의해 달라고 했다면 과연 행위에 대하여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야고보서에 나오는 것 또한 거짓된 자들이 진짜인양 까불고 다니니까 그에 대하여 진짜 믿음은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므로써 이 시대의 우리는 믿음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을 또한 확인하게 되는 것이라 봅니다.즉, 그냥 교리를 강의해 달라고 요청했다면 줄곧 예수님의 피, 오직 믿음만을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행위는 하나라고 말을 하면서 믿음을 말한 뒤에 행위의 짐을 지웁니다. 이것은 저 사람은 살아있다 그리고 숨을 쉰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살았다에는 이미 숨을 쉬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숨을 쉰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냥 살아있다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부연설명으로서 숨을 쉰다 혹은 맥박이 뛴다 등의 부연설명을 할 것이며, 그에 더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것입니다.이제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귀하의 말씀대로 믿음에는 행위가 반드시 따르기 마련입니다. 즉, 행위는 믿음의 증거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행위는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행위가 없으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행위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숨을 쉬는 것은 살았다는 증거이듯이, 행위는 믿음에 기인한 행위인 것입니다. 세례 혹은 침례를 받고 안 받고가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아도 그것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고 기뻐할 수 있냐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의 것이 헛되어 보이고 세상의 지식들이 배설물로 여겨지느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여기서 또 교회들이 범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믿음의 증거로 드러나는 행위를 한번 행하여 보려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인하여 자연스럽게 행하여져야될 행위를 행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운동, 큐티운동 등등이 바로 이러한 것들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일하시고 계심을 확인하고 감사할 틈을 안주고 열심히 일을 하는 교회라는 간판을 건 인간집단들을 봅니다.오직 믿음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여 가르치면 되는 것입니다.
세례니 침례니 하는 의식은 인간의 모임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너 세례 받았니? 혹은 너 침례 받았니? 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 내가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표현 혹은 극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물론 세례나 침례를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을 받는 길은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경을 우연히 입수하여 무인도로 흘러 간 후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바라보며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다면 그 사람은 세례도 못 받고 믿기만 했으니, 구원을 못 받았다고 볼 수 있나요?
믿음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이야기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re]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원종석 2003-07-04 13:05:25, 조회 : 104, 추천 : 26
님이 쓰신 글 답을 하려니 몽땅 <님의 생각>으로만 되어 있어서---성경으로 답할 내용이 하나도 없어서 그만 둡니다.님이 쓰신 글 내용은 성경에 없는 내용들로 보입니다.
==========================================================================[re]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꽃분아빠 (Homepage) 2003-07-04 13:56:33, 조회 : 96, 추천 : 29
사두개인들도 성경기준으로 말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제가 신학을 안해서리 잘 모르겠네요.성경을 기준으로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같은 성경을 보더라고 성경을 또 하나의 규율로 안다면 잘못된 것이라 봅니다.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네요....로마서는 바울의 생각이구요.성경을 문자로 보고 또 하나의 규율화 한다면 의문의 아직도 의문의 율법이 살아 있는 것인데...쩝... =========================================================================침례와 순종을 오해한 ‘이근호’님께 원종석 2003/07/02 12 169
re이 문제와 관련한 저의 견해 남상수 (Homepage) 2003-07-03 20:45:34, 조회 : 111, 추천 : 6
계속되어지는 이 문제는 사실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의 확실성과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게 되는 생명의 구원과 확신은 그리 흐릿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확실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로 인해서 계속해서 불필요한 소모전을 펼친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답답한 일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원종석님이 오해하는 것과 같지 않고 장로교단의 신학에서 이미 모두 검증되었고 분명하게 그 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이런 주제에 대한 토론이 맴돌기만 하는 것이 저로서는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몇가지 말씀을 먼저 드려보고 싶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이 믿음으로입니까? 아니면 그 후에 할례의 의식을 행했을 때 그의 구원의 효과가 완성되었다고 보십니까? 의롭다 인정을 받았다는 것으로 구원이 확증되는 것이 아닌지요? 그러면 또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받음직한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닌지요? 혹시 님께서는 아벨이 믿음이 있었지만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을런지요? 그리고 에녹은 당대에도 없던 물세례도 없이 어떻게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승천하게 되었는지요? 설마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에녹도 어딘가 물통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주장하시지는 않으실런지요..?
그리고 원종석 님께서는 계속해서 인침과 성령의 세례가 같다고 이해하시는데, 이 인침이란 성령의 인, 즉 하나님께서 믿는 자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효과적이고 신비적으로 부여해 주심으로 알아보게 되는 그리스도의 피의 증거, 즉 그리스도의 중보적 은혜와 효과를 두고 말씀함이 아닌지요?
님의 말처럼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그렇게 까지 동등선상에 놓아서 물침례의 효과를 부풀리게 된다면 그렇다면 세례 받기 전에 이미 성령의 세례를 받는 자는 어떻게 설명될까요? 성령받음으로 그의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보시지는 않는지요? 아직 물세례가 없으니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인가요?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가서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임함을 볼 때 성령의 세례가 먼저가 아니었는지요? 하나님께서 권능의 성령세례를 주시는데 어찌 물로 세례를 줌을 금하겠는가 하는 베드로의 표현은 과연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물론 세례는 주님께서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이것 외에 성찬도 주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참된 교회는 주님의 명하신 예식을 말씀을 전파와 함께 행하는 것은 달리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세례를 성령의 세례와 동등하게 하는 것 자체도 분명히 이단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줄 때에 자신의 뒤에 오시는 이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세례로서 모든 죄의 사함의 효과는 충분하고 이로서 하나님의 구속사역 즉 인침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이 성례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것은 신약의 교회를 이루어감에 있어서 분명 필요한 예식을 허락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필요의 문제를 구원의 절대적 문제, 복음의 핵심인 믿음과 순종의 문제와 연결 시킨다면 이는 필히 성경의 의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십자가의 강도가 세례를 받지 않았으나 그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나라에 간 것처럼 그러나 십자가 밑에서 아직 성령 받을 때를 두고 있는 120문도 외에 다른 이들은 유대인이나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이미 물세례와 할례도 받았을 것이고 요한에게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물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물세례와 성찬의식을 이 땅의 유형교회를 세워가는데 있어서 합법적인 예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즉 구속사의 과정에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표상으로서 그 기능을 감당할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의 교회 구원이 명시적이고 명제적인 합법성을 성취할 필요가 있음으로 주어진 형식인 것입니다. 원종석 님의 부분적인 견해처럼 합법적인 도장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합법적이라 함은 주님께서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세례를 주라(마 28:19)고 명하셨고 또한 주님 오실 때까지 기리라(고전 11:24-26)하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합법적이란 말은 구원의 본질과 관계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시는 비상한 섭리는 말씀을 통해서 능히 자신의 일들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이 현재에도 진행중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과정에 있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의 본질적 요소를 주님이 행하라고 말씀하는 예식과 문제를 결부시킨다는 것은 당연히 성경해석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는 처사입니다. 이는 계시의 점진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는 침례파적 신학의 한계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에는 달리 이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 없이 의롭다함을 얻었으며 구원을 받았으나 또한 세례를 주라고 하심은 구속사의 과정에서 교회의 형식 또한 전혀 외면할 수 없는 상식적인 문제이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결코 어려운 문제로 취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이 상식적인 문제를 계속해서 해결하지 못하고 소모전을 벌인다면 이는 필시 복음의 핵심인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와 능력을 거스르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역사 속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이 명하시고 성경이 말하는 성례를 우리가 함부로 폐한다는 것은 필시 교회의 표지를 무너뜨리는 것이므로 잘못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표지는 온전한 것이 올 때는 폐해짐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것이 구속사의 과정가운데서 필요한 형식이므로 주님께서 제정하셨고 명하셨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원종석 님께서 말씀하시는 이근호 님이 속했던 교단의 교리라 함에는 실제로 세례와 성찬에 대해서 분명한 성경적 입장을 갖고 있으므로 함부로 판단하시는 것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참된 교회의 표지에서 성례가 분명하게 포함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원의 표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참된 교회의 표지라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말씀에 기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예식들을 이해할 때에 성경의 말씀에 대한 바른 믿음과 순종의 행위로 보면서 그것을 복음의 본질적 요소와 연결시키는 것은 성경이 찬성하지 않고 그렇게 의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아니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과정에서 바른 교회에 필요한 형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식은 주님의 오실 때까지 행하여 주의 죽으심을 전하고 또한 기리는 것과 같으며 또한 세례에 있어서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는 그리스도의 언약의 공동체에 합법적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외형적 승인식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원종석 님의 말씀처럼 그것을 복음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행위문제로 본다면 이는 큰 오류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형식을 또한 참된 교회의 표지로서 의당 있어야 할 문제인 것은 바르게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세례는 형식이지만 바른 교회에서는 이 세례가 또한 엄숙하게 실행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줌을 복음의 본질과 성령의 역사와 필연적으로 결부시키는 것은 문자적 해석이 되고 잘못된 결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표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교회가 완전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말은 모두 이해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그리스도의 교회의 할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이 가장 큰 임무이며, 또한 교회가 그렇게 분명한 구원의 복음을 증거한다면 주님의 명하신 대로 복음을 믿는 자는 세례를 받아서 교회에 들어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대명제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참여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가운데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주님의 편에서는 철저하게 합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세례를 받았다 해도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게 됩니다. 이는 그 안에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그를 살리시고 말씀으로 그에게 새로운 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론 침례파는 그런 신학적 문제에서 한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차이가운데 유아세례를 부인하는 것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그 복음의 능력과 신비, 하나님의 구속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득영님께서 지적하신 바처럼 원종석 님께서는 그런 차원에서 분명히 문제를 가지고 계심을 인정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또한 이근호 님께서 일전에 주장하시는 바와 같이 칼빈이 성례를 강조한 것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필요에 의해 강조 되었다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제정하신 성례들은 구속사적 과정속에서 이제 신약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바른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필요(이 의미를 분명히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오해마시길..)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성경적 입장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식적인 문제들을 복음의 핵심이며 구원의 본질로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한 말씀 더 드리고자하면 교회의 정치의 정당성도 그와 동일한 선상에서 상식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입니다. 거기에 세례의 자리가 본질적이고 필연적으로 허락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례 받지 않은 사람도 믿음으로 구원되나 세례 받고 교회에 들어와 있는 자 중에서도 가라지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며, 아울러 하나님의 구원의 과정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 말씀하시는 자와 그의 보내신자를 경외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