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표준에 대해] 2006-09-19
[심판의 표준에 대해] 2006-09-19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이 글에 대한 평가 및 심판의 표준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상한 2006-09-19 00:53:22, 조회 : 204, 추천 : 6
(아래의 글은 "어느 신학서적에 있는 일부 내용"입니다. 참고로, "신학서적 읽기"는 제 취미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한 의식적인 거절만이 사람을 멸망하게 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사람은 본래적으로 상실한 바 되고, 실제적인 죄 뿐 아니라 심지어 원죄로도 사람은 정죄 받기에 마땅하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은 큰 죄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파멸로 인도하는 유일한 죄로 묘사되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심판의 표준
성도들과 죄인들이 심판을 받게 될 표준은 분명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일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특권을 지녔고, 따라서 당연히 책임도 더 크다. 그러나 이것은 상이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각각 상이한 구원의 조건들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심판대에 서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천국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의 여부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엇느냐 않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천국의 복락과 지옥의 형벌에는 각각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의 정도는 육체로 있을 때 행한 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자연의 법"에 따라, 옛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의 계시"에 의해서만, 그리고 자연의 빛과 구약의 계시말고도 복음의 빛을 누린 사람들은 그들이 받았던 "보다 큰 빛"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성구인용은 생략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 큰 죄이지만, 이것이 파멸로 인도하는 유일한 죄는 아니랍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실제적인 죄를 저지르기 이전에 벌써 원죄라는 죄가 있기 때문에, 원죄만으로도 처벌받아 마땅하고, 따라서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은 큰 죄임에도 유일한 죄는 아니라는 의미 같은데... 어떻게 봐야 할런지요? 또한, 심판의 표준에 대해서도 더불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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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 글에 대한 평가 및 심판의 표준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근호 2006-09-19 07:19:01, 조회 : 183, 추천 : 2
골로새서 1;15-16의 말씀으로도 이 글의 잘못을 분명히 나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창조되었음은 오직 성령받은 자만이 고백할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얼마나 큰 진노를 베푸시는가를 통해 하나님의 정의를 보여주기 위해서 지옥은 필수적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 저주가 저주답게 되기 위해 지옥이 있는 겁니다.
이 저주받기 위해서는 이 땅에 출생해야 될 자들이 있습니다.
즉 에서처럼 미움받기 위해 태어나야만 하는 겁니다.
지옥의 형벌 차등은 별 의미없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북한 사람들이 개성따라 차이나는 형형색깔의 옷을 입었더라도 남한 사람이 아닌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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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답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2006-09-19 07:51:34, 조회 : 163, 추천 : 6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위해 살아가기에 스스로 주님의 이름(= 예수의 이름)을 위해 살아가려고 하지 않으며, 스스로 십자가를 붙들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에 동참할 수 없다고 봅니다.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 십자가만을 의지하고,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하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우발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심판의 표준"은 주의 이름(=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는가? 오직 십자가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는가-우리 스스로 그러할 수 없고, 주님으로만 가능하기에-라고 볼 수 있겠지요. (아니면, 혹시 인간이 심판의 표준을 묻는다는 자체가 잘못된 건가요?)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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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답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근호 2006-09-19 15:24:46, 조회 : 188, 추천 : 3
새언약적인 단언(내 살과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으니라)은 스스로 성령님을 통해서 자기 성도에게만 수긍되게 전달됩니다.
성도는 이 심판의 기준에 대해서 자신의 것을 섞어넣을 생각을 감히 못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신앙이라든지, 자신의 확신 같은 것)
주님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자기 부인케 하여 이 마지막 때의 말씀 자체의 새언약적 심판 기준을 분명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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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군요. 아주 명쾌한 말씀입니다.
이상한 2006-09-19 21:05:04, 조회 : 170, 추천 : 3
새언약적인 단언(내 살과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으니라)은 스스로 성령님을 통해서 자기 성도에게만 수긍되게 전달됩니다.
새 언약적인 단언... 아주 인상적이고도 명쾌한 말씀이네요. 그것만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하겠지요.
이곳-십자가 마을-에서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목사님 같이 십자가에 대한 일관성을 견지한 분들이 드물다는 것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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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입니다
김효은 2006-09-25 10:23:09, 조회 : 166, 추천 : 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요 8:32)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이 구절은 저희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고자 함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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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6-09-25 14:00:45, 조회 : 176, 추천 : 2
이 말씀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개인이 원하는 바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진리의 활동이 이미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서서 어떤 강력한 권세(부활의 능력: 에베소서 1:19)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성도는 불신자들이 못느끼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누구로부터 철저히 조종받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마치 옛날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의 처신처럼, 본인이 선택하거나 결정하거나 희망하지 않는 사태 속으로 휘말려들어가면서 자신이 예상치도 못했던 운명을 느낍니다.
완료된 운명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스스로의 의로움을 지키는 요령이나 방어책은 소용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자유인데 이 자유는 서슴없이 타인의 종이 될 수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이 자유에 해당되지 않는 행동이나 위배되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남의 종이 되어야 구원받는다든지, 내가 가진 자유를 다 발휘하지 말아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영광이 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 사람은 여전히 주체적 태도 결정을 그때그때마다 내려야 하는 사람이요 자기의 좁은 견해을 의지해야만 하는 사람이지 결코 부활의 능력에 적용받는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능력(자유)가 이 말씀으로 이끌고 감을 편하게 인정하는 자들이 구원받은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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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입니다
김효은 2006-09-25 22:03:45, 조회 : 103, 추천 : 0
목사님 답변이 빛으로 번득이게 하심에 너무 감사합니다.
며칠간 말씀으로 쪼개심의 은혜에 감격!!감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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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며...구원받지 못하는 믿음의 행함이라는 것에 대해?
고관규 2006-09-28 04:11:13, 조회 : 102, 추천 : 0
목사님
오래 믿었는데..이 부ㅡ분을 정리하지 못하여 갑자기 생각이 막히네요
누가 질문했는데..시원한 답변을 주지 못하여 부끄럽고,더,,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서울의 45세의 남자집사입니다.
목사님의 명성을 멀리서,,,,,익히 알고 있습니다.
배우기를 원합니다.
ㅡㅡㅡㅡ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할 때에는 사도 야고보의 의도는 사도야고보가...그 전자에 예를 드신 것처럼,,,
부자와,가난한 자를 언급하면서,,,하나에게는 황송하게 알랑방구를 끼며 껌벅죽는 모습으로 대하고..
하나에게는 무시하고,깔보며 대접 안하는 장면을 예로 들면서,,,언급을 하였는데에ㅡ 그 다음에 언급하기를..
능히...그 믿음이..자기를 구원,,,하겟느냐? 하시면서 구원문제를 분명히 언급하는 구절이 나오네여
손무성 목사님이 이미,,밝히신 것을 참고했고,,알지만,,약간 꺼림칙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삭 바치는 사건의 행함부분과...라합의 정탐군 숨겨준 사건의 행함측면의 해석이 잘 이해가 안갑니다.... 설사 이것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약한 자들에게,,,,설명하는 것이 좀,,,어렵더군요 왜냐면 저부터 이해에 부족함을 느끼기에 말입니다. 왜냐면 ㅡ 바울의 이론에 길이 든 우리들이기에 더더욱 그런 것 같읍니다. 바울의 행함부분의 언급은 물론,,성도의 행위이고,,,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성도의 행함이지만,,,야고보의 행함은...!!....믿음의 실제적인 적용,,!! 부분을 언급함이라고 이 사람은 생각을 했습니다만...뒤에 부분에 갑자기...능히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겟느냐? 고 야고보가 질문함에 대해 이 말이 피부적으로 와,,닿지가 않네요 그래서 답답합니다...ㅎㅎㅎ 다른 사람들은...이부분을 언급하며,,,봐라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느냐? 또 능히 이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겟느냐? 고 말하며 의문,,,을 하지 않느냐?,,,허니 고로 행함이 없으면 구원에 어려움을 겪고,,죽은 믿음이니 쓸모없는 믿음이 되었고,구원못받는 죽은 믿음 아니냐?하는 밀을 하는군요 그래서 열심히 행하고 참되게 행하여야 구원과 상관이 있는것 아니냐? 라고 도전도 하거든요....물론 저는 그들의 말의 촛점과,포커스가 이미,,잘못됨을 알고 잇습니다만.............
실제적으로 이해가 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왜? 야고보가 궂이 두부류(부자대우,가난한 자의 대우)에 대한 교회의 일원들의 대우성,!!의 문제를 언급하며 구원문제를 언급하고,,,,또 아브라함과,라합의 예를 들면서 설명을 하는지요? ㅠㅠ 그라면 서 구원이 가능하겠느냐? 라고 햇는지요?
이 문제를 담주에,,,아는 자들에게 제가,,,설명을 해주어야 하거든요 ㅎㅎ.......그들이 이것을 모르기에 그들을 ㅡㅡㅡ만나면 저는 ㅡㅡㅡ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 ,,,막대한 사명,,을 가지고 가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샬롬
참고로,,,많은 사람들은 ㅡㅡㅡ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말씀을 적용의... 문제로 보지 않고,,,구원의 여부와,당락을 결정하게 되는 구절로 본다는 것이 충격이며,,문제라는 겁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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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며...구원받지 못하는 믿음의 행함이라는 것에 대해?
이근호 2006-09-28 06:35:44, 조회 : 148, 추천 : 1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 작업이란, 구원해 주시는 속성과 구원받을 자의 속성이 다 같이 폭로가 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죄라는 것은, (비록 구원될 자라고 할지라도) 자기 힘으로 자기 구원이 가능할 정도로 자신의 현 모습이 합당하다고 여기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자기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기 의'에서 비롯된 '믿음'이라고 하는 것도 여전히 참된 믿음이 아니라 '자기 의'의 일종으로서 작용합니다.
즉 '나는 믿음이 있으니 이만하면 됐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논리라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다꾸하시는 겁니다.
"그런 믿음이라면 지옥가는 귀신들도 그 정도 믿음은 갖고 있다. 믿음이라면 적어도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 정도는 돼야지. 그들은 네 같이 말만 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말씀의 순종한 자들이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습니다!'라고 외친다고 해서 다 참된 믿음이 아니다. 행위가 아브라함이나 기생 라합과 다른데 어떻게 같은 류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 사람 속에서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주님의 도구가 된 사람이라고 판정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의 성도의 삶은 이로서, 본인이 결정해 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들어와 있는 말씀의 결정짓는 삶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자신의 조정 가능한 삶'으로 관리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러저런 부적절한 태도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밀씀이 담겨 있지 않고서 믿는다고 우기는 그런 주장들'이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이미 말씀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만이 야고보서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아, 나는 이미 내 몸이 아니라 말씀이 거하는 몸이구나!"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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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며...구원받지 못하는 믿음의 행함이라는 것에 대해?
고관규 2006-09-28 07:00:38, 조회 : 96, 추천 : 0
감이 잡힙니다,,,하나님의 계시가 박힌 믿음, 말씀이 속에서 역사하는 형태로서의 믿음 으로 정리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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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평상시대의 구원과, 환난시대의 구원받는 방법이 틀린가요?
고관규 2006-09-28 05:54:36, 조회 : 109, 추천 : 1
어느 교회의(서울 강북지역의 장로회 간판 걸어 놓은 몇천명 모이는 모 ? 교회) 계시록 강의를 들을 기회기 생겨 우연히 참석하였는데, 목사의 설교강론중에 의심할 만한 내용이 있어서 질문을 합니다.......
그 분의 칠판설교중 내용은... 지금처럼 평상시에는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으나,,,,환난시대에는(목베임을 받는 적그리스도의 시대) 만일의 사태시(칼을 들이 대고 시인할래 !!..아님 부인하고 죽을래 !! ,,,하며 테스트할떼에....). 믿는 자라도 부인 !!...하면 구원 못받는 다고 하면서...그래서 지금부터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여야 그때에 !!.... 시인하게 된다고 합니다....ㅜㅜㅜ 그리고 로마서를 언급하며..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할 때의 이 말씀은.....앞부분은 현시대에 적용될 부분이고...뒷부부은 환난,적그리스도시대에나 적용될 고백이라고 하는데요 ㅠㅠ...
도대체 이런 말씀이 맞는 것인가요?
그래서 시인을 하려묜,,,,그 환난시대에.... 지금부터 피티나게 신앙을 연마해야 한다는 말이겠네요
그 근거로 니골라당같이 첨에는 교회의 일원이였으나...나중에 자기당을 만들어 배도하였으니...우리들도 그럴 수가 잇다는 거지요.....참 적용이 억지같아요ㅡㅡㅡㅡㅡ
제가 알기에는,,,,계시록은 이미 교회... 교회인 당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닌가요?
교회에게 주시는 평가이며,메세지이며,,,말씀인데ㅡㅡㅡㅡ 그 교회들이 마치..장차..어떤 순간에 교회로서 상실될 것 같은
말을 하는지요 그 분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논리가 안맞는 말을 또 !!......하는 것은ㅡㅡ 시인하는 자에게는 피할 길을 주시고,환난을 통과케 하시고,,죽임을 안당하게,,머리 털 끝하나 안 상하게 한다는 말을 하니... 앞야기와,뒷야기의 모순성으로 인해... 듣는 저도 헷갈립디다 ㅠㅠ
이건 구원론에 있어서 치명적인 문제라 사료됩니다...
도데체 이런 근거는 왜 나오는 건가요? 그 설교를 듣는 무지 몽매한 군중들은 또 어떠한지요? ㅎㅎ ㅠㅠ
제 생각을 정리해보니...저의 글에 대해서도 고견을 주시기 바래요 목사님 !!.....저는ㅡ
이미 교회인 우리를 포함한 모든,,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ㅡ 삶자체가...이미 환난이 아닐까 생각해보는군요
오ㅔ냐면,,이미..계시록의 후반부에서 말하시기를...이기는 자들...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고 언급하여 분명 성도는 환난을 통과하고 이긴자.. 들이라고 하십니다...그럼 옛적부터 죽은 백성들과,,고대.중세,근대,현대,,미래의 모든 속량받은 백성들이 성도이며,교회가 아닌가요....문자그대로라면,,,피흘리고 목배이고 죽임당한 자들만 !!.... 성도라는 결론이 나올법한데 사실은 아니잖아요? 평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성도는 얼마나 많을까요? ㅎㅎ 그래서 저는 성도는 이미 환난,고난안에 넓게 자리 잡히고,운명되어진 사람들이라고 본다는 겁니다. 다만 계시록의 언어에서는 포괄적으로,넓게 정의하고,,결과론적으로 정의하여 진술된 것으로 보는데...목사님 저의 이 해석이 틀린가요?
그래서 구원받는 방법이 그 분 말처럼 시대마다 틀린건가요?
구원론에 커다란 문제가 잇는건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서울 장안에 난리가 났군요 거짓 행위시인.... 구원을 부축이는 선지자가 나타났나요? 참,,이거 원? ㅠㅠ
고견 부탁드립니다.ㅡㅡㅡㅡ
이점 역시도 저를 그 집회에 초대한 분에게....십자가의 도를..전하는 맘으로 전해야 할가 합니다
그 사람도 그러케 배웟으니 그러케 알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상황의 환난시대에 그런 핍박이 잇으면 거절해야 겠죠 물론이구요 !!
그러나 그래서 구원받고,못받고 한다면 말씀의 구원론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지 않을가요?
그분과 같은 소위 지도자들이 쓰는 말들을 보면,,,주로,,,,
전제가 틀린거 같아요 전제가 틀리니,,,결과가 디틀려 버리는 것인 거 같습니다 뭐냐하면,,,,
베드로가 부인했으니..우리도 언제 부인할지 모른다,,하면서요.
니골라도 원래 집사였는데..우리같은 범인들이 언제 부인할 지 모른다는 것 아닐까요?
전제가 틀린 것 같아요... 써 먹을 곳을 잘못 짚은.. 해석인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시 고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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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금처럼 평상시대의 구원과, 환난시대의 구원받는 방법이 틀린가요?
이근호 2006-09-28 06:23:04, 조회 : 134, 추천 : 0
'강북구 큰 교회'를 '강북구 큰 절간'을 생각하시면 우선 큰 고민 하나는 떨어져 나갑니다.
그들이 갖고서 해석하는 '요한계시록'을 그들이 갖고 있는 '화엄경'이나 '금강경'으로 간주하시면 미진한 고민도 대충 정리가 될 것입니다.
우선 구원이란 '대신 죽으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요한계시록도 '어린 양'의 피 흘리심으로만 구원이 가능하기에, 구원은 구원받는 당시자가 이리저리, 요모조모 피하고 참고 극복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구원받은 자는 이땅에서 이러저런 수모를 당한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느냐 하면, 마지막 때에 (예수님 초림에서 재림 사이 전부), 예수님은 자신의 운명과 동일한 운명을 지니고 살아야 될 자들을 이 땅 안에서 자꾸만 발생시켜,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이 이 땅의 근원적인 악의 세력으로 유발된 사건임을 일리고 이로 인하여 이 세상에 대한 저주와 심판이 당연함을 온 우주에 선언하시려는 겁니다.
이러한 사태가 초대 교회 때 이미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 자체가 지닌 역사의 본질과 성격상 아무리 오래 끌어도 이 원리와 원칙에서 이탈되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구원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생리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가 이미 확정되었음을 알려주어서 이미 구원받은 자가 더이상 자기 구원과 미래상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주신 책입니다.
만약에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든지, 불안해 하는 것은, '대신 죽음에 의한 구원'을 믿지 않고,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자기 구원이 결정되는 양으로 간주하기에 이것이 바로 악마가 노리는 바요 '어린 양의 피의 능력'을 헛되게 생각하는 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신이 죄인이기에 더이상 자기 노력으로 구원될 자격조차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지, 이것도 모르는채 여전히 자신이 잘만 하면 자기 열성과 시대를 파악하는 조심성으로 자기 구원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성북구 큰 절간'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이 이단적 가르침입니다.
"다 이루었음'이 이 역사 안에서는 "나는 이제 죽어도 좋아. 어떻게 죽든지간에 너무 좋아, 정말 좋아"라는 감사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물론 성도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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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금처럼 평상시대의 구원과, 환난시대의 구원받는 방법이 틀린가요?
고관규 2006-09-28 07:03:01, 조회 : 99, 추천 : 2
네,,감사합니다
결국,,,대신 죽으심....이라는 하나만이 모든 숙제와,의문을 푸는 열쇠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엇습니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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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
박윤진 2006-09-28 16:44:40, 조회 : 190, 추천 : 0
조지래드의 신학 녹취록 9월 5일 a 를 보다가
이근호 목사님과 손무성 목사님의 논쟁 중에
손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라’, ‘하지 말라’체는 결국은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새로운 새생명이 들어와서 성령의 관리 하에서
그 성령의 은혜에 임한 살아있는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지,
죽은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여기서 죽은 성도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성도라는 말이 내가 죽고 내 안에 사신 분이 그리스도가 된 상태 아닌가요?
그리스도가 죄인 안에 살아있다고 한다면 그 죄인은 죽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죄인이 죽은 것이지
성도를 죽었다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성도가 죽었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죽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가 아닌지요?
하라, 하지말라라는 말씀을 보고 그 말씀에 의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알게 하시는
상태에 놓인 사람이 성도라면
말씀에 의해 죽을 수 밖에 자신(A)과 그것을 알게 된 그리스도의 몸(B)이 있는데
혹시 손목사님께서는 A상태를 죽은 성도라고 잘못 말씀하신 것은 아닌지요?
A는 성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면 A와 B 상태를 역사적 동일 실존인물로서 결합코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성화론과 무엇이 다른가요?
A상태가 확대됨에 따라 B의 상태로 옮기신 십자가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게하시는 하나님의 조치를 A상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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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죽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
손무성 (Homepage) 2006-09-28 18:16:18, 조회 : 232, 추천 : 1
질문하신 것을 나누어 말씀하겠습니다.
질문1."바울이 말하는 ‘하라’, ‘하지 말라’체는 결국은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새로운 새생명이 들어와서 성령의 관리 하에서
그 성령의 은혜에 임한 살아있는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지,
죽은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여기서 죽은 성도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답변1: 이 목사님과의 논쟁 중 했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성도가 죽어있다는 것은,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라’, ‘하지 말라’체를 회개용으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죽어있기 때문에 그걸 너는 죽어있는데 하려고 하느냐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목사님께서 말씀하시잖아요. 바울이 말하는 ‘하라’, ‘하지 말라’체는 결국은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새로운 새생명이 들어와서 성령의 관리 하에서 그 성령의 은혜에 임한 살아있는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지, 죽은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 이 말은 바울의 ‘하라와 하지 말라체’의 명령어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가를 말하고자 한 내용입니다.
먼저 바울의 하라와 하지 말라 라는 명령의 목적은 회개용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참조: 상단메뉴 -성경연구 - 칼럼내에 “서신속의 하라와 하지말라의 명령어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명령어들의 목적은 성전 된(성도들에게) 이들 속에서 넘쳐나야 할 ‘주의 이름’을 높이게 하시기 위한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명령어들을 ‘성령 안에서.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사랑 안에서... ’(바울의 특이한 용어)라는 말씀을 하며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명령의 집행자는 성령, 주님, 믿음의 주, 사랑의 주체자...가 되어서 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윤리 도덕의 도약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도가 삶 속에서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해서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기 의로 삼는다면 마땅히 회개해야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성령 안에서 하라와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주체자가 되어 해보려 한다면 자신의 할 수 없음의 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역시 회개해야할 부분이지요.
이런 이야기 속에 ‘죽은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죽은 성도라는 말은 에베소서2:1의 말씀 속에서 말하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런 차원에서 성도가 ‘이전에 죽은 상태였다’는 것을 두고 ‘죽은 성도(여기 성도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인간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면 더 좋았겠지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성도는 에베소서2장 1절에서 보듯이 죽은 상태가 아니라, 살리신 상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이전의 죽었던 상태로 있는 성도에게 성령의 내주가 가능한가 라는 차원에서 ‘죽은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라고 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6장 3절에서 인간이 육체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지 않으셨던 것과 같이, 죽은 상태로 있다고 하는 성도에게 어떻게 내주 하며 교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의 하라와 하지 말라 라는 명령어들을 수행할 수 있는 몸은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이지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인간에게는 나올 수 없습니다. 만약 나왔다고 한들 ‘주의 이름을 높일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행위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나온 흉내에 불과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성도에게만 그 명령들에 대해 주안에서, 성령안에서... 발생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이 거하는 성전을 통해 ‘주의 이름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2.
질문 :성도라는 말이 내가 죽고 내 안에 사신 분이 그리스도가 된 상태 아닌가요?
답변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살펴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 이 말씀의 핵심은 이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말은 더 이상 너가 주체가 되어 뭘 해보겠다는 것은 이제 버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이 ‘네가 주체가 됨으로 결말을 맞이한(할) 모습(저주) 이다. 그러니 너는 더 이상 행위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인 ‘내가 사는 것’은 누가 살게 해서 사는 것이냐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성도는 ‘십자가에서 죽은 너의 행위의 결과 내세우지 말고, 살려서 성도 되게 한 분을 높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롬1:17)하도록 살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체가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십자가에서 같이 죽고 같이 살리셔서 이제 생명의 주체자 이신 예수님께서 책임 지시겠다는 이 은혜를 헛되이 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강력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질문 : 그리스도가 죄인 안에 살아있다고 한다면 그 죄인은 죽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죄인이 죽은 것이지 성도를 죽었다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성도가 죽었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죽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가 아닌지요?
답변 : 저는 성도를 죽었다 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였으나 주의 피로 말미암아 살아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역시 살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생명인데 어떻게 죽어 있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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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죽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
박윤진 2006-09-28 19:02:36, 조회 : 156, 추천 : 1
성도가 죽었다라는 말과 죽은 성도가 같은 말처럼
저는 해석되는데,,
"여기서 죽은 성도라는 말은 에베소서2:1의 말씀 속에서 말하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런 차원에서 성도가 ‘이전에 죽은 상태였다’는 것을 두고 ‘죽은 성도(여기 성도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인간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면 더 좋았겠지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라는 답변에서 말씀하셨듯이
죽은 성도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하신다면
처음부터 질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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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죽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
손무성 (Homepage) 2006-09-28 22:51:13, 조회 : 161, 추천 : 1
다시 신약신학 G.E 레드 강의 녹취 내용을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녹취로 전달 어감을 느끼지 못하시면 녹음된 부산 강의(우리교회 홈 부산 강의)를 한번 들어 주십시오.
성도에 대해 죽었다는 차원에서 말하고 있지 않고 도리어 저는 '성도는 살아 있다는'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갈라디아 2: 19-20절 말씀을 우리가 다시 상고할 필요가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역한글]19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19-20)
[개역개정] 19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차이점은 [개역한글]은 '산 것이 아니요' 라고 되어 있고 '[개역개정]은 '사는 것이 아니요' 라고 되어 있습니다. 번역은 개역개정이 잘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오해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산 것이 아니요' 라고 하는 것은 죽었다의 반대 차원에서 '산'이라는 의미로 오해하기 싶습니다. [개역한글]19절의 말씀을 보면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십자가 사건이 '율법의 행위' 내세우는 인간의 결말은 고스라니 보였고, 성도 역시 율법에 대해 사는 자가 아닌 하나님에 대해 사는 자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의 의미는 개역개정의 '사는 것이 아니요'라는 의미로 전달해야 바로 이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2:20의 '산 것이 아니요'라는 부분에서 성도를 보는 시각을 '살았느냐 죽었느냐' 라는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율법의 행위'로 사는(율법의 행위로 살아가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요' 라는 의미로 이해해야합니다. 그럴 때 19절 말씀과 연결하여
'율법의 행위'로 사는 나는 '십자가에 함께 달렸기 때문에' 즉 결말을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주체가 되어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을 당연시 하는 것이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주체가 되게 하여 사는 것을 바울은 '믿음 안에서'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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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죽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
박윤진 2006-09-29 10:29:20, 조회 : 125, 추천 : 1
다음과 같은 글 때문에 제가 손 목사님께 자꾸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 즉 결말을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주체가 되어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을 당연시 하는 것이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것은 손 목사님께서 당연시 해야 한다는 것 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렇게 살고 있는 나를 죽이시는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이 바로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 아닙니까?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이 또 다른 나의 법이 되고 맙니다.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그 행위를 가지고
또 십자가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가 바로 성도라고 하는 것이고
그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 살리시는 영에 의해서 살아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말꼬리 잡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아래의 답변 또한 아리송합니다.
"이제 내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주체가 되게 하여 사는 것을 바울은 '믿음 안에서' 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주체가 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성도라면
저는 그 의견에는 반대입니다.
그 분이 주체가 되는 것이면 되는 것이지
성도가 주체의 자리를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십자가란 모든 행위를 부정하는데
그리스도에게 주체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행위만은 필요하시다는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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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죽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
손무성 (Homepage) 2006-09-29 13:42:15, 조회 : 151, 추천 : 1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9:16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위의 말씀들 속에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라고 합니다. 성도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때 새생명 가운데 있다는 것은 자신을 아는 자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신인가 하면 갈 2: 20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서는 도무지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와 허물로 죽었다 산 자가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자요. 믿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알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사는 자는 마땅히 날마다 죽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신의 몸에서 삐져 나왔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없다은 말을 하는 것은 주의 복음을 복음으로 전하는 일과, 자기 백성 만드는 일 모두가 바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해 불려진 자요, 복음 전함 역시 시켜서 부득불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자신이 뭘 자랑할 것이 없는데 또 자신이 한 것 같은 느낌이나 내세움이나 있을까 싶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 하게'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에 자신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박윤진님의 질문1 :
"즉 결말을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주체가 되어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을 당연시 하는 것이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것은 손 목사님께서 당연시 해야 한다는 것 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렇게 살고 있는 나를 죽이시는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이 바로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 아닙니까?"
답변 :
"즉 결말을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주체가 되어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을 당연시 하는 것이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위의 바울의 입장에서 말씀한 것입니다. 성도란 성령의 지도하에 있는 자들입니다.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해. 의에 대해 , 심판에 대해,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알려 주신다고 합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기 까지 하시며 관리하고 있습니다.
성령 : '네 자랑하라고 복음 전도 하게 했냐'
성도 : 아니요. 나는 아니지요.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내가 내 몸을 쳐 복종 하게 함)
질문의 내용에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렇게 살고 있는 나를 죽이시는 십자가' 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 박윤진님께서는 결과적인 것만을 가지고 접근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정은 다 버리고 말입니다. 성도에게 성령은 내주하십니다. 내주하시면서 날마다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마땅히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알려 주시니 성도는 마땅히 '내가 날마다 죽노라'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을 살아있는 성도가 해야지요. -겨우 할 수 있는 것 이 정도입니다. 살아있는 성도라는 것은요...
그렇게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 그 자리(성전)에 성령은 '주님의 이름'을 높이게 할려고 부른 '성령이 거하는 성전에(성도, 그리스도의 몸)' 주의 이름만 높이는 일을 할게 아닙니까?
박윤진 님게서 질문하신 부분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렇게 살고 있는 나를 죽이시는 십자가만 자랑하는 사람이 바로 성도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십자가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 아닙니까?"
라고 해야 할 때는
성도가 부름심의 목적한 바가 '주의 이름 높이며, 주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케 하기 위함인데'
성도의 마땅한 자리를 거부할 때 주께서는 징계하시고, 강압적으로 나를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나를 죽이시는 일을 하신다'라고 해야합니다.
이를 때 십자가를 다시 자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성도라는 것입니다.
이게 십자가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을 다루심 아닙니까?
2.질문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됨이 또 다른 나의 법이 되고 맙니다.
"율법의 행위로 사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그 행위를 가지고
또 십자가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가 바로 성도라고 하는 것이고
그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 살리시는 영에 의해서 살아있는 것이지요....
답변 :그러면 성도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또 다은 율법의 행위입니까?아니지요.
박윤진님께서 위의 질문에서 말하고 있는 " 십자가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가 바로 성도라고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율법의 행위"입니까? 이니지요.
3질문 :
"이제 내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주체가 되게 하여 사는 것을 바울은 '믿음 안에서' 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주체가 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성도라면
저는 그 의견에는 반대입니다.
그 분이 주체가 되는 것이면 되는 것이지
성도가 주체의 자리를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십자가란 모든 행위를 부정하는데
그리스도에게 주체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행위만은 필요하시다는 의미입니까?
답변 : 박윤진님은 행위가 뭔가를 다시 정리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박윤진님은 행위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생각하거나 내어 주거나 그러면 다 행위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위라고 하는 것은 ' 내가 근거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 보겠다'고 내 놓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주께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자리 여기 내어 놓습니다. 주께서 하셨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주께서 이룬 것다. 나는 내 몸을 쳐서라도 복종시켜야 함'이건 것 까지 행위하고 하려는 버릇을 가지고 있네요.
행위의 정의를 다시 이해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분이 주체가 되게 하여 사는 것이란 바울이 '믿음안에서, 사랑안에서, 성령안에서 행하라.... ' 라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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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죽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
박윤진 2006-09-29 14:17:33, 조회 : 173, 추천 : 2
아하, 이제 손무성 목사님과 저의 차이점을 알았습니다.
손목사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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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진님은 행위가 뭔가를 다시 정리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박윤진님은 행위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생각하거나 내어 주거나 그러면 다 행위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위라고 하는 것은 ' 내가 근거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 보겠다'고 내 놓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주께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자리 여기 내어 놓습니다. 주께서 하셨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주께서 이룬 것이라고 나는 내 몸을 쳐서라고 복종기켜 아니라고 할렵니다. 이건 것 까지 행위하고 하려는 버릇을 가지고 있네요.
행위의 정의를 다시 이해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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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사님께서는 내가 근거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 보겠다는 아담의 속성을
과소평가하고 계시다고 생각됩니다.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하고
주께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속내를 깊이 감추고 있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지금 한국교회에서 손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주께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자리 여기 내어 놓습니다. 주께서 하셨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주께서 이룬 것이라고 나는 내 몸을 쳐서라고 복종기켜 아니라고 할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 곳이 있나요?
다 하나님이 하셨고, 다 주께서만 하실 수 있다고 장막을 치고
그 안에서는 자신들이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한 것들을 행위라고 정의해야지 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결국 끝까지 보면 누가 했는지 안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해서
성령이 주체가 되어 하신 열매의 목록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 열매의 목록을 작성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는 아예 그 장막에 불을 질러버리신 것입니다.
손목사님 말씀대로 끝을 목격하게 하신 것입니다.
박윤진 정의한 행위보다도 더 크고 세밀하게 인간의 행위를 정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십자가 위의 하나님의 죽음 아닙니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의가 없다는 것 아닙니까?
심리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던지 인간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은 죽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그렇게 불려주신 분의 이름만 자랑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조차 주님께서 죽으신 자 가운데에서
살리시는 영으로만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이라는 것은
주님의 영의 관점에서 보면 구별이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믿음이고 주님의 행함인데
그리고 이것을 자랑하라고 신비한 빛속으로 우리를 들어오게 하셨는데
주님에게 자리를 내어드림이 성도의 마땅한 바라면
그 내어드림은 또 어떻게 증거됩니까?
결국 십자가의 은혜 아닙니까?
그러니까, 결국 십자가만 자랑하게 되는 것이지
성도로써의 어떤 모습(내 몸을 쳐 복종케 함, 주께 자리를 내어드림 등)이 요구되거나,
믿음과 행함은 결국 '믿음에서 믿음으로'와 동이어이다라는 증명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 안에서 이야기 하는데
듣는 사람들이 자꾸 십자가 밖과 연결시켜달라고 하니까
이해가 안되고 모순되는 것같고
행위를 나름대로 정의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행위에 대해서는
나로부터 나온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비록 '주님께 제 자리를 내어드려야지요'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인의 괴수임이 들통난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주님안에서, 성령안에서, 사랑안에서 라는 말이 없었다면
믿음과 행함은 모순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고
목사님께서는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믿음과 행함을 한 번도 나누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성령안에서, 사랑안에서'라는 말씀은
십자가의 은혜를 달리 표현한 것 뿐이지
믿음과 행함이 오직 믿음이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코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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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죽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
손무성 (Homepage) 2006-09-29 16:41:41, 조회 : 238, 추천 : 2
구원은 주께서 시작하시고 주께서 마무리 하십니다. 거기에 성도는 있고, 성도는 '성령안에서' 주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동원되고 있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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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찾아 볼려고 했는데... ... 이젠 겁부터 나네요.
염봉근 2006-10-02 23:46:36, 조회 : 191, 추천 : 0
이근호목사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안에서 문안 인사 여쭙니다.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먼 곳에서 서울 마포구 성산동으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는 집사(男)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주의 말씀으로 교제를 나눌 교회를 찾다 지쳐(?) 실례를 무릅쓰고 여쭈어봅니다.
번듯한 예배당이 아니라도 암 상관없고 작은 성경공부모임이라도 좋으니, 인근의 교회를 소개받고 싶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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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혼자 찾아 볼려고 했는데... ... 이젠 겁부터 나네요.
정판옥 (Homepage) 2006-10-03 03:20:47, 조회 : 171, 추천 : 0
(02) 2608-6140 김명현 목사님
(02) 363-1707 한윤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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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찾아 볼려고 했는데... ... 이젠 겁부터 나네요. 염봉근 2006/10/02 0 192
[re] 혼자 찾아 볼려고 했는데... ... 이젠 겁부터 나네요.
고관규 2006-10-03 07:26:48, 조회 : 178, 추천 : 0
ㅎㅎ 샬롬해요
모두에게 든든한ㅡ 주님의 평안을 빌어 봅니다.
어제 시내 모처에서...점심을 하고,,,무심코, 전보상대를 보았는데 무슨 누런 복사지 크기의
종이가 붙여져 잇더라구요,,,그래서 보았는데 ㅠㅠ
무슨 둘.. 다.. 이단인 주제에 주동자가 상대를 조목 조목하게 성경을 감히,,언급하면서
비판하고 죽이려고 하는 글을 보앗어요..
ㅡㅡㅡ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지요... 앞으로 기가막힐 일이 벌어 질 것을 알게 됩니다.
무지몽매한..오늘의 교인?들은 오히려 불쌍하다고 보는 것이 정확 할 것입니다.
눈이 스스로 멀고,,,또 ㅡ누가 멀게 한 오늘의 백성들...
그래서 님의...구도자적인 복음의 사모함을 감사하게 됩니다.
저도..... 그런..... 교회를 갈망합니다.ㅠㅠㅠㅠㅠ... ㅜㅜㅜㅜㅜ
속이 컬컬?하여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읍니다.
목사님이 메모하여 주신 주님의 교회를 만나기 원하거든요.
교제권의 회복을 갈망합니다. 교제권...을 말입니다.
성숙한 형제들의 도전과,깨우침을 내 것으로 소유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전 이미..오래전부터..이근호 목사님의 모든 글들을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보아왔고...읽었어요
복음의 회복.꺼꾸로 본 한국교회.십자가를 아십니까.성경신학의 세계등등....한 7권을 정독하엿죠
이미...10 년여년전에 말입니다.ㅎㅎㅎ
서서히 주님이 이 곳을 쓰실 것을 확신합니다.
준비기간이 때론...길다고 느낄 수는 잇었을 것입니다만....
이제 ㅡㅡㅡㅡㅡ 가속도가 ㅡㅡㅡㅡ붙을 것입니다.
그런면에서....십자가마을은.....숨어서 !! ㅎㅎ ....있기 보다는 전면으로ㅡㅡㅡ나와야 합니다.
재정도 자립..기반이 되엇을 것으로 사료되며..후원자들은 계속 ㅡㅡㅡ준비될 것이죠 !! 인력과..각종 전국의 ? 네트워크의 기초가..준비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만 45세의 남자집사입니다.
무섭게 질문도 할 것이고,,,징그럽도록 의문도 주게 될 것입니다만....
항상,,,그 근저에는 사랑이 기초할 것입니다.
십자가마을에 오랫동안 빚을 질 것 같아요...
복음의 빚과....거저 먹게 될 각종 은혜와,.영감들을 말입니다.
이 시대는ㅡㅡ 이제 더.,....이단들이 설치게 될 것이죠
몸서리쳐 집니다.
매일 이 곳에 들어 올 생각입니다.
이 새벽에....괜히 오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근호 목회자님과,그 분의 신실한 동역자 목회자들께
항상 주님의 후원과...위로와..능력이... 위로 부터 쏟아지시길
이 아침에 바라는 겁니다.
부족한 이 형제를 위해 기도해 주십쇼...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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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혼자 찾아 볼려고 했는데... ... 이젠 겁부터 나네요.
이근호 2006-10-03 19:20:05, 조회 : 165, 추천 : 0
복음 전파 책임자는 따로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예'가 되고 '아니오'는 전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십자가 복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사님이 이렇게 사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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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혼자 찾아 볼려고 했는데... ... 이젠 겁부터 나네요.
고관규 2006-10-03 20:39:53, 조회 : 135, 추천 : 0
주님이 처음부터 주도권을 가지고 시작하신
싸움이기에 주께서 끝까지 마무리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목사님의 후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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