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똥입니다.] 2003-04-11
나는 똥입니다. 꽃분아빠 (Homepage) 2003-04-11 15:10:57, 조회 : 133, 추천 : 13
제가 예를 인격적인 존재로 들려고 하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여기서 서울대학교 수학과 다니는 형아는 그동안 형과 동생간의 믿음이 형성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형아가 말하는 것이 지금까지 맞았다는 가정하에서 그렇게 될 듯 합니다.
비인격적인 경우의 예를 들어 볼께요.만약, 3453453245+232345425*523-4235345/74567는 무엇이냐는 문제가 나왔다고 하고 계산기가 옆에 있다는 가정을 해보죠.그럼, 계산기로 위의 식을 계산할 것입니다. 물론 검산도 한다고 하구요. 그 결과에 대하여 종이에 연필로 위의 식을 다시 적어서 검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분명히 맞는 대상에 대하여 분명히 믿는 것. 만약 계산결과가 잘못되었다면 내가 입력을 잘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답이고, 진리라는 것이 믿음으로 다가와야 자기부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럼 그렇게 되기 위하여 설득되어지고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이는 원래의 비유인 서울대학교 형아가 그동안 동생에게 보여준 수학에 대한 실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동안에 준 믿음이 수학에 대한 형아의 언급 혹은 해석 혹은 풀이에 대한 믿음을 준 것입니다. 일단 믿음이 형성되면 일일이 내가 하는 말이 맞다고 할 필요없이 그 수학에 대한 설명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해가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해석 혹은 설명 혹은 풀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구요. 뭐 간혹가다가 틀렸을 수도 있기에 인격적인 비유가 문제가 있긴 하네요.계산기의 경우, 계산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 계산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입력을 잘못하였다고 생각하게 되어 다시 입력해 볼 것입니다. 물론 계산기의 밧데리는 살아 있습니다.(자꾸 이렇게 말하는 것은 또 이런 것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기분나빠 하시지는 마시구요.)
그렇게 되던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그렇게 잘 안됩니다. 그게 나입니다. 그게 바로 죄인의 증거입니다.바울 사도도 이런 종류의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21~25)
이런 나를 보고 역쉬 난... 하고 죄인임을 또 느끼고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입니다.이것이 또 하나의 자기부정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 내가 선을 행할 수 있나???? 역쉬 난 .... 하고 나에 대하여 비참한 죄인으로 고백하는 것이 자기부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득에 대한 말씀을 하셔서 일단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을 설득하실 수 있으신지요?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을 설명하실 수 있으신지요?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설명하실 수 있으신지요? 논리적으로...그리고 사람이 죽지 않고 수백명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설득하고 설명하실 수 있으신지요?
저는 가끔 이런 고백을 합니다.내가 믿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요, 하나님의 증거이다.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을 1+1=2 라는 사실보다 더 확실히 알고, 믿고, 말하고 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그것은 설명이나 설득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라 봅니다. 그 믿음의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간혹 은사를 통하여 혹은 눈에 보이는 기적을 통하여 믿을 수 있게 설득해 주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직접 설득해 주신 것이지요. 믿지 못할 나이기에...
어느 누가 위의 질문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제 생각엔 없는 것 같습니다.저런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믿게 만드신 하나님의 강권이 저에게 미친 것입니다. 그래서 거부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 나온 말씀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된 것이기에 저도 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일치하는 가치관으로 동의하게 됩니다. 한 스승님으로부터 배운 것이기에 일치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부정은 노력해서, 자기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나 싶네요.
아~ 그리고 나는 누구냐는 질문을 하셨는데요.나는 똥입니다. 미쳐버려요. 나는 똥인데 말입니다.
=========================================================================[re] 나는 똥입니다. 로즈마리 2003-04-11 16:32:25, 조회 : 153, 추천 : 18
>제가 예를 인격적인 존재로 들려고 하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여기서 서울대학교 수학과 다니는 형아는 그동안 형과 동생간의 믿음이 형성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형아가 말하는 것이 지금까지 맞았다는 가정하에서 그렇게 될 듯 합니다.
---------------->>저의 말은 '예수께서 내안에 내가 예수안에'라는 것이 실현되지 않을때는 절대 믿음은 형성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형아의 말이 지금까지 맞았다는 가정하에서 형아와 동생간에 신뢰가 형성되는 것으로 비유하셨는데, 그런 믿음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비인격적인 경우의 예를 들어 볼께요.>만약, 3453453245+232345425*523-4235345/74567는 무엇이냐는 문제가 나왔다고 하고 계산기가 옆에 있다는 가정을 해보죠.>그럼, 계산기로 위의 식을 계산할 것입니다. 물론 검산도 한다고 하구요. 그 결과에 대하여 종이에 연필로 위의 식을 다시 적어서 검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분명히 맞는 대상에 대하여 분명히 믿는 것. 만약 계산결과가 잘못되었다면 내가 입력을 잘못하였을 것입니다.
------------>>32541568555555225552552...............23433423425352523/1243355454-234234535345435.......라는 계산(아주 아주 긴)을 슈퍼컴퓨터로 계산해서 답이 나온들 님은 그게 정답인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람의 신뢰는 아무리 그 정답에 대한 경험이 많더라도, 흔들리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답이고, 진리라는 것이 믿음으로 다가와야 자기부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럼 그렇게 되기 위하여 설득되어지고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이는 원래의 비유인 서울대학교 형아가 그동안 동생에게 보여준 수학에 대한 실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동안에 준 믿음이 수학에 대한 형아의 언급 혹은 해석 혹은 풀이에 대한 믿음을 준 것입니다. 일단 믿음이 형성되면 일일이 내가 하는 말이 맞다고 할 필요없이 그 수학에 대한 설명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다시말하지만, 이게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의 내용이겠습니까? 전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해가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해석 혹은 설명 혹은 풀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구요. 뭐 간혹가다가 틀렸을 수도 있기에 인격적인 비유가 문제가 있긴 하네요.---------->>그러네요. 비유함의 한계겠지요.
>계산기의 경우, 계산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 계산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입력을 잘못하였다고 생각하게 되어 다시 입력해 볼 것입니다. 물론 계산기의 밧데리는 살아 있습니다.(자꾸 이렇게 말하는 것은 또 이런 것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기분나빠 하시지는 마시구요.)------------->>그렇게 까지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테니 걱정마세요.
>>그렇게 되던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그렇게 잘 안됩니다. 그게 나입니다. 그게 바로 죄인의 증거입니다.-------------------->>그렇다면 님께서 말한말은 다 거짓이 됩니다. 죄인이 내뱉은 말이니....다 거짓이지요.
>바울 사도도 이런 종류의 말을 한 것 같습니다.>>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21~25)>>이런 나를 보고 역쉬 난... 하고 죄인임을 또 느끼고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입니다.>이것이 또 하나의 자기부정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 내가 선을 행할 수 있나???? 역쉬 난 .... 하고 나에 대하여 비참한 죄인으로 고백하는 것이 자기부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아멘....
>>설득에 대한 말씀을 하셔서 일단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을 설득하실 수 있으신지요?>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을 설명하실 수 있으신지요?>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설명하실 수 있으신지요? 논리적으로...>그리고 사람이 죽지 않고 수백명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설득하고 설명하실 수 있으신지요?------------>>전 남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위의 말이 도저히 설득될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내가 예수를 믿는다하면서 위의 말을(동정녀 탄생,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심 등)을 할때에는 내안에서는 딜레마가 없어야한다는 말입니다.자기 스스로 딜레마에 빠져 이해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믿음'을 갖다부쳐 나는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남에게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거지만, 자기 안에서는 충분히 설득되고 이해되고 전심으로 수긍이 가는 것 그게 믿음의 한 단면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고백을 합니다.>내가 믿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요, 하나님의 증거이다.>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을 1+1=2 라는 사실보다 더 확실히 알고, 믿고, 말하고 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1+1=2라는 사실보다 더 확실히 알고, 믿고, 말하고 있는 것'라는 표현을 님은 쓰셨습니다. 이말의 뜻을 진정으로 아십니까?
>그것은 설명이나 설득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라 봅니다. 그 믿음의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간혹 은사를 통하여 혹은 눈에 보이는 기적을 통하여 믿을 수 있게 설득해 주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직접 설득해 주신 것이지요. 믿지 못할 나이기에...>>어느 누가 위의 질문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제 생각엔 없는 것 같습니다.>저런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믿게 만드신 하나님의 강권이 저에게 미친 것입니다. 그래서 거부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 나온 말씀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된 것이기에 저도 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일치하는 가치관으로 동의하게 됩니다. 한 스승님으로부터 배운 것이기에 일치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자기부정은 노력해서, 자기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나 싶네요.>>아~ 그리고 나는 누구냐는 질문을 하셨는데요.>나는 똥입니다. 미쳐버려요. 나는 똥인데 말입니다.
--------->>'나는 똥이다' '나는 죄인이다'라고 고백하는 그 '고백의 주체'는 누구냐?는 물음에는 답하시지 않으셨군요.자기가 똥인 사람이 자기가 똥인걸 어찌 압니까?죄인인 사람이 어찌 자기가 죄인인줄 압니까?자기가 똥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자기가 똥인줄 아는 법입니다.
=========================================================================[re] 나는 똥입니다. 꽃분아빠 (Homepage) 2003-04-12 10:33:39, 조회 : 105, 추천 : 13
길게 적었다가 다 날렸네요...--;; 짧게 다시 적습니다.
형아는 오류가 있는 인간이니 절대 믿음은 없을 수 밖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르시져.
슈퍼컴퓨터가 계산한 결과라면 믿을만 한데...쩝...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니 더 믿을 수 있구요.
전, 형아를 믿고 계산기를 믿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제가 판단하고 행하는 꼬라지를 아는데,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아는데, 그냥 믿고 따라가는 것이지요.
제가 알기론 법정에서 죄인의 증언이 제일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던데, 죄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다 거짓이라는 말씀엔 동의하기 어렵네요.
확인해 보니 남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군요. 죄송합니다. 좌우간 형아에 대한 믿음이 학벌로 강제로 되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동안의 신뢰의 경험에 근거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딜레마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1+1=2라는 사실보다 더 확실히 알고, 믿고, 말하고 있는 것'라는 표현을 님은 쓰셨습니다. 이말의 뜻을 진정으로 아십니까?라는 질문의 의도 혹은 의미를 잘 모르겠네요...쩝...
매일 죄인임을 다시 깨닫고 발견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귀하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감사할 수밖에 없네요. 분명히 난 죄인인데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되네요. 이것이 선물 즉 은혜이네요.
=========================================================================[re] 나는 똥입니다. 로즈마리 2003-04-12 14:29:30, 조회 : 109, 추천 : 15
>길게 적었다가 다 날렸네요...--;; 짧게 다시 적습니다.>>형아는 오류가 있는 인간이니 절대 믿음은 없을 수 밖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르시져.
-------------->>형아와 하나님이 다르다고 보십니까?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사람들의 상상이나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님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상상하는 하나님 혹은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자기 단체를 대변하는 하나님을 만들죠. 그러면서 자기들은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지요. 심지어, 자기는 죄인이며 오직 하나님만 영광받으실분이시다라고 말하면서 까지....그리고 그렇지 못한 자들(자기가 보는 관점에서)을 사탄이니 뭐니 하며 정죄하면서 까지......사람들은 늘 자기가 이해하는 하나님, 자기가 성경에서 본 하나님을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자기가 이런 부류의 사람인 것을 늘 되돌아 보며 확인하는 삶이 진정한 '자기 부인'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이 심판받아 마땅한 이유는 '자기만은 여기서 늘 예외일거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이유와 그럴싸한 이론으로 무장하면서까지 자기는 예외라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서, '자기도 이런 착각의 삶에서 예외가 아니며 자기도 철저한 죄인이다'라고 말하면서까지 남과 스스로를 속입니다.그러므로 저를 포함해서 모든 인간은 죽을때까지 이런 개연성은 늘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이세상에서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슈퍼컴퓨터가 계산한 결과라면 믿을만 한데...쩝...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니 더 믿을 수 있구요.------------------------>>위의 문장에서 님께서는 슈퍼컴퓨터가 믿지 못할 대상이라고 이미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 형아를 믿고 계산기를 믿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제가 판단하고 행하는 꼬라지를 아는데,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아는데, 그냥 믿고 따라가는 것이지요.>>제가 알기론 법정에서 죄인의 증언이 제일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던데, 죄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다 거짓이라는 말씀엔 동의하기 어렵네요.-------------------------->>그렇죠. 그게 인간 세상과 하나님 나라와의 차이죠.인간 세상에서는 죄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도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절대 용납이 안되는거죠.
>>확인해 보니 남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군요. 죄송합니다. 좌우간 형아에 대한 믿음이 학벌로 강제로 되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동안의 신뢰의 경험에 근거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딜레마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자신을 좀더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자기 속에 얼마나 많은 모순과 딜레마가 숨겨져 있는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 말도 안되는 모순과 딜레마를 부담스러워하기에 믿음과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안심하며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딜레마에 빠지지 않았다하며, 하나님을 이해한다고 합니다.그러나 이 모순과 딜레마를 직면하게될때 그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온전히 의지하게 되는건 아닐까요? 예수님은 이일을 우리 속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칼과 전쟁을 주셨고, 화평보다는 분란과 혼돈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님께서 표현하신 '그동안의 신뢰와 경험이라는 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정말 믿을만하던가요? 역사와 시간 속에서 얻어진 신뢰와 경험이라는 것은 모두 불완전한 것 뿐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1+1=2라는 사실보다 더 확실히 알고, 믿고, 말하고 있는 것'라는 표현을 님은 쓰셨습니다. 이말의 뜻을 진정으로 아십니까?라는 질문의 의도 혹은 의미를 잘 모르겠네요...쩝...
--------------------------------------->>'안다', '믿는다'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예수께서 '나는 아버지를 안다'라는 표현을 하실때 그 '안다'라는 표현과 님께서 '1+1=2라는 사실보다 더 확실히 알고, 믿고, 말하고 있는 것' 에서 혹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아는데, 그냥 믿고 따라가는 것이지요.'에서 사용하신 '안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것과 서로 같습니까?
>>매일 죄인임을 다시 깨닫고 발견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귀하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감사할 수밖에 없네요. 분명히 난 죄인인데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되네요. 이것이 선물 즉 은혜이네요.--------------->>그렇습니다. '내가 죄인이다'라는 그 사실 자체가 감사한 것보다, 내가 죄인이다라는 것을 보게 되고 깨닫게 되고, 내입으로 고백하게 된 그 사실이 감사한 것입니다.
##############################################################################################"야웨의 복을 성취하라"를 읽고 손성식 2003-04-08 11:24:44, 조회 : 205, 추천 : 14
"야웨의 복을 성취하라"를 읽고
저자: 조 호진출판사: 대장간(서울:2000)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복의 내용을 제대로 알 때 신앙생활은 곁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받을려고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써 하나님의 복이 우리의 좁은 소견과 영적인 문외한인 우리들을 책망하시면서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우리가 필요한 내용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참으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게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과연 무엇을 복으로 주실려고 했는가?저자는 성경에서 증거 하는 복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바로 알려 주겠다는 취지에서 본 서를 집필했다. 특별히 모세 오경을 중심으로 밝혀 보겠다는 것이다. 글의 전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복-언약-전쟁의 논리적 관계이다. 과연 복이란 무엇일까? 창세기 1장 28절의 생육-번성-충만, 정복-다스림이다. 이것이 아담-노아-아브라함-모세-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서 신자들에게 마태복음 28장 19절과 사도행전 1장 8절의 제자 삼는 것과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야웨의 복은 주도권을 가진 야웨와 복을 받는 대상자 사이의 언약관계로 자리잡는다. 그러면 저자가 말하는 언약이란 무엇일까? 야웨께서 주도권을 가지신 언약상대자와 쌍방적 협약이다. 이런 언약관계가 언약상대자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것은 야웨의 복을 성취하는 언약전쟁의 구도가 어떤가를 그려주고 있다. 즉, 야웨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언약전쟁을 완성하시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약상대자인 언약전사들도 언약전쟁에 참여하여 언약전쟁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오경에서 언급된 언약전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이미 사탄을 물리치셨지만 성도들은 여전히 언약전사로서 싸워나가야 한다. "제자 삼는 제자로서"
@ 평가 저자가 성경의 중심 되는 복-언약-전쟁의 내용들을 일관된 맥락으로 전개하는 것은 훌륭하다. 또한 야웨의 복을 구원으로보지 않고 제자도로 본 것은 상당히 특색이 있다. 하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창세기 1장 28절로부터 시작되다 보니까 인간의 죄와 대결하시는 전쟁의 성격이 빠지고 말았다. 오히려 창세기 3장 15절부터 시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면 언약전쟁이 단지 창1:28을 성취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드러내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시키시는 점이 핵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텐데. 둘째. 언약이라는 개념이 관계성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개개의 언약상대자들에게 간섭하시며 다가오시는"희생이라는 맥락에서 보여지는 은혜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셋째. 언약전사가 먼저 자신의 내부에서 언약전쟁을 치루고 언약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신자들을 언약전사로 보기 보다 야웨의 일방적 승리로 인해 얻어진 전리품으로 보는 것이어떨까 그래서 찬양할 수 밖에 없는 자들로. 폐일언하고 예수 자체가 복이 아닐까?
=========================================================================[re] 조작목씨의 반박글에 대한 반박을 부탁드립니다. 이근호 2003-04-08 12:10:50, 조회 : 220, 추천 : 13
손성식 목사님
전에 '조각목'씨가 손목사님에게 반박한 글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글은 손목사님께서 박용기 목사님의 신학에 대해서 문제점을 약간 지적한 것에 대한 반박글인 줄 아는데본 글이 거기에 대한 답변 형식입니까?
=========================================================================[re] 조작목씨의 반박글에 대한 반박을 부탁드립니다. 손성식 2003-04-10 12:38:33, 조회 : 167, 추천 : 14
> 예, 같은 맥락입니다.
##############################################################################################손성식님의 평가글에 대해 올라온 답글들.... 장한수 2003-04-13 03:26:26, 조회 : 146, 추천 : 14
포도송이(2003-04-11 22:09:39)
이 책은 제목만 보아도 여전히 한계를 벗지 못한 저자의 관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옮긴이의 평가를 읽어 보면 도무지 무슨 의도인지.... 마치 논문심사라도 하듯 우월한 잣대를 스스로 설정해 놓곤 우리보고 문제제기를 하라는 건지, 아니면 공감을 얻자는 건지, 자기성찰용 독서 노트라면 개인의 메모노트로도 족할텐데 말이지요. 진리를 확증하고 있는 우리에겐 분별이 없는 어두움과 일반인 이야기, 잘 나가는 것 같지만 별 우스운 용어까지 동원해 곁길로 빠지는 부분에 대하여는 이미 우리가 설명할 영역이 아님을 또 한번 깨달을 뿐입니다. 참 진리를 알고 싶은 자들, 보혜사 성령의 사역이 아니고는 절대로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자료외엔 아무 의미가 없는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제가 너무 교만한가요?
유덕상 (2003-04-12 09:24:42)
포도송이님 너무 약하게 말씀하시는군요^&^ 글도아닌 글을 말도 아닌 말로 평가 한것을.....
오캄(2003-04-12 09:52:35)
포도송이님 상대의 글을 평가 하실때에 그 말이 되든 안되든 간에 무엇이 잘못되고 말이 안되며 그럼 본인은 무엇이 올다고 생각하시는지 필역해 주시기 바람니다. 님의 말같은 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다 쓸수 있는 글이지요.
그러나 그 글이 자기의 생각에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는 틀린것 같지만 무엇이 어떻게 틀리고 그럼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꼬집고 자기의 논리를 펴면서 상대와 논증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만약에 서로 논증을 하는데 어떤사람이 포도송이님 같이 말한다면 아마도 그 자리는 썰렁하고말 것입니다. 제발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상대의 의견이 왜 어떻게 틀리고 그럼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필역해 주시기 바람니다.
저는 아직 상대의 글을 비판하거나 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안되지만 가끔 읽어보면 과연 상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정립하고 상대의 의견에 반박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자기가 배운것과 틀리다고 생각하기에 무조건 상대는 잘못됬다고 말하는 것인지 전혀 구분이 안가군요.
사실 몇몇 답변을 보면 자신과 맞는 글이 올라오면 칭찬과 격려의 글이 쏟아지지만 그렇지 않는 글이 올라오면 자신들과 안맞는다고 타부시 하거나 아니면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아에 지워버리는 것과 있더군요.
손성식님도 어떤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시려면 정확한 입장과 질문을 던지시기를 바람니다. 글의 평가보다는 질문을 해 주시기 바람니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오해를 받지 않고 상대도 자신의 의견을 말 해 주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만 너무 길었나. ㅎㅎㅎㅎㅎㅎㅎㅎ
이용만(2003-04-12 11:40:58)
오캄님! 정체가 별로 궁금하지는 않지만 남의 의견에 토를 달기전에 자신의 말투나 글의 내용이나 성격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포도송이님과 원수를 지셨나요. 그리고 말같지도 않다고 생각되는 말에 대하여 왜 그 말이 말이 안되는지를 굳이 설명해야 한다면 그거 참 피곤하겠네요.
자신의 생각과 맞는 글에 대하여 칭찬하고 격려하는 글이 쏟아진다고 하셨는데요. 그럴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생각과 맞는 글이기 때문이 아니라 글 자체가 맞는 말을 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자신들과 안 맞아서 터부시하는것이 아니라 사실상 상대할만한 아무런 가치가 없을만큼 무례하고 일방적인 글이기 때문에 터부시당하는 것입니다.
논쟁이란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때에, 논리적근거와 배경을 가지고 논쟁당사자간의 예의가 지켜질때에 쓰는 말입니다. 말같지도 않은 말장난을 논쟁이라고 하시면 안되겠지요
포도송이(2003-04-12 18:01:31)
우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으로 택한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하는 유일무이한 특별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섭리, 그리고 창세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비밀을 알게 하시며 역사를 통하여 언약하신 내용을 정확무오하게 성취하시어 증명하게 하시는, 택한 자녀에게만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확증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능하신 여호와를 깨달았던들, 그렇게 무지한 말로 무엇은 특색이 있지만 무엇은 아쉽고 무엇은 좀 더 부각시키는 것이 어떨까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하라는 말과 ...되리라는 말은 근본이 아주 다른 출발에서 비롯됩니다. 세계관이 다르다는 이야기지요. 손성식님의 잘못된 평가에 대한 답변은 아래 어느글에서도 목사님께서 답변을 드렸지만 전혀 수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논쟁은 주관과 주관의 싸움입니다.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것이지요. 혈과 육의 싸움이 무익한 것, 논증을 하기가 어려워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목마른 자는 샘을 찾아 헤매기 마련입니다. 목마른 사슴의 갈급한 영혼이라면 몇날 밤을 새서라도 진리를 토론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고 찬양하겠지만...... 부디 진리인식의 주관자이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참 자유를 알게 하는 진리의 세계에 순수한 입문을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창세기 1:26-28은 문화명령인가?"를 읽고 손성식 2003-04-15 14:38:37, 조회 : 195, 추천 : 28
“창세기 1:26-28은 문화명령인가?”를 읽고 -창세기 1:26-28의 종말론적-기독론적 해석-저자: 양 성만출처: [개혁신학 제9집]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94년 6월
창세기 1:26-28을 언약이나 축복으로 보지 않고 문화명령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 해석에 따르면 6일 동안 천지 창조의 일을 거의 마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이 사람에게 문화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주심으로써 마무리하셔따. 이처럼 사람은 문화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으므로 기독교인은 문화참여를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기독교인은 종교 윤리적인 영역의 좁은 한계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문화의 다양한 영역으로 뛰어들어야 하며, 세상의 왜곡된 문화에 대해 기독교적 대안을 낼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은혜는 그 효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19세기 화란의 신칼빈주의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 특별히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도예베르트는 중심인물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상이다. 이에 대하여 본 논문은 기독교 문화운동의 근거로 삼고 있는 창세기 1:26-28이 문화명령이 아니라 종말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한 근거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본 논문의 논리적 전개를 살펴보자. 저자는 창세기 1:26-28과 시편 8편, 그리고 히브리서 2장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시편 8편은 창 1장의 내용을 자신의 시점에서 재기록하고 있고 히브리서는 시 8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비로소 성취되었음을 논증하고 있다. 따라서 히 2장의 시 8편 해석은 창 1장에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논리적 관계를 통해서 증명될 수 있는데 “A=B" 임과 ”B=C"임은 인정하겠는데 “A=C"임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러므로 저자는 창세기 1:26-28은 그리스도에게서 비로소 이루어진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 1:26-28은 그리스도에게만 관련되었을까? 아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속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어떤 모습으로? 일상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며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아가는 삶속에서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외쳐본다. 기독교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 성도의 목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냐고! 그것이 창 1:26-28의 본 뜻이 아니냐고!.
@ 평가 @
본 논문이 창세기 1:26-28을 문화명령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으로 해석한 것은 좀 더 진전된 부분이다. 왜냐하면 창세기 1:27의 하나님 형상에 대한 논의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만유가 통일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참으로 은혜가 왕노릇하게 하는 것일게다. ############################################################################################## "다윗 언약의 형성 과정에 대하여"를 읽고 손성식 2003-04-18 13:45:19, 조회 : 189, 추천 : 13
“다윗 언약의 형성 과정에 대하여”를 읽고저자: 이 근호출처: 성경의 중심사상과 그 전개(미출판 간행물)
언약이란 정형화된 틀(약속과 성취)일 뿐만 아니라 언약상대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자의 생애를 통해서 불쑥 불쑥 솟구쳐 오르는 언약사건이다. 그러므로 언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언약상대자로서 선택된 자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서 하나님의 은혜성이 어떤 내용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 논문은 다윗 언약을 논하고 있다. 다윗 언약의 본질이 무엇일까? 다르게 질문한다면 다윗 언약에서 표현된 “은혜성”의 내용이 무엇일까? 먼저 저자는 두가지 전제를 내세운다. 첫째. 언약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 언약의 내용이 앞으로 전개될 모든 언약의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 언약은 무엇일까? 첫 언약은 첫 인류인 아담의 생애와 관련된다. 즉 아담의 타락과 그 과정에서 약속된 창세기 3:15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3:15은 다윗 언약이 구체적으로 드러낼 사건을 이미 존속(subsister)시키고 있다.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창세기 3:15은 다윗 언약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내용을 드러내게 된다. 더 나아가서 새 언약인 십자가 사건속에서 현실화 되는 것이다. 둘째. 언약에 대한 논의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안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저자가 역사와 계시를 동일하게 볼 것인지, 아니면 역사와 구속사를 나누어서 생각할지에 대한 논의를 제한한다. 자, 이제 저자가 주장하는 다윗 언약의 핵심으로 들어가 보자. 다윗의 생애속에서 다윗 언약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지을 만한 사건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윗에 의해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아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 “우리아 사건”이야 말로 다윗 언약의 핵심이다. 다윗은 우리아의 죽음을 통해서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계신지를 알게 된다. 하나님은 그냥 다윗을 편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윗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의인 우리아가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모습으로 다윗의 죄를 고발하고 있었다. 드디어 다윗은 외친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또한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심령”이라고. 표면적으로 볼 때는 다윗 언약이 성공한 다윗과 관련되는데, 막상 언약의 심층부로 들어가니까 실패한 다윗과 연결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패를 경험한 다윗-죄인임을 고백하며 낮아진 다윗, 그 중심에는 우리아의 희생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 언약의 은혜성은 죄인 다윗의 욕망으로 인해 희생된 우리아의 죽음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보자. 다윗 언약이란 무엇인가? 다윗 언약이란 억울하게 죽은 우리아를 통해서 죄인 다윗을 회개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성이다.
@ 평가 @ 본 논문은 언약사건의 의미를 심도있게 파헤쳤다. 이제까지 언약신학이 표면화된 언어약속에만 관심을 모았다면 저자는 언어행위 심층부에서 솟아오른 하나님의 은혜사건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나님의 은혜란 그냥 말로써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희생당하는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 "다윗 언약의 형성 과정에 대하여"를 읽고 이근호 2003-04-18 15:42:55, 조회 : 199, 추천 : 13
마태복음 1:6에 나오는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에서, 왜 "다윗은 밧세바에게서"라고 적지 않고 있는지를 설명하면 더 분명해 질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족보를 14대-15대-14대로 적어놓고서는 마태복음 1:17에서, 14대-14대-14대로 이해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즉 솔로몬의 위상을 다윗과 밧세바의 육적 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 공란 )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이 등장하기 때문에 14대-14대-14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 )의 의미가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남편없이 아들을 낳은 마리아의 출현은 바로 진정한 다윗 언약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 공란 )의 아내로서 예수님을 잉태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3:15에서 말씀하시는 '여자의 후손'입니다.분명히 마태복음 1장 족보에는 모든 자손들이 '남자의 후손'인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그 '남자의 후손'들은 사실상 '여자의 후손'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구원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즉 언약이란 ( 공란 ) 입니다. 인간의 육의 능력과 무관합니다. 상관없습니다. 언약을 준수한다고 나설 수 밖에 없는 언약민들과 전혀 상관없이 언약 밖의 여인으로 하여금 도리어 언약이 성취과정을 밟아간다는 것은 진짜 언약의 자체 능력이 모든 사건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을 지키겠다는 인간의 능력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그것이 마치 우발적 사건으로 언약이 이 세상에 모습을 보인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유다가 (다말)에게서 자손을 가지고, 살몬은 ( 라합 )에게서 보이스를 낳고, 보아스가 (룻)에게서 자손을 가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에게서'라고 하면서 등장되는 여인들은 모두 이방여인이며, 이것은 마치 하늘 나라에서 볼 때 언약과 무관한 이방여인에 의해서 도리어 언약이 성취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여인이 곧 마태복음 1:16에 나오는 '( 마리아 )에게서'라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해석법, 즉 옛날 언약이 원언약이요 그것의 성취는 후대에 와서 한다는 언약적 해석법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원언약은 예수님이 행하신 새언약에 해당되고, 그 전의 모든 언약들은 이 새언약을 말해주는 모형과 그림자에 해당될 뿐입니다.(히브리서 8장)
유대인들의 역사적 언약관과 예수님 중심의 언약관이 노골적으로 대치되는 장면이 마태복음 22:42-46에 나옵니다. 거기서 에수님은 유대인 학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다윗이 주가 되시는 분이 어떻게 도리어 다윗의 후손이 되겠느냐?고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유대인 학자들은 유구무언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언약대로 메시야가 올 것을 학수고대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언약관을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해못하는 식으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말씀하신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새언약도 이와같은 식이 될 것이다는 점을 미리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이로서 다윗 언약은 철저하게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즉 다윗언약에 대해서 대충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해서 새언약을 알고 메시야를 알아본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그 때 다윗언약의 모형성과 그림자성을 이해한다는 말입니다.누구보다 다윗 언약의 성취를 학수고대하든 유대인 학자들이 예수님을 살해했는데 앞장서고 동조했습니다. 이로서 육과 영은 철저히 분리됩니다. 성령을 받은 자만이 모든 것을 예수님 측면에서 옛 구약을 다시 해석해 들어가는 것입니다.(사도행전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먀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흐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