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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왜 개혁장로회 라는 명칭을 사용하시나요?] 2003-06-26묻고답하기-

교회 개혁이란 하나님 원하시는 말씀에 입각한 교회를 만드는 일 김병구 2003-06-26 22:54:05, 조회 : 136, 추천 : 11
이근호 님께서 교회개혁이란 말도 안된다고 하시는 데, 그럼 님이 네세우신 "개혁장로회"란 명칭 가운데서 "개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re] 교회 개혁이란 하나님 원하시는 말씀에 입각한 교회를 만드는 일 이근호 2003-06-27 06:50:40, 조회 : 172, 추천 : 12
>'개혁'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노회 세칙들을 참조하면서 잠시 삽입되어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개혁'이라는 용어를 사용 하던 아니하던 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개혁'이란 '과정'을 표현하는 단어에 멈춰야 하지 결코 '개혁'이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겁니다.
만약 어떤 이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 자체를 보고서 "개혁 하고 있네"라고 묘사한다고해서 그것이 틀린 표현이라고 말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개혁합시다"라고 나서는 것은 복음 전파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목사의 신분으로 사회 복지 사업이나 환경 운동에 열심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압니다. 최일도 씨도 그 중 한사람이요, 김 진홍씨도 그런 분 중에 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데 그 누가 감히 비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가지고 복음 전파를 하는 목사라는데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겁니다. 목사란 복음 전파가 우선되어야지 그런 사회 사업이 우선되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통해, 사회 사업이나 환경 운동이 마치 '천국의 일'이라도 되는 양, 왜곡된 복음을 전파하는 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명칭이야 어쨌든, 교회 내의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이인 정치 집단으로 변모한 것에 대해서 거부 운동을 벌리는 것은 자유와 질서를 추구하는 인간의본능적 심성에 비추어볼 때 마땅한 공격해야 하고 제 자리를 찾도록 시도해야 될 일이라고 봅니다. 그 누구라도 그런 반응을 가지는 것이 양심있는 자들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런 자연스러운 반발이 결코 '하나님의 일'은 아니다는 말입니다. '기도회'를 열 가치도 없는 일입니다. 그냥 추진하면 될 일입니다. 어차피 복음하고 무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된 내용의 범위 안에서만 일하시지, 언약 밖의 일은 절대로 안하시는 분입니다.
그 언약이란, 예수님의 피와 살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사람이 밥먹고 화장실에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말릴 수가 없는 일입니다. 교회 개혁을 원하는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일'과 연계시키면 안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re] 교회 개혁이란 하나님 원하시는 말씀에 입각한 교회를 만드는 일 김병구 2003-06-28 05:31:28, 조회 : 113, 추천 : 11
이근호 목사님,
한국의 기성 교단이 모두 이단이라는 목사님 생각에 따르면, 이단이 아닌 기성 교단이 전 세계 어디에 있나요?
“개혁합시다”라고 나서는 것은 복음 전파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개혁은 교회의 영적순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입각한 영적 순결을 갖춘 교회여야 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게 되고 성령님의 동역하심으로 온전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 언약이란, 예수님의 피와 살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고 말씀하시는데 부연해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중에 성경 말씀의 위치와 가치는 무엇입니까?
==========================================================================[re] 교회 개혁이란 하나님 원하시는 말씀에 입각한 교회를 만드는 일 이근호 2003-06-28 06:05:33, 조회 : 141, 추천 : 14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의 몸'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에베소서 4장)따라서 이단성 발상이란, 이 '그리스도의 몸'을 깨는 것과 연관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의 두 가지의 발상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 밖의 없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이기에 기존이 교단 가운데서 괜찮은 교단 하나가 등장해서 그 괜찮은 교단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자" 라는 식의 발상,
아니면,
2. 하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몸'은 예수님만이 갖고 게시는 복음적 능력의 임의적 활동에 의해서 우발성과 우연성으로 그 영역을 나타낸다는 발상.
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언약은 어떤 식으로 성취 될까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1. 언약은 반드시 비언약을 정죄하고 공격하면서 나타난다. 그냥 곱게 나타난 적이 없다. (거룩한 여호와 전쟁)
2. 언약 성취는 일방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의 능력으로만 가능하지 결코 인간의 도움이나 협조가 불필요하다.
3. 인간들은 나름대로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예를 들면, 교회 개혁하기, 기도하기, 전도하기, 헌금하기, 예배드리기, 찬양하기, 구제하기, 봉사하기, 교단이나 노회 만들기, 교회 만들기, 설교하기, 신학교 만들기, 등 등
4. 인간들은 반드시 자신이 한 활동의 정당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성취, 언약 성취에 도움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5. 하나님의 언약 성취는 이런 인간들의 의와 충돌하면서, 메시야의 피와 살이라는 십자가의 고통과 탄식의 모습으로 증거물을 지상에 남긴다.
6. 성도는, 위의 모든 과정을 성령의 임재와 가르침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며, 평생을 살면서 회개의 연속으로 지내게 된다. 이것이 회개의 합당한 삶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활동이 아무런 대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거론했겠습니까?그들은 나름대로, 자기 절제, 자기 경건, 자기 관리, 자기 반성, 자기 순결성 유지, 더러운 일에 참여 안하기, 같은 소극적 행동도 병행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회개라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달성(말씀 성취)에 자신들의 행동이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여김으로서, 예수님 독자적 공로성을 인정치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언약은 예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뿐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성도의 면류관도 그분에게 반납됩니다.(요한계시록 4장)성경 말씀의 가치란, 인간의 골수와 내면을 쪼개면서 오직 모든 공적을 주의 이름에 두는데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re] 교회 개혁이란 하나님 원하시는 말씀에 입각한 교회를 만드는 일 김병구 2003-07-01 04:31:09, 조회 : 69, 추천 : 13
저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은 모두 이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 교회 개혁이란 하나님 원하시는 말씀에 입각한 교회를 만드는 일 이근호 2003-07-01 05:59:29, 조회 : 88, 추천 : 12
>성경에 보면, 악마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약 2:19), 악마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합니다.(마 8:29) 그리고 악마의 일꾼은 항시 자신을 사도로, 광명한 천사의 일꾼으로 위장합니다.(고후 11:13) 거짓 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고 양을 노략질 할 목적으로 교회에 등장합니다.(마 7:15) 그리고 이들은 입술로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나, 주 예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 잇속과 배를 채우는데 급급하여 교묘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을 끌어 당깁니다.(롬 16:18)귀하께서는 기존 교회에서 배우시기를, 이단과 행실이 옳지 못한 목회자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식으로 배운 것 같은데, 항상 우리 주님의 입장에서 보셔야 합니다. 그런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어디까지나 악마와의 싸움입니다. 악마의 종들은 다 한통속입니다. 교리적으로 이단이 되었던, 교리는 맞는데 행실면에 있어 자기 잇속을 채우는 목회자든 상관없이 적 그리스도에게 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악마에게 사주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구분이 그리스도에게 하등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요한계시록 2:2에 보면, '자칭 사도'라 하는 자의 정체를 드러낸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교리적으로 약점을 보이겠습니까? 사도신경 고백 정도가 아니라 건전한 정통 보수 교단에 속해 있고, 개혁주의를 운운하고, 삼위일체를 철석같이 믿고 가르치고, 한국 교회의 썩음과 부패상을 잘 드러내어서 적절하게 비판하고, 성령의 열매있는 삶을 강조하고, 심지어 십자가 중심으로, 언약 중심 주의로를 표방한다고해서 주님 보시기에 참된 목회자로 간주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리적 문제를 놓고 이단이냐 아니냐는 따지는 것은 천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별 의미없는 이야기입니다. 성령을 받은 목회자는, 그냥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아니라,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고'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마 16:24) '자기를 부인함'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 사탄의 일을 하는 자입니다.(마 16:23)'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자기 소유의 것을 포기한다는 겁니다. 자기 소유의 교회, 자기 소유의 교단, 자기 소유의 가정, 자기 소유의 재산, 자기 소유의 목숨, 자기 명예, 자기를 위한 한평생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씀드려서, '자기 이름'에 대한 포기에 그 자리에 '주의 이름'을 등장시키는 겁니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식 말씀드리면, '자기 행함의 의'를 인정치 않고 오직 예수님의 의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마의 사주를 받는 자들은, 전도나 설교나 그 어떤 종교 행위에서 '오직 그리스도만', '오직 십자가만', 심지어 '오직 자기 부인'을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악마가 뭔들 흉내내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는 늘 회개를 유발시킵니다. 성령님의 임무는 세상을 책망하고 정죄하는 일이 그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요 16:8-11) 이것은 성도들의 자기 결정과, 자기 판단과 자기 선택에 대한 정당성을 주지않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에만 전적으로 연결시키겠다는 성령님의 의지입니다.
귀하께서는 한국의 교인들이 무속신앙과 유교 가족주의 때문에 목사들을 하늘같이 섬긴다고 하셨는데, 반대로 목사들을 동등하게 내지는, 심지어 목사를 깔보면서 교회 다닌다 할지라도 결과는 '개인주의'적 모습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있는 성도는, 목사가 외치는 복음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만을 외치지 않고, 목사가, 교회를 키우기 위해 복음을 전한다든지, 소위 신학자라고 자처하는 자는 교수 자리에서 연연하기 위한 술책으로 주님의 사랑을 열강하는 것을 보고 배후의 악마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자세는 목사의 성직자다운 개인적인 인격이나 생활 중심으로 참 교회를 재구성해서는 아니된다는 뜻입니다. 오직 복음 중심으로 참 그리스도의 교회냐 아니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 손성식 2003-06-30 00:14:57, 조회 : 102, 추천 : 12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저자: 이 필찬출판사: 성서유니온(서울:2001)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특별한 안목이 요구되는데, 이는 그것이 묵시문학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다양한 해석의 결과를 낳게됐다. 그 내용을 크게 본다면 하나는 세대주의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주의 해석이다. 전자는 계시록을 시대적인 순서로 보자는 것이고 후자는 계시록을 개괄된 구원사건이 반복되면서 여러면들이 구체화되고 있음(단순한 사건 전개 방법이 아닌 점층적 반복에 의한 표현 기법)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이는 계시록의 묵시문학의 성격을 받아들임으로 나온 해석이다. 그렇다면 우선 계시록의 '묵시'적 성격을 파악해보자. 잘 알다시피 성경은 종말론적인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격을 달리하는 두 가지 맥락이 있는데, 하나는 예언자적 종말론이고 다른 하나는 묵시적 종말론이다. 예언자적 종말론과 묵시적 종말론은 동일한 내용과 차이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우선 동일한 점은 앞으로 다가 올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이점은 그 사건을 다루는 차이인데, 예언적 종말론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역사를 인정하면서 앞으로 다가오는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 반면에 묵시적 종말론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다가오시는 '인자'에게 다가올 사건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예언자적 종말론은 역사를 인정하기 때문에 연속성이 존재한다. 즉 앞으로 다가 올 사건도 이스라엘 역사를 새로 되새기고 부흥시키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다윗의 아들', '이새의 씨',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등의 표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묵시적 종말론은 역사와 불연속이다. 그러므로 묵시적 종말론에서 등장하는 '인자'란 역사를 부정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분이다. 이 부분의 논의를 좀 더 끌고 가 본다면 다음과 같다. 묵시적 존재가 역사속에 침투 하시므로 묵시의 세계가 현재 존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죽임당하는 모습'으로 존속한다. 그러므로 묵시적 표현들 속에서 [죽임당하신 어린양의 승리]라는 숨겨진 의미들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중요한 차이점은 예언자적 종말론이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묵시적 종말론은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직접 보여 주시는 걸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움 때문에 그렇다. 즉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엄하기 때문에 보여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환상과 상징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무나 장엄해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동이다. 이것을 기초로해서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교회'로 보고 있다. 즉 교회를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추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 평가 @ 본서는 계시록을 해석하기 위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의 사건 전개방법이 일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점층적 반복 기법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은 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본서를 통해서 묵시적 공동체인 교회가 왜 역사(노아언약)위에 존속하고 있는지를 알게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계시록의 주제를 '희생당하신 어린양의 승리'가 일구어낸 완벽성으로 추적해가는 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십자가 상의 강도와 침례 원종석 2003-06-30 13:56:57, 조회 : 131, 추천 : 11
‘십자가상의 강도’의 구원(?)과 침례
많은 사람들은 “침례 받지 않고도 구원이 된다”고 가르침을 받고, 또 그렇게들 믿고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침례를 받음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교훈(교리)을 가르치신 적이 없으며, 그런 근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각자의 <교파에 속한 교리>의 개념을 생각에 못 박아 놓고, 몇몇 성경 구절을 교리에 맞추려 한다면 다른 “말씀”을 파묻어 버리게 됩니다.막 16:15,16절로 <침례와 구원의 연결 됨>을 보고, 읽고도 이에 대한 변론을 고집한다면 “말씀”에 대한 완악함이되고, 혼미한 영에 끌려가게 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목 말라있는 사람은 “족보와 신화가 아닌 변론”으로 하나님과 변론을 해야만 됩니다.
막16:15,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을 전파하라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십자가상의 어느 한 강도와 침례>이 이야기는 구약(오래된 약속)과 신약(새로운 약속) “시대 구분”을 혼돈하는 분들의 강팍함으로 시작되는 슬픔입니다. 오래된 약속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로 인간세계로 피 가진 사람으로 오시어, 인간구원을 이르시겠다는 <오랜 시대를 통한 약속>이며, 그 약속을 이루신 것이 “하나님 아들 예수의 탄생”입니다. 물론 다른 약속도 많이 하셨지만 Main Line은 아니며, 많은 율법을 순종해야하는 오랜 기간동안 소위 <구약시대>가 지속 돼 왔습니다.<예수의 탄생은 구약의 성취> 일 뿐, 분명히 <신약시대>는 아닙니다.하나님의 아들이 생모(마리아)로부터 태어나 어머님의 젖을 먹고 있을 때 그가 우리에게 무슨 새로운 약속을 했나요??? 장성한 후에도 그는 입을 다물고 한 인간으로써 할 일을 할 뿐. 30세 정도가 될 때까지는 아무 약속도 한 것이 없으며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으니 어떠한 새로운 약속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탄생 후 30년이 지나도 구약시대입니다. (‘구약시대’라는 많은 성경구절의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율법을 지키셨고 구약 법을 스스로 지켜 “다 이루심”. 예수님은 구약 법에 의하여 죽으심)그가 30세 정도 되었을 때 비로써 요단 강에서 침례 요한으로 부터 “회개의 물 침례”를 받으며, 물에서 올라 올 때 성령이 그에게 임함으로부터 그의 공생애를 위한 40일 간의 금식 기도가 시작 된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때까지도 하나님은 아들을 통한 새 약속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구약시대입니다. 물론 성전에서 제사도 행했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도, 절기도 지키며, 월삭이나 안식일도, 대 제사장 제도도 있었고, 구약시대의 모든 것이 그대로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입을 열어 많은 새로운 약속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많은 것들을---여러 약속들 중에는 즉시부터 약속의 효력이 발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크고 중요하며 <영혼 구원에 관한 약속>은 이행 시기가 아니었으며, 모든 인간을 위한 <죄 사함의 약속>은 십자가 처형당하기 전, 그 날 저녁에 하셨지만(시간상의 문제 착각 마시길) 예수님이 피 흘려 죽기 전에는 “죄 사함의 방법”을 우리가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처형당한 것은 <구약법의 유월절. “하나님의 어린 양”을 잡는 법에 의하여 유대인과 대 제사장에 의하여 짐승 “하나님의 어린 양” 대신 사람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를 양 잡는 시간에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니> 이는 성경적으로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침례와 구원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님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이 되고, 장사되고, 부활까지 하셨지만--- 그러나 아직도 구약 시대가 계속 됩니다.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많은 것을 가르치시며, 또 재 약속을 하셨죠.“성령을 받으라 !!” (명령 임)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요 20: 22,23)라고 명령하십니다.(이 말씀과 직결되는 <마 28:19와 행 2:38>로 보면 )예수님은 부활 40일 후, 승천하기 바로 전에 다음의 명령을 하셨습니다.“아버지의 이름이며, 아들의 이름이고, 성령의 이름”이 되는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단수)으로 침례를 주라”고---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예수”>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라)>※※ < 아버지의 이름이 되면서, 아들의 이름이 되고, 성령의 이름이 되는 그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름으로 침례를 주로라>로---->막16:15,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을 전파하라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위의 말씀에서의 “침례”는 <물침례와 성령침례> 둘 다를 말합니다.
침례를 받으라(구원받기 위 해 물 침례 성령침례)는 명령은 십자가의 강도가 죽고 난 후 43일 후에야 예수님이 명하셨으며(기록상으로, 즉 성문화된) 그 강도는 “침례를 받으라”는 명령은 듣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는, 또한 침례에 대한 새로운 약속과는 무관한 구약시대 사람입니다. 죄 사함의 물 침례와 내 속의 존재가 다시 사는(새 생명=부활) 성령침례는 부활 50일 째되는(50년마다 오는 희년과 연결 “자유케 하는 날”과 관련) 오순절 날에 시작됩니다. 바로 오순절 전 날 까지도 <구약시대>였는데 오순절 날 성령임재와 함께 새 약속(물 침례와 성령침례=죄 사함과 새 생명)이 시작되는 <신약시대>가 됩니다.십자가 상의 강도. 그는 구약시대 사람.(이 강도의 구원 문제는 차후 설명 할 기회가 올 것임) 눅23:42,43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이 구원되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드릴 수 있느냐도 문제다. 즉 낙원=하나님 나라 ???
십자가상의 강도는 침례와 전혀 무관한 사람입니다.그러나 오순절 날 이후부터는 침례(성령과 물 침례)받지 않고도 구원이 된다는 말은 “그렇다”는 그 수많은 다른 성경구절들을 사장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하는 ‘언행’이 됩니다. 혹자는 “형편이 되지 않는 노인이 죽기 직전에 구원을 받으면 침례를 받지 않아서 멸망 받아야 합니까?”라고 의문을 제기 합니다.위의 Story에서 그 불상 한 노인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킬 수는 없습니다.만약 그 노인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존재라면 더 젊고 노약하기 전, 스스로 물침례 받기 위해 물가로 갈 것이며, 성령침례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 몸 안으로 영접되는 사건’이니 ‘늙고, 젊고’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아무 때나, 어디서든지 성령침례가 되어 질 것입니다.그러나 물침례 성령침례는 다만 “물과 성령으로의 태어남”일 뿐. 태어난 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함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한가지 덧붙인다면 성경 어디에서도 <침례와 구원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구절을 찾을 수 없습니다. 혹 누구든지 그런 구절이 있으면 제게 보여 주시면 나 자신부터 <침례와 구원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로 다시 고쳐 믿을 것입니다.
==========================================================================[re] 십자가 상의 강도와 침례 이근호 2003-06-30 15:08:09, 조회 : 152, 추천 : 15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구원되는 것을, 마치 인간들이나 교회의 세례 행위로 구원받는 것으로 오인하고 계시는군요.
성경의 중심이 세례에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있습니다.
왜 이런 식으로 복음을 왜곡하게 될까요?
그것은, 보이는 것을 통해서 믿음의 실체에 접근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소망은 보이는 형식은 다져질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복음의 중심이나 신앙의 본질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의 성경 귀절을 통해서 귀하의 믿음을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7-18)
교회의 세례 행위는 십자가 대신으로 복음의 중심에 낄 수 없습니다.
==========================================================================[re] 성경대로 믿으시길--- 원종석 2003-07-01 22:14:36, 조회 : 98, 추천 : 14
본인은 장로교인이었지만 지금은 장로교도, 침례교도 아닌 성경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님들이 속해 있는 교단 교리는 성경 말씀을 많이 올바르게 믿고있으나 그보다 더 많이 성경말씀을 불신하는 교리 위에 있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님들이 속한 교단 교리로 만 붙들고 타인의 성경적인 글(조직신학적)을 발로 밟는 태도의 글을 삼가 하시길 바랍니다.예수님이 승천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어찌 그렇게도 무시하며(예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불신합니까?“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이란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입니까????아래 성구에서 “침례”라 함은 <물침례, 성령침례> 둘 다를 포함합니다.성령침례(성령 받음) 없이도 성령으로 태어 날 수 있나요?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들어 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요3:1-8)
막16:15,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또 아래성구를 인용하여 구원과 직결되는 침례(물침례, 성령침례)를 불신하는 태도는 무식입니다.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복음 안에는 “회개와 죄사함의 물침례와 새 피조물로의 성령침례”가 들어 있습니다.위의 성구는바울이 복음을 전한 후 <복음을 믿고, 침례>(막16:15,16)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소수에게만 직접 침례를 주었지만 주로 다름 사람(아마도 지역 교회의 인도자들인 장로들이나 집사들)이 침례를 준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그 이유는 17절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바울에 의해서 침례를 주고, 받았고, 침례 자체를 바울이 직접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침례를 주는 자는 누가 주느냐가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본인도 복음을 전한 후 침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침례를 지교회의 집사님이나 장로님들에게 부탁을 하죠.사도 베드로도 행10:48에서 자기 자신이 침례를 주지 않고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에게 “명하여”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했죠.성경에서는 교회의 집사나 장로들이 침례 의식을 행했습니다.“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은 그 이름 “예수”라는 이름으로 침례(물침례, 성령침례)를 함으로죄사함이 되고, 거듭나게되고,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고, 구원의 표를 받게 되고, 등등이 됩니다.
이근호님의 아래 글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구원되는 것을, 마치 인간들이나 교회의 세례 행위로 구원받는 것으로 오인하고 계시는군요.
성경의 중심이 세례에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있습니다.
침례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방법 입니다. 침례는 사람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라고 주신 구원의 System>입니다.하나님의 “하라, 말라”를 순종하는 것이 <인간들의 행위>라고 무식한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히지 마십시오.“순종”은 행위입니다.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님의 결과는 무엇이 되겠습니까??님이여, 제발 그렇게 가르치는 일을 중단하십시오.거짓 선지자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세례”가 아니고 “침례”입니다. 성경에서 “밥티조”라는 원어 자체가 <잠긴다> 뜻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가를 아시고 싶으시면 고전 15:1-4와 롬 6:1-11까지를 연결하여 조직신학으로 확인하십시오.
==========================================================================[re] 성경대로 믿으시길--- 이근호 2003-07-02 05:58:52, 조회 : 103, 추천 : 12
>귀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17절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바울에 의해서 침례를 주고, 받았고, 침례 자체를 바울이 직접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침례를 주는 자는 누가 주느냐가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궁금했던 것은 귀하께서 '세례 자체'가 '복음에 포함된다고 생각되느냐 아니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세레 자체를 바울이 직접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복음과는 완전히 구분된다는 뜻에서 사도 바울은 세례 자체를 복음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귀하께서 말씀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또 귀하께서는 세례 주는 행위, 세례 받는 행위를 복음에다 집어넣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안에는 회개와 죄사함의 물침례와 새피조물의 성령침례가 들어있습니다"만약 사도 바울이 귀하같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결코 '(물)세례를 주려 함이 아니요'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를 인간의 순종으로 달성하라고 촉구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만약 복음의 결과 문제를 인간의 순종문제로 전환시켜 버리게 되면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단지 물세레를 받지 아니했다는 이유 때문에 천국에서 탈락되는 겁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입니까?'
근본적으로 복음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17에 보면, '하나님의 의'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순종함'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순종함'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의인되는 것은 그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 뿐입니다. 그런데 귀하께서 '세례 받으라'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구원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보기에는 사도 바울의 생각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사도 바울에게 '세례'란 '옷'과 같습니다. '옷'이 흙을 사람 만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해서 '옷'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옷벗고'다녀도 안 죽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옷 입고 다녀야 인간 사회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법입니다. 성경에서 말해는 세례란 '제가 성령을 받았습니다'라는 표시를 하는 것 뿐입니다. 마치 '제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옷입고 다닙니다'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물를 머리에 뿌리던, 욕조에 잠기든, 그것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중요했더라면 성경에 욕조의 크기나 아니면 물에 잡기는 시간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지침서가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중요시한 것은 비복음입니다. 즉 예수님만의 온전한 순종으로 만들어진 복음에다, '인간의 순종함'을 더 보태야 구원된다고 여기는 그런 사이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전력을 다하여 정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었던 그 복음에 딴 것을 끼어넣지 마시기 바랍니다.
==========================================================================[re] 십자가 상의 강도와 침례 이근호 2003-06-30 15:08:09, 조회 : 152, 추천 : 15 [re] [re] 십자가 상의 강도와 침례 남상수 (Homepage) 2003-06-30 16:10:34, 조회 : 144, 추천 : 11
위 글을 올리신 분은 침례파가 분명하긴 하지만 그 신학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그 한계와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밑에 올리신 글들 중에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요란하게 떠들으셨는데 거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이단의 수준과 가까워보입니다. 논자께서는 자유게시판이니까 자유로이 글을 올리는 것인지...? 또한 이곳에 계신 분들이 그런 글을 보고도 왜 아무런 말씀들을 하지 않는 것인지.. 관심이 없으신건지 아니면 아예 떠들던지 말던지 하고 무시를 하고 계신 것인지요? 자유게시판이니까 말이지요.. 아래 원종석 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들에 대해서 어떻게들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놀랍게도 글폼이 상당하신 것 같은데 그정도의 수준으로 그런 글을 쓴다는게 오히려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 교단이나 신학형태가 있는건가요? 혹시 누가 아시는 분들은 견해를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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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