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적 사고방식으로 마귀 이기기?] 2003-04-04
[마귀적 사고방식으로 마귀 이기기?] 2003-04-04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마귀적 사고방식으로 마귀 이기기?
이근호 2003-04-04 07:15:20, 조회 : 195, 추천 : 12
* 아래의 어느 기사는, 너무나도 잘못된 성경 말씀 지키기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기에 실어 보았습니다.
666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 도리어 마귀를 대적하는 방식인데 이것을 모르고 도리어 악마의 권력과 힘을 의식하는 것으로 마귀를 이겨볼려는 시도로 가엽습니다. 이래가지고 언제 땅의 권세를 이기겠습니까?
십자가의 능력이 모든 저주로부터 해방시켜주었을 이들은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인간들은 방식으로 도피하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니까 더욱더 악마의 밥이 되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 귀절도 이런 의식으로 순종해 보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평생 마귀의 저주에서 못벗어날 것입니다.
<`악마의 숫자' 논란 파병인원 조정>(종합)
(서울=연합뉴스) 박세진기자
공병및 의료지원 부대의 이라크전쟁 파견안이 국 회를 통과해 한시름 놓았던 국방부가 뜻하지 않은 논란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논란은 파병인원이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3장18절(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 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에 언급 돼있는 `666'과 공교롭게 일치한 것이 발단이 됐다.
국방부는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 파병부대 편성안을 공개했다.
편성안에 따르면 공병부대는 장교 56명, 부사관 123명, 병 387명 등 566명으로, 의료지원단은 장교 38명, 부사관 26명, 병 36명 등 100명으로 각각 구성된다.
따라서 전체 파병인원은 천주교나 기독교계에서 요한계시록에 근거해 `악마의 숫자'라고 일컫는 666명이 된다.
`별님'이란 필명의 한 네티즌은 3일 국방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시 나타나는 악의 우두머리 숫자가 666"이라고 지적한 뒤 "왜 하필이면 666명으로 정했는 지 이해가 안된다"며 파병인원 재조정을 촉구했다.
다른 네티즌은 "666은 서양에서는 거의 금기시하는 숫자"라며 "이라크 전쟁이 종교전쟁이라는 지적도 있는 만큼 사소한 문제에도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파병인원 수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자 국방부는 파병예정지가 물이 부족한 지 역인 점을 감안해 샘 파는 기술을 가진 병사 7명을 공병부대에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전체 파병인원은 666명에서 673명으로 늘어 `악마의 숫자' 논란은 해프 닝으로 끝났다.
국방부 당국자는 "파병부대 편성표를 짜놓고 보니 666명이었다"며 "많은 사람들 이 이 숫자에 대해 찜찜해 하는 것이 사실이어서 임무 등을 고려해 파병인원을 조정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에 조정된 인원도 임무에 따라 다소 변경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2일 국회를 통과한 국군 파견동의안은 1개 대대 600명 이내의 건설공병부 대와 100명 이내의 의료지원단을 파병해 미국 및 동맹국 군의 기지운영과 진료지원 활동 등을 펴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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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마귀적 사고방식으로 마귀 이기기?...마구나 사단이나 귀신이 뜬구름처럼 훨훨나라다니나요.
김종명 (Homepage) 2003-04-08 10:47:21, 조회 : 99, 추천 : 18
666이란 숫자를 잘못이해하면 꼭 666이란수가 마귀의 수라고 생각하는 분이적잔게있는 것같습니다.
이말을 잘의미해보면 사람은 사람인데 짐승같은 성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근거한 짐승의 수가 저도 세어보지못했지만방주에 들어간 짐승의수가 666마리나된다고 합니다.
그 말은 그 짐승의 성품으로 사는 사람을 짐승만도못한놈이라고 말하듯 사람다운 사람이아닌 짐승같은 사람이 666이니 세어보라고 했습니다.
이 666은 바코드도 아니고 매매수단으로 사용하는 콤프타도 아닌 짐승같은 성품으로 사는 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글을 쓰려고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능력이라는 부분을 생각해보려고합니다.
목회자나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할것없이 십자가를 능력의 도구처럼 말하고 사용하는데 잘못된 표현인 것같습니다.
십자가가 무슨 요술방망이라도되는 것처럼 우상화시킨 그 뒷감당을 누가 책임질려고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로 마귀가 나갑니까. 귀신이 나갑니까. 우리는 지금 귀신이나 마귀나 사단이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처럼 착각하고있는데 그 마귀와 사단과 귀신에 성품으로 사는자가 666가자라는 것인데 언제부터 그 십자가가 능력으로 나타낫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고 또 묵상하고 연구하여 말하고 설교해야하는데 신학으로 조명한 것이라고 여과없이 말하는 목사들의 입부터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말해주었고 그 십자가는 저주받은 자의 형틀이라고 예수님도 소개했는데 언제부터 누구의 입에서부터 전해졌는지 몰라도 성경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십자가를 바로알면 죄에서 자유할수있고 십자가를 바로 알면 내 영혼이 사는 능력인데 마귀나 귀신을쫏아내는 도구로 사용되고있으니 언제 그 못된 짐승같은 심보를 고치려는지 안탑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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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허상중에서
김종명 (Homepage) 2003-04-06 10:25:08, 조회 : 266, 추천 : 18
기독교의 하싱2번에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과 예수님을 사랑하지않는 사람을 심판하신다고 했는데 좀 이산한부분이있어 건의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어떤 종류로 말하는지 알고싶고요 교회에서 흔하게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허구가 많다고 말하시는데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좀 이해가 안되고 예수님의 어떤 부분을 사랑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 이름을 사랑하라는 것인지 분간이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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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십자가의 허상중에서
이근호 2003-04-06 18:07:46, 조회 : 268, 추천 : 16
>자기를 부인하면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과 대화하다가 결국 떠난 것을 아시지요?. 그의 율법 준수는 전혀 영생얻는데 소용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6:24-2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여기서 유의할 것은, '나(예수님)'를 위하여 제 목숨을 버리는 겁니다. 자기(인간)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잃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사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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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십자가의 허상중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난해를 알고싶습니다.
김종명 (Homepage) 2003-04-08 10:29:17, 조회 : 178, 추천 : 13
자기를 부인하라는 내용은 이해가 될만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부분을 부인하고 어느부분은 인정을 해야 하나요.
저의 상식으로는 내가 나를 부인한다는 것저체가 좀 애매하거든요.
그 이유는 내 육체안에 있는 영혼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바로 내 육을 부인하라는 내용과같은데 내 육을 부인하면 내 영은 살수없거든요.
하나님이 주신 내 육체는 내 영혼을 보관하여 그날에 내 육을 깨뜨리시고 그 안에 영혼을 찾으시는 줄 알고있는데 무조건 나를 부인하라면 내 영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싶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이해하려고하는 것은 바로 내 영혼의때를 위하여 네 육체를 함부로 사용하지말고 선한일에 사용하여 네 영혼이 사는 일에 도모하라는 뜻으로 알고있습니다.
잘못된 이해라면 바로 고쳐 나갈렵니다.
그리고 영혼이 사는 길에데하여 알고싶습니다.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영혼이 사는건지 어떻게해야 진짜 내 영혼이 살아 하나님의 아들이되는 건지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하라고 하는데 정말 예수 이름만 믿으면 예수를 영접하는 건지 이해가 안되고요 진짜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어떤건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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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십자가의 허상중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난해를 알고싶습니다.
이근호 2003-04-08 12:01:25, 조회 : 214, 추천 : 17
성경에서, 사도 바울 편지에서는 요한복음에서 '육'이라는 것은 우리 신체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뜻합니다. 특히 요하복음 3장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고 한 것은 이미 인간의 생물적 조건(심지어 정신까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성과 악한 능력 안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이라는 것도 '영혼'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담은 성령님을 뜻합니다. 거듭나는 것도 성도의 영혼 부분만 다시 태어나는 아니라 성도 자체가 악령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성령의 세력권 속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눈으로 파악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존의 인간의 모든 종교적 능력과 행함의 능력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현 사태를 '말씀으로만 가지고'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하라는 겁니다. 말씀의 세계과 곧 현실 그대로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행위함과 생각과 마음 위주로 살면, 항상 자기 식으로 구원에 이르고자 애를 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에게는 무엇이 현실인고 하니, 자신의 애씀과 투쟁으로 인해 형성되어진 그 현장을 현실 세계로 인정하지 말씀 속의 세계는 현실로 보지 않고 비현실로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아도, 우선 현실인 자기 행함의 세계로부터 그 쪽 예수님 세계로 진입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은 악마의 능력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자력으로 악마의 세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조차 성경이 외치는 현실 상태임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구원되는 걸까요? 성령이 선물로 오게 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알게 되고 동시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곧 참된 현실 세계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 '자기를 부인하게 된 상황'입니다.
성도는, '자기를 부인하라'라는 예수님 말씀이 단순히 명령어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능력이 실린 살아계신 명령으로 다가오게 된 사람입니다. 마치 죽은 나사로보고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했을 때, 죽은 나사로의 판단력과 자유의지에 의해서 다시 살아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그 명령 자체에서 주어지는 말씀의 능력으로 죽은 나사로가 되살아 나온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 곧 말씀의 세계가 현실 그 자체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말씀 자체의 능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육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요,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응 육체와 영혼을 나누어서 육을 죽이고 영혼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천국 간다고 계속 간주할 것입니다. 이것은 육적인 인간들이 기본적으로 소지하고 있는 종교성의 극치라고 보면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구원의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아는 자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해서, 그렇게해서 구원을 얻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나를 영접하라"라는 그 말씀이 그대로 능력이 되어서 임하게 된 자만이 신자요 성도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만약 어떤 사람이 묻기를, "너는 어떻게해서 구원되었느냐?"고 한다면 이렇게 답변하게 됩니다. "저는 저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영접해서 구원되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또 묻기를, "글세 당신이 그 예수라는 분을 영접할 때는 어떤 방식을 사용했냐 말입니다"한다면 그 사람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글쎄 제 행함이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왜 그것을 행함의 차원에서 자꾸만 묻습니다. 그것은 오직 선물로 주신 예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그 어떤 말씀도 우리의 자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령이 함께 임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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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구원이며 은혜라는 용어가 영혼사기치는 용어는 분명 아닌데
김종명 (Homepage) 2003-04-08 18:47:32, 조회 : 208, 추천 : 15
믿음으로 구원에이르고 은혜로 받는 구원이라고 말하는 기독교 목사들의 논리가 너무 황당한것있지요.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깊히 묵상하고 또 연구해야할 사항인데 너무 쉽게 구원이라는 말로 성도들의 귀를 의심하게하여 마음을 부풀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한번 깊히 생각해보지않는 거아닙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아린아이들까지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요.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고 마치 내 죄를 대신하여 죽었으니 나는 어떤죄를 지었다고해도 그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고 그 말을 인용하여 헌금을 거두고 호화호식을 한자가 바로 목사의 세계가 아닌가요.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런 내용이아닌데 자꾸 그런내용인것처럼 오해하여 하루에도 수천번씩 다시 예수를 십자가위에서 우상의 제물을 만드는 사람이 목사가 한 짓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성도의 영혼속에 피값을 목사에게서 찾으실텐데 그감당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에수를 믿는 은헤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시겠는지요.
그런 복음이라면 그 예수가 무엇이 그리 귀하고 귀한분이십니까.
파라리 이웃을 위해 내 한목숨밭혀 살리면 그 죽음이 귀한 죽음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예수룰 영접하여 구원 받았다고하는 목사들의 심보를 보면 그들에게 에수가 없고
은혜를 말하는 목사들 심보속에 은혜는 찾아볼수없고 지금도 성도들의 죄를 발목잡아 물질에 눈이어두워 영혼팔아 교회짓고 사기치는 한국 교회 강단을 질타합니다.
지금도 에수를 영접하라 구언받기위하여 예수를 믿어라하는 교회나 목사들을보면 꼭 사기꾼들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 교회가 거듭나기위하여 먼저 해야할일이라면 신학을 검증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예수가 오시무로 성경이 진리가되어 그 말씀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안에 그 진리가 복음이되어 사람답게 살게하는 참된 교회가 다시 태여나기까지 쓴소리는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지금도 율법을 무시하면서 예수를 믿는 믿음타령하고 은혜를 말하면서 율법을 무시하는 분들이 있는 것같습니다.
이 잘못된 신학으로 구성된 교리복음이 사라지는 날까지 목사님의 건투를 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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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구원이며 은혜라는 용어가 영혼사기치는 용어는 분명 아닌데
이근호 2003-04-08 20:21:08, 조회 : 244, 추천 : 20
구원이란 교회 목사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십니다. 따라서 교회에 대해서 너무 큰 기대나 욕심을 갖지 마시고,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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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건 목사로서의 핑계의 일종같네요
김종명 (Homepage) 2003-04-10 11:13:29, 조회 : 168, 추천 : 14
요즘보면 성경을 잘못이해를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것같아 좀 씁쓸합니다.
바른 성경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실체를 조명해주는 분들이 극히 적어보입니다.
저는 이런생각을 해보곤합니다.
저는 목사님들에게 하나님은 어떤분이시며 그 하나님을 성경에서 어떻게 성도들에게 말해줄수있느냐고 물어보곤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의 실체를 바로알면 먼저 내가보이고 그리고 이웃이보이고 그리고 구원이보인다고 말하고싶습니다.
나를 알지못하면서 나를 알고있는 것처럼 착각에사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같습니다.
그런분들을보면 고집이 있고 혈기가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이것이 진짜인데 그 진짜를 전하기위한 고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마음에 안들거나 자기에게 조언해주는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만 반대되는 경우도 있고요. 복음이라는 말은 하지만 실제로 복음이 무엇인가 알지못하면서 복음 복음하거든요.
성경을 바로 아는 분들은 이런 말 저런말로 변명하지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때문에 그 뜻을 받아 살려고하니 자연적으로 내 고집이 없어지고 혈기가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지거든요.
아무리 강단에서 욕심을 버리고 혈기를 버리라고 하지만 그게쉽게 버려지던가요.
전하는 목사 자신도 버리지못하는 것을 성도에게 말만하는 목사가 너무많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인데요 성경을 모르면 한평생 예수를 믿어도 내 고집한번 버리지못하고
혈기한번 버려 진정한 용서를 위해 살지못하고 믿고 살다죽는 분들이 너무많습니다.
이모두가 목사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자격없는 분들은 까운을 벗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사직하던지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1장 강해도 읽어보았는데 하나님의 뜻은 전혀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성경 매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찾아 전하는 목회를 해야할 것같습니다.
제생각은 창세기일장에서 창조하신 사건 주일학생들도 다알고 믿지않는 사람들까지도 그 창조를 들어 알고있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보아도 그말이 그말이고 더이상 다른말이 필요없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는데 그 뜻은 감사하는 사람이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하게 하나님은 천지를지으셔서 사람에게주셨다고했습니다.
요한3장에서도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했습니다.
그러면 주신분이있다면 받은분도있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증거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창조를 받았다면 당연히 감사한은 사람이되어야하는 것 너무쉽고 당연한 문제인데 무얼그리 연구하고 신학으로 조명하여 성경을 오히려 더 어렵고 힘들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신학박사들입니다.
성경은 너무 쉽고 또 어렵지않는 것인데 연구하고 공부하여 어렵게만들어놓았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감사를 온전히이루기위하여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이있는데 바로 욕심. 불평 이기주의 롬1장에나오는 모든 것을 버린자가 진정한 감사를 할줄아는 사람이라고 설교하면 성도들의 성품이 너무쉽게고쳐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근호 목사에게서 무언가 특이한 사항이있는 것같기에 관심을 가졌는데 몆번의 글을 주고받으면서 생각한 것은 다른 목사보다 다른부분을 아직 발견하지못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자주글을 올리면서 혹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체울수있는 부분이라든지 혹시 이근호 목사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수있는 부분이있다면 서슴없이 논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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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건 목사로서의 핑계의 일종같네요
이근호 2003-04-10 12:23:58, 조회 : 185, 추천 : 13
특별한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감사하는 자신을 증거하자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나 철학자들도 또한 상식선에서 사시는 분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신을 증거하는 것 그 자체를 부인하고 , 오직 의인은 예수님 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받은 사람 뿐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의 주제는, 예수님이 바로 창조주이시며 예수님을 겨냥해서 모든 것을 지음받았음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결코 "내가 이렇게 살자"가 주제가 아닙니다.
귀하께서 주장하시는 바가 그토록 신학자들을 갈등하게 만든 '행함 종교'의 본성입니다.
제발 관심을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맞추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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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책임없는 말은 안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종명 (Homepage) 2003-04-11 09:54:32, 조회 : 147, 추천 : 14
역시 목사님도 그런식으로 일관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목사님이 말씀하시고 전하는 예수를 어떤분으로 말하시는지 알고싶네요.
의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내가 그 예수를 영접했다면 나로 하나님의 뜻인 의를 행하고 이루는 사람이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백한다고 성령을 받는다고 일괄해버리면 도둑놈이나 살인자도 예수를 고백하면 성령을 받는다고 믿고계신다는 뜻이되겠지요. 그러고도 다시 궁색해지거나 자기 필요한대로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말과같습니다.
이런말이있습니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풀어야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말한번 잘못하여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는데 그 상처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상대방의 마음은 상관없이 하나님이 용서해주신다고 하는 말이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이 뭐가 그리 귀하신분이며 거룩하다 하시겠습니까.
진정한 용서를 모르면서 용서를 말하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싸매주거나 풀어주지못하고 죽어도 예수믿고죽었으니 구원받았다고 말하시겠군요.
그런데 성경에보면 호리라도 다 값지못하면 결단코 그곳에서 나올수없다고 말했거든요.
문제는 하나님의 실체를 모르기때문에 그런 오류가있다고봅니다.
정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나에코에 불어넣은 것이무엇인지 알면 문제는 해결되고맙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나 은혜라는 말은 사살 말쟁이말과같고 변명하는 말과같다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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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책임없는 말은 안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근호 2003-04-11 11:46:46, 조회 : 179, 추천 : 15
죄란 타인과의 관계 이전에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본디 죄에서 출생했음을 말해줍니다.
남하고 비교하는 대로 의로움과 죄를 규정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구태어 이 땅이 오신 이유가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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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너무하다고 생각도는군요
김종명 (Homepage) 2003-04-11 19:58:44, 조회 : 136, 추천 : 13
목사님 그런 무책임한 말이어데있습니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때 볼래죄기있는 모습으로 지음받았습니까.
아니잔아요. 죄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부터 죄가 내 마음에서 함께 공존하고있다는 사실을 창4장에서더 말씀하셨네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죄성의 모습을 버리고 처음 창조하신 아담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시고 지금도 에던에서 기다리고있다고 생각하지않습니까.
에덴에 하나님이 불과 화염검으로 막고계시는데 그 이유는 그안에 생명과실이있기때문입니다.
그 생명과실을 하나님은 본래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려고 지금까지 말씀이 육신이되어 눈으로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지만 그 아들을 율법을 오해한 백성들에게 십자가에 죽으시고 오순절 마가다락방을 통하여 성령으로 이제는 각사람의 마음에 성전을 삼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고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헐지못하는 그 심보때문에 세상이 부패하고 더러워졌습니다.
이것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지으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정복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지만 이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오히려 악이 더 충만해지고 죄가더 번성하고 불법이 다스리고잇지않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처음으로 돌아가 진정 감사하는 자의 삶에서 사랑과 용서가 이땅에 충만하기를 바라고계시지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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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너무하다고 생각도는군요
이근호 2003-04-11 20:28:31, 조회 : 136, 추천 : 13
저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귀하께서는 하나님 덕분에 인간이 위대해지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있군요.
유대인들이 구약을 보면서 확신한 하나님이 바로 그런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유대인들의 생각을 반대했고, 또한 유대인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반대하신 것을 차분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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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너무하다고 생각도는군요...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는가요.
김종명 (Homepage) 2003-04-12 10:07:53, 조회 : 120, 추천 : 13
목사님 우리 냉정하게 한번 나를 성경에비추어 내가 나를 판단해보시지요.
내게 진짜 예수의 근본이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예수의 근본을 무어라 표현하며 내가 이땅에서 죽어 갈곳이 어데인지 한번 깊히 묵상하고 기억으로 보시지요.
저도 예수를 영접하라는 말을 묵상하면서 6개월을 허송세월보내면서 터득한 성경입니다.
저도 성경속에 하나님의 실체를 찾아 들어가기를 5년 성경을 수도하면서 내 나름대로 성경을 정리하고있습니다.
예수님에대하여 말씀하신다고했는데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는지 생각해보십시요.
믿기만하라고 하셨나요 너도가소 내 이웃을 위해 살아라 했지요.
이제 서기관과 바리세파 자리에서 내려와서 그 선한 사마리아인의 자리로 돌아가야 성경을 이루겠지요.
언제까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겠습니까 이제는 예수님이 완성하신 성경을 내 안에 성전을 삼아 나와 함께 영원토록 계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인 진실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회복하게해야 하는 목회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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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너무하다고 생각도는군요...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는가요.
이근호 2003-04-12 11:38:42, 조회 : 131, 추천 : 13
세상에는 믿음과 행함, 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이 우리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믿음이 있습니다.(골 1:16)
거기에 비해서, 과거와 견주어 볼 때 내가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예수님을 모델로 삼겠다는 의지로 예수님의 뜻, 하나님을 뜻을 구현하 보겠다는 의지로 나가는 '행함'이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그 열매로 압니다.
믿음은, 오직 예수님의 공로와 의와 속죄하심이 증거되는 반면에,
행함의 열매는, 인류에 대한 봉사, 이웃에 대한 희생, 신께 대한 감사하고 자신의 거룩한 모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5:20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구약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시하고, 기도하고, 구제하고, 십일조했습니다. 그리고 종교가 사회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확산되기를 기도했고 또한 실행에 옮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선행의 능력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것으로 그 사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인간이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그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즉결처분까지 서슴치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도 아니요 천국에 들어갈 의도 되지 못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디서부터 어디서까지 죄가 되는 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도 모르는채 자신의 선행의 가능성만 키워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서 9:31-33의 말씀처럼, 예수님이라는 돌에 부딪쳐 파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서 9:31에 잘 나와있습니다. "의의 법을 쫓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즉 이들은 죽을 때까지, 회개대신, 자기 헛점을 커버하는 변명으로서 신과 이웃에게 다가간 겁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갔노라고" 말입니다.
원 세상에, 가롯 유다처럼 최선을 다해서 산 사람 나와보라고 하세요.
그는 죽을 때에도 자기 양심을 믿고, 양심가로서 스승을 팔아넘긴 그 죄 값을 스스로에게 전가해서(귀하의 속죄론처럼)말씀 목숨을 끊은 정말 장하고 대견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가롯 유다가 악마의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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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너무하다고 생각도는군요...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는가요...참 허전하네요.
김종명 (Homepage) 2003-04-13 07:58:23, 조회 : 115, 추천 : 14
목사의 입에서 믿음과 행함을 불리하다니 자질에 문제가있는 것 아닙니까.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목사님이 말하는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같기도하네요. 생각속에믿는 믿음이 그렇게 둥요한가요.
제가 성경을 통독하면서 느끼고 깨닫은 것은 믿음과 행함은 함께 공존해야 진정한 사랑을 이룰수있다고 생각하고있거든요.
생각이없는 믿음은 맹 신앙이라 하지요 목적없이 딸아가는 사람처럼 허무한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약속이라고 한다면 그 약속을 찾아 가는 행함은 어데로 가야하지요.
약속을 믿습니다 한다고 그 약속이 하늘에서 옵니까 아니면 세월이지나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아 고향을 출발합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에게 약속을 유업으로 주니 이삭은 아버지의 약속을 확인하기위하여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 확인한후 가나안에서 아들 야곱에게 약속을 유산으로 주니 그 유산을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을 살면서 이루고 가나안으로 돌아갑니다.
그 삼부자의 믿음이 생각속에 믿음입니까. 그들은 행함으로 즉 몸으로 부딧혀서 이룬 업적을 누가 감히 빼앗아갈수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하면서도 아직 생각속에 믿음을 주장하고있으니 한심하기만 하군요.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어찌 사랑이라 하며 용서라 할수있겠습니까.
깨닫고 돌이키는 회개가 절실한데 생각속에 믿음때문에 내 삶에 행위적인 죄는 어데서 보상해야하며 어데서 보상 받아야 합니까.
죽어서 천국가서 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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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너무하다고 생각도는군요...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는가요...참 허전하네요.
이근호 2003-04-13 08:36:01, 조회 : 161, 추천 : 14
저는 로마서 9장의 말씀을 분명히 언급해 드렸습니다. "저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함을 의지해서 자빠졌다고 말입니다. "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분명히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고 있으니 사도 바울의 신앙에 문제가 있겠네요?
따라서 귀하의 공격은 곧 사도 바울에 대한 항의가 되고 사도 바울에게 항의한 것은 곧 그 분을 사도로 세우신 예수님에게 공격이 됩니다.
귀하께서는 '믿음과 행위' 공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점을 사도 바울이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이런 점을 모르고 있었겠습니까?
사람의 행위란 그 마음에 품은 것이 자연적으로 그대로 나오게 마련있는데, 어느 인간이 마음 때로 행위 따로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귀하께서 왜 로마서 9장(로마서 뿐만아니라 갈라디아서 전체에서) 사도 바울이 믿음과 행위를 따로 분리시키는지 그 뜻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없고 그 대신 현재 살아가는 자기 행위와 타인의 행위를 비교하는데서 자신의 현 위상을 파악하려는 인간들의 자존심을 제대로 정죄하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의 행위란 사실은 행위로 보여지는 믿음으로서, 그 행위는 그 행위 자체를 겨냥하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 예로서 야고보서 5:8-9에 보면,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사회에 대한 기대보다는 주의 나라와 그 분의 오심을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주님께서 내린 약속으로서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진정 믿으신다면 항상 예수님에 행하시고 행하실 일에 대한 내용이 밖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오직 예수님의 남기신 약속에 모든 소망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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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건 목사로서의 핑계의 일종같네요 김종명 2003/04/10 14 169
[re] [re] 김종명님께
손무성 2003-04-10 15:09:35, 조회 : 165, 추천 : 14
김종명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는데
"성경 매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찾아 전하는 목회를 해야할 것같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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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김종명님께...몰라서뭍는 것인지 알고뭍는 것인지몰라도.
김종명 (Homepage) 2003-04-11 09:40:31, 조회 : 134, 추천 : 13
손무성씨가 자유게시판을 담당하고계시는 분같은데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뭍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싶어서 뭍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의뜻이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하는 일을 창조하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영솽을 들어내고자하는 뜻을 말합니다.
이런질문을 해도될런지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 코에다가 불어넣은 생기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십시요.
그것을 알면 하나님의 뜻을 알수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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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김종명씨 당신은 이호식씨 쪽 사람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네요.
손무성 2003-04-11 11:01:26, 조회 : 150, 추천 : 18
김종명씨 당신이 아래 같은 말을 하는 것 보니...
"의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내가 그 예수를 영접했다면 나로 하나님의 뜻인 의를 행하고 이루는 사람이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영접하면 그 때부터 예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의를 행하는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 아닙니까? 예수는 단지 의인이기에 자신이 영접하고 영접한 후에는 알아서 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된다고 하니 어처구는 소리군요. 이는 이제부터 예수 없어도 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예수 믿는 자가 아니고 이제부터 자신을 믿는 자네요. 자기가 알아서 의인 예수 영접하고 영접한 예수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룰 수 있는 인간되었으니 하나님이네요.
하나님의 뜻과 의는 예수 믿는 자가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의 한 의(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롬3:21>)가 등장하신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완벽히 집행해 낼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십자가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이룰 수 없는 인간을 대신해서 죄 용서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이것을 다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자손 예수님으로만 의'를 이루어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만이 생명있는 자요 구원받은 선택된자임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이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아직도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자가 있다면 마귀에게 속한 자 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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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자기에게 불리하면 누구를 같다붙히는 ....모르는 부분이었다면 알려고 노력해보세요.
김종명 (Homepage) 2003-04-11 19:43:51, 조회 : 113, 추천 : 15
손무성님 말이 너무 지나치신것 아닙니까.
이호석이라는분 알지도못하고 또 안다고해도 그분과는 전혀 상관이없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손무성씨는 무엇때문에 예수를 믿습니까.
구원받고 천국가기위하여 믿습니까.
그러면 구원받고 천국갈일을 해야갈수있지않겠습니까.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은 우리는 할수없기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아들인 예수를 보내주셔서 그분이 나의죄를 대신하여 죽었으니 우리는 그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도받고 천국도간다고 그렇듯하게 영혼을 속여왔고 지금도 속이고있습니다.
손무성님은 죄인 이라고 고백하는데 그 죄인을 어떤수준에서 말하시는 것인지 알수가없네요.
하나님의 뜻을 알지못하여 죄인이라고한다면 그 하나님의뜻을 아들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되어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우리에게 말해주셨는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 말씀을 진리라고 포장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지않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평생 교회에서 죄인이라고 고백하다 죽을수밖에 없겠지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죄에서 자유하고자하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지 허구한날 죄인별미삼아 하나님께 달라고 애원하는 그런 거지가되고말았습니다.
이제는 거지생활에서 탈피하여 말씀이 육신이되어오신 그 예수를 본받아 살때 복음으로 난 그리스도의 냄새와 향기가되어 그날에 내 영혼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갈수있지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신다고 맨날 죄인이라 고백할 것이아니라 이제 장성한 불량만큼 행하는 그리스도인이되어야할 것입니다.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의 표본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했다는 증거는 아들의 형상(모습으로) 돌아가기위한 믿음이며 그 믿음으로 이룬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루게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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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자기에게 불리하면 누구를 같다붙히는 ....모르는 부분이었다면 알려고 노력해보세요.
손무성 2003-04-11 23:21:20, 조회 : 132, 추천 : 13
김종명씨 먼저 님과 이호식와 연관시킨 것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왜 이호식 이단과 비슷하다고 하는가 하면
님께서 예수를 자신이 영접하고 그 다음 '하나님의 뜻과 의'를 님께서 이루겠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리고 님의 답변에 또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고 계시는데...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답변 중 - "그러면 구원받고 천국갈일을 해야갈수있지않겠습니까."
구원 받고 천국 갈일을 님 쪽에서 해야 천국 간다고 하시는데... 천국 갈 일을 인간 쪽에서 따로 할 일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5:22-25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여기 나오는 "사랑,희락,화평,오래참음,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재"는 인간이 만들어낸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안에 거하시며 이루어 내신 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만들어내는 것을 그 어떤 인간도, 정권도, 종, 칼 무기로도 금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라고 하는 것은 예수의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열매를 맺히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열매 맺히게 하는 주체자는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성령으로 행하여 만들어낸 열매가 있다면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체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니 뭘 인간 쪽에서 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분에게 끌려 성령의 열매를 맺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김종명씨께서는 "... 구원받고 천국갈 일을 해야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고 있으니 님은 구원은 예수님께서 하고 성령의 열매는 당신이 책임져 행해야 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선택된 자들의 죄 용서 하시고 구원하시고 난 뒤, 그 다음 분발해서 예수님 닮은 행실을 행하는 인간 되게 하려고(좀 못하는 것 도와서 좋은 행실 행하는 사람 만들기 위해) 성령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 속에서 맺히게 하는 열매 마져도 은혜의 손길이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예수의 사람에게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증거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신 것은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인간으로 판명났다는 것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람을 천국으로 가게하는 것은 천국 갈 일을 해야 가는 것이 아니다. 아래 말씀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15-24)
*예수의 사람의 관심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예수의 사람은 천국 가게됩니다.
이것을 믿는 자만 예수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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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모르는 부분이었다면 알려고 노력해보세요. 이제 그 바리세파 자리에서 내려오시지요.
김종명 (Homepage) 2003-04-12 10:01:04, 조회 : 119, 추천 : 11
님이시여 말을 함부로 하지마세요.
서기관과 바리세파 사람들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자기생각의 잣대에맞추어 십자가에 죽였답니다.
무언가 확인된 사실도없고 또 알지도못하면서 이단이네 삼단이네 당신이 예수님이며 하나님 자리에서 내려오세요.
이단 삼단 판단하실이는 성경안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땅에오셔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있네요.
누가 너의 이웃이되겠느냐고 물었네요.
그때 모인 사람들이 사마라ㅣ아인입니다. 했더니 예수님이 무어라 하셨습니까.
너도가서 이와같이 하라.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그 사랑을 실천하는 이웃을 향해가야합니다.
모르면 겸손하게 알려고 노력도하지않고 무조건 자기에게 않맞는 부분이라고 이단이네 삼단이네 하나님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나님의 역사가 내 심보속에서 이루워지겠지요.
아직도 은혜속에서 헤매고있고 구원타령을 하는 사람들을보면 한심합니다. 아직도 서기관과 바리세파 사람들때문에 하루에도 수천만번 에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고 흘리는 눈물과 피와 땀을 이제는 씻겨드리는 은혜받은 사람이되어야 할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망하는이유는 바로 그 서기관의 자라와 바리세파 자리때문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선한 사마리아인이되려고 노력하면 세상이 달라질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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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모르는 부분이었다면 알려고 노력해보세요. 이제 그 바리세파 자리에서 내려오시지요.
손무성 2003-04-12 12:16:24, 조회 : 113, 추천 : 14
사도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다고 자신이 고백했습니다.
곧 이 말은 예수 만나기 전에는 자기가 책임을 다한 행함에 대해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했고 금식했고, 하나님을 사랑했고,십일조했고,성전제사를 했고,율법을 세분하게 해석해서 평민들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행함에 대해 존경받는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함에 대해 너무나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세리와 같은 부류의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난뒤에 그가 책임을 다하여 행했던 '행함'을 똥으로 여겼습니다.
성경은 두가지 '행함'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바울이 이전에 가졌던 자신이 책임을 다한 행함, 이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 바리새인의 의에 해당되는 행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입니다. 야고보서의 공격대상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왜 행함이 없었는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믿음을 선물로 받은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들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행함(믿음)이 없으면서 '믿음, 믿음'을 말하고 있는 이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행함이 없는 자는 그 믿음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에게 있는(믿음) 행함은 주께서 시켜서 행한 행함이지요.(이것을 갈라디아5장 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
주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에 자신이 최선을 다하며 책임을 다한 행함을 하던 때와 같은 그런 행함을 요구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똥으로 여기고 아브라함에게 있는 주가 왕이시기게 주께서 시키신 것을 행하는 (믿음)행함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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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모르는 부분이었다면 알려고 노력해보세요. 이제 그 바리세파 자리에서 내려오시지요....아직도
김종명 (Homepage) 2003-04-13 07:45:18, 조회 : 109, 추천 : 16
님이시여 왜 그렇게 예수를 믿고있습니까.
사도바울이 말한 자신의 위치를 그렇게밖에 보지못하니 믿는 믿음이라고 또 은혜라고 말할수있습니다.
사도바울이 통탄한 것은 자신이 율법을 오해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부분입니다.
그가 다메색에서 만난 만남은 율법을 잘못알고 배운 자신을 죽도록 미웁고 처량하여 한 말입니다.
사도바울의 역대를 잘 살펴보면 스데반의 죽음에도 가표를 던진 사람이라 했습니다.
자신은 율법대로 스대반을 죽인줄 알았는데 그것은 자신이 율법을 잘못배우고 이해한데서 온 살인이라는 것을 깨닫게되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율법은 정죄하고 판단하여 죽이는 법인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뜻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법이며 예수님은 그 법의 실천으로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한 법을 깨닫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자라했는데 그뜻은 나는 비참한 자라는 표현입니다.
아직도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율리와 도덕을 무시해도 된다고 하는 분이 예외로 많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육을 소유하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율리와 도덕을 무시하면 법이 나를 그냥두지않습니다.
예믿는다고 예외는 될수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런 무식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분들때문에 복음이 자꾸 외곡되어지고있습니다.
지금도 율법은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법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있습니다.
그런데 남을 판단하는 그 율법을 자신의 심보를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나는 매일 죽는다고 고백이나올법도한데
이상하게 기독교에서만 율법은 남을 판단하는 법이라고 무시하면서도 로마서를 설교하고 구약을 설교하니
예수님이 말씀하신데로 남의 눈에 티는 보고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못하는 눈뜬소경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안하지만 내 눈에 들보를 보지못하면 남의 눈에 티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 너무 쉽습니다.
이런 것이 빨리 지워지지않는한 한국 기독교가 망하는 것은 눈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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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모르는 부분이었다면 알려고 노력해보세요. 이제 그 바리세파 자리에서 내려오시지요....아직도
손무성 2003-04-15 13:20:38, 조회 : 101, 추천 : 14
김종명 왈-
"사도바울이 통탄한 것은 자신이 율법을 오해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부분입니다. 그가 다메색에서 만난 만남은 율법을 잘못알고 배운 자신을 죽도록 미웁고 처량하여 한 말입니다. 사도바울의 역대를 잘 살펴보면 스데반의 죽음에도 가표를 던진 사람이라 했습니다. 자신은 율법대로 스대반을 죽인줄 알았는데 그것은 자신이 율법을 잘못배우고 이해한데서 온 살인이라는 것을 깨닫게되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율법은 정죄하고 판단하여 죽이는 법인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뜻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법이며 예수님은 그 법의 실천으로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한 법을 깨닫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자라했는데 그뜻은 나는 비참한 자라는 표현입니다."
김종명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율법을 오해해서 구원 못받았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인 것도 율법을 잘못 해석해서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법을 제대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정죄의 법이 아니라, 그 법의 실천으로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법인 줄 았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김종명씨가 말하는 예수는 이런 예수가 됩니다. 율법을 제대로 실천하도록 도와 주는 예수가 됩니다. 잘못 알고 있는 율법의 법을 실천으로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인간 만들어 주는 예수가 됩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은혜'란 고작 율법을 실천 잘하게 도와 주고 사랑을 실천 잘하는 인간 되게 해주는 은혜(?)의 예수로 전락 하게됩니다. 은혜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은혜로 인정될려면 인간 쪽의 한계성 곧 자신의 저주성을 전적으로 부딪히고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 그 때 비로소 은혜의 가치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누군가 코치해주어서 실천 못하는 부분을 실천할 수 있는 인간되도록 해 주었다면 그것은 은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코치선생의 조언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크게 오해한데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란 걸림돌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저주를 비쳐주는 거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나'라는 인간이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룰 수 없기에 이렇게 저주받아야 한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등장은 인간이 죄로 여기지 않았던 것을 죄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5장 13절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갈라디아3:21-22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로마서9:30-32절"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율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율법이 행하라고 하는 것에)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인간이 율법이 요구하는 행함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걸림돌을 제시한 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은 율법의 행함을 실천하는 것으로 '의'를 이룰 수 있다. 천국에 갈 수 있다.(김종명씨의 표현대로 한다면 - 예수를 믿고 난뒤 천국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인간들을 향한 독설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는 했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립보서3:5) 그것도 가말리엘 문화생이었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행22:3)
이런 바울이 알고 있었던 율법을 배설물로 여겼고 이제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합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6-9)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었다고 자신이 말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율법지키기 도사였다는 말입니다. 이런 율법지키기 도사가 이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을 은혜로, 복음으로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이란 인간은 죄인이기에 이제 심판 받고 저주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등장했다는 것은 복음이요, 은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잘판단해서 예수를 택할 수 있게 되어서 은혜이거나 복음이 아닙니다. 저주와 심판으로 끝나야 하는 인간을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은혜요, 기쁜 소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를 믿고 율법 또 지키기 하자고 하는가? 그렇다면 갈라디아3:10절의 말씀과 같이 해야한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만약 하나라도 어기면 다 어긴자로 취급되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성도는 오직 성령의 시키시는 가운데 행하는 열매만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주가 일하시는 결과임을 자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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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아직도 믿음으로 은혜와 구원을 말하고계십니까.
김종명 (Homepage) 2003-04-16 18:06:50, 조회 : 106, 추천 : 16
님도 역시 같은 물에 같은 목사입니다.
율법을 그정도로만 알고있으니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운다고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폐하셨던가요.
완전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인치시니 그 율법이 진리가되어 우리에게 아들의 특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셨다면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없으며 그 고문과 고통을 받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