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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천국을 어떻게 침노하여 빼앗을까?] 2006-11-09묻고답하기마태복음

[천국을 어떻게 침노하여 빼앗을까?] 2006-11-09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천국을 어떻게 침노하여 빼앗을까 ?
이준2 2006-11-09 07:46:56, 조회 : 81, 추천 : 0

마11:12 -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으리라

침노하는 방법은 ?
빼앗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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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천국을 어떻게 침노하여 빼앗을까 ?
이근호 2006-11-09 08:37:40, 조회 : 105, 추천 : 2

천국을 침노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천국이 침노 당할 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생각한, 아니 ,인간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침노당하고 무너져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는 인간들에게 있어 천국은 무너질 세상이 아니라 다같이 소망해야 될 희망의 세계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시고 난 뒤에 그 환상은 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의해서 빼앗겨야 합니다.

마태복음 12:29에서, 예수님은 강도입니다. 그리고 가구를 지키는 집 주인은 악마요, 바리새인들이요, 인간들이 예상한 천구국관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구축해놓은 천국을 강도처럼 졸지에 덮쳐서 그 안에 사로잡혀 있던 자기 백성을 가구를 빼내어오듯이 빼내어가신 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이 진짜 천국입니다.

즉 천국은 이 땅에서 활동성있는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들의 천국관을 수시로 다 때려부수는 그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정죄하는 과정으로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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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당췌 이해가 가지 않게 말씀하시네요 ...
이준2 2006-11-09 09:24:33, 조회 : 103, 추천 : 1

해석은 천국에 들어 갈 성도가 이해할 수 있어야 정답이지요 ..

이해 할 수 있도록 설명하여 보십시요.

맹종하는 자들이나 쥐뿔도 모르면서 아멘아맨 하게 만들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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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당췌 이해가 가지 않게 말씀하시네요 ...
이근호 2006-11-09 15:49:40, 조회 : 62, 추천 : 0

해석이 안되게 해주는 능력이 천국에서 나오는 능력입니다.

구원을 막지 않는 천국은 인간이 만든 천국이요

구원을 막는 천국은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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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어떻게 침노하여 빼앗을까 ? 이준2 2006/11/09 0 82
[re] 이제서야 질문을 제대로 하시는군요.
이준 2006-11-09 08:18:15, 조회 : 91, 추천 : 0

일전에 제가 드렸던 말씀대로 이제서야 질문을 제대로 하시는 것 같아 기쁩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쁜 일이 연거푸 생기는군요.

****일전에 제가 드린 글*******
[re] 말귀를 못알아 들으시는군요.
이준1 2006-10-24 07:40:30, 조회 : 149, 추천 : 0

제 글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셨다면,
첫질문부터 "개역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든가,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이 빼았는다>는 구절의 번역상 의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셨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답변자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봐도 말입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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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사단에게 명령하셨나요 ,아니면 유다에게 명령하셨나요 ?
이준2 2006-11-09 09:06:32, 조회 : 82, 추천 : 0

요13:27 -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간 것을 모르실리 없으시겠지요 .

유다에게 명령하셨나요 ?

아니면 그 속에 있는 사단에게 명령하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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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님은 사단에게 명령하셨나요 ,아니면 유다에게 명령하셨나요 ?
이근호 2006-11-09 09:14:01, 조회 : 103, 추천 : 0

유다에게 명령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영적 세계가 두 패로 나뉘어 질 수 밖에 없음을 아십니다.

남은 것은 각자의 세계가 지닌 그 본질과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 뿐입니다.

"지옥갈 너희들아, 확실하게 지옥가는 자의 면면을 보이라"라는 겁니다.

그래야 시편 110:1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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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님은 사단에게 명령하셨나요 ,아니면 유다에게 명령하셨나요 ?
이준2 2006-11-09 09:20:47, 조회 : 92, 추천 : 0

그러면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죄를 짓게 하셨네요 ....

또한 목사님의 말씀은 불못에 들어 갈 자들은 불못에 들어 가도록 지어졌다는 말씀이 아니가요 ?
모든 인간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고 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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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님은 사단에게 명령하셨나요 ,아니면 유다에게 명령하셨나요 ?
정판옥 (Homepage) 2006-11-09 10:44:06, 조회 : 95, 추천 : 1

시41:9절"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행1:16절"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

그 이유는?

눅24:44절"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요13:18~19절"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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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평가를 창작평가로 보는게 창작평가인가요?
이가노 2006-11-09 15:31:48, 조회 : 82, 추천 : 2

1. 성도는,
역사 속으로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해서는 아니된다.
자신이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이미 완성이다.

2. 성도는,
이미 사랑과 거룩과 영광과 의를 맛보고 있다.

3. 성도는,
뛰어난 자들이 아니라 다른 자이다.
곧 성전이며 죽음의 의미를 세상에 산 채로 나타내어야 될 자들이다.

4. 성도는,
생존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서 사는 자이다.
신앙심이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신앙이 있는 그냥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5. 성도는,
환란과 핍박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으로 보여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도의 위치는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이다

6. 성도는,
예수 안에 있는 산 자다. 산자로서 타락하여 죽은 인간과 달리 부르심의 목적이 있는 자이다.

7. 성도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라도 은혜로 눈 뜬 자와 같다.
그러기 때문에 이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 하였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된 자들이 되었다.

8.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것이 된 자이다.
인간의 지각으로 알 수 없었던 숨어계시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도 성도를 아신바 되었다.
이런 상태로 주 안에 있는 자들이 성도다.
그 누가 이 세상에 이런 존재를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이런 차원에서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에서 ->새 사람을 입은 자로 만드신 목적을 따라
주 안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로서, 부활의 삶을 살아갈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9. 성도는,
이미 사랑과 거룩과 영광과 의를 맛보고 있다.

10. 성도는,
성령이 거하는 전이다. 그러기에 성령의 간섭 하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성령의 간섭이 싫어 주님의 의를 증거하는 간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려한다.
이를 성령은 가만히 있지 않으신다.
이를 때 마다 ‘죄에 대하여’ 지적하신다.
성령의 열매마저도 ‘자기 의’로 챙기려는 자에 대해서도 ‘죄에 대하여’ 지적받고 다시 십자가 앞에 서게 하여 회개케 하신다. 그렇게 함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성도는 다시 ‘하나님의 한 의’를 찬양하게 한다.

위의 열 가지 성도에 관한 글에서

소위 십자가 복음에 어긋난 글이 몇 번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형제를 붙여주신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안 받은 것이다(요한1서 3:10-16)라는
이근호목사님의 글을 기준해서,
이 십자가 마을을 통해서 형제애를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김영길님,
이근호목사님께서 '정체성을 신학으로 확보(소유)하려고 하시려는 행위'를 질타하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자꾸
십자가 마을 정체성 확보를 위한다고 하면서
손무성목사님에게 칼럼의 글(인간과 성도)을 지우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혹시라도
손목사님께서는 자신의 글을
(이근호목사님을 포함한 몇 몇 분들이)의도와 다르게 너무 창작 평가를 해 대니
그런게 아니라 진실은 이렇다라는 답변을
찬찬히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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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창작평가를 창작평가로 보는게 창작평가인가요?
이근호 2006-11-09 16:13:14, 조회 : 90, 추천 : 1

>1번과 8번이 모순됩니다.

성도는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데,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이름이 나름대로 갖게 되는 목적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의 계획이라든지, 야곱의 목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의 계획이라든지, 이스라엘의 목적만 있을 뿐인데, 이것만이 야곱이라는 인간에게 적용될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야곱이 개인적으로 갖는 성화론이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야곱을 통해서 일어나는 '거룩'이란 '주님의 이름으로 주어진 거룩이지' '야곱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거룩'은 아닙니다.

만약에 '주의 이름'에서 도로 '야곱'이라는 인간의 이름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면, 여기서 부터 소위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성화론'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쉽게 말해서, 8번에서 뉘앙스가 비쳐나오는, 본격적인 '부활의 삶'이라는 것을 '인간의 이름'으로 중심점으로해서는 결코 '주님의 이름'으로 얻어진 부활을 증거할 수가 없습니다.

한 예를 들어봅시다.

성도가 날이 갈수록 죄를 더 깊이 안다고해서 날이 갈수록 더욱 더 부활의 삶다운 삶을 더 많이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번의 주장처럼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면, 더이상 성도의 개인적 이름에서만 도출되는 시간적 요소에서 더이상 주님의 하신 일(십자가나 부활)이 표현될 수가 없고, 만약에 개인이 느끼는 시간적 차이성이 복음 안에 섞이게 되면 그런 것들은 몽땅 도로 '인간의 이름'의 가치 속으로 합류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렇게 됩니다.

"나는 내 죄를 전에 보다, 혹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깊이 알기에 전에 나보다, 혹은 타인보다 더 많이 성화(거룩) 된 자"라고 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역사 속에서 가치를 상실하고 죽어버렸다는 '자기 이름'을 증거하는 것이 되고, 이것은 '주의 이름'에 출발점을 갖지 못하고 따로 독립적으로 '자기 이름'을 새로운 개시점으로 하는 '자기 의 누적 작업'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십자가에서 주님의 의를 발견할 믿음이 없기에 그것을 대체해서

'자신의 변화 과정'을 가지고 '나는 구원된 자 맞음'을 확인하는 증거물로 삼고자 하는 겁니다.

이러한 자기 투쟁 하나 하나가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실현'에 관련된 정신적 투쟁을 증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점검하고, 또 그렇게해서 정리된 것을 또다시 점검하는 이 과정을 정당화하려면, 지나간 시간과 현재 시간과 미래 시간을 나열하기에 이 작업 안에서는 결코 '역사 속에서 자기 이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1번과 8번은 모순됩니다.

8번을 포기해야 해야 합니다.

1번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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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창작평가를 창작평가로 보는게 창작평가인가요?
이가노 2006-11-10 01:22:36, 조회 : 43, 추천 : 3

열가지 성도에 대한 설명의 출처는
십자가마을의 칼럼란이나 말씀의 조약돌란 등에 언급된 글이었습니다.
각각 표현한 분의 성함을 거론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존칭 생략)

1. 성도는,
역사 속으로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해서는 아니된다.
자신이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이미 완성이다. (이근호)

2. 성도는,
이미 사랑과 거룩과 영광과 의를 맛보고 있다. (이근호)

3. 성도는,
뛰어난 자들이 아니라 다른 자이다.
곧 성전이며 죽음의 의미를 세상에 산 채로 나타내어야 될 자들이다. (이근호)

4. 성도는,
생존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서 사는 자이다.
신앙심이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신앙이 있는 그냥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근호)

5. 성도는,
환란과 핍박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으로 보여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도의 위치는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이다 (이근호, 손무성)

6. 성도는,
예수 안에 있는 산 자다. 산자로서 타락하여 죽은 인간과 달리 부르심의 목적이 있는 자이다. (손무성)

7. 성도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라도 은혜로 눈 뜬 자와 같다.
그러기 때문에 이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 하였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된 자들이 되었다. (손무성)

8.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것이 된 자이다.
인간의 지각으로 알 수 없었던 숨어계시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도 성도를 아신바 되었다.
이런 상태로 주 안에 있는 자들이 성도다.
그 누가 이 세상에 이런 존재를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이런 차원에서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에서 ->새 사람을 입은 자로 만드신 목적을 따라
주 안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로서, 부활의 삶을 살아갈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손무성)

9. 성도는,
이미 사랑과 거룩과 영광과 의를 맛보고 있다. (이근호)

10. 성도는,
성령이 거하는 전이다. 그러기에 성령의 간섭 하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성령의 간섭이 싫어 주님의 의를 증거하는 간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려한다.
이를 성령은 가만히 있지 않으신다.
이를 때 마다 ‘죄에 대하여’ 지적하신다.
성령의 열매마저도 ‘자기 의’로 챙기려는 자에 대해서도 ‘죄에 대하여’ 지적받고 다시 십자가 앞에 서게 하여 회개케 하신다. 그렇게 함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성도는 다시 ‘하나님의 한 의’를 찬양하게 한다. (이근호, 손무성)

8번의 글 중 손무성목사님께서 '부활의 삶'이라고 언급한 내용에 대해

이근호목사님께서는

소위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성화론'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보시기 때문에,

"8번에서 뉘앙스가 비쳐나오는, 본격적인 '부활의 삶'이라는 것을

'인간의 이름'으로 중심점으로해서는 결코 '주님의 이름'으로 얻어진 부활을 증거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신 것 같네요,

제가 보기에는

손무성목사님께서 '부활의 삶'으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베푸심으로 구원받은 성도로서

그 은혜의 가치를 늘 깨달으며 감격해 하면서 '부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한다는 뜻이 아닌가요?

이런 뜻을

이근호목사님께서 '인간의 자아실현'에 기초한 성화(자기 의라는 바벨탑을 쌓는 행위)로 창작 평가 해버리시니

손목사님께서 무척 답답해 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여하튼

1. 성도로서의 신앙적 삶의 과정을 두고

조금만 틈(?)이 보이면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한 성화로 쉽게 단정하고 비판의 칼을 휘둘러 버린다는 문제,

2. 성도로서의 삶을

자유라는 단어를 기준으로 해서

'제 성깔대로 살아도 문제 없다'는 식으로 유기해 버리는 문제,

위 두 가지에 대한 십자가 신학의 기준을 설명 듣고 싶습니다.
(어느 사이트 어느 글을 읽으면 좋을지도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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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창작평가를 창작평가로 보는게 창작평가인가요?
이근호 2006-11-10 06:58:22, 조회 : 55, 추천 : 1

홈페이지 '믿음의 글' 난에 보면,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이라는 난이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 보시면, 인간들의 그 어떤 신학 행위도, '자기를 증거'하는 용도로 변질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하에게 다음 두 가지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성경 귀절은 언제 어디서는 그 문장, 그 단어로 되어 있지만 어떤 때는 감격과 감동으로 다가오가다도 어떤 때는 별 관심을 주지 못하는 귀절로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소리를 과거에 많이 했더라도, 복음의 능력이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초점을 어디에다 맞추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2. 성도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이란 성도의 지식이나 고백을 긍정하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에 대한 확보나 소유가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님을 통보하면서, 자신의 과거의 지식이나 고백을 소유하고자 하는 그 죄를 지적하면서 벌어진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일이란 인간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일어나는 법이 없는 겁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한계와 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 자체를 신학이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설사 부정하더하고 반성하더라도, 그 부정의 추궁하는 기반을 신학 외부에서 작동하는 십자가 자체의 능력으로 보지 않고, 신학 내부에 작동하는 신학 자체의 생동력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은, 기어이 자기 신학을 소유하고야 말겠다는 지독한 자기 의가 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라는 아무리해도 그 지식을 소지하고 그런 고백했음을 소지하고 기억한다고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은 지금도 십자가 능력 안에서 함께 살아계신 예수님으로만 구원받는 겁니다.

비유를 들자면,

옆에 있는 아주머니를 향해 꼬마가 "이 분은 우리 어머니야"라는 말을 아무리해도 꼬마 친구가 대꾸하기를, "너는 어떤 방법으로 너의 어머니 인 줄을 알았으냐?, 기껏 네의 지식이나 꾸며낸 고백일 수도 있잖아 "라고 따지면 그 꼬마로서는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 때 그 아주머니가 그 꼬마를 뒷퉁수를 때리면서, "이 꼬마는 내 아들이야"하면서 확인될 뿐이지요. 이 뒷퉁수 때릴 때, 친 아들인 꼬마는 "아얏!"라고 비명을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주님)께서는 항상 십자가를 가지고 우리의 뒷퉁수를 때리기에, 우리는 십자가 복음 앞에서 죄인임을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안 맞아도 된다는 자는 성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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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 보다 큰자?
문휘웅 2006-11-09 19:50:04, 조회 : 60, 추천 : 0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세레요한 보다 큰 이가 없다고 이야기 하시고는 또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고 하신 말씀은 이해가 안갑니다. 앞부분은 어떤 의미에서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없는지, 뒷부분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세례요한 보다 지극히 작은 사람들이 세례요한보다 작은 이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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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 보다 큰자?
이근호 2006-11-09 20:32:45, 조회 : 81, 추천 : 1

예수님과 결부시켜 보면 간단합니다.

세례 요한은 여전히 예수님의 완성된 사역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한 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가장 가까이에서 최종 사역에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시절이 끝나고 예수님 홀로 이루시게 되는 천국 안에서는 세례요한이 미처 알지 못하는 축복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격이 다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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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더...
문휘웅 2006-11-10 02:46:23, 조회 : 77, 추천 : 0

마태복음 15장 21절에서 28절까지 말씀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 본문의 내용이 좀 많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자기 딸에 대한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아 온 이방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마치 인격모독과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그 여자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걸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물론 그게 아니라는 건 뒤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예수님과 여자의 대화의 참 뜻... 그리고 이 사건이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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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하나 더...
이근호 2006-11-10 06:36:01, 조회 : 74, 추천 : 1

>자신의 구원문제라든지, 자신의 애로 사항을 우선시하여 주남을 찾는 이는, 번짓수를 잘못 찾았다는 취지를 나타내기 위한 대화입니다.

예수님은, 한국교회 목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개인 구원문제나, 가정 행복이나, 사적인 목적에 희망과 응답을 주시지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과 예수님만이 아시는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그 언약에서 이방인의 역할은 '개'입니다. 즉 '전적인 배제 당함'입니다.

이 '배제당함'을 확실히 보여주시면서도, 그 배제가 '유대인들이 생각한 배제'가 아니라 '주님 앞에 자신을 개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자'에 대한 배제임을 보여주는 방편으로 이 이방여인과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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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장 25~27절 말씀...
문휘웅 2006-11-10 09:39:07, 조회 : 86, 추천 : 0

어떻게 그 당시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두 사람은 모두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인데... 이 두 가지 사건은 무엇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구약에서 언급되었고, 그걸 다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의 은혜가 누가 잘해서 주어진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당신의 뜻으로만 주어진 것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는 본문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보면 꼭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뭔가 나아만 장군과 사렙다 과부에게 칭찬할 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만...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배제하고,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신 이유...그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배제하고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신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두 사람이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에 그렇게 많은 문둥병자들, 과부들을 제외하고 이 두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일까요?이 본문과 구약성경 열왕기상 17장8절~24절 말씀과 열왕기하 5장 전체의 말씀과 연관시켜서 전체적인 입장에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이후 이 두 사람외에 주님의 성육신 사건 이전까지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한편으론 갑작스럽단 생각도 들고...갑자기 두 사건이 구약에서 뜬금없이 나타났다가 그 이후에 이 만한 은혜를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한 번도 주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이런 특별한 관심을 보이신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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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누가복음 4장 25~27절 말씀...
이근호 2006-11-10 19:32:07, 조회 : 64, 추천 : 0

유대인들은 언약적으로 볼 때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주면, 천국을 자기 소유화하고, 선택을 말하면, 선택을 자기 소유화하고, 언약을 주면 언약을 자기 소유화하고, 성전을 주고, 메시야를 주고, 선지자들을 주면 모두다 자기 소유화하는 자들입니다.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따라서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들을 비켜 가시는 겁니다.

즉 인간 소유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없고, 도리어 은혜받은 자들이 참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예속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함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런 진실을 전하는데, 아무런 혜택이 돌아갈 이유가 없는 이방인에게 긍휼이 돌아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긍휼을 입을 자에게 긍휼을 입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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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누가복음 4장 25~27절 말씀...
고관규 2006-11-10 21:08:33, 조회 : 55, 추천 : 0

간단한 답이라고 하기가 뭐 합니다만,, 부탁하시니 ㅡ 말씀 실력이 부족하여......ㅎㅎ

사렙다의 과부와, 수리아의 나아만장군의 은혜받은 사건은,
이미 목사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은혜를 주는 자의 주권이겠지요.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와,이스라엘의 많은 문둥이가 있겠지만
율법과,언약의 중심부에서 철저히 외면된 이방을 향한
약속의 성취의 측면에서의 주님의 활동입니다.
이미 17절부터 21 절을 통하여 주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언급하시며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시고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도 하셧습니다
앞으로의 사역에 있어서 철저한 동족의 배척을 아신것이지요
그러시면서 바로,,, 위의 두 예를 드신것입니다,
그래서 위의 두가지의 예가....누가복음에서 스타트로 제시된 겁니다.
이 스타트를 하기위한 워밍업이지요
두가지의 예가.. 예수님의 여행의 동기가 됩니다.
바로 새 백성 만들기의 시작이지요

정말로....두 예대로 두 사람만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의 답이 넘 쉽죠 ㅎㅎ
요정도밖에 해석을 못 드려 지송합니다.
정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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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문휘웅 2006-11-10 09:44:48, 조회 : 89, 추천 : 0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받으신 세가지 시험의 의미...굳이 이 시험을 겪으실 이유가 있으셨을까요?이 시험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주님께서 하실 사역을 못하실리 없고, 또 큰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닌데...마귀와의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확실하게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승리하셨는데...굳이 여기서의 싸움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그리고 왜 이 시험을 겪고 난 이후 부터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을까요?예수님께서 겪으신 이 시험의 주님의 전체 사역에서 어떠한 의미와 비중을 차지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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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또 한 가지...
고관규 2006-11-10 12:52:21, 조회 : 63, 추천 : 0

여러 선배님들과,사역자님들이 계신데..제가 나서네요 ㅎㅎ
제가 보기에는...

이것이 바로 인성의 결정적인 계시입니다
한 인간의 모습으로 온전히 오신 주님의 온전한 인격을 말 함이 아닐까요?

칼 바르트가 "아담과,그리스도"라는 책에서 밝혔듯이...
예수는 모든 인간의 원형이묘, 하나님을 향한ㅡ 인간의 온전한 모습으로서의 원형이죠
이래야 된다 !! 가 아닐가요
순종의 원형이며.
세상시험에 대한 인간이 취할 극기의 원형입니다.
이것을 통과하신겁니다.

모든 인간에게 닥치는 세가지의 시험은 역사에 있어서의 숙제입니다.
이 숙제를 푸신 분이 바로 예수이십니다.

아담이 모든 인간 실패의 현재적인 ..아직도 유효한 셈플이듯이..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성공해야 할 인간의 모습으로서의 온전한 쌤플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실패하는 것은...
우리는 못하기에
십자가의 온전한 대신 죽으심의 성취를 통하여....
그 세가지의 시험을 통과한 자로 보아주시는 겁니다.

바울의 말을 빌면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다는 말슴과,,일맥 상통할 것입니다...!!

왜냐면... 율법의 저주안에는
이 세가지의 시험이 들어가 있기에 말입니다....

이래야 된다 !!...의 반대적 역설도 되지요
너희가 못 할 것이기에 내가 했다 !!.... 둘 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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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또 한 가지...
이근호 2006-11-10 19:35:26, 조회 : 76, 추천 : 0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1. 현재 인간들이 그 누구로부터 압제 당하고 있습니다.

2. 못 빠져나옴

3. 그 악한 세력은 예수님에게 대드는 세력임

이러한 입장을 배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로서 인간의 죄란 단순히 양심이 가책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악마의 품성으로 작용해서 결국 십자가 사건이 유발될 수 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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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하는 김에...
문휘웅 2006-11-10 10:31:24, 조회 : 151, 추천 : 1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소금이 제 맛을 내지 못하면 아무 쓸모없고, 밖에 버리워 밟혀진다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소금이 제 맛을 내지 못하고 맛이 변할 수 있을까요?맛이 변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습니다만...주님께서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너희들은 성도라고 생각됩니다만... 처음부터 성도였던자가 버림을 당할 수 있을까요?이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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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왕 하는 김에...
이근호 2006-11-10 19:37:27, 조회 : 129, 추천 : 0

성도라는 신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신분을 본인이 가지려고 해도 성공할 수 있는 자도 없습니다.

그 실패성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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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왕 하는 김에...
문휘웅 2006-11-12 20:26:55, 조회 : 68, 추천 : 1

원래 같은 말 두 번 반복하게 하면 좋아할 분 아무도 없으시겠죠?ㅎㅎ 머리가 나빠서 그러니 이해해 주십시오,목사님.그러니까 실패성이라는게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성도가 되지 않으려고 해도 성도일 수 밖에 없으며, 성도가 아닌 자가 성도일려 해도 성도일 수가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란 말씀을 하셨던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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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왕 하는 김에...
이근호 2006-11-12 20:39:17, 조회 : 67, 추천 : 0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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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하는 김에... 문휘웅 2006/11/10 1 152
[re] 이왕 하는 김에...
고관규 2006-11-10 12:40:43, 조회 : 117, 추천 : 0

소금이 맛을 잃을 때에는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힌다.....는
구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무시와,조롱과,빈정거림과,깔봄으로 보면 될 겁니다.
밟힌다는 문제는 또한.. 스스로의 삶의 실존의 마당에서의 영적인 고통과 직결되는 것이구요
내적고통과,외적고통의 합계로 보면 될 것입니다
세상의 무시와,내적 침체입니다.
구원의 상실이 아닙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들이 가지를 밖에다 버려 불로 사르느니라...와 같은 맥락의 말씀이지요

사도바울이 심각한 죄를 지은,,, 그리스도인들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사단에게...내 주었다고도 하였습니다
사단에게 내줌은....일종의 제도교회에서의 징계와, 축출을 말함이 아닙니까?
세상은 사단의 나라요, 사단에게 내어줌은 회개치 않고, 오히려 교만하여
교회에 악한 영향을 끼치기에...권징일 것입니다.(오늘의 권징과는 좀 다릅니다만,,ㅎㅎ)
세상에 내어줌으로 사단에게 곧,,내어줌이 될 것입니다.
이때부터 교회와..주님앞에서 회개치 않는 그는....
사단의 능욕의 대상이 됩니다
바울이 본 것이 바로,,,이 점을 본 것이지요 !!

고로 구원의 상실을 말하는 누구든,,,,광명의 천사이며.사단의 일군입니다.

바로 다른 복음의 결정체인.... 거짓 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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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왕 하는 김에...
문휘웅 2006-11-10 16:09:31, 조회 : 92, 추천 : 0

이왕 답글 다시는 김에 제가 한 1965번 질문답글도 달아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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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출발은 결국 양심 아닌가요?
김대식 (Homepage) 2006-11-10 19:19:02, 조회 : 108, 추천 : 0

인간의 본질과 학문을 워드 중에 생각 난 것이

1. 철학의 출발은 결국 양심 아닌가요?

결국 양심에 의해서 철학이 나오게 된다면

신학보다 철학이 좀더 솔직하게 내면을 파악하겠군요??

신학은 심심하면 선택이니 주권이니 하면서 국가조직으로 숨어서 은폐 시키는 이스라엘과 같은 버릇이 있을터이고
(따로 떼어놓으면 참으로 솔직하던데 교회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주를 위한다는 둥 그 솔직한 것들이 다 날라가버리는)

철학은 그 내면의 것들을 내 뱉어버림으로 인해 계속 꼬리에 꼬리는 무는 풀 수 없는 물음표만 남기듯이 말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이 양쪽으로 부터 공격을 당하는 모습이라면 목회자들이 철학을 공부 안하겠다는 것은 십자가를 증거할 마음이 없다는 셈이군요.

십자가가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요 헬라인 에게는 어리석음이니

철학으로 부터 비방 받는 어리석음을 외면하는 것이고
신학으로 부터 걸림돌을 제시하는 사랑을 제거하는 식이 될테니깐요?

2. 또 한가지 결국 율법도 양심도 하나로 만나게 될터인데 나타나는 겉모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들 또한 서로 다르다고 주장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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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철학의 출발은 결국 양심 아닌가요?
이근호 2006-11-10 19:42:15, 조회 : 159, 추천 : 3

모든 인간의 공부는 철학으로 모아집니다. 과학과 기술과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하겠다는 것은, 계속 본인이 남들로부터 지적을 받겠다는 말입니다.

공부를 안하겠다는 것은 남들로부터 지적 당하기 싫다는 말입니다.

현재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인 구원에 충분하다고 보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한 순간도 쉴새없이 변하고, 또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변하는 것도 오로지 '자기 의'를 변화하는 식으로 변하게 됩니다.

복음이 철학과 인간의 지혜를 치시고 들어온다면, 왜 우리가 십자가에 날마다 죽어야 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목사들은, '왜 성경을 알고 복음을 전하고 신학을 전공한 내가 꼭 죽어야만 할 죄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뭔가 계속 소유하려고 하는게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버릴 수 있는 마음'까지 소유용으로 변하고, '부인하는 마음'까지 소유용으로 변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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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챤에게...
문휘웅 2006-11-12 20:58:20, 조회 : 160, 추천 : 0

클찬에게 도덕과 윤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아무 의미가 없을까요?욥기에서 욥의 친구하나가 (정확하게 누군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니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슨 소용이 있으며, 니가 불의한들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있느냐?니 의로움은 사람한테나 유익하고, 니 불의함은 사람한테나 해롭다라고 한 것처름 주님께는 분명히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은 마땅하지만,(마음에 안들면 확그냥 쓸어버리고 없애버리셔도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으니)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시거나, 경히 여기시는 것은 안니지 않습니까?어떤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지?아니면 어떤 차원에서 의미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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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클챤에게...
이근호 2006-11-12 22:00:48, 조회 : 157, 추천 : 1

윤리 도덕은 의미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윤리 도덕으로 바르기 살기 위해서 애쓰고 힘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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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클챤에게...
고관규 2006-11-13 01:44:37, 조회 : 122, 추천 : 0

윤리,도덕으로ㅡ 복음이.. 막힌다면
그것들은 오히려 복음의 원수역활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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