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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탐욕적인 목회관을 비난하면서"를 읽고] 2003-06-03묻고답하기-

"탐욕적인 목회관을 비난하면서"를 읽고 손성식 2003-06-03 00:11:50, 조회 : 230, 추천 : 29
"탐욕적인 목회관을 비난하면서"를 읽고저자: 이 근호 출처: 성경신학과 그 적용 제1권(미출판 간행물)
과연 '목회'란 무엇일까? 성경은 '목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 '목회'는 이런것이다!라고 저자는 외치고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목회'의 원리란 [예수님의 정신으로 목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진리를 싫어하는 죄의 본성으로 인해 항상 무시당해 왔다는 것을 기독교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현대사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즉, 다수결이라는 의사결정이 교회안에서도 진리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저자는 감지하고 있다. 그 동안 기독교는 '교회정치'라는 힘을 통해서 유지되어 왔다. 정통이냐 아니냐, 옳고 그름의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교회정치'의 틀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복음에 대한 관심보다도 교회정치에 더 열심을 내는 것을 보면서 저자는 화가 치민다. 즉, 교회정치에 의해서 복음이 고난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 여기서 질문해보자. '교회정치'의 어떤 부분이 복음을 괴롭히고 있을까? 그 이유는 교회정치라는 제도가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목회자가 문제였다. 즉, 목회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목회의 실패였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항하면서 저자는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복음이란 무엇일까? 우선 구약성경에서 흐르고 있는 사상을 먼저 접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구약을 완성하러 오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면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호와의 일관된 마음은 무엇일까? 저자는 미가서 6장8절로 본다. "이 사람아 여호와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는가? 정의를 실천하는 일, 한결같이 사랑을 행하는 일, 조심스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길밖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이것이 선지자-세례 요한-예수- 바울- 한국교회에 까지 이어지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교회정치 아래서 자신을 부정당하지 못한 무수한 탐욕 덩어리들을 향해 목회성공과 목회를 지탱하려고 하지말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항변한다.
@ 평가 @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정당화 하려는 버릇을 가졌다. 그것은 생각보다 멋진폼을 만든다. 하지만 폼이 멋지다고 해서 항상 좋은 내용이 나오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조직, 교회정치는 지금까지 항상 정당한 명분을 제시하면서 자기 주장을 펼쳐왔지만 그 명분속에서 죽어간 이름 모를 남은자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들은 기적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만 관심있는 사람,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성도이며 목회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란 없다. 단지 기적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성안에서 자신의 죽음만을 경험하고 있을뿐이다.
==========================================================================[re] "탐욕적인 목회관을 비난하면서"를 읽고 이상규 2003-06-04 17:58:31, 조회 : 155, 추천 : 12
마지막으로 끼어들겠습니다.이근호 목사님이쓴 담욕적인 목회관을 비난하면서 라는글의 요약에 동의합니다.그러나 그 글내용으로 이 근호목사을 공격하는것은 맞지않습니다.그 이유는,지난주까지 교회에서 바른복음을 전하셨고 노회의 장점과 단점글과 손목사님과 이 목사님이 계시판에서주고받은 글내용으로 보아서는 아직까지는(?) 변절하신것이 없기 때문입니다.또 지금까지 교회정치(기성교단처럼)하신적도 없고요.그러므로 탐욕적인 목회관을 비난하면서를 쓸때나(조직이라 아니라 조직을 이용한 사람들의 죄성 공박) 지금 노회를만들려고 할때나 신앙적으로 바뀐것이 없습니다.(목회성공도 바라지 않음)그러므로 현시점에서는 준비하려는 노회를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의 교제(장노회) 로 봐주셔으면 좋겠읍니다.그러나 손목사님이 걱정하시는대로 앞으로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장모님도 모르고,시어머니도모르고, 며느리도모릅니다.다만 하나님만 아십니다.만약 이노회가 하나님이 복음위해 쓰실노회이면 노회일(행정 교제,봉사,복음전파)하시면서 다양한 죄성들을발견케하셔서 회개하게하시고 십자가 은혜만 증거케 하실것이고 아니면 손목사님 염려대로 조직과 권력을 지향하고안정된 생업을 위하는 목사 노동조합이되겠죠(물론 노회안에 알곡과 가라지도 있겠지요)그러므로 노회에 참여 안하시더라도 비판을 관심(사랑)으로 바꾸시고 지금까지 노회구성 계획을 사람을 통하여 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노회를 사용하실지 목사님을 보지말고 온전하신 하나님만 편안히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노회가 잘되든지 못되든지 하나님 구원 계획에는 0.000.....1%도 영향을 주지않고 또완전한 공동체는 예수님 오실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 교회(천국)입니다.
두분 목사님의 이번 토론도 성도의 교제라고 생각하며 이런 토론통해서 많는 사람들이 복음을 더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나 다툼으로나 (바울과 바나바) 전파 되는것은 그리스도만....:
##############################################################################################새로 구성되는 신학 교육 체계에 대하여 백현기 (Homepage) 2003-06-05 01:35:51, 조회 : 158, 추천 : 13
안녕하십니까? 처음 인사드립니다.
먼저 새로운 노회 구성해 나가는 목사님들께 감사합니다.
신학 교육 체계에 대하여 의견을 몇자 적어 보고자합니다.작년에 미국 갈보리교회에서 훈련을 받은 한국목사님의 강의 듣고 우연히 신학 훈련 과정과 목사 안수 받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참 올바르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에 그 내용을 적어 봅니다.
1.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이 있는자로 - 개인적인 소명의식있는 자
2. (미국)갈보리교회에서 10명 정도의 성도들과 함께 그룹 지어 교회의 구체적인 활동을 하게 합니다. (성경공부,전도,예배인도,교제,봉사 등등)
3. 그래서 같이 했던 성도가 늘어나고 그 모인 공동체로부터 그 분은 하나님으로 부터 목회자로 부르셨다고 하는 공동체로 부터 인정이 되었지면, 통과된 분에 한하여
4. 3년 동안 신학훈련을 받게 되는데 - 척 스미스목사님 강해설교(창세기-계시록까지)을 듣고 , 자기가 정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면 자기 강해 설교 자료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설교, 경공부를 인도 한다고 합니다.
5. 그 과정이 마치면 노회와 협력하여 지교회에서 목사 안수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훈련 과정이 이번 새로 구성되는 노회의 신학생 훈련과정으로 참조가 되었으면 합니다.감사합나다. 대전에서
##############################################################################################"메트릭스2"를 보고 손성식 2003-06-11 10:44:29, 조회 : 239, 추천 : 13
“메트릭스2”를 보고
현대세계에서 영화란 단지 시간 때우기나, 재미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희망을 담기도 한다. 본 영화가 바로 그런류의 영화다. 즉, 철학의 이미지화이며, 철학이 역동성을 가지고 대중을 향한 케리그마로 화하는 장(場)것이다. 코드화되고 프로그램화 되어 버린 세상에서 인간이 마지막 으로 기대하고 있는 바가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초월(예언)에 기대를 해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능력(선택)에 소망을 가져본다. 본 영화는 인간의 능력(선택)에 손을 들어 주었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다. 어떤 맥락에서 일까? 인간세상은 결코 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주도권이 기계(프로그램)에 넘어갔다고 할지라도 욕망하는 인간편에선 구원의 열망을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규칙적으로 움직일 것 같은 프로그램의 운영시스템에도 생각치 못한 불규칙성 이 출현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욕망안에 숨겨졌던 사랑이라는 얼굴이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가 나를 죽이는 것이 었다면, 타자를 향한 희생은 그냥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었다. 결국 본 영화는 인간에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영화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인간의 욕망이라는 두 얼굴(이기심/희생)로 인해 갈등하고 분열하는 장(場)속에서 참으로 인간을 위한 것은 희생(사랑)이라는 것이다. 본 영화를 어떤 맥락에서 보면 구속사(the story of salvation)라고 볼수도 있다. 모든 인간의 능력을 총동원해서 시뮬레이션 해본 것이다. 그 결과 인간세상을 살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선포해본다. [ 과학속에서도 사랑을 잃지말자고!]
@ 평가 @
과연 인간으로부터 구원이 가능할까? 본 영화는 인간안에 잠재되어 있는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세상은 바로 이것이 죄임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며, 이 때문에 예수님이 희생당하였다는 것을 모른다. 왜일까?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로부터 솟아나는 기적적 은혜에 모든 기대를 걸어본다. ############################################################################################## 노회를 하는데 있어 오해 없기를... 이근호 2003-06-17 08:52:25, 조회 : 261, 추천 : 15
예수님이 친히 만들어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을 가지고 인간들이 주물럭거려서 교회보다 더 높은 교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이는 예수님을 정면으로 농락하는 짓거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어떤 식으로 만들었습니까?각자의 마음 속에 성령님을 주셔서, 개인적으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로만 지시받는 관계로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회보다 더 높은 교회라고 자청하고 나서서 그 귀한 성령님의 관계에 삽입해 들어온다면 이것은 주님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고, 훼손하는 것에 해당되는 일일 것입니다. 심지어 목사라고 할지라도 성도 개인의 성령과의 관계를 훼손할 수 없거든 하물며 교회 전체를 통채로 삼키려고, 총회라는 이름으로, 혹은 노회라는 이름으로 덤벼든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벌리는 말세의 배도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이미 진리에 대해서 성경으로 확정된 그 이후의 시대입니다. 진리란, 성령께서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서만 계시하십니다. 노회나 총회의 결의로 진리를 결정짓는 시대가 아닙니다. 따라서 천주교처럼 진리나 복음 문제에 있어 총회나 노회의 임무는 몫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성령님은 노시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구원의 일은 인간이 주체자가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인간들이 노회만들고 총회만든다고 그것이 주의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일은 성령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택한 자의 각자의 마음 속에 일하십니다. 이 성령님의 일을 대신할 또 다른 기관이나 조직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나 성도는 이 일을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나 교회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마음먹기 시작하면 꼭 따라붙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발전'이나 '번영'을 통한 '안정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 자체가 결국에는 주님과의 '첫 사랑'의 가치를 잃게 합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된다는 식으로, 예수님만 사모하는 자에서 교회나 노회를 사모하는 자로 바뀌었으면서도 남들에게는 마치 신앙이 더 우월한 것처럼 으시대기 싶상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 어떤 경우라도 교회보다 더 위에 설 수 있는 단체나 조직은 저는 믿지 않습니다.
자 그러니까, 자기 교회를 절대화하자는 이야기입니까? 자기 교회가 우주적인 교회를 대표하고, 또 대신하고, 또 모델화될 수 있는 이상적인 교회라도 된단 말입니까? 아마 주님이 보시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다른 교회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히 교회의 모습니다. "우리 교회 바깥의 교회는 다 썩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 밖으로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태도가 과연 성경에 나오는 우주적 교회의 모습일까요?
지금은 다른 교회에 다니지만 얼마든지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성도를 주님께서 친히 심어주었다고 한다면 누가 감히 그 주님의 하시는 일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분들과 교제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울 수만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지체의 폭을 넓히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몸의 모습이 아닐까요? 끝으로 말씀드려서, 주님께서 교제를 확대시키는 이유는, 서로와 서로가 관심과 교제 가운데서 각자 자신들이 얼마나 부족하고 , 좁은 식견을 가졌으며, 자신이 가진 신학이 다소 제한한 입장에 있음을 깨닫고 회개하기 위한 기회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결코 주님 이외에 그 어떤 자에게 지배받으라고 교제나 봉사의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란, 십자가 지신 분 이외에 그 어떤 자에게는 최후의 지시나 지배를 받아서는 아니됩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따라서 자기 교회의 절대성를 유지하는 것으로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에 봉사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부족을 이제는 폭넓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시고 하나의 복음을 위하여 봉사의 모임에 주저없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회 진척 상황: 정관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세부규칙(세칙)도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노회 선포식은 6월 30일이나 아니면 7월 1일이 될 것입니다. 확정날짜와 전관도 세부규칙 모두 이 크로스빌리지 게시판을 통해 완전 공개하여 누구든지 성령께서 판단하시는 그 판단력에 일임하고 싶습니다. 노회이름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노회선포식(혹은 '노회설립식')이 열리는 그 날은 임원 선출 및 정관 확정 세칙 확정 및 지금까지의 준비사항과 앞으로 봉사 사항에 대해서 의견하고 결의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번의 시작하려는 노회는 결코 개교회를 지배, 간섭, 개입, 통제, 명령 하려는 노회가 아니라 봉사에서 시작해서 봉사로 끝납니다. ############################################################################################## "예수님을 배반하는 교회내의 움직임"을 읽고 손성식 2003-06-20 10:57:47, 조회 : 189, 추천 : 13
“예수님을 배반하는 교회내의 움직임”을 읽고저자: 이 근호출처: 성경신학과 그 적용 제4권(미 출판 간행물)
항상 예수님에게만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현실교회는 어떤 얼굴일까? 과연 현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으로써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저자는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자화상(自畵像)에 대해서 몸을 부르르 떨어본다. ‘사람이 몇 명모입니까?’ ‘집사가 몇 명입니까?’ ‘재정이 얼마 입니까?’ ‘우리 목사님이 최고예요.’ ‘우리교회는 얼마나 멋진지 몰라요.’ ‘명예권사 임직을 위해서 기백만원 냈어요.’ ‘우리교회는 땅 이천평 샀어요.’ ‘좋은 노회 한번 해봅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서 자행되고 있는 적대행위들이 우매한 대중들 속에서 보편화되고 있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외쳐본다. “예수님만 자랑하는 이들이 교회 아니냐구!” 저자가 보기에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곳에 한 눈이 팔려 있다면 그 모임을 교회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친목단체로서 동호회나 서클로 볼 수 밖에 없단다. 한편으로 저자는 오늘날 현실교회 안에서 솟구쳐서 터져 나오는 긴 한숨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다. 교회라는 간판이 걸려있어서 가 보았는데, 설교자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장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터져 나오는 묵시적 실존이 역사 속에서 경험하는 아픔을 보고있는 것같다. 교회의 존재 유무는 조직체의 존재유무와 상관없으며, 오직 메시야적 사명(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것)의 현실화와 관련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을 쳐다보지 않는다면 교회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배반’이다. 그러므로 ‘배반’이란 교회라는 장(場)안에서 예수님이 놀이개감으로 전락해 버리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다. 확실히 가롯유다의 역사는 교회 밖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탄생시키는 진통 역할을 하는 것 같다.
@ 평가 @
교회가 예수님의 불가시성을 참아내지 못하고 스스로 자립하고자 할 때 ‘배반’의 움직임이 가시화된다. 그러므로 교회사란 예수님을 배반했던 가롯유다의 물결과 그 가운데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건들의 장(場)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란 무미건조한 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반의 역사 속에서 기적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 [re] "예수님을 배반하는 교회내의 움직임"을 읽고 이근호 2003-06-20 20:14:04, 조회 : 155, 추천 : 13
'좋은 노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있는 노회가 구체화될 뿐입니다. '좋은 노회'를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고방식은, '좋은' 예수님을 대신할 가능성이 있기에 예수님에 대해서 ' 배반적 인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re] "예수님을 배반하는 교회내의 움직임"을 읽고 이상규 2003-06-21 14:37:45, 조회 : 143, 추천 : 10
>안끼어 들려고했는데, 약속을 못지키겠습니다.손목사님께서, 오해하고 관념적으로 알고있는 신학들을 3번씩이나 성령님께서 구체적으로 선택된자들을 통해서 어떻게 알하시는지를 설명드렸는데 또 곡해하고 글을 쓴것을 보니
한때 젋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던 말귀를 못알아듣는 사람을 사오정이라 부르는데 목사님 별명을 사오정이라고 지어야 될것같습니다.손목사님. 이근호 목사님이 쓴 (684노회를 하는데 오해없기를) 다시한번 천천히 읽고말귀를 알아들으시고 오해를 푸셨으면 합니다.그리고 신학과 복음을 잘 구별못하시는것 같은데 아시는데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요즈음 정치적 용어로 쓰는제 질문코드에 맞춰서 대답해주시기바랍나다.(다른 목사님도 설명부탁드립니다.)
개인생각신학과 복음의 차이점(예)지금까지 손목사님이 신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노회설립을 비판하신것은 (신학)이고비판하시면서, 손목사님이 인간이기에 가질수밖에없는 죄성(자존심,경쟁심,신학논리에 대한 자가만족과 아집,오기등등...)을 보시면서 이런 죄때문에 죽으신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면서,죄와 은혜깨닫게해주신분은 성령님이심을 알고,또이런 믿음은, 창세전에 선택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심을 알고 감사하면서이 사실을 믿는 교회끼리의교제를 장로회로 받아드리는것이복음(복음을 아는자)이라고 생각합니다,##############################################################################################"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읽고 손성식 2003-06-21 19:24:09, 조회 : 140, 추천 : 12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읽고-성경신학적 구약해석법-저자: 그레엄 골즈워디출판사: 성서유니온(서울: 1991)
성경은 해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내야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문제를 하나 제기해 본다. 즉 성경은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 저자는 초보자들을 레슨 하듯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하고자 하지만 이것도 초보자들에게는 쉬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유는 그 동안 성경을 통해서 생각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주일성수하고, 열심히 십일조하고, 목사님이 시키는 데로 살았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이다. 그냥 돈 열심히 벌어서 헌금 많이 하면 목사님이 알아서 잘 먹여주시겠지. 왜냐하면 그것은 목사세계의 몫이니까!. 과연 이러한 사고방식이 말씀을 대하는 신앙인들의 올바른 자세일까? 저자는 no라고 외친다.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말고 자신이 할 일을 하라고. 그리고 저자를 따라서 성경이 어떤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우선 저자가 성경신학이라는 말을 들고 나온 것이 재미있다. 신학이면 신학이지 왜 성경신학인가? 성경신학은 근래에 들어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이전의 교의학이 성경을 개별적인 내용으로 구성하였다면, 성경신학은 계시의 점진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계시의 점진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선 계시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논리적 전개가 필요하다. 신학이란 무엇일까?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제 때문일까? 아니면 학문의 방법 때문일까? 주제 때문이다. 즉 하나님에 관한 것을 다루기 때문에 신학이라고 한다. 신학과 문학, 공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른 모든 학문이 우리의 인식과 지각 내에 있는 것, 즉 유한한 것을 대상으로 한다면 신학은 초월을 다룬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의 원리가 '계시'이다. '계시'란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행위이다. 그리고 '계시'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백과사전 식으로 자신을 나열해서 사람들이 알아서 골라먹는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작정한일을 스스로 이루어내시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가 점진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이 목표를 향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저자가 보기에 하나님의 계시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계시의 진행과 함께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피는 것이 이 책의 주안점이다. 물론 저자의 결론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구약을 성경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저자의 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평가 @
성경 해석의 중심점에 예수 그리스도를 놓고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조금 보충이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초점이 그냥 '하나님의 다스림'이기보다 '희생당하셨다 승리한 어린양'의 다스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제대로 해석되려면 십자가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즉,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의 행보(行步)에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re]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읽고 이상규 2003-06-22 22:26:40, 조회 : 113, 추천 : 12
>"손목사님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평가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점이 그냥 하나님의 다스림보다는 "희생당하셨다 승리한 어린양의다스림"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마지막부분"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의 행보에 모든 주의를 귀울여야 한다" 는부분은 목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사람의 지혜로 되는것이 아니라 이것을 증거하는분이 계십니다.예수님도 마7: 11과 눅11: 13에서 성령(좋은것)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특히 돌아가시기전 요15장후반부터 16장에서 아버지께 가시면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그분이 하시는일은(예수님 증거. 죄 의 심판에 대해서 세상책망. 예수님 영광 나타냄. 장래일 알림...)이라고 말씀하십니다.이 성령님이 행 2장에서 비로서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신일을 증거하는 일을 시작하십니다.지금 이 성령을 선물로 받은 우리도 그분 역사하심으로우리 속에서 회개케하시고 십자가 은혜만을 자랑하고 증거케(주님의행보만)하는일을 하고 계십니다.이렇게 성령님 사역이 설명되어져야 비로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설명이 완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 알고있는 성령이야기를 하는것은 목사님 글내용들에는 성령님의 사역부분이 빠져있는것같아서목사님의 많은 소양에도 불구하고 복음증거보다는 신학적 설명에 그치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것 같아서성령님을 지금까지 지겹게 이야기했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죄송합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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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 묻고답하기 ["탐욕적인 목회관을 비난하면서"를 읽고] 2003-06-03 - 최고관리자 07-03-13
4,865 묻고답하기 [교회가 없다] 2003-04-29 - 최고관리자 07-03-13
4,864 묻고답하기 [나는 똥입니다.] 2003-04-11 - 최고관리자 07-03-13
4,863 묻고답하기 [마귀적 사고방식으로 마귀 이기기?] 2003-04-04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7-03-13
4,862 묻고답하기 [십자가마을의 논쟁 - 행함 문제] 2006-11-16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861 묻고답하기 [천국을 어떻게 침노하여 빼앗을까?] 2006-11-09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7-03-13
4,860 묻고답하기 [언약과 약속에 대하여] 2006-10-26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59 묻고답하기 [하라와 하지말라 그리고 방종] 2006-10-10 - 최고관리자 07-03-13
4,858 묻고답하기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2006-10-03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7-03-13
4,857 묻고답하기 [심판의 표준에 대해] 2006-09-19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07-03-13
4,856 묻고답하기 [개혁노회의 의미에 대해..] 2006-09-12 미가 최고관리자 07-03-13
4,855 묻고답하기 [성경적 성화론에 대해] 2006-08-31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7-03-13
4,854 묻고답하기 [왜 아브라함의 언약은 민족 단위언약인지] 2006-08-23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853 묻고답하기 [청교도들의 준비론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2006-08-22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852 묻고답하기 [창세기3장22절 우리 중 하나 같이 / 엘로힘] 2006-07-25 창세기 최고관리자 07-03-13
4,851 묻고답하기 [율법폐기론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2006-07-23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850 묻고답하기 [사도신경에 대해서...] 2006-07-19 미가 최고관리자 07-03-13
4,849 묻고답하기 [왜 십자가만으로 죄가 밝혀지나?] 2006-05-12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7-03-13
4,848 묻고답하기 [이광호목사,무엇을 개혁할것인가?] 2006-05-10 미가 최고관리자 07-03-13
4,847 묻고답하기 [신앙생활과 장사] 2006-04-19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07-03-13
4,846 묻고답하기 [야곱? 이스라엘?] 2006-02-09 창세기 최고관리자 07-03-13
4,845 묻고답하기 [사람이 사는 이유와 동기부여] 2005-12-29 미가 최고관리자 07-03-13
4,844 강의 41. 이스라엘의 횡포와 저지 (역대하 28: 8-15)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43 성경 41. 이스라엘의 횡포와 저지 (역대하 28: 8-15)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