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람이 사는 이유와 동기부여] 2005-12-29묻고답하기미가

[사람이 사는 이유와 동기부여] 2005-12-29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동기 부여
박철현 2005-12-29 03:29:35, 조회 : 260, 추천 : 26

안녕하십니까, 목사님. 오랜 만에 질문드립니다.

보통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어떤 대가를 기대하지요. 예를 들면, 이 일을 하면 나에게 돈이 생긴다든지...
여기서 돈이 하나의 동기 부여가 된다고 봅니다. 요즘 워낙 철저하게 자본주의화 되어 있어서 그런지 가장 큰 동기 부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영어 단어를 외울 때 이 단어 외어 놓으면 과연 쓰일까? 이런 고민이 더욱 공부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고, 대학 때 수학 문제 하나 풀려고 하루 종일 끙끙 대다 보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때 외운 단어들 많이 쓰이고, 그 때 문제 풀어 본 것이 쓸데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억지로 동기 부여 해 보자면, 나중에 쓰인다는 것인데...

질문의 요지는 신자의 경우 삶의 동기 부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총, 은혜가 나를 의욕(?) 있게 살게 하시는 것입니까? 썩어져 없어질 세상인데, 나중에 쓰이지도 않을 단어, 필요하지도 않은 수학 공식을 외운다는 느낌도 가지기도 합니다. 주님의 증인 되게 하시기 위해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까? 천국을 소망하면서...

교회일에 열심인 사람들이 "하늘의 상급에 차등이 없다" 말에 얼마나 화를 내는지 많이 목격해 오던바라, 그들이 느낄 의욕 상실, 좌절감이 이해가 됩니다. 내막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저는 아무런 의욕 없이 하루 하루 그냥 살 뿐 화를 내는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욕심을 부리려 해도 육체의 피곤함으로 금방 좌절하고 맙니다. 제 집사람은 이 곳 미국에서 쇼핑하는 재미로 하루 하루 정말 얼마나 의욕이 넘치게 사는지... 좋은 옷을 싼 값에 사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요즘 크리스마스라 엄청 세일을 하고 있거든요^^). 제 집사람은 저에게 이렇게 좋아하고 즐기는 것도 별로 없고 그러니 몸도 자주 아픈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글을 쓰고 나니, 제글에 제가 당장 답글을 달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목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re] 동기 부여
이근호 2005-12-29 08:40:32, 조회 : 285, 추천 : 14

>사람은 사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의 생생한 체험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냥 '적응'하는 겁니다.
생물적인 조건으로 꽉 차 있는 인간의 신체는, 대자연의 원리인, 생존의 본능이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외부로 발산시키면서 변신에 변신을 시도하게 됩니다.

윤리나 도덕이나 종교나, 인생의 의미나 철학이라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자기 신체를 이 대자연 아래서 약간은 더 지탱시키기 위한 '교양'이라는 외피를 입힌 나름대로의 생존 기능과 기술일 수도 있습니다.

배고픈 인간과 배고픈 짐승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동기 부여'란 회고적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현재에 와서 과거를 새삼 뒤돌아보면서 현재 생존의 낭만과 정신적 풍요를 위해 과거를 그런 식으로 미화하는 술책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동기 부여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움직여 놓고 '동기는 있어노라'라는 것을 핑계로 삼아 그 행위를 정당화시켜보는 겁니다.

과거 영어단어 외우기가 현재에 쓸모있다고 여기신다고 하시지만,

그것은 현재의 삶이 현재의 자신의 욕망에 어느 정도 수용할만 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대충 타당성을 채울만한 요인들을 뽑다보니 거기에 끼어든 것입니다.

만약

현재의 삶이 자신이 보기에 저주스럽게 느껴진다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영어단어 한 자 외우는 시간에 딴 것을 했다면 그것이 유리한 원인으로 작용해서 지금의 이런 비극적인 내 모습은 되지 않았을 텐데. 참 후회스럽고 후회스럽다"라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다니고 교회 헌금을 한 것들이, 지금에 와서 신이 없음이 분명해진 이런 입장에서 보면

그런 무식하고 무모하게 종교 활동에 투자한 아까운 시간과 재물을 모았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다고 안타까워할 수도 있습니다.

쇼핑하는 재미가 활기찬 일상을 보장한다고 믿으면 그것도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동기 부여'가 충분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어떤 동기부여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요구한 '자기 부인', '자기 생명을 미워하기'하고는 참으로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복음으로 채울 수 없는 행복을 다른 행위나 이론으로 대체시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날 때부터 자신이 곧 절대적 '신'이기 때문입니다.

두 절대자가 한 집안에 사는 것이 결혼생활입니다.

이럴 때는 자신의 신됨을 공격하지 않는 이상, 타인의 자유로움을 인정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이 스스로 칭하는 것을 같이 옆에서 동조하는 정치적 타협책으로 사는 것이 원만한가정생활의 지름길입니다.

==========================================================================
[re] 동기 부여
박철현 2005-12-29 16:09:24, 조회 : 207, 추천 : 17

먼저 답변 감사드립니다. 동기 부여가 회고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예를 들면 무슨 일(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돈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라도 그 일(행동)을 통해서 보람을 얻는다는지 어떤 필요성을 느끼고 그 필요성에 대한 자각으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요.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동기 부여가 회고적이라는 말을 다시 풀면 미래를 위해서 현재 일을 하게 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기 부여가 나중에 적중하게 되는지 여부는 미래가 되어 봐야지 알 수 있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율적으로 이 부분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혹은 이 게시판에 답글을 남길 때 목사님께서는 목사로서 봉사를 해야한다는 어떤 필요성, 보람, 사명감 등등을 가지고 계시기에 그 행위를 하신다고 보는데요, 막무가네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간 되었으니 설교하고 질문을 남겼으니 답을 남긴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목사님께서 남기신 답글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추측하건데, 목사님은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삶의 동기 부여를 하고 계신 듯합니다. "신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동기부여"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결론이 되는 듯 합니다.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결국에는 하나님 덕택이 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귀결되니 말입니다.

왠지 목사님의 글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를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머리가 아파서 늘 제목만 보고 있습니다 ^^. 여하튼 답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re] 동기 부여 이근호 2005/12/29 14 286
[re] [re] 동기 부여
이성민 2005-12-29 09:29:10, 조회 : 241, 추천 : 42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것이 옳은 답인줄 알려주세요...

==========================================================================
[re] 동기 부여
이근호 2005-12-29 16:59:52, 조회 : 246, 추천 : 23

'왜 살아 있나?' 에 대한 해답만이 성경은 전해줍니다.

왜냐하면 살고자하는 자는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은 주님의 은혜가 바탕이 되어 살아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 분이 하시는 일이 증거되기 위해 살아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지옥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 살아있고,

신자들은 천국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 살아있습니다. (고후 2:15-16/골 1:16)

따라서 살고자 하는 자의 변명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현실도 하나님께서 허락해준 적이 없고,

오직 인간들이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위해서 그럴듯하게 자신의 비젼을 갖다 붙이는 식으로 위장하며 사는 겁니다.

##############################################################################################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과 환경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관되고 다스려진다는것인가요?
이성민 2005-12-29 19:08:09, 조회 : 237, 추천 : 49

제가 이해하고 믿는것은 모든것을 정하시고 모든것을 이루시는 주님입니다만...
사람의 아는것이 짧은것이기에 질문드립니다..

어쩔때는 믿어지지 않을때가 있는데...
답답할때도 있습니다

정말 이 환경도 .. 제 가족도 제 머리속의 지식도 지금의 직장도 친구도 밥먹고 싸고 하는일도
죄짓는 일까지도

이 모든것들이 하나님의 작정대로 간다는게 옳은 성경해석인지 아니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야하는것인가요?

하나님의 작정대로 살아진다라고 하면서도

...제 의지로는 "그게 아닐수도 있는거 아니냐? 너의 선택여하에 의해 부자도 되고 가난하게도
또는 믿음이 굳건해지기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해야하는게 아니냐? "라고 말입니다

현재 되어지는 일들과 사건 저의 모습이 영원전부터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가는건지요?

==========================================================================
[re]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과 환경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관되고 다스려진다는것인가요?
이근호 2005-12-30 08:24:27, 조회 : 317, 추천 : 24

제 이야기는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에 인간이 불만을 가질 입장에 서 있지 못하고 늘 감사해야 될 입장에 서 있다는 겁니다.

사람이 무엇을 파악하려고 할 때는, 항상 스스로 노출를 꺼리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이 선입견이 근본적으로 악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추운 날 버스가 일찍 오직 안온다고 불평을 하는 그 순간에는,

버스가 귀해서 10km을 걸어다니는 아프리카 주민의 입장을 놓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음식점에서 식사하면서 음식물이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그 순간에는, 지금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건강 상실'의 경우를 잊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들은 매 순간을 맞이하면서

예수님 십자가 고난을 잊고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인간들의 타고난 천성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수시로 성도에게 안겨주어서

외부에서 어떤 사태가 일어나고 벌어져도,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그 기쁨과 감사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십니다. (물론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이지만)
##############################################################################################
'기름부음'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한광수 2006-01-13 18:21:49, 조회 : 235, 추천 : 10

어떤 집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1.강사 목사님(여자 목사)이 기름병에 올리브유를 담아, 집회가 끝나고 안수하면서 동시에 한사람 한사람씩 기름을

얼굴,손, 때에 따라서는 입에 바르면서 예언의 말씀을 해주었는데,

많은 장로님이나 목사님들도 그집회가 기름부음이 넘쳐났다고 표현하시곤 했습니다.

2.근간에도 '어느 집회에 가면 영적 기름부음이 넘친다'고 하면서 그곳으로 많은 교인들을 유도해가는 광경들을 종종

봅니다. 몇년전 본인도 우연한 기회에 간적이 있는데, 집회의 강사 목사님이 어떤 이를 가르켜 "휫~" 소리를 하면 꼬구

라져 몸이 뜨거워 견딜수 없어 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또한 강사 목사님이 집회를 주최한 목사님들의 손을 잡으면

함께한 목사님들이 전기가 통하듯 감전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으악~"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와같은 두 상황을 볼 때,

(1) 성경에 나오는 '기름부음'이 현재의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알고싶구요,

'영적 기름부음'이란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령충만'과 함께 비교해서 말씀해 주세요

(2) '기름부음'은 특정한 임무(왕,제사장,선지자)를 부여할 때 행하는 의식이 아니었나요?

그리고 '그리스도'란 말이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공적 일을 수행키 위하여 행해진 것이라면 오직 유일하게 예수님

에게 적용되어야 되는게 아닐까요? 아니면 목사안수식에도 그 의미가 어느정도 부여되는 겁니까?

(3) 위와 같은 집회의 성격을 어떻게 보십니까? 상세히 가르쳐주세요
(주변 성도 일부가 그런곳에 가는 것을 방치해야 하는지 오히려 권장해야하는지~)
==========================================================================
[re] '기름부음'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이근호 2006-01-13 19:49:04, 조회 : 358, 추천 : 40

(1) 오늘날 '기름부음'을 교회가 성도에게 적용시킬려고 해서는 아니되고 이미 성령님께서 모든 성도에게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요한일서 2:27)

(2)목사 안수식에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음을 확인하는 형식입니다.

(3)마지막 때는 복음과 상관없는 종교는 번창하게끔 되어있습니다.
권면해서 안들을 때는 방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들어놓았으면 그 지옥에도 정원이 꽉 꽉 차야되지 않겠습니까.

노아 홍수 때, 오로지 8명만 구원받은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
[re] '기름부음'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이정우 2006-02-28 19:13:05, 조회 : 90, 추천 : 7

모 블러그에서 펌글입니다:이정우

"기름부음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기름부음이란
기름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름이라는 것은 관유(출29:6- /출30:22-)라고도 하고 향기름이라고도 하는데

제조방법은 출30"22-
1)액체몰약 500세겔 2)향기로운 육계 250세겔 3)향기로운 창포250세겔
4)계피 500세겔 5)감람기름 한힌을 취하여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방법으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하셨습니다.

또한 관유(향기름)의 사용처는출30:26-
1)제사장에게(출29:6-6)
2)회막과 증거괴에(출30:26)
3)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기구며 분향단에(출30:27)
4)번제단 그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출30:28) 에 기름을 바름으로 거룩하게 구별 하는것입니다.

****기름을 바르는 의미는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출29:9하반절 "너는 이와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

출28:1-
1)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부어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2) 위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30:30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네게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고.....
출40:14-15
"너는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자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이렇게 제조된 관유(향기름)는 다른곳에 사용하면 안됩니다.

출30:31-3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사람(아론의 후손및 왕,선지자-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기름을 부으라고 한 사람외의)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무릇 이와 같은 것을 만
드는 자나 무릇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 지리라.

*** 현재의 목사님들에게 기름부음을 하지 않는것은 아론의 후손(왕과 선지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외)외에는 기름을 붓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은 아론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관유를 만들수없는것도 아니고,또한 제사장의 직무와 목사의 직무가 다르기 도 하구요******

그러나 목사님들을 가리켜서 "기름부음을 받은 종" 이라고 하는것은 영적으로 거룩하게 구별 되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목사님들이나 성도님들 모두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기름부음을 받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이 세상사람들과 구별되는(거룩하게)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라고 해야 될것 입니다.

그러므로 올리브 기름을 발랐다면 무척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 목사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기름을 모방한 코미디에 불과 합니다.

성경의 기름(관유&향기름)은 사람의(아론의 후손및 왕(하나님께서 지명한)선지자 )몸에는부을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유가 아닌 올리브유를 발랐는지 모르지만요...

##############################################################################################
예루살렘 성전 파괴?
김대식 2006-01-30 13:41:02, 조회 : 154, 추천 : 19

예루살렘 성전 파괴?

1. 성경신학의 실제적용 4? 책이 3권까지만 인쇄 되었나요? 4권은요?

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비교해 볼때에

시차가 70 여년 정도 나는데 ( 아! 아니네요 bc6-7(?). bc3-4(?) bc2(?) 에서33+하면 ad 30년 쯤? 이때를 기준으로하여 ad 70년에 붕괴(티투스) 한 40여년?)

이 시차는 의도적인겁니까?

즉 왜 둘이 비교하기 쉽게 동시대나 연이어서가 아닌 뚝뚝 끊어진 상당히 긴 시간차이이므로 ... (어떤 글은 예수님의 세대?(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자들)가 끝나갈 무렵이라는 둥), 마치 사건 하나하나가 단절 처럼 느껴지네요

그 시차의 이유?

3. 아님 예언된 바인지?(구약 어디에?) 이 구약 예언부분이 예수님 인용과 유대인의 인용의 차이는?

4. 묵시가 역사의 시간 속에서 침투되어 나타날 때 무작위인가요? 아님 사건에서의 순서 절차인가요?

아님 사건 자체도 무순서로 뒤죽박죽입니까?

5. 유대인들이 이 ad 70년에 벌어진 티투스로 인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시각은 어떤겁니까? 그들의 해석은 어떠합니까?

6. 통곡의 벽 이라는 것도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다 무너진게 아닐가요? 아님 오히려 무너졌기에 그 흔적으로서 남겨진 조각더미인가요?
(어쩌면 운다는 자체가 새성전인 예수님을 거부한다는 것이요, 기독교계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통한 일기의 기록을 보면 거기서의 웅장한 광경에 동참해 같이 거기서 울었다고 하는 일기장을 보면 참 기가 차던데)

보너스 추가
7. 검색 중에 기독교 안티인 자가 재미난 질문을 했더군요

무너졌다면 유대인으로서는 다시 재건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재건했을 터인데 왜 그 이후의 기록이 없냐고?
(어쩌면 이미 재건 했으며? 따로 뒤로 챙겨 놓고, 통곡의 벽은 완전 장사용은 아닌지?)

또 기독교인으로서는 전 세계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이 왜 재건할 생각을 안하느냐고? 결국 지금의 교회들도 파괴를 하는게 마땅하지 않냐고 비아냥 거리던데

어떤 답변인은? 딴지 걸지 말고 참견말라고 답을 하던데

목사님 벌써 재건 되지 않았나요?

==========================================================================
[re]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근호 2006-01-30 16:15:28, 조회 : 162, 추천 : 21

비디오 아트인 백남준 씨가 별세했답니다.

그리고 언젠가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이 두 사건의 차이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창조의 영광이 담기지 않는 것은 반드시 무너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라"(시 28:5)

인류의 역사는 '무너질 것들이 무너지는 과정'을 말해주는 세월입니다.

정작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여기에 쏠려있습니다.

피조물의 소망에 동참하면 됩니다. (롬 8:17-24)

동참에 초대받지 못한 자에 신경쓸 것 없습니다.

성전 파괴를 언급하신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성전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와 신의 업적의 흔적으로 보니까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오직 나만 신경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성경 신학의 실제적용 4는 인쇄되지 않았습니다. 안 나왔습니다.

##############################################################################################
죄의 다양함
박철현 2006-01-31 01:58:50, 조회 : 198, 추천 : 41

예전에 한창 유행하던 "수사반장"이라는 프로그램이 모방범죄를 조장 한다는 이유 때문에 종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나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 와 보니,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가 바로 "수사반장" 류의 범죄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방송심의위원에 의해 아무런 제약 없이 방송되고 있음에 놀라기도 합니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참 다양하게도 죄를 짖고 사는 구나" 혹은 "저렇게도 죄를 지을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방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떠나서, 의문점은 이런 문화에의 노출이 유익(?)한가입니다.

1. 죄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피한다. (수도사 처럼 가까이 하지 않는다).
2. 죄의 무서움을 알기에, 죄의 다양함 (깊이)을 알 필요가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접한다.
3. 이런 저런 거 의식하지 않고 그냥 산다. 생활에 닥치는 것만 생각한다? (죄가 아주 무섭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에 늘 감사하며 산다?)

이런 질문을 드리고 나니 유익 비유익 따지는 것이 선악 구분하는 죄성과 관련되는 것 같은데 여하튼 우문 현답 부탁드립니다.
==========================================================================
[re] 죄의 다양함
이근호 2006-01-31 07:11:07, 조회 : 194, 추천 : 17

죄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죄를 의식하지 아니하면 죄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쉬지 않고 죄를 의식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딴 데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의로운 자로 만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의롭기 위해서는 죄를 안짓는 방향으로 자신을 보존해야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이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의롭게 되고자 하는 아담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존재는

의로움이 곧 존재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니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의로움이란 '힘의 소유'. '힘의 쟁취'와 동일한 내용이 되고 말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나는 왜 세상에서 늘 성공, 성공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나에게 하늘의 복을 받을 만한 입장에 못될 정도로 의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은 악한 자에게 벌 내리고 의로운 자에게 복내리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내 뜻대로 매사가 안되고 힘드는 것은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남보다 덜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의로운 자가 된다면 필시 세상은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일 것이다. 세상은 내 손으로 주무리는대로 작동될 것이다. "

인간이란 아무리 악한 일을 반복하며 살아도 그 속에서는 항상 다시 의로운 차원으로 솟아올라 오겠다는 의지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본인으로 하여금 영원히 '자기 생각만' 몰두 하게 마련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반하고, 자기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고, 자기를 강렬하게 붙잡고 싶어하고, 자기를 포기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는 것은

자기 외에 누군가를 마음 속으로 친히 '모시는 분'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즉

"나는 그 분에게 어떤 혜택을 입고 사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스스로 일어서려면 어떤 선한 일에 매달려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악한 일이란 반드시 마귀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악마의 목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자기를 살리기 위한 십자가는 진정한 십자가가 아니라 자신의 권태스러움이나 우울증을 위로할 '노리개'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노리개가 되어야 합니다.

의로움이란 십자가 안에서 이미 주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선이 있는 곳에 악이 항상 있고, 악이 있는 곳에 선이 항상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든지 선악을 가지고 결과를 따진다면 십자가 공로를 놓치고 있는 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악마의 종이 아닌 자라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무산시키는 '자기 의'나 '자기 악'에 도취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치유목회'의 성격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한광수 2006-01-31 17:29:37, 조회 : 182, 추천 : 35

항상 성심성의를 다하여 빠르고 정확한 답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1)치유목회의 성경적 근거를 알고 싶고요. 상담치유설교가 필요한가요?

(2)정태기 박사의 치유사역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제와 상처가 있는 부부들이 며칠씩 다녀와서 관계가 회복

되었다고들 하는데...(그곳에서는 유행가도 부르기도 하고~)

(3)이 시대의 올바른 가정을 세우는 것은 의미없는 것인가요? 아니면 주어진 현실대로 살아가는 것이 뜻인가요?
==========================================================================
[re] '치유목회'의 성격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이근호 2006-01-31 20:38:02, 조회 : 223, 추천 : 21

하나님 보시기에 치유되든 치유가 아니되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아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치유목회'라는 것의 큰 맹점은

가짜 신을 동원시킨다는 겁니다.

자기를 치유는 신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하나님은 자신의 아픔을 자기 백성에게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인간의 아픔에 대해서 인간은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지만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아픔 보다

하나님의 아픔이 전부요 우선입니다.

따라서 '치유 목회'라는 이름으로 신의 이름이나 성경을 들먹이는 자들은 전부 이단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픔을 말하기 위해서 계시된 책이지 인간을 치유하기 위한 계시책이 아닙니다.

성경적 근거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부터

인간은 치유된 권리도, 자격도 없습니다.

그냥 건강하게 살다가 지옥가면 그만입니다.

아픈 자는 아픈채로

혹은 정신병자들은 정신병들린 채도 지옥가면 그만입니다.

원래 그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죽음의 병이란 치유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합당한 조치라고 주신 것입니다.

건강해도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기주의에 젖은 채로 자기 한스러움을 가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드는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잠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 궁금합니다
이성민 2006-01-31 22:19:21, 조회 : 127, 추천 : 31

잠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밑에 잠언 글귀를 보다가..
아니 모든것이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고 하면 이해가 되겠는데

재물과 집은 조상에게 나오고 아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건가요?
재물복은 조상에게로 말미암는다고 보는것은 합당치 않는것 같은데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지요
==========================================================================
[re] 잠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 궁금합니다
이근호 2006-02-01 09:36:20, 조회 : 179, 추천 : 34

집과 재물은 살아있는 인격이 아니라 사물입니다.

사물은 소유의 대상으로 전환되어 자기 선에서 마음대로 처분이 가능하다는 인식은 누구가 갖게 됩니다.

이러한 사물의 범주에 동의하는 사회에서 고대 구성원들은 상대적으로 연약한 존재인 아내까지 집어넣는 우를 범하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고대는 농경이나 목축시대이기에 토지에 대한 인간의 육체적 힘을 투입시켜 생산물을 얻는 방식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든 시대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인들은 남성네들에게 종속되지 아니하면 목숨부지 하기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사회 안에서 하나님은 '약자보호법'을 가동시키는 겁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나왔을 때, 그들은 노예였고 약한였음을 간주해볼 때,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능력자에 대한 배려의 형식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보호자(고엘)가 되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절대자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특수성입니다.

집과 재물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아내는 다른 재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위치에 놓여 있음을 인식시키는 말씀입니다.

##############################################################################################
'라가'와 산상수훈에 관련해서 몇가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김대영 2006-02-01 16:51:56, 조회 : 127, 추천 : 15

목사님, 성경을 보다 몇가지 의문이 들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질문1. 마5:22에서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모교수의 산상수훈 설명을 보면 이부분은 언어학적으로 과장법에 해당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치 아버지가 자기 아들보고 "너 떠들면 죽는다!"라고 하지만 정작 죽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며 '라가'라는 표현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표현이므로 이러한 해석이 정당하다고 하였고 또 다른분은 유태인의 언어를 잘알아 볼때 '라가'라는 단어를 형제에게 쓸때는 정말 그를 형제취급하지 않고 이방인처럼 여길때 사용하는 단어이기에 형제에게 이렇게 대하는자는 당연히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것이라 들었습니다. 둘중 어느것이 맞는지 아니면 제3의 답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2. 산상수훈에서 '열매'를 말할 때 이것이 모교수의 말대로 성화적 차원에서의 열매를 말하는겁니까? 즉 사랑을 예로들면 처음에는 사랑이 10(사랑을 수치로 표현할 때)이 되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육을 꺾으며 나갈 때 9,8,7,6으로 그 안됨이 줄어들어 결국 나중에 보면 9,8,7,6에 대한 1,2,3,4는 열매로 떨어지게 된다 하더군요. 이것이 맞는것 입니까?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
[re] '라가'와 산상수훈에 관련해서 몇가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근호 2006-02-01 17:21:17, 조회 : 202, 추천 : 43

산상설교의 해석은

항상 예수님 자신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았는가가 정답이지

결코

우리가 그 말씀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 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무척이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저주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거룩한 말씀을 대할 때는, 자기 주체성을 절대적으로 드높이는 계기가 된다 점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즉

"왜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네 중심이냐?"라고 따지시고 싶은 겁니다.

형제를 보고 욕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형제를 보고 욕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본심을 결국 노출시키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런 인간을 보고

"너는 뭐가 잘나서 남들보고 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보느냐? 과연 네가 나만큼 거룩한가?"라고 따질 수 있는 빌미를 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주체적 집착은

후에 사도바울과 사도들의 서신을 통해서 복음적으로 정돈됩니다.

두 번째 질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열매란 반드시

'소유성'에 해당될 수 없는 겁니다.

만약 사적인 소유용으로 전환되면 그 때부터 양(量)적으로 측정이 가능하고

양적으로 축정되면 타인과의 비교 우열이 성립됩니다.

이러한 오류의 대표자들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하 죽여버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입니다.

따라서 열매를 양적인 소유용으로 여기는 교수는

예수님은 계속 죽이고, 또 죽이고 하는 짓을 전문직으로 삼는 자입니다.

##############################################################################################
12제자와 성령사역에 관하여 질문드립니다
김대영 2006-02-01 17:17:28, 조회 : 203, 추천 : 49

한가지 더 생각이 난김에 제차 질문드립니다. ^^

질문1. 제가 알고 있기론 구약의 12지파의 실패를 예수님께서 신약의 12제자 가운데 그대로 계승하시고 구약의 인간노력의 실패를 12제자를 통하여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결국 십자가에서 12제자 모두가 다 도망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적메시야를 꿈꾸었기 때문에 결국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를 믿지 않은것으로 드러났고 결국 성령을 받고 나서야 그런 인간의 비언약적 사고가 깨어졌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성령이 오셔야만하는 당위성을 보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아니고서는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것을 보이기 위해 12제자를 선택하셨다면 4복음서를 통해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는 배울것이 하나도 없는것 입니까? 즉 복음서 가운데 제자들이 믿음이 없었던 상태라면 복음서를 통해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은 다 잘못된 것 입니까?

질문2. 1번 질문과 관련된 것인데요,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예수에 관하여 세부적으로 배워나가는 과정이라면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와 관계를 맺고 예수에 관하여 배워 나가다 예수에 관한 믿음이 형성되는 과정 즉 지금의 우리가 예수를 믿고 배워나가는 과정과는 반대의 과정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예수에게 몰려왔던 사람들 모두를 일단 예수에 관한 믿음이 있는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예수와 관계를 맺는 과정이고 그들 중 결국 무리와 제자로 나뉘긴 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수 없기에 나중에 잘릴때 잘리더라도 일단은 모두 믿음이 있는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맞는것 입니까? 왜냐하면 요즘도 구도자예배(열린예배) 같은 경우 예배를 통하여 전도를 겸해야 하기에 신자이건 아니건 일단 불러모아서 예배를 드리고 그 중 예수를 믿는 자가 나타난다는 논리가 있기에 질문드립니다. 예수의 제자형성 과정과 동일하다고 그럽니다.

질문3. 초대교회 당시에는 성경말씀에 관하여 요즘처럼 이렇게 잘 알수 없었고 다들 성경도 안들고 있던 시기에 과연 언약과 같은 고급신학(표현하자면)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믿음은 아주 단순한 믿음 즉 예수에 관한 단순한 믿음이었다는, 그래서 그들이 언약을 모르고도 단순히 예수 믿고 살았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단순하게 예수만 믿었던것과도 같이 우리도 사실 언약이니 뭐니 몰라도 단순히 믿는 그 자체로 된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관해서도 답변 부탁드립니다.

한꺼번에 질문드려서 죄송합니다. 저 나름대로 고민하며 이래저래 헤메고 오다보니 질문이 좀 쌓이는 면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럼 항상 평안하세요~

==========================================================================
[re] 12제자와 성령사역에 관하여 질문드립니다
이근호 2006-02-01 17:41:57, 조회 : 225, 추천 : 36

1. 누구로부터 배운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무엇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동질임을 확인해야 할 처지입니다.

제자나 우리들이나 모두 같은 '아담 안'에 속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봤고 나오는 반응들은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되풀이되는 죄악들입니다.

그런데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 이상의 놀라운 기적은

그들조차 주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자로 간택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배움에서 감사가 아니라

자신에게 퍼부어주신 주님의 십자가 공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2. 전도란

실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시키는 일이냐?'로 결정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교회 몰려 오지 않더라도

그들에게는 주님께서 매일같이 전도하고 계십니다.

햇빛과 공기를 악인과 선인에게 내리시면서 말입니다.

다만 그들에게 세상 현황을 브리핑을 할 기회를 주시는데

아무나에게 그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요

아무나 그 일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 끌어모으기'를 전도라고 보지 마시고,

'지금 나는 누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냐'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그 전부가 전도입니다.

마치 노처녀가 호텔 커피샾에서 총각과 마주 앉아야 '선 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지하철에서 두리번 거리는 그 모든 것도 '선 보는 것'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라"(담후 4:2)

3. '단순한 믿음'이란

순진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순진하고 단순하고 어린애 같아서도 얻을 수 없고 생길 수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의 내용이 얼마나 풍요하고 풍성한지는

성령을 통해서 영원토록 지속됩니다.

마치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처럼 말입니다.

사도들의 편지는 그런 무궁무진한 사랑이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묘사하고 고백해주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김대영 2006-02-02 00:53:14, 조회 : 175, 추천 : 47

내용에 대한 세밀한 답보다는 전체 축을 흔드는 답변을 보며 목사님은 제가 생각하는 사고체계와 좀 다른듯 보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목사님 답변을 참고하여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은혜가운데 거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아브라함 언약에 관한 질문 드립니다(진짜 마지막^^)
김대영 2006-02-01 17:49:08, 조회 : 203, 추천 : 24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아브라함 언약에 있어서 모리아산에서의 이삭 번제 사건 중 질문 드립니다.

'여호와이레'라 함은 아브라함 자신이 언약의 실체인줄 알고 있다가 이삭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이 아닌 이삭의 씨(결국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음을 안것인지 아니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사랑하여 이삭이 언약의 실체인줄 알고 있다가 이삭이 아닌 숫양을 보고 '아~ 이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따로 준비하신 씨가 있구나'라고 안것인지 궁금합니다.

즉, 아브라함이 언약의 실체를 발견한것은

아브라함인줄 알았다가 --> 이삭으로 앎
이삭인줄 알았다가 --> 숫양으로 앎

둘 중 어느것 입니까?

또, 둘 다 틀렸다면 바른 답변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re] 아브라함 언약에 관한 질문 드립니다(진짜 마지막^^)
이근호 2006-02-01 19:15:04, 조회 : 364, 추천 : 55

아브라함이 알았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브라함 시절을 보면서 상상하는 것과

아브라함이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보았는지를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인간들은 육적인 역사관을 동원해서 과거 사태를 재정립하고자 합니다.

그렇게되면

항상 자기 한계를 못벗어납니다.

여기서 '한계'라는 것은

'자기 이해가 가능한 조건을 자기 선입견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가 되고 한계가 되는 그 한계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안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주체로서 자신과 및 이삭을 주시고 또한 숫양까지 준비하셨다는 겁니다.

그것을 그는 '여호와 이레'라는 고백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는

이 '여호와 이레'와 '예수님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요 8:56)

우리가 아브라함 그 현장에 있었어도 예수님을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은 아브라함에게만 허락한 특별한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
그 내용이 언듯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김대영 2006-02-02 00:45:07, 조회 : 244, 추천 : 52

그런데 목사님 아브라함이 자신과 이삭과 숫양 모두를 준비하신 하나님을 발견했다 했는데 논리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창22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수 있습니까? 부탁드립니다.

==========================================================================
[re] 그 내용이 언듯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이근호 2006-02-02 09:26:38, 조회 : 337, 추천 : 40

성도는
일어나는 사건마다 복음과 관련시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언약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언약에는 장치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 장치는 장차 십자가 복음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하고,

2. 그 사랑을 구체화시키는 희생 사건이 벌어져야 하고

3. 그 희생물로 등장해야 하는 인물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언약 사건에 자신이 깊숙이 관연된 상황임을 파악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로마서 4장에 잘 나와있습니다.

자기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서 태가 끊어진 그 이후에 자식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점과, 하나님의 희생이 언약 사건 안에서 매치가 일어난다고 본 것입니다.

죽어야 될 자를 참으로 죽어야될 자로 볼 수 있는 자(아브라함)만이 모든 언약의 주도자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수양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일관된 집행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겁니다.

==========================================================================
감사합니다
김대영 2006-02-16 15:12:58, 조회 : 103, 추천 : 5

아브라함 언약에 관하여 제가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많은 부분 이해가 됩니다. 언약으로 성경을 봐야 하나 한동안 고민을 했지만 언약이 아니면 성경이 오리무중에 빠질수 밖에 없음을 절감합니다. 감사합니다.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5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4,867 묻고답하기 [말씀에 근거한 교회개혁 운동] 2003-06-25 - 최고관리자 07-03-13
4,866 묻고답하기 ["탐욕적인 목회관을 비난하면서"를 읽고] 2003-06-03 - 최고관리자 07-03-13
4,865 묻고답하기 [교회가 없다] 2003-04-29 - 최고관리자 07-03-13
4,864 묻고답하기 [나는 똥입니다.] 2003-04-11 - 최고관리자 07-03-13
4,863 묻고답하기 [마귀적 사고방식으로 마귀 이기기?] 2003-04-04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7-03-13
4,862 묻고답하기 [십자가마을의 논쟁 - 행함 문제] 2006-11-16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861 묻고답하기 [천국을 어떻게 침노하여 빼앗을까?] 2006-11-09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7-03-13
4,860 묻고답하기 [언약과 약속에 대하여] 2006-10-26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59 묻고답하기 [하라와 하지말라 그리고 방종] 2006-10-10 - 최고관리자 07-03-13
4,858 묻고답하기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2006-10-03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7-03-13
4,857 묻고답하기 [심판의 표준에 대해] 2006-09-19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07-03-13
4,856 묻고답하기 [개혁노회의 의미에 대해..] 2006-09-12 미가 최고관리자 07-03-13
4,855 묻고답하기 [성경적 성화론에 대해] 2006-08-31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7-03-13
4,854 묻고답하기 [왜 아브라함의 언약은 민족 단위언약인지] 2006-08-23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853 묻고답하기 [청교도들의 준비론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2006-08-22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852 묻고답하기 [창세기3장22절 우리 중 하나 같이 / 엘로힘] 2006-07-25 창세기 최고관리자 07-03-13
4,851 묻고답하기 [율법폐기론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2006-07-23 [신학] 최고관리자 07-03-13
4,850 묻고답하기 [사도신경에 대해서...] 2006-07-19 미가 최고관리자 07-03-13
4,849 묻고답하기 [왜 십자가만으로 죄가 밝혀지나?] 2006-05-12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7-03-13
4,848 묻고답하기 [이광호목사,무엇을 개혁할것인가?] 2006-05-10 미가 최고관리자 07-03-13
4,847 묻고답하기 [신앙생활과 장사] 2006-04-19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07-03-13
4,846 묻고답하기 [야곱? 이스라엘?] 2006-02-09 창세기 최고관리자 07-03-13
열람 ➜ 묻고답하기 [사람이 사는 이유와 동기부여] 2005-12-29 미가 최고관리자 07-03-13
4,844 강의 41. 이스라엘의 횡포와 저지 (역대하 28: 8-15)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43 성경 41. 이스라엘의 횡포와 저지 (역대하 28: 8-15)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