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이스라엘?] 2006-02-09
[야곱? 이스라엘?] 2006-02-09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야곱? 이스라엘?
김대식 2006-02-09 23:59:32, 조회 : 220, 추천 : 11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의 얍복강가의 환도뼈 부서진 사건으로 이름이 교체된 그 시점 이후로 (기준으로 해서)
성경은 분명 야곱이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이라고 같은 구절 속에서도 헷갈리게 서술되어 잇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복수 개념은 알수 있으나
다음 구절(일단 창세기만 살펴보면)
복수: (창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좀 애매하고 : (창 34: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사람 사람이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치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이건 기준: (창 35:10)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들었더라 그럼 그 뒤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라고 해야 맞겠죠 ? (창 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이게 참 헷갈립니다. 단수 한 명 에게 이름이 혼용 됩니다. : (창 46:2)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왜 또 여기서는 야곱의 아들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 아들이라고 하는지 ? (창 46: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발행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의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비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웠고』
이건 복수 개념이 분명 : (창 46:8)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이 이러하니 야곱과 그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이건 분명 단수 인데 이름 혼용으로 사용: (창 47:31)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이것도 마찬가지 : 여기서 뭔가 이름을 혼용하는 단서처럼 작용됩니다. 마치 언약이 벌리는 일들이 따로 있다는 듯이?(창 48:2)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여기서도 혼용 (창 49: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여기서는 분명 야곱 속에 이스라엘이 따로 존재하는냥 보입니다 (창 49:7)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야곱의 전능자 다로 있고 이스라엘 반석 목자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창 49: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즉 무작위 로 야곱으로 이스라엘로 표현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분명 이유가 있고 무작위가 아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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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야곱? 이스라엘?
이근호 2006-02-10 09:08:49, 조회 : 257, 추천 : 16
어떤 식의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드러내는데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학급에서 어떤 학생에서 심부름을 시키니 잽싸게 잘 합니다.
그로 인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이 '철수'다마는 이제부터는 '날쌘돌이'라 해라"
이 때부터
그 철수는 선생님에 의해서 '철수'라는 이름과 '날쌘돌이'라는 이름이 혼용되어 불리워집니다.
이렇게 선생님이 그 학생의 이름을 혼용해서 부르는 이유는,
다른 학생들에게
그 학생에게 담긴 특수성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창세기 흐름이 전체가 하나님의 언약이 일관되어 있음을 주목시키기 위해
야곱이 바뀐 이름을 군데군데 섞여 넣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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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님에 관한 궁금함
박철현 2006-02-14 03:52:20, 조회 : 403, 추천 : 8
이근호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뵌 적은 없지만, 그래도 책을 통해서, 강의 (설교)를 통해서, 테입 등을 통해서 말씀을 꽤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목사님에 대한 고마움을 늘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늘 따라 다니는 궁금함이 있습니다. 왜 이근호 목사님을 통해야만 할까라는 의문점입니다.
목사님도 분명히 여러번 강조하셨던 바로 "성령께서 친히 선생이 되셔서 가르치실 것"인데, 왜 제가 만난 사람들은 이근호 목사님과 "다른 소리"를 낼까 하는 점입니다. 성경에 어떤 선지자의 불평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단 한명이라도, 뭔가 비슷한 소리라도 내 뱉으면 역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구나 이런 생각(희망)이 들텐데, 과연 "이근호 목사님이 아니면 안되는가?"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목사님께서 제 요지를 파악하셨으리라 믿고 그만 줄입니다. 저만 가지고 있는 의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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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 목사님에 관한 궁금함
이근호 2006-02-14 08:34:12, 조회 : 468, 추천 : 20
그런 경향은 옛날 뉴턴(과학자)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황우석 교수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강해 설교한 분은 박영선 목사님 밖에 없습니다.
즉 교회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려주는 목사는 박영선 목사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일부 목사도 막 외국에서 들어온 구속사적 강해 설교나 문맥을 따라 강해하는 설교를 흉내를 내었습니다만
그 모든 시도가 다 교회를 키우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박영선 목사님 이 전의 목사들이
제목 설교를 통해
교인들은 교회에 얶매이기를 노리는 부흥사 수법의 설교한 반면에
박영선 그냥 교인과 성경을 직접 만나게 해주는 강해 설교를 국내 최초로 하셨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박영선 목사님이
기존 한국 교회로부터 '이단'소리를 듣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신학에 대해 배울 만큼 배웠고 알만큼 안 사람이 기존 한국 교회로부터 이단 소리를 듣는 것을 전혀 괘이치 않았던 용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신학을 거부하고 짧은 반짝 계시에 올인한 무식한 이단들이 그 당시에도 많이 설쳤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용기 계열, 김기동계열, 구원파 계열, 워치만 니 계열, 석원태 계열, 이동원-옥한흠-하용조 계열 등입니다.
뭔가 독특하게 튀어보면 목회 성공하게 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박영선 목사님은 이런 사람과 달랐습니다.
정말 진리가 무엇이냐에 관심을 두고 교회 존립과 상관없이 그냥 성경에 흐르는 일관된 맥을 잡아서 교인편에 서서 설교를 한 것입니다.
박 영선 목사님이 왜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증거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그들이 알고 있는 신학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고 쉬지않고 계속해서 노력을 했다는 겁니다. 즉 안일에 빠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
둘째, 그들이 신학지식을 무슨 목적에다 다 퍼부어넣는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목회자 본인의 영달과 능력의 대단함을 과시하기 위해 교회 사업에 매진한다는 겁니다.
세째, 그들이 성경지식을 교회 사업에 이용해서 쏟아넣는 것이 하나님에게 크게 저주받을 지옥갈 목회자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네째,(특히 이 점이 중요한데) 박영선 목사님은 자신이 한국 교회를 개혁하겠다든지 하나님이 특별히 자기를 들어서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본인이 하나님 앞에 무엇이 옳은가만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자 이렇게 되니
박영선 목사님의 가치를 아는 것은 본인이 나중에 의식하든 아니하든 타인들이 알아주는 겁니다. 타인들이 일방적으로 박영선 목사님을 보고 "귀하다. 정말 한국 교회의 강해 설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평하는 것입니다.
박영선 목사님보고 "왜 하나님께서 당신만이 특별히 제대로 강해 설교를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박영선 목사님은 아마 이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일하시는 분을 세웠지만 제가 운이 나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을 뿐입니다. 제가 유명하고 칭송받는다고해서 하늘 나라에서도 그와 비례해서 유명하고 칭송 받지는 않겠지요"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박영선 목사님의 강해 설교를 숙달시켜 그것으로 목회 성공해 보겠다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박용기나 김홍전식 강해 설교를 익혀서 자신의 설교 스타일로 삼는 또다른 계파가 형성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뭘까요?
이들은 인간들이 얼마나 쉽게 이단이 된다는 잊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단 소리듣기 보다는 '재대로 정통'이다는 소리를 주위로부터 듣기를 원합니다.
신학에 무식해서 그런 소리 듣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고 정말 많이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위로부터 이단 소리 듣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독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초창기 박영선 목사님은 바로 이런 모욕을 영광으로 여기면서
교회 위주가 아니라 교인들에게 직접 유익되는 식으로 설교를 하신 분입니다. 자신을 병약해서 언제 죽을 지 모를 인간이니까 말입니다. 그 딴 교회 욕심은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 옛날의 한 때 순수함으로만 고고학 유물같은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오로지 복음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지는 아슬아슬 순간들을 지내왔습니다.
예를 들면, 대장간 출판사의 박기삼 사장님이 그런 분입니다.
돌아오는 것은 가난 밖에 없지만,
그래도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성도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그것만 생각하시면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 외에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소리없이 봉사한들 알아주는 이없이, 공기 중의 먼지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학사나 철학사를 보아도
대단한 업적을 타인에게, 혹은 권력자에게 빼앗긴 억울한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다는 것, 참으로 위험한 순간입니다.(누가복음 16:15)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귀를 지었기에 듣고 계시고, 눈을 만드셨기에 보고 계십니다.(시 94:9)
다 아십니다.
늘 공부한다는 것, 이것은 전에 이름없이 봉사하신 그 봉사와 희생의 덕을 많이 훔치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주님께서는 이름없는 희생자들의 수고를 그 시대에 유용하게 사용하게끔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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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감사합니다.
박철현 2006-02-15 01:37:13, 조회 : 272, 추천 : 9
목사님 답변 덕분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호기심 어린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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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정경 형성사?
김대식 2006-02-16 16:05:06, 조회 : 208, 추천 : 7
검색을 해보니
성경66권, 오랜 시간 거치며 정경으로 선택
구약은 주후 90년 얌니아회의, 신약은 주후 397년 카르타고회의 확정
라고 나오네요.
그런데 방금한 워드작업과 또 교회사 등등을 통해서 볼때에
성경의 정경 형성사 곧 형성 역사라는것이 말도 안되는 인간 손에 닿는 이상 조작품이다는 것 밖에 안되는데
66권 자체는 결국 성경 스스로가 사도직을 세우고 패하듯 스스로 형성되었는데 역사적 근거를 찾을수도 없고 찾는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 아닙니까?
교회 역사 자체가 성경말씀을 거부하는 것만 일부러 골라 골라(흉내내기도 어려울 것 같음) 잡다하게 모으듯...
어떤 개혁주의자는 그 역사적 확정 시기 자체가 참 신비다 라고만 모호하게 붙여버리던데(역사를 포함시켜서)
왜냐하면 위경 외경 등등의 수많은 역사의 공격이 있었기에 ...
역사적 근거를 찾겠다는 발상 자체를(즉 교회 정통성 권위와 연관지어 볼때에) 말씀을 거부한다는 증거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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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경의 정경 형성사?
이근호 2006-02-16 17:36:29, 조회 : 307, 추천 : 10
>사도시대가 끝나면 성경도 완료됩니다.
후대 교회주의자들이 뭐라고 자기 집단을 옹호하든지 말입니다.
오늘날 개인적인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은혜 받았어. 아니야! 아니야 최근을 읽어본 창세기에 은혜 받았어 아니야 아니야 가장 최근에 읽어본 시편에 새삼 은혜받았어" 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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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있습니다^^
손승범 2006-03-03 19:02:39, 조회 : 181, 추천 : 13
누가복음 16장의,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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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있습니다^^
이근호 2006-03-03 22:05:36, 조회 : 250, 추천 : 15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기를 싫어하는 너희 바리새인들이야 말로 실은 예수님의 존재 가치를 모르는 지옥갈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지혜는
세상의 윤리 인식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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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질문 있습니다^^
정판옥 (Homepage) 2006-03-03 21:31:11, 조회 : 197, 추천 : 11
문자적으로 보면, 부정축재자가 졸지에 칭찬을 듣게 되다니! 할 수도 있겠지요.
청지기가 주인의 것을 가지고 그 주인에게 빚진자를 탕감해 주었는데,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자칭 빛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율법을 가지고 상대방의 빚을 탕감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의를 자랑하고, 상대방을 정죄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재물은 율법에 대한 비유이고, 불의한 청지기는 탕감(용서)해 준자로서,
불의의 재물은 율법을 가지고 상대방을 정죄하지 않고,
율법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상대방을 용서해 주고,
덮어 주고,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불의 재물로 친구를 삼을 수 있는,
즉 영원한 용서를 베풀 수 있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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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에게 내어줌의 의미?
장병엽 2006-03-09 12:22:57, 조회 : 194, 추천 : 10
*딤.전1장(1;19~20)
의미와 구원의 내용까지 어찌되는지 추측 할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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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사단에게 내어줌의 의미?
이근호 2006-03-09 12:58:05, 조회 : 298, 추천 : 12
추측이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주었습니다.
문제는
'사단에게 내어주었다'는 현상을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인식의 틀 안에서 재조립하여 규정지어보겠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가 고기 잡을 때 예수님을 만나놓고서 "선생이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라고 했고
마태복음 16:16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나중에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세 번씩이나 모른다 했습니다.
이 세 가지 각기 다른 경우의 상황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심리 상태를
현재 21세기 현대인들이 자신의 인식의 틀로서 재조립하여 규정지어 보려고 한다면 이것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어떤 말씀도
인간의 인식의 틀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그 때 그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통해 어떤 일을 벌리시는가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사단에게 내어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사단에게 내어준 경우'를 특정 현상으로 못박게 되면
1. 자신은 그런 행동을 남들에게 안 보일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내부적으로 숨기고, 위장할 것이 뻔하고
2. 남들이 그런 행동을 보이면 그것을 '사단에게 내어준 경우'라고 정죄할 게 뻔합니다.
따라서
'사단에게 내어준' 경우는
"주님께서 여전히 살아계시는 구나"라는 의미가 담깁니다.
마치
사도행전 5장에서 헌금을 속여서 낸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경우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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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부업에 관한 질문입니다
김대영 2006-03-15 22:35:58, 조회 : 232, 추천 : 14
안녕하십니까 목사님, 글을 보다가 목회자의 부업에 관하여 반대하시는 목사님의 글을 보고 질문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자나 일반 성도들이나 리더들이나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다 여기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성도들은 직장생활을 잘 하면서도 예수를 믿고 살아갈 수 있는데 왜 목회자는 안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현 한국교회 안에서 목회성공을 꿈꾸며 목회를 했다가 살기가 힘드니 부업을 하면서 사는 목사님들과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그들은 어차피 엉뚱한 방향을 잡고, 그 엉뚱한 성공을 위해 부업을 하는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사님 글에 보면 목회자가 부업을 가지면 소명을 버린 것이라 하셨는데, 목사님 말씀대로 목회자만 소명 받은것 아니라는 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소명을 받았을 터인데, 그럼 직업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모두 소명을 버린것이 되는지 또, 직장생활을 하면서 리더로 섬기는 사람들과 목사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단순히 목사하다가 먹고살기가 걱정이 되어서 부업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부업'이란 표현을 써서 그렇지 그냥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복음증거하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그중 한명이 신학을 하여 자기시간 쪼개어 목사로 세워져서 모여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해 간다면 그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목사님의 글을 보면서 그 뜻은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목회자의 부업이 아예 안된다는 말인지, 하다 안되서 부업을 가진 목사에게 해당되는 말인지 알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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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목사의 부업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6-03-16 07:41:39, 조회 : 319, 추천 : 13
기존의 목사직 이해를 갖고 있는 자라면 부업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목사직은 그것이 자기 생계형 목사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증거하는 봉사라는 측면에서 목사직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을 관여하든지간에
그 분은 최종적으로 오로지 복음 전파에 일생을 걸기에 그런 생계활동 자체도 목사직의 연장이라고 보여집니다.
전에 섰던 그 글은 '빛과 소금'이라는 잡지사에서 요구라는 글이라서 그들 잡지사에서 나름대로 정립된 목사직 틀이 따로 있기에 제가 반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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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은총이란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이미아 2006-03-21 16:24:27, 조회 : 134, 추천 : 12
흔히 말하고 있는 일반은총이란 의미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이런 단어를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학교를 다니는 의미가 무엇이며 공부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학교에 가서 국어, 영어, 수학, 물리, 의학, 논리학, 음악--등등의 학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에 기독교인이 일반은총 영역이라는 이러한 학문들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세히 답변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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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일반은총이란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이근호 2006-03-21 18:34:54, 조회 : 206, 추천 : 12
일반은총이란
기독교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구원론에 급급하다보니 나온 종교 개념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해서
노아언약입니다. (창세기 8:20-22)
구원론에 급급하다보면
은총을 둘로 나누게 됩니다.
하나는 일반은총이라고 해서 불신자들에게 골고루 주는 생존와 섭리의 은총이 있고,
이 일반은총과는 달리 신자에게 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특별은총이라해서 '거듭남'의 혜택을 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자에게는 불신자에게 없는 것을 추가적으로 받게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예수님의 뜻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은총이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언약 안에서 언약 성취를 근거로만 주어집니다.
그런데 언약 성취자는 결코 인간이 아닙니다.
따라서 언약 성취자도 아닌 인간이 은총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은 곧
그 은총에 준해서 심판과 저주가 합법적으로 감행된다는 뜻입니다.
즉
은총받아놓고서도 은총의 주인공(언약성취자)를 못알아본다면 결국 영원한 형벌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신자의 경우에는
이점을 생각해야 됩니다.
"왜 우리는 진적 멸망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은 대상이 되었는가?
왜 우리는 과학, 종교, 예술. 문학, 철학, 신학, 스포츠, 구제, 이웃 사랑, 이 온갖 것을 통해서 죄악된 행위를 계속 뿜어내고 있으면서 여전히 구원이 되는가? 그것은 십자가의 사죄의 은혜 때문이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성도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평생에 무심하게 시간보내지는 않습니다. 사업을 하든지, 백수가 되어서 살든지,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를 하든지 뭐든 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을 통해서
자신의 전적 죄인임을 깨닫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겁니다.
언약적으로 봐서 죄란
예수님에 대한 은근한 적개심을 두고 말합니다.
성도가 되었든 불신자가 되었든 평생을 두고 주님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 나를 망하게 하느냐"라는데서 오는 적개심이요, 왜 나를 주의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만드느냐에 대한 적개심입니다. "
그런데 성도만이 이런 죄에서 구원할 근거는 십자가 피 밖에 없음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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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잘 안 올라가네?
한광수 2006-03-25 00:15:23, 조회 : 205, 추천 : 7
<어느 기도 많이 하신다는 성도님이 하는 말>
"오늘은 기도가 잘 올라가지 않네요? "
그분은
어떤 날은 "기도가 잘되네요? 목사님이 기도 많이 하셨나봐!"
이러한 성도에게 어떤 권면의 말을 해주어야 하나요?
아니면 칭찬을 해주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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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기도가 잘 안 올라가네?
이근호 2006-03-25 02:07:42, 조회 : 276, 추천 : 8
기도란
하늘의 뜻이 자신에게 덮쳐지도록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경 말씀이 자신에게 덮쳐서 자신이 말씀의 실현 속에 있게 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에 휩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세요.
기도문이 술술 풀리는데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뜻과 비젼과 포기가 사라지는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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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라 하신 부분에 관하여...
김대영 2006-04-02 17:31:26, 조회 : 126, 추천 : 0
목사님 오늘 성경을 보다가 의문이 들어서 질문드립니다. 마9:30이나 마12:16 등 일반적으로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일을 나타내지 마라 하시는데 막5:19에서 거라사 귀신들렸던 자에게는 예수님이 하신일을 드러내라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럼 항상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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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라 하신 부분에 관하여...
이근호 2006-04-02 19:06:08, 조회 : 181, 추천 : 1
>기본적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야성을 숨겼습니다.
이것은 '메시야 은닉'이라고해서 20세기 초, 신약학계에서 이슈가 된 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의 메시야되심을 숨긴 것은, 자신이 체포되어 죽으시는 시점이 여전히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5장의 경우에는,
당시 권세자들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이 돼지 몰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괴로움을 메시야성과 관련해 영적으로 회복시켜 주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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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라 하신 부분에 관하여...
김대영 2006-04-10 08:21:55, 조회 : 73, 추천 : 0
목사님, 일이 있어서 일주일 만에 들어와 보니 답글이 있어서 먼저 감사다한말씀 전합니다. 목사님, 그러니깐 마을 사람들의 삶의 의미인 돼지를 몰살시키시고 진정
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즉 그들을 영적으로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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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라 하신 부분에 관하여...
이근호 2006-04-11 03:48:52, 조회 : 105, 추천 : 0
>영적으로 회복보다는 예수님 자신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하고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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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에 관한질문(밑에 질문을 하다보니 생각나서 합니다 ^^)
김대영 2006-04-02 17:38:51, 조회 : 131, 추천 : 0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생각이 나서 하나 더 질문 드립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간증에 관하여 자기 자랑이 대부분이기에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런데 바울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신 일에 관하여 간증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질문1. 그렇다면 자기자랑만 아니라면 간증 즉 자기에게 주님이 하신 일에 관하여 간증하는 것에 관하여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질문2. 그리고 전도폭발에서는 간증을 통한 전도를 적극추천하며 간증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까지 말을 하는데 여기에 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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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간증에 관한질문(밑에 질문을 하다보니 생각나서 합니다 ^^)
이근호 2006-04-02 19:16:13, 조회 : 214, 추천 : 1
>사도 바울 본인이
간증을 통한 구원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간증까지도 하나님의 계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랐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에 의해서 계시로 사용해야 될 사도 개인의 경험까지 본인이 겸손하게 고사하는 것도 도리어 성령님의 뜻을 훼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이후에는,
성령님께서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일하시고 구원도 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성경의 뜻과 상관없이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도집회의 이단성은 다름이 아니라
계시가 아닌 것을 계시라고 우기는데 있습니다.
계시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성경이 절대적 기준으로 수립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성경을 대체해서 일반적인 종교적 색채를 지닌 삶의 경험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의 해석은 반드시 '십자가 앞에서의 자기 부인'이 기본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종교적 경험은 '자기 긍정'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면,
복음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라 다 세상으로 온 것이다'라는 식으로 전개되게 마련인데 (요한 일서 2:16)
성경과 무관하게 간증을 해석하게 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성의 자랑거리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다'라는 쪽으로 나가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서 서울 대학교에 몇명 입학했느니, 우리 교회에서 사법고시에 몇 명이 합격 되었다든지, 교회가 사 놓은 땅 값이 올랐다든지, 사업이 번창했다든지 하는 것들이 다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간증집회는 다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지옥은 채우는 활동도 여전히 활발하게 벌어져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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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간증에 관한질문(밑에 질문을 하다보니 생각나서 합니다 ^^)
김대영 2006-04-10 08:25:53, 조회 : 74, 추천 : 1
감사합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기존교회란 곳에 몸담고 있는 저도 사실 이 부분에서 많은 부분 동이 합니다. 교회에 사람 모으는것은 되지만 자기부인은 성령님만 하실 수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리고 간증으로 전도함이 왜 사기인지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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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종교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김대영 2006-04-15 12:57:22, 조회 : 105, 추천 : 0
목사님, 인간의 종교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1. 모든 인간은 자기 존재의 연장선상에서 종교성이란 것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불교든 기독교든 끼워 맞춰지는 것인데, 성령의 역사란 이런 종교성을 깨고 들어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종교성 말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살아가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는 그 마음은 종교성이 아닌지요? 즉
솔로몬의 일천번제나, 다윗의 하나님사랑, 바울과 베드로의 예수 사랑과 같은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기본 종교성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종교심
과 신앙심이 어떻게 분리되고 또 혹시 서로 통하는 부분은 없는지 가르침 바랍니다.
2. 기독교가 타 문화권에 들어가면 토착화 된다는 말을 많이 하고 실제로 그 문화 속에서 토착화 되어 서로 상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을 보고 김용옥
교수는 절대 종교가 인간 속에 내재하는 절대성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p179 에서 이것을 한국인에게 있어서 風이라고 말하던데, 그래서
道風, 儒風, 基風이 된다고 하는데, 현재 각 문화권 속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의 상이한 현상이 과연 도올의 말과 같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럼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사랑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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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의 종교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6-04-15 15:06:15, 조회 : 126, 추천 : 1
1. 십자가는 지혜는 사람의 마음으로도 알지 못한다고 되어있습니다.(고전 2:9)
그런데 종교성이란 사람의 마음에 관한 것이고 또한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재현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심성입니다.
이것은, 곧 다른 사람이 십자가의 지혜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고해서 결코 나도 노력하면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복음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알아지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종교와 신앙심의 차이입니다.
2. 김용옥 교수의 말은 다 맞는 말입니다.
여기서 '맞다'는 라는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공통적으로 납득이 되고 수긍이 가고 동의가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더 지옥으로 몰리게 하기 위한 악마의 전략의 일종입니다.
기독교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오직 십자가 지혜로만 가능합니다. 비록 세상사람들에게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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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목사님 그렇다면...
김대영 2006-04-15 17:16:07, 조회 : 133, 추천 : 0
목사님 그렇다면
1. 기독교가 한 나라에 들어갈 때 기독교문화를 만들어낸다면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 예수를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까?
2. 그리고 진정한 신자는 어느 나라든 절대 토착화된 신앙을 가지지 않는 것 입니까? 믿음의 본질은 같으나 나타나는 신앙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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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목사님 그렇다면...
이근호 2006-04-15 17:28:13, 조회 : 154, 추천 : 1
1. 문화가 믿게 하는 예수님은 없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겁니다.
2. 어느 나라의 신자든지간에 토착화된 문화를 보여주게 됩니다.
단지 자신이 보여주는 토착화된 문화를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십자가로 인한 심판과 구원을 믿습니다.
문화는 다양해도 그 문화마저 십자가 피 앞에서 자기 부인하는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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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골라 vs 니골라당....목사님의 요한계시록을 듣고
이성민 2006-04-18 01:39:36, 조회 : 142, 추천 : 0
니골라라는 사람은 잘못이 없는데...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만든 당은 잘못된것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어떤분들은 니골라가 배교자라고 하기도 하고 해서...
그 니골라의 교리와 니골라당의 교리 그리고 그가 즉 니골라는 잘못된게 없다고 하신 말씀의 근거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사적근거나 자료등등 부탁드립니다...
제 사견은 니골라의 주장을 추종하는자들이 니골라당이었으니...니골라빼고 당원들이 나쁜게 아니라 니골라포함해서 나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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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니골라 vs 니골라당....목사님의 요한계시록을 듣고
이근호 2006-04-18 07:11:49, 조회 : 187, 추천 : 1
성경에서는
'니골라당' 자체가 고유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니골라 집사를 추종하고 신봉하는 세력이 소위 서머나 교회나 에베소 교회에 확산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는 초대 사도들이나 예수님 가족에 관해 많은 유언비어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초기 교부들의 니골라 파의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실은 팔레스틴 유대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견해 일 수가 있음)
모두 믿을 만한 근거들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성경을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데는 항상 위험한 일입니다.
단지 성경을 통해서 유일하게 알 수 있는 바는
이들이 우상제물에 대해서 자유로운 견해를 유포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강력한 율법이나 결례 의식을 대체할 만한 것을 아직 교회 내에서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도 바울이 유상제물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편지로 전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이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각가지 이단설들이 교회 내를 어지럽히는 가운데서도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주님만이 자기 백성을 지켜내신다는 겁니다.
그것도 사도가 전한 복음(다른 복음을 믿으면 저주받게 하는 기준으로서 등장하는 복음)은 오직 십자가의 피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의 관점에서 볼 때,
주님이 싫어하고 미워한 각양 이설들은 모두 인간들로 하여금 십자가 앞에서 '자기 부인'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가능성에 초점을 둔 것은 그것이 이세벨 이단설이든 니골라 이단설이든 간에 심지어 오늘날의 그 어떤 정통교리를 수호한다고 주장하든지 간에 모두 이단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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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한 문의 입니다.
이정우 2006-04-18 17:58:20, 조회 : 159, 추천 : 0
우리교회는 기감인데 현재 일천번제헌금을 하는 성도가 50여명이 됩니다.
일천번제헌금은 비성서적이라고 했더니 목사님이 어느 주일설교에서 번제는 폐해진 법이지만 일천번제헌금을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는 그 정성을 보시고 솔로몬처럼 소원을 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우리교회 모 집사님은 일천번제헌금이 끝나느날 하나님께서 소원을 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일1.2.3부와 새벽기도회에서 집중적으로 일천번제 헌금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오히려 일천번제 헌금을 하는 성도들이 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보시는 일천번제 헌금에 대해서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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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한 문의 입니다.
이근호 2006-04-18 18:57:03, 조회 : 248, 추천 : 2
예수님의 번제로 인한 복만이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준비하신 복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복을 얻겠다는 것은
예수님의 하신 모든 일을 일소에 붙이고자 하는 악마가 세운 교회입니다.
십일조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말라기에서 약속하신 창고에 넘치도록 주시마 하는 모든 복을 다 주십니다.
천하보다 귀한 복을 말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마 16:26)
따라서
악마가 던져준 미끼를 원하는 자들을 넙쭉 잡는 자들은 평소에 그들이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이 융성해 지는 것을 다 보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이 귀한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천하보다도 귀한 것임!
성령은 아무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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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한 문의 입니다.
곽진계 2006-04-19 22:25:19, 조회 : 171, 추천 : 0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내용은 열왕기상 3장 4절에 나오는데, 우리는 흔히 솔로몬이 번제를 1,000번 드렸다고 오해를 합니다만 관련구절인 역대하 1장 6절에 보면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솔로몬이 한 번 번제를 드렸는데, 그 제물이 1,000마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할 다스릴 지혜를 구하였고, 이것이 ‘주의 말씀에 맞’게(열상3:10)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 대목을 솔로몬이 정성으로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정성이 갸륵하여 솔로몬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평가를 하면서, 교인들도 하나님께 정성을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질문하시는 분의 교회도 그러한 분위기인 것 같구요. 저는 ‘일천번제 헌금’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헌금도 있습니까?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헌신예배헌금, 부활절헌금, 성탄절헌금, 송구영신예배헌금 등등은 들어봤지만 어떻게 ‘일천번제 헌금’이 있단 말입니까?
그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구약의 번제는 폐하여졌지만 그 정성을 보시고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소원이란 게 무엇입니까? 우리(성도)의 소원은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원해야 되지 않는가요? 이것이 열왕기상 3장 10절에 말씀한 ‘주의 말씀에 맞는’ 기도인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나의 소원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잘나서 ‘주의 말씀에 맞는’ 기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갈라지게 한 근본적인 책임이 있고, 가장 많이 우상을 숭배한 왕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약속은 정확하여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잠언과 전도서 등을 남기게 됩니다.
정리하면, 솔로몬의 정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부족한 솔로몬이지만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뜻(주의 말씀에 맞는)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번제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1,2)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도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겠는데, 그 좋은 것이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고,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배경은 성전을 짓기 전에 산당에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몸소 제물(1,000은 완전한 수로 볼 수도 있음)이 되셔서 친히 성전이 되신 것이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비약하였는가요?
아무튼 ‘일천번제 헌금’을 드려서 끝날에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모 집사님은, 제 생각에 그 소원도 궁금할뿐더러 그 소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이루어졌다면 그 하나님(집사님이 소원을 빈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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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한 문의 입니다.
곽진계 2006-04-19 22:25:19, 조회 : 172, 추천 : 0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내용은 열왕기상 3장 4절에 나오는데, 우리는 흔히 솔로몬이 번제를 1,000번 드렸다고 오해를 합니다만 관련구절인 역대하 1장 6절에 보면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솔로몬이 한 번 번제를 드렸는데, 그 제물이 1,000마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할 다스릴 지혜를 구하였고, 이것이 ‘주의 말씀에 맞’게(열상3:10)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 대목을 솔로몬이 정성으로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정성이 갸륵하여 솔로몬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평가를 하면서, 교인들도 하나님께 정성을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질문하시는 분의 교회도 그러한 분위기인 것 같구요. 저는 ‘일천번제 헌금’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헌금도 있습니까?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헌신예배헌금, 부활절헌금, 성탄절헌금, 송구영신예배헌금 등등은 들어봤지만 어떻게 ‘일천번제 헌금’이 있단 말입니까?
그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구약의 번제는 폐하여졌지만 그 정성을 보시고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소원이란 게 무엇입니까? 우리(성도)의 소원은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원해야 되지 않는가요? 이것이 열왕기상 3장 10절에 말씀한 ‘주의 말씀에 맞는’ 기도인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나의 소원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잘나서 ‘주의 말씀에 맞는’ 기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갈라지게 한 근본적인 책임이 있고, 가장 많이 우상을 숭배한 왕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약속은 정확하여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잠언과 전도서 등을 남기게 됩니다.
정리하면, 솔로몬의 정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부족한 솔로몬이지만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뜻(주의 말씀에 맞는)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번제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1,2)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도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겠는데, 그 좋은 것이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고,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배경은 성전을 짓기 전에 산당에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몸소 제물(1,000은 완전한 수로 볼 수도 있음)이 되셔서 친히 성전이 되신 것이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비약하였는가요?
아무튼 ‘일천번제 헌금’을 드려서 끝날에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모 집사님은, 제 생각에 그 소원도 궁금할뿐더러 그 소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이루어졌다면 그 하나님(집사님이 소원을 빈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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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목사들의 심보
이근호 2006-04-20 07:59:55, 조회 : 254, 추천 : 1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 사업에 관심이 있는 자들에게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진리냐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치 않습니다.
콩나물 장사하는 사람과 콩나물 사겠다는 사람 사이에 과연 하나님의 뜻이라든지 진리가 의미가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진리에 관심이 있었고
오늘날 목사들은 사람 장사하는데 급급합니다.
교회 가서 지옥가고
성경보고서 지옥 가고
헌금하고 지옥가고
기도해서 지옥가고
정성와 성의를 다해서 지옥가고
전도해서 지옥가는 세상,
따라서 이 세상은 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처럼
불의 저주가 떨어지기 위해 대기해 있는 대형무대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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