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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40. 아하스 왕의 시작 (역대하 28:1-9)성경역대하

40. 아하스 왕의 시작 (역대하 28:1-9)

이름 : 우리교회(IP:122.47.52.38)

40. 아하스 왕의 시작 (역대하 28:1-9)

28:1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28:2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만들고
28: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자녀를 불사르고
28:4 또 산당과 작은 산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한지라
28:5 그러므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28:6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 이만명을 죽였으며
28:7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하나님 말씀을 어겼을 때에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지만 죽음입니다. 우리 인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점은 이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죽는 것이 가장 겁이 나는 일입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어쨌든 간에 이 땅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욕에 이끌려서 산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오로지 살아남아야겠다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움직인다는 것을 누가 아시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명쾌하게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고 싶고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겠다고 하시고, 참 이것 보통 골치 아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겁니다. 말씀을 열심히 지키려고 시도하면서도 부담이 됩니다. 혹시 이 말씀 순종 안 하면 나를 죽여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미워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근본 목적은 딴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죽이는 것이 취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희들 목숨보다 더 중요하단다" 라는 이런 취지로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아 너희들은 너희 뜻, 너희 사는 것 위주로만 나서지 말고 하나님의 엄중한 뜻도 좀 알아다오." 라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 순종 아니했더니만 하나님이 죽음과 죽음으로 몰아넣더라 라는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 "네가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존보다 더 중요함을 너는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읽었던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받느냐 하면 호감으로 반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척 버겁게 느껴질 것이며 아하스가 우상을 섬겼다고 나왔을 때,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됩니다. "사람이니까 때로는 이 일 저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겠지. 이게 뭐가 큰 흠이 될까"라고 간주되는데 그 뒤에 이어서 나온 본문에 보니 하나님께서 12만 명을 죽였으며 왕의 아들도 죽고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마땅치 않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너무하신 게 아닙니까? 우상 섬기는 것이 무어거리 잘못된 것이라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행동하십니까"라는 마음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지요.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12만 명이 되는 사람을 일시에 죽일 정도로 큰 죄가 되는 것인지 의문 시 되는 겁니다. "이토록 가혹한 하나님을 내가 억지이라도 믿으려니 요즈음 내가 힘이 듭니다"하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정말 잘하셨습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라는 온순한 감정보다도 먼저 앞서 나오지요. 탁 퉁기고 싶은 거부반응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을 정도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을 보기가 싫은 거예요. 인간인 이상 죄 지을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사정없이 때리 치고 벌을 가해버리니까 도리어 반발심이 자극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어디 무서워서 하나님 믿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습니까 걸핏하면 성질 내고 사람 죽이고 말입니다. "에라 치워라 나 교회 안나온다"라는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쪽이 아니냐 말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내리실 때는, 그 현장에 까불고 촐랑대고 잘난 체 하는 인간들을 전부 청소를 해버립니다. 인간들의 교만을 꼴 보기 싫다고 추방을 해놓고 거기에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탁 던집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추방되고 가운데서도 이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엄중한지 구경해봐라"하고 어떤 인간들을 잡는데 오늘 본문 같으면 아하스 왕을 잡는 겁니다. "아하스 왕 이리와. 너 바알 섬겼지, 너 우상 섬겼지, 네 아들 불에 태워 죽였지, 자 다들 보고 있나? 이런 인간을 이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지 잘 들 보란 말이야"하시고 하나님께서 왕이 보는데서 군사 12만 명을 죽여버리신 겁니다. 이것은 사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죽자살자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네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 언약과 약속대로 말씀대로 세상은 전개된다는 것을 네가 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말입니다. 세상살이에 바쁘더라도 구경 좀 하라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이 내리신 말씀이 그 내용대로 어떻게 철저하게 이루어지는가' 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다 비켜, 다 비켜. 인간들 비켜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겁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오히려 속시원한 이야기로 받아드리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살면서 환경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불을 이기고 물을 이깁니까. 그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까짓 것 하나님의 진리를 알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신앙이 물과 불보다 더 강합니다. 이 점이 성도를 속시원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좋다 물이여 오너라 불이여 오너라"라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사는데 오히려 속시원하게 살게 합니다. 자식이 공부 못한다고 떨고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떨면 앞으로 계속해서 더 큰 파도처럼 떨일 일이 닥쳐올텐데 그 때마다 계속 떨고만 있겠습니까. 무언가 꽉 하나 잡는 게 있어야 합니다. 우왕좌왕하는 생활은 오늘로서 깨끗이 청산합시다.

아하스왕이 바알을 섬겨서 이런 벌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벌벌 떨기만 할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잘 하셨습니다. 하나님 저 아하스 라는 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벌을 받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정작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과연 세상은 하나님 말씀으로 처리해 버리시는군요. 저에게도 이 사실이 속시원합니다." 라는 식으로 하나님께 동조하고 이 현실에 자아를 의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 이렇게되니 인생에 대해서 걱정할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됩니다. "나는 살아야 돼 남에게 기죽고는 살 수 없어 나는 살아남아야 돼"라는 것을 자꾸만 되새기고 내 중심으로만 생각하니까 점차 하나님이 미워지는 것입니다. 마귀를 인간을 들여다보면서 뭐라 하겠습니까? "야 이 인간은 완전히 내 밥이네 밥. 어디 이렇게도 쑤셔볼까, 놀랬지? 이번에는 저렇게 쑤셔 볼까 놀랬지?"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정기 드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살아서는 되겠습니까. 이렇게 불쌍한 영혼이 또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이 세상에 어떤 차별도 없다는 것을 오늘 이 아하스 왕의 징벌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목사든 집사든 그것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왕이라도 당하는 것을 보세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세상을 볼 때에 하나님 말씀만 가진다면 우리도 역시 세상을 차별 나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6:29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쫓아와서 어떤 질문을 했는데 오늘날 교인들이 흔히 하는 질문과 똑같은 질문입니다. "예수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여기서 해답을 잠시 보류하고 당장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한 번 답변해 보세요. 즉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마 기도하는 것이, 전도하는 것이,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는 등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내리신 해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 예수님이 몽땅 일을 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네가 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일은 딴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율법과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아들만이 해낼 수 있다 라는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 말은 곧 인간 자체를 두고서는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됩니다. 요한복음 3:16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멸망은 꼭 있습니다. 언약대로 멸망은 꼭 있습니다. 아하스 왕이 망하는 것 지금 보고 있잖아요. 하지만 다 멸망해도 멸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누구를 말입니까? 하늘에서 오신 독생자 말입니다. 진짜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수를 안 믿습니까? 그것은 남한테 안 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 중심의 차별화의 세계를 따로 장만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이런 점에서 좀 낫고, 교회에는 나는 저 사람보다 높고. 나는 저 사람보다 신앙이 이 낫고 "라는 차별화된 맛을 인생 맛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자기 행위 중심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믿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안 믿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도리어 하늘에서 보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일으키는 사랑과 은총과 불쌍히 여겨주심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음도 여기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기죽을 필요가 없지요. 모든 사람에게 기 안 죽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영생 얻은 것은 예수님 때문이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에 와서 비로소 이 놀라운 기쁜 소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구약 성경 오늘 본문에서 아하스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된 통으로 당할 대로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상 섬기다가 자기 군사 12만 명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꼭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안 봐줍니까? 다른 사람보다 죄질이 더 나빠서 그러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말씀의 엄중함 때문에 시범 조로 당한 것입니다. 결코 아하스 왕이 우리보다 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대로 저주받을 자에게 저주가 내려지고 구원받을 자에게는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 그는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실이 지금 우리의 생존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 성경에 와서 우리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주여, 저는 예수님만 믿습니다"라고 것이 성립이 되는 겁니다.

아하스 왕이 우상 섬기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전쟁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사단과의 전쟁을 하시는데 그 전쟁의 모토가 바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바로 이러한 깊은 마음을 하나님의 나라라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심어주고 전달해 줄 필요가 있는 겁니다. 지상의 사람들은 흔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니 살다보면 우상 섬길 수도 있고 점칠 수도 있고 행운을 빌 수도 있지 그게 뭐가 나쁩니까? 그래 우상 섬긴다고 또 벌주려고 야, 정말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돈벌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하나님 말씀마저 또 지켜야 한단 말입니까? 저희에게 큰짐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나오신다면 정말 하나님한테 있는 정도 떨어지겠습니다"하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의 우상 섬김의 행위를 포착하시고 언약의 엄중성을 터 뜨리 버리신 겁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우상 섬기는 것이 대단히 나쁜 일로 여기는데 지상에 있는 이 바보 같은 인간들은 밥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이 우상 숭배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귀찮기조차 하는 잔소리로 들립니다.

신앙인 같으면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하, 저는 그동안 우상 숭배가 그토록 나쁜 것인 줄 감을 못 잡았는데 하나님께서 고맙게도 먼저 우상 숭배하는 아하스 왕을 잡아서 그의 군사 12만 명을 몰살하시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니 이제사 하나님의 취지를 알았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간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교회란 하나님의 취지와 말씀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관심 없는 것은 전하면 안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하스 군사 12만 명 잘 죽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저는 아직도 내 생존 문제에 매이고 허덕이면서 하나님의 뜻에 무지할 뻔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진리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야합니다. "하나님 더 치십시오. 저도 치십시오. 마음껏 치십시오"라고 감사히 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우리들을 가볍게 합니다. 이왕 죽을 인생 그저 하나님의 뜻만 알고서 죽읍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저희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정신을 온통 내 사는 문제에 매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모독한 저희들입니다. 하나님, 저희들 사는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우선되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뜻을 전달하는데 남은 생애를 보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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