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영웅 탈락
2003-07-09 23:04 답변 모세의 가나안 탈락모세는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갑니다. 못들어가는 이유는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입니다.(출 17:6)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민 20: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민 20: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민 20:9)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민 20:10)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민 20: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바위에게 명령만 하면 되는데 바위를 두 번 과거처럼 칩니다. 자기 혈기로 화를 내면서 모세는 명령만 해도 될 바위를 깨뜨리고 맙니다. 이것은 모세의 실수로써 여전히 모세 또한 홍해의 의미를 몰랐던 것을 나타내는 바입니다.(고전 10장)(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반석 되신 예수님이 두 번 십자가에 몸을 찢을 못밖을 필요 없습니다. 단번의 제사로(롬 6:10/히 7:27/9:22-28/10:10) 오직 단 한번의 피 흘림으로 죄 없게 하셨습니다.(히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그런데 모세는 예수님의 한 번 깨어진 몸을 또 다시 깨뜨려 모든 회중을 모은 자리 앞에서 신령한 음료를 마시게 하는 자기 능력을 과시하게 됩니다. 사실은 우리가 찢어져야할 죄인인데 우리 몸이 갈라져야할 홍해인데 십자가의 용서 마저도 자기 유익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10장 후반에 시험(원망)과 우상과 자기 유익을 연관하여 언급합니다. 자기 유익(자기 생존)을 위한 것은 다 우상입니다.(고전 10:24) 모세는 과거의 경험으로 자기비책이 있었던 겁니다. 비상시 사용할 위기 극복 작전이 있었던 거죠. 히든 카드로 미리 하늘이 무너져도 쏫아날 구멍을 자기 쪽에서 미리 챙겨 놓은 겁니다. 그래서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이 마귀 사상입니다. 모든 속담은 인간의 경험이 축적된 자신만의 노하우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철학 사상이 교인들에게 말씀보다 더 설득력 있는 비책으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종교지도자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이런 비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거 용납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마치 만나를 내일 양식을 위해 쌓아두면 썩듯이, 오늘 양식은 오늘 양식으로 족합니다. 즉 이 말은 누가 창조주냐 라는 겁니다. 누가 피조물이냐는 겁니다. 피조물이 자기 운명 스스로 개척한다면 피조물입니까? 독립된 존재이지 !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비젼이라는 프로그램 형태가 이런 식으로 변질되어 가는 종교적 탐욕을 부채질 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원망할 만한 곳으로 인도 합니다. 바로를 강퍅케 한 것도 하나님입니다. 즉 너희들도 강퍅하게 할수도 있는 하나님 창조주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히려 버림받을까봐 벌벌 떠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였습니다(고전 9:27) 도리어자 결국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은 약속만 믿고 가는 반드시 죄를 모르고서는 들어가지 못하는 땅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모세를 탈락 시키시면서 까지 알려주시고자 하는 겁니다. 그런데 다들 자기 생명을 자기가 챙겨야 하는 생존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생명을 주장합니다.생명이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었기에 생명 나무 따먹으면 영생하게 되는게 그것을 차단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생명이 없는 신처럼 되었지요. 죽는 신이라다 라는 겁니다. 죽음에 지배받는 신이면 가짜죠. 가짜 신그런 인간에게는 오로지 자기 생존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생존은 자기만 빼고 다 적입니다. 하나님도 적이요 처세술로 하나님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 이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름 싸움. 하나님 이름과 인간 이름 싸움)그렇기에 일부러 원망할 만한 곳으로 인도하면서 까지, 당연히 인간이 욕하겠지요. 그런 욕, 무시. 원망, 배반, 비웃음 당한다는 것을 뻔히 알시면서까지 기어코 뭔가를 이룩하겠다는 하나님의 고집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드시 알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은혜를 알면 동시에 죄가 비로소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죄를 반드시 알게끔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선악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기에 이미 죄와 악을 압니다. 그런 죄 악 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하는 악의 실체를 반드시 알리고자 하는 겁니다. 그 악의 실체는 결국 자기 생존입니다. 자기 생존을 위해서라면 신을 믿어서까지 복받겠다는 자기 생존 존재 유지 이것이 악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죽이는 곳으로 갑니다. 물없고 양식 없고.자기를 위하여(출 32:8)(신 5:8)(신 9:12)(삼상 15:12)(삼하 15:1)(삼하 18:18)십자가의 좁은 길로 가야 악의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그렇다면 탈락한 이스라엘은 뭘 몰랐는가요? 자기가 곧 애굽 재앙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자기자신이 악의 실체 라는 겁니다. 홍해든 신령한 음료든 신령한 식물(만나)이든 자기 유익을 위해 먹고 마시니 결국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겁니다.(고전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죄를 몰랐기에 망했습니다. 긍휼을 안베풀어서 망한게 아니라 긍휼의 거부하는 악(선악과)이 자기를 지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속성을 들추어 내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에 얽매인 뜨거운 자기 열정적 신앙이, 교회 중심적 신앙이, 오히려 주님을 핍박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바로 다윗이 죄를 모르고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겠다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오히려 주님을 죽이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곧 다윗이 누구에게 핍박 받고 훼방을 받는가 하면 성전을 가장 사랑하는 자들에게서 삼킴을 받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 앞에서 자리 쟁탈전을 하는 피비린내 나는 자기 집안 싸움이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시 69:9절 그대로 신약에서도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되어 성전을 고수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참 성전 되신 예수님의 몸이 죽임을 당합니다.(요 2:17)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가서 모세는 그럼 천국에 못가냐? 아닙니다. 자꾸 우리의 관심사는 구원뿐이라서, 자꾸 자기 생존에만 신경 씁니다. 약속이 어떻게 진행 되느냐 하나님의 약속이 철두철미하게 너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은 하나도 모르고 관심도 없고 그저 자기 구원만 챙기면 끝난다는 식입니다. 자기 유익만 구합니다. 우상입니다.모세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안됩니다. 이미 그는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된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아니라 주님의 낮아짐으로 알게 된 겁니다.(긍휼을 입고. 은혜를 받은자) 그렇기에 영숙 누님의 생각처럼 "최선을 다했기에 천국에 들어가는"게 아니라(그래 되면 행함으로 구원받은 거죠)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예정 되었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생명책에 기록 되었기에 들어가는 겁니다. 모세가 존재하기 전부터 말이지요 미리 정해진 겁니다. 자 여기서 아주 주의할 사항 누구가 약속을 성취하기에 모세가 천국에 들어갑니까? 뒤에 오실 예수님. 사실은 창세전에 계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모세탈락을 이야기 하면서 모세의 탈락이 중요한게 아니라 예수님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모세의 이야기인 듯 같으나 속 내용은 전부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예정이 아니라 아들의 형상이 예정된거죠. 그렇기에 그도 주님의 때를 기다렸던 겁니다. 주님을 바라보고자 그들 운명이 정해진겁니다. 마치 다윗이 율법적인 죄만 알다가 나단 선지자의 경고를 통해 꺽으신 뼈로 죄의 의미를 새롭게 또 은혜를 새롭게, 심판(죄)과 구원(은혜) 기준이 새롭게 알게되는 십자가 중심 어린양의 희생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행함이 아니지요.(히 11: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9)『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히 11:40)『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2: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부르시고 부르신 이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이를 영화롭게 하신다 그렇기에 나는 예정 되었다 이것은 말도 안됩니다. 이미 정해졌기에 불렀는 것이고 의롭게 한거고 영화롭게 된겁니다.결국 인간 예정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인간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성경은 애초부터 인간 구원이 목적이 아닙니다. 아들의 영광입니다. 그것이 약속의 목적입니다.아들 예수님 만이 약속을 지킨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이란 약속을 못지킨다는 뜻입니다. 만약 자기가 구원을 이룰려고 한다면 곧 자기자신이 우상이 되는 겁니다. 아들의 예정에만 성경이 관심 있는 겁니다 인간 예정에는 관심 밖입니다.(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홀로 다 이루신 것을 믿는 것이 예정된자들의 특징이요 그 예정 된자는 주님과 똑같은 이 세상에서의 멸시를 받는 겁니다. 히 11장의 믿음의 선배들이 그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감당치 못한다는 것은 세상의 성공자 아무도 못건드리는 권세 능력이 있는자가 아니라, 마음껏 갈구어도 갈구어도(시 44:22/롬 8:36) 다시 일어서는 죽음이 먹혀들지 않는 오뚝이 라는 말입니다. 스데반 오뚝이 보세요. 스데반 오둑이가 쓰러지고 일어서니까, 스데반(그리스도의 몸) 넘어뜨린 그 자리에 스데반을 죽인 사울이 도리어 바울(그리스도의 몸) 오뚝이가 되어 일어나죠. 바울 오뚝이를 죽였던 그 로마에서 오히려 가장 핍박한 자가 주님을 증거하는 자로 다시 태어나는 오뚝이로 일어서는 희안한 전도, 미련한 전도가 십자가의 지혜(고전 1:18-31)입니다. (요 15:1-12)(마 10:16)(눅 10:3) 죽음의 자리에서 참생명이 피어나는 겁니다(요 12:24). 그러니 죽음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주라고 아무도 가지 않던 에발산에서 축복이 임하고, 서로 복 받을려고 너도나도 마구마구 올라가던 그 축복산의 산에 저주가 임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축복을 참생명을 나누어 주실려고 골고다 언덕 죽음의 언덕 해골의 언덕 성문 밖에서 영문 밖에서(히 13:11-13) 다 이루십니다.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심지어 제자들 마저도, 그런 죄인일 수밖에 없지만, 그런 죄인을 부르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로 새로 창조 하십니다. 그 코에 생기를 넣듯 약속한 성령을 주심으로 비로소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라는 새언약을 통해서 주님의 가신 길을 동참하고 또 넉넉히 이긴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는 주님에게 붙잡힌 바 된 은혜아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주님은 오늘도 외치십니다. 제발 지옥 가지 말라고요.주님! 어리석은 우리들을 이 죄악에서 건져 주소서. 제발 지옥 가지 않토록 버림받는 자가 안되도록 십자가의 사랑을 자기유익으로 이용하는자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피, 그 십자가의 사랑 외에는 다른 어떤 자랑도 하지 않는 입술로 찢으시고 다시 고처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