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38. 함께 가지 말라 (역대하 25:5-13)성경역대하

38. 함께 가지 말라 (역대하 25:5-13)

이름 : 우리교회(IP:122.47.52.38)

38. 함께 가지 말라 (역대하 25:5-13)

25:5 아마샤가 유다 사람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만한 자 삼십만을 얻고
25:6 또 은 일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을 삯내었더니
25:6 또 은 일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을 삯내었더니
25:7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하지 아니하시나니
25:8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25:9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수 있나이다
25:10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나아온 군대를 구별하여 본곳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저희 무리가 유다 사람을 심히 노하여 분연히 본곳으로 돌아갔더라
25:11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 백성을 거느리고 염곡에 이르러 세일 자손 일만을 죽이고
25:12 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
25:13 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사람 삼천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도 저희들을 권면해 주시고자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혹시 비뚤어진 것이 있는가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죠?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가 지키는 겁니까? 하나님이 지키는 겁니까 아니면 사람이 지키는 겁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지킨다고 누구나 여길 것입니다. 그래도 실제로 일을 해야하는 것은 사람이 나서야 된다 라는 것도 또한 상식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켜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지킨다 라는 말이 맞는 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나오는 문제가 뭔고 하니 '어떤 사람이 적당할꼬'가 등장하겠지요. 거기야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적당하지 라고 쉽게 답변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답변하기가 난처해지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제각기 하나님 마음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무엇을 노리고 그 주장을 하는지 혹은 자기의 욕심대로 일하는지 아니면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각자 무작정 일을 해 보는 겁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답변하기를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됩니다" 그 사람이 연이어 묻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만 쏙쏙 빼내어 기도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하지요. "그냥 해보세요" 그러면 그 쪽에서 나오는 말씀이 "아니 성경대로 하면 안됩니까?" "성경대로 한다고 여기시고 그냥 해보세요. 아마 성도 같으면 성령께서 뭔가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제가 대답하곤 합니다. 이것이 마치 해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에 안동교회에 계시는 목사님께서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어떤 집사님이 돼지새끼 7마리 낳아놓고 기도해 달라고 하는데 기도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제가 스스로 복음을 아는 목사라고 저는 자처해 왔는데요" 그래서 저는 이야기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돼지새끼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기복신앙일거야 하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 중에서 일부만을 자기가 골라낸 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상황을 주시면 그 상황을 미리 거부하지 말고 그 상황 속으로 뛰어드는 겁니다. 그 상황이 돼지새끼가 되었든 뭔가 되었든 말입니다. 한 오 년 전에도 어떤 집사님 한 분이 저에게 와서 하는 말이 "차를 새로 샀는데 이 차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해 드렸습니다. 그 집에 찾아가서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하면서 "다시는 차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집사님이 되도록 해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애초부터 딱 끊을 것이 아니라, 혹은 자기가 임의로 "이건 기복신앙이야 이건 기복신앙이 아니야"라고 결정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기복신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들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나 자신도 전에 몰랐던 음흉한 생각이 들어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없다하지만 언제 또다시 그 생각이 내장되어 있을지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도는 쉬지 말고 하는 겁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고칠 것 고치고 회개할 것 회개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쟁에 나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해서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느냐에 대해서 아마샤 왕은 그냥 추진해 보는 겁니다. 우선 자기 나라 군사 30만 명을 모읍니다. 5절에 보면 "아마샤가 유다 사람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만한 자 삼십만을 얻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가지고 모자란다 싶어 은 일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을 삯 내었습니다. 합해서 40만 군사를 모았는데 그냥 전쟁에 일단 나가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따진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해보는데 그 때 이 아마샤 앞에 누가 등장하지요. 7절에 보니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아마샤 왕에게 전달합니다.

지금 아마샤 왕이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원 없이 하고 있는 연 후에 말입니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북쪽 나라 십만 명은 돌려보내야 합니다"라고 이 아마샤 왕 앞을 가로막고 나섭니다. 아마 우리 같으면 돈을 이미 다 그들에게 주어버렸다고 불평 할련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말하기를 돈 신경 쓰지 그 용병들을 그냥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만약 그들 용병들을 돌려보내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왕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큰 진리를 하나 배울 수 있는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가 지킵니까? 그야 하나님이 지키겠지요. 그런데 왕은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한다 면서도 하나님의 택하신 자가 누구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막무가내로 북쪽나라 군사까지 돈주고 사서 마구 끌어 모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선지자가 저지고 나섰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겁니다. "왜 북쪽 나라는 사람은 하나님이 벌리시는 전쟁에 같이 참여 할 수 없는가?"하는 점입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택한 민족 속으로 합류 할 수 없는 자들인가?" 이 말입니다. 이것은 평소의 그들이 보는 하나님이나 사고방식에 나라 세울 때부터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북쪽 나라가 건국 될 때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되지 못한 사고방식으로 출발했다는 것을 하나님은 염두에 두고 계신 겁니다. 남쪽 나라 아마샤 왕은 철이 없이 무조건 사람 많으면 전쟁에서이기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선지자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숫자에 인간들이 매여 사는 것인 인간의 본성입니다. 교회도 숫자 많이 불어나면 하나님의 축복인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들의 더러운 본심에 불과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택한 자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하나님에 의해서 택함 받은 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이어야 합니다.

자...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압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사람은 안 되느니라"라입니다. 신자라도 늘 세상 불신자의 지혜와 아이디어를 채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불신자들과 타협해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을 미워 하라가 아닙니다. 또한 그들이 도와 줄 때 고맙게 도움 받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의지할 데 없어서 그들을 의지하는 자세로 살아가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방금 이야기한 이 '불신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매우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교회도 안나오는 불신자 같으면 우리가 단번에 알아 볼 수 있는데 교회 나와서 직분을 가진 불신자 같으면 난처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입니다. 교회 운영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할 때는 불신자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복음과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교회 키워서 자기 이름 높이려는 자는 바로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하고 합해서 무슨 일을 한단 말입니까. 관심사가 자기 자신 뿐인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이스라엘 사람은 안 되는가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역대하 10장에 보면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없는가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남쪽 나라와 북쪽 나라로 둘로 갈라 설 때 그 갈라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북쪽 나라 군사들과 함께 동맹하지 말라고 거부하신 것입니다. 역대하 10:16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에 보면 나오는 여로보암이라는 고수가 하는 말이, "다윗하고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하고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물론 여로보암이 자기는 하나님을 버리겠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다윗과 그 가문을 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노와 질투와 시기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북쪽 나라 사람들이 생각한 과거사는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13지파가 애굽에서 나올 때는 모두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나 각자의 지파보다 월등한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를 특별히 택하사 다른 지파를 다스리는 왕을 출현시키니까 다른 대다수의 지파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네가 뭔데 돛대 짓을 하려느냐"하는 겁니다. "다같이 같은 하나님 믿는데 네가 뭔데 그렇게 대단하냐?"라고 나선 것입니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우리의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오시기 전 까지는 모세를 대신하여,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대신하여 왕으로 삼을 자는 사람들이 투표해서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꼭 짚어서 지도자로 내정하셨던 것입니다.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다윗입니다. 그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12지파가 회의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해서 다윗과 그의 지파 유다 지파를 왕의 지파로 삼은 것입니다. 앞으로 이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으려고 한다면 그 다윗 계통의 왕을 계속 옹립하고 유지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지파가 토라져버린 것입니다. "네가 뭐가 잘나서 우리의 지도자가 되려하느냐?"라고 나선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맞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잘났기 때문에 지도자 된 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뭔가 하면, 지도자, 즉 예수님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다는 겁니다. 모든 교회가 사람과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끝맺으려고 합니다. 어떤 목사보다 옆구리 꾹 찌르면서 물어보세요. "당신 예수 믿습니까? 예수님을 지도자로 인정합니까" 하면 그 사람이 꿈쩍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 본인이 교회에서 최고 높은데 아니 높은 자에게 무슨 낮은 평신도가 신앙을 따질 수 있으며 또한 자기가 평신도 지도자 노릇 잘 하고 있는데 무슨 자기말고 자기를 거치지 않는 다른 통로로 직접 평신도를 지도하는 지도자가 따로 존재할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생각한단 이 말입니다. 혼자 목회 한다고 끙끙 앓고 있고 혼자서 사람 끌어 모은다고 끙끙 않고 있으니 그렇다면 정말 교회 지도자나 책임자는 자기 외에 정말 없는 것입니까? 아니, 교인들이 주님만 쳐다보도록 해야지 어떻게 자기만 쳐다보도록 유도합니까.

교인들은 예수님을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목사 제 혼자서 예수님을 실제적 지도자로 인정 안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자기 위에 아무도 없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기분은 좋지요. 하지만 동시에 교회의 운영과 보존을 본인이 책임지지 아니하면 교회 꼴이 안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사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주의 종에 불과하다"라는 삶으로 사는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인다고 그렇게 무시되는 되는 분입니까? 목사뿐만 아니고 일반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가정에 한 청년이 다른 식구 아무도 안 믿는데 혼자 교회 나온다고 칩시다. 그런데 부모님이 협박을 한다합시다. 그럴 때 그 청년이 고민하기를 "아, 내 힘으로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하고 어머니를 설득하겠는가"합니다. 아니 그 청년은 무슨 마음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자기가 스스로 결단 내려서 교회 온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결단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겁니까? 그 가정의 지도는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닙니다. 그 가정의 지도자는 예수님입니다. 왜 사실을 청년은 안 믿고 예배당 안에서만 예수님이 지도자인 줄로 간주합니까.

아가씨 시절 교회 봉사하면서 천하에 믿은 좋다고 자부했던 그 아가씨들이 막상 불신 가정에 시집가니까 , 혹 믿는 가정에 시집가도 마찬가지 입니다마는 그만 신앙생활 때려치우고 교회도 안되고, 또 설서 믿는 가정에 시집갔다 할지라도 신앙생활 때려치우고 놀러나 다니고 있습니다. 결혼했으니 왕창 행복하다 이 말입니까. 아기 키우는 그 재미로 시집식구한테 사랑 받는 그 재미로 삽니다. 도무지 지도자가 없습니다! 영원한 지도자가 없습니다. 사람보다 더 높은 지도자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사람만 믿지 예수님을 믿지를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 흐름이 그러합니다. 교인들은 목사 눈치보다 목사는 교인 눈치보다 말입니다. 목사는 목회 저 혼자 책임지려고 하고 말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분명히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해같이 변화되니까 베드로가 깜짝 놀랬습니다. 그 때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것이 있는데 그 소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이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저의 말만 들어라, 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에게 직접 음성을 들은 것과 같습니다. 지금도 그 음성이 목사이든 집사이든 계속 지배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89:3-4에 보면,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였다 하셨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 많은 이스라엘의 남자 중에서 하필 다윗이라는 꼭 집어 기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부터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를 쳐다봐야 합니까? 다윗을 쳐다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요즈음 같으면 변화산의 음성 내용과 같이 예수님을 쳐다보면 거기에 순종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다윗이요 예수님 오시고 난 후에는 예수님입니다. 비록 눈에 안보이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목사를 쳐다보는 실수를 해서는 아니 됩니다. 눈에 보이는 목사가 눈에 안 보이는 예수님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것이고 저 분은 저 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르고 유다 자손들보고 말하기를 "너희들이 뭐냐? 하고 나하고 다른 점이 뭔데 너희들이 그렇게 잘났냐"하고 대들었습니다. 아니, 다윗이 뭐가 잘났겠습니까 간음에다 살인까지 한 사람이 잘나봤자 뭔가 잘났겠습니까. 하지만 간음을 했던 살인을 했던 하나님이 꼭 집어 선택했으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성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 사실을 그대로 믿고 따라야 같이 택한 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니까 저보다 따지지 마세요.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이름을 준 적이 없다'라는 것이 제가 제시한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주신 구원의 방식이니 저보고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샤 왕은 놀랍게도 선지자의 말을 듣고 용병을 다 돌려보내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이미 그들에게 다 지불했는데 그 돈을 어떻게 하지?"하고 선지자보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9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수 있나이다" 선지자가 하는 말이, "걱정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함께 하면 이깁니다. 숫자가 필요하다면 10만 명 보다 더 군사를 안겨 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뜻은, 하나님이 더 군사의 숫자를 증가시켜 전쟁을 수행케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마샤가 더 이상 숫자에 연연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믿을래 사람 수를 믿을래 를 따지고 드는 것입니다. 신앙은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안 주어도 계속 하나님 믿으래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뒤에 보니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이 토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갖은 행패를 다 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앙심을 품었습니다. 13절보니 " 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사람 삼천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택한 지도자를 거부한 자들과 과연 일을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교회에서 복음을 모르는 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복음이 뭡니까? 십자가 지신 주님을 각자의 지도자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일한 명령 자로 각자 삼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 편이 적다할지라도 이미 하늘의 지도자의 일에 참여된 자가 성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어렵고도 너무나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스스로 지도자 되려고 할 때는 어렵고 지도자를 섬길 때는 아무런 걱정이 없이 쉽다는 것을 알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5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4,842 강의 40. 아하스 왕의 시작 (역대하 28:1-9)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41 성경 40. 아하스 왕의 시작 (역대하 28:1-9)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40 강의 39. 선지자의 할 일 (역대하 25:14-16)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9 성경 39. 선지자의 할 일 (역대하 25:14-16)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8 강의 38. 함께 가지 말라 (역대하 25:5-13)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열람 ➜ 성경 38. 함께 가지 말라 (역대하 25:5-13)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6 강의 37. 요담 왕 (역대하 27: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5 성경 37. 요담 왕 (역대하 27: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4 강의 36. 교만의 결과 (역대하 26:16-21)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3 성경 36. 교만의 결과 (역대하 26:16-21)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2 강의 35. 부모의 죄와 자식의 죄 (역대하 25:1-4)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1 성경 35. 부모의 죄와 자식의 죄 (역대하 25:1-4)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30 강의 34. 징벌에 담긴 진정한 뜻 (역대하 24:23-2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9 성경 34. 징벌에 담긴 진정한 뜻 (역대하 24:23-2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8 강의 33. 요아스 왕의 변절 (역대하 24:15-22)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7 성경 33. 요아스 왕의 변절 (역대하 24:15-22)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6 강의 32. 요아스의 성전 사랑 (역대하 24: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5 성경 32. 요아스의 성전 사랑 (역대하 24: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4 강의 31. 거짓 제사장의 죽음 (역대하 23:16-21)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3 성경 31. 거짓 제사장의 죽음 (역대하 23:16-21)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2 강의 30. 왕 세우기 (역대하 23:8-11)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1 성경 30. 왕 세우기 (역대하 23:8-11)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20 강의 29. 언약대로 (역대하 23: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9 성경 29. 언약대로 (역대하 23: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8 강의 28. 악마의 속셈과 대비책 (역대하 22:10-12)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